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5)
나의 죽음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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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얀빛이 가라앉았다.
눈을 뜬 순간, 나는 이미 전쟁터 한복판에 돌아와 있었다.
꽤 낯익은 광경이 시야에 성큼 들어섰다.
-키르르, 키에엑!
기이하게 울부짖는 괴물들.
그에 맞서 싸우며 피를 흘리는 병사들.
수천 마리에 이르는 몬스터 군단이 항구를 함락시키고자 달려들었다.
11층 스테이지. 일명 보급로 사수전.
아이김 제국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전투가 펼쳐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저희 제국을 도와주시러 오셨군요, 용사들이여!”
우리를 맞이하러 오는 장군 NPC의 모습은 지난번 회차와 다를 바 없었다. 똑같은 갑옷을 입었고, 똑같은 표정을 지은 채, 똑같은 대사를 흘렸다.
“용사들이여! 어서 저희를 도와 제국을 구원···.”
하지만 거기까지.
지난 회차와 똑같은 것은 거기까지에 불과했다.
장군의 말에 헌터들이 대처하는 순간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흑룡 집결!”
한 줄기의 냉혹한 목소리가 전장을 갈랐다. 흑룡의 주인. 마녀. 이제는 나 혼자만이 기억하는 어느 성문의 전투에서 그랬듯, 마녀는 오러를 담아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엔 사람들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부터 이 전쟁의 지휘권은 흑룡이 가진다!”
마녀가 전장을 오시했다.
“천무문! 자경단! 좌익을 맡아서 돌파해! 만신전과 상련은 우익을! 우리 흑룡은 중앙을 돌파하겠어. 지휘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전투가 끝난 다음에 말하도록! 지금 지껄일 여유가 있으면 오크나 한 마리 더 잡아!”
세상은 바뀌었다.
“우오오오오!”
헌터들이 지른 함성은 변화의 증거였다.
거대 길드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1층 스테이지가 집단전이라는 정보를 나한테서 공유받은 덕분일까. 지난번 회차같이 어리바리하게 멍 때리는 헌터는 없었다.
“아그들아, 잘 따라와라! 나보다 먼저 죽는 새끼 있으면 그놈부터 뒈진다!”
독사가 이끄는 천무문도.
“그건 대체 무슨 소리··· 아니. 아니다. 전원, 천무문을 백업해라! 저 멧돼지들이 나대다가 고립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성기사가 이끄는 자경단도.
“아하핫! 개별 행동은 즉결 사형입니다, 여러분! 철저히 팀별로 움직이십시오!”
이단심문관이 이끄는 만신전도.
“다들 혈기가 넘치는구만. 우리는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돕게나.”
백작이 이끄는 상련도.
어떤 길드에도 빈틈이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여 전장을 돌파했다. 전투에 특화된 헌터는 앞장서서 칼을 휘둘렀으며, 보조가 특기인 헌터는 뒤에서 마법 스킬을 영창했다. 대하(大河)! 마치 거친 강물처럼 헌터들은 괴물의 군세를 밀고 또 밀었다.
“오오···!”
장군 NPC가 탄성을 흘렸다. 눈앞의 광경에 감격한 걸까.
“역시 신께서 아직 제국을 버리지 않으심이 분명하도다! 보아라! 이세계를 건너온 용사들이 거침 없이 괴물들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은가! 제국의 장병들이여!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전군, 나를 따르라!”
장졸들이 함성을 지르고 우르르 몰려갔다.
나는 한 발짝 비끼어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그래.
역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그마한 암시다.
내가 조금만 달라져도, 조금 더 은밀하게 움직이기만 해도, 스테이지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이토록 뒤바뀐다.
그 때 배후령이 나직하게 말했다.
-좀비야. 괜찮냐?
‘예? 뭐가요?’
-이러면 네가 눈에 덜 띄게 되잖아.
배후령은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너처럼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거 좋아하는 애가 어디에 또 있다고. 사람들 관심받는 거에 환장하잖아. 이러면 저번 회차보다 너한테 쏟아지는 관심이 쫌 적어지는 거 아냐?
‘뭐. 아무래도 그렇겠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이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네요.’
-호오? 짜식. 그래도 조금 성장한 건가.
‘성장은 무슨···. 제가 챙길 수 있는 건 그래도 챙길 생각이거든요?’
