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01)
8.
-당신이 누군지 저희는 모릅니다.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누구인지만 알았으면 벌써 당신의 팔다리를 손톱깎이로 잘개잘개 뽀각내서, 망치로 눈알을 후려깐 다음, 예에에! 당신의 가족! 친구! 아니, 당신이 태어난 고향까지! 당신 같은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 수거도 안 하고 여기에 갖다버린 당신의 세계 그 자체까지! 전부! 벌써! 갈갈이 찢어버렸을 거니까! 오오! 기대하십시오! 당신의 잘난 성대가 23조각으로 갈려도 여전히 꾀꼬리처럼 울어댈지 정말로 기대……!!
픽.
보조작가는 녹음기를 껐다. 기계식 녹음기가 아니라 마법식 녹음기. [사람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스킬을 고스란히 담아낸 매직 아이템이었다.
“이게 어제 독점도시 상공에 울려퍼진 공식 성명서야.”
“제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공식 성명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우리한테는 저게 일상이지만. ……사왕. 당신 때문에 마탑의 거미들이 제대로 빡쳤어.”
“후회하세요?”
“뭐?”
“그냥 여쭤보는 거예요. 작가님. 저와 같이 행동하기로 한 결정이 좀 섣불렀다고 느끼십니까?”
“무슨 소리야. 나는 당연히—.”
보조작가는 녹음기를 떨어트렸다.
콰직.
그녀의 구두굽이 마도 장치를 짓밟았다.
“당연히, 재밌어 미칠 거 같지.”
보조작가의 침침한 눈꼬리는 히죽 웃고 있었다.
“도서관장님께서 왜 당신 같은 남자를 전인으로 삼았는지 솔직히 이해 안 됐어. 하지만 이제는 알 거 같아. 너, 세상만사 잘 모르겠다는 순둥이 같은 얼굴을 한 주제에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아는구나.”
“너무 말이 심한데요. 전 놀지 않아요. 언제나 진지하게 살고 있다고요.”
“아아, 그러겠지. 그래서 더 악질이지만! 넌 최고야.”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네.
콰아아아… 아아….
아주 멀리 폭발음이 들려왔다. 진동음은 동굴천장을 타고 전해져,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두피에 스며드는 냉수. 우리 둘은 고양이처럼 머리를 털었다.
“이런 젠장.”
“마탑에서 또 동굴로 수색대를 보낸 모양이군요.”
“그래, 여기도 곧 발각될 거야. 얼른 움직이자. 도시라면 모를까 동굴 안에서 찍는 추격씬 따위, 공포물에나 어울리는 촌극이니까!”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을 안전지대로 인도합니다.] [외로운 구도자가 침입자들의 주의를 끕니다.]우리는 성좌의 원호를 받아 피난했다. 콰아앙… 쿠웅……. 우리가 발걸음을 재촉할수록 폭발음은 점점 더 멀어졌다.
얼마 전부터 마탑은 우리가 지하동굴에 숨어들었다는 걸 확신했다. 지금 울리는 진동음도 마탑의 거미들이 마법을 난사하여 일으킨 것이다.
아마 미친 듯이 나를 찾고 있겠지.
‘하지만 독점도시의 동굴은 기이할 정도로 광활해.’
우리는 곧바로 다음 은신처로 이동했다.
‘동굴의 출입구를 하나 무너트려도 다음날엔 새로운 구멍이 생겨난다. 꼭, 이 지하세계가 한 마리의 거대한 몬스터인 것처럼 쉴 새 없이 살아 움직여.’
수색이 난해한 지형.
심지어, 수많은 성좌와 무수한 신도가 우리를 돕고 있다.
일대일로 맞붙으면 모를까 이런 숨바꼭질에선 마탑이 불리하다.
“다음 계획은 뭐야? 응?”
보조작가는 들뜬 얼굴로 물었다.
“음.”
그랜드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보조작가는 완전히 열의에 불이 붙었다. 내가 큰그림을 말하면 보조작가가 현지 사정에 맞추어 소문들을 날조, 유포, 재생산하여, 우리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하여간 하무스트라 신도 아니랄까봐.’
이것도 내 책임이려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검제교(劍帝敎)의 신도들과 만나봐야 합니다.”
9.
우리는 너 따위 인정하지 못한다.
10.
“검제교?”
보조작가가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미소는 아니었다. 호의가 담긴 것 또한, 분명 아닐 것이다.
사람은 상대방을 시험할 때도 미소를 짓는 생물이었다.
“칼에 미친 작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지. 집단이라 할 수조차 없어. 그냥 검제를 개인적으로 숭배하는 놈들끼리 서로 수련하는 모임이나 다름없거든. 일상도 심플해. 아침밥, 수련, 점심밥, 수련, 저녁밥, 수련, 잠, 다시 수련……. 그런 또라이들을 만나서 뭐하게?”
