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98)
3.
쨍 하니 뜬 태양이 한 차례 흔들렸다.
검제가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예고도 전조도 없이 내리치는 날벼락 같았다. 기울어진 햇살의 궤도를 따라 검이 한 차례 번쩍이고, 그 직후 미사일처럼 하얀 섬광이 날아들었다.
“세 수를,”
그에 맞서 나 또한 검을 들었다.
내가 타고 남은 잔해처럼 꽃밭 위에 그림자가 깔렸다.
“양보해주진 않는 겁니까!”
검의 궤적을 따라 그림자가 일렁였다.
마천신검魔天神劍
제 일식第一式
아사유검•심 飯死流劍•心
바닥에 깔린 그림자들이 일제히 땅바닥에 이빨을 박았다.
지상에서 강기가 빨려 나왔다. 연공이라기보다는 수확에 가까웠고 수확보다는 다시 흡혈에 가까웠다. 만찬장에 들이닥친 아귀떼가 숨도 안 쉬고 음식들을 집어삼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걸신 들린 것처럼 빨아들인 이 세계의 기운을, 나는 그대로 하늘을 향해 집어 던졌다.
솟구친 핏빛의 그림자가, 쾅……! 검제가 끌어내린 섬광을 비껴 갈랐다.
사과 껍질이 벗겨지듯 검제의 강기가 깎여 나갔다. 깎여 나간 강기의 껍데기들은 하이얀 소낙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백만 개의 폭죽을 동시에 터뜨린 것처럼 세상이 번쩍였다.
그 번쩍임을 나는 반격의 기치로 삼았다.
마천신검魔天神劍
제 칠식第 七式
장사타검 • 심 杖死打劍 • 心
명멸하는 세계 속에 밝음과 어두움이 군무처럼 뒤섞였다. 그렇게 나타난 그림자마다 검붉은 강기들을 토해냈다. 규칙성도 피할 곳도 없이 토해지는 검붉은 촉수들을, 검제는 웃음을 지으며 마주 받았다.
“너야말로,”
환히 드러난 치아가 사자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나한테 세 수 안 봐주냐!”
검제의 칼끝이 움직였다.
츳… 하고, 혀를 차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만약 그것이 혀를 차는 소리였다면 분명 혀를 찬 주체는 허공이었을 것이다.
—파앗……!!
허공이 열렸다.
투명한 거인이 입술을 벌려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세계에 벌어진 틈새로 내가 그림자들을 통로로 쏘아낸 세계강기(世界罡氣)가 빨려 들어갔다.
빨려 들어갔다.
터져 나왔다.
쾅……!
상하가 아닌 좌우로, 빛의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날 향해 닥쳐오는 그 빛무리를 본 순간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내가 쏜 강기를,”
집어삼켜 되쳐낸 거냐는 말을 하기도 전에 검제가 대답했다.
“꼭 니 거라는 것처럼,”
말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내가 반응했다.
“흡,”
단도를 쥐었다.
들었다.
양 발바닥을 깊숙하게 땅바닥에 심었다.
“하아,”
그림자는 빛의 자식이다. 빛이 무진장할 만큼 무한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닥쳐오는 섬광만큼 뚜렷해진 그림자를 닻처럼 지면에, 세계에 박았다. 몸 전체를 고정시켰다.
버티고 섰다.
뒤이어 피뢰침을 후려치는 벼락처럼 빛의 파도가 단도의 끄트머리를 후려쳤다.
“큽……!”
왈칵, 입술로부터 피가 터졌다.
피는 금세 바짝 말라붙어 스러졌다. 혈관을 흐르던 핏물도, 제습제를 주사한 것처럼 안쪽으로부터 고갈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살천성의 일격에 맞았을 적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일순간에 타버렸다면, 검제의 이 일격은,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코 앞에서 내리쬐는 것 같았다.
“흐읍,”
호흡을 했다.
깊이, 호흡을 했다.
타들어가는 심장으로 나는 숨을 마셨다… 그리고,
“흐랴아압……!!”
나는 운공(運功)을 시작했다.
마천신검魔天神劍
제 이식第 二式
갈사비검 • 심 渴死痛劍 • 心
목이 말라 죽어가던 노파가 바닷물을 들이마시듯, 타들어가는 갈증 그대로 빛무리를 마셨다. 받아들인 빛무리를 심장에 모았다.
두근, 하는 그 박동에 맞추어, 단전과 뇌를 향해 보냈다.
눈앞이 번뜩였다.
