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74)
나 한 명을 잡기 위해서 13체의 살육인형은 한 달 동안 칼날을 벼렸다.
성좌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는 살천성이, 그 살천성이, 나를 [자기보다 명백히 강력한 자]로 인식하여 사냥을 준비해왔다.
“지난 30일 동안의 기억을 버린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크흡, 욱……. 커, 헉……!”
결국 나는 토혈했다. 여우님과 휘야를 지키기 위해 오러를 두 사람한테 분산시킨 대가였다.
덕분에 여우님과 휘야는 무사했다. 그러나 내 핏줄에 고고히 흐르던 오러는 전부 메말랐으며, 심장을 가득 채웠던 오러 역시 바닥을 드러냈다.
‘죽겠다. 이거.’
나는 무릎을 꿇었다.
‘아니, 죽자.’
입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이대로 죽어서 하루 전으로 회귀한다. 적이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지 알고 있으니까 그 다음엔 대응할 수 있어. 죽자. 죽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야.’
지옥 같은 고통이 머리를 쥐어짜는 와중에도 나는 단 하나뿐인 생로(生路)를, 아니 사로(死路)를 모색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일격을 막을 오러도 없어. 막지 말자. 내버려둬. 죽는 거다!’
쿨럭.
나는 핏덩어리를 토했다.
그리고 6번째로 나를 덮칠 공격을 기다렸다. 설마 살천성씩이나 되는 헌터가 이 정도로 자신을 약자로, 나를 강자로 취급하여, 전력을 다해 기습해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번뿐이다. 이번에만 몰랐을 뿐이다. 다음에는, 다음 싸움에선 반드시…….
“쿨럭! 크흡, 후으읍……. 우윽……?”
어째서일까.
“뭐 하는, 겁니까…….”
다음 공격이, 오지 않았다.
“어서 죽이, 십시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새파란 눈동자.
눈동자들.
아홉 쌍의 푸른색이 나를 사방에서 둘러싼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이지 않는다.”
“뭐…….”
무슨.
“나는 너를 죽이지 않는다. 비명을 모으는 하늘.”
9체의 살육인형 중에 5체가 다가왔다.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 사지가 하나씩 잡혔고, 목덜미의 혈도마저 꾸욱 짚였다. 문자 그대로 온몸이 인형들에 의해 봉쇄되었다.
“너에 대해 많은 것을 조사했다.”
혈도가 짚이자 입을 움직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웠다. 아니, 간신히 숨을 쉴 수만 있을 정도로 내 혈도를 틀어막은 것이었다.
“너에게 관심을 가진 성좌들이 많더군. 나는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이 너에 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자 하였다. 9개의 성좌를 말살한 시점에서 비로소 너에 대한 윤곽이 그려졌다.”
이제 보니 나 한 명을 잡는다고 13체를 전부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정보수집을 위해 9명이나 되는 성좌들을 족친 모양이었다. 이 미친놈아.
“너는 강하다.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강해졌다.”
“크, 흐읍…….”
“한정된 시간 안에 성장했다고 보기엔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강해졌다. 네가 그만큼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졌다는 뜻일 수도 있으나, 나는 보다 합리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바로 너에겐 [시간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가설이다.”
우라질.
나는 싸움이 시작하기 전에 살천성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저와 당신은 분명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과연. 너는 시간 능력자인가.』
그때 살천성은 몹시도 담백하게 반응했다.
원래부터 담백한 성격이라서 그렇겠거니 싶어 넘어갔는데, 설마, 싸움이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시간 능력을 가졌다고 예상했던 것인가.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반응이 밋밋했던 것인가.
“물론 어떤 식으로 시간을 조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시간]이 너의 자원이자 강점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생각해보면.
살천성은 본래부터 사냥꾼이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 어떤 존재인지, 왜 강한지, 약점은 무엇인지, 사전에 파악하고 난 다음에야 전투에 나섰다.
벌써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과거—- 50층에서 살천성과 처음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도, 살천성은 이렇게 말하면서 몬스터들을 사냥하지 않았던가.
『’반으로 갈라져 죽는 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 이름처럼, 정확히 ‘반’으로 갈라야만 한다.』
『‘비명자’의 본체는 그 비명에 있으니, 소리로 묻어서 죽인다.”
철두철미하게 적의 약점을 공부하는 공략자.
그것이 살천성이었다.
그리고 살천성은 이번에, 나라는 존재를 철저히 공부한 다음 공략에 나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너를 죽이지 않는다. 비명을 모으는 하늘. 그저 너에게서 시간을 봉인할 뿐.”
봉인.
“어떻, 게…….”
“단순하다. 이곳의 시공간을 바깥과 괴리시킬 것이다. 그리고 너를 얼음에 가두어 이곳에 내버려두겠다. 얼음이라 해도 평범한 얼음은 아니다. 절대로 녹지 않는 얼음이지.”
