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61)
4.
세상이 새까맣게 뒤덮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태고의 지팡이]가 경악하여 입을 벌린 모습이었다.
아마도 마법사는 뭐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 ——-!?”
하지만 마법사가 외친 소리까지 인식할 수는 없었다. 이미 나는 노이즈에 의해 목이 물어뜯겼으며, 내 죽음을 유예시키기 위해 오러를 동원하지도 않았다. 죽음은 빨랐다. 느렸다.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하고 있습니다.]순식간에 바뀌는 풍경의 유속을, 내 머리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다. 빠름과 느림의 엇박자 속에서 무언가가 뒤섞였다. 물과 기름. 백 과 흑.
그리고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영혼과 영혼이.
화로(火爐) 위에 떨어진 한 싸라기 눈처럼, 나의 죽은 정신은 나를 죽인 몸으로 순하게 녹았다.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하고 있습니다.]그녀는 아주 오래 전에 태어난 어부였다. 따라서 나는 아주 오래 전에 태어난 어부였다. 동어반복의 어법 속에서 그녀는 나였고, 나는 그녀였다.
라비엘이 되었을 때처럼. 스승님이 되었을 때처럼.
인간도(人間道)의 트라우마 한복판에서 그녀-나는 와인빛으로 물든 바다를 노려보았다.
『파도가 울고 있어.』
파도가 거칠었다. 거친 냄새가 느껴졌다.
물에도 냄새가 있음을 어부인 그녀는 알았다.
태양이 잔잔한 날엔 물도 깨끗했다. 하지만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올 때는 물에서 땀이 흘렀다. 짠내였다. 침이 고인 냄새가 나면 그 여울목에선 소용돌이가 쳤다. 구린내였다.
그리고 지금, 파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피해야 해. 파도가 울고 있어.』
그녀는 그저 본능에 따라 중얼거렸을 뿐이다.
아직 인간이 짐승의 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였다.
저 남쪽의 너른 사막에는 산처럼 드높은 황금신전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주술사이고 마술사여서, 사람이 내는 목소리를 기이한 그림들로 모조리 가둬버릴 수 있었다.
나는 그 황금신전이 ‘피라미드’를 닮은 건축물이며 그 주술이 ‘문자’임을 알았다. 그녀는 몰랐다. 오직 극소수의 인류만이 문자라는 축복을 누리는 시대에, 한 여자가 물고기를 잡으며 항해하고 있었다.
『어서 피해야…….』
쿠루루루르-!
여자는 배를 돌리면서, 등 뒤를 쳐다보았다. 멀리서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다. 뜨거운 용암이 산꼭대기에서 꿀럭거렸다. 시꺼먼 구름. 벼락. 흙비. 이 세상에 종말을 고하겠다는 듯 화산은 울부짖었다.
『…….』
여자는 본능적으로 배를 느리게 몰았다. 파도의 눈물이 옅게 맡아지는 곳으로만 배를 돌렸다. 본래라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집에, 고향에, 바닷마을에 한나절이 넘어서야 돌아갔다.
마을은 없어져 있었다.
『…….』
나무조각 몇 점만이 수면 위에 남았다. 철썩-. 절벽에 파도가 치면, 바위에 몰린 나무조각들이 온화하게 흔들거렸다.
생존자는 없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구름이 끼어 있었다. 하늘에서 온 구름이 아니었다. 땅 속에서 트림을 한 구름이었다. 지하에서 올라온 구름은 하늘의 것보다 훨씬 더 짙었고, 훨씬 더, 체취가 진했다.
온 바다가 시꺼멓게 울고 있었다.
『……피해야 해.』
그녀는 배를 몰았다.
사라진 것은 고향뿐만이 아니었다. 이웃마을도. 이웃의 이웃마을도. 이웃의 이웃의 이웃마을도. 해안가에 조개비처럼 다박다박 들러 붙어, 겨우 한 조각의 삶에 달라붙어 있던 마을들이 모조리 없어졌다.
『살았는가?』
사라진 마을은 꼭 한 명씩은 생존자를 남겼다. 꼭 자신처럼.
