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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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헌터들이 웅성거렸다.
“어, 뭐야. 그럼 넷 다 채워진 거야?”
“근데 저 여자는 대체 누구야?”
“내 말이. 약왕 어르신은 알겠지만은….”
검성도 곤혹스러운 눈빛이었다.
“지난번에 봤던 아가씨군.”
“힉……!”
약제사가 내 뒤로 숨었다.
검성이 나를 천하의 살인마로 오해하던 무렵, 그녀는 성기사와 함께 검성을 막아 세웠던 적이 있다. 그 당시 검성의 기세는 하도 흉흉하여서, 담이 약한 그녀로선 검성을 보자 마자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모양이었다.
검성도 그 무렵을 떠올렸는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렇게 겁먹을 것 없네. 이 사람과 사왕은 응어리를 풀었거든.”
“그, 그런가요……?”
“그렇다네. 음…… 그렇지만 말일세.”
검성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사왕. 지금부터 향할 곳은 대단히 위험한 곳이라네. 성좌도 말하지 않았는가. 묵시록 속에서 죽으면 실제로도 죽는다고. 그런 위험한 곳에 저 아가씨를 데려가도 괜찮겠는가?”
“예.”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는 최고의 약제사거든요.”
동시에 현존하는 최고의 약제사일 거다.
-끙…….
검제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같은 재료를 썼음에도 자신이 원래 소개해주려고 했던 가게, 그러니까 저기 서있는 약왕인지 뭔지 하는 양반의 가게를 이용하려 했을 때보다 15배에 달하는 물량, 그보다 더 높은 약효를 자랑하는 물건을 뽑아냈다고 말이다.
-저 놈이 약은 좀 만들지만…… 최고는 아니지. 이제. 저 아가씨가 있으니…….
‘예.’
그러나 검성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네가 아는 최고의 약제사라……”
나는 인물창을 띄워 검성의 심리를 읽었다.
「으음. 범상치 않은 청년의 추천이니 범상치 않은 구석은 있겠지만, 세상에는 더 큰 물이 있는 법이거늘……. 그렇군, 검제.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하는군. 개천에 살던 왕붕어도 강에 가면 자기가 가장 작은 잉어만 못하다는 걸 알게 마련. 그래, 이 기회에 저 두 젊은이들과 약왕의 관계를 좀 터주어야겠구만.」
와오.
그나마 그간 쌓아온 관계가 있고, 검성 자신이 내 앞에서 다짐한 바가 있어서인지 대놓고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 밑바탕에 선의가 깔려 있다는 건 알겠지만…… 꼰대 기질은 여전하시다 정말.
검성 쪽에 붙어있는 또다른 검제도, 이쪽 검제가 그 때 그랬던 것마냥 약제사를 겉모습만으로 얕잡아보는 모양이고.
심지어 이 자리에는 꼰대 기질을 대놓고, 그것도 아무런 선의도 없이 꺼내는 인물이 있었다.
“허! 자기가 아는 최고라니!”
약왕이었다.
“이래서 애송이들이란! 허허, 참. 돌부리 하나를 넘었으면서 자신이 산을 넘은 양 어깨를 으쓱해대는 게 참 가소롭구나. 나 젊을 적 보는 것 같아서 싫어진다, 싫어져 참. 끌끌.”
호오.
“약왕, 자네가 이해하게. 사왕은 뛰어난 인물일세. 다만 인생 경험이 조금……”
“바로 그 경험!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걸 모르고 세상을 다 아는 척 하니 이거야 원. 내가 다 민망하구만. 내가 20대 시절에 실리콘 밸리에서 10억 달러쯤 벌었을 때랑 똑같아. 똑같이 썩어 문드러진 마음가짐! 그런데 자기만 모른단 말이야.”
“거 성질 좀 죽이고……”
“허허, 참. 성질은 계속 죽이고 있었잖은가. 애송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죄다 마르쿠스, 자네 얼굴을 봐서 참아주었던 것이거늘. 이제는 뭐?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말 뼈다귀 같은 계집애를 끼고 가겠다 이 소리잖나. 실리콘 밸리의 젊은 억만장자가 트로피 끼고 다니는 것처럼 말일세.”
“사왕이 그럴 청년은……”
“아니긴 뭐가 아냐! 이 노옴! 내 눈 단디 보고 말해보아라! 정말 아니야!?”
굉장하다…….
