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26)
나의 칼 그림자와 무티아의 망치 바람이 어우러졌다.
우리 두 사람이 노니는 것을 사도들이 방관하진 않았다.
“어디를!”
“감히,”
“내버려둘까 보냐! 이단의 왕!”
태세를 다 정비하고 사도들은 하나, 둘, 달려들었다. 그들의 눈빛에 서린 것은 광기가 아니었다. 광신만도 아니었다.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충정.
신이 내린 축복에 보답하고자 하는 올곧음이 사도들의 눈에서 뜨겁게 불타올랐다.
“훌륭하네요.”
나는 감탄했다.
“하지만, 이미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감탄을 담아 칼을 휘둘렀다. 다섯 자루의 검은 뱀의 독니처럼 목표물을 물어뜯었다.
“——!!”
왼쪽 눈. 오른쪽 눈. 성대. 뒷덜미. 오장과 육부.
내 칼이 스친 곳마다 끔찍한 비명이 꼬리를 달고 이어졌다.
결코 참을 수 없으며, 인간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격통을 안겨주는 부위들만을 [상처 없는 고통]이 도려낸 것이다.
“아아아아악!”
그뿐이 아니었다.
“……! ……!”
나는 사도들에게 고통을 가한 부위를 기억했다. 그리고 사도들이 이빨을 바득 씹으며, 신음을 참고, 다시 덤벼올 때마다 정확히 똑같은 부위를 후려팠다. 꿰뚫은 곳을 다시 꿰뚫었으며 벤 자리를 다시 베었다.
“히윽, 욱! 아, 아—-.”
비명. 비명. 그리고 비명.
나와 무티아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일 적에 우리 둘 주변으로는 비명이 흘러 혼적하였다.
“무서우리 만치 효율적인 싸움을 하는구나.”
무티아가 평했다. 비꼼이 담긴 평가였다. 나 역시 비꼼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다굴보다 효율이 좋진 않습니다.”
“불살(不殺)을 고집하는 인간은 의외로 많지. 그러나 네놈의 전투법은 죽이지 않을 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흘린다. 어쩌면 네놈이 탑을 오르는 길 자체가 그러한 것 아니더냐.”
“인간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갸륵하군요. 금사매한테 습격당한 결혼식장 하객들한테도 그 갸륵함이 미쳤다면 좀 더 감동했을 겁니다.”
“그것들은 내 신도가 아니다.”
“끝인가요?”
“뭐라?”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노림수까지 잘 봤습니다.”
챠아아앙!
나는 무티아의 일격을 쳐냈다.
“끝입니까?”
달려들었다.
“당신이 은하수에서 손 꼽힐 정도로 빛나는 별자리라 할지언정 그 반짝임이 무(武)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무티아가 공격해왔고, 내가 비끼어 흘렸다.
“당신의 사도들이 무위를 자랑하더라도 그것은 [무상의 인체] 덕분. 상처 입지 않은 몸을 믿고 달려드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고로, 누구에게든 고통을 안길 수 있는 저의 상대는 안 됩니다.”
다섯 자루의 검을 일제히 휘몰아쳤다.
검풍.
칼들이 흑색 폭풍이 되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윽!”, “아”, “무티아, 님!” 사도들은 짤막한 비명을 토해내며 저 멀리 날아갔다. 콰앙! 수십 명이 날아가 콜로세움의 장벽, 퇴적암에 내팽개쳐졌다.
“저는 오직 마천을 칼에 담아내기 위해 수천 년을 이어온 전투 조직의 교주로.”
검압에 떠밀리고도 날아가지 않은 사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를 악 물고 버텼다. “이이익……!” 망치로 땅을 내려찍어, 그 힘으로 견디는 자도 있었다.
멋지군.
그들에겐 특별히 네 자루의 검을 휘날려 한 명씩 , 빠르게 찔러주었다.
“저의 스승은 단 한 번의 칼짓으로 설산의 영봉을 베었으며, 저의 아들이자 제자는 오직 몸 하나로 대륙을 제패했습니다. 저의 딸이자 자문사는 일격으로 대지를 가르고, 저의 가영은 단칼에 마탑의 첨탑을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더는 견디는 사도가 없더라.
[싸움을 관전하는 성좌들이 숨을 삼킵니다.] [‘외로운 구도자’가 침묵합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가 침묵합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침묵합니다.]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옥 한가운데.
나는 고고히 선 채, 땅에 떨어져 있는 별자리를 내려보았다.
“마지막으로 저는 검제의 후예입니다.”
“해서, 여쭙는 말입니다만.”
방긋.
“이제 끝입니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없으면 항복 조약을 써주세요. 기념품으로 펜은 제 걸 드리지요.”
