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3)
나의 죽음은. (1)
=========================
1.
그래. 다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이곳에 ‘돌아왔다’고 말하게 되었다.
의식이 떨어진 구덩이. 명계(冥界).
나의 지옥.
사람들은 나를 패배자라 불렀다. 나는 패배자가 맞았다. 그런 내게 기회를 준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염제라는 이름의 불길에 휩싸여서 타 죽었을 때, 나는 탑이 선물한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왜?
[스킬 카드를 형성합니다.]왜 탑은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었을까?
그건 ‘어째서 유수하 같은 사이코패스한테 그런 힘을 허락했는가’라는 질문과 똑같았다. 왜? 나처럼 보잘것없이 커뮤니티나 뒤적거리며 질투심에 불타오르던 인간한테, 왜 이런 기회를 선물했는가.
-스킬 뭐뭐 있는지 다 봤다.
배후령이 말했다.
-지금부터 읽어주랴?
‘예. 부탁해요.’
-오케이!
아마도 탑은 아쉬웠던 거 아닐까.
배후령이 읊어주는 스킬들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탑은 헌터들이 보여준 태도에 실망한 것 아니겠냐고.
+
[원한은 비처럼 흐르고]
랭크: S-
효과: 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눈이 멀어버린 자들이지.’ 그렇습니다. ‘무지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보여주십시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저들의 무지 속에서 죽어나갔는지 적나라하게 보이십시오. 이 세계에 무고히 흐른 피만큼, 하늘은 기꺼이 붉은 비를 내려줄 것입니다.
※단, 당신이 직접 목격한 핏물만 비가 되어 내립니다.
+
염제 유수하는 틀림없이 10층 스테이지를 깨부쉈다.
클리어했다는 의미에서 깨부쉈다는 게 아니다. 인형들이 지닌 원한. 원성. 원망.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말 그대로 깨부쉈을 것이다.
탑에서는 그것을 아쉽게 여기지 않았을까?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다음 스킬은 뭐예요?’
-이거다.
배후령이 말했다.
+
[심장은 메아리쳐 우짖는다]
랭크: A+
효과: 당신의 감정을 연료로 삼아 오러를 강화합니다. 강한 감정을 가질수록 오러가 반응합니다. 복수심. 증오. 슬픔. 희로애락.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습니다. 불길은 장작을 가리지 않고 타오를 것입니다.
※단, 당신은 점점 더 그 감정에 중독됩니다.
+
‘······.’
나는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
그렇다. 분명히 탑은 실망했을 것이다.
‘모든 층에는 히든 퀘스트가 있다.’
불지옥 저택에 인형들을 위로하는 퀘스트가 있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12층에도 히든 퀘스트가 숨어 있을지 몰랐다.
그것을 알아내고 싶어서라도, 나는 배후령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
[백귀소환(百鬼召喚)]
랭크: SS
효과: 당신이 직접 죽인 자들을 몬스터로 소환합니다. 사자(死者)는 생전의 능력을 계승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계승하지도 않습니다. 고블린이나 오크, 좀비, 스켈레톤 등, 몬스터로 소환될 뿐입니다.
※단, 일주일에 1번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이것 외에도 자잘한 스킬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의 마음에 밟힌 것은 저 세 가지 스킬이었다.
‘···좋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다.’
어떤 스킬을 고를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12층을, 아니.
20층까지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것인지.
‘저는 이거로 할게요.’
-엉?
내 선택이 의외로 여겨진 걸까.
배후령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그거로 하게?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요. 적어도 20층까지 클리어하는 데엔 이게 최고일 거예요.’
-글쎄다···. 아니, 뭐. 네 마음대로 해봐라. 뭔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또 잔머리나 굴리겠지.
‘기대하십쇼.’
카드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참, 하고 말했다.
‘검제 양반. 댁, 검성의 일과에 대해 빠삭하죠?’
-엉? 그야 알고는 있지. 마르쿠스 할아범은 새벽에서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스케줄이 딱딱 정해져 있걸랑. 완전 할범이야.
‘저녁 스케줄 좀 알려주세요. 써먹을 데가 있습니다.’
-그러지 뭐.
나는 카드를 붙잡았다.
어두운 공간에 목소리가 울렸다.
