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00)
3.
“마탑에서 본격적으로 우리를 추적하기 시작했어.”
쿵.
낡은 탁자에 종이뭉치가 올려졌다. [보조작가]가 옮긴 서류였다. 그녀는 후우, 이마를 닦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도시에는 정식으로 척살령이 공표됐어. 감옥에서 탈주한 하무스트라 신도를 잡아오는 자에게 막대한 보상을. 탈주를 도운 ‘정체불명의 무뢰한’을 잡거나 밀고한 자에겐, 그 28배의 보상을. ……아마도 당신이 비밀통로 입구에 남겼다던 표식을 발견한 모양이야.”
“잘 됐네요.”
나는 서류를 쓱 훑었다.
종이에는 마탑에 관련된 정보가 잔뜩 적혀 있었다. 특히 마탑의 우두머리, 소위 장로라고 불리는 자에 관하여.
“언제 발견해줄까 조마조마했는데. 의외로 행동이 느린걸요.”
“……거기에 정확히 뭐라고 적어놨던 건데?”
“검제 귀환(劍帝 歸還).”
나는 미소를 지었다.
“딱 네 글자만 적어놨죠. 별거 없었어요.”
“…….”
보조작가는 입을 떡 벌렸다.
“진짜 미쳤구나, 당신.”
“상식이란 무엇일까요? 작가님. 이 세상의 보통, 세상살이의 평균을 이루는 것이 아마도 상식이겠지요. 그리고 이 세상은 평균적으로 엉망진창입니다. 미쳤다는 것, 비정상적인 것은 달리 말해 엉망진창의 정반대예요. 오히려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 미치광이 씨.”
이상하다.
왜 내가 진지하게 하는 말을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을까?
보조작가는 이마를 짚으면서 하아아, 동굴바닥에 구멍이 뚫어지라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할게. 도서관장님의 신뢰를 받고 있는데다, 다른 수많은 성좌들을 설득했으니까. 아마 두 자릿수의 성좌들한테 [동시 가입]을 한 건 당신이 역사상 최초일 거야.”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탑을 함부로 자극해서는 안 돼.”
보조작가는 말했다.
“마탑이 우주에서 제일 증오하는 두 음절. 그게 바로 검제야. 마탑의 장로는 검제와 가장 대척되는 존재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어. 스토리로 따지면 아치에너미(archenemy). 숙적이지.”
“알고 있어요.”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스르륵.
눈앞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퀘스트 창. 지금까지 수십 번 넘게 받아본 퀘스트였지만, 지금 내가 보는 홀로그램은 좀 달랐다.
마치 손글씨로 적어놓은 것처럼 문자들이 샤방쇼방 귀욤뽕짝했다.
+
[대공략! 장로의 마음을 뒤흔들어라★]성좌: 사랑과 정욕의 화신
난이도: SSS
임무 목표: 세상에. 자기 자신을 검제의 재래라고 주장하는 자가 나타났어요. 그의 이명은 사왕(死王)! 이제 막 50층에 도래한 전사인데 파란을 일으키고 있네요!
정말로 그가 검제의 후인일까요? 어쩌면 검제 본인일지도…!?(두근)
만일 사왕이 정말 검제와 인연이 있다면, 맙소사! 마탑의 장로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왜냐면 그녀의 차디찬 심장에 유일하게 말뚝을 박아놓은 인물이 바로 검제니까요!(두둥)
사왕은 가장 음험한 거미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까요?
만일 그러하다면, 그 심장의 박동이 가리키는 음악은 애정일까요? 증오일까요? 그도 아니면 애증일까요?(윙크) 어떤 리듬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저 바비트가 사왕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 하나, 장로가 찢어지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장로의 마음을 무너트리세요.
바비트를 모시는 모든 신도들에게 고하노니. 전력으로 사왕을 보조하십시오.
50층 너머에 발을 내디딜 자격이 있음을, 부디, 그대들 스스로 증명하시길.
※현재 [임시 신도]의 자격으로 퀘스트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으니까 검제의 후인을 자칭한 겁니다.”
“자아. 마탑에선 지금쯤 저를 굉장히 수상한 놈으로 취급하고 있겠죠.”
나는 종이뭉치를 툭, 내려놨다.
마지막 투표가 있기 전에,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는 마탑과 거기 속한 이들이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알려준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마탑을 다스리는 장로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녀가 언제 태어났는지. 어째서 50층에서 멈췄으며, 심지어 다른 헌터들의 등정마저 막아서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50층에 머무르는 헌터들 역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탑의 장로에 대해 아는 이는 없었다. [파파라초]가 건네준 자료들 역시 그럴싸한 추측과 추론이 쓰여 있었으나 진실이랄 건 없었다.
