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52)
4.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친놈이요?”
주민F 「그, 그렇다네. 거기로 계속 가면 아주 위험한 미친놈이 있어. 다가가면 안 돼! ……물론 중인환시의 대로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자네도 만만찮은 미친놈으로 보이긴 하네만….」
이 졸라맨이?
주민F 「자네가 좀 이상한 미친놈이라면 저어기 사는 건 아주 위험한 미친놈이야. 다가오는 사람을 족족 베어버리는 거 아니겠나!」
“헤에.”
주민F 「우리들 사이에선 [미친 무사]라고 불러. 그놈이 거기에 눌러앉은 이후로는 단 한 명도 그 너머의 땅으로 가지 못했다네…. 교류가 싹 끊겨버렸지 뭔가.」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여긴 양옆으로만 쭉 이어진 세계다. 웬 미친놈이 한 명 나타나서 길을 막아버리면 그날부터는 교통이 끊어지는 거다.
“우회하는 길은 없어요?”
주민F 「그야 있었네만…. 광인(狂人)이 나타난 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다네. 백 년은 가뿐히 넘었을지도 몰라. 그 광인은 자기가 틀어막은 곳을 피해갈 수 있는 우회로들까지 모조리 파괴했어. 억지로 우회로를 만들어도 보이는 족족 박살내니 당해낼 도리가 없네.」
진짜로 미친놈일세.
본래라면 길이 끊겨도 땅굴이나 하늘다리를 파서 피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땅굴’은 말 그대로 지하를 파서 내는 길. ‘하늘다리’는 기둥을 올리고 다리를 놓음으로써 만들어지는 길이다. 하지만 [미친 무사]는 그런 우회로들까지 싹 다 뭉개버렸다.
“그렇게나 강하답니까? 미친 무사.”
주민F 「말하지 않았는가. 실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저 모양이라고. 그동안 광인한테 도전했다가 목이 날아간 전사가 수두룩하네. 이젠 아무도 덤비지 않아. 덕분에 동서(東西) 간의 교역이 완전히 망했네!」
주민은 시무룩한 표정 (· ω ·) 을 지었다. 우리의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마을사람들의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똑같았다. 그리하여 예닐곱 명의 주민들이 동시에 (· ω ·) (· ω ·) (· ω ·) (· ω ·) 하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모두 나를 바라보면서.
좀 무섭잖아….
주민F 「자네가 어디까지 여행 갈 생각인진 몰라도 이 마을에서 유턴하는 게 좋을 걸세.」
주민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담긴 안색 (; -Д-) 으로 충고하였다.
주민F 「이 앞은 통행금지나 마찬가지야. 하루 푹 쉬었다가 돌아가게나.」
나는 친절을 받아 마을주민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내가 위험한 여행자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몇 가지 문답이 더 오갔지만, 아무래도 주민들은 내가 완전히 무해한 인간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정중하게 손님으로 대접해주었다.
“미친 무사만 잡아주고 떠나면 되겠네요.”
주민들이 제공해준 침실에서 누운 채 나는 배후령한테 말했다.
“클리어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미친놈은 말하자면 괴물이잖아요. 이 세상의 몬스터. 저 말고 언제 다시 75층까지 올라오는 헌터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제가 무시하고 넘어가면 또 수십 년은 지나버릴 겁니다.”
바보 「딱히 상관없지 않냐? 네 마음이지.」
배후령은 심드렁하게 대사를 쳤다.
그러나 배후령은 본래부터 솔직한 사람, 솔직함 빼면 시체인 양반이었다. 심지어 여긴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 배후령이 뭔가 마음에 걸리는 표정 (;ㄱ_ㄱ) 을 짓자, 알아보기 싫어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래요? 꼭 바보처럼.”
바보 「아니……. 흐음. 말하자면 그 미친 무사인지 뭔지 하는 놈이 이 세상 최강자란 거잖냐. 그리고 나는 기억은 안 나지만 75층을 분명히 클리어했고 말이다.」
“네, 뭐. 그랬겠죠.”
바보 「그래서 좀 마음에 걸린다. 나라면 틀림없이 세계최강이란 칭호를 가진 놈의 멱을 따버렸을 거란 말이지? 어떻게 그런 놈이 멀쩡히 살아 있는 건가 싶다.」
“호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딱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간단히 대답을 건네줬다.
“댁이 여길 클리어하고 난 다음 새롭게 나타난 사람인가 보죠. 뭐 이상할 게 있습니까?”
바보 「그른가……?」
배후령은 찜찜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 말에 반박하진 못했다. 가장 그럴싸한 가능성이었으니까. 우리 둘은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고 푹 잤다.
그리고 다음 날, 광인이 도사렸다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주민F 「거기 가면 안 된다니까, 젊은이!」
외부인이라곤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하룻밤을 보냈느냐 여부는 꽤 유의미한 차이였나 보다. 마을사람들은 어제에 비해 퍽 친근해진 기색으로, 그러기에 더욱더 난리를 피며 나를 말렸다.
