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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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층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거의 천에 달하는 죽음이 필요했다.
13층에서는 그보다 덜한 죽음이 필요할 것이다.
‘검제 양반.’
-왜?
‘우리 내기하죠.’
-무슨 내기?
제일 먼저 달려든 좀비의 머리를 날렸다. 서걱! 안 그래도 이미 썩어 있던 좀비의 목은, 내 칼날에 부드러운 두부처럼 썰렸다. 사납게 돌격해오는 수십 마리, 수백 마리, 수천 마리의 좀비를 향해 나는 말했다.
‘19층까지 미는 데 몇 번이나 죽을지. 내기합시다.’
-음.
배후령이 턱을 쓰다듬었다.
-오케이. 나는 100번 이하에 건다!
내가 씩 웃었다.
‘그럼 전 99번 이하에 걸죠.’
-와, 치사한 새끼. 그런 식으로 쪼잔해지고 싶냐? 엉?
‘네. 그러고 싶은데요.’
배후령이 피식거렸다.
-오냐. 어디 좀비 새끼가 자기 동족들 잡는 거나 구경해보자. 잘해 봐라! 대신 내기는 내기니까 이번엔 나 안 도와준다. 콜?
‘콜.’
끝없이 몰려드는 좀비를 바라보며 나는 웃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웃으면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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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아우, 일단 이 물량을 어떻게 해야겠네…. 마녀님, 어떻게 더 안 돼요?”
“안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여기서 광역기 가진 게 나뿐이잖니. 그치만 어려워. 그보다 사왕, 당신의 스킬로 맞불 작전 쓸 수는 없는 거야?”
“아, 물론 그것도 써야지요. 근데 지금은 쿨타임이 안 돼서… 대충 3코인 뒤에 쓸 수 있걸랑요.”
“3코인이란 게 뭐야?”
“그런 게 있어요. 음, 아무튼… 어라, 혹시 이 미니맵에 나와있는 이거…. 아! 검성님! 저기 좀 뚫어주실래요!? 저기 석관처럼 생긴 커다란 뚜껑이요! 확인할 게 있어서!”
“뭘 확인한단 말인가?”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일단은 좀 부탁합시다! 저 예언가! 오케이!?”
“으음···.”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오케! 검성님! 쪼기 석관이 사실 비밀 통로예요. 그리고 그 아래에 언데드 특효 붙어있는 망치가 있거든요! 마녀 씨랑 같이 가서 그것 좀 주워서 써주세요!”
“이 사람은 칼 한 자루 외길인생을 걷고 있네만···.”
“그거 광역 효과 붙었어요! 오러 실어서 바닥 꿍 하면 장판 깔리면서 좀비 싹 쓸려나감! 오케이!?”
“자넨 그걸 어떻게 아나?”
“저 예언가! 오케이!?”
“아니 나 원···.”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좀비들은 대충 이걸로 정리됐고 이제 마왕을, 아, 저건 또 뭐야?”
“좀비로군. 거인이고. 그러니 좀비 거인이 아닌가 하고 이 사람은 생각하네만.”
“으음. 이 신전은 척 봐도 역사가 깊어 보이니까··· 아마, 이 신전을 수호하던 거신병 같은 것이려나. 그게 마왕한테 당해서 수하가 되었다··· 뭐 그런 거겠지. 이단심문관이 여기 있었다면 좀 더 자세히 알아봤을 것 같지만···.”
“와. 그 사람, 이계의 종교에 대해서도 알아요? 괜히 SSS급 종교인이 아니네.”
“스킬 빨이야.”
“그게 SSS급의 증명이죠 뭐.”
“불쾌하구만. 그 되먹지 못한 놈 이야기를 굳이 꺼내야 하겠나. 아무튼 저 거인은 이 사람이 맡겠네.”
“예, 검성님.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아무튼 저 거인은 이 사람이 맡겠네.”
“아뇨, 검성님. 검성님은 계속 장판기로 좀비들 견제해주세요.”
“이보게, 저 거인은 이 사람의 칼을 시험하기에···.”
“저 예언가! 저 예언가! 오케이?”
“아니 진짜······ 후, 그럼 저 거인은 누가 상대한단 말인가?”
“당연히 마녀님이죠. 빔으로 저 좀비 거인 눈깔 좀 맞춰주세요.”
