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34)
1.
하나의 성좌를 베어버린 직후.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겠다.
이런 얘기를 꺼내도 좋을 타이밍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한테는 내 마음대로 말을 지껄일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아주 옛날 옛적에, 그때는 공룡이 살아 있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담배 장사가 제법 쏠쏠했다는데 , 어쨌든 그런 시절에는 문방구 앞마다 100원짜리 뽑기 기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 뽑기는 아이들을 열광시켰단다.
물론 나는 그 시절 태어나지조차 않았다. 그래서 뽑기 열풍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
다만, 내 윗 세대 선배들이 그 뽑기에 홀린 것이 아닌지, 그래서 좀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공룡이 좀 멸종했을 무렵 그렇게 핸드폰에서 뽑기를 해댔던 게 아닐지, 그런 지극히 합리적인 수준의 의심만은, 멀리 흘러가버린 유년시절에서도 가지고 있었다.
왜 갑자기 뽑기 이야기냐고?
물론 완벽하게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미궁에 거하는 눈’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내가 거대한 구렁이의 몸을 일직선으로 참한 순간.
“끼에엑!!”
뱀의 몸퉁이 사이에서. 즉, 왼편 오른편으로 분절된 뱀의 몸통 안쪽에서, 매우 작은 뱀이. 거의 지렁이랑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미물(微物)이, 뽀각!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것이다.
“…….”
음.
거대한 뱀을 갈랐더니 그보다 훨씬 작은 뱀이 튀어나왔다.
바로 이 순간, 나는 똑딱 열어젖혔더니 그 안의 장난감이 튀어나왔다는 뽑기를 떠올렸던 것이다.
뭐? 왜?
그냥 그렇다고.
[‘미궁에 거하는 눈’이 현현합니다.]구렁이의 시체에서 기어 나온 뱀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였다. 계속 지렁이랑 비교해서 미안한데 사실 좀 큰 지렁이한테도 삥 뜯기고 살 것 같았다.
다만 파도의 물결을 닮은 비늘.
뚜렷한 역안(逆眼)이 저 좁쌀만한 몸에서도 강렬하게 색을 발하고 있었다.
“으으음…….”.
결국 나는 합리적인 추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당신이…… 히시미트 크리츠의 본체입니까?”
“끼에에에에-!!”
지렁이 크기의 뱀이 서글프게 울었다.
[‘미궁에 거하는 뱀’이 분통하여 울음을 감추지 못합니다.]뱀은 허리를 굽히면서, 상체로 내 손바닥을 연거푸 때리면서, 아마 자기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한도의 [억울함]을 표출해보려 시도하는 듯했다.
만일 이 광경을 나 혼자 보았더라면 좀 불쌍하다는 감정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게 뭐야? 진짜? 진짜 이 실지렁이가 [미궁에 거하는 눈]이라고? 대박.”
그러나 내 목에는 성좌로부터 어그로를 끄는 데에는 타고난 여우님이 꼬리를 말고 앉아 있었다.
“어떡하냐, 얘? 응? 어떡해요? 이 모습으로 신도들 앞에 나가서 [내가 바로 모든 비밀을 다스리는 성좌! 미궁에 거하는 눈이다!] 하고 소리치면 신앙이 모이기는 커녕 지금껏 모였던 신앙심도 아주 그냥 산새처럼 파다닥 날아가버리겠네?”
“이 놈이…!”
“이 놈? 이 놈이라고? 이거 아직 정신을 못차렸구만! 아마 얼른 사도들 불러다가 이 신님 몸보신 좀 전문적으로 해보라고 명령해줘야겠어요. 아, 사도들 부르는 방법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텐데? 으음? 우으음? 이쪽을 누르면 경계경보 태세가 나오면서 통신이 열리던가……?”
“이 님이…!”
내 손바닥 위에서 실뱀이 눈물을 똑똑 흘렸다.
좀 많이 분해 보였다.
“신도들한테 이 모습을 폭로하지 말아다오……, 제바알! 부탁, 이니라!”
“흐음.”
나는 볼을 긁적였다.
-야, 김좀비.
그러는 사이, 배후령이 나직하게 말했다.
-흥분 좀 가라앉혀.
‘제가 뭘 흥분했다고 그러세요? 평상시랑 똑같구만.’
-똑같긴, 뭘. 너 친구가 모욕당하니까 열이 확 뻗친 거 아니냐. 나를 속이느니 귀신을 속여라. 내가 귀신이다만.
배후령이 한숨을 쉬었다.