『살았어.』
『파도가 울고 있다. 계속 울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나와 똑같이 파도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이였다. 나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나도 파도의 눈물이 느껴져.』
『많이 죽었다. 신이 분노했다. 우리도 죽어야 하는가?』
『피해야 돼. 어서. 어서 피해야 돼. 따라와.』
『어디로?』
『가장 큰 마을로.』
배를 몰았다.
한 명이 두 명이 되었다. 두 명이 셋으로, 넷으로, 다섯으로, 열여섯으로 늘었다. 그들은 모두 생존자였다. 열여섯의 생존자는 열여섯 마을의 죽음을 의미했다. 오직, 그 마을들에서 가장 파도와 친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모두 죽었다.』
가장 큰 마을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덧 배몰이꾼은 서른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마을을 건너 다음 마을, 다음의 다음 마을로 갈 때마다, 생존자들의 언어는 나와 달라졌다.
『이제 어디로 가는가?』
가장 처음 만난 생존자는 자신과 소리가 똑같았다.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우■는 죽어야 하는가?』
여섯 마을을 건넌 시점부터 소리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와 소리를 뒤섞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것은 천벌■다. 신의 분노■.』
열두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소리들은 기괴하게 울어댔다. 귓속이 웽웽거렸다. 눈썹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힘들었다.
『■■가 울고 ■속 ■■ 있■.』
스물네 마을을 지나자, 그녀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파도의 눈물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
하늘을 올려보았다.
벌써 수십일 째, 세상이 어두웠다.
추웠다. 어부들은 몸을 움츠렸다. 되는 대로 지푸라기를 모아 살을 가렸지만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탁, 지금도 누군가가 이빨을 부딪혔다. 탁. 탁. 그녀는, 나는, 가만히 이빨들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피해야 돼.』
『어■로?』
『어디론가.』
소빙하기였다.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안락한 빗물과 파도를 안겨주던 시대는 바야흐로 종말을 맞이했다. 화산은, 단지 종말을 조금 앞당긴 것에 불과했다. 나는 이것을 지식으로 알았으며 그녀는 이것을 본능으로 알았다.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쓸려나간 마을과 버려진 폐허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
도대체 몇 개의 마을을 지나쳤을까.
『■■■■ ■■■■! ■■■!』
어느새 그녀를 뒤따르는 배몰이꾼은 예순 명이 넘었다. 마침내 ‘살아남은 마을’에 당도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녀는 ‘마을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조금도.
마을사람들은 어째선지 창을 들고 있었다. 돌을 던졌다. 그들이 던진 창에 ‘생존자’의 가슴이 찔렸고, 돌멩이에 머리가 깨부수어졌다. 첨벙. 첨벙. 배가 엎어져 시체가 떨어졌다.
첫 번째 마을에서 만난 남자가 이쪽을 돌아봤다.
『우리는 죽어야 하는가?』
언제나 받던 질문.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입술을 열어 대답했다.
『아니야.』
학살이 일어났다.
배몰이꾼은 돌칼을 들어 ‘마을사람들’을 죽였다. 그녀를 포함해서, 생존자들은 전원이 가장 뛰어난 사공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항상 배를 모는 일보다 쉬웠다.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싸움이 끝나고 그녀는 마흔여덟 번째 마을의 생존자를 불러서 물었다. 그는, 그래도 이곳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살던 어부였다. 아직 여기의 소리를 들을 줄 알 터였다.
『■■……. ■■■ ■■ ■■■……!』
『우리가 신의 벌을 받을 거라고 말하는 거 같다』
마흔여덟 번째 생존자가 통역했다. 자기도 정확한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우리보고 해적이라고 했다.』
『해적? 해적이 무슨 뜻이야?』
『바닷사람을 말하는 거 같다.』
그 마을부터 생존자들은 더 이상 ‘어부’가 아니라 ‘해적’이라고 불렸다.
예순 명의 해적은 아흔 명으로 늘어났다. 더. 더. 더. 더. 난파한 배의 잔해가 서로 모여들어 파도치듯이, 추운 날에 새끼 짐승들이 서로 살갗을 부비듯이, 멸망해버린 모든 바닷마을의 생존자는 그녀한테로 왔다.
