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90)
1.
콰아아아앙!
폭발음이 들려오자 술집의 손님들은 허둥거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빌어먹을. 또 시작이군…!”
손님들은 어디론가 대피하거나 탁자 밑에 숨어들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술잔과 안주가 엎어질까봐 얼른 양손으로 잡기만 했을 뿐. 여기서, 50층에선 폭발 정도야 일상에 불과하단 뜻이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으.」
장내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나를 비롯하여, 사람들은 목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봤다.
「방금 층간소음에 관하여 마탑에서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아.」
마탑(魔塔).
그곳은 이 노상주점과 더불어 유이하게 50층에서 익숙한 장소였다.
일전에 내가 살천성을 잡으려 들었을 때 마탑의 마녀들도 참전했었다. 그들이 머무르는 본거지, 마탑은 모두 다섯 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져 하늘에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대지의 거인이 하늘을 움켜잡으려는 듯 다섯 손가락을 뻗은 것처럼.
‘천 년이 넘도록 이 50층을 지배하는 세력… 이라고 했던가.’
나는 배후령을 힐끗거렸다.
‘댁이랑 원수진 동네이기도 하죠?’
-아냐, 아냐. 난 쟤들한테 별 감정없어.
배후령이 천연덕스럽게 주장했다.
-쟤들이 날 일방적으로 싫어할 뿐이지. 진짜로. 오히려 난 상당히 억울한 입장이랄까.
‘……원래 6개 있던 탑 중에 하나를 댁이 무너뜨렸다면서요. 억울한 사람이 왜 그랬는데요?’
-아니, 봐라. 애들이 딱 봐도 우중충하잖냐. 맨날 탑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는데 막 곰팡이 냄새가 풍길 지경이라니까. 가끔 환기도 하면서 살아보라는 의미에서 탑에 빵꾸 좀 뚫어줬지. 생각해보면 난 감사를 받아야 돼. 공짜로 리모델링까지 해줬잖아? 하여간 50층에서 제일 잘 사는 놈들이 상도덕도 없어요. 쯔쯔쯧.
‘그러는 댁은 그냥 도덕이 없는 거 같습니다만…….’
마탑에서 발신한 음성은 도시 전체에 고고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노천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 좌판을 깔고 장사하던 사람들, 대낮부터 주사위 놀음을 하던 부랑아들, 모두가 일상의 시간을 멈추고 멍하니 5채의 탑을 올려봤다.
「전 마탑의 대변인 되겠습니다. 뭐, 별 얘기는 아니고. 오늘도 자기 주제를 모르고 우리한테 깝치신 테러리스트들이 있어 이렇게 안내 말씀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아.」
「방금 여러분의 고막에 골인한 폭발음이 바로 그 테러리스트들이 벌인 짓인뎁쇼…. 야, 야. 이리 좀 끌고와. 아니 거기 말고. 씁! 그러치. 거기지.」
그 순간, 대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마탑은 우리의 동료들을 가두고 있다!」
「저, 저희는 하무스트라님의 신도들입니다!」
나는 멈칫했다.
하무스트라의 신도들이라고?
「우리 모두 정식으로 공용 루트에 진입한 사서(司書)들이다! 마탑은 우리를 불법적으로 탄압하고 감금했다!」
「여러분! 지금 모두 힘을 합쳐서 일어나지 않으면, 언젠가 여러분들도 저희처럼…….」
「아. 아. 좋아. 거기까지. 어휴우.」
대변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여하튼 마스터도 없는 것들이 목청만 딥따게 커선. 자아, 다들 사정이 파악되셨습니까아? 이번에 벌어진 소란은 전적으로 성좌한테 버림받은 찐따들이 저지른 테러입니다. 그렇게들 아시고….」
「닥쳐! 우리는 하무스트라님한테 버림 받지 않았다!」
「강자와 약자의 차이점이 뭔지 압니까? 강자는 닥치고 싶을 때만 닥치면 되는데 약자는 별로 닥치기 싫을 때도 닥쳐야 한다는 거죠오.」
콰직!
