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39)
4.
수호의 여신은 다섯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조각들이 지금, 내 주변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숭배받는 자이며,]우상검(偶像劍).
여신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경의를 받는다. 짊어진다. 그는 기대를 받는 존재.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존재. 세상이 종말하는 그날까지 고고히 고개를 치켜들어야 하는 자.
그것이 군주이므로.
[그는 연민하는 자이고,]연민검(懷惑劍).
여신은 언제나 사람들의 상처를 이해한다. 이식받는다. 살에 상처를 입지 않더라도 마음은 타인에게서 옮겨온 상처들로 난자하여, 이름 없는 비명들을 심장에 간직한다.
그것이 군주이므로.
[그는 시험하는 자이고,]기원검(祈願劍).
여신은 언제나 판결을 내린다. 추려낸다. 자신에게 탄원하는 자가 진심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한낱 거짓을 속삭여 우롱하려는 것인지 시험한다. 진실된 탄원이 결코 거짓된 모함 따위에 파묻히지 않도록.
그것이 군주이므로.
[그는 희생하는 자요,]희생검(樣性劍).
여신은 언제나 고통받는다. 자처한다. 그의 시간이 갉아먹힐수록 다른 이의 시간은 꽃피우며, 그의 고통이 깊어질수록 다른 이는 삶이 찬연해진다. 그에게 무의미한 고통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이 군주이므로.
[그는 구원하는 자이니,]구원검(救援劍).
여신은 언제나 타인을 구한다. 자신을 버린다. 자기가 지키고 싶었던 자신의 부분을, 취향, 쾌락, 호오, 심미를, 차가운 천칭에 올린다. 그 저울의 반대편에 타인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있다. 타인들을 높이기 위해, 그만큼, 자신을 끊임없이 내리는 자. 내려야 하는 자.
고로.
[경배하여라.]그는 군주다.
[‘수호의 여신’이 현현합니다.]나의 검이 환히 빛났다.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악어 신사였다.
“다섯? 약속의 잠언이 네 개 이상이라고?”
신사는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럴 리가! 말도 안 된다! 수호의 여신…… 휘야는 분명, 살천성이 최초로 찢어버린 성좌였을 것일세! 다섯 조각으로 나뉘었을 터!”
악어의 큼직한 이빨들 사이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설령 네놈이 조각을 모아서 어찌 조립했다 할지라도, 마지막 파편! 최후의 조각만큼은 여전히 살천성이 가지고 있어! 대체 어떻게, 살천성의 검을……?!”
과연.
김율은 이미 오래 전 내게 무릎을 꿇었건만 악어 신사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걸 알 수 있는 성좌라 해본들, 내 과거를 꿰뚫어본 [폐허를 추수하는 소]나 내 정보를 읽어낸 [미궁에 거하는 눈] 정도밖에 없을 테지.
“속임수……. 그래! 속임수다! 사왕! 자네는 죽음의 왕일 뿐만 아니라 사술의 왕이었던 것이야! 하지만 그 따위 장난으로 우리를 속일 수는—-.”
“저는 제 존재로 장난을 친 적도, 허용한 적도 없습니다.”
어느 목소리가 악어 신사의 말을 끊었다.
내가 낸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랜만입니다.”
성검에서 새어 나온 빛이 엉클어져 형태를 이루었다. 찬란하게. 어째선지 그 빛은 눈이 부시지 않아, 언제까지라도 계속 지켜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사삭! 바삭. 빛무리가 거세졌다. 내가 쥔 성검만이 아니라 연민, 기원, 희생, 구원, 네 자루의 영검(影劍)도 부서져서 빛으로 빨려갔다.
“온전히 하나의 몸으로 현현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군요.”
그리고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사왕.”
다섯 쌍의 날개였다.
“저의 용사이시여.”
굉음이 울렸다.
한 쌍의 날개가 펼쳐지면서 테이블을 날렸다. 콰아아앙! 두 번째 날개가 펼쳐질 때, 회장의 벽이 부서졌다. 세 번째 날개가 펼쳐져 천장이 쪼개어졌다. 네 번째 날개가 광풍을 일으켰고, 다섯 번째, 마지막 날개는, 이 세계의 하늘을 뒤덮었다.
[‘수호의 여신’이 권능을 발현합니다.]천사는 태양을 가렸으며, 대지엔 다섯 갈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당신을 따라 싸우겠습니다.”
