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12)
3.
벌어진 일은 어찌 보면 단순했다.
분노한 자가 분노했다. 사죄할 자는 사죄했다. 자기가 이 세상에 관해 뭐 한마디를 끼얹을 염치가 없다고 침묵하는 자는 조금 더 짙게 침묵했다.
“……엿 같네.”
그리고 [보조작가]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도개교 앞에선 여전히 잿빛 거미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만히 이마를 바닥에 댄 채 말이다. 그 몸 위로, 반마맹(反魔盟) 신도들은 썩은 과일이나 찌꺼기 따위를 던졌다. 그들이 던지는 것은 또한 감정의 토사물이기도 했다.
퍽.
잿빛 거미의 등에 새까만 덩어리가 부딪혀 미끄러졌다.
“아.”
미간을 좁히고 있던 [보조작가]가 입술을 벌렸다. 그녀의 시선 끝, 날카로운 단검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잠깐, 저거,”
하지만 단검은 날아가던 도중, 티잉! 맑은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내가 바둑알 같은 오러를 쏘아 떨어트린 것이다.
단검은 힘없이, 잿빛 거미로부터 4미터 떨어진 땅바닥에 꽂혔다.
“쯧!”
수천의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혀를 찼다.
[보조작가]도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거기 너! 지금 꼴사납게 무슨 짓…….”
“막지 마라.”
[마호스 군 지휘관]이 [보조작가]의 팔뚝을 잡아 멈추었다.“막으면 더 화낼 뿐이야. 전장 처리를 여러 차례 해온 나는 그것을 경험으로 안다.”
보조작가는 그런 마호스 군 지휘관을 바라보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검을 떨어뜨리기 전에도, 떨어뜨린 이후에도, 그저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그것은 내 바로 옆에서 배후령이 취하고 있는 자세이기도 했다.
보조작가는 내가 반응이 없자 마호스 군 지휘관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안경알이 삐죽 역 팔자로 치솟았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항복한 사람을 칠 수 있는데? 전장 처리 해왔으면 그게 기본이란 것도 알 거 아니야!?”
마호스 군 지휘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기본을 마탑은 지켜왔던가?”
보조작가가 이를 악물었다.
“당장 그대부터가 하무스트라 신도들과 함께 옥고를 치렀던 장본인 아닌가. 사왕에게 구출될 때까지 모진 고문을 당하기까지 했다면서.”
“…….”
“심지어 그대가 나고 자란 세계는 마탑에 지배당하는 식민지가 된 상황이지. 마탑이 식민지들을 50층보다 현명하게 다스렸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자그마치 천 년.
마탑이 쌓아 올린 원한은 많고도 깊었다.
“마탑은 현명하지 못했지. 그러니 그대는 더 현명하게 처신해라, 보조작가. 그대는 그대의 세계를 대표해서 탑을 오르는 것 아닌가. 세계의 적에 동정할 여유가 있다면 다음 층을 공략할 준비라도 해두는 것이—”
“고마워.”
보조작가가 말했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아무튼 날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잖아. 그러니 고맙다고. …그리고 또 할 말이 있는데 들어주라.”
“음. 고맙게 여겨준다면 다행이군. 해서 보조작가. 그보다 제안할 것이 있는데, 혹시 51층에 갈 멤버를 정하지 않았다면 나와 함께……”
“좆까.”
마호스 군 지휘관이 입을 다물었다.
말하고 나서, 보조작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경도 따라서 동그래졌다.
잠시 후, 그녀가 양팔을 파닥거렸다.
“아니… 그… 동행하자는 말에 대해서 좆까라고 말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그보다도, 음, 아 왜 지금 그 따위 제안을… 아 됐고! 좀 가만히 있어! …염병.”
보조작가는 여러 차례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마호스 군 지휘관을 한 차례 일별한 다음 몸을 돌렸다.
걷기 시작했다.
보조작가는 잿빛 거미의 앞에, 더 정확히는 잿빛 거미를 둘러싼 군중의 앞에 섰다.
“야 이 새끼들아, 더 꼴사나운 짓거리 하지 마!”
보조 작가가 말했다.
5.
곧바로 군중들이 이를 드러냈다.
