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37)
1.
“그래서, 어떡하실래요?”
나는 성검을 까닥거렸다. 안 그래도 꺼이꺼이 울고 있던 악어 신사는, 내 칼끝을 보고 “힉!” 비명을 삼켰다.
“어, 어떡하냐니? 무슨 말인가?”
“사정이야 어쨌든 간에 입찰했잖아요. 낙찰받았고요. 그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누가 인간들의 별자리가 될 자격을 가졌는가 가려봐야지요. 그거. 그 신앙을 잃는 게 싫어서 제 앞에 나타난 거 아닙니까.”
“…….”
“결투? 일대일? 정정당당한 한판 싸움?”
악어 신사가 내 칼을 쳐다봤다. 꿀꺽. 비늘 가죽이 드리워진, 악어의 거대한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콜?”
“자, 잠깐. 잠시만 기다려보게! 나는 그대와 일대일 싸움을 벌이러 온 것이 아니야. 이래 봬도 신사일세.”
“하? 그러면 뭐하러 왔는데요?”
“항복할 땐 항복하더라도 이 사람아, 일단 얘기는 나눠봐야지 않겠는가. 누군지는 서로 안 다음에 죽으로 쑤든 밥으로 짓든 해야 될 일 아니냐 이 말이야.”
나는 한쪽 눈썹을 내렸다.
“흐음.”
“자네가 원체 50층부터 여기까지 순식간에 돌파해버려서 잘 모르나 본데. 응? 상층에 거하는 성좌들끼리는 이게 또 인맥이란 것이 있다네. 형태랑 정도가 다를 뿐이지 사람들 사는 곳과 비슷하네. 비슷해! 거, 결국 [폐허를 추수하는 소]도 [미궁에 거하는 눈]과 협력해서 자네를 공격하지 않았나!”
악어 신사는 정장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연신 머리를 닦았다. 악어니까 땀을 흘릴 리 없을 텐데.
“요컨대 저랑 싸우기 무섭다는 거지요?”
“그게 아니라……. 그래, 제기랄. 무섭네! 아! 무서워! 됐나! 어디서 이런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와선!”
왜 나한테 성을 내셔.
“될 수 있으면 말로 품세. 말로. 응? 자네가 지금 먹은 권능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그렇게 먹다가 체해. 젊은이. 무티아의 회귀, 히시미트 크리츠의 정보, 그리고 뭐시냐, 뭐신지 도통 모를 성좌들까지….”
“당신 하나 잡아먹는다고 이미 체한 게 더 체해버릴 것 같진 않습니다만.”
“물론 그건 빌어먹을 사실일세….”
악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솔직한 신사였다.
“하, 하지만 내가 자네를 보니까 참 젊은이가 투명해. 적어도 투명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이야. 자네는. 그러면 우선 대화로 푸는 것이 상도(常道) 아니겠나?”
내가 생각에 잠긴 자세를 취한 순간이었다.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나는 손목을 내려보았다.
그곳엔 마치 손목시계처럼 돌돌 말린 실뱀이 있었다.
“끼이이이.”
실뱀은 쪼그마한 머리를 치켜들며, 혹시나 내가 때리진 않을까 쩔쩔맸다. 꽤 깜찍했다. 그 정체는 다름아니라 무수한 인간을 등신대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해놓은 희대의 나쁜놈이지만 말이다.
[‘미궁에 거하는 눈’은 말합니다. 괜한 참견일지 몰라도.]왜? 뭔데.
[지금까지 저 악어 신사가 말한것들은 단 한마디도 예외 없이 전부 거짓말이라고, ‘미궁에 거하는 눈’은 당신에게 몰래 귀띔합니다.]“…….”
나는 느릿느릿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선, 악어가 여전히 땀방울 따윈 안 맺히는 가죽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나의 두 눈과 뱀의 눈동자가 나란히 바라봤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는 양 그런 걸 바라진 않네. 대화란 건, 소통이란 건, 단지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지. 그건 일종의 위대한 업적일세. 아닌가?”
[거짓입니다.]“아마도 대화의 본질은 서로 시간을 나누는 것이야. 시간. 서로에게 시간을 양보해주는 것. 당장 30분 대화해봤자, 이미 상대방 없이 30년을 살아온 사람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지. 하지만 1년이 지난 뒤엔 어떠겠는가?”
[거짓입니다.]“처음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1년이 지난 뒤에 또 대화하면, 10년이 지나면, 20년이 지나면, 두 사람의 시간은 겹쳐진 지 어언 20년이 되는 것일세. 그러면 지난 30년의 인생과 비견될 만한, 새로운 인생이 이어진 것이지!”
[거짓입니다.]“나는 초장부터 자네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네. 그렇지만… 자네가 천천히 알아가도 될 만큼, 자네가 시간을 기울여도 될 만한 성좌이고 싶네. 어떤가. 사왕.”
악어는 눈을 깜빡였다.
“나에게, 자네와 대화할 기회를 허락해주겠는가?”
그리고 뱀 또한 눈을 깜빡거렸다.
