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41)
(유료연재 시작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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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많은 결전을 건넜다.
끝없는 결투를 견뎠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했다.
열세 번째 스테이지.
‘하필이면 13이라는 흉수(凶數)로 이루어진 무대.’
그 탓일까? 이곳은 입장할 때부터 남다른 포스를 뽐냈다. 스테이지에 전송되자마자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목소리가 나를 반겨 준 것이다.
하나는 기쁜 목소리. 하나는 끔찍한 목소리로.
[환영합니다, 사왕.]먼저 예의 목소리가 있었다.
탑에서는 더 이상 나를 ‘헌터 김공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명. 나의 두 번째 이름인 사왕(死王). 이제 나는 이곳의 거주민으로 정정당당히 인정받았으며, 적법한 탑의 일원이 되어 환영받았다.
이런 사실이 소소히 기쁘다면 내가 너무 소박한 것일까.
-크아아아아!
그리고.
-용서치 않겠다!
찢어질 듯한 비명이 또한 있었다.
-감히! 감히 나의 아이들을!
아니.
목소리의 주인은 실제로도 찢어지고 있었다.
-내가 거두어 살린 아이들을 멋대로 빼앗아가다니! 나를 우롱하느냐. 나를 속이려는 것인가. 내 살을, 내 피를, 나의 영혼을 앗아가는 것인가!
마왕.
붉은 악몽의 주인은 온몸에서 구정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주하마!
마왕의 형체는 말 그대로 찢어지고 있었다. 검정색 핏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구정물이 그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증거했다. 12층에서 도망쳤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처참한 모습으로, 마왕은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너를! 세계를! 나 아닌 모든 것을 저주한다! 세계가 나를 없애고자 한다면 내가 세계를 집어삼키리라! 너희의 바다는 나의 위액이 될 것이며, 너희의 땅은 내 살점이 될 것이니! 네놈들의 살을! 뼈를! 심장을! 마지막 내장까지 모조리 씹어주마!
“으···.”
내 옆에서 마녀가 숨을 죽였다.
그만큼 마왕이 우짖는 비명은 흉흉했다.
지독한 살기.
검성마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칼자루를 꾸욱 쥐었다.
“끔찍한 절규로구먼.”
검성이 중얼거렸다.
“저런 목소리는 들어본 적 없네. 꼭 입구멍이 수천 개는 뚫린 것 같군.”
“그러게. 뭐 때문에 저렇게 비명을 질러대는 거람···?”
검성과 마녀가 오러를 피워올려 몸을 둘렀다. 살기에 집어 삼켜지지 않기 위해서일까. 설령 잠시뿐이라 해도 마왕의 기세에 압도당한 것은 분명했다.
오직 한 명.
-엥?
언제나 태연자약한 내 배후령만이 머리를 갸우뚱거릴 뿐.
-뭐지. 저놈.
그리고 배후령은 정말 의외의 말을 흘렸다.
-아까보다 약해졌잖아?
‘예?’
-아랫층에서 싸울 때보다 훨씬 약해졌다고.
훨씬 약해졌다고?
나는 다시 마왕을 찬찬히 살펴봤다.
‘···저게요?’
-오냐아.
배후령이 눈살을 찡그렸다.
-그야 마녀인가 뭔가 하는 애한테 오러 찜질 거하게 당했으니까. 대미지 입은 거야 당연한데. 글쎄, 그냥 부상 입고 뭐 그런 게 아니라 ··· 아예 [격]이 떨어졌는데.
‘격이 떨어지다뇨?’
-음. 이걸 뭐라고 해야지. 예를 들면···.
배후령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래. 저놈의 전투력을 대충 대왕 고블린으로 비교를 해보자. 12층에서 저 놈은 알렉산더랑 아서가 고블린이랑 합체해서 만들어진 그런 SSS급 대왕 고블린이었단 말이야.
‘비유력이 갈 수록 신박해지네요. 알렉산더랑 아서는 또 언제 아셨대?’
-제왕은 항시 면학을 게을리하지 않는 법이란다. 그러니 제왕이 되는 거고 제왕으로 남는 거지.
