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14)
1.
고작 세 번뿐이어도 좋습니다.
제 삶에서, 제가 마음대로 하게 해주십시오.
대신 저의 모든 것을 가져가세요.
어젯밤을 지새웠고, 돌이켜 보면, 이제 한 번의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2.
“네놈이 사왕(死王)이냐? 이명 한 번 거창하군. 너무 거창해서 정반대로 가소로울 지경이다! 기억하거라. 나는 십삼거악(十三驅惡)의 일인. 영원한 벼랑을 무너트린 자. 모든 해안에 몰아치는 파도의 주인, 아홉 번째 해상군주, 해적장군, 미치광이……!”
참新.
“미치광이 혈해군을 쓰러트렸다고 들었다네! 제법이로군. 듣자 하니 자그마치 10개의 층을 한꺼번에 돌파했다던가! 확실히, 분명히, 틀림없이, 귀하는 검제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등장한 신성! 그러나 기억하게나. 밤하늘에 빛나는 모든 별자리가 한때 신성이라 불렸지. 이렇게 좋은 깨달음을 전달해주는 본인을 소개하자면, 오오! 말해서 무엇하랴! 신성이적의 산 증인! 십삼거악! 백야에 만송하는 솔방울, 숲지기, 그 이명도 두려운……!”
참新.
“긴말하지 않겠다. 혀가 길수록 명줄이 짧아지는 법이지. 두려워하라. 공포에 떨어라. 나는 오늘 너에게 하나의 진리를…….”
참新.
“어. 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물론 제가 사람들을 좀 괴롭히긴 했습니다. 아니, 좀 많이 괴롭히긴 했는데…… 잠깐! 잠시만요! 스톱! 아니, 원래 사람이 200년 300년 넘게 살다 보면 성격이 괴팍해지기 마련입니다요! 쾌락이란 쾌락은 모조리 즐겼는데 남는 즐거움이라곤 나 말고 딴 놈 괴롭히는 재미밖에 더 있겠습니까! 아니. 잠깐. 거긴 들어가시면 안 되는데…… 아니, 아니! 기다려주십쇼! 그 핏자국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아. 씨발, 죽인 다음 청소하는 거 깜빡…….”
참新.
“후회는 없어. 알아? 산 사람을 고문하는 거, 정말로 즐겁거든.”
참新.
“네가 그렇게 잘났냐?”
참新.
“강하군. 사왕이라. 검제는 일개 헌터 주제에 황제의 칭호를 얻었지. 그다음은, 왕인가. 탑도 기이한 것이다. 호연(好然). 호생(好生). 호사(好死). 그대의 삶이 필연이라면 그 이름에도 운명이 깃들었을 테고, 이 순간, 내 최후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참新.
“……제길. 제기랄!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참新.
“환장하겠네.”
“그러니까 처음부터 열두 명이 힘을 합쳐 공격하자고 얘기했잖아…. 왜 열둘이 셋으로 줄어들 때까지 아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형들, 병신이야? 그러고 보면 병신이었지…. 귓구멍이 막힌 대가로 목구멍이 뚫리다니 교환비 개같네….”
“으하하하! 사왕!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비록 십삼거악은 멸하지만 네놈을 가로막을 적은 앞으로도 두 번, 세 번, 그래! 우리 형제의 의지가 이어지는 한 언제까지라도—-.”
참참참新新新.
“후우.”
나는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정말 힘겹고, 기나긴 싸움이었다…….”
[반짝이는 대하 드라마와 같은 전투의 연속이었다고 자평합니다!]“음. 만약 영상으로 찍었다면 102부작 완결을 예정했지만 사랑과 관심 속에서 2부, 3부, 마침내 4부까지 이어져 레전드 연대기로 길이 남았을 거야. 그리고 도중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방영 중지를 먹어, 더욱더 애달픈 레전설이 되었겠지….”
[반짝이는 실로 그러하다고 긍정합니다!]우리 두 콤비가 자화자찬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배후령은 어이없다는 듯 지켜봤다.
-너희 개그 찍냐? 그냥 헌터 열두 명을 베었을 뿐이잖아?
“아. 생각해보니까 심삽거악이라면서 왜 열두 명밖에 없었을까요? 베기 전에 그걸 물어봐야 했는데 그만 깜빡해버렸네.”
[■■■■ ■■ ■■■■ ■■■ ■■■■■.]-그야 한 명은 백오십 년 전에 내가 베고 지나쳤으니까.
“과연. 백오십 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인원 보충이 안 된 건가….”
60층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구나.
탑에 오르고자 하는 헌터는 무수하나 정작 상층부엔 헌터가 부족한 현실에 씁쓸함을 느끼며, 나는 성검을 납도했다.
-흐음.
배후령이 팔짱을 낀 채 힐끗거렸다.
나를 본 게 아니었다.