핏줄과 척추를 타고 빛무리가 퍼졌다. 터졌다. 덜덜 떨리는 몸을, 말라 붙어가는 핏물을, 충격을, 이를 악문 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빛으로 그것을 채워 나갔다.
터뜨렸다.
“갈……!”
소리지르는 것과 동시에, 온몸으로 뻗쳐 나가던 빛줄기가 전신의 모공으로 터져 나왔다.
“……!”
검제가 움찔, 검을 들어 막았다.
충분히 빨랐다. 하지만 늦었다. 고슴도치가 일거에 가시를 쏘아낸 것처럼, 내가 전신으로 토해낸 빛무리가 검제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큭,” 얇고 넓게 퍼진 빛살인 만큼 그 충격은 크지 않았겠지만,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데에는 성공했고, 사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허공이 닫혔다.
절간에서 피워 올리는 향 냄새가 났다.
“탁기를 태워 주셔서… 아주아주 고호맙습니다아….”
온몸에서 파직, 파작, 연기를 피워올리면서 내가 말했다.
검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좀비놈 같으니.”
“댁이 먼저 했잖아요… 누가 그렇게 후르륵…. 무슨 짜장면도 아니고….”
“원래 내 거였거든?”
“외기에 내 거 니 거가 어딨습니까….”
“여기에.”
검제가 말했다.
내가 무어라 더 대거리를 하기 전에, 검제는 검을 그러쥐었다.
“이제 내가 왜 세 수를 양보하지 않았던 건지도 잘 알았겠지.”
물론이었다.
“예.”
잘 알았다. 알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겨울의 스승님보다 더 강해진 것이군요.”
“그래.”
이 세계의 꽃들은 독하고도 질기게 생을 구가하고 있었다.
하늘을 쪼개고 땅을 불사르는 일격들이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꽃들은 그곳에 있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민들레 씨앗이 흩날리는 가운데, 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쁘냐?”
기뻤다.
“슬프냐?”
슬펐다.
“양 쪽 다냐.”
그저 조금 울고 싶어졌다.
이중나선을 그리며 휘도는 감정 속에서 다만 검제의 두 눈만이 대낮의 태양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어느 쪽이든 잠겨 있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코 깊은 곳에 섞여 들려 하는 습기를 거칠게 지워냈다.
“이것.”
검제가 칼자루를 쥔다.
“지금 이것을.”
칼끝이 움직인다.
“먼저 받아내야 할 거다.”
그리고.
무공武刀.
무형식無形式.
일검一劍.
세상이 뒤집혔다.
4.
검을 쥔 팔을 뒤로 뺀다. 한 걸음 내딛는다.
어깨에 힘을 준다.
내지른다.
결론으로서 그것은 한 차례의 찌르기였다.
바로 그 일곡에 세상이 뒤집어졌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니다.
세상은, 안에서 바깥으로 뒤집혔다.
솜인형 속에 손을 쑤셔 박아 뒤집어 까는 것처럼, 검제의 찌르기가 작렬한 그 일점(一京)으로부터, 세계가 세계를 토해냈다.
봄이 닥쳤다. 봄 속에서 여름이 터져 나왔다. 여름이 채 세상의 외곽에 가서 닿기도 전에 가을이 폭발했다. 그리고 가을의 중추에서 겨울이, 다시 봄이, 여름이, 또 다시 가을이 뿜어져 나왔다.
신록과 잎새와 꽃과 열매와 이삭과 낙엽과 헐벗은 가지들로 이루어진 만다라(養防羅)가 폭풍우 쳤다.
나는 그 일격을 알고 있었다.
“스승님께,” 썼던 그 검술이군요.
“그래, 마지막,” 일격을 날렸던 그 무공이다.
“이제 보이는,” 군요. 이런 검술이었던 거네요.
“보이기만, 하는 거냐?”
“그건,” 아니고요.
입 밖으로 나온 말들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는 대화가 나와 검제 사이를 오갔다.
“아아,”
공간을 베어 가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시간, 시간, 무수한 시간을 겹겹이 쌓아 이루어진, 아마도 구형(球形)이라 표현해야 할 그 일격이 느릿하게 날아드는 것을, 나는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압도당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은,”
단순한 심검이 아니다.
끌어온 외기를 쏘아 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세계……!”
검제가 쌓아 올린 성역.
그의 인생.
[ 약동하는 만뢰의 꽃밭이 펼쳐집니다. ]그의 삶이, 나를 뒤덮었다.
[태초에 그것이 있었다] [그 외에는 없었다] [검의 해] [검의 달] [검의 날] [검의 시] [검의 분] [검의 초에] [톱니바퀴처럼 딱 맞물리는 순간에] [오오! 되었다!] [마침내 벼려졌다!] [태초의 검]막혀 있던 둑이 터진 것처럼 무수한 이미지가 눈 앞을 스쳐갔다.