그 그림자야말로 여신의 권능.
‘수호의 여신’이 드리운 영토.
태양을 제치고 하늘을 쳐내어, 오직 하얀 날개만이 유일한 빛으로서 군림하는 그늘의 세상이, 이곳에 강림하였다.
“—-거부한다!”
악어 신사가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휘야! 그늘로서 빛이 되어버린 자여! 67층의 소유자는 그대가 아니다! 나다! 우리다! [영원한 원무의 쌍둥이]와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며, [가장 붉은 소믈리에]인 우리들이 바로 이곳의 주인이다! 너의 성역은 여기서 빛을 잃을 것이다!”
악어의 외침이 발악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었다.
[관리자가 공동 소유를 거부합니다.] [‘수호의 여신’은 이곳을 소유하지 않습니다.]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곳, 66번째 세상을 비추는 태양은 내가 익히 알던 모습으로부터 비틀어졌다. 하얀 빛을 내뿜던 구체가 돌연 까매졌다.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칠한 것처럼 한줄, 한줄, 검은색이 그어졌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가 권능을 발현합니다.]새까만 구멍.
어느덧 태양이 있던 자리엔 다만 심연이 뚫렸다.
“넘쳐 흘러라!”
지독히 거대한 우물과 같은 구멍에서, 벌컥! 물보다 진하며 술보다 질척한 액체가 새어나왔다. 벌컥, 벌컥. 그것은 피였다. 붉은 피가 하늘의 우물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보게나! 저 피의 격류를 이루는 한방울 한방울은 모조리 다 내가 수집한 혼일세! 내 사랑스러운 신도들이지!”
악어 신사는 팔을 들어올렸다. 주르륵! 하늘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악어의 작은 손바닥에 피가 고여, 두꺼운 물갈퀴 사이로 넘쳤다.
“이곳은 나의 신전! 성역! 누구도 나를 부정할 수 없음이니,”
“그렇군요.”
수호의 여신이 날개를 접었다가, 횡으로 펼쳤다.
빛이 터졌다.
하얀 날개가 검의 십자막이처럼, 곧이 펼쳐진 몸이 칼날처럼 그림자를 드리웠다.
명멸하는 검이—수호의 여신, 휘야가 말했다.
“하다면, 베겠습니다.”
[‘수호의 여신’이 권능을 발현합니다.] [‘수호의 여신’은 65층, 66층의 관리자입니다.]휘야가 손을 뻗었다.
갈고리처럼 웅크린 손가락들이 악어 신사를 향했다.
그리고, 각 손톱 끝에서 터져 나온 다섯 갈래의 빛이 악어 신사를 후려쳤다.
5.
[당 세계는 초보자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층탈전(層奪戰) 개시.] [현재 사자세계-은백세계-월야세계 대 연회세계-태극세계-마경세계의 층탈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으가아아아아악!”
악어가 비명을 질렀다.
그 몸에 새겨진 다섯 갈래의 빛무리는, 대지에 깃든 균열이 용암을 토해내는 것처럼 시뻘건 포도주를 악어의 몸으로부터 [짜내고] 있었다.
“혼들이 짙군요.”
수호의 여신이 말했다.
“심장의 원액을 주저없이 빨아먹을 수 있는 존재만이 이만한 피를 짜낼 수 있지요. 고기를 먹는 짐승이라도 그 몸에 털이 났다면 아직 솜털도 없는 새끼들에게 연민을 느낄 줄 알고, 비늘 덮인 짐승조차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그만두는 법인데.”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그대는 짐승조차 아닌 곤충이었음이라.”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제기랄, 제기랄! 자기가 고른 인간한테 뒤통수를 맞고 쪼개졌던 주제에! 듣도 보도 못한 하급 성좌조차 상대하지 못하던 쓰레기 따위가!”
“예. 저는 그러한 존재였지요.”
악어의 비명을, 휘야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흘렸다.
마치 검의 달인이 상대의 검격을 받아 흘리는 것처럼.
“그러나 그 전에, 저는 제국을 세운 건국 군주였습니다.”
검격을 흘린 칼날은 나비처럼 휘돌아, 회전해, 악어의 어깨를 세 차례에 걸쳐 후려쳤다.
“갸아아아아악!!”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그만!!”
