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63)
6.
결투는 끝났다. 태고의 지팡이가 패배했고 내가 이겼다.
만장일치로 종결된 싸움이었으니 뒷처리만 남은 거다.
“사왕… 아니. [비명을 모으는 하늘]을 새로이 기둥으로 세우실 생각입니까? 공작.”
구원하 남작이 물었다. 하지만 탑주는 가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명천(鳴天)은 지금 기둥이 되길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명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에. [비명을 모으는 하늘]은 좀 길잖아요? 비명이니까 명천. 사람들의 기억을 모은다는 것은 곧 그 사람들의 이름을 거둬들임이니 명천(名天). 그 사람의 일생을 살아 목숨을 돌려주는 것이니 명천(命天)이에요. 마지막으로 저승을 다스리는 하늘, 어두운 명부의 하늘이니 또한 명천(莫天)이로군요.”
“이름 잘 지으시네요.”
“소인은 아이를 많이 두었거든요. 필요한 기술이었어요.”
왜인지 탑주가 아니라 공녀가 자랑스레 가슴을 펴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요? 명천은 지금 당장 기둥이 되길 원하나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당장 기둥이 된다면, 그건 곧….”
“명천의 등천로는 여기서 그치겠지요.”
탑주의 말이 이어졌다.
“성좌는 한 층을 제어하지만, 기둥은 탑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이예요. 성좌가 자신이 다스리는 층 안에 뛰어들어 노는 것이 업적이 되지 못하듯, 기둥 된 자가 탑을 오르는 것도 앞 뒤가 안 맞는 일이니까요.”
나는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우선은 100층에 오르고 싶습니다.”
그 말이, 아마도 기둥들에게는 의외로 들렸던 듯했다.
하지만 탑주는 그리 말해올 거라고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완전무결한 성좌가 되는 걸로 마무리를 짓겠어요. 김명천 씨.”
“그런 식으로 개명되는 건 좀 싫군요….”
“김멍청 씨.”
“너무하는구만!?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럴싸한 이유들을 쫙 늘여놓아서 작명한 거죠?!”
“진정한 성좌로 거듭나기 위해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조건이라고 할지, 절차이지요. 이 절차를 완수하면 비로소 그대도 신도들에게 가호를 내릴 수 있게 되어요.”
“무엇입니까?”
“성좌로 완성된 다음부터는, 영원히 스킬을 지울 수 없어요.”
“…….”
“어디 볼까요.”
탑주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스르르륵, 허공에 네모난 형체들이 생겨나 느릿느릿 부유했다.
황금빛과 은빛, 동색으로 얼룩진 그것들은— 다름 아니라, 나의 스킬 카드였다.
“[너처럼 되고싶다(S+)], [회귀자의 태엽시계(EX)], [검의 성좌(A+)], [백귀환생(SSS)], [고블린 상류사회(F)], [마천신공(A+)], [찢어진 여신의 구원(A+)], [마천진법(S)], [지골룡의 두개골(SSS+)]…….”
탑주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봤다.
“정말. 알짜배기들만 가지고 있군요. 자기가 봐도 양심이 출타한 거 같지 않나요?”
“알짜배기만 가졌다고 하기엔 [고블린 상류사회(F)]가 있다구요?”
“무슨 소리예요. 그거야말로 그대의 정체성이잖아요. 다른 모든 카드들을 포기하더라도 고블상만은 사수해야 할 거예요.”
“과연 눈이 높으십니다.”
역시 이 탑주는 말이 통한다.
“그러니까 기회를 드리겠어요. 명천.”
“기회라면…….”
“간단해요. 예전에 명천은 11층에서 19층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백귀소환(SS)]을 [백귀환생(SSS)]으로 업그레이드 했었지요? 그것과 똑같은 보상. 즉 스킬들을 통폐합할 기회를 드릴게요.”
스킬들의 전면적인 통폐합.
