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
영웅 사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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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범한 방법으론 염제를 이길 수 없어.’
심장이 쿵쾅거렸다. 침착해지려고 애썼지만 여간 쉽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바로 조금 전에 나는 머리부터 불태워져 죽은 것이다.
뼈와 살이 생으로 태워지면서 느껴진 그 고통이란··· 정말 끔찍했다.
“젠장, 개 같은 놈.”
나는 벽에 붙은 신문 쪼가리들을 노려봤다.
염제의 역사. 그가 이름 없는 신인이던 시절부터 세계 랭킹 1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터뷰와 기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물론 염제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당장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재수가 없었다.
“쯧. 그런데 이 개놈도 죽으면 24시간 전으로 회귀한단 말이지.”
죽여도 죽일 수 없다는 거.
이것이 너무 큰 문제다.
‘사실상 무적 치트키잖아?’
안 그래도 염제와 나는 실력 차이가 태양과 반딧불만큼이나 난다. 상대는 세계 랭킹 1위. 나는 랭킹 외(外). 질투심만은 탑한테도 역대급이라 인정받을 정도지만··· 질투심이 강하다고 해서 내 실력까지 강해지는 건 아니다.
우연에 우연, 기적에 기적이 더해져도, 내가 염제를 죽이긴 어렵다.
‘진짜 죽이는 데 성공해도 문제야.’
만약 내가 염제를 죽이면 어떻게 될까?
그냥 염제는 24시간 전으로 회귀할 뿐. 그러고 끝이다. 염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 죽이려 들 것이며, 죽이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나를 영원히 감금하려 들 것이다.
지하실에 감옥을 만들어서 거기에다 처넣는다든지.
염제의 무력과 실력이라면 간단히 날 제압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영영 감옥에 갇힌 채 인생을 보내겠지.
김공자 인생의 베드엔딩 넘버 투. 화려한 감금 엔딩이다.
“씨벌···.”
죽이는 것도 문제. 죽여도 문제.
도대체 이 싸이코패스한테 어떻게 복수하란 말인가?
‘어떻게 할까.’
‘무슨 방법을 써야 랭킹 1위를 조질 수 있을까?’
하루.
24시간이 넘도록 자취방에 꼬박 틀어박혀 생각했다.
벽에 붙은 신문 기사들을 빤히 노려보면서 고민했다. 거기에 염제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걸 보고 힌트가 떠오를지도 몰랐다.
「염제 단독으로 39층 토벌!」
「솔로 플레이로 38층 토벌! 염제의 또 다른 전설!」
「헌터 유수하. 세계 랭킹 1위에 등극. 한국인으로서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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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의 실종으로 텅 비어버린 랭킹 1위의 옥좌. 다음에 차지할 주인공은 누구? 외국 전문가들 입을 모아 “최유력 후보는 한국의 유수하”.」
「난공불락 10층 돌파. 수수께끼의 영웅은 과연 누구?」
「검성, 실종 22일 차. 헌터 업계 최악의 혼란이 도래하는가.」
“······.”
그 순간이었다.
“어?”
머리에서 전율이 일어났다.
“잠깐. ···이거 봐라?”
나는 신문 쪼가리를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어느 잡지가 염제와 인터뷰한 내용. 원래는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였지만 내가 직접 인쇄해서 갖다 붙인 자료였다.
+
Q. 유수하 님께선 처음 각성하신 것이 몇 살이었나요?
A. 21살 여름이다. 그러니까 벌써 11년이 지났다.
Q. 계절까지 정확히 떠올리시는 걸 보면 기억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A. 딱히 기억력이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단순히 내가 각성을 한 날이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다. 11년 전 6월 7일. 그래서 기억한다.
Q. 생일에 각성하셨군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A. 탑 1층에 있었다. 그 이상은 말해줄 생각 없다. 프라이버시다.
+
어찌 보면 평범한 인터뷰.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힌트였다.
“와, 씨. 잠깐만. 진짜? 이거 진짜 되겠는데?”
방법이 있었다. 세계 랭킹 1위의 헌터를 죽일 방법이.