하늘 너머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터졌다.
「읍! 우욱…!?」
「예에, 보다시피 이놈들은 약해빠졌고요. 약해빠지기만 하면 다행인데 약아빠지기까지 해서 우리 마탑의 경비 시스템을 망가트리려 했습니다. 그 결과는 뭐… 지금 제 손에 이빨 하나 뽑혀 있네요. 뭔 소린지 감 오죠?」
「여러분도 부디 마탑에 깝치지 말라 이겁니다.」
주변이 술렁거렸다.
「어쭈? 얘가 야려보네? 여보세요. 닥치라는 말에는요, 아가리를 여물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닙니다아. 네 눈깔도 닥치라는 거예요.」
콰즉, 쯔으윽! 끼이이이….
흐릿한 하늘로 불길한 소리가 줄지었다. 소리가 비틀어질 때마다 흡, 으읍, 누군가의 비명이 엮였다. 신음은 일곱 마디로 끊어져 50층의 상공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
“…….”
노천의 주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헌터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며 하늘로부터 전해지는 비명을 외면하고자 애썼다. 이것이 일종의 공개처형식임을 모두가 알아차린 것이다. 오직 술집 주인장만이 “퉷, 장사 망치는 데 도가 텄구만”이라고 궁시렁거리며 바를 닦았다.
「아. 아. 마이크 한 번 더 테스트.」
「여러분도 아무쪼록 길을 가다, 길이 아닌 곳을 가다, 옛 하무스트라의 신도들을 보면 제보해주십쇼. 얘들이 악질이더라니까? 뭐 자잘한 포상금도 있을 건데, 도시 치안에 대국적으로 협력한다 생각해주시고….」
「씨, 이것도 귀찮네. 아무튼 다 알아 쳐먹었죠? 제 손안에 시방 앞니, 송곳니, 작은 어금니 다 합쳐서 이빨 8개가 뒹굴거리고 있습니다. 이 이빨은 당신 친구의 것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아.」
「건승하십쇼.」
목소리가 뚝 끊겼다.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 정적에 감싸였다. 하지만 50층 도시의 사람들은 못내 하늘의 침묵이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10초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의 북적거림이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지독한 것들. 또 쥐새끼 신도들을 잡네…….”
“사서들도 참 불쌍하긴 불쌍하다. 거, 하무스트라는 어디로 사라진 거라냐?”
“거야 뭐 뻔하지. 살천성이 죽인 거 아니겠어?”
“으이구. 살천성 한 놈 때문에 여럿이 죽는구먼.”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대화였다. 나는 바로 옆 테이블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기요. 말씀 좀 여쭙고 싶습니다만….”
“뭐요?”
나이가 지긋이 든 헌터가 눈썹을 찡그렸다.
뽀글이 파마머리를 한 채 왼눈엔 안대를 찬 헌터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 앉은 헌터들은 전원 성별을 불문. 다들 뽀글머리에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
그 압도적인 비주얼에 어찌 잠시나마 말문이 막히지 않으리오.
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되도록 정중히 물었다.
“……아니요, 그게. 음. 제가 요즘 50층 일을 잘 몰라서…. 세 달인가? 세 달 만에 여기 왔거든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마탑에서 저러 겁니까?”
“응? 하무스트라가 사라졌다는 얘기, 못 들었소?”
뽀글이 헌터들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심하게 부담스러웠다.
“그 얘기는 들어본 것도 같은데….”
“어이구, 살천성이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하오!”
아무래도 뽀글이 헌터 모임은 자신들의 수다를 들어줄 존재가 고팠던 모양이다. 저들끼리 인도의 난처럼 생긴 빵안주를 뜯어먹으며 왁지지껄 떠들었다.
“얼마 전부터 [만상의 대도서관장]의 신앙이 딱 끊겼다오. 원체 신도들한테 무관심해서 암만 말 걸어도 대답이 없는 성좌였다지만, 이젠 아예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구료. 여기. 이 친구도 원래는 하무스트라의 신도였수다.”