[우리들의] [기다림] [안타까움] [굶주림] [목마름] [이 세상은,] [오로지 너만을 위해 존재 ] [하는] [너 외의 인간은 모조리 허깨비] [나는] [혼자] [뭐 그리 ] [뭐 그리 얼굴에 번뇌가 가득] [가] [득] [득] [득] [득] [득] [득] [득하느냐]반신안(半神眼).
[뭐 그리 얼굴에 번뇌가 가득하느냐]탑주의 인생을 엿본 뒤 이따금 뜨이고는 했던 그것이, 이 일격으로부터, 마침내 검제를 읽어 들이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은 홀로 태어났다.
만들어졌다.
“당신은,”
만들어진 당신은 형제를 갖고 싶어했다.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가 아니고 싶었다. 당신은 봐주는 것 없이 겨룰 수 있는 상대를,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상대를, 그런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승을 만났다—스승은 당신에게 당신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당신은 거기에,
“만족을,”
[그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검제, 당신은 만족—”
“만족한다!”
검제가 소리 높여 외쳤다.
“만들어진 생명이었다! 주어진 삶이었다! 걷기도 전에 뛰는 법을 알았고 악수에 앞서 절부터 받았던 거지 같은 삶이었다!”
“검제,”
“하지만!”
태양에게 성대가 있다면 이런 목소리를 낼 것이었다.
“지랄 맞게 행복한 삶이었다!”
빛나는 목소리로 검제가 외쳤다.
“나는 나의 삶을! 내 모든 만남을! 이별을! 아낌없이 긍정한다!”
“아하,”
“명천마!”
검제가 찌르기를 취한 자세 그대로 외쳤다.
“너는 어떠하냐!”
“저는,”
“웃었느냐! 사랑했느냐! 살았느냐! 행복했느냐!”
“저는—”
“네가 그러했다는 것을 나는 함께 하여 안다!”
나와 같이 탑을 올랐던 남자는 당당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만큼은 아니다!”
“검제,”
“내 삶을 받아라! 느껴라! 우러러봐라!”
나는 웃었다.
“그건,”
단도를 역수로 쥐었다.
청테이프의 감촉. 바로 조금 전에 감았는데도 다시금 헤지고 타버려 너덜너덜해진 감각이 손바닥을 적신다.
날아드는 검제의 일검을, 만다라의 구체를 본다.
나를 긋는다.
마천신검魔天神劍
제 구식第 九式
자결검•심 自決劍•心
그 날이 횡으로 향하도록 틀어 쥔 단도는 갈비뼈를 피해 깔끔하게 내 심장을 꿰뚫었다.
피가 흘렀다.
비오는 날 창가를 기는 달팽이보다도 더 느릿하게, 흘러내린 피가 손목을 타고, 소매를 적셨다가 뚝, 발치에 피어난 꽃 위에 떨어졌다.
“너,”
검제가 멈칫한 그 순간, 내 피를 마신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너,”
“나는,”
[그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나는, 탑에 도망쳐 들어왔습니다.”
“김공자,”
“제겐 부모가 없었습니다. 원장님을 존경했지만, 그때는, 아직은 어려서, 진심으로는 제 부모라 여기지 못했습니다. 연락을 못했습니다. 도움을 청하지 못했어요. 저는,”
나는 흑룡주를 생각한다.
강하고 고결한 사람. 홀로 탑 안을, 그리고 탑 바깥을 상대하는 강대한 인물.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처음 탑에 발을 딛은 계기는 더 이상 바깥에 있을 곳이 없어서였다. 그녀는,
“도망쳐 들어왔어요.”
나는 검성을 생각한다.
바깥에서 이룬 것. 이미 가진 것을 버린 채 홀가분하게 들어오는 이들이 탑에는 있었다. 도전하기 위해 들어온 자들이 탑에는 있었다.
흑룡주는 그 중 하나가 아니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가 아니었다.
“저는 있을 곳이 없었어요.”
어딜 가도 불청객이 된 것 같았다.
서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속에, 가야할 곳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 각자 걸음을 재촉하는 거리에서, 그러나 나만은 어딘지 붕 떠있는 것만 같았다.
빛이 넘치는 도시에서, 열병에 신음하는 나의 별은, 나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로 왔어요.”
걸맞게도 나에겐 부모가 없었다.
상징적이었다.
“당신과 달리.”
