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33)
“미천한 것이!”
히시미트 크리츠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성좌는 더 이상 파트리시아의 인형만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유리창 너머에서 수백수천 체의 인형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네놈이 무력으로 나를 무너뜨린들 어디 내 존재가 옅어질 것 같더냐!”
수천 명의 일갈은 그 자체만으로 하늘이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었다.
“나는 모든 비밀의 주인이다! 내가 네놈에게 문제를 내렸으며 네놈은 나의 문제를 받아들였다! 결투다. 이것 또한 결투다. 알고 있느냐! 네 알량한 칼날이 유리창을 깨부수고 땅을 찢은들 문제는 조금도 풀리지 아니한 것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따윈 인정되지 않는다! 절대로! 두고 보거라, 심판자는 결국 내 승리를 선언할……!”
“난 알렉산더가 아니야.”
나는 칼자루를 틀었다.
“제대로 답을 가지고 이러는 거다.”
이미 땅바닥에 깊숙이 파고든 칼날이, 콰즈즈즉! 격렬한 굉음을 내며 비틀렸다. 쩌저적! 검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금이 벌어졌다. 나의 칼이 일도를 비틀면 거미줄은 일리 너머로 번졌다.
순식간이었다.
“다, 답이라니. 무슨 소리……, 그만! 그만두어라! 네놈은 지금 무력이 아니라 폭력을 쓰고 있다! 폭력이란 건, 곧, 폭행이다! 알고 있는 것이냐! 폭행이라고! 네놈!”
“그래. 계속 버틸 셈이라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답을 말해주마.”
유리궁전의 세계에서 히시미트 크리츠의 본체를 찾아라.
이것이 63번째 스테이지에서 내게 내려진 과제였다.
그리고 나는 과제를 듣자마자, 아니, 듣기도 전에, 오직 두 가지만 신경 썼다.
“하늘 아니면 땅이라고 생각했어. 처음부터.”
“……뭐…….”
“이 인형들은 모두 당신이 조종하고 있지. 무슨 뜻이냐면, 간단해. 내가 저 인형한테 죽임을 당하는 순간 히시미트 크리츠. 당신의 트라우마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입끝을 들어올렸다.
“그게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거고. 안 그래?”
“모든 비밀을 다스린다 자칭하며, 미궁과 미로에 정통했다는 성좌가 너다. 트라우마 페널티를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하지. 무슨 수를 썼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의 트라우마는 지독하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궁인 것]이 틀림없어.”
“……이이잇! 이이이익!”
그렇다.
인형들은 모두 미끼에 불과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세계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무수한 인형들 가운데, 히시미트 크리츠의 본체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내가 가진 ‘비상식’의 스킬, [회귀자의 태엽시계]를 사용할 경우에만, 본체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로 들어가서 히시미트 크리츠의 과거를 보게 된다면, 자연히 그 성좌에 대해서 알게 될 테며, 그 성좌의 습관과 습성을 파악하게 되어 어디에 자기 자신을 숨기는지 또한, 자연히 깨우칠 거니까.
“안 되었군.”
그러므로 이 스테이지에서 [트라우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자 유일한 열쇠이며.
“당신이 가장 자신있는 영역에서 싸움을 걸 정도로, 난 어리석지 않아!”
그러기에 제일 위험한 [함정]이다.
“인형은 전부 미끼다! 당신이 파트리시아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나를 부추긴 건, 나의 감정이 격해져, 얼른 가장 손쉬운 지름길로 빠지도록 유혹하기 위한 거다! 만약 내가 61층에서 여우님과 만나지 않았다면, 세 겹의 꿈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트라우마의 위험성을 간과 했을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이미 ‘성좌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고 있었다.
라비엘의 반생과 스승님의 반생을 살지 않았던가.
그 교훈을 잊어버리기엔, 61층과 63층의 간격은 너무도 짧았다.
“타이밍이 안 좋다고! 뱀신!”
콰지지직!