“뭐냐!”
“저거 보조작가 아니야? 보조작가 맞지?”
“맨날 문법 오지게 틀린다던 그 새끼?”
“책 파먹는 햄스터 새끼 사도가 왜 갑자기 튀어나와? 마탑 토벌 계획 좀 거들었다고 뵈는 게 없어졌나?”
“다들 닥쳐!”
군중들의 웅성거림에 지지 않는 커다란 목소리로, 보조작가가 소리쳤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말했다.
“일단 하나. 내가 문법 틀린다고 말한 애는 있다가 보자. 그런 왜곡된 정보가 퍼지는 건 용납할 수가 없거든. 근데 그보다 더 용납이 안 되는 게 있는데… 이 새끼들아, 쪽팔리지도 않냐?”
보조작가는 목소리를 높였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니들이 직접 계획을 세우고 힘을 모아 복수해! 갑질을 하고 싶으면, 니들이 그렇게 직접 사냥한 것들한테 갑질하고!”
보조작가는 엎드려 있는 잿빛 거미를, 그 근처에 널려 있는 온갖 쓰레기들을 보고서 이를 갈았다.
“근데 이건 뭐야. 직접 마탑을, 마녀들을, 잿빛 거미를 사냥한 거면 뭔 짓을 하든 암 소리 않겠는데, 아니잖아. 남의 사냥감들한테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
그 말에 침묵하는 군중이 있었다.
조금 있었다는 뜻이다. 그 조금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군중들은 얼굴을 붉혔다. 그 중 가면을 써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는 그 가면을 붉혔다.
가면을 쓴 전사가 용의 뿔을 뜯어낸 것처럼 생긴 거창을 짊어진 채 한 걸음 나섰다.
“대단하시네, 보조작가 씨.”
가면 전사는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대단하셔. 용사야 아주! 옳은 말 바른 말 고운 말 오지는 말 아주 다 하시고 앉았네. 이제 우리가 부끄러워서 쥐구멍 찾아 달려가면 완벽하겠는데, 이걸 어쩌나. 빡치기만 하는데. 허허. 이건 내가 빡대가리라서 그런 건가?”
“응.”
“아니 담백하게 긍정하지 마시고… 참. 아주 그냥, 그렇게 당당하시니 당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지?”
가면 전사는 쿵! 창대 끝으로 바닥을 후려 찍었다.
“천 년. 무려 천 년 동안 마탑은 이 50층을 지배했다! 압제는 점점 강해졌고 이 50층은, 그리고 50층에 도착한 탑들은 그 마탑의 뿌리에 빨아 먹혀 갔다!”
사방에서 ‘옳다!’ 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보조작가 씨. 그런 고통과 아픔이 네 눈에는 보이지도 않냐?”
“옳다!”
“마탑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죽인 채 골목길을 지나야 했던 사람들을! 저 마녀들에게 가족이나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도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그런 사람들이 네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거냐!”
“옳다! 옳다!”
“보조작가 씨. 너는 입바른 말을 하고 있지만, 그건 너한테 그만한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지! 그런 힘이 없는 사람들은! 약자들은 이런 순간에조차 한풀이 할 생각 말고, 그냥 입 꾹 처다물고, 없는 것처럼 굴라 이 말인가!”
“옳다! 옳다! 옳다!”
“약하기 그지없는 피해자들의 입에 그렇게 재갈을 물리려 들다니! 그거야말로 정당하지 못한 일이고 잔인한 일이 아니냐 이 말이다!”
“옳다! 옳다! 옳다! 옳다!”
가면 전사의 일갈이 이어질 때마다 들불 같은 환호가 벌어졌다. 반마맹에 아예 참가하지 않았던 일반 헌터들도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보였다. “우오오오!” 광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리고 보조작가는 그 도가니에 찬물을 끼얹었다.
“엑스트라 새끼의 좆같은 개소리를 아주 고맙게 잘 들었습니다.”
가면전사가 멈칫했다. 군중들도 일순 입을 다물었다.
그 정적 위를, 보조작가는 천천히 걸어갔다.
가면 전사의 앞에 서서, 가면에 난 두 개의 구멍을 보조작가는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알아둬, 이 새끼야.”
