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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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게 하나의 왕과 그 신하가 남은 자리에서, 입을 연 것은 둘 중의 누구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왕도 신하도 아닌 ‘제왕’이 준엄하게 입을 열었던 것이다···.
“···검제 양반, 이런 순간에조차 꼭 ‘검제’해야겠습니까?”
하여간 분위기 초 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양반이었다.
그 양반은 꽈배기처럼 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했다.
-응··· 해야겠다··· 아니 나도 하기 싫은데··· 솔직히 니들한테서 되도록 떨어져서 막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싶은 그 마음 굴뚝같기 그지없는데, 아우, 이걸 나밖에 말할 사람이 없어 가지고.
“아, 뭔 말을 하시게요.”
-니들 뭐하냐?
뭔 소리야 싶었는데, 아마 그게 검제가 하고 싶었다는 말인 모양이다.
“뭐하냐뇨? 보다시피······
-그래. 마왕을 죽이고, 어? 니 스킬로 살렸어. 이름도 막 붙여주고······ 아 씨, 그 이름이란 것도. 여자애한테 이름이 아귀가 뭐냐?
기왕 아귀라고 붙일 거면 초롱아귀라고 붙이고 초롱아 이러면 부를 때마다 좀 더 귀엽고 그러지 않겠냐?
“하다못해 이제는 이름 갖고 시비 거는 거예요?”
-아니, 이름은 됐다 치고. 그 다음 꺼······ 왜 갑자기 주종관계 맺고 앉아있냐 너희?
검제는 천하의 희한한 것들을 본다는 듯 나와 아귀를 훑어보았다.
-니들이 막, 무슨 유대관계가 있다고······ 아니 그래! 좀비 너한테야 있다고 치자. 네 말마따나 네가 잡은 사냥감이니까, 응? 넌 나의 노예 아이갓츄~ 언더마이스킨 뭐 이런 니네 세계 옛날 유행가 같은 걸 할 권리가 있다고 칠 수도 있겠지.
“검제 양반 유행가도 들어요?”
-마르쿠스 그 영감 취미 중 하나가······ 아니 됐고. 그래서 넌 그런다 치는데, 쟤는 왜 예스 마이 로드 하고 있는지 영 이해가 안 되네.
검성의 취미 중 하나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가능하다면 알지 못했다면 좋았을 취미였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흐음.
“그러니까 아귀가 왜 저를 주군으로 모시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죠?”
-응. 좀비야? 네가 쟤한테 한 짓들을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나열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쟤 앞길 틀어막고 헤헤헤 못 가를 시전하셨지?
“그렇게 시작했죠.”
-쟤가 쌓아온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버렸지? 나중가서는 팩폭으로 멘탈까지 깨버리셨고.
“그렇게 전개됐죠.”
-그러고는 아예 모가지를 따버리셨어. 어후, 안 나오겠다고, 싫다고 버티는 애를 억지로 백귀환생인지 뭐시기인지로 세상에 끄집어낸 건 화룡점정이고.
“그렇게 결말났네요.”
검제가 혀를 내둘렀다.
-하, 진짜 동정심도 없는 새끼. 니 심장의 동맥들은 다 살무사로 되어있냐?
“코브라도 섞여 있을지 모르죠. 왜인지 빼먹으셨지만 ‘검사조차 아닌 자의 결말을 보여주라’는 누구 씨 말을 따라서 검도 깨버렸잖슴까.”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며 저 아귀 역시 내심으로는 깊이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 검사이고자 하는 불씨가 남아 있다면 말이지.
검제가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이 귀신이 지랄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개소리도 수준급이었네?
-아무튼 그러니 난 쟤가 너한테 원한과 분노를 쏟아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은데. 쟨 대체 왜 넙죽 엎드려서 목 늘어뜨리고는 명을 내리소서 이러고 앉아있다냐? 하나의 세계를 집어삼킨 재앙이 알고 보니 희대의 마조히스트였냐?
“우와아······”
검제는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싶다고 말했었지만, 나야말로 검제로부터 한 걸음 떨어졌다.
정말이지 저 고릴라의 발상 수준이란···.
“검제 양반··· 아귀가 주저 없이 저한테 복종하기로 한 건 말이에요.”
-이유는?
“아귀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귀를 흘겨보았다.
“검제 양반도 곧 알게 될 걸 말이죠.”
아카시아 숲길에 울음소리가 흘렀다.
“흐윽··· 아··· 흑······.”
아귀(飯鬼)가 울고 있었다. 분하고 슬픈 눈물. 장절한 절규가 방울로 맺혀서 뚝, 뚝, 떨어졌다.
그렇다.
아귀는 잘 알고 있었다.
[20층에서 마왕의 존재를 탐색.]이제부터 어떤 비극이 벌어질 것인지.