뭐가 굉장한가 하면, 천하의 검성을 쩔쩔매게 만드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가장 굉장했다. 꼰대는 더한 꼰대에게 잡아 먹히는 게 꼰대 세계의 먹이사슬인 모양이었다.
새로이 알게 된 생태계의 신비에 입을 다물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그 꼰대 중의 꼰대에게 대거리를 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저, 저를 애송이라 부르시는 건 괜찮지만요……”
약제사가 내 옷깃을 꽉 부여잡은 채 잇소리를 냈다.
“사, 사왕님은 절대 애송이가 아니에요! 굉장하신 분이라구요! 하, 하물며 썩어 문드러진 마음가짐이라니……”
“허허, 보게나, 마르쿠스. 아주 지 서방 감싸듯이 굴지 않는가. 이러니 젊은 것들이란. 에잉. 하기사 나 젊을 적에도 저런 게 다 청춘인 줄 알았었지……”
“지, 지 서방 감싸듯이라니……”
약제사가 입을 뻐끔거렸다. 하도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어서 뇌내연산이 안 따라가는 듯했다.
성기사가 한 걸음 나서 약제사를 옹호했다.
“그만. 저 ‘약제사’는 확실히 뛰어난 약제사다. 사왕이 소개해주어 알게 되었지만, 본 자경단에서도 약제사로부터 뛰어난 약들을 수없이 공급받고 있다.”
약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자경단 수준에야 그럴 수도 있겠지.”
“……뭐라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네들 자금 형편으로 어디 내 약방에 들러나 봤겠는가? 하늘을 모르니 천장이 높은 줄 아는 게지. 그 천장이 심지어 방구석 천장도 아니고 상자 뚜껑인 줄도 모르면서 말이지. 그렇게 천둥벌거숭이같은 모습도 아주 나 젊을 적이랑 똑같아서는, 쯔쯧…….”
성기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5대 길드 중의 일좌라 불리지만, 자경단은 늘 자금난을 앓고 있다. 그녀로선 아픈 부분을 잔인하게 찔린 셈이었다.
약왕은 잡새를 쫓듯이 손을 털었다.
“에이, 말을 해서 무엇하나. 그만두자 그만둬. 하는 나도 듣는 너희도 지칠 뿐 아닌가.”
음.
맞는 말이다.
‘검제 양반.’
-엉.
‘막말 듣는 것도 이쯤 하면 충분하죠?’
-차고 넘치지. 너 왜 이렇게 셀프 고구마 먹고 있냐?
나는 도서관 주변을 흘끗했다.
‘셀프 고구마가 아니죠.’
몇번이나 말했듯, 지금 이 광경은 바빌론 광장에 모인 헌터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을 터.
다시 말해서, [데뷔]에도 [은퇴]에도 지금 이 순간은 실로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나는 약왕을 향해 말했다.
“한 판 붙으실래요?”
검성이 난처한 눈빛을 보냈다면, 약왕은 곧바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허어! 보라고. 마르쿠스. 논리로 안 되니까 아주 그냥 곧바로 칼을 들이대려는 저, 저 썩어빠진 모습! 내가 40대 때 복싱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을 때가 떠오르는구만.”
“아니, 저랑 붙자는 게 아니고요.”
나는 품에서 약재들을 꺼냈다.
“제가 약재를 제공할게요. 그걸로 두 분이 하나씩 약을 만들어보십쇼. 그 다음에 만들어진 약으로 성능을 비교해보면 뭐, 확실해지지 않겠어요?”
“에엑……!!”
약제사가 펄쩍 뛰었다.
“사, 사왕님! 저 영감탱…… 저 분이 사왕님을 모욕한 건 굉장히 열받지만…… 그, 그래도 약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인걸요? 헌터분들도 다 알아보는 유명인이고…… 그에 비해 저, 저는 이제 갓 이명을 얻은지 일주일도 안 된, 꺄읏,”
약제사가 음찔했다.
내가 그녀의 양 어깨를 붙들었던 것이다.
“약제사 씨.”
“네, 네넵!?”
안경을 사이에 둔 채,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고 말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사, 사왕님.”
“그러니 당신도 스스로를 믿으십쇼.”
“…….”
약제사는 심호흡을 했다. 안경 너머에서 흔들리던 눈동자가 빛무리를 되찾았다.
꾸욱, 두 주먹을 움켜쥔 그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왕님! 힘낼게요! 아니,”
곧바로 고개를 젓더니, 약제사는 이렇게 고쳐 말했다.