‘아, 예. 그렇다고 칩시다 검제 씨.’
내가 속으로 말했다.
‘그래서, 12층에서 저 마왕은 그런 SSS급 대왕 고블린이었는데···.’
-응. 지금은 앞에 SSS급 딱 뗀 그런 대왕 고블린 같은 느낌? 그것도 11층에서 군세를 이끌던 대왕 고블린이 아니라 네가 비열하게 고륵고륵 거리면서 브루투스 짓으로 겨우 깼던 그 약화판 대왕 고블린 있잖냐.
탑의 시간으로는 바로 얼마 전 일.
하지만 나의 시간으로는 실로 먼 추억으로 남은 그 일을 언급하면서, 배후령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허! 희한하네. 원래는 탑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보스도 쎄져야 정상이거든? 근데 왜 저래 됐대냐. 마녀가 쓰던 오러 지지미에 렙따 효과라도 붙어있냐 혹시?
“······.”
나는 검제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봤다.
폐허가 되어버린 신전.
그 한복판에서 마왕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마치 불의의 일격에 당해버린 사자처럼. 가을비의 악몽은 원통해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분노하고 있었다.
‘···혹시.’
그런 모습이 내게 모종의 확신을 안겨줬다.
‘스테이지에 뭔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긴 건가?’
그때였다.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흘러들었다.
[현재 히든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19층을 클리어할 때 모든 보상이 정산될 것입니다.] [현재는 약식의 보상만 주어집니다.]스르륵!
눈앞으로 반투명한 무언가가 펼쳐졌다.
[축복, 전신(戰神)의 가호가 강화됩니다!]그것은 지도였다.
다만 지금까지 본 지도와는 전혀 달랐다.
[11층부터 20층까지 모든 맵이 개방됩니다!]세계지도.
여태껏 나한테 특전으로 주어진 지도는 이름 그대로 ‘미니맵’. 아무리 넓어봤자 한 층의 범위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이 세계의 지도이자 이세계(異世界)의 지도.
이른바 ‘월드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리고 나는 지도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알았어요!”
“응?”
마녀와 검성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마녀는 의아한 얼굴로. 검성은 무뚝뚝한 얼굴로.
“알다니… 뭘 말이야?”
“왜 마왕이 저러는지 알겠다고요. 흑룡주. 이전 스테이지를 떠올려보세요.”
나는 빠르게 말했다.
“마왕이 수도를 침공한 역사 자체가 없어졌잖아요. 도시도 완전히 바뀌었고요. 난민촌 같은 건 홀라당 사라졌죠.”
“그게 어때서…?”
“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쇼! 어디서 난민들이 도망쳐 왔겠습니까. 제국 방방곡곡에서, 아니.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 피난 왔을 거 아녜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 난민촌까지 몽땅 다 사라졌다고요.”
“···아.”
드디어 마녀도 뭔가를 눈치챈 표정이 되었다.
“그렇구나.”
흑룡의 주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국이 침공받은 역사만 바뀐 게 아니야. 대륙 곳곳에서 도망친 피난민들이 아예 사라질 정도로···.”
“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가 바뀐 겁니다. 아직 [마왕이 본격적으로 대륙을 침공하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 거죠!”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이다.
“지금은 이 신전이 공격받고 있는 시점인 겁니다!”
월드맵을 보니 비로소 확실해졌다.
이 세계의 대륙은 거대한 산맥으로 인해 양분되어 있었다. 산맥은 높고도 넓어서 새조차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높고도 넓은 산맥 한복판에는 잘록하게 줄어드는 구간이 있었다. 동서로 나뉜 대륙은 그 구간을 통해서 왕래할 수 있었다.
이 신전은 바로 그 곳에 세워진 것이었다.
대륙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신전. 이것이 세워지기까지는 아마 거대한 역사가, 수많은 전설이 있었으리라.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사연에 의해 이곳은 요새를 닮았고 성벽을 닮아서, 그러기에 신전으로 기능했다.