[ 발견 불가.]아귀의 어깨가 움찔, 경련했다.
[마왕의 부재를 확인.]솨아아아!
사방에서 빛방울이 솟아올랐다. 길바닥에서 솟아 나왔고 아카시아 나무에서 흘러나왔다. 20층 스테이지는 어차피 작은 세상이어서, 금세 빛무리에 둘러싸였다.
하얀빛 한복판.
“안 돼···, 제발. 안 돼요···.”
아귀는 덜덜 떨면서 신음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녀의 신음은 삶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지언정, 죄에 대한 항변이 될 수는 없었다.
[역사개변.]하늘은 엄숙한 목소리를 내렸다.
어리석은 죄인에게 선고를 고하는 법정처럼.
[20층 스테이지를 개정합니다.]서서히.
예정되어 있던 역사가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아···.”
아귀가 눈물 젖은 얼굴로 먼 곳을 쳐다보았다. 아카시아 숲길의 초입으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철컥! 철커덕!
그것들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갑옷과 투구가 사납게 울었다. 그 위로는 각양각색으로 칠해진 깃발이 휘날렸다.
“제발···.”
수많은 군기(軍旗).
군화와 발굽과 날개짓소리.
“또, 마을이 불타버려···. 불타버리고 말아···.”
역사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
낙원을 불태우기 위해서.
지금, 세계 각지에서 파견된 연합군이 아카시아 숲길에 들어선 것이다.
“안 돼, 제발······ 읏, 아아······.”
아귀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렸다.
웅크린 머리와 조아린 손끝이 향한 곳에 바로 내가 있었다.
“주군이시여······.”
검제가 말한 것처럼 아귀에게 나는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철천지원수일 것이다.
그런 내게 깊이 절을 올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심장이 터질 만큼 분하고 원통하겠지 .
“저의, 주군이시여······!”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했다.
해야만 했다.
“원한을 품지 않겠습니다······ 복수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권속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주군으로 삼는 것 외에 아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힘없는 사람이 지켜야만 하는 것을 가졌을 때, 사람은 아귀가 되어 어떤 굴욕이든 씹어 삼킬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명하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시녀가, 노예가 되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사람은 엎드려 빌었고.
“제발, 저의 마을을······.”
“그래.”
나는.
“그러마.”
길게 말하지 말았다.
걸음을, 떼었다.
그 걸음에 이끌려, 검제가 따라왔다. 방금까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아귀를 놀려대던 그는, 어느덧 태산보다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그런 거였군.
“예, 그런 겁니다.”
저벅.
-신하는 군주를 따를 의무가 있고.
“주군은 자기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있죠.”
저벅.
-비꼬아서 미안하다.
“내기에도 지셨었죠? 그 대가나 생각해두십쇼.”
나는 걸어서, 내 사람 너머에 섰다.
숨을 들이마시고, 목청에 오러를 실었다.
외쳤다.
“전군 정지!”
투명한 거인이 주먹을 휘두른 것처럼 아카시아 꽃잎이 흩날렸다.
비룡의 날개짓 소리가, 갑옷의 절그럭거림이 멎었다. 말발굽 소리가, 창칼의 철컹임이 멈추었다.
나는.
아카시아의 외길에 서 있었다.
나와 군단 사이에는 꽃잎밖에 없었다.
2.
꽃잎은 흩날릴 적에 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꽃잎이 세상을 뒤덮으면, 세상은 그저 녹아내리듯 잠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지를 떠난 꽃잎은 결국 바닥에 떨어지는 법이다.
바다 빛깔을 띤 갑주를 빈틈없이 차려입고, 흉판에 태양의 인장을 새긴 아이김 제국의 사령관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사르바스 아이김 장군이다! 웬 놈이 감히 앞길을 막아섰느냐!”
그리고 물론, 내가 누구인지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음.
“글쎄···.’’
몇백의 괴물을, 몇천의 좀비를 상대로 싸웠다. 아귀가 전성기의 마왕이던 시절 그 시선을 정면으로도 받아보았다.
흉흉한 기세를 나만큼 많이 경험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호흡을 한 차례 골라야 했다.
나는 칼자루를 쥐었다.
“댁들이야말로 이런 깡촌에 무슨 볼일이요?”
“황제 폐하의 뜻이다!”
사르바스 아이김 장군이 우렁차게 대꾸했다.
우오오오! 한 부대에 이르는 병졸들이 창을 흔들며 호응했다. 숲에서는 더 이상의 꽃잎이 떨어지는 대신 새들이 퍼드득 도망쳤다.
“이곳에 대륙의 선한 백성들을 선동한 마녀가 있다 들었노라! 어리석게도 마녀의 꾀임에 넘어가 스스로 악(惡)의 구렁텅이에 빠진 괴물들마저 있다니,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스러운 불로 정화하리라!”