주민F 「저 젊은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부터 알아봤어. 광증이 도진 거야!」
이 마을사람의 얼굴은 이랬다. (o口Д口o);;
주민D 「맞아. 남한테 피해를 주는 광기가 있는가 하면 자기한테만 피해를 주는 광기도 있지. 저 친구는 후자일세. 쯧쯧.」
이 마을사람은 ( •̀⌓•́).
주민C 「어쩌면 죽을 자리를 찾아 일부러 여기로 왔을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그만 떠나버린 거죠. 하지만 차마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어서, 용기를 낼 수 없어서, 누군가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찾아 이 마을까지 온 거죠…. 아아, 틀림없습니다…!」
저기 계신 분께선 ヾ(。>﹏<。)ノ゙.
참으로 다양한 표정들이 나를 배웅해줬다.
마을 바깥으로 나가자 [위험! 통행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길을 가로막았다. 가볍게 점프해서 지나쳤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 제법 정돈된 마을과 달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외길은 급격하게 황폐해졌다.
길 저편에, 이 세상의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미친 무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광인 「…….」
무사는 무표정 (=_=) 했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다만 내 오른발이 잡초를 밟아 버석, 소리를 내자 무사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피어올랐다.
광인 「오랜만에 방문객이 왔군.」
이 세계의 땅은 기본적으로————로 표현되었다. 수풀이나 잡목이 우거지기도 했지만 기본은 —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무사가 엉덩이를 깔고 앉은 곳 주변만은 丄丄丄丄로 그려져 있었다. 처음엔 좀 커다란 잡초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잡초보다 키가 높은 갈대숲인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둘 다 아니었다.
광인 「도전자인가?」
그것들은 전부 땅에 꽂힌 ‘칼’이었다.
광인 「길을 헤매다 잘못 들어선 놈이라면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주마. 돌아가라. 하지만 만일 나에게 도전하기 위해 찾아온 무사라면 기꺼이 여흥에 어울려주지.」
"……."
광인 「아니. 나도 그만 어리석은 말을 입에 담아버렸나 네놈이 다가오면서 내는 발소리에 눈을 기울였다. 기막힐 정도로 발소리가 일정하더군. 수십 걸음의 보폭은 무서우리만치 똑같았다. 그런 경지를 갖추고, 그만한 경륜을 지닌 자가, 멍청하게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 까지 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
무사는 천천히 일어났다.
광인 「묻겠다. 네놈은 헌터인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당신도 헌터입니까? 탑을 오르다가 그만 이 스테이지에 영원히 갇혀버린 건가요?”
광인 「아니. 나는 네놈의 동족이 아니다. 순수하고도 순진한, 이 세상에서 태어나 이 세상에서 자라난 현지민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어리석은 말이로군. 네놈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저 세상에서 죽은 거고, 그리하여 사후를 살고 있을 뿐이니까.」
스르릉.
무사는 땅바닥에 무수히 꽂혀 있는 칼들 중 하나를 잡아서 뽑았다. 이 주위에 널려 있는 수백 자루의 칼이 전부 그의 도검인 듯싶었다.
광인 「하지만 네놈들이 ‘헌터’라 부르는 인간과는 인연이 좀 있지.」
발도 동작이 이루어지는 내내 무사는 무표정한 (=_=) 얼굴을 유지했다. 어쩌면 무표정한게 아니라 무심한 걸지도 몰랐다. 헐겁게, 겨우 작대기로만 표현된 세상에서 그의 경지를 진지하게 헤아리긴 난해했다.
“인연이라면?”
광인 「검제.」
그리고 무사는 예상치 못한 이름을 말풍선에 새겼다.
광인 「나는 검제와 싸워서 패배하고, 그가 다시 오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5.
그때부터 무사가 스스로 밝힌 사정은 단순했다.
광인 「검제의 말에 따르면, 나는 검제와 똑같은 세계에서 태어났다가 죽어버린 자라고 한다. 즉. 나 역시 한때는 헌터였다는 얘기겠지.」
"……."
광인 「나는 기억할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곳에서, 이 세상에서, 검제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허면 거짓일 도리가 없다. 적어도 검제 본인은 내가 ‘자신과 똑같은 세계에서 살다가 죽은 옛 무사’임을 한 점의 의심 없는 사실이라 믿고 있었다. 즉, 검제와 나는 지인(知人)이었다.」
“……검제는 당신이 살아생전 어떤 이름을 갖고 있었는지 말해주던가요?”
광인 「말해주었다.」
광인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했던 이명을 읊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배후령을 쳐다봤다.
“맞습니까?”
바보 「응. 맞아. 그리고 저 녀석, 말풍선이 피어오를 때마다 이름이 표시되는데 그 이름도 내가 아는 이름이야. 아마 저놈이 말한 얘기들은 진실일 거다.」
배후령도 사실을 체크해주었다.
광인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실제로는 사후세계였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놀라운 것에 주관적으로 놀랄 필요는 없지. 나는검제와 결투했으며, 패했다. 하지만 검제는 ‘이미 죽은 옛 동향의 인간을 다시 한번 죽이는 취미 따윈 없다’며 내 목을 치지 않았다.」
"……."