절대 쉽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너 미쳤냐고 욕할 짓. 하지만 동시에 염제를 없애버릴 유일한 방법이 떠올랐다. F급 헌터, 말단에 불과한 나조차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말로 복수할 수 있다!’
그 때였다.
“불이야!”
창문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뭔 일인가 싶어 유리창을 열어봤다. 동네 저편에서 시뻘건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주민들이 골목으로 나와서 요란하게 떠들었다.
“어머. 저걸 어떡해, 어머!”
“여기서 이러지들 말고 불 끄러 가죠!”
“그럽시다!”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내가 사는 이곳은 ‘바깥세상’과 달랐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 탑에 발을 들인 사람들. 그런 주민들이 모여서 이룬 도시, 탑 1층.
이 도시의 이름이 다양했다. 누군가는 바빌론이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나락이라 불렀다. 그냥 간단히 ‘1층 도시’라 부르는 헌터가 있는가 하면, 고풍스럽게 등천도시(登天都市)라 부르는 사람까지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갖 인종이 모여 들었기 때문이겠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헌터였다. 좋으나 싫으나 생명의 위기를 겪어봤다. 위기가 닥쳤을 때, 바깥세상의 인간들에 비해 재빨리 움직일 줄 알았다.
나도 얼른 자취방을 내려와 주민들의 소방 행렬에 끼어들었다.
‘미친.’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염제한테 죽어서 회귀한 지 어느덧 24시간째. 염제가 성녀를 살해한 시간과 딱 맞아떨어졌다.
즉···.
‘염병이다! 염병이 불을 지른 거다! 증거를 인멸하려고!’
염제 유수하.
그놈은 진짜 악마 같은 새끼였다.
2.
이미 현장에는 자경단들이 도착해 있었다. 거대 길드의 헌터들도 속속 당도했다.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며 발톱을 세웠지만, 화마(火魔)가 불어닥친 지금은 모두 힘을 합쳤다.
“물 능력자들은 혼자서 스킬 쓰지 마!”
“그렇지, 한번에 타이밍 맞춰서! 그렇지!”
“여긴 흑룡 길드가 임시로 지휘합니다! 흑룡의 지휘에 잠깐만 따라주십시오, 여러분!”
평소에는 신문이 아니면 구경하기도 어려운 헌터들. 최상위 랭커들도 두세 명이지만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다른 주민들을 도우면서 몰래 랭커들을 훔쳐봤다.
“이, 일단 주변 격리는 완료했어요. 문제는 안쪽에 생존자가 있느냐 없느냐인데···. 서둘러 구조팀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랭킹 5위. 의사와 약사들의 길드장, 연금성주(鍊金省主).
“괜찮다. 여긴 원래 슬럼가였던 곳이다. 5년 전부터는 아무도 안 살아서 출입을 불허한 곳이지. 그나마 이런 곳에서 화재가 일어나 천만다행이다.”
랭킹 10위. 도시의 치안을 맡은 자경단장, 성기사.
과연 다른 이들을 도와주기로 유명한 헌터들. 최상위 랭커들 중에서도 독고다이로 놀지 않는 사람들다웠다. 누구보다 빨리 도착해서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저 가운데 성녀도 끼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성녀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녀는 독고다이 중에서도 제일 싸가지가 없는 독고다이한테 살해당했으니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염제와 나, 두 사람밖에 없겠지. 최상위 랭커들도 아직은 모르는 진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알지 못할 진실이었다.
연금성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상하네요. 왜 성녀 씨가 아직 안 올까요···?”
“오늘 밤에는 무슨 일이 있다고 말하더군.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데이트 아니겠나.”
랭킹 10위의 헌터, 성기사가 피식 웃었다.
“요즘 녀석은 염제랑 같이 다니는 날이 부쩍 늘었으니.”
“···그 염제라는 남자, 저는 싫어요.”
연금성주가 어깨를 움츠렸다.
“조금 기분 나쁘다고 할지···. 이런 곳에서 뒷담화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지만요. 그래도 성녀 씨는 더 좋은 분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이 너무 높군. 랭킹 1위보다 더 좋은 남자라면 도대체 누구를 만나라는 얘기인가? 그러니까 당신이 아직도 노처녀인 거다.”