-나 참. 잘 보면 얘만큼 감정적인 새끼가 없어요. 사실. 그걸 다른 사람들은 몰라. 앤 그냥 감정에 살고 감정에 죽는 놈인데, 에휴.
“…….”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배후령의 만담은 효과가 있었다.
아주 많았다.
“음.”
나는 손수건을 한 차례 어루만졌다.
방금 싸움을 겪으면서 고양되었던 감정이, 복수심이, 이런저런 불길들이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 무렵엔 완전히 평상심이 돌아왔다.
‘고맙습니다. 진정됐습니다.’
-그랴.
‘예. 이제 저는 됐고, 흐음. 어디 보자.’
[‘영원한 평야의 군마’가 이 광경을 엿보고 파안대소합니다!] [‘외로운 구도자’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며 책상을 퍽퍽 칩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이 이렇게 웃어본 적은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웃습니다.]먼저 저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실례지만 이제부턴 오직 히시미트 크리츠와 저,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스테이지 공략 방법 등등,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말들도 오갈 수 있습니다. 여러 성좌님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는 건 매우 감사드릴 일입니다만,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 주시는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성좌들은 내 예의바른 부탁에 바로 수긍해주었다.
[‘영원한 평야의 군마’가 물러섭니다.] [‘사랑과 정욕의 화신’은 물러나면서 꼭 저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외로운 구도자’는 아무리 해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 채로 사라집니다.]좋아.
부외자는 정리했다.
이제 정말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차례다.
“히시미트 크리츠 씨.”
나는 감정이 일절 담기지 않는 목소리로, 내 손바닥의 작은 뱀을 향하여, 예의를 다해, 머리를 숙일 수 있었다.
그러자 뱀도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아마 실뱀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다면 그건 머쓱함일 것이다.
실뱀이 말했다.
“히, 히시미트 크리츠…… 권능은 비밀과 폭로. 미궁과 미로를 다루는 성좌다. 사왕. 비명을 모으는 하늘이여.”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김공자라고 합니다. 이제 막 성좌의 끄트머리를 잡은 신입이지요. 몇 가지 여쭈고자 하는데 시간좀 괜찮으실지?”
“……무, 물론 괜찮다. 말하여라.”
오른손 손바닥 위에서 히시미트 크리츠는 움츠러들었다. 잔뜩 긴장한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짓고서 말했다.
“왜 나를 공격하려고 했지요? 그것도 무티아랑 연합해서, 기습작전을 펼쳐야 할 정도로요.”
“……그 자식과 비슷한 이유다. 네 놈으로 인해 그 놈은 인간들이 윤회의 소원을 빌어도 무작정 들어줄 수 없게 되었지. 네놈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형태의 권능이 되어버렸노라. 그런 건 이미 성좌가 아니다. 신은 더욱더 아니고.”
작게 졸아든 뱀신의 비탄은, 물론, 자기 자신한테도 향하고 있었다.
“신도들이 내게 제일 많이 비는 소원은 두 가지다. [저놈의 비밀을 알게 해주세요]. [아무도 나의 비밀을 모르게 해주세요]. 내 입장에선, 둘 다 비슷할 정도로 중요한 소원이다. 신도들이 나한테 기대고 내게 신앙을 보내오는 이유의 99%는 저 소원들 때문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겁니까?”
“그러하노라. 바로 네놈 때문에!”
실뱀이 울부짖었다.
다시 말하지만, 실뱀이었다.
실뱀이 울부 짖어봤자 아무런 박력이 없었고 그저 내 머리칼에 스치는 산들바람만도 못한 효과만 일어났을 뿐이다.
“……크읏.”
그 사실을 실뱀도 깨달았는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직나직 읊조리기 시작했다.
“나는 신도들에게 최고의 보안을 마련해주었다. 오직 나, 히시미트 크리츠를 제외하면, 아무도 신도의 비밀을 다룰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아.”
나는 깨달았다.
“트라우마 페널티? 설마 그거 때문에 보안의 허점이 생겨버린 겁니까?”
“읏……. ……. ……그렇, 다…….”
실뱀은 내 손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콩. 콩. 나한테 사과하기 위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었던 판단을 후회하면서 자진 납두를 벌이는 것이었다.
“네놈은 그 덕분에 사실상 모든 이들의 과거를 들출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비밀도 네놈 앞에서는 그저 약간 수고가 드는 보물상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네 손에는, 어떤 상자든 열어버릴 수 있는 황금의 열쇠가 쥐어진 셈이나 다름없노라!”
“과연.”
