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65)
2.
「본인이 오라고 할 때 오게.」
「와서, 본인이 재롱을 떨라면 코앞에서 재롱을 떨고, 감자칩 봉지를 대신 뜯어보라 명령하면 대신 뜯게.」
「물론 자네들은 나한테 어떠한 거짓말도 할 수 없으며 언제나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일세.」
「어디 그뿐인가? 냥냥 울어보라면 냥냥 울 것이요, 본인이 울음소리에 질려서 이번엔 왈왈 짖어보라면 기꺼이 왈왈 짖게나.」
3.
백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대화를 나누기엔 듣는 귀가 너무 많군. 다른 곳으로 가세.”
일리가 있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광장을 떠났다.
뭐, 떠났다고는 해도 광장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지만.
‘여기도 오랜만이구나.’
이 카페는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였다. 최초로 회합을 열어 나를 5대 길드의 부길드장으로 인정해준 곳. 그 나름 유서가 깊은 장소라 할 수 있으리라.
원래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프렌차이즈인 초록색별 문어발 인어여왕이 여기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양이 카페로 바뀌었다.
“어, 어서 오시라! 왈! 견주님!”
더 정확히는 오늘부터 바뀌었다.
분명히 금천세계에서 본 기억이 있는 고양이 떼거리들이, 아무리 살펴봐도 [금화를 문 고양이]가 확실해 보이는 냥냥군단이, 입구로 호다닥 달려나왔다.
“와알! 저희 일동은 견주님의 왕림에 감격하여 몸을 겨누지 못할 지경이다!”
“아아, 소신은 이미 몸을 겨누지 못해 땅바닥에 엎드렸사옵니다……!”
“견주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백작비어천가를 지었슴다, 멍!”
냥냥이들은 일렬로 주르륵 늘어져서 넙쭉 엎드렸다. 고개는 숙였는데 꼬리만 삐죽 솟아나와 맹렬히 살랑거렸다.
참고로 냥이들이 냥냥거리지 않고 멍멍거리는 이유는, 백작이 그러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흐음.”
백작은 부채로 하관을 가렸다. 눈이 웃고 있었다.
“접대 솜씨가 나쁘지 않구만. 하긴 명색이 상신(商神)인데 이런 기본적인 일도 못해서야 안 되겠지. 자리로 안내해주게나.”
“왈! 지금 바로 모시겠슴다!”
고양이들이 발딱 일어나서 앞장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창가 자리였다. 저기에 앉는 것만으로도 커피값을 충당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야말로 가게에서 제일 고급진 핫플레이스.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핫플레이스이기도 했다.
“견주님께서 오실까봐 미리 자리를 데우고 있었어요! 멍멍!”
왜냐면 이미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의자에 앉아 있었거든.
“저희 엉덩이의 체온으로 주인님의 차갑게 식은 몸을 조금이라도 데울 수 있다면 실로 삼생의 영광이어요! 와알!”
“어서 앉으라, 견주. 우리 일동은 어서 견주께 봉사하고 싶다!”
“다른 손님들은 전부 다 쫓아버렸슴다. 걱정하지 마십쇼! 금화를 10닢씩 쥐어주고 정중하게 퇴장을 요구하니까 손님들도 기뻐하면서 꺼졌슴다!”
“그들의 하릴없는 인생이 백작 각하의 안락한 일상에 일조했음을 깨닫는다면 틀림없이 그 사람들도 환희할 겁니다! 멍멍!”
“왓 더…….”
나는 전율했다.
“이렇게 비굴한 존재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저것들을 어디다 써먹어야 잘 써먹었다는 칭찬을 들을까 고민했다네. 생각해보니까 저것들이 그토록 우습게 여긴 인간들한테 영원히 쓰다듬을 받는 것만한 형벌이 없는 거 같더군. 그래서 카페를 하나 샀지.”
“제가 알기로 여기 카페 땅값이 탑에서 제일 비싼데요…….”
“뭐. 돈이라면 썩어넘칠 정도로 있으니 말일세.”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은 광장에 세워진 카페였다. 고양이들이 출입을 통제해서 우리를 뒤따라온 사람은 없었지만, 창문 바깥이라면 행인들도 얼마든지 우리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행인들은 유리창 너머에서라도 사진을 찍고 팔을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내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순간적으로 환호성이 폭발하여 방음 유리마저 덜덜 떨렸다.
무서워.
“좀 더 구석진 자리에 앉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안 돼.”
흑룡주가 단호히 거부했다.
“당신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되는지 알아? 100일 중에 90일을 바빌론에서 보내라고 말하진 않을게. 그래도 하다못해 30일이라도 머물러야지. 당신은 왕이나 다름없어. 옥좌를 비운 왕만큼 최악의 리더가 없단다.”