[거짓입니다.]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아직도 불안에 떠는 실뱀의 머리를, 나는 검지로 살살 쓰다듬었다. 실뱀은 금방이라도 땅바닥에 꺼질 것처럼 끼이이 나지막하게 울었다.
‘방금 말까지 거짓이라. [자네와 대화할 기회를 허락해주겠는가]라는 질문마저 구라가 섞였다는 건데……. 생각할 것도 없군. [대화]라는 단어부터가 구라라는 얘기잖아?’
[그렇습니다.]‘나와 대화할 기회가 아니라 나를 족칠 기회를 허락해달라 묻고 있는 거네. 속내는.’
[그럴 것입니다.]말 그대로 악어의 눈물인가.
나는 악어 신사를 향해 웃었다.
“좋습니다.”
악어 신사의 눈이 반색하는 것이 보였다.
“한번 마련해주세요. 대화의 자리.”
2.
바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악어 신사가 말한 ‘대화’란 일대일 대화가 아니었다.
나에 의해 권능이 위협받는 성좌, 내가 관장하게 될 영역과 자신의 영토가 겹쳐버린 성좌, 한마디로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성좌들 까지 함께 참석하는 자리였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는 67층 관리자 권한을 낙찰받았습니다.] [‘영원한 원무의 쌍둥이’가 68층 관리자 권한을 낙찰받았습니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69층 관리자 권한을 낙찰받았습니다.]여러 명의 성좌가 기나긴 테이블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좀 긴 테이블이 아니라 지나치게 긴 테이블이었다.
테이블은 끝없이, 소실점으로 수렴될 때까지 양옆으로 펼쳐졌다. 대화의 자리로 마련된 이 공간도 테이블을 따라 길쭉하게 이어졌다. 서로 마주보고 앉을 수는 있었지만, 단지 그뿐으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말이 아니라 몸을 동원해야 할 것이었다.
“어서 앉으시게나! 사왕. 어서 오게!”
악어 신사는 나를 환대했다.
“우리는 모두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자들일세. 이래 보여도 다들 낯가림이 심해서, 내가 모임을 주도하니까 비로소 나오더군. 허허. 사람은 원래 크든 작든 낯을 가리게 마련이지.”
[거짓입니다.]이미 안다.
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악어 신사가 소개해주는 면면을 둘러봤다.
“먼저 자네에게 ‘영원한 원무(圓舞)의 쌍둥이’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이군. 별자리 중에서도 굉장히 드문 쌍둥이 성좌일세.”
테이블 저편에 앉은 쌍둥이가 동시에, 완벽히 똑같은 순간에 동일한 각도로 고개를 까닥였다.
“반가워요.” “초면이네.”
입을 여는 타이밍조차 겹쳤다.
한 명은 음조가 높았고 다른 한 사람은 낮았는데, 서로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단지 평범히 말을 했을 뿐인데도 화음이 일어났다. 쌍둥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 손깍지를 꾹 끼고 있었다.
“특이하지?”
악어 신사가 허허 웃었다.
“두 명이 각각 성좌인 것이 아니라 두 명이 함께해야 비로소 성좌라네. 어쩌면 사실은 한 사람인데 겉으로만 두 개로 분리되어 보이는 걸지도 모르고. 누가 알겠나? 자, 다음은…….”
“나는 [마른 손자국의 귀인(責人)]이다. 꼬마.”
화려한 옷차림의 성좌가 툭 말했다.
성좌는 나를 증오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눈썹이 구겨졌고 미간은 일그러졌으며, 입가는 기괴하게 비틀렸다.
“너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마 특별히 ‘나’만 증오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표정은 다만 무특정다수를 향했다. 분노가 어느 순간부터 굳어버렸을 테고 그대로 가죽이 되었겠지.
누군가를 증오한다기보다 무언가를 증오하는 얼굴이었으며, 그 무언가가 뭐냐는 질문엔 자기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그런 얼굴이었다.
“오직 한 가지.”
[귀인]은 나를 노려봤다.“네가 나의 사정을 이해하길 바랄 뿐이다.”
“자아! 자아!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해나가기로 하고!”
악어가 다급히 손뼉을 쳤다. 팔이 짧아 박수의 모양새가 짜리몽땅했다.
“우선 이 만남이 무사히 성사된 걸 기리는 의미에서! 술을 올리세!”
손뼉 소리가 울리자, 벌컥! 회담장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연미복을 차려입은 집사들이 줄줄이 걸어나왔다.
집사들은 와인병으로 보이는 술병을 들고 있었다.
“아주아주 귀한 와인이지.”
악어가 입맛을 다셨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라는 이명처럼 나는 술에 제법 까다롭네. 인간의 감정을 술로 빚어내어 주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의 축복 받은 권능일세.”
집사들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으나 한 군데, 텅 비어버린 곳이 있었다.
바로 가슴이었다.
어느 유명한 쥐새끼 만화에 등장하는 스위스 치즈가 떠올랐다. 집사들은, 가슴 한복판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간절한 마음일수록. 삶이 묻어나오는 감정일수록, 술로 빚었을 때 향이 싱그러워지며 맛이 묵직해진다네.”
