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8)
용사의 이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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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것은 점점 더 커졌다.
개구리··· 그렇다. 처음으로 집어삼킨 생물이 개구리임을 그것은 이제 알았다. 예전보다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개구리를 알았고, 뱀을 알았으며, 독수리를 알았다.
개구리일 적에는 맨살로 빗물을 맞는 기쁨을.
뱀일 적에는 맨몸으로 부드러운 땅을 훑고 기어가는 기쁨을.
독수리일 적에는 자신의 몸무게를 하늘에 맡기는 기쁨을.
비와 땅 그리고 하늘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르릉.
그것은 마침내 한 마리의 사자가 되어 살육의 기쁨마저 깨달았다.
수사슴의 고기는 맛있었다. 향기로워라!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어 피에 도취한 순간, 아, 이제 이대로 눈을 감아도 아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순리에 따라 정령이나 신령(神靈)이 되었을 것이다.
-아···.
어쩌다 우연히.
-힉!
어느 소란스러운 생물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꺄아아아악!
생물이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생물을 쫓아갔다.
-사, 살려줘요···! 아빠! 아빠! 살려주세요!
생물은 시끄러운 주제에 발이 느렸다. 심지어 자기 스스로 땅에 처박혔다.
뭐 하는 걸까?
저 생물이 ‘넘어졌다’라는 사실을 그것은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땅과 하늘을 오가며 수없이 많은 생물을 집어삼켰으나, 달리다가 넘어질 정도로 멍청한 생물은 저게 처음이었으니까.
-죽기 싫어! 아빠! 도와···.
시끄러운 생물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그것은 이빨을 박았다. 와그작! 아그작. 이빨 사이로 피가 흘러들었다. 입안에 핏물을 가득 물었을 때, 그것은 잠시 멈칫했다. 벼락같은 충격이 뇌리를 울린 것이다.
향기롭다!
무엇인가, 이 향기는!
그것은 홀렸다. 중독되었다. 피에 취했다. 정신없이 아가리를 처박아서 이 생물의 모든 것을 갉아먹었다. 피··· 살···, 뼈! 내장까지! 너무나. 모든 것이 향기로웠다.
피에서 살. 살에서 뼈. 뼈에서 내장.
이빨이 점점 깊이 박힐수록, 그것의 뒷발이 점점 가늘어졌다. 앞발은 점점 더 길어졌다.
뒷발은 다리가 되었다.
앞발은 팔이 되었다.
사자의 갈기가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얌전하게 생물의 잔해를 먹어 삼켰다. 마지막 남은 찌꺼기까지 모조리 핥아먹자, 생물이 가진 기억이 서서히 흘러들었다.
-······.
인간人間.
생물은 그렇게 불렸다.
인간은 어느 변두리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라났다. 사랑은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삶의 어딘가엔 항상 무언가가 부족한 것인가. 이 인간에겐 건강이 결여되어 있었다.
질병.
가난한 시골에서 불치병을 고칠 방법은 없었다. 방법이 있더라도 돈이 없었다. 사랑만은 넘치는 집안에서 인간은 하루하루 죽어갔다. 당차게도, 이 어린 인간은 이불에서 죽기를 거부했다.
-더 걸을 수 없기 전에 걸을래!
-조금이라도 더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어.
실수였다.
인간은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자기가 죽기 전에 얼마나 먼 곳에 가볼 수 있는지 시험해본 것이다.
인간이 도달한 종착역은 죽음이었다. 그것의 위장 속.
-얘야! 에스델!
아니.
-여기 있었구나!
그것은 더 이상 그것이기를 멈추었다.
-혼자 나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숲 근처는 위험하단다. 언제 짐승이 튀어나올지 몰라. 앞으로는 절대 혼자서 다니지··· 아니, 옷차림이 왜 그러니!
-······.
소녀가 입술을 열었다.
-아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저, 이제 건강해진 거 같아요.
에스델.
마왕이 처음으로 가진 이름이었다.
6.
내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스킬을 발동합니다.]평원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다름 아니라 내 발밑부터 이루어졌다. 그림자. 나의 몸만큼 드리워진 그림자가 끝없이 팽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마왕의 구정물로 한번 뒤덮어진 평원에, 나의 그림자가 덧씌워졌다.
-그오오오···.
꿈틀!
그늘에서 무언가가 솟아나왔다.
-그오오오오!
뼈였다.
사람의 하얀 뼈가 그늘에서 뻗어 나왔다.