“그래서 일부러 카페로 온 겁니까….”
“응. 최소한 당신이 1층에 있을 때는 사람들의 눈에 띄어줄 필요가 있어. 아무도 모르는 심처에서 회의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시민들이 구경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게 좋아. 최고 서열의 헌터들이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 고 느껴지면 안심이 되잖니?”
결국 이것도 이미지 관리의 일환인가.
아나스타샤는 나와 달리 능숙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달달달! 유리창이 또다시 흔들렸다.
정말, 빈틈이 없는 흑룡주이셔라.
“자아, 왜 내가 천국층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백작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예. 궁금해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금화를 문 고양이]를 무릎 꿇렸다네.”
실제로도 백작이 앉은 의자 아래에선 고양이 네 마리가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이것이 백작 나름대로 회심의 개그를 날린 것임을 나도 알았으나, 반응해주지 않았다.
“쯧.”
하여간 귀여운 맛이 없긴, 하고 백작은 부채를 부쳤다.
“본인은 상신에게 절대복종을 강요했네. 하지만 사실 내가 노리던 건 따로 있었지. 짐승을 숨기려거든 먼저 숲을 만들어 숨겨야 했고, 내게는 절대복종이 일종의 숲이었어.”
“그럼 뭐가 짐승이었습니까?”
“내게 절대로 거짓말을 할수 없다는 것.”
나는 그 말을 듣고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자네들은 나한테 어떠한 거짓말도 할 수 없으며 언제나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일세.」
백작이 내건 항복문엔 확실히 그런 조건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기억을 떠올렸다는 걸 알아봤는지 백작은 고개를 한번 까닥였다.
“눈빛을 보아하니 아직 뇌가 쌩쌩한 모양이군. 김공자. 그렇다면 내 쪽에서 물어보겠네.”
차르륵, 백작의 부채가 접혔다.
“[금화를 문 고양이]는 기억을 잃어버렸을까?”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네?”
“간단한 질문일세. [태고의 지팡이]는 헌터와 성좌의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지. 그러니 단순히 생각하면 [금화를 문 고양이]도 천국층과 기둥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릴 것처럼 보였어. 허나, 본인은 그 얘기를 듣고서 불현듯 생각했다네.”
백작은 툭, 툭, 부채끝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일세.”
“…….”
백작은 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가 스스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아래쪽에서 엎드려 있는 고양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왈! 견주님께서 생각하신 바가 맞슴다. 저희는 [태고의 지팡이]와 협력하는 관계임다! 그 기둥이 영혼을 보내면 우리가 받아들임다. 다른 성좌들은 기둥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저희, 천국층의 협력자만큼은 기억할 수밖에 없슴다!”
“……과연.”
나는 사태의 전말을 파악한 것처럼 느껴졌다.
“니샤는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상신은 기억을 유지했던 거로군요. 그 다음, 니샤는 고양이한테 어찌된 일인지 물어봐서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고요. 거짓말이 불가능하니까. 니샤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깨달은 겁니다.”
“세상에. 이젠 너희 둘까지 서로 본명으로 부르는 사이가 됐구나…….”
우리 옆에서 아나스타샤가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아니, 그냥 어이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백작은 어깨를 으쓱거린 뒤 고양이 한 마리를 들어올려 자신의 무릎에 올렸다.
“와, 와아알….”
“음. 맞네. 하지만 그것만으론 다소 확신이 부족했지.”
백작은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들바들. 신화적 괴물한테 쓰다듬을 하사받은 필멸자처럼 고양이는 공포에 질렸다.
“본인에겐, 무슨 일이 생겨도 기둥이 상신의 기억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필요했어. 안타깝게도 나는 기둥에게 그런 보장을 강요할 입장이 못 됐지. 기둥 입장에서 나란 존재는 일개 헌터에 불과할 테니 말이야. 그래서 역발상을 떠올렸네.”
“역발상이라면…?”
“간단해. [무슨 일이 생겨도 기둥이 상신의 기억을 건드릴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버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백작이 고양이의 정수리를 툭 건드렸다. 고양이는 파르르 떨었다.
“와알……. 저, 저희는 협정에 따라 백작 각하의 노예가 됐슴다. 이게 결정타였슴다. 저희가 노예가 된 순간 [태고의 지팡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저희의 기억을 왜곡할 수 없게 된 것임다.”
“어째서요?”
“그건 저희의 묘생(植生)을 완전히 우롱하는 짓이기 때문임다.”
삼색고양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꼬물거렸다.