“남작이 공작으로 승작할 때, 자기가 보유한 호칭과 봉토를 한차례 정비하는 일과 같아요. 여기저기 자잘하게 흩어진 영지들을 싸그리 묶어서 [공작령]으로 통합하는 셈이랄까요? 겸사겸사 가지질도 치고.”
어느 왕국의 귀족이기도 한 탑주는 들고 나온 비유도 참 귀족적이었다.
“……제 마음대로 스킬들을 조작할 수 있는 겁니까?”
“예에. 소인을 설득해야겠지만요.”
탑주는 얼굴 하관을 가린 채 키득거렸다. 팔락. 지구의 어떤 양식과도 닮지 않은 기나긴 소매가 나풀거렸고 그 위로 보라색 눈동자가 반개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보상이 아니에요. 명천. 알고 있겠지만, 자신이 어떤 성좌가 될 것인가 확정해버리는 거예요.”
“…….”
“신은 명확해야해요. 직관적이어야 해요. 왜냐하면 신은 돕는 자이며, 누구를 도울 수 있는지 명징해야만 비로소 신도들도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어요. 무티아를 보세요. [너의 인생을 회귀시켜줄 수 있다]. 이 얼마나 뚜렷한가요? 반면…….”
“도철(響醫)은 뭘 해주는 성좌인지 불분명했죠. 과연. 성좌의 강력함이란 권능의 직관성입니까.”
“네에네에. 바로 그거. 요컨대 ‘스킬셋을 잘 갖춰라’라는 말이에요. 간단하지요?”
나는 턱을 짚고 시선을 내리깠다.
고민에, 잠긴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즉, 내 권능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들을 위할 수 있을까.’
즉, 내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즉, 내 버팀목은 무엇인가.
고민은 길었다. 나 나름대로 대답도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탑주가 가만히 나를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구원하 남작한테 일을 맡기고 떠날 수도 있을 텐데. 결투는 끝났고 이건 뒷처리에 불과하다. 왜 계속 남은 거지?’
물론 탑주는 내게 호의를 보여주고 있다. 부하한테 잡무를 맡기기보다 자기 스스로 내게 보상을 내려주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해석에 이르렀다.
“……당신에게 물어볼 수 있군요.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지, 저는 당신한테 조언을 구해서 들을 수 있는 겁니다.”
탑주는 빙그레 웃었다.
“정답이어요.”
역시.
나는 심장에서 부담감이 녹아 내렸다. 탑주는 이 탑의 신이다. 정중앙에 놓인 기둥이요, 가장 높은 밤하늘에 박힌 별빛이다.
만일 내가 성좌로서 강해지고자 한다면 이보다 더 도움이 될 조언자가 어디 있겠는가?
‘없다. 단언컨대 없어. 이건 기가 막힌 기회야.’
탑주의 말엔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내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단순히 스킬을 통폐합할 기회뿐만 아니라 탑주를 이용할 기회를. 이런 찬스를 받고도 쓰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김멍청이겠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신상필벌. 노력한 사람에게 보상이 있으리라. 귀족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걸요.”
“그렇다면 바로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지치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아직 대회의장에 남은 기둥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감정이 담긴 시선들. 그들이 딱히 숨기지도 않았기에 나는 바로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질투. 시기.
탑주는 그들의 주인이었다. 탑주의 일생과 성정을 미루어 볼 때, 아마 그들의 사랑을 독점하는 주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독점받는 만큼 독점하길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였다.
‘이제 정말 기둥들과 경쟁하는 처지가 됐구나.’
내가 라비엘에게 지고지순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걸까.
‘아마, 그러겠지.’
단지 지금 이 순간 내가 탑주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를 시기한다.
내가 탑주의 호의를 얻어서가 아니다.
탑주가 내게 호의를 주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저들은 내가 100층에 오르지 못하도록 방해할 공산이 크다. 반칙을 저지르진 않을 거다. 그건 탑주의 총애를 잃는 우책이니까. 어디까지나 공정하게, 게임의 룰을 결코 어기지 않는 한에서, 나와 승부를 벌이리라.