“나는 [완벽한 비밀의 엄수]를 보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사도가, 50층에서, 네놈한테 트라우마로 과거가 전부 까발려질 동안, 내가 세워놓은 보안 방벽과 시스템 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완전히 쓸모가 없었단 말이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권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가해진 셈이군요.”
“그래! 다시 말하지만 바로 네놈이 한 짓이다!”
“이거 무티아한테도 한 말인데요. 애당초 [회귀자의 태엽시계]를 이런 구조로 만든 건 여러분입니다. 이러면 재밌겠지, 같은 느낌으로 가법게 만들었잖아요?”
“윽…….”
“인과응보입니다. 오만했고, 방심해서, 자신들이 벌인 짓이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는 채 살다가, 마침내 되돌아온 화살이 여러분의 뒤통수를 뚫었어요.”
그야말로 신화의 단골소재 아니던가.
“참 신적인 클리셰로 패배했으니 오히려 안도하십시오. 원래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예요.”
“끼우으으으… 끼엑…….”
실뱀이 되어버린 성좌의 몸통을 내가 손가락으로 쓰다듬을 때였다.
“이야기는 대충 정리됐니?”
툭.
“사신(蛇神)의 알을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서 즐거웠어. 정확히는 알이 아니라 알의 속. 완전히 문이 닫혀버린 우화고(羽化塵) 내부는 저런 모습이구나. 헤에.”
[태고의 지팡이].탑에 오직 여섯 밖에 없는 기둥 중 하나.
“마법사님.”
“응. 나는 이번 결투의 심판자였으니 마땅히 승자와 패자를 가려야지. 축하해! 승자는 사왕. 패자는 [미궁에 거하는 눈].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써 탑에 새겨졌어. 두 사람의 승패는 기둥인 내가 보증하겠어.”
다만, 하고.
마법사는 한쪽 눈을 감았다.
“나는 70층까지를 전담하는 기둥이기도 해서 말이야. 70층 이내라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스테이지 배치가 가능해.”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기. 자유로운 배치라면 ……?”
“단순해. 세입자는 원하면 보증금 받고 집을 나갈 수도 있고, 보증금 안 받고도 나갈 수 있고, 집주인은 가는 세입자 안 말리고, 굳이 오겠다는 세입자 안 말려.”
툭.
마법사가 지팡이로 허공을 치자, 홀로그램 영상이 좌르륵 펼쳐졌다.
61층부터 70층이 카툰 틱하게 그려진 지도.
61층과 62층, 63층엔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덤으로 내 목을 감싼 여우님도. 우리의 얼굴은 캐리커처처럼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다.
64층, 65층, 66층, 67층, 68층, 69층, 70층은, 제각각 달랐다.
내가 본 적 없는 얼굴들이 스테이지의 주인으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자아.”
마법사가 지팡이를 쥔 채 어깨춤을 추었다.
“이제부터 정확히 딱 6분 동안, 64층에서 70층까지, 자유 매매를 허락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장난기가 섞인 마법사의 말은, 다시 한 번, 무감정한 메세지로 걸러져서 온 탑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64층에서 70층까지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해집니다.] [제한시간은 06:00.] [세입자 여러분과 세입 희망자 여러분들은 자유로이 거래해주십시오.]“…….”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여 멍하게 마법사가 그려놓은 홀로그램만 보고 있던 순간.
[64층 스테이지가 매물로 나옵니다.] [64층의 관리자 ‘공명정대한 구미호’는 보증금이고 뭐고 월세고 뭐고, 다 필요없이, 희망하는 자에게 스테이지 관리권을 넘겨주겠다고 약조합니다! ]어?
성좌들 사이의 거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저건 내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도 무진장 말이 안 되는 매물인데.
[63층 다음 차례는 64층입니다.]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나는 이 기현상의 원인을 깨달았다.
[‘공명정대한 구미호’는 저 사왕의 길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스테이지 관리권 같은 건 공짜로 넘겨도 상관없다고 자지러집니다!] [65층 스테이지가 매물로 나옵니다.] [65층의 관리자 ‘기러기는 뒤집어도 기러기’는 푸드덕 날아 멀어집니다!] [66층, 67층 스테이지가 매물로 나옵니다.] [66층, 67층의 관리자 ‘대해를 관장하는 고무의 오리’는 스스로 바람을 빼고 쭈그러들어 바닷 속 깊이 가라앉습니다!]이 듣도 보도 못한 스테이지 입주권 경매 레이스의 원인은 바로 나.
김공자였다.
3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