문득, 목덜미 뒤로 시선이 느껴졌다.
등을 돌아보자 노년의 검사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검성이었다.
“어.”
나는 조금 당혹스러워서 물어봤다.
“거기서 뭐 하세요··· 어르신?”
“자네를 지켜보고 있다네.”
검성이 당연하단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까 말했잖은가. 5일 동안 지켜본 다음에 자네를 죽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겠노라고. 그러니, 지켜보고 있다네.”
“···어. 음. 설마 진짜로 24시간 내내 5일 동안 지켜보실 생각은 아니죠?”
“이상한 질문이로군. 당연히 그럴 작정이네만.”
맙소사.
그게 뭐냐. 스토커인가?
“아니, 어르신도 몬스터 잡으셔야죠! 이게 전투에 기여한 순서대로 퀘스트 보상이 주어질 건데요!”
“흠.”
검성이 눈길을 돌리더니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차아아악!
푸른빛의 오러가 순식간에 전방을 할퀴었다. 자그마치 스무 마리에 이르는 고블린이 비명도 제대로 질러보지 못하고 모가지가 날아갔다. 전쟁터 한복판에 피 분수가 꽃피었다.
검성은 유유자적하게 내 쪽을 돌아보았다.
“칼질도 틈틈이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
“본인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할 일이나 하게.”
과연 고인물.
어르신께선 한참 레벨이 다르셨다.
“어휴. 이거 참.”
나는 고개를 저으며 흑룡의 마녀에게 향했다. 도중에 흑룡 길드원들이 막아섰지만, 내 뒤에서 따라온 검성을 보고 멈칫했다. 결국 우리가 접근한 것을 깨달은 마녀가 직접 손짓하여 통행을 허락해주었다.
“무슨 일이야? 헌터 김공자. 게다가 할범까지.”
마녀는 미간을 좁힌 채 신경질을 냈다.
“나 지금 길드들을 지휘하느라 바빠. 정신이 별로 없거든? 되도록 30초 이내에 용건을 끝내주면 고맙겠어.”
“본인은 딱히 용건이 없다네.”
노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다만 이 젊은이를 쫓아왔을 뿐일세.”
“뭐? 그건 또 무슨··· 아니, 됐어. 관심 없어! 지금은 당신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부탁이니까, 중요한 용건이 아니라면 얼른 나가줘. 아, 거기! 4팀!”
검성한테 면박을 주는 와중에도 마녀는 길드원들한테 바삐 명령을 내렸다.
“멍청하게 앞으로 도출되지 말고 제자리를 지켜! 엉덩이에 창이 처박히기 싫으면 꼼짝 말고 있으라고! 12팀은 뭐하는 거니! 우리가 여기 산책하러 온 줄 알아!? 똑바로 사냥해!”
“죄, 죄송합니다! 흑룡주!”
“죄송하다고 사과할 짬이 있으면 칼이나 한번 더 휘둘러!”
정말로 바빠 보였다.
나는 서둘러 용건을 말했다.
“흑룡주. 저한테 10층 클리어 보상이 있어요.”
“그야 있겠지. 그래서 뭐?”
“이게 미니맵 보상이에요. 제 눈에는 전장이 미니맵처럼 한눈에 보입니다. 적군이랑 아군이 점들로 표시되어 있고요. 당연히 적군의 사령관이 어디 있는지도 보입니다.”
“······.”
비로소 마녀가 시선을 돌려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정말이야?”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뭐하겠어요. 진짭니다.”
“그럼 진즉에 나한테 오지 지금까지 뭐했니!”
덥썩! 마녀가 내 오른손을 잡았다.
“말하렴! 보스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데!?”
이 사람은 정신이 없을 때 본성이 드러나는구나.
“음. 저기예요.”
나는 미니맵에 표시된 방향으로 손끝을 세웠다.
“몬스터들한테 둘러싸여 잘 보이진 않지만 저쪽에-.”
“스킬 사용에 동의한다고 복창해! 어서!”
“어, 흑룡주의 스킬 사용에 동의합니다.”
“전이!”
파아아앗!
다음 순간, 마녀와 나는 허공에 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추락하고 있었다. 전쟁터 한복판의 상공. 까마득한 아래에서 몬스터의 군단과 인간의 군세가 바글바글거리며 다투고 있었다.
마녀는 바람에 흑발을 휘날리며 소리쳤다.