보조작가는 기지개 켜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수그린 채 고개를 들어, 가면 전사의 가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면서 중얼거렸다.
“니가 지금보다 10배, 100배 강하다고 해도, 마탑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강했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니 앞에 섰을 테고, 니가 좆같은 소리를 했다고 말했을 거야.”
보조작가는 손끝으로 그 가면 전사의 코 부분을 꾸욱 누르면서 말했다.
“그게 내가 마탑에 끌려갔던 이유야.”
가면 전사의 가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앗 뜨거 쌍,” 물리적인 열을 동반하는지 보조작가가 황망한 얼굴로 손가락을 뗐다.
가면 전사는 끓어 넘치는 마그마가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닮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지. 니가 끌려갔던 건 하무스트라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지. 뒷배가 없어져서, 힘이 약해져서! 지금도 똑같지. 이제 저기 사왕인지 뭐시긴지가 뒷배로 붙었다고 아주….”
“아.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겠는데.”
사실은 두 마디야, 너 대체 그 가면 어떻게 쓰고 있는 거니 겁나 뜨겁던데, 하고 중얼거렸다가, 보조작가는 열에 덴 자신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가볍게 핥았다.
“니가 지금보다 1000배, 10000배 강하다고 해도. 마탑을 다 곱한 것만큼이나 강했다고 해도, 넌 그냥 주인공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1회용 엑스트라였을 거야.”
가면 전사가 입을 다물었다.
보조작가는 가면 전사로부터 시선을 뗐다. 눈매를 따라 날카로워진 안경이 둘러 싼 군중들을 향했다.
“쪽팔린 짓들 하지 말자.”
가면 전사가 말을 할 수록 언성을 높여갔다면, 보조작가의 말은 정반대였다. 그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니들, [헌터]들이잖아.”
나직한 목소리였다.
“니들이 나고 자란 곳보다 더 큰 곳을 가고 싶어서, 니들이 늘 보던 풍경과는 다른 것을 보고 싶어서, 제 발로 탑을 오르기로 결심한 녀석들 아니야?”
점차 줄어든 목소리는 차라리 한탄조로 변했다.
“나는 그랬어. 더 있을 곳이 없어서 올라온 새끼도 있을 테고, 타이밍 겁나 못 잡는 빙딱 새끼처럼 세계를 대표하니 뭐니 하면서 올라온 새끼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거창한 건 몰라. 나는 항상 나만 알았고, 나만 생각했거든.”
아마도 그래서 성좌를 믿어도 관장님 같은 작자를 믿었던 것이겠지, 지 닮은 것에 사람은 끌리게 마련이니 하고 보조작가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여기에 나의 이야기를 쓰러 온 거야.”
눈매를 따라 축 처진 안경알이 군중을 훑었다.
“니들도 그렇지 않아?”
군중을 훑고 돌아온 보조작가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그 시선에는 분노가 아닌 회한이, 언젠가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을 적에 새어나오고는 하는 마음의 노을이 서려 있었다.
아직 엎드려 있는 잿빛 거미를 돌아보면서, 보조작가는 말했다.
“이게 [주인공]들이 할 짓처럼 보이냐고.”
한 때.
[자신은 어차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니까] 하고 중얼거렸던 하무스트라의 사도는, 어깨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아니잖아.”
“…….”
“이제는 좀, 주인공이 되자.”
그리고.
그 말에는 반향이 있었다.
“잘 말했군.”
그것은 검제교의 교인들이 낸 목소리였다.
검제교는 분명 그 누구보다도 마탑에게 가혹한 짓들을 당해온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리의 다리 위에 있던 엉거주춤 멈춰서 있는 마탑 제 1지부의 마녀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엎드려 있는 잿빛 거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검제교의 교인들은 걸어가 보조작가 곁에 섰다.
“맞는 말이다.”
“쳐맞는 말이기도 하오. 쳐때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 많을 테고, 솔직히 나도 그렇다오.”
“하지만… 그래도 맞는 말은 맞는 말이지요.”
검제교의 교인들이 일제히 돌아섰다.
