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45)
나는 눈을 깜빡였다.
“300년 일찍 여기에 온 분이라고요?”
“그렇다네. 후배…….”
상대방은 후드로 얼굴이 가려진 채 꾸벅, 꾸벅, 턱을 끄덕거렸다. 어느새 나는 후배가 되고 상대는 선배가 되었지만 딱히 그런 일에 신경 쓰진 않았다.
그보다 후드남이 한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악천세계든 금천세계든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전생을 잊어버려. 내가 도전자라는 걸 짐작했다는 건 이 사람이 정말로 헌터일 공산이 높단 뜻이야.’
[태고의 지팡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심판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한 언제까지나 스테이지에 망령처럼 머무르게 된다고.어쩌면 눈앞의 후드남은 300년째 퀘스트를 깨지 못한 도전자일지 모른다.
“나는 실패자일세…….”
후드남이 떠듬떠듬 말했다.
“여기에 갇혀서 이도저도 가지 못한 채 그저 허송세월이나 하고 있지. 내 인생이야 이리 끝났다 여기면 그만이네만, 후배, 다른 도전자들까지 나와 똑같은 꼴이 되는 것만은 막아주고 싶구만…….”
어떤가, 하고 후드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조언을 들어보지 않겠는가? 하잘것없는 인생사……. 실패자의 넋두리라도 후배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뇨, 아뇨.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는데 저야 경청할 따름이지요.”
“헐헐. 젊은 후배가 참 마음씨가 곱구만. 그럼 저, 애플오렌지 한 알만 사다주면 내 기꺼이 후배의 앞날에 도움이 되겠네.”
후드남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거래를 신청합니다.]그러자 메세지가 들려왔다.
[상대방이 제시한 상품을 오렌지애플 1개로 구매하시겠습니까?]굉장히 쉬워 보이는군.
나는 좌판 상인에게 가서 사과와 오렌지를 반반 섞어놓은 과일을 샀다. 반반이란 건, 정말로 똑같이 50:5이라는 거다. 왼쪽이 사과였고 오른쪽이 오렌지였다. 뭐냐 이거.
“어서 옵셔! 어이고, 젊은이가 아주 훤실하게 생겼네 그려!”
좌판 상인은 내가 호구로 보였는지 이때가 싶은 눈빛으로 3골드를 제시했다. 누가 봐도 바가지였다.
하지만 내 주머니엔 금화가 꽤 많았다. 300년 앞선 선배의 조언을 듣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아까울 것도 없지.
[흥정이 종료됩니다.] [상대방은 이번 거래에 만족합니다.] [당신은 이번 거래에 만족합니다.] [양측 모두가 거래에 만족했습니다!]간단하네.
[‘미궁에 거하는 눈’은 과일 상인이 당신을 호구 중 호구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폭로합니다….]알고 있는데도 귀찮아서 빨리 끝낸 거다!
“여기 있습니다. 선배님.”
“오오오, 이런 친절한 후배를 보았나…….”
나는 재빨리 구해온 오렌지애플을 후드남한테 건넸다. 후드남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과일을 건네받았다.
[거래가 성사됩니다.] [흥정이 종료됩니다.]그 순간이었다.
“야호!”
후드남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언제 손을 떨었냐는 듯 무척이나 호쾌한 손놀림으로 후드를 벗어재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여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뭡니까?”
“뭐긴 뭐야! 너를 낚아올린 라벤타 항구도시의 어부이시다! 딱 봐도 관상이 호구호구 울고 있어서 혹시나 싶어 바늘을 드리웠더만 얼씨구 월척일세! 껄껄껄! 이 탐스러운 제철 과일은 내가 먹겠네, 젊은이!”
후드를 벗은 후드남이 게걸스럽게 오렌지애플을 씹어먹었다.
“아! 꿀맛이로세! 여리고 착한 것을 등쳐먹는 이 맛이야말로 산해진미 아니던가!”
“…….”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깐. 당신, 도전자였다매. 어떻게 여기 주민이면서 도전자 어쩌고저쩌고를 시전할 수 있었던 거냐?”
“뭔 소린지 모르겠구만. 나는 그저 아주 예전에 나한테 벗겨 먹힌 호구의 레퍼토리를 읊었을 뿐이네. 그게 300년 전이었나? 정말 가끔 이딴 헛소리에 넘어오는 꼬마들이 딱 지금 네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타나거든.”