“어디!?”
“저기요!”
바람 소리가 거세어서 나도 소리를 크게 질렀다.
“제가 지금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이!”
마녀가 한번 순간전이를 외칠 때마다, 보스 몬스터가 위치한 곳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접근했다.
나는 상공에서 마녀를 조금 더 감싸 안았다. 별 뜻은 없었다. 그냥 오른손만 잡은 채로는 자칫 하늘에서 떨어져 버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걸 마녀도 이해했는지 얌전히 협조했다. 그리고 여전히 눈쌀을 찌푸린 채 외쳤다.
“당신, 칼을 쓰는 데엔 조금 자신 있어!?”
“여기 보스 잡을 정도는 됩니다!”
“그럼 몬스터 위로 전송해줄 테니까! 한방에! 알았지!?”
“예에!”
무슨 소리인지 아주 잘 알았다.
“전이!”
마지막 전이가 끝나자, 우리는 보스 몬스터의 바로 위쪽에 날아들었다.
불과 십 미터 아래.
화려한 금지팡이를 쥔 대왕 고블린이 주변의 몬스터에게 꽥꽥 소리치고 있었다. 제 딴에는 군단을 지휘하는 것이리라.
“김공자!”
“이라아아아아!”
나는 오러로 온몸을 두르고 기합을 질렀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은 걸까. 몬스터들을 지휘하던 대왕 고블린이 갸우뚱거리며 위쪽을 올려봤다.
-꼬륵?
대왕 고블린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촤아아아악!
칼날이 대왕 고블린의 정수리에 정확히 파고들었다. 몸뚱어리가 두 동강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보스 몬스터이건만 대왕 고블린은 저항조차 못 했다. 단지 억울하다는 듯 마지막까지 나를 쳐다봤을 뿐. 하긴, 따지고 보면 나한테만 2번 죽은 셈이니 억울할 법했다.
-케륵···.
-크, 르르···?
졸지에 우두머리를 잃어버리게 된 몬스터들이 어영부영 나를 쳐다봤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제대로 인지를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씩 웃어주었다.
“왜?”
대왕 고블린의 시체를 가뿐히 즈려밟으면서.
“너희도 두 짝으로 썰어주랴?”
그제야 뒤늦게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키이이이이!
-크르륵! 크르!?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의 잡졸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한 마리가 도망치자 여섯 마리, 여섯 마리가 도망치자 금세 서른 마리가 도망쳤다. 도미노가 무너지듯 사방팔방에서 몬스터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자아!”
옆에서 마녀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잘했어, 김공자! 세상에!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게 생겼다니! 아마 헌터가 50명도 안 죽었을 거야! 어쩌면 30명도 안 죽었을지 몰라··· 아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잖아!”
이렇게 흥분하는 마녀의 모습은 처음 봤다.
지난번 회차에서 무표정했던 이유는··· 혹시 초반에 헌터들이 얼 타다가 제법 죽어버렸기 때문인가? 지금은 피해가 매우 적어서 기뻐하는 거고?
‘의외로 단순한 사람이구나.’
얼마나 희생자가 적은가에 따라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자아자아, 너무 흥분했어요. 진정 좀 하시죠.”
“사람은 흥분할 때는 흥분해줘야 하는 거란다! 다시 한번 칭찬해줄게. 정말로 잘했어, 김공자! 탑을 공략한 이래 오늘만큼 적은 희생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적이 없었어. 자랑으로 여기려므나!”
마녀가 화사하게 웃었다.
성벽에서 연설했을 때처럼 슬쩍 입꼬리를 올린 게 아니라, 진심으로 활짝 웃은 것이다.
“혼자서 클리어 보상을 독점하고 싶었을 텐데도. 정말··· 새로운 영웅이 당신 같은 사람이어서 다행이야. 한숨 놓았지 뭐니.”
“······.”
“오늘부터 탑의 모든 언론과 기자가 당신한테 달려들 테니까 각오하렴!”
순전한 호의.
‘맞아.’
마녀가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 거야.’
그 손을 맞잡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들한테··· 그냥 많은 사람들한테 관심을 받는 것도 물론 기쁘다. 순전히 기분이 좋다. 그 사람들한테 최고로 받들어지고, 질투받고, 질시받고, 영웅으로 취급받는 거. 전부 다 기분이 째지도록 끝내준다.’
하지만.