[선택 완료. 스킬을 복사합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그리하여 나는 하루 전으로 돌아갔다.
[현재 당신의 헌터 랭크는 D급입니다.] [스킬로 인한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합니다.]물론 페널티가 있었다.
이른바 가을비의 마왕이라는 자의 트라우마를 보게 되었지만···.
지금은 우선 12층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때.
우리.
그 악몽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얘기하자.
2.
배후령은 내게 1초의 삶을 가르쳐주었다.
본래 사람이란 불과 일초를 제대로 살기조차 어렵다고.
정말로 그렇다는 걸, 이번에 절실히 실감하였다.
“—벌써 가려고?”
카페.
마녀가 의자에 앉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마녀만이 아니었다. 거대 길드의 우두머리들이 제각기 다양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12층에서 마왕의 일격을 맞아 사망했던 백작도, 섭선을 부치며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1층 도시의 카페.
내가 길드장들과 협약을 맺은 장소.
그곳으로 나는 돌아온 것이다.
‘하루.’
새삼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장대한지 깨달았다.
아찔했다.
하루 동안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11층을 클리어했으며, 12층에서 마왕과 맞서 싸웠다. 그런데, 맙소사. 전부 하루도 안 되어서 벌어진 일이라니.
“···예. 조금 있으면 11층 열리잖아요.”
나는 조금 목이 막혔다.
기침으로 막힌 목을 풀어내고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11층이 어떤 지역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준비하려고?”
“······.”
11층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마왕이 개입하는 12층부터다.
그곳에서 당신들은 분열한다.
누군가가 배신하고 그 배신으로 말미암아 쪼개어진다.
죽는 사람마저 생긴다.
“···김공자?”
마녀가 눈썹을 좁혔다.
“괜찮아? 갑자기 표정이 이상해졌어. 속이라도 아픈 거니?”
“음. 괜찮습니다. 그냥, 다들 길드도 이끌고 대단한 분들인데 이런 자리에 제가 있다니까 쫌 울컥했네요. 격세지감이 느껴졌달까요.”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배후령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쨌든, 예. 맞아요. 여러분. 저는 11층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1층의 퀘스트 내용까지 알고 있죠.”
“······!”
길드장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보는 생명만큼이나 중요했다. 나는 그들한테 이렇게 말해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당신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의 힌트를 알고 있다고. 안색이 달라질 만도 하지.
“10층을 클리어하니까 보상으로 정보를 주더라고요.”
“···그걸 굳이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히는 이유는.”
마녀가 입술을 열었다.
“우리한테도 정보를 공유할 의사가 있다는 거로 해석해도 좋을까?”
“물론이죠.”
내가 검지를 들었다.
“단, 조건이 있어요.”
“말해봐. 기쁜 마음으로 경청할게.”
“제가 언젠가 [부탁]을 드리면 꼭 한 번만 들어주십쇼.”
나는 테이블에 둘러앉은 헌터들을 한명한명 바라보았다. 헌터들은 내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부탁. 쉬우면서도 무거운 말이었다.
“어떤 부탁인데?”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
“하지만, 이건 여기서도 맹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숨을 위협하게 될 부탁은 절대 아닙니다. 돈을 달라는 부탁도 아니고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뺏어달라고도 부탁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불가능한 부탁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그때 가서 거절하셔도 돼요.”
“으음.”
이단심문관이 턱을 쓰다듬었다.
오른손.
지난번 회차에선 검성의 칼에 날아가서 없어졌던 손으로.
“제 귀에는 온당하게 들리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극히 조건이 좋습니다! 아핫. 정보가 있으면 미리 대처할 수 있고, 미리 대처할 수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흐음. 우리에게 거부권이 있다면야··· 본인도 찬성일세.”
이단심문관이 동의하고 백작이 동조했다.
나머지 헌터들도 차례차례 고민을 끝낸 다음, 내 조건에 응하겠노라고 약속해주었다.
‘오케이.’
1단계 클리어.
“그럼 말씀드리죠. 11층부터 20층까지는 아아김 제국이라 불리는 이세계가 무대입니다. 그곳은 마왕의 침략을 받고 있는데, 11층은 보급로를 두고 싸우는 전쟁터···.”
카페에 내 목소리가 조곤조곤 흘렀다.
