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46)
3.
작전을 거행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형제님. 혹시 도를 아십니까.”
이게 웬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세상의 어떤 헛소리라도 본인이 내뱉으면 일리가 있어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방금 이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니라 나였으므로, 일리 백리 천리가 갖춰졌다 할 수 있다.
“엉? ……초면에 뭔 개소리야?”
물론 대뜸 나한테 도를 아느냐고 질문받은 상인은 눈쌀을 찌푸렸다.
항구도시에서도 제법 큰 만물상. 한낮인 지금도 손님들이 꽤 많았다. 가게 주인과 체스를 두는 단골 손님까지 있었다.
이런저런 골동품이 진열된 가게에서 노상인은, 체스말을 내려놓고 외알 안경을 쓰윽 추켜올렸다.
“잡신 안 받네. 허우대도 멀쩡한 젊은이가 몹쓸 수작을 부리는군. 여기선 자네가 주워먹을 콩고물 하나 없으니 썩 꺼지세. 훠이, 휘이.”
“제가 보기에 노형(老兄)께선 도를 좀 아셔야 할 것 같은데요. [미궁에 거하는 눈]이라는 신을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개가 냐옹하고 고양이가 왈왈거릴 소리를…….”
그게 과연 무슨 소리일까 궁금했다만 내가 당장 처리하고자 하는 호기심은 딴 데 있었다.
‘어이.’
나는 내 손목에 감겨 있는 실뱀을 톡 건드렸다.
실뱀이 끼이익, 구슬프게 울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상인이랑 단골손님 간의 비밀을 폭로해라. 아무 거라도 상관없어. 치명적인 비밀이기만 하면 돼.’
[‘미궁에 거하는 눈’은 십이지신이라 모셔지기까지 한 자신이 언제 여기까지 몰락했는지 모르겠다며 참으로 슬프게 웁니다….]‘기왕지사 슬픈 인생 더 슬프게 해주랴?’
[‘미궁에 거하는 눈’이 권능을 발현합니다….]실뱀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이, 노상인은 혀를 쯧쯧거리며 체스 보드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와 맞상대하고 있는 단골 손님은 달랐다. 내 얼굴을 가만히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으음? 이 친구, 잘 보니까 아까 부둣가에서 난리 난 맛집 같은데.”
“맛집? 무슨 맛집 말이야?”
“자네는 가게에 박혀 있어서 몰랐겠지만 좀 시끌벅적했거든. 새로 온 젊은이인데 아주 그냥 호구 중의 호구일 뿐만 아니라 영혼이 아주 맛나지 않다던가? 그래서 다들 이 젊은이를 벗겨 먹으려고 혈안일세.”
“저 비실비실한 아이가? 정말인가?”
“참으로 개꿀맛이라 하더군.”
노상인과 단골 손님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어 나를 쳐다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는 그 시선은 마치 두덕돼지를 코앞에 둔 승냥이 같았다.
[폭로.]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에게 비밀을 공개합니다.]정작 누가 승냥이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
이름: 세르바도스 제냐밀리아
전생세계: 무명탑(無名塔)
사후세계: 항구도시 레반타, 금천세계
비밀: 만물상점 주인. 지금 이 사람과 같이 체스를 두고 있는 단골 고객은 사실 엉덩이에 종기가 났는데, 그 종기는 세르바도스가 계속해서 권하는 차 때문에 생겼습니다. 이 차를 마시는 사람은 왼쪽 엉덩이에 종기가 나는 것입니다. 단골 고객은 이 때문에 치료약을 항상 구입하는데 그 치료약을 파는 사람도 세르바도스입니다.
심리 상태: ‘체스에서 지더라도 거래에선 이겼으니 실로 전투에서 패배하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법이라! 나 스스로의 군재에 전율이 돋는군….’
+
나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단골 손님을 향해 말했다.
“당신 왼쪽 엉덩이에 종기가 나는 이유는 지금 마시고 있는 차 때문입니다. 이 양반이 당신을 계속 벗겨 먹으려고 일부러 체스를 두면서 차를 권하는 거예요.”
“세르바도스으으으으으!!”
단골이 벌떡 일어나서 노상인의 옷깃을 쥐어잡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왜 골동품 가게주인 주제에 엉덩이 치료약을 매번 구해다 오는 건지 수상했다고! 역시 네놈이 획책한 계략이었구나!”
“자, 잠깐만!? 오해야! 오해라고! 내가 자네한테 그럴 인간으로 보이나?! 지금, 수십 년 넘게 사귀어온 친구보다 어디서 굴러 떨어졌는지 모를 맛집이 더 믿음직스럽다 이건가!”
“당연하지! 라벤타에서 가게 가지고 있는 놈은 전부 사기꾼인데!”