이미 [태고의 지팡이]가 패배했다. 저들은 절대로 나를 경시하지 않는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고, 그래서 탑주는 내게 지금과 같은 [기회]를 허락했다.
잘 싸워보라고. 힘내라고.
그러니까 더욱더 지금 기회를 살려야 한다.
“흐응. 어떻게 해서 지치지 않느냐, 인가요.”
“예. 저는 아직 안 지쳤지만 성좌가 되고 나선 다를지 모릅니다.”
나는 많은 이들을 생각했다.
“당장 여우님이 지쳤지요. 처음 만난 에스델도, 저로 인해 지치기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속으로 곪아 있었어요.”
어찌 그들 뿐이겠는가.
내가 만난 성좌들 대부분은, 하무스트라를 포함하여,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에게 지쳐 있었다.
길게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탑주의 사례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사랑이에요.”
탑주는 간단히 답했다. 진리를 계시하는 사제처럼.
“소인은 사랑하는 자들을 주변에 두어요. 아니, 주변에 있는 자들이 소인을 사랑하게 만들어요. 소인이 힘들어하면 연인들은 더 힘들어 해요. 소인이 기뻐하면 연인들이 더 기뻐해요. 그러면 살맛이 나요.”
“……연인들 입장에선 죽을맛 아닐까요?”
“그러겠지요.”
탑주는 또한 간단히 긍정했다.
“하지만 소인이 연인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요.”
“…….”
“오직 소인만이 연인들에게 지고의 행복을 선물해주어요. 그들이 아파하면 왜 아픈 건지 소인은 그들보다 더 잘 알아요. 더 아파해요. 더 기뻐해요. 따라서, 설령 소인으로 인해 연인들이 아파하더라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소인보다 연인들을 더 행복하게 해줄 사람 따윈 없으니까.”
광오하다 할 만한 확신으로 탑주는 말했다.
“연인들의 고통과 행복이 느껴지면 소인은 살아있다 실감해요. 뚜렷하게. 손에 잡힐 정도로. 어떻게 해서 지치지 않느냐고요? 단순해요. 삶의 실감이 느껴지는 이상, 소인은 지치지 않아요.”
과연.
죽어도 참고하고 싶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참조할 법한 전술이긴 했다.
나는 마음을 결정했다.
“저에게 스킬을 하나 주십시오.”
“으흠? 개정해주는 수준이라면 모를까 완전히 새로 주는 건 조오금….”
“괜찮습니다. 완전히 새 스킬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저한테 있다고 봐도 무방한 스킬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괜찮긴 하지요. 무엇인가요?”
“[어느 회귀자의 사랑].”
탑주는 눈을 치켜떴다.
“호오.”
“아시다시피 라비엘이 가진 스킬입니다. 라비엘과 저의 시간을 이어주는 스킬이고요. 저도, 라비엘과 똑같은 스킬을 지니고 싶습니다.”
“어차피 한 쪽만 가지고 있어도 효과는 똑같을 텐데요. 정 가지고 싶다면 들어드리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아깝지 않아요? 이젠 스킬 칸이 넉넉하지도 않잖아요.”
“우리 탑주님이 센스가 없으시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결혼반지는 원래 둘 다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어서 주세요.”
내 말을 듣고 탑주는 크게 웃었다. 뭐 때문인지 몰라도 결혼반지라는 비유에 터진 것 같았다. 비단이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수놓으며, 톡! 탑주는 허공을 두들겼다.
[지고한 사랑과 지순한 동경.] [‘만생의 주인’은 당신의 사랑을 인정하여 스킬을 선물합니다.]금빛의 카드가 내 눈앞에 생겨났다.
+
[어느 회귀자의 사랑]랭크: EX
효과: 회귀자에게 사랑은 독과 같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이 사랑하는 자와 시간을 나눌 수 없으므로. 그러자, 어떤 회귀자는 염원했습니다. ‘제 연인의 기억을 지켜주세요.’ 그 염원은 탑에 닿아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연인과 시간선을 공유합니다. 연인이 하루를 돌아가면, 당신도 하루를 돌아갑니다. 당신이 하루를 돌아가면, 연인도 하루를 돌아갑니다. 이것은 반지의 맹약. 이것은 시간의 결혼.