광인 「그것은 과연 모욕적인 처사였다. 전생이라 한들 나로선 기억하지도 못하는 삶이다. 나보고 영원히 패배한 채로 살아가라는 것, 아니, 죽어가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나중에 다시 결투를 받아달라고 말했다.」
배후령은 별 생각 없이 재결투 신청을 받았었다고 한다.
언젠가 다시, 100층을 깨고 난 다음에 돌아와서 싸워주겠노라며.
광인 「세월이 흘렀지.」
그리고 잊어버렸다.
당연했다. 기둥과 관련된 사건들은 모조리 잊어버리게 되어 있다. 그게 탑의 율법이다.
나와 다르게 배후령은 기억상실에 대한 면역을 확보해두지 않았다. 나 때와 달리 [태고의 지팡이]는 배후령에게 뭐든지 가르쳐줄 만큼 친절하지도 않았다.
80층에 도착한 순간, 배후령은 70층부터 79층까지의 기억이 통째로 왜곡됐을 테지.
광인 「뭐, 검제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광인 「아니. 어쩌면 내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세상은 제법 넓다. 혹시라도 나를 찾지 못할까 봐 이렇게 자리를 잡고, 오는 사람을 족족 위협하고 있다. 덕분에 나의 악명이 알려졌지. 온 세상에 퍼질 정도로 말이다. 즉. 이 정도라면 찾아오지 못할 수가 없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배후령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한 게 모든 악행의 원인 아닌가.
“댁, 민폐 개쩌네요……."
바보 「아니아니. 기다려봐라. 딴 건 몰라도 이번 건은 억울해. 나 진짜로 기억이 안 나걸랑?」
“그거예요, 그거. 이번엔 바로 그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정말.”
바보 「끄응…….」
50층에서도 그랬지만 이 양반이 100층을 정복하지 못한 까닭에 해결되지 못한 채 내버려진 문제들이 참 많아.
나는 본의 아니게 배후령이 싼 똥들을 치우면서 탑을 오르는 중이고 말이다.
광인 「너는 검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군.」
“어. 네. 자세히 말해주기엔 너무 복잡합니다만…. 검제의 제자 비슷한 거라고 보면 대충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아마 검제가 다시 돌아와서 당신과 결투하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
광인 「그런가.」
무사는 무심한 표정 (=_=) 에 변화가 없었다.
광인 「그렇다면 검제 대신에 너라도 잡아야겠군.」
“아……. 역시 일이 그런 식으로 됩니까?”
광인 「물론이다. 이대로 물러서면 나는 긴 시간을 허송세월한 것이 되어버린다. 검제가 죽었다면 그것뿐인 이야기로, 내가 속을 졸이고 말 일이다만, 검제의 제자가 나타났다면 말이 달라진다. 네 입장에선 전혀 관계없는 분풀이처럼 보일지 모른다만 나는 너라도 이김으로써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싶다. 아니. 확실히 분풀이로군. 너를 잡아서 내 분을 풀겠다.」
“솔직하구먼요.”
광인 「그런가. 잘 모르겠군. 솔직함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는 알지 못한다.」
뭐, 좋아.
어차피 퇴치할 생각으로 왔으니 상관없다.
단순히 미친놈을 사냥할 뿐만 아니라 배후령의 똥을 치우는 일이라면 그 나름대로 의미도 있으리라.
광인 「그럼, 정정당당히 승부하지.」
탓!
땅을 밟아 큼직한 폰트를 새기며 무사는 돌진해왔다. 나 역시 성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틈을 노리기 위해 무사가 넓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
‘어라?’
치명적인 문제점을 깨달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어? 응?’
오러로 시간의 감각을 연장시켰다. 늘어진 시간선상에서 무사는 칼을 번쩍,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만일 평소와 같았다면 나 또한 검을 올려 막아섰을 거다. 그게 정석이었다.
문제는.
‘……지, 지금 저 사람이 어디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거지?’
3차원의 싸움에 익숙해진 내 입장에서 2차원으로 칼을 휘둘러대는 무사의 동작은 낯설기 그지없다는 사실이다!
‘우상단? 좌하단? 아니, 그냥 정면인가? 그럼 나도 정면으로 칼을 들어서 막아야 하나? 잠깐. 그럼 칼을 옆으로 비끼어 흘리려면 어떡해야 돼? 옆으로 흘린다는 것 자체가 가능이나 한가? 여긴 그냥 평면이잖아!’
나는 황급하게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 보았다. 우상단을 막는 자세. 좌상단을 막는 자세.
하지만 [이 세상]에서 표현되는 작대기는 허접스러웠다. 내가 무슨 자세를 취했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지, 하물며 상대방이 [어떤 경로]로 공격해오는 건지, 전혀 확신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Д◉) !?!?
같은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광인 「각오해라.」
내가 허둥지둥거리는 동안에도 당연히 무사는 개의치 않고 돌격해왔으며.
“잠깐! 자, 잠깐만! 기다리십쇼! 이거 뭔가 이상……!”
서걱!
나를 향해 졸라맨 무사가 칼을 휘둘렀다. 그리하여 나는 상단을 막아야하는가 하단을 막아야하는가에 대한 2지 선다에 들어서게 됐다.
35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