뽀글머리 A가 뽀글머리 B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자 뽀글머리 B는 인상을 구기고 빵조각을 우물거렸다. 이런 화제가 영 불편해 보였다.
“……조용히 해. 이젠 아니니까.”
“흐흐. 하무스트라가 신도 머릿수는 얼마 없어도 충성심이 참 높았지. 그런데 갑자기 실종되어버렸지 뭐요? 사서들이 절망에 빠진 것도 이해된다오.”
“…….”
나는 심상치 않은 예감을 감지했다. 하무스트라가 성좌의 힘을 잃은 것 때문에 뭔가 큰 일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그동안 알 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 아닌가?
“그…. [만상의 대도서관장]이 원래 인기가 많았나요…?”
“흠? 아니. 인기는 딱히 없었소.”
뽀글머리 A가 단언했다.
“[만상의 대도서관장]은 너무 헌터들한테 불친절하지. 왜, 다른 성좌들은 자잘한 퀘스트를 하나하나 클리어하게 해준 다음 자연스럽게 마지막 퀘스트까지 이어가지 않수?”
“아. 네…….”
그런가?
성좌를 신으로 섬겨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뽀글머리 A는 내가 성좌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하는 듯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말투로 설명을 넘긴 것이다.
“하지만 [만상의 대도서관장]은 다르오. 그냥 [이 세계를 멸망에서 구해라] 같은 목표 하나만 덜렁 던져주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란 식이지. 쯧쯧. 사람을 미치게 할 정도로 무책임하다오.”
“…….”
“퀘스트 도중에 보상도 없어. 힌트도 없어. 심지어 헌터가 위험에 처하면 유도리 있게 한두번쯤은 찬스를 줘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얄짤없이 죽게 내버려둔다오! 좋게 말하면 자유도가 높은 거지만, 달리 말하면 이게 그냥 신도를 방치하는 성좌여. 인기가 많을 수가 있겠소?”
“……하무스트라님은 바로 그렇게 엄격한 점이 좋은 거야.”
잠자코 안주를 주워먹던 뽀글머리 B가 입을 삐죽거렸다.
“평범한 성좌들은 그냥 퀘스트만 던져주고 끝이잖아. 하무스트라님은, 우리가 활약할 수 있는 세계를 주신다고. 알겠냐? 모든 걸 준비해주신 다음에 우리 플레이어들한테 일절 간섭하지 않아.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보시오. 이렇게 빠돌이가 있다니까.”
A는 흐흐 웃었다.
“하지만 이젠 끝이지. 말했듯이 응답이 확 사라져버렸거든!”
“…….”
“얘네 신도들도 참 무식해. 주인님이 죽었으면 얼른 다른 성좌 골라잡아 마스터로 섬기면 되는데, 하무스트라 신도들은 뭐가 그렇게 충성심이 높은지 신앙을 갈아타질 않소. 오히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살아남으려 하는데…. 저기 거미 같은 마탑의 종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두겠수? 올커니, 성좌의 빽도 없는 헌터들이구나, 하고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지.”
“닥쳐! 하무스트라님은 안 죽었어! 살천성의 추적을 피해 잠깐 잠적하셨을 뿐이야!”
으으음….
“어이고, 무서워라. 닥치라고 해서 내가 닥쳐야 하나? 마탑 애들이 말했잖나. 강자는 닥치지 않아도 된다네. 난 이래 봬도 20년이 넘게 [외로운 구도자]를 모신 헌터야. 곧 있으면 사도가 되실 몸이라고. 자네는? 그리 사랑하는 마스터를 잃어버리고 신앙을 갈아탄 찐따 아니신가?”
“이 새끼가!”
“어…. 저기요.”
나는 두 헌터의 말싸움에 슬쩍 끼어들었다.
“만약에 하무스트라를 죽인 게 살천성이 아니라면요?”
“음?”