‘이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것만큼은 아니야.’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살아서 최선을 이룩했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자들.
칼 한 자루로 정점에 오른 검성이나.
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일군 마녀.
그밖에 수없이 많은,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
‘나는···.’
마녀의 손을 꾹 잡았다.
‘이런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마왕 따위에게 농락당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온 자들을··· 염제처럼 모욕하거나 모독하지 않고. 조롱하지도 않으며. 냉혹한 비웃음으로 일관하거나, 비열한 수작으로 소일하지도 않고. 그저 순수하게 저들을 인정하며··· 저들한테 인정받고 싶다.
아니.
저들한테 존경을 받고 싶다.
설령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
조금 더 바뀐 세상에서.
나 역시 조금은 더 바뀌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가장 깊은 욕망이었다.
-짜식.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거 지켜보는 보람이 있는 새끼일세.
얼마 가지 않아, 11층 클리어를 알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하늘에는 거대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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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기여도 순위]
1위. 김공자
2위. 마녀(魔女)
3위. 이단심문관(異端審問官)
4위. 독사(毒蛇)
5위. 성기사(聖騎士)
6위. 백작(伯爵)
7위. 검성(劍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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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뀐 만큼, 클리어 순위도 미묘하게 바뀌었다.
지난 회차에서 2위를 달성한 검성은 쭉 미끄러져서 7위로.
반면, 지난번에 6위에 위치했던 마녀는 2위로 급상승했다.
그리고 마침내 들려왔다.
마(魔)의 12층을 열어젖히는 목소리가.
“이 기세를 타면 20층까지도 금방 클리어할지 모르겠어.”
마녀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적어도 오천 명은 희생될 거라고 짐작했는데··· 첫 출발이 좋네. 무척.”
아니다.
가만히 두면 12층에선 너무도 지독한 희생을 치르게 된다.
무엇보다 바깥과 교류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 상련주인 백작을 잃어버린다. 외부와 무역하는 통로가 끊기면 탑의 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혼란기가 찾아오겠지. 오천 명이 아니라 오만 명, 오만 명을 뛰어넘어서 오십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러므로.
‘내가 캐리한다.’
눈부신 빛이 우리를 감쌌다.
6.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그곳에 있었다.
제국의 알현실.
지난번 회차에선 핏물로 더럽혀진 대리석 바닥이 아직은 하얬다.
“오?”
“으음.”
헌터들이 차례차례 소환되었다. 나를 쳐다보는 표정은 제각각 다양했다. ‘당신이 먼저 와 있을 줄 알았다’라며 활짝 웃는 헌터가 있었고, ‘이번에도 1위를 차지할 줄이야’ 하고 분해하는 헌터도 있었다.
지난번 회차와 똑같이.
“김공자 헌터! 굉장하더군요!”
이단심문관이 쪼르르 달려와서 칭찬하는 것도 같았다.
“흑룡주와 그런 식으로 협력할 줄이야! 아핫.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한 것은 혹시나 지난 스테이지의 보상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
“잠시만요.”
그러나 지난 회차와 다르게, 이단심문관은 계속해서 나를 칭찬할 수 없었다. 내가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막아세웠다. 이단심문관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예?”
“여러분한테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헌터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녀는 살짝 상기된 표정인 채 그대로. 독사는 심드렁하게 눈썹을 찌푸린 얼굴로. 성기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백작은 부채를 지피면서.
다른 헌터들도 제각각의 표정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검성은?’
나는 노인의 동태를 먼저 확인했다.
“······.”
검성은 알현실 구석에 홀로 서 있었다. 조용했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나를 지켜볼 뿐.
‘됐다!’
지난 회차에서 다짜고짜 칼부터 날렸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제 됐어!’
12층 초반부에 벌어졌던, 그 속 터지는 다툼은 이제 없다.
내가 없앴다.
잠시나마 적대 관계를 멈추게 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어제. 제가 여러분한테 말씀드린 게 있죠.”
“어제라면?”
“부탁이요.”
이단심문관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제가 언젠가 부탁을 드리면 꼭 한 번만 들어달라.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 예!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부탁, 지금 들어주시죠.”
내가 헌터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길드장들은 부탁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앞으로 5일. 딱 5일 동안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여기 머물러주십시오.”
“······.”
“그러면.”
나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가 5일 안에 20층까지 클리어하겠습니다.”
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