“안 그래도. 맞추고 싶어지는 눈이었어. 왕눈 하나 달고 있다는 건 맞춰달라고 유혹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잖아.”
“완벽하네요! 갑시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아무튼 저 거인은 이 사람이,”
“백귀소환!”
“세상에. 사왕. 당신의 그 스킬은 쿨타임도 없는 거야?”
“그런 게 좀 있어요··· 자, 이제 두 분이서 거인을 상대해주시면 되는데요. 특히 마녀님.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뭐니?”
“눈깔은 맞추지 마세요.”
“어째서?”
“그러면 큰일 나거든요.”
“하지만 사왕. 저 외눈박이 거인 좀비를 보려므나. 저 커다란 눈동자를 보라고. 보여?”
“네… 보고 있어요. 저도 저게 진짜 맞추고 싶게 생긴 눈깔이라는 거 알거든요? 근데 안 돼요.”
“어째서? 저······ 눈이 말이야, 사왕······ 만약 네가 나처럼 빔을 쓸 수 있다면, 그런데 저런 눈알을 가진 거인을 본다면······”
“인정합니다···. 마녀님. 제가 마녀님이라도 저 눈 맞추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미친 듯이 따지고 볼 거예요. 이유는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는데···. 제발요. 네?”
“으읏··· ”
“일단 저 친구 말에 따르도록 하게. 마녀.”
“검성, 당신마저···.”
“저 젊은 친구가 말하는데, 자기가 예언가라더군. 일단은 따라보세나.”
“······알겠어. ······최선을 다해서, 눈알을······ 맞추지 않도록 하겠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달렸다. 싸웠다. 서로를 구했다.
행동했다.
많은 말을 했다.
-나의 아이들을······!
신전에 머무르던 좀비들을 깨뜨렸다.
-나의 장군을······!
이 신전이 산맥의 방패로 기능하던 시절, 분명 전설로 존재했을 외눈박이 거인을 물리쳤다.
-아아아아아······!
[가을비의 마왕이 퇴각을 결심합니다.]그리고,
[가을비의 마왕이 14층으로 후퇴합니다!]우리는 다시 한 차례, 마왕을 다음 계층으로 밀어냈다.
12층에서처럼, 빛방울이 흩날렸다.
대륙을 가르는 경계선,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신전은 갓 닦은 방패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종과 함께 성가가 울려 퍼졌다. 동쪽에서 온 상인들은 말을 타고, 서쪽에서 온 상인들은 두 다리로 걷는 이상한 새를 타고 인사하며 지나쳤다. 성기사들은 망치를 맞대며 대련에 열을 올렸고, 신전에 맡겨진 고아들은 그런 상인들을 동경의 눈길로, 그리고 성기사들을 흠모의 눈길로 훔쳐보다가 사제들에게 귀를 잡혀 예배당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신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산마루를 의자 삼아 걸터앉은 외눈의 거인은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따금 양털을 닮은 구름이 그의 머리를 스쳐갈 때면 커다란 눈을 꿈뻑거리면서 재채기를 했다.
“산신님이 재채기를 하셨어요!”
쫑알거리는 고아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방글거림이 있었다. 사제는 그런 고아의 머리를 쥐어박아 주의를 주더니, 외눈의 거인을 향해 깊이 읍을 해 보였다.
외눈박이 거인은 히죽 웃더니 그런 사제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아.
“사왕.”
음.
“예··· 마녀님. 가지요. 자아, 검성님, 준비되셨습니까?”
“잠깐만 기다리게. 저기 저 상인이 좋은 숫돌을 파는구먼.”
검성은 그 숫돌을 샀다. 그가 칼을 가는 동안, 나는 거인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월드맵을 바라보았다.
한 뙈기 떨어져나간 붉은 땅들은, 그러나 당장이라도 다시금 몰려올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검성이 숫돌에 칼을 갈 시간 정도는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사왕.”
마녀가 내 손을 잡았다. 칼을 가는 걸 마친 검성도 곧바로 마녀의 손을 잡았다.
“전송.”
다시금 빛이 우리를 감쌌다.
“흠. 14층은 숲인가. 마왕은··· 숨어버린 모양이군.”
“조심해. 사방에서 적의가 느껴지고 있어.”