“이제 서서히 반마(反魔)동맹이 고개를 올리고 있어요.”
쿠우우웅.
은신처 저 너머 저 편에서 또다시 폭발음이 지근거렸다.
마탑의 추격대와 이에 맞서는 신도들의 싸움이 치열해진 모양이다.
[외로운 구도자가 다른 성좌들한테 원군을 요청합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은 지금 캠페인을 구경하느라 바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는 그 정도는 혼자 알아서 하라고 충고합니다.] [외로운 구도자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욕설을 뿌립니다.]지방방송도 치열해졌다.
“하지만 아직 역부족이에요. 동맹이라고 해봤자 마탑에 반감을 지닌 성좌들의 연합. 지금까지 성좌들은 끊임없이 마탑을 공격해왔고, 그때마다 마탑은 승리했어요. 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헌터들은 [아무리 그래봤자 이번에도 마탑이 이길 거다]고 생각할 테죠.”
“응. 맞아.”
보조작가는 내 추론을 시원하게 인정했다.
“마탑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이냥저냥 협조하는 성좌도 많아. 아니. 설령 연합이 만들어진다해도, 모든 성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리는 없어. 우선 대세를 보고. 전황이 여의치 않겠다 싶으면 얼른 발을 빼버리겠지.”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법인걸, 하고 보조작가는 말했다.
[반짝이가 다른 성좌를 돕지 못해 미안함을 느낍니다.] [다수의 성좌가 침묵합니다.] [외로운 구도자는, 방금 누구였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자기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는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몇몇 성좌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공포를 느낍니다.]“바로 그거예요.”
나는 반짝이의 칼자루를 꾸욱꾸욱 눌렀다. 우우웅, 성검이 진동했다. 조용히 있으라는 내 손짓에 그만 시무룩해졌나 보다.
“성좌들의 퀘스트창은 분명히 강력해요. 신도들은 검제가 귀환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거리낌 없이 반마동맹에 참여할 겁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퀘스트창을 보지 못하는 다른 헌터들]에겐 별로 효력이 없죠.”
더 화련한 선동과 날조를 위해서는 썸띵엘스.
조커 카드가 필요하다.
“바로 그래서 검제교의 또라이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정말로 검제가 귀환했다면 어느 누구보다 빨리 들고 일어설 곳.
만일 저 집단이 움직인다면, 전혀 관계 없는 제3자가 보더라도, ‘설마 정말로 검제가 재래한 것인가!’라고 동요해버릴 만한 무리.
그들이 바로 검제교다.
“…….”
보조작가는 눈웃음을 지었다.
“물론, 당연히, 자리를 마련해줄 순 있어. 하지만 그건 알고 있어? 지금 검제가 귀환했다는 소문을 듣고 50층에서 가장 열받은 세력이 두 군데야. 한 곳은 마탑. 다른 한 곳이 검제교지. 사왕. 당신이 소문의 주범이라는 걸 알면 아마 찢어죽이려 들걸!”
“하하.”
나는 웃었다.
왜 그들이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저 따위가 감히 검제를 사칭하여 혹세무민을 해서요?”
“응. 그거야.”
150년에 죽어버린 배후령을 아직까지 모시고 있는 자들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아마 검제를 향한 빠심으로 철철 무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생판 처음 보는 꼬마 애송이가 그들의 신을 사칭한다…… 그야, 화날 법하지. 이해 간다.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괜찮아요.”
그것도 내가 거짓말쟁이일 경우에 한정되는 이야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진짜로 검제의 후인이거든요.”
11.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너 따위 인정하지 못한다.
그저 지인들이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해서 우리의 신성한 제단에 입장하는 걸 허락해주었을 뿐. 지금 당장 네놈의 목을 치지 않은 것만이 우리의 마지막 관용이다.
썩 꺼지거라.
어떻게 해야 저를 인정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우리를 굴복시킬 자신이 있다면 혀가 아니라 칼을 들어라. 애송이. 설령 네놈이 이긴다 해도 우리가 검제님의 재래를 인정할 리는 없다만!
그런가요. 곤란하네요.
음.
뭐냐?
잠시만요. 잠깐 기다려주세요. 이 시끄러운 양반한테 뭣 좀 물어보고……. 아, 예. 흐음. 알겠습니다.
거기. 멋지게 수염 기르신 분.
이명이 귀멸창(鬼減植) 되시는 분 맞나요?
나 말이냐?
일단 이명은 네가 말한 대로다만.
예. 본명은 미후스트라 펠레노반. 만검세계 출신. 검제와 똑같은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검제와 얼굴을 마주치게 된 건 탑에 오른 뒤였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시답잖은 스킬을 보유한 모양이군. 애송이 교주야. 네놈이 한낱 광대의 손짓으로 세상을 속이려 든다면,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는 자에게 내 창이 …….
