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06)
3.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야. 너 누구냐?」
「내가 보여?」
처음에는 단순히 운이 좋다고 여겼다.
무려 99층까지 올라간 전문가를 곁에 두게 되다니.
층을 오르면 오를수록 배후령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게 됐다. 99층. 전설 중 전설만 찍을 수 있는 경지. 비록 배후령이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지만—나는 틀림없이 행운아였다.
그런데.
「허, 요상하다? 이럴 리 없는데.」
「마르쿠스 할아범은 어디로 사라지고 왜 너 같은 애송이가 내 앞에 있어?」
「당장 나를 할아범한테 돌려놓지 못해!?」
그렇기에 이상했다.
어떻게 배후령은 자신이 ‘두 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너는 스킬을 강탈하는 게 아니라 복사할 뿐이지.」
「즉, 마르쿠스 할아범한테는 ‘또 다른 나’가 배후령으로 붙어 있을 거야.」
고금제일. 천하무쌍. 유아독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 자신 이외의 최강자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망나니요 개차반이자 안하무인의 무인이, 어떻게 [내가 두 명으로 쪼개어졌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간단히 수용했는가?
「할아범이랑 너. 둘 중에 누가 더 헌터로 대성할 것인가. 조금 궁금해졌다.」
배후령의 말대로 단순히 궁금해져서?
「내가 도와주마.」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배후령의 천성이어서?
「한번 탑을 정복해보자!」
아니다.
“둘 중 한 명만 99층에 도착해도 상관없는 거지요?”
나는 말했다.
“검성(劍星) 어르신과 저. 한 명이 99층에 도달하기만 해도 댁의 목적은 달성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99층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당신은.”
-…….
“그러니까 검성 어르신한테 들러붙고, 저한테까지 들러붙어, 자기 자신이 복수로 늘어나 버렸는데도…. 댁은 당황하지 않았어요.”
착각하고 있었다.
내게 행운이 찾아온 것이 아니다.
“왜냐면 가능성이 2배로 늘었으니까.”
배후령에게 행운이 찾아왔던 것이다.
“검성 어르신과 저는 성격이 달라요. 어르신은 재벌가의 적손. 저는 부모 없는 고아. 늙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었기에 다시 한번의 도전을 위해 투신한 어르신과…… 젊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기에 탑에 투신한 저. 삶에 능한 어르신. 죽음에 익숙한 저. 그야말로,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배후령은 생각했을 것이다.
아주 좋다, 라고.
“서로 완전히 다른 인간한테 댁은 빙의하게 됐어요. 결과는 보시다시피. 전 어떻게든 탑을 공략하며 아득바득 저 자신을 증명하려 들었고, 검성 어르신은 지금도 한발짝 물러서서, 마치 은둔자처럼 수련에 매진하고 있지요. 두 가지 유형. 두 가지 방법. 두 가지 가능성을, 댁은, 전부 실험할 수 있는 겁니다.”
왜?
그런 실험을 왜 하는 것일까.
“댁의 목적은 저를 99층에 데려가는 게 아니에요. 아니, 맞긴 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해야 하지요. 검성 어르신과 저 중에, 누구라도 상관없이, 99층에 도착시키는 것. 그것이 댁의 목적입니다.”
-흐.
배후령이 웃었다.
-흐흐. 하하!
무척 즐겁다는 듯이.
-아하하하하!
팔짱을 낀 채.
-그래! 맞다!
태양보다 붉은 외줄의 머리카락을 흘리며.
-내가 이래서 너를 싫어할 수 없어! 김공자 넌, 선의를 계산할 줄 알거든. 아니. 계산할 수밖에 없지. 너는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 자신을 위해줄 리 없다고 뼛속부터 확신하고 있으니까!
“어릴 적부터 쌓여진 성격이겠지요.”
-정작 너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데 덕지덕지 이유를 만들어내면서! 크흐흐. 좋아. 난 상관없다. 아니, 용케도 나를 무상(無償)의 선의로 취급하지 않았구나.
얼마나 지루했을까.
자신의 신체를 갖지 못한 것이다.
마음대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 내가 향하는 곳만 따라갈 수 있으며, 내가 머무르는 곳에서만 떠다닐 수 있다.
그런 일상.
만일 인간이 그런 삶을 버틴다면, 기꺼이 견디기로 한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잘했다. 공자야.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으니까.
