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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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라이 자식!
대륙의 군세가 부대를 조금 뒤로 물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배후령은 배꼽을 잡은 채 웃기만 했다.
-이제부터 너를 김또라이라고 불러주마!
‘아, 제발 그만 좀….’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댁이 저한테 지어준 별명만 해도 벌써 몇 개인지 아세요? 김좀비. 좀비왕. 김또라이. 이러다 진짜 별명만 가지고도 A4 용지를 다 채우겠어요.’
-어, 그거 좋네. 가즈아! 별명만 수십 개인 또라이 가즈아아아!!
배후령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하늘이 꽉 차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이 세상엔 나를 놀리는 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스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습니다.]탑의 목소리.
내가 스무 번째 스테이지를 완전히 공략했음을 알리는 목소리 또한, 내 머릿속에 울렸다. 예전에 열 번째 스테이지, 일명 ‘불지옥 저택’을 클리어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공략자는 사왕(死王).] [1인입니다.]천천히 위를 올려보았다.
아카시아의 나뭇가지와 잎새 사이로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클리어 보상 측정 중.] [측정 완료.] [ 보상은 24시간 뒤, 21층에 입장하고 주어 집니다. ]그래.
내가 씩 미소를 지었다.
‘뭐, 또라이든 뭐든 무슨 대수랍니까. 아무튼 제 할 일을 했는데.’
-어쭈. 자신감 보소?
‘저는 제가 원하는 방법으로 20층까지 클리어했잖아요.’
아무도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초지일관 마음에 세운 목표였다.
새삼 돌이켜보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던가?
‘제가 20층을 공략하는 동안 한 명의 헌터도 안 죽었어요.’
가을비의 마왕. 이제는 나의 백귀로 전락해버린 타천좌의 꾀임에 걸려들어, 헌터들이 자기들끼리 의심하고 죽이는 참사가 없어졌다.
내가 비극의 단초 자체를 사전에 차단해버린 것이었다.
‘단 한 명의 제국인이나 대륙인도 안 죽었죠.’
시간이 멈추어진 가운데 이세계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서 누군가의 머리에 올렸다.
‘이 녀석도 제가 거두었어요.’
아귀 (飯鬼).
내 그늘에 수감되어버린 죄수는,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망연히 대륙의 군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역사에선 그녀의 작은 고향을 불태워버린 병사들.
하지만 오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성기사장이 무릎을 꿇은 순간, 대륙의 군세는 적의를 거두었다. 내가 여신의 사도라는 말을 믿고서 임무를 포기했다.
낙원은 지켜진 것이다.
‘이건 저 혼자 생각하는 거지만.’
아귀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아마도 이번 20층은… 가만히 방관하기만 했어도 저절로 깨졌을 거예요. 제가 나설 필요는 사실 없었죠.’
-응? 왜?
‘그야 마을이 불타서 사라지는 것도 하나의 [결말]이니까요.’
엔딩.
지금까지 스테이지를 공략하면서 깨달았다. 탑은,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을 가리지 않는다. 그냥 제대로 마무리된 결말이기만 하면 어떤 엔딩이든 인정해준다.
‘안 그러면 유수하가 40층까지 깨지도 못했겠죠.’
염제처럼 불지옥 저택의 인형들을 박살 내버려도.
아니면 나처럼, 잠시 그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어도.
어느 쪽이든 하나의 [결말]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탑이 정해놓은 세계가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을을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하는 결말도 아니에요.’
하늘 아래서 밀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곳.
과묵하고 완고하지만 아이들이 벌이는 서리쯤이야 눈감아주는 노인이, 과수원 앞에 허허로이 앉아서 담배를 피는 곳.
회복될 길이 없는 병자들이 모여들던 도피처.
‘다만 제가 선택한 엔딩입니다.’
오늘.
하늘에선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지상에선 불이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런데 왜일까?
내가 한참 뿌듯한 감성에 젖어 있자니, 배후령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안쓰러운 아이를 쳐다보는 듯한 얼굴 아니겠는가. ‘왜 그래요?’
-아니. 이게 네가 선택한 엔딩이라매.
배후령이 슬쩍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거도 네가 선택한 엔딩의 일부인가 싶어서 말이다.
거기엔 유수하가 있었다.
“씨발! 시버럴, 개자식! 이거 멈추지 못해!? 어!? 당장 멈추라고— 씨 발! 이거 왜 안 멈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코사크 댄스를 추는 유수하가 있었다.