“정말로 검제가 귀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아직.”
하지만 누구나 아는 진실은 한 가지.
마탑의 장로가 검제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아직] 이라고……?”
“예. 아직은.”
고로, 장로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서는 검제의 존재를 적절히 사용해야만 한다.
“저는 오직 검제와 장로만 알고 있는 정보를 갖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음. 그래요. 검제가 첨탑을 무너트렸을 때 장로한테 건넨 말이라든지.”
“…….”
“이런 정보를 풀면 장로도 단번에 알아차리겠지요. 아, 쟤가 정말로 검제의 후인이구나. 저놈을 1초라도 빨리 조져야겠구나.”
과거. 살천성과 함께 있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옛날에 검제가 남겼던 말을 써먹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이다. 내 말을 들은 즉시 마탑의 장로는 격노하여 우리를 공격했다.
-좀비야. 참고로 나 그거 말고도 걔 빡치게 할 말들 많이 안다.
‘참 든든하네요.’
-그치?
‘네. 댁의 인성이 너무 든든해요.’
즉, 나에겐 장로를 끌어들일 비장의 패들이 얼마든지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오직 검성 어르신과 나. 둘만이 알 수 있는 패들.
“……그런 정보를 어떻게 가지고 있어?”
보조작가는 미심쩍어 하는 눈초리로 나를 살폈다.
“사람의 과거를 읽어내는 스킬이라도 가진 거니? 아니면, 설마 정말로 검제의 후계자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장로를 자극시킬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부터 그녀를 [적절히] 자극해야 한다는 거지요.”
나는 서류를 툭, 건드렸다.
“적절히? 무슨 뜻이야?”
“단순히 장로를 화나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사랑과 정욕의 화신]은 아주 명백하게, 대놓고 퀘스트에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로를 뿌리부터 뒤엎으라고요. 따라서 저는—.”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차근차근. 천천히. 장로의 마음을 흔들 것입니다.”
「정말로 검제가 돌아온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증거가 불충분하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돌아왔다면?」
“검제가 귀환했다는 걸 단숨에 알려줘선 안 돼요. 약합니다. 충격이 약해요. 진실은, 하늘에서 내려올 때보다 자기 스스로 찾았을 때야말로 사람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
“아시겠습니까? 작가님. 우리는 최적의 장소, 최고의 순간에, 검제가 돌아왔다는 것을 장로한테 직접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각본이 필요하구나.”
보조작가는 나직이 말했다.
그녀는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흉계를 꾸미는 눈. 사람이 다른 사람을 끌어내고자 할 때, 마음을 훔치려고 할 때 보이는 안광.
하무스트라의 눈동자이기도 했다.
“당신.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이제 얘기가 통하는군.
“우선은 도시의 길거리에 소문을 퍼트려주십시오.”
“헤에.”
“마탑에선 검제의 귀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장로는 ‘웬 미친놈이 검제를 사칭해서 우리를 도발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일 검제가 돌아왔다는 얘기가, 소문이, 공공연하게 흐른다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겠지. 쓰기 싫어도 말이야.”
보조작가는 눈을 빛냈다.
“좋아. 그 다음은?”
4.
어이, 사왕. 어떻게 된 일이야?
무슨 일입니까. 광전사 씨. 허둥지둥거리시고.
무슨 일이고 자시고. 지금 마탑 애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어. 어제까지만 해도 척살령 내리고 지들은 뒤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접 수색대를 만들어서 거리를 들쑤시고 다닌다고!
5.
“그냥 검제가 돌아왔다는 소문만 무성해서야 장로의 심장이 반응하지는 않겠죠. 좀 짜증이 나는 정도예요. 더 나가야 해요. 저희는, 장로의 마음이 지닌 사각을 노려야 합니다.”
“말해봐.”
보조작가는 빠르게 깃털펜을 놀렸다.
“지금 받아적고 있어. 일단 당신의 공략도를 다 말해. 좀 아니다 싶은 건 내가 알아서 수정할 테니.”
“그동안 50층의 헌터들한테 쌓인 울분과 분노를 건드립니다.”
나는 펜촉이 슥삭거리는 소리를 감상했다.