“너는 영원히 시간이 멈춰버린 이곳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겠다.”
빌어먹을.
“사람을……. 영원한 고문 속에, 떨어트리겠다는 말을…. 참, 얌전히도 지껄이는군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살천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었다.
“너는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푸욱!
서늘한 감촉이 가슴을 가르고 심장에 스몄다.
[‘서릿발에 물든 발톱 – 레플리카’가 당신을 봉인하기 시작합니다.]살천성이 내 심장에 박아넣은 단검은 얼음칼이었다. 수없이 긴 세월 동안 세계들을 유랑한 만큼 온갖 기기묘묘한 아이템을 얻었겠지. 얼음칼 또한 살천성의 콜렉션 중 하나인 듯, 내 가슴에 파고들자마자 범상치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경고. 봉인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오직 의식으로 사고하는 것만이 가능해집니다.] [잠시 뒤에 당신의 세계는 봉인됩니다.] [남은 시간, 61초.]쩌저적. 쩍-, 쩌적.
칼이 박힌 자리로부터 얼음이 끼었다. 처음엔 가슴이. 다음으로 쇄골과 어깨가. 마치 푸른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처럼 얼음은 점점 더 가슴 주변으로 번졌다.
“네가 지금 성좌의 메세지를 동료들한테 보내어 원군을 요청해도 이미 늦었다.”
감각이 멀어진다.
“60초 안에 이곳으로 도착하여 너를 구하기란 한없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1분이 지나면 이 스테이지 자체가 격리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
그리고 나는 감각이 멀어지는 속에서, 이, 가슴을 파고는 한기를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겨, 울…….”
“무슨 소리인가?”
“무림강호……. [대호에 머무는 황룡]한테 쓴 봉인술이……. 이거, 입니까……?”
살천성은 머리를 살짝 기울였다.
“그렇다.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놀랍군.”
“…….”
“너에게 이기기 위해 수단을 검색하던 도중에 이 아이템을 찾았다. 나는 [대호에 머무는 황룡]을 봉인할 때 여러 아이템들을 동원했으며, 해당 아이템을 곁들여 썼다는 기록 또한 분명히 남아 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이 감촉을. 이 한기를. 이 차가움을.
다름 아니라 스승님의 세계에 얼어붙은 채 영원히 머무르고 있던 얼음과 눈을.
[대호에 머무는 황룡]은 본디 스승님의 세계를 다스리던 성좌였다. 황룡은 가슴 한복판에 연민검이 박혀 영원토록 죽지 못하고 단지 썩어갔다. 살천성의 짓이었다.살천성이 황룡을 봉인할 때 동원했던 것은 연민검만이 아니라 지금 내 심장에 찍힌 이 아이템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순간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스승님의 세계를 죽인 겨울이 지금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 21초.]만일 내게 이빨을 깨물 힘이 남아 있었다면 으드득거리는 소리가 이 공간 전체에 울렸으리라.
[남은 시간, 20초.]그래. 살천성.
인정하겠다.
너는 무서운 사냥꾼이다. 어째서 검제가 당신을 죽이지 못했었는지, 어떻게 당신이 검제와 무승부를 냈던 것인지,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13체를 동원해서 전력을 쏟아부은 당신은 틀림없이 검제와 동격이다. 유일하게 99층까지 올라간 검제와 비교돼도 손색이 없다.
[남은 시간, 19초.]그래서 나를 패배로 몰아넣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패배. 이대로 나는 시간이 정지해버릴 테고, 81층의 스테이지는 격리되어 나가떨어져, 동료들이 구하러 올 수도 없는 무인도가 되어버리겠지.
그래.
내가 만일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남은 시간, 18초.]내가 만일 너처럼 단지 혼자서 오롯한 존재였으면 패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은 시간, 17초.]라비엘.
[‘비명을 모으는 하늘’이 ‘은백합 공작’에게 메세지를 보냅니다.]미안합니다.
[‘비명을 모으는 하늘’은 ‘은백합 공작’에게 죽음을 부탁합니다.]지금, 죽어주세요.
“……?”
살천성은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군.”
얼음은 이제 나의 전신을 뒤덮었다. 차가웠다. 온몸이 추웠다. 아직 영원의 동토에 감싸이지 않은 부위는 오직 내 얼굴, 그것도 눈과 입 정도였다. 한 뼘조차 남지 않은 나의 맨살을 살천성은 보고 있었다.
“왜 웃고 있지?”
“하…….”
그런가. 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가.
얼음이 입가의 바로 근처까지 기어올라서 미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내 입술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뻐서 짓는 미소였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죽어달라는 말을 듣고, 10초가 되지 않아, 죽어주는 누군가를.”
왼쪽 눈이 얼음에 뒤덮였다.
“당신에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오른쪽 눈이 얼음에 갇혔다.
“없겠지.”
콧등이.
“수백 년의 세월이,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 길을 택하지 않고……. 혼자이기만을 선택했을 거야.”