“만일 기둥이 저희의 기억을 없앤다면 저희는 하루 아침에 [왜 이렇게 됐는지] [영문도 모른 채] 백작 각하의 노예로 전락해버리게 됨다. 불합리하지 않슴까? 말 그대로 눈 한번 깜빡했더니 웬 날벌레……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의 시종이 된 것임다!! 멍! 물론 저희는 이 사태에 매우 기뻐하며 지금처럼 견주님의 우아함을 칭송했겠습니다만, 객관적으로 볼 땐 지극히 불합리한 폭력에 불과함다!”
“그런 것일세.”
백작은 고양이의 귀를 잡아 문질문질 비볐다. 고양이는 깜짝 놀라서 “냐옹!? 와, 왈! 멍멍!”이라고 애처로이 항변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요컨대 기억을 롤백시킬 수 없는 지점. 없애서도 안 되고 왜곡시켜서도 안 되는 절대적 기점이 본인에겐 필요했다네. 그랬기에 자네가 금천세계를 휘젓도록 내버려두었고, 상신을 굴복시킬 때까지 은근슬쩍 등을 떠밀었지.”
“…….”
자신이 심판역으로 불려나오고 기억을 잃어버릴 거라는 통지를 듣자마자, 금천세계의 관리자가 [금화를 문 고양이]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품자마자, 백작은 상신의 항복을 노린 것이다.
나는 백작의 장대한 심모원려를 듣고 입술을 달싹였다.
“……걱정되진 않았습니까?”
“음? 뭐가 말인가.”
“어쩌면 [태고의 지팡이]이 포악한 성격일지도 모르잖아요. 불합리한 폭력을 감수하는, 그런 부류일 수도 있었어요. 어떻게 그 기둥을 믿었나요?”
백작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부채로 입을 가리면서 작게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더니. 김공자. 나는 [태고의 지팡이]를 믿은 적 따윈 단 한번도 없다네.”
“예? 하지만…….”
“나는 자네를 믿었을 뿐일세.”
백작이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누구보다 탑을 아끼는 사람이야. 그런 탑을 관리하는 기둥이 만일 포악하기 그지없는 독재자였다면, 누구보다 자네가 먼저 나서서 기둥을 뭉개버렸을 것일세. 안 그런가?”
“…….”
“자네는 그 기둥의 존재를 용납하고 있더군. 어쩔 수 없이 용납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네. 김공자. 자네가 존중하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받을 만한 인격을 지니고 있겠지.”
멀리서 고양이들이 뒤뚱뒤뚱 걸어왔다. 고양이들은 우리한테 커피를 한 잔씩 나눠주었다. 백작은 한손에 아메리카노를 쥐고 방긋 웃었다.
“자네가 나의 실력을 믿듯 나는 자네의 판단을 믿네.”
“……니샤.”
“자네는 우리의 리더이고, 우리는 자네의 동료일세. 그리고 동료란 서로 대등해지려고 노력하는 관계라고 본인은 믿어 의심치 않아.”
백작은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스테이지를 공략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오직 김공자 자네 혼자서 기억하는 세계 따위는—-어이쿠야. 내 쪽에서 전력으로 거절하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백작이 지은 미소는, 왜 서로 성격이 정반대에 가까운 파트리시아가 백작에게 반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미소였다.
“본인은 기억을 잃었네. 하지만 눈을 떠보니 발 아래서 웬 고양이들이 꼬물꼬물거리고 있지 뭔가.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고, 고양이들은 내게 초고화질 홀로그램으로 천국층에서 있었던 일을 보여줬네. 모든 게 본인의 계획대로 이뤄졌노라고 자화자찬하고 싶군.”
“멍멍.”
백작에게 커피를 배달한 고양이들이 이번엔 내 바짓가랑이를 꾹꾹 눌렀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힘을 합쳐 쟁반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화이트 모카 프라푸치노 벤티 쿼드라샷 자바칩 반반 초콜릿 드리즐 추가임다!”
딱히 내가 주문한 적도 없었는데 고양이들은 내 전용 메뉴를 들고 왔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양이들의 견주님을 돌아봤다.
“선물일세.”
나는 잠시간 말문이 막혔다.
“아. 물론 진정한 선물은 따로 있지.”
“정말.”
“본인은 다만 자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정말로…….”
“어서 오게나. 김공자. 천국들을 공략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자네가 어떤 역경을 겪었는지 우리는 언제나 기억할 것이야. 자네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실 한 가지 밖에 없군.”
“……정말, 제 동료들은 굉장해요.”
“설혹 자네가 우리를 혼자 내버려둘지라도 우리가 자네를 혼자 내버려둘 일은 없을 것이네.”
아마 지금 나는 행인들한테 차마 보여주기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겠지. 표정을 감추기 위해 나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날의 화이트 모카는, 굉장히 달았다.
36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