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24)
4.
“사랑해요. 공자님. 사귀어주세요.”
“아, 그건 안 됩니다.”
“제기랄!!”
성좌를 모시자마자 내가 한 일은 성좌의 고백을 차버린 것이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분노합니다.]팍. 팍! 어린 여우는 씩씩거리며 발바닥으로 방바닥을 찼다.
본 적 없는 사람은 잘 모를 수 있는데, 여우가 두더쥐 놀이하는 모습은 굉장히 깜찍하다. 무슨 뜻이냐면 내 성좌 귀엽다고.
“제가 귀엽지 않으신 거군요?”
“아뇨. 귀엽습니다.”
“제가 사랑스럽지 않으시나요?”
“사랑스럽네요.”
“제가 가지게 된 이 모습을 좋아하시고, 게다가, 공자님께선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떠한 세뇌도 조작도 안 걸리는 거지요?”
“방금 하신 말씀에 틀림이 없군요.”
“그럼 그건 사랑이잖아!”
여우가 폴짝 튀어올라 내 멱살을 잡았다. 흔들흔들. 잡혀본 적 없는 사람은 잘 모를 수 있는데, 여우가 사람 멱살에 메달려 껑껑거리는 모습은 굉장히 깜찍하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어서 사랑해! 지금 당장 나를 사랑해라! 내게 특대의 행복을 선사해라, 인간! 나를 행복하게 해!”
음.
무슨 뜻인지 알아줬으면 한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스킬을 발휘합니다.] [‘우주홍황(字帝供荒)’에 의해 당신의 감정이 변하려 합니다.] [불발!] [스킬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그거 해봤자 안 된다니까요… 신님….”
우주홍황은 서로의 상상을 이루어준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것이 성좌의 행복이며, 그 행복이 망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천착되기를 바라는 이상, 왜곡은 일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나는 여우신님이 [우주홍황]이 없이도 현실에서 행복해지길 원했다.
우리 둘의 현실이 끝날 때까지— 완전한 죽음이 도래할 때까지, 고로, [우주홍황]도 계속 지속될 것이다.
아무런 왜곡도 현실에 덧붙이지 못한 채.
“우으으…….”
여우가 양발로 머리를 쥐어 감쌌다.
“……이상해. 이상한 건 공자님인데 마치 내가 철부지에 이상한 성좌인 것처럼 취급받고 있어. 이상하지 않아? 이것조차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 대체 뭐야? 사랑이 뭔데. 뭐냐고!”
“그 질문을 할 수 있을 때까지가 청춘이란다.”
“저는 벌써 수천 년째 청춘인가요. 빌어먹을. 봄이 길기도 기네. 여름 되기도 전에 꽃가루에 질식해 뒈지겠어요.”
“신님. 입이 좀 거칠어진 거 같습니다. 생기기는 우주의 귀요미들 싸다귀를 서너 번씩 갈겨댈 만큼 귀여우신데, 말투에 다소 에러가 있는 거 아닙니까? 조금 더 여우 같은. 조금 더 FOX 같은 말투가 뭔가 있지 않을까요?”
“신도님. 그럼 신도님은 여우가 어떻게 우는지 아세요?”
“밍딩딩딩리디딩 ?”
“유행 지났어요. 박자도 틀렸고요.”
어린 여우가 냉담하게 말했다.
여우도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오늘도 새로운 깨달음을 하나 얻은 나의 이름은 김공자, 탑을 오르는 한 명의 소크라테스.
-과연….
배후령이 문득 탄식했다.
-김좀비 주변의 개소리 농도가 더욱더 짙어졌구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반짝이는 뭐가 무슨 뜻이냐며 대화에 끼어들려 애씁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여우 울음 소리를 깊이 사색합니다.]-진짜 어디서 이런 36가지맛 또라이들만 고르고 골라 모아왔지? 이거 합법인가? 좀비야, 네 존재는 합법이냐? 내 눈엔 좀 불법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5평짜리 골방이 북적거렸다.
그곳엔 사람 1인, 검 1자루, 사막여우 1마리, 귀신 1새끼가 있었다.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종족평등을 이뤄낸 4인 파티 조합이었다.
“여기에 더 머물 필요도 없겠네요.”
일단 좁아.
“삐약. 삐약.”
그리고 여우님이 대답했다. 마침내 어린 사막여우의 울음소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결정한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진화학적으로 한참 잘못 짚었고 아마 물리학적으로도 잘못된 발성이었는데. 여우님은 몹시 만족한 기색이었다.
“삐약, 삐야악.”
“뭐라는 겁니까?”
“빠약.”
