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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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도서관에 마련된 화장실.
“오케이.”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은 다음 내가 말했다.
“무림에 가기 전에… 일단 한번 죽고 시작하죠.”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화장실엔 나 말고 인간이 없었다. 하지만 한 명의 귀신과 한 자루의 검이 있었으며, 그들이 내 말에 반응했다.
-뭐가 오케이라는 거냐?
[반짝이가 당신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배후령은 눈을 깜빡였고, 성검은 빛을 깜빡거렸다.
“레판타 아이김이요. 제국의 초대 황제였고 수호의 여신을 반짝이로 만들어버린 놈.”
[반짝이는 자기를 반짝이로 명명한 장본인은 당신이라고 지적합…….]“그놈이 어떤 놈인진 몰라도, 여러 세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나는 외투를 걸쳐 입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마녀가 선물해준 맞춤정장. 거울에 비친 날 보니, 꼭 출근할 준비를 끝마친 신입사원 같았다.
그 모습이 묘하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생각해보세요. 반짝이는 아이김 제국의 세계에 있었잖아요? 그런데 다른 한 자루는 무림의 세계에 있어요. 이건 레판타 아이김에게 [세계를 건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죠.”
-호오.
“아마도 먼치킨 같은 놈이겠죠.”
나는 허리춤에 찬 성검의 칼자루를 매만졌다.
“제국을 세울 정도로 유능한데다, 성좌를 쪼개서 봉인할 정도로 강해요. 이세계로 건너가는 능력까지 있고요. 이대로 성검의 파편을 찾는답시고 무작정 무림으로 뛰어드는 건 능사가 아니에요.”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저도 무적(無敵)은 아니니까요.”
그렇다.
사실 최근 들어서… 나는 좀 긴장하고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만 마음을 풀어도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변색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헌터 랭킹 3위에 등극하고. 거의 혼자서 마왕을 때려잡고. 도시에선 사람들이 전부 저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이젠 심지어 이명을 가진 헌터들한테 명령까지 내리고 있어요.”
-그래서 뭐?
“자칫 잘못하다가는 방심해버릴 거 같거든요. 이게.”
탑은 100층까지 존재한다.
이제 나는 겨우 21층에 도달한 헌터에 불과하다.
지금 성공하고 있다고 해서 마음을 놓기엔 시기상조다.
‘그 염제도 방심하다가 나한테 사냥당했다.’
죽어도 죽지 않게 되는 스킬, [회귀자의 태엽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공략법이 없어 보이는 개사기 스킬. 하지만, 그런 개사기 능력을 가진 염제 유수하는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죽었지.’
심지어 죽은 뒤에는 세계의 군세 앞에서 코사크 댄스를 거하게 한 판 땡기기까지 했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 해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매우 좋은 예시였다.
-아니. 그건 좀비 네가 좀 악마 새끼 같은 건데….
“아무튼 대책도 안 세워두고 [천마실록]에 뛰어들진 않을 거예요. 레판타 아이김이 어떤 놈인지는 알고 가야죠. 지금 전 진짜 아무런 정보가 없어요.”
유비무환.
어째서 아이김 대륙의 세계가 아니라 엉뚱한 무림에 성검의 파편이 있는 것인지. 레판타 아이김이라는 먼치킨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의도로 [수호의 여신]을 조각내어 흩뿌린 것인지.
최소한의 정보는 얻은 다음 스테이지에 입장하고 싶다.
-뭐,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넌다는 마음가짐은 나쁘지 않다만.
배후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뭘 어떻게 준비하려고? 네 말마따나 레판타인가 뭔가 하는 그 놈에 대해선 아는 게 없잖아. 알 방법도 전혀 없고 말이야.
“아는 게 없다는 말은 맞아요. 하지만….”
나는 성검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알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은 틀리죠.”
-뭐?
“이 검은 이래 봬도 [수호의 여신]이에요.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지긴 했지만 엄연히 성좌란 말이죠.”
내가 씩 웃었다.
“여기서 문제. 이 검으로 절 찌르면, 그건 자살일까요? 아니면 성좌에 의한 타살일까요?”