나는 말없이 ‘미니맵’의 파란 점들을 바라보았다.
“비단 황제 폐하만의 뜻이 아니도다!”
파란 점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지도 한켠이 파란 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도 끝나지 않아서, 푸른 물결은 끊임없이 여기로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시길, 감히 성녀라 자신을 참칭하는 이단자를 벌하라 하였으메!”
13층에서 구원한 신전의 성기사들.
“숲의 군주께서 당부하신 일이니, 모든 정령이 우리의 앞길을 축복할 진저!”
14층에서 구원한 숲의 엘프들.
“인어의 현왕께서 나눠주신 보옥이 우리의 집행을 인정하며!”
15층에서 구원한 폭포의 마법사들.
“명예로운 약조를 지키기 위해 태고의 화산으로부터 용기병들이 출전하였으니!”
16층에서 구원한 화산의 전사들.
“저 자유도시 연맹의 상인들과, 들판의 기수들과, 또한 모든 속국의 병사들이 함께하기로 하였으므로!”
17층의 무장상단, 18층의 유목민족, 19층의 작은 나라들과 그보다 더 조그마한 영지의 병사들.
“우리의 징벌에 모든 세계가 함께하는 것이다!”
11층에서 19층.
내가 밟았고, 내가 올라섰으며, 내가 구원한 곳들.
그 무대의 주역들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제각각 깃발들을 흔들며 몰려든 것이었다.
“······.”
나는 그들 모두를 알았으며, 그들 모두가 나를 몰랐다. 사르바스 아이김이 그러했듯이.
“다시 한 번 묻겠다!”
사르바스 아이김이 외쳤다.
“우리의 임무를 방해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임무창을 보았다.
*
[멈추어진 세계의 용사]난이도: 불명(不明)
임무 목표: 당신은 결심했습니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구한 자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을 정의라 말합니다. 자신이 구한 자에게 인정을 바라지 않는 것을 헌신이라 말합니다. 정의에 헌신하는 자를 용사라 말합니다.
용사여!
대륙의 인간들은 당신의 정의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헌신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의는 정의로 남으며, 헌신은 헌신으로 남습니다. 그대는 멈추어진 세계에서도 계속해서 용사이길 선택하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
물론, 내 선택은 이미 내려진 뒤였다.
“사르바스 아이김 장군.”
사르바스 아이김이 멈칫했다.
나는 그를 가리키며 건들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당신, 지금 황명을 받들고 왔다고 했어?”
“다, 당신이라고? 이놈, 황명을 받은 장군인 내게 지금······.”
“허어, 이거 웃기는 사람일세. 시나리오 쓰고 앉아있어 아주. 제국의 황제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댁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딨다고 황명 타령이야?”
“그, 그건 어찌······.”
그야 스킬을 뺏으려고 죽었을 때 댁의 트라우마를 엿봤으니까.
그로인해 황자들간의 권력투쟁이 격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
12층을 구해냈을 무렵에는 황도의 시민들 틈바구니에서도 소문이 돌지 않았던가.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나는 그저 준엄한 눈길로 사르바스 아이김을 노려보았다. 선두에서 연합군을 아우르던 사르바스 아이김은 허둥거리면서 함께 하는 군주들을 훑었다.
방금 내가 말한 것이 황실의 치부였기 때문이었지만, 그 당혹은 오래가지 않았다. 용기병장과 성기사장, 유목족장이 눈살을 찌푸렸을 뿐, 나머지는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눈을 흘기고 있었다.
이 세계 최강대국의 장군은 헛기침을 하고서 눈을 부릅떴다.
“······어찌 그런 참람된 말을 하는가! 이 앞에 산다는 마녀의 손끝이더냐!”
“참람된 말? 허. 이미 정해진 태자를 폐하고 3황자를 태자 자리에 올리려는 작자가 지금 참람이란 말을 입에 담아?”
사르바스 아이김이 또 한 번 당혹했다. 이번 당혹은 조금 전의 그것보다 더욱 커서 장군의 표정을 흩어버릴 정도였다.
나는 그런 장군에게 계속해서 건들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당신 말이야. 그렇게 살면 안 돼. 폐하께서 당신한테 베푼 은혜가 얼만지 알아? 몰라? 평생 항구에서 그물이나 짤 팔자였던 놈팽이가 우여곡절 끝에 황숙 칭호 받고 장군씩이나 된 것도 다 폐하 덕분인데 아주 그냥 권력에 미쳐 가지고······.”
철저하게 화를 돋우기 위해서 계산된 말투.
기어이 냉정함을 잃어버린 장군이 버럭 화를 냈다.