여우신님이 뭐라는 건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61층을 지배하는 성좌입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당신에게 퀘스트를 부여합니다.]눈앞에서 사르륵, 모래알들이 움직였다.
알갱이들이 모여서 글자를 이루었다.
+
[떠먹여주는 퀘스트]성좌: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
난이도: F
임무 목표: 당신이 모시는 성좌의 머리를 쓰다듬으십시오.
※단, 정성을 다해서 쓰다듬어야 합니다.
+
“…….”
“삐약.”
여우님은 자신만만하고 기세등등하게 턱을 치켜올렸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미소를 짓고 여우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스치는 길을 따라 백금빛 털이 사락사락 물결쳤다.
정성을 담아서.
[퀘스트 달성.] [스테이지 클리어.]아마, 이보다 더 빨리 퀘스트를 빨리 끝낸 헌터도 없겠지.
스피드런이라면 스피드런이다.
내가 보내야 했던 라비엘과 스승님의 반생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축하드립니다.] [61층 스테이지가 클리어 되었습니다!]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경이 나를 감쌌다.
사르륵.
모래바람이 불었다. 마셔도 매캐하지 않았고, 눈가를 스쳐도 따끔거리지 않았다. 단지 향긋한 사막 장미의 향을 머금었을 뿐. 태양 아래에서 이슬만을 받아 마시고 피어난 꽃의 아릿한 내음이 코끝에 감돌았다.
‘눈부신 빛이 아니라.’
그동안은 다음 스테이지로 향할 때마다 하얀 빛이 주변을 감쌌다.
‘정말로 성좌를 모시게 되었기 때문이려나.’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어떤 권능도 쓰지 못하고, 내 곁에 있어주는 것 이외엔 할 일이 없는 성좌이지만, 원래 밤하늘의 별자리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성좌에게 바랄 소원은 이미 그걸로도 충분했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괜찮네.’
나는 모래바람에 잠겨들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전송됩니다!]째깍.
골방에 남겨진 벽시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엿들으면서.
5.
[당신은 62번째 스테이지에 입장했습니다.]새로운 층.
현실로 따지면 61층에 머무른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흘렀을 테지만, 나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는 요란하였다.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의 기척을 재감지합니다!]아마 성좌들은 나를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었을 거다.
50층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일을 저질러버린 나다. 임시라곤 해도 열 명에 이르는 성좌들과 동시에 계약을 맺기까지 했다.
나와 계약한 성좌든, 계약한 적 없는 성좌든, 나의 소란스러운 행보에 관심을 품지 않기란 어렵다.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의 등장을 다른 성좌들에게 알립니다!]그런 내가 61층에서 기척이 끊어진 것이다.
여우님이 발동한 [우주홍황]에 의해, 완전히 폐쇄되고 고립된, 우리 둘만을 위한 세상에 틀어박혔다.
다른 성좌들조차 여우님의 존재를 알진 못했다. 그 능력 또한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성좌들은 대체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지 않았을까?
그리도 다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내가 돌아왔으니, 저리 허둥지둥 메세지를 보내오는 거지.
[‘미궁에 거하는 눈’은 당신에게 정식 신도가 될 것을 제안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가 당신에게 신도 자리를 제안합니다.] [‘외로운 구도자’가 당신에게 신도 자리를 제안합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당신에게 사도 자리를 제안합니다!]오랜만이구만.
꽤 그리운 이름들이 연달아서 메세지에 등장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성좌들에게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잘들 지내셨어요?”
[‘미궁에 거하는 눈’은 그동안 어디에 숨었던 것이냐며 질문합니다.]“딱히 숨은 건 아니에요. 자세한 얘기는 프라이버시니까 비밀로 하고….”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당신에게 사도 자리를 제안하고 있습니다!]“아. 참. 그거 말인데요.”
폴짝.
여우님이 내 허리에 뛰어들어 등까지 기어올랐다.
“저, 이미 성좌를 모시게 됐습니다.”
여우님은 내 어깨에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여우 꼬리로 살살 내 목을 감쌌다. 멀리서 보면 황금빛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보일 거다.
“삐약.”
여우님이 내 뺨에 머리를 부비었다.
하늘에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외로운 구도자’가 침묵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가 침묵합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침묵합니다.]그저 여우님이 눈웃음을 지은 채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소리만 고요하게 흘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한 성좌가 메세지를 발신했다.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구냐고 정중하게 물어봅니다.]음.
첫인상이 이보다 좋을 수 없군.
“자아, 여러분. 조금 진정하시고요…….”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자기가 뱀술을 참 좋아한다고 동문서답합니다.]“……뱀술? 웬 갑자기 뱀술?”