두 사람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단, 당신과 연인이 서로 사랑할 때만 발동합니다.
+
라비엘이 가진 것과 똑같은 것.
내가 만일 별자리라면 가장 첫 번째에서 빛날 별.
“좋아요. 선심을 써볼까요? 서비스까지 곁들여드리지요, 명천.”
사라락-.
황금색 카드가 내 손등에 내려와서, 녹았다.
말 그대로 녹아서 사라졌다.
카드는 사라지면서 황금빛을 내며 왼손 약지에 스며들었다. 내 약지에는 당연히 라비엘과 함께 맞춘 결혼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결혼반지랑 [어느 회귀자의 사랑]을 연동시켰어요. 스킬 카드가 찢어지지 않는 이상 결혼반지도 파괴되지 않을 거예요. 어라아? 그런데 비천은 이제 성좌로 완성되면 스킬 카드를 없애지 못하잖아요?”
“사실상 파괴불가 옵션 붙은 장비템이군요.”
“네에. 이로써 진짜 결혼반지가 되었네요. 축하드려요.”
탑주가 싱글벙글 웃었다.
주변에서 기둥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점점 더 맹렬해졌지만, 우린 둘 다 개의치 않았다. 물론 차이점은 있다. 나야 어차피 짊어질 일이라 생각해서고, 탑주는 일부러 방관하는 거다.
“그리고? 또 어떤 스킬을 개정하고 싶나요?”
“[백귀환생]에 붙은 페널티 옵션을 제거해주십시오.”
나는 곧바로 요구했다.
“1주일에 1번만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건 너무 가혹합니다. 그야 제가 백귀들을 소환해서 다구리 공격에 써먹는다면 개사기 스킬이지만, 저 안 그러잖아요. 제가 거둬들인 목숨에 기억을 돌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페널티 빼주십쇼.”
“뭐어. 일리 있네요.”
“이리 삼리 사리도 있습니다.”
“오리?”
“꽥꽥.”
세상에서 가장 병신 같은 문답을 주고받은 뒤 탑주는 내 요망을 들어줬다.
[스킬 개정.] [백귀환생의 페널티가 제거됩니다.] [백귀환생(SSS)이 백귀환생(SSS+)으로 변화합니다!]“또? 이제 이런 기회는 없다고 보셔야 해요. 나중에 가서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이 참에 전부 말하세요.”
“[찢어진 여신의 구원]을 개정해주십시오. 이젠 찢어진 여신이 아니잖아요? [수호의 여신]이지요. 제가 휘야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도록 허하는 편이 옳습니다.”
“사리에 맞네요.”
“오리?”
“뭐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김공자 씨, 그런 개그 좋아하나요……? 소인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제기랄!”
[스킬 개정.] [찢어진 여신의 구원이 통합됩니다.] [찢어진 여신의 구원(A+)이 수호의 여신(S)으로 변화합니다!]“고블린 상류사회는…….”
“안 돼. 안 바꿔줘요. 돌아가세요.”
[스킬 비개정.] [고블린 상류사회가 보존됩니다.] [그것을 지우려 하다니 터무니없다!]“여우님은 저와 영원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분입니다. 제가 라비엘과 같은 시간에 매달려 있다면, 여우님은 그 시간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파수꾼이에요. 여우님의 존재가 명시되길 바랍니다.”
“그대가 말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에요.”
[영원한 시간의 동맹.] [‘만생의 주인’은 당신의 스킬을 인정합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EX)을 얻습니다.]“히시미트 크리츠와 무티아는 어쩌고 싶나요, 명천?”
“그들은 잠시 제 밑에 복속됐을 뿐이지 제가 영원히 함께할 동맹자는 아닙니다. 당장 그들부터가 원하지 않겠지요.”