-누군가를 99층까지 데려가는 것. 그게 나의 일. 그것이 나의 99층 퀘스트다. 다만 한 가지 오해가 있어. 바로잡아야겠구먼.
“뭔가요?”
-그냥 99층에 올라가기만 한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야. 그럴 거면 [가을비의 마왕]이 너를 꼬실 때 나도 얼른 동조했겠지. 아주 고약한 조건이…….
“너.”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장로였다.
“아니, [너희]. 무슨 소리야?”
여전히 그녀는 내 목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 전처럼 당장 목을 졸라 죽일 듯이 손아귀에 힘을 넣진 않았다. 나를 죽이는 것보다, 배후령을 없애는 것보다, 조금 더 중요한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지금, 도대체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 거야?”
“…….”
“거기에…… 검제가 있어?”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
“저는 검제의 환생이 아닙니다. 검제는 분명히 있고, 저도 분명히 있습니다. 당신의 뒤에 검제는 팔짱을 낀 채 오연하게 서 있습니다. 아마 첨탑을 무너트리고, 99층에 올라서, 다시 여기로 온 이 순간까지…… 검제는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어요.”
“…….”
“계속 있었고. 계속 도전하고 있었어요.”
장로는 무표정하게.
무표정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오, 하이. 방가방가.
“…….”
-투명도 40%의 검제입니다. 투명도 조절 기능을 원하실 경우 탑에 문의해서 DLC를 구매해줍쇼. 덤탱이라고? 아이고, 손님.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요즘 세상의 트렌드거든요.
“안 보여.”
-그러겠지.
“안 들려.”
-그럴 테고.
“안 보이고, 안 들리잖아.”
꾹.
장로는 입술을 사려물었다.
“그럼, 무슨 의미가 있는데?”
장로는 손을 쥐었다.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오른손으로 내 목을 사로잡은 채, 남은 왼손만으로 어느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그것은 소환술에 가까운 인력(引刀)이었다. 콰앙! 쿵! 건물들이 쪼개졌다. 장로가 서 있는 곳에서 도시의 북서 방면까지, 돌연 일직선으로 고속도로와 같은 통로가 뚫렸다. 방해가 되는 건물이란 건물은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강제로 만들어진 통로로, 한 명의 헌터가 끌려왔다. 마치 무형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것처럼.
화아아악!
헌터의 몸이 날아왔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헌터의 목은, 처음부터 이곳이 목적지였다는 듯, 정확히 장로의 왼손에 들어왔다.
“—커, 억!!”
둔탁한 비명.
“네가 [망자를 울리는 방울]의 사도지.”
장로는 중얼거렸다.
“해.”
“욱, 크읍……뭐…… 뭐를,”
“네크로맨시를 써. 당장. 눈앞에서. 내 근처에 망령이 한 명 있을 거야. [망자의 혼]이든 [피안과 차안에 놓인 적교(赤橋)]든 어떤 스킬을 써도 상관없고. 네 병신 같은 성좌한테 빌어서 권능을 써도 상관없으니까. 내가 빌어먹을 망령 새끼랑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머리가 터지기 싫으면.”
“스, 스킬 발동…….”
거무튀튀한 기운이 주위를 감쌌다. 그 반경에는 틀림없이 배후령도 포함되었다. 장로의 협박에 굴해 스킬을 쓴 사도는, 어깨를 떨었다.
“아무도……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 사자의 혼 따윈…….”
-소용없다.
배후령이 말했다.
-나는 귀신이 아니야. 엄밀히 말하면 [스킬]이지.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간섭하는 게 스킬 차원에서 원천봉쇄당했어. 오직 나라는 스킬을 소유한 자에게만 정신적으로 참견할 수 있지. 장로, 지금 너는 나를 소유하지 않았다. 하긴 언제라도 소유한 적 없지만.
“다른 스킬들을 써. 권능을 써.”
“스킬 발동…….”
빛무리가 퍼졌다.
“다음.”
빛무리가 퍼졌다.
“다음.”
빛무리가 퍼졌다.
“…….”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헌터가 신음했다.
“아무도, 없소…. 장로여. 당신의 곁에 혼 같은 건 없소. 원한은 차고 넘치지만, 애당초, 당신이 퇴마의 마법을 둘러서 죽은 이의 저주가 통하지 않도록 하지 않았소? 어느 누가 죽어서라도 당신의 곁에 있겠…….”
“꺼져. 병신아.”