“이익······ 이제야 알겠다. 호박궁에서 나온 놈이로구나! 세계가 한뜻으로 모인 이 자리에서 여론을 바꿔보겠다 이건가! 그대도 제국인이라면, 진정 제국을 이끌 재목이 3황자 전하 뿐임을······.”
“어리석은 놈!”
그 분노의 순간을, 나는 자르듯이 끊었다.
그리고는 말투를 바꾸어, 허를 찔려 멈칫한 사르바스 아이김을 몰아쳤다.
“호박궁이라고! 하! 내가 한낱 폐비의 손끝으로 보였느냐! 그물 짜던 놈이라 그런지 눈알도 옹이구멍이 따로 없구나! 미련하고 아둔한 것 같으니라고!”
“그, 그럼 대체 누가 보낸······.”
“내가 누구냐 물었는가!”
나는 검을 들어 올리며 당당하게 외쳤다.
“직접 보아 확인하라!”
허둥지둥하던 사르바스 아이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보았느냐!”
그렇다.
“그 옹이구멍 같은 눈으로도 이 정도는 보이렸다, 사르바스 아이김!”
나는 [레판타 아이김의 수호성검]을 들어 올렸던 것이다!
+
[레판타 아이김의 수호성검]희귀도: 전설
설명: ‘성검을 사로잡는 자, 대륙을 사로잡으리.’가로되 시조의 성검. 아이김 제국을 건설한 시조가 여신에게 하사받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대륙을 사로잡은 자, 운명에 사로잡히리.’
시조는 후계자를 정하고 떠났습니다. 자살한 것인가. 반역에 당한 것인가. 전설과 역사가 아직 갈라서지 않은 때, 그의 행방은 불명이 되었고, 성검 또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 줄의 예언만을 이정표로 남긴 채.
‘운명이 도래하는 날, 성검을 사로잡은 자 역시 도래하리라.’
수호성검을 소유한 자는 아이김 제국 출신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습니다.
+
나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위대하신 시황제, 레판타 아이김께서 보내신 전인이 이 자리에 섰도다!”
사르바스 아이김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떨림은 말을 타고 아이김 제국의 인장을 단 기사들에게 번졌고, 다시 병사들에게 번졌다. 마침내 제국에서 온 군세가 모조리 떨기 시작할 때까지, 나는 그런 그들을 독수리와 같은 눈으로 쏘아보았다.
“사르바스 아이김!”
“예, 예에······”
“황실의 혼란은 익히 짐작하며, 망나니 태자의 악행 또한 보아 안다! 그대가 3황자의 편에 선 것 또한 오직 제국의 사직에 대한 순전한 충정심 때문이란 것도 알고 있다! 조금 전 그대를 권력에 미쳤다말했던 것은 다만 그대의 성정을 시험하기 위했던 일! 그대는 그것을 섭섭하게 여기는가!”
충격에 차있던 사르바스 아이김의 눈동자는 이제 감격으로 붉게 젖었다.
”서, 섭섭하다니요! 알아주셔서······ 제 충정을······ 그런데 이 어리석은 것이 제 성정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이 죄를 어찌······ 아아, 시황제의 전인이시여······.”
“어허, 섭섭한 것이 없고! 또 날 그리 부름에 거리낌이 없다 하면! 왜 아직 말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가!”
“화, 황공하였나이다······!!”
사르바스 아이김이 다급히 말에서 내렸다. 굴렀다. 다급히 일어서서, 갑옷에 묻은 꽃잎과 진흙을 털지도 못한 채 무릎부터 꿇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파수하시며! 바다와 땅 사이에 거하는 모든 것을 수호하시니! 아이김 제국이여, 영원히 빛날 진저!”
제국의 장군은 절절한 어조로 외쳤다.
“미천한 말예가 시황제의 전인을 뵙나이다······!!”
그것 역시 떨림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뵙나이다!” 아이김 제국의 인장을 단 기사들이 말에서 내렸다. “뵙나이다!” 병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뵙나이다!” 넙죽 엎드리며 절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황제의 전인을 뵙나이다!!”
마녀를 토벌하기 위하여 모여든 세계 연합군.
여덟 세력 중 가장 강대한 무리가 내 앞에 무릎꿇은 것이다.
-우와.
검제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김좀비··· 너 지랄이랑 개소리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구라에도 일가견이 있었구나.
‘그걸 이제 알았수?’
탑의 여섯 기둥을 상대했을 때처럼.
얼마나 강대한 자를, 얼마나 많은 이들을 상대한다고 해도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딱 둘로 정해져 있다.
맞서 싸우거나, 설득하거나.
그리고 싸우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듯이—
‘설득하는 데에도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지.’
자아.
내가 구한 세계를 속여넘길 시간이다.
4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