“맞는 말이며 정확한 판단이예요. 마음이 아닌 힘으로 복속시킨 이들은, 힘이 약해지거나 더 강한 힘을 가지면 반기를 들게 마련이니까요.”
“예. 그러니 지금처럼 그들의 권능을 빌려쓸 때는 있겠지만, 그건 저의 권능은 아닙니다. 다만, [마천신공]과 [마천진법]은 통합해주십시오.”
나는 힘주어 말했다.
“둘 다 마천의 하늘을 그릴 뿐인 스킬이니까요.”
“그 또한 일리 있는 말씀.”
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마천이라 이름할게요.”
[스킬 개정.] [마천신공(A+)과 마천진법(S)이 통합됩니다.] [두 스킬이 통합되어 마천(SSS)으로 변화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스킬 셋이 완성되었다.
+
이름: 김공자
랭크: S급
스킬 (10/10)
1. 어느 회귀자의 사랑(EX)
2. 회귀자의 태엽시계(EX)
3. 너처럼 되고 싶다(S+)
4. 백귀환생(SSS+)
5. 지골룡의 두개골(SSS+)
6. 검의 성좌(A+)
7. 수호의 여신(A+)
8.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EX)
9. 고블린 상류사회(F)
10. 마천(SSS)
+
1번 스킬 [어느 회귀자의 사랑]은 내가 나로 있기 위한 기초다. 촛불이 촛불로서 계속 타오르기 위한 심지다.
2번 스킬 [회귀자의 태엽시계]부터 5번 스킬 [지골룡의 두개골]까지는 나의 권능이다. 상대방의 트라우마를 보고, 백귀로 소환하여, 육체를 만들어준다.
6번 스킬 [검의 성좌]부터 8번 스킬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까지는 나의 동맹이다.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는 영혼으로 묶여 있다.
9번 스킬 [고블린 상류사회]는…… 고블린 상류사회지. 설명이 필요한가?
10번 스킬 [마천]은 나의 무력. 나의 검. 나의 원천. 이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잡은 칼자루이자, 이 세상을 베어버리기 위해 휘두르는 칼날이다.
“김공자 씨.”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고 나서.
탑주는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성좌로 완성되는 절차는 전부 끝날 거예요.”
“예.”
“이제 그대는 스킬을 지울 수 없어요.”
“예.”
“이제 그대는 죽을 수 없어요.”
“…….”
“지금까지는 언제든지,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회귀자의 태엽시계]를 찢어버릴 수 있었어요.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삶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면 이제 그대는 영원히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요.”
그렇다.
스킬을 찢을 수 없다는 건 그런 의미다.
“죽어도 하루를 돌아갈 뿐. 설령 죽고 죽어 아이로 돌아가고자 해도, 스킬은 어디까지나 [탑 안의 세상]에서만 유효할 뿐이어요. 당신이 탑에 발을 디딘 그 이전의 과거. 바깥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라고 탑주는 말했다.
“진정으로 영원을 감당할 것인가요?”
“예.”
그것이 무거운 말임을 알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다.
“저는 영원히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위한 하늘로 남겠습니다.”
“…….”
그리고 탑주는, 오직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주기 위해서 여태까지 걸어온 말을 입에 담았다.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째깍.
멈추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76층 스테이지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77층 스테이지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78층 스테이지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79층 스테이지가 클리어 되었습니다.]태고의 지팡이가 패배함으로써 그녀가 관리하던 스테이지들은 모두, 즉각적으로 클리어 되었다.
심판을 맡았던 유수하는 어찌 되었을까.
아마, 조금 있으면 그것도 알 수 있겠지.
발 밑에서 빛이 새어나오면서 내 눈앞을 빠르게 가렸다.
[당신의 레벨이 성장합니다.] [스킬 슬롯이 확장됩니다.]그리고.
[이제 당신의 랭크는 SSS급입니다.] [당신은 ‘비명을 모으는 하늘’입니다.]파아아앗!
마침내 SSS급 헌터가 되었다는 것을 선고받으며, 나는 하얀 빛에 휩싸였다.
36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