집사들의 구멍난 자리에서 피가 떨어지거나 내장이 보이진 않았다. 정말로 만화처럼 깔끔하게 싹둑 오려진 것이다. 집사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술병을 기울였다.
“나는 언제나 인간들의 농축된 감정을, 소위 진심(眞心)을 찾아 헤매지. 그러니 진심의 성좌라고 불러도 될 것이야. 어떤가, 사왕?”
또르륵.
내 술잔에 붉은 액체가 차올랐다.
“자네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은가?”
“…….”
“건배!”
악어 신사가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의 짧은 팔로는 술잔을 쥐어 스스로 마실 수 없었다. 신사는 그저 입을 벌렸고, 벌어진 입으로 집사가 대신 술을 따라줬다.
벌컥,
두터운 악어 가죽 너머로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벌컥. 이빨 사이로 붉은 와인이 새어나와 신사의 목과 와이셔츠를 적셨다.
“맛있군!”
저 한 마디만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겠지.
“흥. 냄새가 더럽다.”
[귀인]은 구겨진 표정으로 우아하게 유리잔을 기울였다.“…….” “…….”
[쌍둥이]는 집사를 써서 마시지도, 술잔을 들어 마시지도 않았다. 그들은 술을 머금은 다음 서로의 입술을 통해 음용했다. 손 깍지를 낀 채.한 방울의 붉은 술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술을 삼키는 시간과 목이 꿀꺽거리는 간격이 똑같았다.
어쩌면 [쌍둥이]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리듬마저 똑같지 않을까? [쌍둥이]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 “…….”
지금뿐만 아니라 매사에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 스쳐지나가는 모든 일들은 단지 하얀 배경일 따름이고, 그들이 항상 증명하는 일,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은, 그저 서로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뿐일지 몰랐다.
그러니까.
“과연.”
나는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술잔 속의 붉은빛 수위는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느릿느릿, 테이블 너머에 앉은 성좌들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당신들은 저와 비슷합니다.”
정장을 입은 악어 신사.
[가장 붉은 소믈리에].타인의 심장을 취하고, 감정에 취하는 자.
“성좌로서의 제 입지가 공고해지면 그만큼 당신들이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겠습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
[마른 손자국의 귀인].증오를 피로 삼아 분노를 뼈대로 삼은 자.
“그래서 저는 기쁩니다.”
손깍지를 낀 두 명.
[영원한 원무의 쌍둥이].너의 인정 이외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가, 당신들을 몰락시키게 되어서 기쁩니다.”
“…….”
성좌들의 동작이 멎었다.
[귀인]은 술잔에 입을 댄 채 이쪽을 가만히 노려봤다. [쌍둥이]는 입술을 겹친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도르르 돌려, 나를 나란히 쳐다봤다.“흐음.”
악어 신사는 천천히 아가리를 다물었다. 그리고 이빨 사이에 흐른 와인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땀이 아니라 술, 자신의 체온이 아니라 타인의 피를 닦기 위하여 그는 손수건을 가진 것이었다.
“어째서지?”
악어는 균열이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애당초 우리를 적대할 것이라면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네. 굳이 우리가 모여 있는 곳에 초대받아, 이렇게 들어와서, 세 성좌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불상사를 짊어져야 할 이유도 없지.”
집사들이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정확하게는 내 자리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그들은 품속에서 칼 따위의 무기를 꺼내들어 내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왜, 굳이 여기서 이 타이밍에 우리한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인가?”
“어차피 이야기를 하려고 만든 자리는 아니잖아요.”
나는 유리잔에 담긴 술을 끼얹었다. 상들리에 아래서 붉은빛이 수놓였다. 하지만, 술이 테이블을 넘어 악어의 머리를 뒤엎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았다.
촤악!
보이지 않는 성벽에 가로막혀 술이 흘러내렸다. 내가 앉은 곳과 저들이 앉은 사이. 테이블 위로, 모종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었고. 싸울 생각이니 [태고의 지팡이]도 입찰을 허락한 걸 테고. 기왕 싸우려면 세 명이서 싸우려고 여기까지 유인한 것이지요.”
“음.”
악어 신사가 눈을 깜빡였다.
“곤란하군. 이건 그저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 만든 장치에 불과하네만…. 사왕, 자네는 지금 오해하고 있다네.”
[거짓입니다.]알려줄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만일 자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더욱더 의문이로군. 유인이고 함정이란 걸 알면서도 왜 나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왔는가?”
“보려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수를 썼을지, 어떤 계책을 부렸을지. 무엇보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얘기를 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지. 한번쯤 여유롭게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봤군. 감상은?”
검을 쥐었다.
“검제가 성좌들을 맛집 취급하는 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한꺼번에 덤벼주십시오.”
악어 신사의 눈빛이 굳어졌다.
“우릴 얕보고 있군.”
고양이처럼 찢어진 균열의 눈동자가 나를 가두었다.
“무티아도 히시미트 크리츠와 동맹을 했었을 뿐이지, 두 사람이 동시에 덤벼든 것은 아니었지. 자네는 세 성좌를 한번에 감당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이러는 걸세.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안타깝지만.”
나는 칼자루를 쥐었다.
“그 말도 곧 거짓이 될 것입니다.”
성좌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3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