내 의문에는 배후령이 답해주었다.
-미궁에 거하는 눈, 그러니까 히시미트 크리츠가 뱀신이걸랑. 좀비야. 한마디로 네 성좌 나리께서는 뱀한테 종족차별적 모욕을 건넨 거란다.
“아하. 그래서…….”
[‘미궁에 거하는 눈’은 당신을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합니다!]“……저렇게 과격하게 반응하는 거군요. 음.”
과연.
아무래도 우리 여우님은 행여라도 다른 성좌들이 나한테 침을 묻히지 못하도록, 아예 처음부터 성좌들과 척을 지려는 모양이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은 당신 같은 성좌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말합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그건 당신의 토끼귀가 썩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정기적으로 귀지를 파주는 존재가 없는 당신에게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동정심을 표합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은 당신을 찢어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합니다.]굉장한데.
“……혹시 바비트는.”
-토끼신이지. 내가 알기로 자기 귀가 우주에서 제일 사랑스럽다며 자긍심을 느끼는 애야. 부모욕이랑 인격모독은 다 웃어 넘기는데 왠지 몰라도 귀를 욕하면 빡돌더라.
“그렇군요. 좀 더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으음…
배후령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너한테 라비엘 욕한 것 정도?
뭐야.
끝장이잖아.
세계를 멸망시킬 작정입니까? 여우님?
[‘영원한 평야의 군마’는 모두 흥분했다며 자제를 권합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네 말대가리를 보니 자신의 얼굴도 길쭉해질 것만 같다고 우려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는 전쟁을 준비합니다.]큰일이다.
우리에게 적대하는 세력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늘고 있다.
나는 라비엘을 욕한 사람에게 생지옥을 맛보여주는 것 이외엔 달리 취할 방법이 없었다. 꼭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우선 지옥 같은 고통부터 선사해준 다음이다.
저 성좌들도 그러겠지.
이 착각과 오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한단 말인가.
-아니. 자기 인생 즐겁자고 세계를 조작해버리는 성좌가 네 신님 성깔인데 뭐 착각하고 자시고 할 게 있어…? 넌 그럼 쟤가 다른 별탱이들을 막 존중해줄 거 같았냐? 아마 너 말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개미껌딱지로 취급하고 있을걸…?
배후령의 말은 씹자.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 돼.
“우, 우리 일단 스테이지 공략에 집중하죠. 신님.”
“삐약.”
“이야아아. 62층은 어떤 곳이려나? 마탑 같은 세력이 군림하고 있으려나? 궁금하네. 궁금해서 미칠 것 같네. 진짜 미칠 정도로 궁금하네! 그냥 미치겠네!”
나는 필사적으로 여우님의 관심을 돌리려 애썼다.
“여기도 스테이지를 관장하는 성좌가 있을 거 아닙니까? 누구려나. 이번에야말로 좀 정상적이고 친절한 별님이면 좋을 텐데. 누구일까 정말로 궁금…….”
“궁금해할 필요 없다.”
목소리가 들렸다.
“알 필요도 없을 테지.”
그 순간, 땅이 요동쳤다.
땅이 요동친 까닭은 무언가가 하늘에서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 앞에. 더 정확히는, 만일 경공술을 써서 피하지 않았더라면 내 머리가 있었을 곳에.
쿠우우우웅!
나는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조금 전까지 피신했던 곳이 다시금 박살났다. 콰앙! 콰아앙! 내가 주저 없이 몸을 날릴 때마다, 마치 날벌레를 찾아서 파리채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몇 번이나 휘둘러지는 것처럼, 벼락과 같은 일격들이 쫓아왔다.
“왕을 칭할 만큼은 되는군.”
다 합쳐서 열입곱 번, 시간으로 따지면 2초의 공방이 지나고 나자, 비로소 나를 공격한 자가 입술을 열었다.
“사왕. 네가 나의 사도를 죽인 놈이렷다.”
인간은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겼으되, 이마 양쪽에 거대한 어금니와 같은 뿔들이 달렸으니까.
감정이 담기지 않은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오만방자함. 너의 죽음으로 갚아라.”
삐꺽.
웅장한, 지나치게 크다 싶은 망치를, 성좌는 어깨에 짊어매고 있었다.
[‘폐허를 추수하는 소’가 당신을 공격합니다.]폐허를 추수하는 소.
[‘폐허를 추수하는 소’가 당신의 말살을 맹세합니다.]과거, 실비아 에비나일.
바로 금사매 영애가 신으로 모신 성좌였다.
3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