“이길게요!”
그런 우리를, 약왕은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허.”
약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그런 것들이 있지. 케찹인지 피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들. 내가 한 3살때쯤이랑 똑같아 아주. 쯔쯔……”
“말이 기네요. 후달립니까?”
“오냐. 애송아. 저 여자애가 눈물 쏙 빼는 모습을 볼 각오를 아주 단디 해두어라. 난 젊은 놈들 상대로는 도통 봐주는 법을 모르니까 말이다.”
약왕 대 약제사.
희대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3.
승부가 시작될 때만 해도 헌터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당연히 약왕 어르신이 이기시겠지.”
“저 영감 약집 그렇게 비싼데 예약이 한 달 가까이 밀려 있잖아.”
“진짜 둘이 무슨 관계가 있나? 아무리 봐도 사왕이 좀 무리수가 심한데.
“사왕과 약왕. 같은 왕이라도 연륜 차이가 난다 이거지.”
그야말로 정석적인 반응들.
“자, 약왕이 이긴다는 사람은 여기! 약제사가 이긴다는 사람은 여기에 걸어주시게!”
한편, 돈 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박판을 벌리는 백작의 모습도 있었다.
언제 꼬드긴 것인지 책갈피 메이드 둘이 다소곳이 서서 모금함을 들고 있다.
“사왕, 괜찮겠니? 배당율이 지금 무려 1.08 대 47이던데.”
마녀가 다가와 속삭였다.
“좋네요. 용돈 챙긴다 생각하시고 배당율 너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약제사 쪽에 걸어두시는 게 어떤가요?”
“……사왕, 이거 다 생중계되고 있다고 한 거. 당신이잖아.”
마녀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만약에 당신이 추천한 저 약제사가 무참하게 깨져 봐. 만약에 그러면……”
“그것도 죄다 바빌론에, 그리고 세계에 다 생중계되겠죠. 아니, 당장 지금 인터넷 반응도 아주 난리가 났겠네요.”
옛날의 나였다면 무슨 댓글을 달고 있었으려나?
나도 약왕처럼 되고 싶다거나, 뭐 그런 댓글을 달고 있었을까?
그렇게 한가한 생각에 잠겨 있자니, 마녀가 이마를 짚었다.
“사왕 그렇게 되면 당신 평판에도 손상이 갈 거야. ……정말 괜찮은 거니?”
“저 약왕인지 하는 영감님한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요.”
아니. 솔직히 전혀 미안하지 않다만은.
막말을 하셨으면 그 책임도 지셔야지?
그것이 진정한 장유유서 정신 아니겠는가.
마녀는 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약제사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어서 한 번 마녀의 심리창을 띄워볼까 했을 때였다.
“끝났다, 애송아!”
약왕.
그가 자신이 만든 약을 들어올리면서 일갈했다.
“내 위대한 창조물 앞에 고개를 수그리거라!”
+
[특급 회복 물약]희귀도: 특급
제작자: 약왕
설명: 입에는 좀 쓰지만 마시면 어지간한 치명상마저 아물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회복 물약이니 치유 후유증을 감안해서 안전 할 때 먹고 푹 쉬어야겠지요. 어쨌든 이만한 물약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이지 대단한 솜씨입니다!
+
오오 하는 환호성이 도서관을 뒤덮었다.
“특급 회복 물약이야!”
“세상에. 특급 회복 물약을 뽑아내다니. 과연 약왕. 킹은 네버 다이구나 진짜.”
“약왕 어르신! 혹시 그거 저한테 파실 생각 없으십니까!”
“어디서 새치기를 하려고! 약왕님! 예약 순위로는 제가 가장 높습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약왕이 턱을 추어올리며 나와 약제사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 너희 둘이 호랑이의 콧잔등을 건드렸으며, 그로 인해 톡톡히 망신을 당하리란 걸 이제야 알겠느냐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때였다.
“어…… 저도 다 만들었는데요……”
약제사가 자신이 만든 약을 들어올렸다.
+
[소마 스트로베리]희귀도: 준準 신화급
제작자: 약제사
설명: 아니, 딸기맛이 나! 딸기는 하나도 안 들어갔는데 왜 딸기맛이 나는 거죠!? 거기다가 이 효능은 뭔가요!? 보존 상태만 좋다면 절단당한 신체부위까지 후유증없이 접붙일 수 있겠어요! 대체 뭘 만드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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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도서관을 뒤덮었다.
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