장로는 왼손을 뿌리쳤다. 그 순간 헌터는 튕겨져 나갔고, 건물의 외벽에 부딪혔다. 쿠웅!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헌터는 축 늘어졌다.
“죽여버릴 거야.”
장로는 다시금 나를 노려보았다.
이를 짓씹으면서, 장렬하기까지 한 눈으로, 나를 봤다.
“당장 나도 그 새끼를 볼 수 있게 만들어.”
-아서라.
“아니면, 거짓말이냐? 연기? 여기에 있지도 않은 놈이랑 대화하는 척 연기해서 나를 속이려는 거야? 웃기지 마. 쳐죽인다.”
-얘 안 죽어.
“인간의 두개골이 몇 번 깎여나갈 수 있는지 보여줄까? 네 뇌를 테두리부터 잘게 발라주겠어. 근육을. 뼈를. 내장을. 신경을. 수천, 수만, 수십만 번 잘라주지.”
-결국에 패배하는 건 네가 될 거다.
“태평하군. 아니면 태평한 척이든지. 어쩌면 나를 우습게 보는걸지도 모르고. 좋아. 이명이 사왕이랬지? 내가 너한테 물어보마. 잘 대답해라. 나는 얼마든지 너에게 최악의 고통을 안겨줄 수 있어. 말해.”
천 년이 썩은 눈동자.
“정말로 죽음이 두렵지 않아? 네가? 네깟것이?”
“…….”
나는 천 년을 내려보았다.
“미안합니다.”
“그런 식으로 협박해도 소용이 없어요. 달라지지 않습니다.”
“…….”
“검제가 저한테 말했습니다.”
너.
재능 있어.
그것도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다.
물론 너한테 무술의 재능 따윈 없지.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너에겐 아주 희귀한 재능이 하나 있다.
“저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어요.”
정확히는, 극복했다.
지금까지 극복해왔다. 앞으로도 극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리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검제는 저를 선택했습니다.”
“…….”
느껴진다.
나의 목을 잡은 손에서 힘이 옅어지는 것이.
조금씩.
“검제는 당신을 배신한 적이 없어요. 잿빛 거미. 당신과의 약속을 깨트린 적 또한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육 년을 기다렸지요. 검제가 99층을 클리어할 때까지 자그마치 육 년이나 기다려주었어요. 그거면 충분할 것이고, 그거면 스스로 체념하기에 차고 넘친다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단지 그것보다 조금 더 걸렸던 거예요.”
“죽은 줄 알았어.”
잘게 씹어진 목소리.
“당연하잖아…….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 아니. 죽은 거나 다름없잖아. 뭐야. 뭐냐고. 거짓말치지 마. 너, 99층까지 올라가는 데 몇 년 걸리지도 않았잖아. 검제잖아. 천하무적이라며. 혼자서 탑을 제패할 거라며. 그런데, 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데. 거짓 말치지 말라고. 왜…….”
“스킬 카드, 오픈.”
나는 장로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앞.
그녀의 눈동자엔 아마도 약간의 빛과 함께 글자들이 새겨졌을 것이다.
+
[검의 성좌(星座)]랭크: A+
효과: 이세계 출신. 이세계의 탑을 99층까지 클리어했으나 100층을 눈앞에 두고 좌절. 그 원망이 남아서 성불하지 못한 채 배후령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간섭할 순 없으나, 소유자의 정신에 참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놀라운 실력에 조언을 구하십시오!
※단, 소유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배후령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헌터 마르쿠스 칼렌베리로부터 복사한 스킬입니다.
+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
처음엔 손아귀의 힘이 무너졌다.
“……아니야. 이건, 네 실패야. 패배야. 성좌? 성좌가 되면서까지 탑을 제패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 신이잖아. 넌 신이 된 거야.”
-그래서.
다음은 눈썹의 예각이 무너졌다.
-한 번도 성좌의 권능을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내가 배후령의 말을 옮겨 소리내어 말해줄 때마다 차례차례, 하나씩, 천 년 동안 잿빛 거미라는 것을 지탱해온 기둥이 무너졌다.
-메세지의 권능을 쓰지 않았다. 신앙이 모여도 버렸다. 변명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질주했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인간으로 남고자 했어. 웃기는 얘기지.
뺨의 무표정이 무너졌다.
-회색아.
“…….”
-좀 많이 늦었다.
마지막으로 입가의 비웃음이 무너졌다.
-미안하다.
3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