“나, 나이는 상관없지요··· 30대 후반이면 아직 세이프고···.”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던가.
“염제다!”
소방 작업을 돕던 사람들이 일순 멈추었다. 최상위 랭커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후드티에 츄리닝 바지를 입은 채 어슬렁거리는 염제, 아니 염병이 있었다. 염병은 무진장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씨. 누가 내 허락도 안 받고 불장난쳤냐?”
미친 싸이코패스 새끼.
“어서 오십시오, 염제.”
“엉. 형님 어서 오셨다.”
“보다시피 예전 슬럼가 구역에 방화가 일어나서 말입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성기사가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염제는 시큰둥했다.
“도와주면 난 뭘 얻는데?”
“공짜로 많은 사람을 도와줬다는 뿌듯함을 얻습니다.”
“아, 개소리 그만두시고. 나한테 뭘 줄지 제시해봐.”
“내일 전 세계 언론사와 방송사에 [화재를 진압한 염제, 큰 선행을 베풀다]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갑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당신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지요.”
“푸.”
염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비웃었다.
“지금까지 내가 기레기들 눈치 본 적 있냐?”
정말로 정신 나간 또라이였다.
이미 주민들은 폰을 꺼내서 염제를 촬영했다. 염제의 표정과 말이 실시간으로 세계에 송출되고 있으리라. 인터넷은 염제를 편드는 사람과 욕하는 사람으로 갈라져 뜨거워졌을 테고.
염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그럼. 자기 이익은 칼같이 지켜야지.
-공짜로 사람을 도와주면 그게 호구임.
-영웅이 되어도 여전히 솔직해서 보기 좋은데.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무도 모른다.’
등골이 차가워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저건 솔직한 게 아니다. 저놈은··· 그냥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다.’
바로 근처에서 불꽃이 날름거렸는데도 내 심장은 서늘했다. 이 불길. 이 방화. 이 참사는 전부 염제 본인이 일으켰다. 그런데도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나한테 뭘 줄 건데’ 하고 되물었다.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저놈은 없어져야 한다!’
괴물.
내 복수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인류를 위해서. 헌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저 괴물은 박멸해야 마땅했다. 괴물이란 몬스터다. 몬스터를 잡는 것이야말로 우리 헌터들의 임무이고 사명 아니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 한다.’
이 탑에는 불꽃을 날름거리는 한 마리의 괴물이 살고 있었다. 그래. 그랬다. 하지만 단순히 ‘있었다’라고 말하기엔 부적절했다. 한참 부적절했다.
저 괴물은 나의 사냥감이었으니까.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발걸음을 움직였다.
뚜벅.
사후 대책을 고민하는 영웅들을 지나쳐서. 화재를 잡으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을 지나쳐서. 끊임없이 치솟는 불길을 향해서, 마치 지옥처럼 작렬하는 불꽃을 향해서 나는 걸어갔다.
“어? 잠깐요. 어디 가세요?”
걸어갔다.
“저기 형씨!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걸어갔다.
“어머! 저 사람 미쳤나봐!”
“누가 좀 말려!”
“씨발, 미친놈이야 뭐야!?”
그리고 뛰었다.
등 뒤에서 사람들이 난리쳤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었다. 진화 작업을 하다 말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모두 무시했다. 무시한 채 뛰어갔다.
‘뜨겁다.’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화르륵! 곳곳에서 화염이 빨간 혓바닥처럼 낼름거렸다.
‘아프다!’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살이 녹았다. 내 눈동자가, 눈알의 피막이 바싹 태워졌다.
하지만.
‘염병한테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것이 염제를 죽일 유일한 방법이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한참을 뛴 것 같았지만 또 1분밖에 안 지난 것도 같았다. 연기에 목이 막혀서 콜록거렸고, 콜록거림이 멎을 무렵에는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죽었습니다.]그렇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나의 두 번째 죽음이었다.
3.
불길로 뛰어드는 날 보고 사람들은 미쳤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다. 정반대. 매우 냉정하게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돌아왔다.”
나의 지옥. 내 3.5평짜리 단칸방.