“검제는 그저 한 명의 헌터에 불과하지 않아요. 일종의 상징입니다. 50층을 막아서서 봉쇄하는 장로. 그걸 깨트리고 저 너머로 나아간 검제…. 검제가 귀환했다는 소문은, 그 자체로 장로에 대한 공격이 됩니다. [우리는 장로가 50층을 지배하는 지금 상황이 싫다. 질렸다. 우리는 검제와 같은 인간을 원한다. 검제가 돌아와서 이 악몽 같은 나날을 다시 깨부숴 줄 것이다.]”
“과연. 그래…,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각.
펜을 움직이는 보조작가의 손이 점점 더 빨라졌다.
“꼭, 마치, [당신은 틀렸다]라고 장로한테 일갈하는 것처럼 소문을 꾸미라는 말이지?”
“정확해요.”
“하.”
보조작가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자기 펜이 휘갈기고 있는 글자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보조작가가 흘린 웃음기가 종이 위로 스며들었다.
“좋아. 검제 귀환은 단순한 명분이구나. 마탑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헌터들을 추동시키고, 선동하기 위한 도구야.”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장로의 심장을 겨누는 칼이에요.”
보아라, 장로.
나는 죽었다.
꼴사납게 99층에서 쓰러졌다.
하지만 옛날 옛적에 죽은 나를 여전히 헌터들이 기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단순하다.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
“검제의 소문에 도시가 들썩이면 들썩일수록, 마탑에 대한 반감은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너는 살아 있지만 이미 죽어버린 나조차 이기지 못한다.
죽어서, 한낱 망령이 되어버린 내가 지금의 너보다 강하다.
“만약 장로가 검제를 단순히 짜증나는 놈 정도로 생각한다면…. 크게 반응하지 않겠죠. 어차피 뜬소문. 저절로 가라앉겠거니 놔둘 겁니다. 하지만, 장로의 마음에 검제가 아직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정말 뼈저리게 증오하고 있다면. 분명히 반응할 거예요.”
“…….”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 싶을 만큼, 신경질적으로 나올 겁니다.”
어떤가.
“……어떻게 확신해?”
“증오란 그런 거니까요.”
나를 여전히 죽이고 싶은가.
“장로는 격렬히 반응해요. 반드시.”
6.
마탑 놈들, 눈이 뒤집혔어.
원래 정신이 사나운 새끼들이었지만 이번엔 도가 지나쳐.
그냥 검제의 이름을 언급하기만 해도 싹 다 감옥에 처넣겠다는데 이건 그냥 미친 짓이지. 아니. 어차피 술집에서 할 일 없는 애들이 떠들어대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왜 이렇게까지 하냐? 뭐 찔리나?
이러다간 별 생각 없는 놈들까지 진짜로 검제가 돌아온 거 아니냐고 믿을 지경이라니까.
아무리 우리가 퍼트린 소문이라지만 좀, 이상하네.
7.
“제가 50층에 와서 배운 게 있어요.”
“뭔데?”
“여기 스테이지부터는 선동과 날조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거요.”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신도들에게 퀘스트를 내립니다.]“정말로 검제가 돌아왔는가. 소문이 진실인가 아닌가. 그런 건 일반 헌터들한테 중요하지 않습니다.”
[황야에 마지막 남은 검이 신도들에게 퀘스트를 내립니다.]“그들은 모두 성좌를 섬기고 있어요.”
[외로운 구도자가 신도들에게 퀘스트를 내립니다.]“성좌의 말이 곧 진실이고, 퀘스트에 적힌 내용이 곧 사실입니다. 퀘스트창에 검제의 귀환이 암시되어 있으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헌터들은 ‘검제가 귀환했다’는 전제 아래 움직입니다.”
[미궁에 거하는 눈이 신도들에게 퀘스트를 내립니다.]“마치 제가 악의 리치로 몰려서 사냥당했던 것처럼요.”
[영원한 평야의 군마가 신도들에게 퀘스트를 내립니다.]“도시에 소문을 퍼트리고. 마탑이 과격하게 헌터들을 탄압하러 나선 그때, 성좌들을 경유해서 퀘스트를 내립니다. 그리고 퀘스트에서 하나같이 검제의 귀환을 암시하는 거예요.”
「정말로 그가 검제의 후인일까요?」
「최근 독점도시에는 검제가 귀환했다는 소문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과거 첨탑을 무너트렸던….」
「전사들이여!」
「마탑이 여러분을 과격하게 탄압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검제 본인일지도.」
“그걸로 대세는 결정될 거예요.”
“…….”
보조작가의 펜촉이 뚝 멈추었다.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감겨왔다. 편안한 촉감.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하나뿐인 주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마탑에 대항하는 연합군이 만들어질 겁니다.”
30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