보조작가 곁에 늘어선 검제교인들은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사왕이 없었다면, 이 사냥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만큼 우리가 여기서 더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도덕이 없는 일이겠지.”
“그 분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을 거다.”
군중들이 주춤 움츠러들었다.
-흠.
배후령이 말했다.
-뭐, 150년이 지나니 아주 조금은 성장들 했구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도 똑같이 생각하네! 이건 공정하지 않지!”
이 50층에서 나를 유일하게 죽였던 광대가 걸어 나와, 보조작가와 검제교인들의 곁에 서며 꺼낸 말이었다.
“젠장… 텄구만.”
혀를 찬 광전사가 그 뒤를 이었다. 파파라초, 그 밖의 반마맹 고위층들도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는 마호스 군 지휘관이 걸어와, 잿빛 거미와 군중들을 차단하는 사람 울타리의 한 귀퉁이로 변했다.
보조작가가 약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넌 왜 왔냐? 현명하게 굴라면서.”
“승세가 여기에 있기에. 정당한 싸움과 이기는 싸움, 마호스께서는 후자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당하면서 이기기까지 하는 싸움을 가장 좋아하시거든.”
“그거 아니? 넌 빙딱인 데다가 쓰레기이기까지 해.”
“하지만, 잘 싸우는 쓰레기지.”
“응. 그래서 네가 했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51층, 같이 가자.”
“영광이군.”
사람의 울타리가 견고해질 수록, 군중들의 열은 천천히 가라 앉았다. 하지만 그것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라앉아 쌓이는 것이었다. 마치 압력솥 아래 고여드는 증기처럼.
가면 전사가 폭발했다.
“제기랄! 너희들의 말은 억지다! 그럼 자기 힘으로 복수할 수 없는 피해자들은 평생 입술 꾹 다물고 살란 소리냐!”
“그런 말은 한 적 없다. 당장 나도 그 피해자 중 하나니까.”
검제교인 중 한 명이 말했다.
고개를 들었다.
“거기 너. 마탑의 대변인.”
조마조마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마탑의 대변인이 딸꾹질을 했다.
“예에!?”
“너는 나의 사제를 죽였다.”
분노는 뜨겁기도 하지만, 차갑기도 하다.
검제교인의 분노는 열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노가 가득하여 차가웠다.
“재능이 있고 성정이 가벼워서 인생을 쉽게 살던 녀석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쉽게 죽지는 못하더군. 열흘 가까이, 유리관 속에서 온몸의 뼈가 압착당해 죽는 꼴을 보이면서 참혹하게 죽었지.”
마탑의 대변인이 시선을 피하며 어물거렸다.
“하, 하아… 으음. 그것 차암, 안타까운 일이네요… 유감입니다아. 어어…. 근데 그 말을 지금 왜 하시는지…?”
“목을 씻고 기다려라.”
“예에?”
“준비가 되는대로, 사자세계로 찾아가겠다. 네게 결투를 신청하기 위해서. …괜찮겠지, 사왕?”
음.
그렇다.
그렇게 이제 와서야, 나는 입을 열게 된 것이다.
“에이. 정당한 결투를 누가, 또 어떻게 막겠습니까.”
나는 겸손하게 웃어주었다.
“부대를 이끌고 침공해오는 건 막겠지만, 결투라면 뭐. 제가 막을 자격이 없죠. …다만 그렇게 벌어진 결투에서 죽으신다면, 같은 이치에서 저도 어떻게 못 해드립니다?”
“그야 당연한 일.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누군가를 죽이러 나설 수 있겠나.”
검제교인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탑의 대변인을 노려보았다.
“기다려라.”
“……하.”
마탑의 대변인이 이를 갈았다.
“이것 참. 저도 얕보였군요오. 1대 1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보시나 보네? 그게 착각이란 걸 아주 단단히 알려드리겠습니다아. 사제와 사형이 같은 인물한테 쌍으로 죽게 되다니, 사문의 경사가 따로 없겠네. 예! 아주 그냥, 경사를 만들어드리겠지요! 깜짝 놀랄 만한 죽음으로 말이죠!”