벽에는 인터뷰 기사들이 덕지덕지 붙었고, 텔레비전에선 생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미 세 번째로 듣게 되는 생방송이.
-뉴스 속보입니다. 탑 40층 공략에 나선 흑룡 길드···.
다시 어제로 돌아온 것이었다.
‘좋아. 스킬이 제대로 작동한다.’
나는 지난번과 달리 텔레비전에 눈길을 안 주었다. 줄 필요가 없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하는 스킬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만 확실하면 됐다.
이것만 있으면, 염제를 죽일 수 있다.
“역시.”
내가 중얼거렸다.
‘회귀자의 태엽시계···. 헌터 랭크가 높아질수록 강한 페널티가 주어진다고 했지.’
반대로 말하면, 헌터 랭크가 밑바닥을 기면 별다른 페널티가 안 주어진다.
나와 같은 F급이라면 아직은 페널티조차 없다.
‘지금이 기회.’
아직 내가 F급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유일하게 염제를 사냥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마지막 기회인 거다.’
나는 배낭에서 칼을 꺼냈다.
오래된 칼. 헌터일을 시작하고 나서 쭉 간직해온 단도였다. 더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쓸 수 없어도··· 사람을 죽이기엔 충분히 날카로웠다.
‘염제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계속 고민해봤다.
‘아직 죽지 않았을 성녀와 협력한다? 흑룡 길드에 내 능력을 밝히고 증명한 다음, 염제를 영원히 감옥에 가두도록 계략을 짠다? 아니면 염제가 성녀를 죽이는 장면을 몰래 촬영해서 방송사에 찔러버린다?’
어느 방법이든 괜찮았다.
그렇지만 괜찮을 뿐. 100% 확실하게 염제를 골로 보낼 순 없었다.
‘나에겐 성녀를 믿게 할 실적이 없으니까.’
실적이 없었다.
‘길드한테 토사구팽당하지 않을 만한 힘이 없으니까.’
힘이 없었다.
‘염제 몰래 촬영을 성공시킬 자신이 없으니까.’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무언가가 있었다.
‘죽으면 24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스킬.
염제로부터 복사한 회귀자의 태엽시계.
‘그래. 스킬이 있다.’
‘걱정하지 마, 김공자. 할 수 있다.’
꿀꺽. 나는 마지막으로 벽을 쳐다보았다. 염제 유수하가 잡지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그곳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
Q. 유수하 님께선 처음 각성하신 것이 몇 살이었나요?
A. 21살 여름이다. 그러니까 벌써 11년이 지났다.
Q. 계절까지 정확히 떠올리시는 걸 보면 기억력이 정말 좋으시네요.
A. 딱히 기억력이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단순히 내가 각성을 한 날이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다. 11년 전 6월 7일. 그래서 기억한다.
+
‘11년.’
11년 전 6월 7일. 여름.
오늘부터 거꾸로 계산하면.
‘4050일.’
그렇다.
‘4050번 죽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염제를 죽일 유일한 방법.
‘유수하.’
‘네가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이라면.’
나는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괴물이 되기 전에 죽여주마!’
그리고 내 목을 찔렀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하여.
11년 전 6월 7일. 염제 유수하가 아직 스킬을 각성하지 못했던 시절. 아직, 죽으면 24시간 전으로 회귀한다는 능력을 갖지 못했던 그 여름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아직 염제를 죽일 수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
“욱···!”
뜨거웠다. 아팠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전신의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루 전으로 돌아갔다.
하루 전의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텔레비전도 꺼져 있었다. 하지만 벽에 덕지덕지 붙은 신문 쪼가리들은 여전했다. 겨우 하루를 더 회귀한 것만으로는 염제의 역사를, 저 미친놈의 전설을 지우지 못했다.
유수하의 사진을 노려보았다.
‘상관없다.’
하루로 부족하다면 일주일. 일주일이 부족하다면 한 달. 한 달이 부족하면 일 년. 일 년으로도 부족하다면.
“자아.”
나는 다시 단검을 꺼내었다.
“이제 4049일이다.”
그리고 나를 찔렀다.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