“건방진 것!”
무티아가 어금니를 드러냈다.
“네놈의 존재부터 몰락시켜주마!”
성좌의 황금안이 불타올랐다.
[‘폐허를 추수하는 소’가 탑에 맹약을 요청합니다.] [성역 지정.]황금색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승인.] [현 시간 부로 이곳은 ‘폐허를 추수하는 소’가 소유합니다.]하늘이 붉어졌다.
[그는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자이니, 경배하여라.]“그는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자이니, 경배하여라!”
암벽에 내팽개쳐진 사도들도, 고통에 신음하며 무릎을 꿇고 있던 사도들도, 마지막 피를 토하듯이 합창했다.
“그는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자이니, 경배하여라!”
다시 한 번.
“그는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자이니, 경배하여라!”
사도들이 세 번째로 그들의 신을 칭송한 순간.
[‘폐허를 추수하는 소’가 권능을 발현합니다.]우드득.
온몸에서 뼈가 으스러졌다.
“……!”
익숙한 감각이었다. 근육과 혈도가 오러를 버티지 못해 부숴지는 고통. 나는 즉시 전신에 흐르는 오러의 양을 줄여, 이 고통에 적응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러가, 없어?’
내 혈맥에 뛰놀던 오러 또한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김 좀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너 지금 늙었어!
뭐, 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무슨 뜻입니까, 하고 반문해볼 수도 있었다. 나는 질문과 반문으로 시간을 소요하는 대신 배후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였다.
칼날에 내 얼굴을 비추어본 것이다.
“…….”
나는 입술을 열었다.
“과연.”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내 것이었지만, 어째선지 조금 낡았다.
거울처럼 투명한 칼.
“이런 것이군.”
그곳엔 초로의 노인이 있었다.
3.
머릿속에 스치는 기억은.
마치 망가져서 반복 재생되는 녹음 테이프와 같아서.
-폐허를 추수하는 소는 무티아로군요.
이단심문관은 말했었다.
-주로 관장하는 분야는 파괴와 재창조입니다.
그 말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인상적이어서 새겨진 기억이 아니라 다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여서 남아버린 기억이었다.
-단순하지만 강력하지요!
어찌하여 ‘파괴’와 ‘재창조’인가.
파괴는 간단했다. 알 수 있었다. 망치를 휘몰아치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족족 내려찍는 금사매 영애의 모습은, 말 그대로 파괴자의 현현이었다.
그러나 재창조는?
-단순하지만 강력하지요!
금사매 영애가 보여주었던 모습 중에 대체 어느 것이 ‘재창조’에 걸맞는단 말인가.
-단순하지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강력,
이 세상의 무엇이 파괴이며 동시에 재창조인지.
-하지요!
회귀(回歸).
혹은 시간 그 자체.
-주로 관장하는 분야는 파괴와 재창조입니다!
그렇다.
금사매 영애는 굳이 재창조의 편린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라비엘이 황후가 된 미래로부터 도피하여, 과거에 돌아와, 일개 남작 영애의 신분으로 황태자의 마음을 가로챈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이미] 재창조된 삶이었으니까.
“—–시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파괴하며 또한 재창조하지요.”
짧은 회상과 빠른 추론을 끝마치고.
나는 세월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고했다.
“시간을 다루는 것. 이것이 당신의 권능입니까, 무티아.”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황금의 성좌가 중얼거렸다. 이전에 비꼼이 담겼던 것과 달리 이번엔 목소리에 정말로 감탄이 섞여 있었다.
“네가 휘두르는 칼이 매섭다고는 하나 너의 머리만큼 날카롭진 않구나.”
“신도들과 사도들이 저토록 충성스러운 이유가 있었네요.”
그래.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나는 칼끝을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들은 당신에게 소원을 빈 자. 부자로 만들어달라느니, 건강하게 해달하느니, 그런 소망이 아니라, 단 하나의 염원. [과거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룬 인간들.”
“…….”
“여기 모인 모두가 회귀자입니다.”
무티아는 웃었다.
“실로 그러하다!”
성좌가 망치를 고쳐 쥐었다.
이 우주에서 가장 황금처럼 가치 있는 것. 시간(時間)을 관장하는 신은, 권능에 걸맞게도 금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나는 폐허를 추수하는 자! 아무것도 남지 않아 잔해밖에 떠돌지 아니하는 인간들에게서, 다시금 수확의 계절을 약속해주는 자! 결실을 맺게 해주는 신이니! 이단의 왕이여!”
천지는 요동친다.
“내가 바로 윤회의 지배자이자 억겁의 열쇠지기, 무티아다!”
퇴적암의 지층이 꼬리치듯 춤을 춘다.
“무릎을 꿇어라! 천것!”