당돌한 사태에 잠시 굳어 있던.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동맹들이 나섰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쌍둥이에게 소리쳤다.
“네 탓이다! 뭘 얼어 있는 거냐! 네가 똑바로 역할을 다했다면 가장 붉은 소믈리에가 저렇게 상처를 입지는—.“
“과연 그럴까요?”
당연하지만.
수호의 여신에게도 동맹은 있다.
타앗!
“[대상을 지정해야 발동하는 스킬]에는 참 알기 쉬운 약점이 있지요.”
성좌들이 눈을 크게 깜빡였다.
찰나가 흐르는 사이에 내 주먹은 허공을 질주하고 있었다.
“어디, 두 손으로 빗물을 퍼내보십시오.”
권격이 악어의 배에 정통으로 꽂혔다. 쿠웅!
진동이 악어의 몸을 관통하여 주변 공기에 파도처럼 퍼졌다.
무형의 파도엔 핏방울도 몇 점 뒤섞여 있었다.
“커, 헉……!”
“배가 단단하군요. 구멍이 뚫려 있지 않아요.”
나는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이러면 안 되지요. 체면이 안 서잖아.”
퍼억!
주변에 흩날리는 것과 똑같은 핏물이 내 손가락 마디에 묻었다.
“명색이 제가 휘야의 주인인데, 휘야 정도는 해내야겠지요.”
다시 한 번 더, 주먹을 때려 넣었다.
“크흑, 읍……!”
악어의 배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하여,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쌍둥이에게 휘야의 검격에 의한 대미지를 전이시키더라도, 악어로부터 터져 나오는 포도주의 양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아,”
하늘이, 벌어졌다.
악어의 배에서 터져 나오는 포도주가 늘어날 수록,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장마철에 고장나버린 하수구처럼 끊임없이 피가 벌컥거렸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가 더는 권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새빨간 홍수에 휘말려 멀리 쓸려져 나가는 새끼 악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아마, 그것이 소믈리에의 영락해버린 결말이었을 것이다.
[등급 조정에 착수합니다.] [‘가장 붉은 소믈리에’의 이명을 박탈합니다.] [67층의 퀘스트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층탈전 결과 갱신.] [67층은 이제 ‘수호의 여신’이 관리합니다!]좋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여신이 떠 있었다. 우리는 쓰러진 악어의 허물을 사이에 두고 시선을 주고받았다.
“휘야.”
“예, 용사님.”
그것만으로 우리 둘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왼편을 향해 내달렸다. 휘야는 오른편으로 날았다.
악어의 허물만이 한가운데에 남아 핏빛 홍수에 집어삼켜져, 어디론가 쓸려갔다.
“……아!”
휘야가 날아드는 허공의 끝에는 백자(白者)가 서 있었다.
내가 달리는 길의 끝에는 흑자(黑者)가 서 있었다.
“한 쪽만 타격해봤자 의미가 없다면,”
나는 흑자에게 주먹을 뻗었고.
“두 쪽을 동시에 공격하면 될 일.”
휘야는 백자에게 날개를 휘둘렀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권능을 발현합니다!]그 동시 타격을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대미지 전이로 막으려 했지만—
[관리자가 공동 소유를 거부합니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은 이곳을 소유하지 않습니다.]악어가 했던 것처럼, 이 층의 관리자가 된 수호의 여신이 그 권능을 튕겨냈다.
“제기랄,”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67층을 침공]“늦어.”
한 발 먼저, 전장의 양편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그것은 당초부터 쌍둥이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쌍둥이는 어디까지나 탱커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 무예 실력은 대단치 못했다.
내 반대편에서, 휘야가 수 쌍의 날개를 동시에 휘둘렀다.
내리쳤다.
백자는 사지가 산산이 쪼개졌다.
“괜찮아요.”
나와 마주하게 된 흑자는, 그런 백자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괜찮아요.”
내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흑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실력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흑자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반쪽에게로 쏠려 있었다.
“괜찮아요. 제가 있는 이상. 당신은…….”
“그래.”
나는 주먹을 휘둘렀다.
“네가 있는 이상에는 말이지.”
권격의 폭풍이 몰아쳤다.
흑자는 내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괜찮다, 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어깨가 타격당했으며 턱이 공격당했다.