배후령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어? 어어?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죠. 확률은 반반이라 치고, 어느 쪽인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는데… 시험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스르릉.
나는 성검을 칼집에서 꺼내었다. 그러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짝이가 용사님께 다시 한번 재고할 것을 간절히 요청합니다.]“왜?”
[자신의 과거가 다른 사람한테 비추어지는 것은 부끄럽다고, 사생활을 지켜줄 것을 반짝이가 강력하게 요구합니다.]내가 입꼬리를 틀었다.
“에이, 우리 사이에 프라이버시가 어디 있어? 나도 24시간 생중계로 사생활 공개하고 있잖아. 공평해져야지.”
[반짝이가 제발 안 된다고 부탁…….]푸욱!
성검이 나의 몸을 꿰뚫었다.
다음 순간, 나는 반반 확률의 도박에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스킬 조건이 달성됩니다.] [수호의 여신의 스킬은 현재 봉인되어 습득할 수 없습니다.]스킬을 카피할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쉬웠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얻으려는 것은 스킬이 아니었다.
[현재 당신의 헌터 랭크는 D급입니다.] [스킬로 인한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합니다.] [패널티 심도는 중(中). 아귀도입니다.]촤아아악!
눈앞에 내가 바라던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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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긴 여정을 끝내셨군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요. 용사님.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나는 왠지 모르게 바로 깨달았다.
날붙이에 봉인되지 않은 [수호의 여신].
자신의 힘을 온전히 거느리고 있는 성좌였다.
-그래.
용사라 불린 남자가 대답했다.
은발의 귀공자. 제국의 초대 황제 레판타 아이김은 질박한 옥좌에 앉아 있었다. 턱을 괸 그 얼굴에는 어딘지 피로감이 엿보였다.
‘저놈이 레판타 아이김인가.’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소환되는 바람에 당황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대륙을 일통한 황제가 되어 버렸군.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이야.
-후후. 저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네요.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었지요. 이제 당신은 저보다 강해요. 아니, 웬만한 신령은 당신한테 상대도 안 될….
그때였다.
-영? 뭐야.
나와 함께 트라우마 풍경을 바라보던 배후령이 소리를 냈다.
-저놈 어디서 많이 본 새끼다?
‘네?’
-금발놈 말이야. 쟤 암만 봐도 살천성(殺天星)인데.
배후령이 기이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배후령과 레판타 아이김이 구면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살천성이 뭐예요?’
-저놈 이명이야. 성좌들만 찾아서 쥐어패는 미친 새끼라서 그런 이명이 붙었지.
성좌를 쥐어팬다고?
-봤잖냐. 탑은 세계들과 연결되어 있거든. 50층부터는 아예 이세계 출신 헌터들이랑 경쟁해야 되고.
‘어, 그래요?’
-앙. 그리고 저 [살천성]은 50층 죽돌이 같은 놈이다.
배후령이 말했다.
-오르라는 탑은 절대 안 오르고, 맨날 50층에 틀어박혀 있다가, 이따금 성좌가 들르면 곧바로 족치지. 아마 저놈한테 뒈진 성좌만 적어도 수백일걸.
‘……그럼 레판타 아이김도 헌터인 겁니까?’
-오냐. 어떤 세계에서 저런 미친놈이 태어났나 싶었는데, 짜식. 아이김 출신이었군.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옛날의 인연을 보게 될 줄이야. 허.
‘어. 두 사람이 무슨 사이였는데요…?’
-무슨 사이긴. 제대로 한 판 싸움질 했던 사이지. 강하긴 강했지만 감히 나랑 맞먹을 정도는 아니었거든.
우리가 떠드는 와중에도 트라우마의 풍경은 흐르고 있었다.
수호의 여신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용사님? 더는 용사님의 앞길을 가로막을 신령(神靈)도 악령(惡靈)도 없어요. 당신의 긴 여정은 이제….
-성좌.
-예?
-신령도 악령도 아니야. 성좌다.
레판타 아이김이 옥좌에서 일어섰다.
-세계는 성좌들의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것이다.
레판타 아이김이 여신을 돌아보았다.
검붉은 오러가 황제의 몸에서 타올랐다.