11층에 대한 정보를 다 듣자 길드장들이 수군거렸다.
“···과연. 10층까지는 튜토리얼. 11층부터 대규모 싸움에도 끼어들게 된다는 얘기구나.”
“천금에 값하는 정보로군.”
“예! 싸움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겠습니다!”
“길드원들한테도 어느 정도 정보를 흘려둬야겠구먼. 어휴. 하지만 우리 상련 애들은 싸움엔 영 소질이 없어서···.”
헌터들이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로 11층 스테이지도 훨씬 편하게 클리어할 수 있다.’
벌써 바뀌고 있다.
이전 회차와 달리 이미 이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성기사님.”
“음?”
성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3잔째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마시고 있었다.
“왜 부르는가?”
“성기사님은 자경단의 부단장이시죠. 저랑 좀 바깥에서 걷지 않으실래요? 잠깐 산책하면서 상담 드릴 일이 있어서요.”
“흐음.”
성기사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도 곧 일어설 생각이었다. 산책이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
“별로 안 걸려요. 30분 정도면 충분하거든요.
“그럼 나도 괜찮다.”
성기사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기꺼이 데이트 요청에 응하도록 하지.”
3.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도시.
광장에서도, 분수 옆 벤치에서도, 야외 레스토랑에서도 헌터들은 10층 이야기를 떠들었다.
“아직 발표가 없는 걸 보면 무명의 신인이 클리어한 거라니까!”
“설마 그러겠냐? 그냥 상위 길드들끼리 뭘 조율하고 있는 거겠지.”
“진짜 누가 공략한 걸까···.”
“나도 스테이지 클리어하고 싶다.”
웅성웅성.
내일이 삭제되어버린 이들에게 10층 클리어는 바로 조금 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나 혼자 삭제되지 않은 채 시간을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야, 좀비야.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었다.
-따라온다. 따라와.
내게는 배후령이 붙어 있으니까.
‘확실해요?’
-확실해. 그렇다고 돌아보진 말고.
12층을 안전하게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거대 길드의 우두머리들이 협력해주는 것.
다른 하나는··· 바로 검성이 나를 적대하지 않는 것이다.
‘12층에 가서 검성의 오해를 풀면 이미 늦어.’
저번 회차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탑을 오르기 전에 미리 오해를 풀어야 한다.’
검성은 길드장들과 사이가 매우 나쁘다.
나한테 칼을 들이밀면, 자동으로 길드장들과도 척을 지게 된다. 안 그래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여기에 배신자라는 폭탄까지 떨어진다?
파탄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지.
-와, 감쪽같네. 미행하는 솜씨 좀 보소. 좀비 너는 아마 뒤돌아서 봐도 눈치채지 못할 거다. 마르쿠스 할아범한테는 은신 계열 스킬도 있거든.
‘알겠으니까 잘 따라오는지만 체크해주세요.’
그래서 나는 현재 검성을 [낚시]하고 있었다.
배후령한테 검성의 일과에 대해 듣고, 그 스케줄에 맞추어서 일부러 검성의 눈에 띄었다. 검성은 단골인 야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다가 나를 발견. 식사하던 걸 멈추고 곧바로 날 미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김공자여. 우린 어디로 가는 건가?”
내 옆에서 걷는 성기사는 그걸 모른다.
“이쪽 골목으로 들어가도 좀 어두침침한 동네밖에 없다만···.”
“성기사님한테 소개해드리고 싶은 가게가 한군데 있어요.”
“가게?”
“예. 이름 없는 약제사가 운영하는 가게인데요. 여기 실력이 진짜 좋습니다. 이름값만 좀 알려지면 금방 대박칠 텐데, 그게 안 되어서 지지부진하고 있어요. 성기사님이 한번 보시고 괜찮다 싶으면 장사 좀 도와주시죠.”
“으으음···.”
성기사가 나란히 걸으면서 내 안색을 살피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거짓말 탐지기 스킬을 발동했군.’
성기사가 입을 열었다.
“방금 한 말이 정말인가?”
“예. 당연하죠. 제가 왜 성기사님한테 거짓말해요.”
정말로 약제사의 가게도 소개해줄 거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노파심이 들어서 물어보는 얘기지만,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는 것은 아닌가?”