『■■이 ■■■.』
『세상이 끝났다.』
배몰이꾼이 다른 배몰이꾼의 소리를 걸러주었다.
『■■■ ■■다.』
『모두가 죽었다.』
『■■도 ■■■ ■■■?』
『우리도 죽어야 하는가?』
백 명의 어부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자기가 해야 할 대답과, 할 수 있는 대답과, 하고 싶은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파도의 냄새처럼 자명한 것이었다.
『아니.』
이백 명의 앞에서도.
『아니.』
삼백 명의 앞에서도.
『아니.』
그녀는 똑같이 대답했다.
『피해야 돼. 나를 따라와.』
오백 척의 배가 그녀를 따랐다.
『■■■■!』
가는 곳마다 싸움이 벌어졌다. 왜 싸워야만 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싸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는 분명했다. ‘멸망하지 않은 마을’에는 곡식이 숨겨져 있었다. 옷이 있었다. 날카로운 돌칼이 있었다.
싸움을 거부해야 할 이유만이 없었다.
『■■■! ■■. ■■■ ■■■■……!』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마을을 쓸고 폐허를 버리며, 남으로. 남으로.
『■■■■■■!』
세상은 추웠다.
세상은 어두웠다.
단지 바다절벽에 들러붙은 하얀 조개껍질처럼, 겨우 손톱을 세워 목숨을 붙들고 있어서, 여기에 달라붙은 동안에는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
『■■■…….』
철퍽.
불태워지는 ‘큰마을’ 아래서 그녀는 칼을 휘둘렀다.
『■■■■…….』
『■■, ■■■ ■■■■■…….!』
『■■ ■ ■■■■…….』
‘큰마을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시체들을 둘러보며, 아직 시체는 아니지만 곧 시체가 될 ‘큰마을사람’을 쳐다보며, 문득 그녀는 말했다.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
그녀는 열두 번째 마을의 생존자를 불렀다. 열두 번째 생존자가 서른두 번째 생존자를 불렀다. 서른두 번째가 쉰한 번째를, 쉰한 번째가 백 번째를, 백 번째가 백일흔 번째를, 백일흔번 째가 이백쉰두 번째를.
『왜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려 하는가?』
이윽고 오백여든한 번째가 물었다. 오백여든한 번째와 한 번의 질문과 한 번의 대답을 주고받으려면, 수십 번의 통역이 필요했다. 수십 명이 조잘조잘거렸다.
마치 파도처럼.
파도처럼, 파도처럼, 파도처럼. 수십 번 겹쳐지며 어부들은 서로 속삭였다.
『이 ‘큰마을사람’들은 주술사야.』
그녀 또한 속삭였다.
『이들은 소리를 가두는 마술을 알고 있어.』
그녀는 점토판을 주워서 어부들한테 보여주었다. 그림이 찍혀 있었다. 읽는 방법도 쓰는 방법도 몰랐다.
하지만 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들의 마술이라면 우리도 소리를 남길 수 있어.』
『왜 우리의 소리를 남기려 하는가? 파도는 칠 때만 파도다. 소리는 사라진다. 그것이 파도의 일이고, 우리는 파도의 일을 따른다.』
『여기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어디론가’야.』
그녀는 점토판을 가리켰다. 한 명 한 명, 어부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그들이 여기를, 이곳을 바라봐주기를 원했다.
『피해야 돼. 여기로. 내가 따라오라고 말한 곳은 여기야. 왔어. 우리는 왔어. 말해줘.』
『…….』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파도가 멈추었다.
『모른다.』
오백여든한 번째 파도가 말했다.
『모른다.』
『…….』
『저들이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
뒤이어 이백쉰두 번째 파도가 모른다고 말했다. 백일흔 번째 파도가, 백번 째 파도가, 쉰한 번째 파도가, 서른두 번째 파도가, 열두 번째 파도가, 작게,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파도가 쓸려나가면서 소리를 내었다.