이윽고.
“그래서 너는, 나한테 지게 된 거다. 살천성.”
입술이.
[남은 시간.] [5초.]심장이.
[4초.]얼어붙기 직전.
[‘어느 회귀자의 사랑(EX)’이 발동합니다.] [3초.]내 숨이 멈추었다.
[당신은 상대방과 시간선을 공유합니다.] [시간선이 끝납니다.] [2초.]겨울이 덮이기 전에 죽음이 먼저 나의 눈을 감겼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1초.]머릿속에서, 두 겹의 목소리가 겹쳤다.
[봉인 완료. 당신은 봉인되—–]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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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때.
“오늘은 뭘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문이 날까?”
“글쎄. 본인은 오랜만에 피쉬앤칩스를 먹고 싶구먼.”
“아하핫, 꽤나 의외의 메뉴 선택이군요!”
그곳은 내게 너무도 익숙한 장소였다.
공용 숙소.
나의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이 모이고 싶을 때 모이고 떠들고 싶을 때 떠들며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그 장소 한복판에서, 소파에 앉아, 나는 눈을 떴다.
“…….”
나는 24시간 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주인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단심문관이 맞은편 소파에 앉은 채 내 쪽을 돌아봤다.
“아무리 그래도 피쉬앤칩스는 너무……. 어라? 주인님. 표정이 이상하군요.”
“응?”
이단심문관의 말에 흑룡주도 나를 쳐다봤다. 백작도. 독사도. 성기사도. 나와 함께 시간을 나누었고 앞으로도 나눌 것을 약속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네. 이상한 표정이구나.”
“그러게 말일세. 마치 먹이인 줄 알고 물었는데 비닐봉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아버린 참치와 같은 얼굴이구먼.”
“어이, 대체 그건 뭔 얼굴이냐……?”
“니샤. 이게 전부 네가 피쉬앤칩스 같은 괴음식물을 먹자고 제안한 잘못이다. 차라리 감자튀김만 따로 먹는 것이 낫다고 나는 확신한다.”
“아, 감자튀김 좋네. 감자튀김으로 하자. 제법 오랜만인걸. 옛날에 한창 일할 때는 삼시세끼를 전부 햄버거로 떼어던 날도 있었잖니.”
“음. 정말 굉장히 오래 전의 얘기로군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하하….”
정말.
질 것 같지가 않다.
“밤볼리나.”
“네, 주인님?”
“미안한데 알람시계 좀 갖다주세요.”
이단심문관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알람시계 앱을 작동시켰다. 나한테 폰을 건네주면서 이단심문관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드리겠습니다만. 알람은 왜 갑자기 찾습니까?”
“음, 정확히는 알람이 아니라 스톱워치가 필요한 건데……. 어디 보자.”
나는 타이머를 눌렀다.
00:00:00으로 표시되어 있던 시계가 즉시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됐어요. 잠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지켜보겠습니다.”
“……?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주인님이 필요하다면, 예. 마음껏 쓰십시오!”
“고마워요.”
나는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친구들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어차피 내가 이상한 건 원투 데이가 아니었다는 양, 다시 잡담으로 돌아갔다. 밤의 군것질 메뉴는 하루 일찍 감자튀김으로 결정되었다. 독사가 감자를 튀기기 위해 실비아와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1분.
편안한 시간이 흘렀다.
3분.
성기사와 백작이 말싸움을 빙자한 애정 과시에 돌입했다.
6분.
흑룡주가 너희 그만 좀 하라고 삼선 슬리퍼로 두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7분.
8분.
9분.
그리고 폰 화면에 00:09:21이라는 숫자가 새겨졌을 때———–.
“여,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숙소의 경비를 맡은 사마군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터벅. 터벅. 한 사람 이상의 발소리, 아니, 수십 명의 발소리가 복도를 통해 여기 거실까지 전달되었다.
흑룡주와 이단심문관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체육복 차림에 삼선 슬리퍼, 심지어 흑룡주는 슬리퍼 한쪽이 없었지만, 두 사람은 한없이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거실문 저편, 멀리 복도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들을 노려보았다.
“이곳은 저희 탑의 수뇌부가 모여 있는 장소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러시면 곤란…….”
“닥쳐라. 잡스럽다.”
쿠우우웅!
거실문이 나가 떨어졌다.
습격자인가 싶어 달려들려던 친구들은, 문이 사라져버린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경악에 잠긴 눈동자로 침입자를 쳐다보았다.
“흐음.”
하지만 침입자는 집주인들의 시선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수십 명에 이르는 기사들을 뒤로 한 채, 침입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실을 살피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9분 43초입니다. 라비엘.”
“그대는 13분 27초였다. 내가 그대보다 한참이나 더 빠르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구나. 공자여.”
라비엘이 미소를 지었다.
붉은 눈동자가 반개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개자식을 족치면 되는 것인가?”
37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