마치 지옥에서 탈출하려는 악마처럼 보였다.
‘검제 양반.’
나의 그늘이 만들어낸 광경을 둘러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왜 제가 [백귀소환]을 선택했는지 궁금하게 여겼죠?’
-어, 응. 그랬지.
‘처음에는 저도 다른 스킬이 끌렸어요.’
가령 오러를 강화해주는 기술.
마왕이 발사하는 붉은색 광선은 정말 두려워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언젠가 나도 그런 공격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스킬 카드 오픈.’
+
[백귀소환(百鬼召喚)]
랭크: SS
효과: 당신이 직접 죽인 자들을 몬스터로 소환합니다. 사자(死者)는 생전의 능력을 계승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계승하지도 않습니다. 고블린이나 오크, 좀비, 스켈레톤 등, 몬스터로 소환될 뿐입니다.
※단, 일주일에 1번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찬란하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카드.
‘내가 직접 죽인 자들을 전부 몬스터로 소환한다라···.’
카드를 쓱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문제인데. 제가 직접 죽인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요?’
-어.
배후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염병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너. 합쳐서 2명 아니야?
‘그렇죠. 그럴 것 같죠.’
내가 웃었다.
‘근데 왜 검성이 가진 [탐정의 혜안]에는 제 킬수가 4000번 이상으로 뜹니까?’
-뭐?
‘솔직히 심하잖아요. 이상하고요. 아무리 제가 자살을 밥 먹듯 했다지만 뭐 엉뚱한 사람을 죽였습니까? 계속 저 하나만 조졌지. 그런데도 왜 킬수가 4000번으로 찍히냐고요. 상식적으로 2번이 떠야 공평하죠.’
-······.
‘즉, 이런 거예요.’
나는 눈앞을 바라보았다.
‘탑에서 죽음을 정산하는 방법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겁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그림자의 평원을.
‘똑같은 사람을 2번 죽여도, 그건 [1번]이 아니라 [2번]의 죽음으로 취급한다고.’
그리고 그림자에서 기어오르는 괴물들을.
나의 지옥에서 탈출하는 해골의 무리를 보았다.
‘자. 다시 물어보죠.’
그것은 군단이었다.
무수한 해골의 병사들이 광야를 뒤덮었다.
‘제가 얼마에 이르는 죽음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4097번의 자결.
첫번째 유수하 사냥과,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검성에게 죽는 바람에 한 번 더 행해야했던 두번째 유수하 사냥.
그러므로, 4099번의 죽음.
내 죽음의 흔적이 드넓은 평야에 펼쳐졌다.
“야아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그려낸 지옥도(地獄圖)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면서.
“진짜, 많이도 죽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오오오오!
뼈의 군단이 우짖었다.
-크아아아아아!
스켈레톤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생김새가 다 똑같았다. 나와 몸집이 비슷했고, 나와 키가 비등했다. 당연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죽음을 증거하는 괴물들이니 말이다.
‘심지어 무기도 다 똑같군.’
단검.
스켈레톤은 전부 똑같은 단검을 쥐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을 때. 그리고 유수하를 사냥했을 때 쓴 무기였다.
“말도 안 돼···!”
그렇지만 여유롭게 스켈레톤의 무기나 감상하고 있는 사람은, 이 넓은 평야에서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마녀와 검성. 두 헌터 모두 당혹스러운 낯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김공자. 설마 당신의 스킬이야?”
“예.”
“거짓말이지!?”
마녀가 경악했다.
“맙소사. 몬스터를 수천 마리나 소환하는 스킬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까 단독으로 10층을 클리어한 거구나!”
“어.”
마녀는 나의 공략법을 제멋대로 오해한 것 같았다. 내가 착각을 고쳐주기도 전에 마녀 혼자서 감탄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음.
됐다.
“뭐, 그렇죠. 예.”
“역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요.”
지금 즉시 오해를 풀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마왕을 눈앞에 두고 잡담을 떠드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네놈이··· 어찌 나와 같은 기술을···.
헌터뿐만이 아니라 마왕도 당황하고 있긴 했다.
마왕은 제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다. 마왕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짐작됐다.
아까웠다.
표정이 보이면 오만상이 다 찌푸려진 모습을 구경할 수 있을 텐데.
“궁금하냐?”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씩 웃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난 가르쳐줄 마음이 없는데.”
-······.
“계속 궁금해하셔. 아니면 나한테 목 내놓는 조건으로 가르쳐줄까? 어때?”