“저는 성기사님한테 도움을 받으려는 겁니다. 위험한 일이 생겨도 제 목숨이 위험해지지, 성기사님이 위험해지진 않을걸요. 믿어보십쇼.”
“흐음.”
성기사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전부 진실로 판명났을 거다.
“미안하다.”
성기사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의심병이 심하다는 소리를 원래 자주 듣는다. 계속 가지.”
오케이. 통과.
우리는 골목길을 지나서 무사히 약제사의 가게에 도착했다. 마침 약제사는 가게에 새로운 기계를 들였는지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보고 약제사는 처음엔 머리를 갸웃거렸다가, 내 얼굴을 알아보곤 환하게 웃었다.
“아! 손님!”
“지금도 영업 하세요, 사장님?”
“아하하. 영업 시간은 끝났지만 손님한테는 언제든지 가게를 오픈해야죠! 제 첫 단골손님이신데요. 읏차!”
약제사가 짐을 내려놓았다.
며칠 전만 해도 머리랑 옷이 꾀죄죄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환골탈태한 수준. 미용실도 다녀오고 옷도 새로 샀는지, 이제 비로소 번듯한 가게 주인이라는 느낌이 풍겼다.
“후우. 아, 죄송해요. 손님. 여기 계신 분은···?”
“이분은 자경단에서 부길드장을 맡고 계신 헌터예요. 들어보셨죠? 이명은 성기사라 하는데.”
“···예?”
약제사의 눈이 안경알 너머에서 흔들렸다.
“자, 자경단의 부길드장이요!?”
“옙.”
“까마득하게 높으신 분이잖아요!”
역시 일반 헌터들 입장에선 이런 반응이 정상이지.
“자, 자경단 부단장이신 분께서 저희 누추한 가게엔 어쩐 일로··· 힉! 마약!? 마약 단속인가요!? 저, 저는 마약 제조 안 했어요! 이런 골목에서 영업하고 있지만 마약만은, 아뇨, 마약만이 아니라 나쁜 약은 절대로, 단 1그램도 제조하지 않았습니다!”
“······.”
“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계속 양심적으로 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조사만은 봐주세요!”
약제사가 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이건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음···.”
성기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 탐지기]에 의하면 저 말도 모두 진실일 테니까. 눈앞의 약제사를 별난 또라이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양심적인 장사꾼으로 여겨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자아, 자아. 사장님. 걱정하지 마시고요.”
툭툭.
내가 약제사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제가 여기 온 건 사장님을 자경단한테 꼰질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사장님이 얼마나 솜씨가 좋고 마음이 맑으신데.”
“그럼요···?”
“사장님 솜씨에 비해 가게는 너무 장사가 안 되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여기 부단장님한테 사장님 소개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약제사가 고개를 들어 입을 멍하게 벌렸다.
“소, 소개라면···?”
“말 그대로 소개죠. 부단장님한테 시험해보시라고 포션 종류별로 줘보십쇼. 혹시 몰라요? 약효가 괜찮다 싶으면 사장님이랑 전속 계약을 맺어주실지.”
“······.”
“자경단에 포션 납품하게 되면 사장님도 훨씬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약제사가 눈을 깜빡였다.
내 말을 이해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잠시 뒤, 그녀가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처, 천사님···!”
천사님이 아니라 공자님이다.
“가게가 팔릴 뻔한 것도 도와주시고, 완전 큰 주문도 해주시고, 어. 어. 이, 이제는 판매 통로까지··· 손님은 천사님이신가요···.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지요···?”
그렇게 훗날 연금성주로 불리게 될 가게주인이 눈을 빛낸 순간.
뚜벅.
조용한 골목에 누군가가 발걸음을 들였다. 발소리가 유독 무거웠기에, 나를 포함해서 성기사와 약제사까지 모두 고개를 돌려 보았다.
“-거기.”
발소리의 주인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쪽 남자만 남기고 모두 자리를 비켜주게나.”
그리고 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검성.
아직 나를 믿어주지 않는, 이번 회차의 노인이었다.
노연의 검사가 흘리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골목을 울렸다.
“이 노인은 저 사람과 단둘이서 조용히 말을 나누고 싶다네.”
좋다.
2단계 조건을 클리어할 시간이다.
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