“이런 미친…?”
“바로 그 표정을 보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과장스러운 효과음이 두둥, 울렸다.
[상대방은 이번 거래에 매우 만족합니다.] [당신은 이번 거래에 매우 불만족합니다.] [당신이 손해를 보았습니다!]메세지가 울린 직후였다.
“어? 어어?”
어마어마한 공복감이 배를 덮쳤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기습과 같은 허기였다. 마천신공을 연마하면서 질릴 만큼 굶주려 봤지만 이렇게 한순간 만에 공복이 엄습한 건 처음이었다.
“이, 잠깐. 이게 대체 뭔.”
“으으음, 딜리셔스으…….”
나와 정반대로 후드남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잘 먹었네. 후배. 너무 실망하진 말게. 나 덕분에 크나큰 교훈을 얻은 거 아니겠나? 오렌지애플 한 개로 이런 인생 교훈을 알려주다니, 거 참, 나도 너무 자상해서 큰일이야……. 이 험한 세상을 어찌 해쳐나가려고 이 몸은 이리도 착하게 태어났누…….”
“어이.”
후드남의 표정은 과장 안 보태고 굉장한 파괴력을 지녔다. 좀처럼 화가 안 나는 성격으로 변한 나조차 저 면상을 보고 있노라니 속에서 열불이 솟은 것이다.
[당신은 이번 거래에 더 불만족합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서 더 큰 만족을 얻습니다!] [당신이 또 손해를 보았습니다!]나는 곧, 이 분노조차 상대방에 의해 계산되었음을 깨달았다.
“오오, 좋군. 좋아! 훌륭해. 마치 입안에 고급 두덕돼지 스테이크가 육즙을 줄줄 흘리는 것 같은 감촉 아닌가! 아주 맛집이야. 젊은이. 자네 맛집이었구만…….”
상대방은 요리를 음미하듯 천천히 탄성을 흘렸다.
“이제부터 도시의 수많은 승냥이가 자네를 맛집으로 알고 달려들 걸 생각하노라니 아까울 지경이로군. 혼자만 즐기고 싶은 맛일세.”
나는 화를 참으려 최대한 애쓰고 있었다. 금천세계. 모든 것이 흥정으로 돌아간다는 법칙의 의미를, 이제야 좀 실감했다. 여기서 더 열불을 토해봤자 손해보는 건 나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지…….”
후드남이 훗, 하고 웃으며 후드를 도로 썼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멋은 자기가 전부 가져가는 카메라 각도로 등을 돌렸다.
“귀한 걸 혼자서 독점하기엔……. 이 몸은 너무 선한 존재이니 말일세…….”
“…….”
“아듀.”
후드남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퇴장하는 건맨처럼.
“…………….”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끊겼다. 장담하건대 저 모습을 보고도 열이 뻗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 생불이었다.
[당신은 이번 거래에 더욱더 불만족합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서 더욱더 큰 만족을 얻습니다!] [당신이 또다시 손해를 보았습니다!]시발.
[‘미궁에 거하는 눈’은 상대방이 당신을 우주에서 가장 호구스러운 호구라고….]입 닥쳐. 크리츠.
[‘수호의 여신’이 용사님을 매우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봅니다.]너한테 눈이 어디 달렸다는 거냐? 어? 너 검이잖아.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자비로운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여우님. 당신마저.
-푸하하하하하합! 푸흡우헥끄허허어어얽! 나 죽어! 나 뒈져! 김공자 이 새끼가 검제를 죽인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99층까지 제패하신 검제님이 이 새끼한테 뒈지게 생겼습니다아!!
댁은…… 그냥, 말을 말자. 아니. 말을 말아주세요. 말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저 청년이 호구래.”
수군수군.
“어마어마한 맛집이라는데?”
웅성웅성.
나를 보는 것이 비단 성좌들만은 아니었다. 좌판 상인들이 서로 수군덕거리며 이쪽을 대놓고 쳐다봤다. 그들의 눈빛을 묘사하자면 사흘 굶은 상황에서 코앞에 대나무잎이 떨어진 팬더 새끼와 같았다. 어떻게 내가 팬더 새끼의 눈빛을 아느냐면, 어…… 날 좀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청년! 청녀언! 나 기억하는가? 아까 자네한테 오랜지애플을 팔았던 사람이야. 청년, 한 번만 더 나와 거래함세! 우리는 이미 굳은 신뢰를 입증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아닌가!”