-용서할 수 없다···! 이런 건,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마왕이 상처를 입은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우롱할 셈인가! 여신이여! 나의 망념을! 원망을! 모든 원한을 받아주기로 약조했던 것 아닌가! 어찌하여 이런···!
“검성님!”
나는 마왕의 장탄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마왕에겐 마왕의 사정이 있었고, 나에게는 나의 역할이 있었다. 마왕은 나의 적. 적이 한눈을 팔고 있다면 내겐 기회나 다름없었다.
“해골들이랑 같이 싸워주십쇼! 검성님이 가세해주면 적어도 밀리진 않을 거예요!”
“흐음.”
검성이 불만 섞인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네. 몬스터와 공투하는 것은 꺼림칙하네만···. 자네를 돕는 것보다는 온건하군.”
“감사합니다! 흑룡주는 저 좀 도와주시죠! 저희 둘이서 마왕을 족쳐요!”
“알고 있어. 내 발목이나 잡지 말렴!”
검성이 칼을 휘둘렀고, 마녀가 오러를 퍼트렸다. 두 사람 모두 마왕을 쓰러트릴 때까지는 내 지휘에 따라주기로 결심한 듯했다. 나는 한차례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나의 죽음들을 향해 외쳤다.
“백귀여!”
사천의 뼈들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너희가 제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라!”
나는 명령했다.
“죽이고, 죽어라!”
군단은 나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오오오오!
스켈레톤들이 사방으로 달려들었다. 펄쩍! 뼈밖에 남지 않은 괴물은 가벼웠다. 그것은 공중에 높이 뛰어오르더니 오크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뼈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오크의 목을 조인 채, 양팔로 단검을 찔러댔다.
푹! 푸욱!
스켈레톤은 미친 듯이 단검을 휘둘렀다. 칼날에 오크의 눈이, 입이, 목이 찢어졌다. 오크는 짧게 단말마를 지르면서 땅에 쓰러졌다. 쓰러진 충격으로 스켈레톤은 왼팔이 부서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서 다음 사냥감을 향해 질주할 뿐.
-키에에에엑!
다른 곳에선 고블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몸뚱이가 부서져서 해골바가지밖에 안 남은 스켈레톤. 그것이 이빨만 써서 고블린의 팔뚝을 물어뜯은 것이다.
-그오오오!
-키이이!
고블린 주위로 다른 스켈레톤들도 모여들었다. 모두 어디 한군데가 아작난 스켈레톤이었다.
팔이 부서진 것. 다리가 사라진 것. 머리를 잃어버린 것.
하지만 모두 단검을 들고 있었다. 키익! 고블린이 몸부림쳤지만 쓸모없는 발악이었다. 스켈레톤들은 고블린을 둘러싸서 검을 내리찍었다.
피분수가 터졌다.
-와, 씨발.
배후령이 혀를 내둘렀다.
-저 해골 새끼들 누구 닮았는지 근성 넘치는 거 봐라. 죽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몬스터 군단이라니. 뭐야, 그게. 무섭잖아!
학살이 평원 곳곳에서 벌어졌다.
마왕은 분노로 떨었다.
-감히!
마왕의 그림자에서 끊임없이 구정물이 쏟아졌다. 만일 구정물이 붉었다면, 나는 그것이 마왕이 흘리는 피인 줄 알았을 것이다. 마왕은 피를 토하듯 절규하고 있었다.
-너에겐 자격이 없다!
마왕의 절규는 하늘을 울렸으며.
-한낱 이계에서 건너온 자가!
땅을 때리었고.
-이 세계의 어떠한 악의도, 원한도, 생명도 짊어지지 않은 자가! 감히 어디서 나의 앞길을 막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메아리쳤다.
“어디서 왔든 무슨 상관이냐.”
그 메아리를 눈앞에 두고 내가 말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런데도 만약 이것만으로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아직 메아리가 잦아들지도 않았을 때였다.
나의 머릿속에선 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오래도록 나를 지켜본 누군가가 축복해주는 것처럼.
마침내 시간의 감옥에서 자유로이 풀려나게 된 나를 축하해주듯.
목소리가 길게 울렸다.
[죽음을 추수하는 왕에게 경의를.]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고 있다.
설령 하루를 죽고 또 죽더라도.
내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를 누군가는 알아준다.
그거면 족하다.
“참견하지 마라.”
내가 검을 들었다.
그리고 적을 향하여 말했다.
“탑이 나의 자격을 증거한다.”
사왕死王.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이었다.
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