배후령의 눈동자는 내 어깨 너머, 십삼거악이 웅거하던 성채를 향하고 있었다. 성채는 타올라 연기를 실실 내뿜었다. 거리가 꽤 떨어진 여기서도 퀘퀘한 불냄새가 풍겼다.
-좀비야.
“알아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끈질기네요. 또 쫓아왔습니다.”
-신경 거슬린다. 이게 도대체 며칠째야?
“음.”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대략 2주일?”
-아우 스트레스 받네. 야, 야. 그냥 네가 가서 잡으면 안 되냐? 언제까지 무시할래?
“따라다닐 뿐이지 적의를 보이는 건 아니잖아요. 쳐다보기만 하고. 딱히 저랑 적대하는 게 아니면 내버려둘 생각입니다.”
그렇다.
지금 나는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 아마.
아마, 라고 단서를 붙인 까닭은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나를 따라오는 건지 정말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 그러다 저게 암살자면 어쩌려고?
배후령이 극단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거미들 살려준 거 때문에 지금 너한테 원한 품은 놈이 한둘이 아닐 텐데.
“저한테 꼭 암살자를 보내야만 오늘 하루를 살 수 있겠다 싶은 사람이면, 그만큼 원한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면, 제가 아니라 원한이 있는 거미한테 암살자를 보내겠죠. 안 그래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걷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혹시 몰라서 어제랑 그저께 일부러 빈틈을 보였어요. 노숙할 때. 근데 일정한 거리 안으로는 절대 접근하지 않더라고요.”
-거 참 이상하네…. 뭐지? 왜 너를 따라다니는 거람?
“제가 좋나봐요.”
-아하. 머리가 썩은 사람이군.
“적어도 인성이 썩은 사람은 아닐 겁니다. 누구처럼.”
-아아앙?
“왜? 뭐?”
우리는 여느 때처럼 우정을 다지며 숲길을 걸었다.
정체불명의 X는 내게 가까워지지도 멀어지도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아.”
그 존재감을 머리 한구석에 인지해두면서, 문득, 생각했다.
“목 마르네요. 어디 마시기만 해도 위장까지 시원해지는 냇물 없으려나? 이런 숲이면 있을 만도 한데.”
그 순간이었다.
[■■■■ ■■ ■■■■ ■■■ ■■■■■.]졸졸졸.
숲을 헤치고 걸어나가자마자 보란 듯이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슴 비슷하게 생긴 동물 두 마리가 물가에 코를 박고 혀를 핥짝거렸다. 마셔도 안전한 물이란 뜻이었다.
“오. 럭키.”
나는 별 생각 없이 냇물로 다가갔다. 건너편에서 사슴들이 ‘저 못생긴 동물은 뭐지?’ 하는 눈깔로 힐끔거렸지만 가볍게 씹어줬다.
물통이 있으면 편하겠지만 호모 사피엔스에겐 손이 있는 법.
양손으로 물을 떠다 벌컥벌컥 마셨다.
“캬아! 시워언하다! 이제 좀 살 거 같네.”
-…….
“응? 뭡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할 말 있어요?”
-아니…. 좀 이상해서.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한데요.”
배후령이 미간을 좁혔다.
-김좀비. 너 요즘 운이 너무 좋은 거 아니냐?
“예?”
운이 너무 좋다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잘 봐. 지금도 목 마를 즈음 되니까 갑자기 시냇물이 나왔잖아. 어제도, 그제도, 그그저께도, 아니, 생각해보면 열흘 전부터 요상하게 운이 따랐어.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가는 곳마다 수원(水原)이 있다는 게 말이나 되냐? 이 드넓은 60층에서?
배후령은 열변을 토했다.
-심지어 이제 좀 눈을 붙이자 싶을 땐 주변에 꼭 불쏘시개가 있어요. 말이 안 돼. 넌 식수랑 난방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거 진짜 말이 안 되는 행운이걸랑?
“별로 당연한 세상은 아닙니다만….”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 ■■ ■■■■ ■■■ ■■■■■.]그리고 배후령의 말을 반박했다.
“검제 양반. 하지만 그건 이상한 점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원래부터 이 방향에 수원이 있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이쪽 길을 선택한 거잖아요?”
-…뭐? 너 무슨 소리하냐?
“댁이야말로 뭔 소리하는 거예요? 이곳에 시냇물이 흐른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굶거나 목 마르지 않게 루트를 짰잖아요. 마을 떠나기 전에요.”
-…….
배후령이 입술을 열려던 때.
[■■■■ ■■ ■■■■ ■■■ ■■■■■.]천천히, 배후령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러게. 그랬지.
“네. 60층은 지금까지 올라온 스테이지랑 다르게 존나게 넓다고, 지도나 지리에 대한 정보를 미리 구해두지 않으면 조난당할 게 뻔하니까 단단히 준비하라고. 댁이 저한테 알려줬잖아요? 그래서 기껏 마을에서 열심히 지리 정보를 얻었는데. 왜 이제 와서 딴소리입니까.”
-그러게…… 말이다. 으음? 정말로 그러네.