-…용사님? 왜 갑자기 오러를….
피로감에 찌든 얼굴로, 제국의 시황제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오래는 아니었다.
-죽이지는 않으마. 그래도 너는 나를 여태껏 도와줬으니까.
붉은 오러가 여신을 덮쳤다.
-너의 존재를 갈라서 봉인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는 힘을 되찾을 수 없을 터. 그리고 성좌가 없어지면…….
그 뒷말은 찢어지는 비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도, 여신의 존재가 찢어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레판타 아이김이 말했다.
-하지만 이게 올바른 길이다.
여신의 비명을 끝으로, 트라우마는 순식간에 우리한테서 멀어졌다.
[트라우마 재현 완료.] [피대상자의 자아(自我)가 유지된 것을 확인.] [페널티를 종료합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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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놈은?”
하루 전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재차 화장실에 틀어박혀 중얼거렸다.
“트라우마로 과거를 엿보면 어떤 놈인지 좀 알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도 모르겠네. 야, 반짝아. 네 옛날 주인은 왜 너를 봉인한 거냐?”
[반짝이는 자신도 잘 모른다며 시무룩하게 대답합니다.]성검이 연하게 빛을 냈다.
기분 탓일까?
성검의 빛에 유난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레판타 아이김은 과묵하긴 해도 정의로운 용사였습니다. 그가 어째서 자신을 봉인했고, 왜 스스로 세운 제국을 등지고 떠났는지, 전혀 아는 바 없다며 반짝이가 토로합니다.]수수께끼는 깊어질 뿐이었다.
-말했잖아. 헌터들이란 레벨이 높을 수록 미친놈이라니까?
배후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친놈들을 이해하려 들지 마라. 심연을 들여보면 자기도 심연이 되나니. 그냥 나처럼 강해져서 살천성이고 뭐고 맘에 안 드는 새끼들은 다 줘패면 끝난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하긴. 뭐, 얼굴을 안 것만으로도 수확이죠.”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레판타 아이김. 일명 [살천성]은 나를 보자마자 적대할 것이다.
자기가 봉인해둔 수호의 여신의 파편을, 내가 데리고 다니고 있으므로.
“으음.”
내가 거울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50층에서 만날 거면 그 전에 미리미리 대처를 해두고 싶은데….”
-아서라. 지금 네 실력으로는 턱도 없어! 나보다 약할 뿐이지 저놈도 고수 중 고수야. 그리고 벌써 50층을 걱정할 시간 있으면 22층이나 공략해라, 이 약골아!
“크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얌전히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헌터들은 묵시록을 다 읽은 다음에 ‘22층’을 골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성이 추천했다는 이유도 있어서, 무난히 [천마실록]이 선택되었다.
“호오? 첫 장르로 무협을 선택했구료.”
도서관장이 우리의 선택을 지켜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오! 비록 제군들이 아는 무림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으나, 무공이 있고 강호가 있다는 점만큼은 같소. 그대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냐에 따라 기연(奇緣)을 얻을지도 모르지. 천금에 값하는 무공… 그대들의 표현에 따르면 ‘스킬’을 터득할 수도 있소.”
오오, 하고 헌터들이 흥분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에 도서관장이 곧바로 재를 뿌렸다.
“허나, 만물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법! 그만큼 ‘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강하다오. 당연하지만 그대들이 묵시록에 들어가 목숨을 잃는다면 실제로도 죽어버린다오. 물론, 제대로 ‘엔딩’을 마무리짓기 전에는 묵시록에서 탈출하는 것도 불가하오!”
헌터들이 입을 다물었다.
당연했다. 나처럼 유별난 스킬을 지니지 않은 이상, 죽음이란 언제나 사람을 닥치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천마실록]의 제한인원은 2명~4명이오. 자아! 누가 이 묵시록의 등장인물이 되어보겠소?”
헌터들의 눈길이 자연스레 최상위 랭커들한테 쏠렸다.
그중에서 특히 시선이 집중된 사람은 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난 며칠 동안 내가 마치 대표자라도 된 것처럼 헌터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권력에는 마땅히 의무가 뒤따르는 법.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의무에서 도망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내 빠른 대답에 길드장들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며, 대다수의 헌터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본인도 나서겠네.”