“세상 모든 사람이 사기꾼이라도 나만은 신실한 친구일세……!”
가게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는 손님들이 이게 웬일인가,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실뱀아.’
나는 다른 손님을 가리켰다.
‘다음.’
[폭로.] [‘미궁에 거하는 눈’이 당신에게 비밀을 공개합니다….]눈앞에서 글자들이 꼬물거렸다.
+
이름: 삭스피너 윌리엄텔
전생세계: 고리세계
사후세계: 항구도시 레반타, 금천세계
비밀: 만물상점 단골손님. 이 사람은 사실 가게주인이 독을 탄 차를 건네주고 있음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삭스피너는 독차를 마시는 것을 일종의 거래로 만들어, 차를 마실 때마다 지인을 시켜 가게 물건을 훔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뒤 돌아보면 왼쪽 방향에 있는 붉은 머리 남자가 골동품을 몰래 훔치고 있군요.
심리 상태: ‘미안하네, 친구.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진리를 언젠가 자네 스스로 깨닫도록, 내 눈물을 참고 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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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사람은 당신이 개수작을 부린다는 걸 알고 한술 더 떠서 고양이수작을 부렸습니다. 지금 뒤 돌아봐서 왼쪽 방향에 있는 붉은 머리 남자가 매번 골동품을 훔치고 있어요.”
“삭스피너어어어어어!!”
가게주인이 벌떡 일어나서 단골의 옷깃을 잡았다.
“왠지 네가 들락거릴 때마다 물건이 꼭 하나 사라지더라! 이 도둑놈 새끼!”
“차에다가 독을 푼 놈이 어디서 삿대질이야!?”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가게에서 난장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미안하지만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나는 차례대로 가게 안 손님들을 하나하나 지목했다.
“이 사람은 당신이랑 협조하는 척하지만 사실 물건을 통친 내력을 다 적어놓고 당신을 고발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어요.”
“다리단테에에에에에!!”
“당신이 그저께 두덕돼지 스테이크를 먹고 식중독이 난 건 사실 저 사람이 선물해준 후추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저 사람은 후추를 자기 침으로 적신 다음에 다시 말린 다음 사람들한테 선물해주는데, 그걸 공짜로 받았다며 좋아하면 ‘흐흐 멍청이들, 내 침후추를 받고 희희낙락하는 꼴이라니!’ 하고 거래에서 이득을 챙기는 겁니다.”
“만덕처어어어어언!!”
“이 가게 화장실의 휴지에는 사실 치질유발제가 발라져 있어요. 여러분이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저 사람은 은밀한 만족감을 얻습니다.”
“세르바도스으으으!!”
그리하여 항구도시의 가게 하나가 폭발했는데 당연하지만 아직 복수가 끝나려거든 시간이 많이 남았다.
[폭로.] [폭로.] [폭로.]나는 길거리에 들어선 가게 순번대로 방문하여 친절하게 비밀들을 까발렸다. 곧 비명이 터졌고, 옷깃이 찢어졌으며, 고함과 고성이 아름답게 항구 마을을 수놓았다.
“저 사기꾼을 죽여!”
“그러는 너도 나한테 사기 쳤잖아!”
“아, 장사 한두 번 해봐? 속는 놈이 나쁜 놈이지!”
“어디 나쁜놈한테 뒤지게 맞아봐라!”
“사람 살려! 사람 살려어어어!!”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시의 구역들을 하나씩 불태웠다.
물리적인 불이 아니라 마음의 불로.
금천세계의 주민들은 기본이 사기꾼이자 도둑이었다. 폭로할 비밀은 꿀처럼 흘러내려 바닥날 기미가 안 보였다.
[폭로.] [폭로.] [폭로….]나를 맛집이라며 쫓아온 자들이 무릎을 꿇어 자비를 구하게 될 때까진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을 폭로당한 사람들이 내 앞에 넙죽 절을 바치기 시작했다.
광장의 분수를 중심으로 등을 엎드린 자가 수백에 이르렀다. 그중 맨앞 선두엔, 항구도시의 시장(市長)이 이마를 바싹 붙이고 있었다.
참고로 세금에 장난질을 쳤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주민들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시장의 얼굴이 살색에서 퍼런색으로 전직한 지 좀 됐다.
시장께서 패션 스타시네. 색깔 감각이 남달라. 아주 패션의 선두주자셔.
“저희가 당신에 비해 병신이었음을 겸허하고도 전적으로 인정하겠사옵니다…….”
하지만 시장은 딱히 현재 직업을 패셔니스타로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물로 돌바닥을 적시며 구슬프게 청한 것이다.
“향후 일백 년은 굶주리지 아니하시고 포만감을 느끼실 정도로, 이번 기회에 저희가 고개를 박고 조아리며 패배를 자인하겠나이다…….”