땅에 새겨진 균열은 점점 더 넓어졌다. 쯔즈즉! 틈이 벌어져 틈바귀가 됐고, 틈바귀가 쪼개져서 틈새가 열렸다. 한뼘만 더 벌어지면 무저갱의 균열이었고, 한순간만 더 지나면 협곡의 낭떠러지였다. 쿠우웅, 지진과 같은 진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멍청했지!”
“그만하라는 말을 못 들은 것이냐! 네놈! 이놈! 제아무리 인간이란 족속이 인간의 말도 알아먹지 못하는 천것이라곤 하여도, 별자리의 고언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내 말을 듣거라!”
“모든 인형을 조종해서 입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니! 어디에 있든 간에, 어떤 인형이든 간에, 전부 마음껏 부리다니. 그건—- 네놈이, 모든 인형이 내려다보이는 [위쪽]에 있거나, 모든 인형을 떠받치는 [아래쪽]에 있다는 얘기잖냐!”
“내 말을 좀 들어라!”
“네가 낸 수수께끼의 정답을 말해주마!”
대지가 갈라졌다.
“유리궁전에 세워진 이 대지 그 자체가 바로 너의 본체다!”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전시장들이 챠창, 요란히도 깨졌다.
“이 세계의 땅은 너의 가죽! 아니, 껍질이다!”
지진이 거세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미궁에 떨어진 직후 확인했던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땅바닥은.」
「나무 재질 .」
「뱀의 비늘과 같은 문양이 소용돌이치는 나무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수수께끼에는 힌트가 주어진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문양이 하필이면 뱀 비늘을 닮았다는 건, 단순히 [뱀신의 세계다운 인테리어]라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세계만큼 거대한 뱀이 탈피해놓은, 옛 껍질]이라 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의 정답을 인정해라! 미궁의 성좌!”
틈새가 벌어지며 낭떠러지 속으로, 땅이 꺼졌다.
전시장 안에 진열되어 있던 인형들 역시 떨어졌다.
수조, 새하얀 유리조각들은 꽃잎처럼 낙화했고.
수억, 목각의 인형들은 나뭇가지처럼 낙하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너의 비밀을 폭로한다!”
“크윽……!”
이명, 미궁에 거하는 눈.
진명, 히시미트 크리츠.
그리고 그 정체는.
“[나는 이곳에 있다!]”
요르문간드(Jormungand).
세계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하여, 마침내 세상의 테두리를 다 감싸안아 자신의 아가리로 자신의 꼬리를 무는 괴물.
하나의 세계를 이룬 뱀.
“이 결투의 승자는 나다!”
“크윽……!”
이윽고 땅이 무너졌다.
땅이라고 착각할 만큼 광활하며 두꺼운, 옛 껍질이.
허물이 찢어졌다.
“네, 놈……!”
허물이 찢어진 아래에는 끝 없는 어둠만이 있었다.
그곳은 심해(深海)였으나 물이 아니어서 수영할 수 없었다.
그곳은 우주였으나 물리법칙이 통용되지 아니하여, 끝없이, 다만 밑바닥을 모른 채로, 영원히 감추어졌고 영원히 감추어질 달걀의 껍질 속이었다.
“네놈! 네놈! 네놈, 사왕! 네놈이! 감히!”
그곳에 한 마리의 뱀이 있었다.
“감히 나, 히시미트 크리츠를!”
그 뱀은 심해를 모조리 휘감고 있었으며, 우주를 전부 뒤덮고 있었다. 쩌어억! 뱀이 아가리를 벌리면 그곳에 곧 지옥과 같은 무저갱이 벌어졌다.
오직 두 눈동자.
[‘미궁에 거하는 눈’이 현현합니다.]새빨간 적의로 빛나는 두 알의 역안(逆眼)만이 이 심해를 밝히는 불.
자신이 옛날에 벗어놓은 껍질 안에서, 만들어놓은 외피를 외벽으로 삼아, 자신의 시선 이외엔 어떠한 조명도 허락하지 않은 이 원형의 세계야말로, 아마 가장 심원한 궁전일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미궁(迷官)에 거하는 눈.