언제나 검제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배움을 청하였지요.
…….
검제는 그런 당신을 귀찮게 여겼습니다. 어디까지 쫓아오나 봐볼까, 싶은 마음에 경공술로 훌쩍 떠나버린 적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든 뒤를 쫓아와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제발 한 수만이라도 좋으니 깨달음을 나눠달라고.
검제는 당신과 단 둘이 있을 때, 말했습니다.
맨입으로?
…….
거기.
당신의 이명은 묘후성(植聲吼). 음공의 달인이지요. 본명은 소천명으로, 만검세계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의 일원이지만, 사실은 서자여서, 어릴 때부터 바깥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
당신은 검제의 모습에 깊이 반했어요. 검제는, 명문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강호를 질주했으니까요.
나도 검제님과 함께 탑을 오르고 싶다 청하였지만, 검제는 역시 귀찮다고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승복할 수 없었어요.
매일 밤 검제가 머무르는 곳에 찾아가서 당신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엄청 시끄럽게요. 검제가 노발대발 쫓아오면 멀리 튀었고, 그가 다시 잠에 들려면 또 숨어들어서 고양이 울음을 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겨울, 자는 척만 하던 검제한테 잡혀서 뒤지게 맞았어요.
…….
건제는 말했지요.
아가야. 내가 너를 때리는 이유가 뭘까?
네가 존나게 약한데 주제도 모르게 배움을 청해서? 아니다.
사람이 잠을 자는데 방해해서? 그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고양이 울음을 따라해서다.
나는 고양이가 싫다.
매우 싫다.
그래서 너는 이제부터 매우 맞을 거란다.
…….
음.
분위기가 살벌하네요.
만일 제가 안 좋은 추억을 건드린 것이라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에게 인정을 받고 싶을 뿐이에요. 여러분이 아무리 부정하고자 해도, 믿기 힘들어도, 저는 진정 검제의 뜻을 이어받아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거기 앉아서 멀뚱멀뚱 쳐다보시는 분의 이명이 화섬궁(花閑弓)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름도 알지요. 출신지도, 무엇보다 검제와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전원의 신상명세를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검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저 역시 알고 있으니까요.
…….
아. 물론 이렇게 말한다 해봤자 승복하기 어렵겠지요.
말로만 떠들어서 이야기가 통하는 인간이라면 애당초 검제교 같은 미친 이름의 집단에 가입했을 리 없고.
덤비십시오.
한 분씩 상대해드리겠습니다.
…….
…….
네놈…….
정체가 뭐냐?
저의 이명은 사왕입니다.
만검세계(萬劍世界)의 고금제일인에게 오러를 전수받은 후인이며, 어느 설원의 천하제일인에게 검을 물려받은 후계이자, 언젠가 여러분이 신단에서 모시는 별자리보다 더 먼 곳까지 발을 딛게 될 자입니다.
그럼 가법게 한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들.
12.
“검제교의 신도들이 마탑 추적대를 격퇴했어.”
보조작가는 뚜벅, 걸었다.
“그것도 거리 한복판에서. 일반 헌터들이 꽤 동요하고 있어. 검제교 녀석들은 밖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간섭하지 않고 지들끼리 놀기로 유명했는데, 이번엔 명백히 마탑을 적대했으니까.”
우리는 동굴 통로를 오르고 있었다. 통로엔 계단이 이어져 있어 조금씩 우리의 고도를 높여주었다. 지하의 중압감이, 땅의 질감이, 내 허벅지와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도, [외로운 구도자]도, 속속들이 신도들을 집결시키고 있어. [사랑과 정욕의 화신]은……. 전투에선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인맥적으로 뭔가 예상치 못한 도움을 줄지도 모르지. 뭐, 말하자면.”
뚜벅.
“반마맹(反魔盟)이 완성되기 일보 직전이라는 얘기야.”
내 발끝에 빛이 비추었다.
동굴에 밝혀진 횃불도, 보조작가가 손끝에 피워올린 마법의 빛도 아닌, 우중충한 하늘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의 연한 햇살이었다.
“축하해. 사왕.”
열흘.
지하동굴에 숨어들어 도피생활을 끝내고 나는 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보았다.
“네가 바라는 대로 우리는 백오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날카로운 반역의 칼날을 얻게 되었어.”
오십 번째 스테이지의 하늘에는 첨탑들이 세워져 있었다.
탑들은 찬란한 하늘을 비웃듯 칠흑으로 외관을 칠했으며, 어느 누구도 들이거나 내보내지 않겠다는 양 창문 하나조차 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다섯 채의 탑은, 하나하나가 손가락 같아, 하늘을 쥐어잡아 끌어내리려는 것 같았다.
과연 누구의 손을 닮은 것일까.
“좋습니다.”
나는 마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한번, 장로를 무너트려 볼까요.”
30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