“고구마포도주 드셔보십시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입만 잡수어봐! 젊은이 입에서 신물이 나올 때까지 내가 고구마포도주를 책임지고 주입시켜 주겠네! 신세계라고!”
“두덕돼지 바베큐.”
상인들이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눈자위가 희번덕거렸다. 그것은 마치 해안가에 부닥치는 파도와 같아 부딪치고 부딪쳐도 다시금 2파, 3파가 몰아닥쳐, 그리하여 바위 입장에선 깎여나가는 것 이외엔 답이 없어 보이는 심히 뭣 같은 상황이었다.
“한입만……!”
“맛집……!”
“두덕돼지. 트라이.”
과연 여기서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응.”
도망치자.
“아앗, 맛집이 토낀다!”
나는 발바닥에 오러를 실어 경공술로 날아들었다. 왼손으로는 배를 틀어쥐고 말이다. 거의 미칠 정도로 굶주린 허기가 위장을 꾹꾹 쑤셔댔다.
“쫓아!”
“잡아라!”
“이게 얼마 만의 호구인데 놓칠 거 같냐!”
결과적으로 나는 온몸을 비틀어 허리를 구부린 채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만일 스승님께서 지금의 날 보신다면 ‘내 저토록 꼴사나운 경공은 처음 보는구나…’ 라고 눈물을 철철 흘리시겠지.
“배고파, 으으. 배고파…….”
물론 나는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굶주렸다 한들 성난 팬더들로부터 도주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몰락하진 않았으니까.
어두컴컴한 골목.
“배고파…. 아니 뭐 이런 미친 배고픔이 다 있나…?”
나는 비틀비틀 걸어가며 고전 영화의 첫 장면을 연출했다. 나는 골목길을 전전하는 한 명의 가난한 꼬마. 문제는 그 꼬마에겐 뚜껑을 들어 뒤져볼 음식물 쓰레기통이라도 있었다는 건데, 여기엔 그런 것조차 없었다.
만약 내가 마천신공의 아사유검을 익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쯤 미치지 않았을까?
평범한 헌터는 절대 견딜 수 없는 공복감이 나를 고문했다. 진심으로, 내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눈이 뒤집히고 배가 뒤집혀서 바닥에 쓰러진 다음 애벌레 춤을 췄을 거다.
-공자야.
그때 배후령이 말을 걸었다.
“예…?”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나는 힘겹게 배후령을 쳐다봤다. 배후령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굉장히 중요한 한마디를 건네겠다는 것처럼.
그리고 배후령은 말했다.
-아듀.
“…….”
-깔깔깔깔깔깔깔!
그래.
좋아.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알겠습니다…….”
나는 구부정한 허리를 느릿느릿 폈다. 똑바로 땅을 밟고 일어섰다. 극심한 허기로 눈앞의 풍경이 모노크롬으로 깜빡깜빡거렸으나 어째선지 머릿속은 무서울 만치 말끔했다.
“세상이 저한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저도 어쩔 수 없지요….”
-응? 뭐? 맛집 장인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당신들 다 죽었어요.”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깨끗해진 이유는 퓨즈가 날아가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정전이 일어나면 원래 사방이 고요해지는 법.
-어…….
내 얼굴을 보고 배후령의 표정이 바뀌었다.
-좀비야? 저기, 김공자 씨? 어이이. 제 말 들리십니까?
“네. 존나 1080p 고화질 동영상 수준으로 잘 들리는데요. 검제님. 제게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따로 있습니까.”
-…….
배후령이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난 그냥 아듀라고 말했을 뿐이다. 나한텐 아무 잘못 없어.
[‘수호의 여신’은 자신이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애초부터 자신은 무죄한 존재였음을 상기시킵니다.] [‘미궁에 거하는 눈’은 자신이 그저 사실들을 말했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나는 성검을 빼어들고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
“왜들 그러세요. 저, 화 안 났습니다.”
-…….
“그냥 단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사람이 배고픈 걸로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냐면, 그건 예의에 어긋나잖아요. 예의가 아니지요…. 이 도시가 참 예의가 없네.”
나는 활짝 웃었다.
“우리 예절교육 좀 하고 갑시다.”
금천인지 금발인지 나발이고 자시고 일단 이 항구도시부터 정리한다.
34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