당신이 세상에 의해 벼려졌다면 나는 세상에 버려졌다. 당신이 당신을 빚은 사람들 모두를 부모로 두고 있었다다면 나는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고아였다.
그래서.
“당신과 같이.”
우리 둘은 우리가 자란 세상을 뒤에 남긴 채 여기에 왔다.
“김공자,”
“검제 양반.”
피가 흐른다.
느릿하게 흘러내리는 핏물들이 내 발치를 적신다. 그림자를 타고 퍼져 나가는 내 피가 닿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
쉬게 만든다.
“당신, 만족 못했지요?”
검제가 한 차례 더 멈칫했다.
나는 내 심장에 칼을 박은 채 입술을 끌어올리면서 웃었다.
“나는 만족을—”
“만족,”
[그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못했잖습니까!!”
내가 스승님이 더 이상의 삶을 바라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그러나 깨어날 때마다 흔들렸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결국은 당신도 똑같았던 것이다.
“만족을,”
당신은 그것으로 만족했다-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그것으로라도 만족하고 싶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아핫,”
왜인지 밤볼리나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이 세상을,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름답다 여기던 그 금발의 아이를, 구김살 없이 환하게 웃고 다니는 그 영원한 소년을, 하지만 그 조차도 거기서 더 나아간 무언가를 바랬다. 사람이어서. 사람이기에.
누구나 단지 사람일 뿐이기에, 당신 또한 그런 사람일 뿐이기에 나는,
“당신을!”
나는 당신을 향해 이렇게 외치며,
“만족시켜 드리지요!”
당신은 나를 향해 야수처럼 웃는다.
“할 수 있,” 다면 해보라고 당신은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소리쳐 답하며,
[ 썩어버린 꽃들의 화원이 펼쳐집니다. ]나의 심장으로부터, 나는 나의 그림자를 펼쳤다.
양감을 가진 그림자가 파도를 친다. 내 심장의 소용돌이가 쨍쨍하던 햇볕을 집어삼킨다. 나의 성역이, 지쳐버린 영혼이 쉬어가기 위한 휴게소가 검제의 꽃밭을 침식해 들어간다.
“핫,”
검제가 웃었다.
용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크게, 아주 크게 웃었다.
“아핫,”
내가 웃었다.
속삭이는 것처럼, 작게, 아주 작게 웃었다.
“아핫,”
“아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검제가 날린 시간의 만다라가 흐트러진다.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다시 봄이, 올올이 풀어 젖혀진다.
거침없이 흘러가던 시간의 격류가, 멈추어 버린 세계 속에 그 날개를 접는다.
“그걸 막았다고,”
검제가 자리를 박찼다.
“끝난 게 아니겠지요!”
내가 자리를 박찼다.
우리 둘의 검이, 단도와 대검이 부딪히면서, 쩡, 섬뜩할 정도로 맑은 소리를 냈다.
“좋구나!”
“예, 좋습니다!”
쩡!
“좋아! 좋다! 아아!”
“예에, 아주 신나네요!”
쩡!
“제법이야, 명천마!”
“댁이야말로, 태초의 검!”
심장에서 흘러 넘치는 그림자가 검제를 향해 쏘아진다. 검제가 한 손에 빛을 그러모아, 용의 모가지를 잡아채듯 엇걸어 막으면서 검을 내리친다. 쩡! 가까스로 들어 올린 단도로 막아 흘린다. 그리고 바로 한 바퀴 돌아 목덜미를 향해 단도를 내리찍는다.
그마저 가로막혀서 나는 웃는다.
검제가 웃는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더 크게 웃는다.
“나는 특별하지 않아!”
진심으로 만족하여 웃는다.
“나는!”
검제가 대검을 든다. 휘두른다.
벼락이 친다.
“평범하다아아아아앗!!”
“예, 태초의 검!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나는.
“부족하지 않습니다아아!!”
단도를 휘두른다. 쩡! 쩡! 쩡……! 대검을 비껴 쥐어 막아서는 검제를, 모가지를 물고 늘어지는 늑대처럼 집요하게 달라붙으면서 놓지 않는다.
“모자라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 태어난 게 아닙니다!”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암! 있지! 있고 말고!”
“당신처럼,”
“너처럼!”
쩡!
우리 둘의 무기가 맞부딪힌다.
우리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떨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는!”
한 차례 빛과 그림자가 뒤얽히고, 쩡 소리와 함께 스러진 순간.
나의 단도는, 그리고 그의 대검은, 서로 교차한 채, 허공에 뜬 열쇠구멍에 꽂혀 있었다.
““살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산산이 깨어졌다.
39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