[‘폐허를 추수하는 소’가 권능을 발현합니다.] [윤회 억겁(輪國德却).] [당신의 시간선이 변경됩니다.] [당신의 가능성이 고정됩니다.]“네놈의 폐허 된 자리로 돌아가라!”
세계가, 또 다른 풍경으로 물든다.
『만일 당신이 검성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걸어온 역사가 뒤흔들린다.
『만일 당신이 검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사르륵.
내 곁에서 언제나 깐죽거리던 배후령이, 검제의 모습이, 문득 사라진다.
나에게 허락되었던 행운들이 하나, 하나, 사라지고.
그저 어느 불우한 시간선의 가능성으로 대신된다.
『만일 당신이 이단심문관을 만나지 못했다면.』
『만일 당신이 독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만일 당신이 백작을 만나지 못했다면.』
『만일 당신이 성기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만일 당신이 흑룡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퇴적층이 한 겹씩 벗겨지듯.
나의 시간이 한 줄씩 지워진다.
『만일 당신이 수호의 여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사르륵.
내 손에 쥐인 성검이 사라진다.
주변을 호위하며 떠돌던 그림자들도.
『만일 당신이 겨울에 핀 모란과 만나지 못했다면.』
혈맥에 맥박치던 오러는 덧없이 가라앉고.
『만일 당신이 염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근육에 감돌던 악력마저 자취없이 사라져.
『그대로 늙어 스러졌다면.』
『만일.』
어느덧.
주위의 풍경은 초라해져 있다.
『당신이 다만, 사왕이 아니었다면.』
폐허.
잘 보면 여기는 바빌론의 할렘가였다.
화재가 나서 불태워진 것일까.
제대로 된 건물 따위는 없었다.
노인이 된 나는 주인 없는 이곳에 자리를 잡아, 이가 빠져버린 기둥들 사이에 천막을 치고, 땟자국 낀 칫솔, 누르스름한 종이컵, 구겨진 지 한참 된 담배갑, 골동품으로 취급되지도 못할 고물들을 두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마.”
하지만 주변이 아무리 초라해도 나 자신만큼 초라하진 않았다.
검을 잡은 적 없는 손.
탑을 오른 적 없는 발.
승리에 취해본 적 없는 심장.
“나에게 무릎을 꿇어라.”
쿨럭.
힘없이 기침하는 내 앞에, 황금의 성좌는 우뚝 서 있었다.
“나와 계약해라. 하여, 네가 감히 나의 아이를 죽이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라.”
“…….”
“이단의 왕이여. 왕위를 버리거라. 오만을 버려라. 시간의 권능이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너를 용서해주리라.”
“……아쉽군요.”
나는 쿨럭거리며 입꼬리를 들었다.
“무엇이 말인가? 네놈의 오만방자함이 아쉽더냐?”
“아니요…….”
삐약.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울렸다.
“당신의 권능이요.”
무티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냐면,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이겨서…….”
성좌의 발치.
그곳엔 황금색 털을 가진 새끼 여우가 한 마리, 있었다.
“처음으로 죽여본 상대가 시간이거든요.”
무티아의 두 눈이 커진 순간.
『만일 당신이 당신의 성좌를 만나지 못했……』
“미안한데.”
여우가 입을 열었다.
“그런 ‘만일’은 없어.”
째깍,
“나는 공자님의 현실을 꿈꾸기로 했거든.”
시계가 돌아갔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권능을 발현합니다.]째깍.
[우주홍황(字舌供荒).] [우주가 드넓다 하나 음악이 울리지 못할 만큼 드넓지 못하며.] [내가 작다 하여 당신의 노래를 연주하지 못할 만큼 작지 않다.] [나의 우주는 단지 당신만을 연주한다.]모래바람이 불었다.
폐허가, 폐허의 기둥이, 골동품이, 이 삶의 모든 흔적이, 흔적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모래의 사토와 시간의 사막에 쓸려 사라졌다.
무티아는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내 권능은 보잘것없지만. 공자님에 의해서 보잘것없는 고물이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공자님이 걷는 현실을 지킬 수는 있거든.”
여우님이 눈웃음을 지었다.
“꺼져, 소대가리야.”
“이 사람의 시간은 내 것이야.”
삐약.
나는 목도리처럼 내 목에 감긴 여우를 쓰다듬었다.
내 옆에는 배후령이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고, 내 손에는 성검이 여전히 쥐어져 있었으며, 나의 발은 여전히 예순두 개의 층을 밟아 본 적 있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의 심장은 여전히 승리를 위해 뛰는 심장이었다.
“자아.”
방긋.
나는 여전히 지금의 나여서 미소를 지었다.
“끝내볼까요. 무티아.”
32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