아름답게 곡식이 익어가는 시골 마을의 어귀. 하늘이 푸르고 땅에 꽃잎이 내려앉은, 한폭의 풍경화 속에서, 외로이 씨발을 외치는 미남자가 그곳에는 존재했다.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올리면 수천만 뷰가 찍힐 듯한 명작(名作)이었다.
‘응? 저게 뭐 어때서요?’
내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존나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역시 이놈은 김또라이야….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그 때였다.
[금일.] [20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하늘과 땅 사이로 목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나한테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금일, 20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공식적인 알림말.
열 번째 스테이지를 깼을 때처럼 아마도 탑의 전 구역에 똑같은 목소리가 퍼지고 있을 거다.
“아.”
나는 입맛을 다셨다.
‘무진장 아깝네.’
-뭐가?
‘여기선 인터넷이 안 되잖아요.’
지금 내 스마트폰은 배낭 안에서 곤히 잠들고 있었다. 현실 세계로 따지면 5일. 하지만 내가 보내온 시간으로 따지자면 수백 일은 가뿐히 넘도록, 핸드폰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탑에서 인터넷이 통하는 구역은 아직 1층에서 10층뿐이니까.
‘지금쯤 인터넷에서 진짜 난리가 났을 텐데….”
-엥? 어라. 너 이제 사람들 반응은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었냐?
‘제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답니까.’
-아니. 네가 말했잖아. 일반인들보다 마녀나 마르쿠스 할아범 같은 애들 인정을 더 받고 싶다매?
‘에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다익선 몰라요? 마녀나 검성 같은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일반인들의 인정도 받고. 저 자신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고.’
-와. 이거 완전 돼지 아니야? 뭔 욕심이 이렇게 많아.
‘원래 사람은 욕심으로 사는 겁니다요.’
다행히도 나는 인터넷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지금부터 24시간 뒤, 21층 스테이지가 개방됩니다.] [24:00:00]파아아앗!
지난번과 똑같이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 첫 번째 불꽃이 터지자 빛의 시계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마치 지금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두 명의 헌터가 이곳으로 전송해왔다.
“사왕!”
마녀와 검성이었다.
마녀가 전이 스킬을 써서 단숨에 날아왔다. 덥썩! 마녀는 팔꿈치를 구부려서 내 머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특유의 환한 웃음을 흘렸다.
“미쳤어! 당신 정말 미쳤어!”
“악. 아악! 잠깐만요, 흑룡주. 이거 의외로 아파….”
“꼬맹이 주제에! 아직 서른 살도 안 먹은 애송이 주제에!”
나는 반항해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꽈아아악! 마녀의 힘이 어찌나 센지 헤드록에서 탈출할 수가 없었다.
맙소사. 평소부터 얼마나 영약을 많이 먹었길래 이러나.
“진짜로 닷새 만에 20층을 깨다니! 미친 거 아니야!? 미쳤지!?”
“저기요. 흑룡주, 진정 좀 하시고….”
“지금 탑에서 얼마나 난리가 벌어졌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자아!”
마녀가 내게 뭔가를 보여주었다.
스마트폰이었다.
척 봐도 5년은 오래된 기종.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거로 표시된 핸드폰 화면에는, 여기선 볼 수 없을 터인 인터넷 기사들이 찍혀 있었다.
“이건…?”
“잠깐 1층에 들려서 찍어왔단다!”
마녀는 진심으로 흥분한 목소리였다.
“기사가 너무 많아서 다 찍는 건 불가능했어! 미안! 하지만 당신도 이해해야 돼, 사왕. 탑뿐만이 아니라 바깥세상도 난리가 났으니까. 클릭수가 제일 많은 기사만 캡쳐했는데도, 보렴. 이렇게나 많은걸!”
마녀가 핸드폰 화면을 쓱쓱 넘겼다.
그곳에는 기사 해드라인들이 나와 있었다.
-[속보] 쾌도난마의 질주! 14층도 클리어!
-신성의 이명이 사왕으로 결정돼.
-흑룡의 공식 발표. 현재 공략팀은 3인.
-주역은 검성인가? 마녀인가? 사왕인가?
-[특집] 사왕 집중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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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았다.
해드라인만 해도 너무 많아서 다 읽기란 불가능했다.
“제목은 이렇게 뽑히지만.”
마녀가 웃었다.
“전부 당신에 대한 얘기밖에 없어!”
“어….”
“당신이 어디 출신인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어쩌다 탑에 들어왔는가, 어떻게 단숨에 랭킹이 최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갔는가. 정말로 그런 이야기밖에-.”
“자, 잠깐만요.”
나는 얼떨떨했다.
신문 기사들 때문에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런 반응이야 너무 당연했다. 지난 5일 동안, 인터넷에 불판이 깔려도 수백수천 번은 족히 깔렸을 거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일.