배후령이 팔짱을 끼었다.
-왜 네가 운이 이상하게도 좋다고 생각했지…? 운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한 결과였는데…?
“제 말이요. 괜히 댁이랑 이상한 거 가지고 말하니까 배만 고파졌습니다.”
나는 오러를 휙, 날려보내어 사슴 비슷한 동물을 잡았다. 사슴탱이는 인간을 별로 보지 못해 경계심조차 없는지 냇물을 홀짝거리다 그대로 나한테 당했다.
간단한 사냥이었다.
“마침 근처에 고기가 있어서 다행이네.”
-…….
“아, 마른 장작이다. 럭키. 오늘도 바베큐나 해먹죠.”
-……60층에 사는 동물들이 원래 이렇게 맹했나? 아니. 잠깐만. 왜 평범한 동물들이 있지? 내가 기억하기로 원래 이 근처엔 마수들만 넘쳤…….
[■■■■ ■■ ■■■■ ■■■ ■■■■■.]-지만은 않았지. 흠. 그래. 치사하게 너 혼자 맛있는 거 먹으면 좋냐?
“존나 좋은데요.”
-나쁜놈.
“착한놈?”
-이상한놈.
그때였다.
“아코코고….”
우리가 걸어온 것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의 수풀에서 누군가가 폴싹, 튀어나왔다.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그녀는 시냇물에 도착하자마자 털푸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어라.”
나는 막 구운 사슴뒷다리 고기를 들고 얼른 소녀한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으으… 고기…… 고기…….”
소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코를 킁킁거렸다. 육체로 냄새를 맡는다기보다 영혼으로 냄새를 맡는 듯한 처절함. 아무래도 사슴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본능적으로 걸어온 모양이다.
고기는 어쩔 수 없지.
“자요. 천천히 드십시오.”
“우으으…. 가, 감사합니다…….”
소녀는 내게 뒷다리를 받아 허겁지겁 갉아먹었다.
“켁! 에쿱, 후쿠욱! 무, 물……!”
“어.”
[■■■■ ■■ ■■■■ ■■■ ■■■■■.]“여기요. 마시세요.”
때마침 나에겐 [물통]이 있었다. 다행이지 않은가. 만약 물통이 없었다면 일일이 손으로 물을 떠다가 소녀한테 줘야 했을 텐데, 옆에서 보기에 모양새가 퍽 난감했을 거다.
“흐와!”
소녀는 입가에 물을 철철 흘릴 정도로 급하게 음용했다. 꿀꺽, 꿀꺽, 목청이 울렁거리더니 마침내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 덕분에 살았습니다!”
“뭘요. 이런 곳에선 방랑자끼리 도와야죠.”
“당신이 없었더라면 전 굶어죽었을 거예요…. 새, 생명의 은인이세요….”
소녀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내리깔며 힐끗, 나를 올려보았다.
숲속을 헤맨 거치고는 옷차림이나 머리카락이 상당히 깔끔했다. 힘든 일을 겪었다, 는 느낌은 있어도 더럽다, 는 느낌은 아예 없다고 할까?
무엇보다 굉장히 미모가 뛰어났다. 정말로 굉장히. 라비엘을 만난 이후 내가 사람의 외모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전무한데, 소녀는 나의 본능에 각인된 습관을 살짝 일그러트린 것이다.
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
“도움이 되었다면 저야말로 기쁩니다.”
뭐. 생각만 할 뿐이지만.
라비엘이 훨씬 더 예뻐.
“…….”
소녀는 살며시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다음 중얼중얼거렸다.
“……이상…… 설마…… 응, 그럼 이렇게……?”
[■■■■ ■■ ■■■■ ■■■ ■■■■■.]나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뇨.”
그러자 소년은 고개를 들어 활짝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웃음이 참 밝은 소년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숲속을 헤맨 것인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옷차림이 남루했고, 온몸에 상처가 나 성한 곳이 없다 싶을 정도였는데, 소년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힘껏 내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려 들었다.
천성적인 해맑음이 소년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저도 참. 은인의 성함도 아직 여쭙지 않았네요!”
“아.”
“은인님. 부디 제게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요. 제 이명은 사왕이라고 합니다.”
“사왕…… 사왕!?”
소년이 깜짝 놀랐다.
“사왕님이라면 설마, 바로 얼마 전에 무려 10개의 층을 한꺼번에 클리어하셨다는 그 분인가요!?”
“음. 네. 아마도 제가 맞을 겁니다.”
“우와아아! 굉장해! 어떻게 이런 행운이……! 성좌들이 일제히 떠들썩해지길래 대체 어떤 분일까 싶었는데, 우연히 조난당한 숲속에서 마주치다니!”
덥썩.
소년은 호들갑을 떨며 내 손을 잡았다.
“만나 뵙게 되어 진짜 진짜 영광이에요!”
태양조차 어두워질 정도로 밝은 미소를 뿌리면서.
“저, 사왕님 팬입니다!”
3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