이 신전은 산맥의 중턱을 가로막고 선 여신의 방패였다.
그 방패 안쪽, 동쪽으로 평야가 있었다. 평야에는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너머에 제국이 존재했다. 제국 너머에는 바다만 존재하였으므로 제국의 국경은 지평선에서 시작되어 수평선으로 끝났다.
푸르기 그지없는 인간의 강역이었다.
반면, 신전 너머, 서쪽은 온통 붉었다.
여신의 방패 너머의 모든 대지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곳이 마왕의 권역이었다.
마왕은 이 방패를 깨뜨리고 동쪽으로 밀려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국을, 제국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항구까지 밀어붙였던 것이다.
원래의 역사 속에선 그러했을 것이었다.
‘역사가 개변한다는 게 이런 뜻인가!’
나는 이해했다.
이세계의 시간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역사 개변.
어쩌면 [역사 회귀]라고 불러야 올바를 현상.
-크아아아아!
그렇다.
왜 마왕이 저토록 처절하게 절규하는지.
왜 검제가 마왕의 격에 대하여 운운했는지.
이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레벨이 내려간 거예요.’
-엉?
배후령이 미간을 좁혔다.
-레벨이 내려가?
‘그 뭐냐. 검제 양반. 우리 같은 헌터들이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들리는 목소리 있잖아요.’
있다.
헌터가 강해질 때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해져 있다.
「당신의 존재가 한층 더 뚜렷해집니다.」
「당신의 레벨이 성장합니다.」
배후령도 금세 똑같은 문구를 떠올린 것 같았다.
-혹시 당신의 존재 어쩌구 하는 그거 말하는 거냐?
‘예. 바로 그거요!’
레벨이 성장한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존재가 한층 더 뚜렷해진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쫌 멋을 부린 표현인가 여겼는데···.
지금 마왕을 보니까 잘 알겠다.
“아마도 저 보스 몬스터는 수많은 제국민과 피난민을 죽이면서 성장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살육과 사냥이 [없는 일]로 변해버렸죠. 그래서.”
그러기에.
“그만큼의 성장치가 삭제된 겁니다.”
존재가 흐릿해지고 있는 것이다.
“마왕이 여태까지 밟아온 행보··· 살육을 거듭해온 역사가 지워져서.”
내가 12층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서.
끝없는 결투를 견디고 수많은 결전을 견디면서, 한 땀 한 땀 이어온 나의 시간에 의해.
-크아아아아아!
마왕의 시간은 한 땀만큼 뒤로 물러난 것이다.
[가을비의 마왕이 진노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때마침 들려온 목소리는 나의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네놈들…!
붉은 악몽이 으르렁거렸다.
조금 전과 비교해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은 살기.
하지만 더 이상 마왕의 기세에 밀리는 헌터는 없었다.
나도, 마녀도, 검성도, 마왕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갑시다.”
내가 말했다.
“반격의 봉화를 올리자구요.”
5.
-백귀여!
부그르르!
마왕의 몸이 들끓었다.
-만마여!
얼핏 들으면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
-나의 아이들아!
그것에 응답하여, 스테이지 곳곳에서 괴물들이 몸을 일으켰다. 소환술은 아니었다. 아마 처음부터 13층에 준비된 몬스터일 거다.
신전 기둥에서, 폐허가 되어버린 잔해에서, 괴물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우으어어어.
물경 수천에 이르는 좀비.
이 신전, [여신의 방패]에 있던 인간들일까. 신관 모자를 쓴 좀비도 있었고, 성기사 제복을 차려 입은 좀비도 있었으며, 상인의 옷차림을 한 좀비도 있었다. 그것들은 시선이 부재한 눈알을 굴리며 우어어, 몸뚱어리를 움직였다.
마왕이 소리쳤다.
-저것들을 죽여라!
좀비 떼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옆에서 마녀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옛날부터 좀비 영화는 싫어했는데···.”
“저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죠.”
“이길 수 있겠니, 사왕?”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에요.”
나는 검을 들었다.
“제가 이깁니다.”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