“그러게요. 천천히 갑시다, 천천히.”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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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저주받은 숲에서 타락한 엘프 군주를 거느린 마왕을 깨뜨렸다.
[가을비의 마왕이 퇴각을 결심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15층으로 후퇴합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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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거꾸로 흐르는 폭포에서 인어의 여왕을 부리는 마왕을 물리쳤다.
[가을비의 마왕이 퇴각을 결심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16층으로 후퇴합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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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터져버린 화산 꼭대기에서 와이번들을 부리는 마왕을 격퇴했다.
[가을비의 마왕이 퇴각을 결심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17층으로 후퇴합니다···.]역사가 회귀한다.
마왕군이 제국을 침략하기 이전으로.
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침공하기 이전으로.
여신의 방패라 불리는 신전이 깨어지기 이전으로.
요정의 숲이 저주받기 이전으로, 폭포가 거꾸로 흐르기 이전으로, 화산이 터지기 이전으로.
이전으로, 이전으로.
아직, 마왕이 절대적인 악의 군주로 군림하기 이전의 시대로.
덧없이.
마치 파도가 또 다른 파도에 뒤덮여, 한 방울의 물거품이 되어 사그라들듯.
꽃잎이 떨어지듯.
탑을 오를 때마다 마왕의 강역은 좁아져 갔고, 탑을 오를 때마다 마왕의 위력은 약해져 갔다.
[가을비의 마왕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12층의 마왕보다 13층의 마왕이 더 약했던 것처럼,
13층의 마왕보다 14층의 마왕은 더 약했으며.
14층의 마왕보다 15층의 마왕은 더,
그렇게 더. 조금 더. 조금씩 더···.
[당신은 죽었습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퇴각을 결심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퇴각을 결심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의 존재가 흐릿해집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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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
아흔 일곱번.
97번째의 죽음 끝에 도달한 19층은, 이름없는 소국의 어딘지 모를 변두리였다.
-네놈!
그 황량한 땅에서 마왕이 울부짖었다.
검성도, 마녀도 아니다.
마왕이 이를 갈면서 노려본 상대는 바로 나였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분노로 붉게 충혈된 눈.
-네놈 때문이다! 전부 다 네놈 잘못이다! 똑바로 절차를··· 그렇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노라! 감히! 이계에서 건너온 칼잡이 따위가···.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야아. 이제야 눈이 좀 보이네.”
-뭐라···?
“말 그대로야. 여기까지 와서 겨우 댁 눈알이 어떻게 생겼는가 구경했어.”
그래.
본래 가을비의 마왕에겐 눈이 없었다.
마왕은 흐물거리는 그림자였다. 얼굴이 있었으나 표정은 없었다. 팔이 있었으나 손이 없었다. 구정물.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검은색 진액으로 온몸이 뒤덮여 있었으니까.
그랬었다.
“말이 되냐?”
드디어 마왕의 가면이 깨진 것이다.
“마왕이랑 용사가 눈도 한번 마주치지 못하다니. 진짜 말도 안 되는 비극이지.”
구정물이 뒤덮지 못한 부분이, 마침내 생겼다. 붉게 충혈된 눈. 비록 독하디독한 살기를 흘리고는 있다만··· 그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도리어 반가웠다.
나는 칼끝으로 마왕을 겨누었다.
“전력을 다해서 덤벼라.”
-이놈···.
“아니면 또 한 번 도망치든가. 야, 궁금하지 않아? 이번에 도망치면 또 얼마나 약해질 건지.”
-······.
“지금 전력으로 덤비지 않으면 못 이겨. 너.”
19층을 클리어함으로 얻게 될 보상을 제외하더라도, 결국 20층의 마왕은 한없이 약할 거다.
-네놈이 할 말이··· 감히. 나의 살점을 뜯어먹은 하이에나 따위가, 네놈이 무엇을 안다고···.
저주와 같이 으르렁대는 소리.
갈피를 잃어서 헤매는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에스델.”
멈칫.
마왕의 붉은 눈이 커졌다.
“전력을 다해서 덤비라고 경고했다.”
-······.
“그러지 않으면.”
그리고 나는 자리를 박찼다.
비명이 터졌다.
검은색 진물이 튀었다.
“나의 시간은 너의 역사보다 길어질 거다.”
나는 마왕, 에스델의 비명을 들으면서 노려보았다.
정면.
내가 나아갈 길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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