검성이 뒤따라서 말했다.
“묵시록을 추천한 장본인이 빠질 수야 없지.”
근엄한 표정이었지만 입끝에 살짝 웃음기가 걸려 있었다. 몸이 근질근질거리는 게 빤히 보였다. 아마 무협을 애호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진짜 무림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쁜 것 아닐까?
“다행이오. 최소 인원은 충족되었구려!”
도서관장이 후후 웃었다.
“여기서 2명 더 등장인물로 대동할 수 있소만……. 어찌하겠소?”
“그렇지 않아도 본인이 이 묵시록을 추천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네.”
검성이 곧바로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모두 연중 사유를 봐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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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天魔) 실록]
장르: 무협, 퓨전
난이도: B급
제한 인원: 2명~4명
※현재 연재가 중단되어 있습니다.
소개: 무림. 무를 숭상하며, 무를 이용하여, 무에 도달하는 자들의 세계! 이곳에 천마가 등장하여 무림일통을 꾀했습니다. 천마를 중심으로 뭉친 마교(魔敎). 그런 마교에 대항하는 세력들. 이들은 천하의 향방을 두고 격돌…… 했을 것입니다.
갑자기 슈퍼 전염병이 돌지만 않았다면요.
연중 사유: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세상에 창궐하여 천마가 사망함. 마교는 전멸. 그 이외의 세력들도 멸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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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어이없는 연중사유.
정확히 무슨 전염병인지도 안 적혀 있었다.
묵시록의 본문에도 [갑작스럽게 괴질이 돌아 천마가 죽었으며, 곧, 다른 모든 이도 사망하였다] 하고 나왔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몰랐다.
‘진짜로 이 세계에 들어가봐야 알게 되겠지.’
어쨌든 정체불명의 전염병 때문에 무림이 멸망한다는 건 분명했다.
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봤다시피 이 세계를 멸망시킨 것은 전염병일세. 당연히 힘이 강한 헌터뿐만 아니라 질병에 해박한 헌터도 데려가야 하지. 그리고 질병에 대해 가장 해박한 자를 한 명 이 사람이 알고 있다네.”
검성은 빙긋 웃더니 자신과 같은 무협 그룹으로부터 한 명을 불러냈다.
“약왕. 나와주겠나?”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 한 명이 뒷짐을 진 채 걸어 나왔다.
이번에도 검제가 아는 척을 했다.
-아! 저 놈!
‘왜요. 누군데요?”
-왜 임마, 그 가게 있잖아. 내가 좀비 너 처음에 데려가려고 했던 거기. 마르쿠스 영감이 애용하는 약집 주인이야.
아하, 과연.
-저 놈이 약을 잘 만들긴 하지. 근데 음…… 잘 만들긴 하는데…….
검제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 이유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겠지.
“걱정하지 말게. 싸움은 주로 내가 할 것이고, 나로 부족하다면 사왕이 도울 것이네. 그리고 이 [약왕]이 질병 문제를 해결하면 이 묵시록은 우리 셋만으로…… 사왕,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나?”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가던 검성이 손을 든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아. 예. 저랑 같이 와주시면 좋겠다 싶은 분이 한 명 있습니다.”
내가 든 손을 내려 한 명의 헌터를 가리켰다.
난데없이 지목당한 헌터가 입을 뻐끔거렸다.
“어, 어라? 저 말인가요…?”
바로 약제사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약제사는 길을 걸어가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파르르 떨었다.
“사, 사왕님… 저 이명 받은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어요. 어, 엄청 약해요! 저 같은 거 데려가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을 텐데 왜….”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약제사님이 제일 유능한 약사이고 의사예요.”
“예? 네에…?”
“그리고 아까 말했잖아요.”
‘사왕님,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도와드릴게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빈말이 아니었다면 도와주실 거죠, 약제사님?”
“…….”
약제사가 악마를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절망했다.
왜? 나 덕분에 이명도 받지 않았는가.
쩔을 받았으면 쩔값을 내야지.
6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