누구든 이 궁전을 마음속에 지어놓을 수 있다. 누구라도 옥좌에 군림하는 단 한 명의 왕이 될 수 있다. 거대한 요물은, 자신이 왕이 되고 자신만을 다스리는 세계, 그리하여 아무도 다스리지 못하는 궁궐에 똬리를 뜬 채, 늙은 폭군처럼 울부짖었다.
“하무스트라에게 꼬리를 쳐 출세한 인간 주제에!”
크기가 가늠조차 안 되는 뱀의 꼬리가 나를 후려쳤다.
아마, 실제로도 크기가 없을 것이다.
이곳은 히시미트 크리츠의 심처(深處)이자 심처(心處). 말 그대로 마음의 거처였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이 거대하며, 존재하는 것 또한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은, 이 까마득한 심해는, 공포스러운 위용이라기보다 베어서 갈라야 할 심지에 불과했다.
“아하!”
따라서 베었다.
“가볍군! 가벼워! 하늘 아래에서 단 일점조차 차지하지 못할 만큼 작았던 독사(毒能)의 손짓이, 네 꼬리짓보다 천 배는 더 무거웠다!”
내 일검에 요르문간드의 꼬리가 잘려나갔다. 피가 뿌려졌고, 세계를 물들일 만큼 무한한 붉은색이 흩뿌려져, 비록 찰나에 지나지 않았으나 심해엔 검붉은 노을이 비쳤다.
“———-!”
비명은 핏빛 물결에 붉음을 더했다.
“삐약.”
타이밍 좋게도, 내 목을 감싼 여우님이 작게 울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퀘스트를 부여합니다.]낙하해서 떨어지는 나와 밑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는 요르문간드 사이로, 모래알들이 글자를 이루었다.
+
[허물의 신]난이도: S-
임무 목표: 63층을 지배하는 자 [미궁에 거하는 눈] 히시미트 크리츠를 격퇴하십시오. 히시미트 크리츠는 당신의 동료를 폭로했고, 당신의 명예를 모욕했습니다.
※단, 히시미트 크리츠에게 단 한 번이라도 죽을 경우, 당신은 패배합니다.
+
“이래서! 성좌를 모시면 편하다는 거네요!”
“빠야악.”
“이 편리한 걸 왜 여태까지 무시하고 살았나 몰라!”
촤아아악-.
나는 계속해서 뱀의 공격을 갈랐다. 피하지 않았다. 히시미트 크리츠가 끊임없이 몸통을 흔들어 타격해와도, 송곳니로 물어뜯어도, 아가리에서 독을 내뿜어도, 단 한뼘도 피하지 않고 전부 맞받아쳤다.
“크읍, ……이익! 익! 크아아아악!”
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핏물이 터졌다.
심해의 어둠은 붉은 노을을 받아들였다.
“아아아악, 아아, 아아아아아아!!”
자기 완결되었을 터인 세계에 아아아아아, 메아리가 쳤다.
비명이 겹치고 겹쳤다.
끊임없이, 마치 바닷가 절벽에 몰아치는 파도처럼.
[‘미궁에 거하는 눈’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바다를 둘러싼 해안의 바위를 파도가 깎아내듯.
쩌저저적. 쩌억!
뱀의 비명은, 그 뱀을 둘러싸고 있는 달걀 껍질에 조금씩 균열을 냈다.
“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마음을 담기에 충분히 넓은 세계였으나 자신의 비명을 견디기엔 너무나도 얄팍한 세계였으므로.
결국 모든 궁전이란 파괴가 예정된 집이다.
[‘미궁에 거하는 눈’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모든 왕조가 멸망이 예고된 연호(年號)를 찍어낸 것과 다름없이.