흑자의 말이 사라지자 더는 백자의 대미지를 부정해줄 이도 남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먼저 쓰러진 것은 백자였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된 상처에, 계속해서 누적된 대미지에, 결국 백자는 꺾이고 말았다. 첨벙! 이제 지평선까지 자작하게 메우게 된 핏물의 수면으로, 백자는 힘없이 거꾸러졌다.
흑자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아아…….”
흑자는 털썩, 바위에 쓰러졌다. 내 권격에 온몸이 바스라진 채.
“고통을 씹어물고 다시 일어선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나는 흑자를 내려다보았다.
반면에 흑자의 눈길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휘야의 날개들이 펄럭거리는 곳 아래. 수면에 어스름히 잠겨 있는 백자만을 쭉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너희가 조금 더 강해졌다면 오늘 내가 승리를 취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너희는 씹는 대신 뱉었어. 그뿐이야.”
“…….”
흑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비로소 흑자는 고개를 돌려, 초점이 없고, 동공이 없어, 어둠밖에 도사리지 않는 눈동자로 이쪽을 올려봤다.
“세상에는 강해질 수 없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잠시 뒤 흑자가 입술을 열었다.
“당신들은, 강해질 수 있구나.”
입술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전부. 죽어버려.”
그것이 쌍둥이의 성좌가 세상에 남긴 저주였다.
[‘영원한 원무의 쌍둥이’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 [등급 조정에 착수합니다.] [‘영원한 원무의 쌍둥이’의 이명을 박탈합니다.]흑자와 백자의 몸이 동시에 점점이, 잿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흑자가 누워 있던 바위에는 날개가 하나만 달린 앵무새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68층의 퀘스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층탈전 결과를 갱신합니다….]그래.
나는 마지막 남은 성좌를 돌아보았다.
“네놈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격노했다.
다만 무의미한 분노였다.
고전 게임에서 증명되었듯 홀로 남은 서포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얌전히 포탈을 타는 정도일 것이다.
포탈을 타는 걸 거부하는 서포터는 그저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을 띄우게 될 뿐.
그런 운명을, 귀인 또한 이해했을 것이다.
귀인은 여전히, 증오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철벅. 철벅.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내 모습을, 핏물이 튀는 소리를, 뒤따라서 날아오고 있는 휘야를,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증오스러운 듯했다.
“이제 당신이 대미지를 떠넘길 성좌는 없습니다.”
귀인이 휘야를 쳐다보았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권능을 발현합니다.] [‘수호의 여신’은 거절합니다.] [권능이 무효화됩니다.]아마, 귀인은 자신이 받게 될 대미지를 휘야에게 옮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절차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했겠지.
당연하게도 휘야는 거부했다.
귀인은 나를 노려보았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이 권능을 발현합니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은 자신이 받게 될 피해를 대신 짊어질 자로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을 받아들이겠습니까?]나는 고개를 저었다.
[권능이 무효화됩니다.]귀인이 이를 씹었다.
“너는 나를 이해하여야 한다.”
“…….”
“나의 탓이 아니다. 잘못이 아니다. 너의 잘못이고, 너희의 탓이며, 탑의 과오다. 모든 것이 마땅히 그러하다. 하므로, 너는 나의 사정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손을 뻗었다.
서서히 휘야가 허물어졌다.
다섯 쌍의 날개는 낱낱으로 떨어져 내려 다섯 자루의 검이 되었다. 다섯 자루의 검은 다시 겹쳐져서, 하나의 성검으로 졸아들었다.
“아니요.”
나는 성검의 칼자루를 쥐었다.
“당신이 탑에 있다는 것이 이미, 탑주에게 이해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나를—-.”
“충분히. 넘칠 정도로.”
검이 호선을 그었다.
새빨간 수면으로 첨벙, 무거운 것이 떨어졌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 [등급 조정에 착수합니다.] [‘마른 손자국의 귀인’의 이명을 박탈합니다.]수면에서 한 마리의 닭이 퍼드득, 거렸다. 빨간 벼슬이 달린 닭이었다. 닭은 흰 깃털을 붉게 염하며 내 발밑을 헤엄쳐서 지나갔다.
그렇게.
[69층의 퀘스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층탈전의 결과를 갱신합니다….]세 성좌의 동맹은 내 칼날 아래 스러졌다.
[당신은 70층에 도전할 자격을 획득합니다.]일흔 번째 스테이지로 향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3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