“음.”
“그러니 제발 부탁이온데 저희 도시에서 그냥 꺼져주시면 안 되겠사옵니까, 역병신이시여……?”
나는 인자한 정복 군주와 같이 근엄하게 턱을 까닥였다.
“윤허하노라.”
그러자 항구의 뭇 백성들이 감복하여 큰절을 올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거래가 성사됩니다.] [거래가 성사됩니다.] [거래가 성사됩니다.] [거래가 성사됩니다….]수백 개의 메세지가 연달아 터졌다.
나는 자비롭게도 도시를 떠나주기로 했으며, 저들은 나를 떠나보내게 되었다. 이 또한 훌륭한 거래 아니겠는가?
[상대방들은 이번 거래에 매우 불만족합니다.] [당신은 이번 거래에 매우 만족합니다.] [당신 혼자서 굉장한 이득을 보았습니다!]끝나지 않는 메세지의 파도 속에서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수백 명의 어깨가 동시에 움찔거렸다.
“걱정하지 마라. 내 반드시 약조를 지켜 떠나마. 다만 궁금한 것이 있구나.”
“무, 무엇이옵니까?”
“이곳에 도시가 여기 한 곳뿐임은 아닌 줄로 안다. 다음 도시로 행차할 것인즉슨, 지도를 구해다가 바치거라.”
시장은 경련했다.
실뱀이 정보를 폭로해준 까닭에 시장이 지금 머릿속에서 뭔 생각을 떠올리는지 훤히 보였다. 내가 여기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도시를 곳곳마다 돌아다녀 불을 지를 작정임을 깨닫고, 그 참화에 전율한 것이었다.
“물론이옵니다. 잠시만 기다리소서, 역병신이시여! 바로 바치겠나이다!”
물론 기쁨의 전율이었다.
자기 혼자만 망할 순 없잖은가?
알아서 이 세계의 다른 도시들을 친히 족쳐주겠다는데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시장은 관저의 하인들을 총동원하여 지도란 지도를 몽땅 구해왔다.
“이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지도들 가운데 가장 새끈하고도 정밀한 것만을 구해왔으니 역병신께서 보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줄 아뢰옵니다!”
“나쁘지 않구나.”
“가는 길에 영광만 있으시읍소서! 만세! 역병신 만세! 이 세상을 불태우실 군주이시여, 부디 세상을 순회하시어서 온 세상의 평균 온도를 높여주소서!”
주민들이 뒤따라서 만세! 만세! 하고 울부짖었다.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 실로 광영을 맞이한 눈빛이며, 구세주를 배웅하는 목소리요, 구체적으론 우리만 시궁창에 쳐박힐 일은 없어졌으니 참 잘됐다는 발악이었다.
“훗.”
나는 지도를 겨드랑이 사이에 안착시킨 뒤 등을 돌렸다.
펄럭.
긴 코트가 춤추며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퇴장하는 건맨처럼. 그리고 나는 수백 명의 시민들에게 들리도록, 쓰지도 않은 모자의 챙을 튕기듯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아듀.”
그 순간 메세지가 폭발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 더 불만족합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 더 불만족합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 더 불만족합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 더 불만족합니다!] [상대방이 이번 거래에 더 불만족합니다!]찬란한 포만감이 내 위장을 적셨다. 참으로 장관이고 절경이었다. 최고급 스테이크가 혀속에서 녹아 스르륵 사라질 때의 쾌감과 같은 만족감이 배를 가득 채웠다. 하늘은 마침 붉게 물들었나니 저것이 곧 내 입안에서 흐르는 육즙이었다.
-불쌍한 것들….
배후령이 딱한 표정으로 시민들을 쳐다봤다.
-그러게 왜 하필이면 이런 천하의 개쌍또라이를 건드렸니….
나는 도시를 빠져나와 유유자적 황야를 걸었다.
지도를 펼쳐 보니 세계는 넓고 바다는 더욱더 넓었다. 대부분이 바다로 이뤄진 세계였다. 하지만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등평도수(登拜渡水)를 깨우친 지 오래됐으니 감히 바닷물이 나를 막아세우긴 어려웠다.
기다려라.
이 세상은 내 손에 끝장난다.
[‘금화를 문 고양이’가 긴급히 대화를 요청합니다.]그때 어느 성좌가 메세지를 보내왔다. 금화를 문 고양이. 바로 이 세계, 금천을 다스리는 성좌였다.
[‘금화를 문 고양이’는 간절하게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도대체 당신의 뭐가 잘못된 겁니까??]아니.
내가 정말로 태우고 싶은 건 이 썩어빠진 세상일 뿐이란다.
34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