“뭐?”
헌터들은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건가’라는 얼굴로 이쪽을 봤다.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로 깔보는 눈빛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한테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저 조심히 운을 뗐다.
“제 말씀은… 하무스트라가 왜 실종됐는지 이유가 밝혀진 건 아니잖아요? 그쵸? 어쩌면 살천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죽인 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진짜로 어쩌면…… 아예 안 죽은 걸지도 모르고요.”
“안 죽었다면?”
뽀글머리 A가 비웃는 기색으로 되물었다.
“성좌의 기운이 모조리 사라졌소. 신도들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런데 죽지 않았다면 뭐 어디 가출이라도 했겠수?”
“……어쩌면…… 타천해서 인간이 된 걸지도 모르죠.”
“뭐, 타천? 인간?”
A가 큰소리로 웃었다. 방금 전까지 A와 신경전을 벌이던 B 역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뽀글머리 헌터들은 모두 피식거렸다.
“허! 이 사람이 초짜가 확실하네.”
“타천이라니? 그런 말은 내 생애 처음 들어보는군.”
“여보시오, 청년. 성좌는 성좌고 인간은 인간이오. 특히 하무스트라는 성좌 중의 성좌로 이름 높지. 죽는 거면 모를까.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도시전설 같은 헛소문을 듣고 왔수?”
“…….”
진짠데.
하무스트라는 진짜 인간이 되고 카페에서 알바 뛰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엄청 인기 많아서 손님들한테 팁도 무지 받고 있는데….
“물론 살천성이 아니라 다른 놈이 죽였을 수도 있지. 다른 성좌가 죽였거나. 하지만 그럴 리는 없소! 여태까지 하무스트라를 죽였다고 선언한 애가 단 한 명도 없거든. 그게 얼마나 대단한 위업인데 아무렴 그걸 숨기겠소?”
“그래. 헌터놈들이 자기 자랑을 할 기회를 놓칠 리 없지.”
“성좌들도 숨길 이유가 없고. 살천성이야, 살천성. 그 미친 놈 짓이래도.”
“음…….”
나는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정말로 만에 하나…… 살천성이 범인이 아니라면요? 그땐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이었다.
뽀글머리 B의 눈이 섬뜩하게 번쩍거렸다.
“그놈을 잡아서 쳐죽여야지!”
쾅!
B는 분을 이기지 못해 테이블을 내리쳤다.
“감히! 어디 살천성도 아닌 놈이 우리 하늘과 같은 도서관장님을, 우리의 소중한 마스터님을 해치다니! 아예 묵사발을 낸 다음 공허의 괴물들한테 먹이로 던져버릴 거야! 나쁜 놈! 사지를 찢어발겨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침을 박아버릴 테다!”
하무스트라의 신도였다던 B의 눈동자는 분노로 타올랐다. 굉장한 살기였다. 다른 헌터들도 그래, 그래, 하고 맞장구쳤다.
“하무스트라 빠돌이들이 어마어마하지. 마스터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라오. 끌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진짜 범인 같은 게 있으면, 모든 우주의 하무스트라 신도들이, 모든 스테이지의 헌터들이 몰려와서 쳐죽일 거요.”
“암. 척살부대가 못해도 수천 명은 넘을 거야!”
“그나마 살천성이 우주급 또라이니까 다들 쉬쉬하는 거지. 만약 살천성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범인이다? 어이구, 그땐 진짜 난리 난다. 생각하기도 싫어라.”
“피바람이 몰아칠걸!”
B를 제외한 헌터들이 하하호호 웃었다.
마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물론, 나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좀비야. 이제 알겠냐?
“…….”
-내가 한 말은 전부 한점의 거짓 없는 진실이란다.
절찬리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나를 향해 배후령이 히죽 웃었다.
-너 리얼 악의 보스 맞아. 이 또라이 사교도 교주 리치놈아.
그래…….
적어도 내가 50층에서 해결해야 일이 하나 있다는 건 잘 알겠다……..
29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