그러니까 내가 얼떨떨해진 이유는 딴 게 아니라….
“이거, 전부 직접 캡처하신 거예요?”
“응!”
마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드록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얼굴이 좀 가까웠다.
“당연하지!”
“저한테 보여주시게요?”
“얘는. 그럼 다른 이유가 있겠니.”
“음. 그러니까….”
내가 미간을 좁히면서 말했다.
“지금 저한테 무슨 기사 떴는지 보여주시려고, 일부러 1층까지 전송해서 가신 다음, 기사들 일일이 찾아다가 또 일일이 캡처를 뜨셨다… 는 말씀입니까?”
“굳이 말하자면 그렇구나!”
나는 상상해봤다.
헌터 랭킹 2위. 탑에서 제일 거대한 길드를 거느리는 수장.
그런 높으신 분이 얼른 1층에 가서,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찰칵찰칵 얍얍 캡처를 뜬 다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는 마치 자랑하듯이 캡처 화면을 보여주었다.
“…….”
상상해보니까 꽤 귀여운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왜 흑룡주나 되는 분이 그런 수고를…?”
“이 사람은 정말 무슨 얘기를 하는 거람.”
마녀가 환히 웃었다.
“당연히 너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지!”
“…….”
“아, 혹시 나중에라도 기사 댓글들은 읽지 말렴. 주작이니 사기이니. 시기심에 찌든 인간들이 막 테러를 벌여놨거든.”
마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그 치들은 왜 맨날 그러는지 몰라. 전사자가 제로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사왕. 어중이떠중이들은 신경 쓰지 말려무나. 앞으로는 흑룡에서 언론을 전담해서 맡아줄게.”
뭐지. 이 사람?
혹시 천사인가?
-좀비야. 정말 넌 조금만 너한테 잘해주면 천사로 떠받드는구나…. 아무리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지만 인간의 호의에 대범해지거라. 악의에는 존나 강한 놈이 왜 호의에는 이렇게 약한 거냐.
천사가 아니라면 설마 여신이신가?
-미친놈이군….
배후령의 면상이 구겨졌다.
-이 자식이 언젠가는 미칠 거라고 생각했다만. 마침내 돌아버렸구나.
‘그럼 댁이 평소에 좀 나를 칭찬하시던가요. 제가 얼마나 칭찬에 굶주려 있는지 아세요? 삭막한 일상에서 작은 관심이 얼마나 소중한지, 댁 같은 사람은 모르시죠?’
-아니. 그런 건… 기분 나빠…. 차라리 성불하고 말지.
배후령이 진짜로 우웩, 헛구역질을 했다.
누가 싸이코패스 아니랄까 봐.
장담하는데 저 양반은 생전에 친구 한 명 없었다는 데 전 재산을 건다.
-야! 뭔 개소리야! 나도 친구는 있거든!?
‘검성은 제외하시죠.’
-……
배후령이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나의 조용한 승리였다.
무엇을 위한 승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도 보렴!”
그제야 마녀가 헤드록을 풀었다.
이번에 마녀가 나한테 보여주려는 건 핸드폰 화면이 아니었다. 흑룡주는 작은 배낭을 풀어 젖히더니, 두꺼운 신문 뭉치를 꺼냈다.
“자!”
마녀가 종이 신문을 활짝 펼쳤다.
“어제 나온 신문 첫머리야!”
내 눈에 기사의 내용은 선뜻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대문짝처럼 적혀 있는 리스트가 제일 먼저 보였다.
리스트 위에는 [헌터 랭킹 갱신!]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
1위. 검성
2위. 흑색마녀
3위. 사왕
4위. 백작
5위. 이단심문관
6위. 독사
7위. 바벨의 언어사
8위. 광역통신사
9위. 성기사
+
“…….”
잠시간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혼자서 시간의 감옥에 갇혀서 마왕과 사투를 벌일 동안.
12층 아래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탑이 열리고 난 이후에 이런 일은 처음이야!”
마녀가 웃었다.
“랭킹권 밖에서 단번에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랭킹 3위.
헌터의 이명과 똑같이 랭킹 또한 탑에서 정해준다.
그렇게 정해진 랭킹은, 1층 광장에 세워진 비석에 표시된다.
“아직 실감은 안 나겠지만… 오늘 한번 바빌론에 내려가 보렴. 네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을 거란다.”
탁!
마녀는 신문을 돌돌 말더니 내 어깨를 쳤다.
“축하해, 사왕!”
그렇다.
“당신도 이제 모든 헌터를 대표하는 사람이야!”
5일 만에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5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