『아무도 모른다.』
파도는 그녀의 발치에 와서 마지막으로 찰랑거렸다.
『…….』
그리고 파도 소리는 사라졌다.
『…….』
단지 파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눈물의 냄새가 느껴졌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왜 단 한 번도 냄새가 그치지 않았는지 그녀는 알았다. 이렇게 되리란 것도 어쩌면 알았다.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서, 그녀는 점토판을 던졌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미안해.』
탁, 하고.
『이■. 어디로 ■야 하는가?』
『미안해.』
불길이 타올랐다.
『■■ 어디로 ■■ 하■■?』
『미안해.』
탁, 불이 타올랐다. 탁. 탁.
『■■ ■■■ ■■ ■■■?』
『미안해.』
조용히.
[트라우마 구현 완료.] [피대상자의 자아가 유지된 것을 확인.] [페널티를 종료합니다.]5.
어디선가 파도의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다.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나는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
24시간 전으로 회귀하는 절차는 작동되지 않았다.
이곳은 지하 1층. 시간의 흐름이 여타의 층들과는 다르다고 했던가. 아니면 관리자인 기둥들이 임의로 스킬에 제동을 건 것일까? 지금 내 곁에 여우님이 없는 만큼, 나의 시간선이 절대적인 우선권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구르르르르…
내 눈앞에는 노이즈가 있다.
소음이 되어버린 삶이 있었다.
이제는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게 된, 그저 으르렁거릴 뿐인 무언가. 무엇이었던 것. 철컹! 그것은 쇠사슬에 묶인 채 내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바둥거렸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써서 당신은 죽은 이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니? 그래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나보다 더 정확히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거야? 그게 너의 답이니? 하.”
나는 검을 뽑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영혼한테 직접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어? 설령 트라우마를 본다 하더라도, 아무리 가까워져도, 그 영혼이 직접 말하는 건 아니—-.”
그리고, 노이즈를 베었다.
“—–뭐?”
마법사가 입을 열어 제지할 틈도 없었다. 나의 칼은 노이즈를 갈랐다. 노이즈는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어쩌면 이미 비명만을 지르고 있는 터에, 가벼이 베였다.
노이즈는 잿가루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당, 신. 지금, 무슨 짓을…….”
카드 오픈.
[스킬을 발동합니다.]그것은 내가 일찍이 얻어낸 황금.
+
[백귀 환생(百鬼還生)]랭크: SSS
효과: 당신이 직접 죽인 자들을 소환합니다. 사자(死者)는 생전의 능력을 계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할 경우, 사자는 생전의 기억과 외형을 계승합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만 몬스터로 소환됩니다.
+
나는, 소음의 일생을 살았다.
그럼으로써 소음의 [좌표]를 특정해냈다.
나는 소음이 되어버린 비명을 베었다. 그
럼으로써, 소음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백귀환생이 발동됩니다.]모든 조건은 충족되었다.
허공에서 사라진 잿가루는, 밑바닥에서 다시 새까만 잿물이 되어 올라왔다. 흑색의 물은 점점 더 형태를 갖추었다.
내가 아는 눈동자, 내가 아는 얼굴.
한 때 나였던 몸짓으로.
“…….”
바다를 닮아 파란 눈동자를 가진 자가 깜빡, 나를 바라보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태고의 지팡이는 입을 다문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른 기둥들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말을 허락받은 존재는 오직 나와 그녀뿐이었다.
“…….”
그녀는 입을 열어서.
“너는 누구야?”
어디선가.
파도의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다.
“안녕.”
나는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언어가 아니라, 탑이 자동으로 번역해주는 언어가 아니라, 그녀의 삶을 살아서 그녀의 귀와 입으로 배운 소리로 말하였다. 투박하고 거친. 바다의 내음을 간직한. 아주 잠깐 저 먼 바다에서 몰려왔다가 절벽에 부닥쳐, 하얗게 하얗게 사라졌을. 파도의 소리로.
나는 그녀의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파도.”
그리고, 그녀에게 무엇이 되어줄지도.
“나는 너의 마지막 파도야.”
저는 당신들에게 어디론가가 되겠습니다.
3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