[‘미궁에 거하는 눈’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히시미트 크리츠라는 이름의 폭군이 세운, 미궁에 거하는 눈이라는 왕국의, 인형들의 몸으로 벽을 두르고 인간들의 비밀로 기둥을 세운 구중궁궐은 오늘 이 순간, 끝을 고한다.
“……우……, 흑. 으윽…….”
뱀의 신음이 나직하게 흘렀다.
“전부……. 다, 폭로할 것이다. 전부…….”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밑을 거부한 심해가 아니었다.
상처처럼 갈라진 균열들 사이로 빛이 새었다.
그늘보다 음산한 빛에 쪼이며, 요르문간드는, 이미 그저 조금 거대할 뿐인 뱀의 크기로 졸아들었다.
“나를 공격하면, 더 공격하면, 네놈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네가 사는 세계뿐만 아니라! 네 동료들은 물론이고, 아들도, 딸도, 그뿐만이 아니고…… 내 신앙이 미치는 모든 곳에! 모든 세계에! 그렇다, 탑 전체에! 모조리 폭로해버릴 것이노라!”
“…….”
“내, 내가 상처입는 그 순간이 바로 네가 몰락하는 날이기도 하다. 알겠느냐? 알고 있겠지? 네가 거둔 성공은 전부 회귀의 덕이라고 깔보아질 거다. 네놈의, 네놈이 흘린 피는 모조리 평가절하 당하여서. 아무도 너를 존경하지 않게 되고, 그럴 줄 알았다는 양. 너의 피. 너의 시간. 너의 헌신. 모든 것이 모조리, 마치, 없었던 것처럼 여겨져서.”
“…….”
“알고 있는 게냐!”
뱀은 참으로 작았다
상처를 내는 것만이 할 줄 아는 짓이라면.
“정말로, 네놈, 나의 권능을 주지하고 있는 것이더냐!”
길에 나뒹구는 돌, 어쩌다 거기 놓인 칼날.
쇠붙이.
그것과 아무런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해.”
내가 입을 상처는 그래도 여전히 상처이겠지만.
당신 역시 한낱 쇠인 채로 영원히 쇠이리라.
“나에게는 라비엘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우가 있습니다. 제가 파트리시아의 비밀을 알고서도 곁에 있는 것처럼 파트리시아도 제 비밀을 알고 나서도 계속 제 곁에 있어줄 거예요.”
“…….”
“당신이 이곳에서 영원을 놀이할 동안 저는, 피를 흘려가며 사람을 얻었어요.”
적은 피가 아니었다.
묽은 피 또한, 아니었다.
붉지 않은 피는 없었다.
“히시미트 크리츠.”
“으으…… 으…….”
“당신을 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순간, 뱀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그,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네 비밀을 지켜주마! 네가 회귀 스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야말로 누구도,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나의 비밀의 권능으로! 영원히! 나의 알껍질 속 깊이 숨겨주겠다! 어떠냐!? 이 정도면 너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높이 들어 올렸다.
“그,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냐!? 이런, 네놈, 아니, 그대여! 하무스트라의 신역에 들어갔을 적에 그대, 사신의 가호를 쓰지 않았더냐!? 어떻더냐!? 좋았지!? 편리했지!? 그것을, 그 권능을 만약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겠느냐!? 응!? 어떻겠냐고!”
끝까지 들어 올렸다.
“그것만이 아니다! 내 삶은 내 몸만큼이나 길었다! 내가 가진 권능도 그만큼이나 깊다! 더 많은 권능을 줄 수 있다! 있단 말이다! 내가! 바로 이 히시미트 크리츠가 말이다!”
잠시 멈추었다가,
“이야기! 이야기를 하자! 사람은! 지성을 가진 자들은 팔이 아닌 말로 어울리는 법일지니, 자! 합의하자! 대화하자꾸나! 현명하게 이 사태를 해결해 나가자고, 그러니, 아, 이 자식아, 어린 별! 아니 큰 별! 공자님! 진짜 잠깐만 내 말 좀……!!”
그대로 휘둘렀다.
다음 순간,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세계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3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