“너는 그럴 수 있겠지. 그럼 내 제자가. 다시 또 그 제자가 널 찾아갈 것이다. 내 사맥이 끊기거나 네가 목숨을 떨구는 그 날까지.”
“아니 염병… 어어어, 그러지 마십시다아. 자비! 평화! 전쟁 반대! 피는 피를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구요오. 그냥 다 잊고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미안하군.”
검제교인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그 정도로 강하지 못해서.”
마탑의 대변인이 딸꾹질을 했다.
4.
그리고 또한, 그것이 시작이었다.
5.
마탑의 마녀들은 그렇게 각자 보내온 세월에 따른 대한 [정산 예고서]를 받았다.
하나도 받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셋 이상, 대변인 같은 경우는 무려 107개에 달하는 결투장을 받고서 신음했다.
“아니 씨발. 이게 다 니들이 나한테 대변인직 짬처리해서 그런 겁니다아. 내가 전면에 나서니까 그만큼 어그로가 끌린 거라고요. 이봐요 다른 지부장들. 니들이 양심이 있다면 좀 나눠받아야해요. 근데 니들한테 양심이 있던가? 아 없지…. 빌어먹을 잡년들….”
그런 대변인을 보고서 나랑 같이 탈주했던 챠루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던가.
“휴… 깊은 곳에 짱박혀 청소만 해서 다행이다…. 이것이 빅픽쳐….”
“조심하세요. 챠루무 씨.”
나는 그런 챠루무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충고해주었다.
“결국, 자기가 살아온 삶에서는 도망칠 수가 없는 법이거든요.”
“어씨 뭘까요 대체…. 공자 씨의 말에서 느껴지는 이 기묘한 리얼감은….”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쿠르르르릉!
마지막 남은 첨탑이 50층에서 무너져내리는 소리였다.
[‘자학자에 내리는 채찍’이 봉인에서 풀려납니다.]첨탑을 정중앙에서 지탱하고 있었던 기둥이 기우뚱, 거리며 쓰러졌다. 멀리서 보면 대못처럼 생긴 철심이었다. 그 철심은 땅에 닿자마자 마치 유리처럼 와장창 깨졌다.
“으으으……?”
깨진 기둥 속에서, 머리카락이 붉은 여인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여긴……?”
“언니이이이!”
[광전사]가 초음속으로 달려나갔다. 콰앙! 인간과 인간이 부딪혔을 때 상식적으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났는데, 다행히 저 중 한 명은 인간이 아니라 성좌였다.붉은 머리의 성좌는 가볍게 [광전사]를 받아 안았다.
“어라. 어머…?”
“언니! 우리 성좌 언니! 엉엉, 늦어서 미안해! 늦어서, 미안! 3년만 기다려달라 그랬는데! 300년이 지나 버렸어! 난 바보 멍청이에 미친 쓰레기야! 죽었어야 하는데! 콱 죽어야 했는데 죽지도 못 했어! 겁쟁이! 흐어엉, 미안해!”
마탑에서 봉인한 성좌들이 풀려난 것이다.
“아…. 이 등신같은 자학(自虐), 응. 틀림없이 제 사도시군요….”
붉은 머리 성좌는 [광전사]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광전사]는 그토록 재회하길 바랐던 자신의 신에게 얼굴을 파묻고, “흐엉”, 눈물을 흘렸으며, “으아앙!” 콧물을 묻혔으며, “흐으윽!” 마침내 침이 튀도록 대성통곡했다.“응….”
붉은 머리 성좌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광전사]의 뺨을 갈겼다.
“존나 더러우니까 적당히 하시어요….”
“고마워어어, 사왕!”
자기가 모시는 신의 머리만큼이나 뺨이 붉어진 채로 [광전사]는 내게 말했다.
“너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언니랑 다시 만나지 못했을 거야! 고마워어, 흐윽, 존나 개같은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개같이 좋은 개새끼구나!”
“세상에.”
나는 성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아직 몸이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어서, 첨탑의 기둥 하나 베어버린 것뿐인데도 어깨가 뻑적지근했다.
“쓸 줄 아는 수식어가 그것밖에 없으신지…?”
“뭐! 개새끼 귀엽잖아!”
음.
그건 인정합니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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