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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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만든 약을, 두 사람은 말없이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정확히 동일한 재료를 사용했는데 나온 결과물이 저렇게 다른 것을 보고 모조리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헤에.”
먼저 움직인 것은 약제사였다.
마릇하여 관절부가 도드라져 보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안경을 꾹 눌러쓰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게 영감님께서 만드신 약인가요……?”
약왕은 말이 없었다.
약제사는 약왕의 물약을 툭 채가더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흐응.”
기울여도 보고,
“헤에.”
거꾸로 세워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약왕의 손에 물약을 돌려주고서는 안경 매무새를 고쳤다.
“이 정도, 시군요……?”
음.
‘혹시 이 사람,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한없이 강해지는 타입인가?’
즉, 다른 모든 고급 헌터들처럼 또라이의 씨앗을 품고 있는 건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지피는 동안, 약왕이 겨우 반응을 보였다.
“음…….”
둘은 키 차이가 컸다.
여인의 기럭지는 살아갈 날만큼 창창하여 길었고, 노인의 체구는 살아온 세월만큼 졸아들어 작았다.
그러기에 약제사는 약왕을 내려다보았고, 약왕이 약제사를 올려다보았다.
“설마하니 영감님……”
“설마하니 애송이……”
둘은 동시에 말했다.
“실력이 나쁘신 건가요……?”
“운이 좋은 건가……?”
음.
“네?”
약제사가 고개를 기울였다면, 약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군.”
“네?”
“쯔쯧. 젊은이들은 이래서. 내가 30대 때 월 스트리트에서 10분만에 17억 달러쯤 벌었을 때가 떠오르는군. 나도 그게 다 내 실력인 줄 알았었지.”
“…….”
약제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안경도 따라 기울어졌다.
비스듬해진 약제사의 입술로부터 진심으로 빡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판 더 해보실래요……?”
“그래도 되겠냐? 행운의 여신은 두 번 미소지어주지 않는 법이거늘. 쯔쯧, 하여간 젊은이들이란……”
3분이 흘렀다.
“운이 몹시 좋군.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세 번 미소지어주지 않는 법일 터. 이번에야말로 내가 연륜의 차이를…….”
3분이 더 흘렀다.
“운이 대단히 좋군.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네 번 미소지어주지 않……”
“그만……”
결국 검성이 약왕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만하게, 약왕…….”
“마르쿠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자네, 지금 몹시 추하다네……”
“아니야!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내 실력이! 내 경험이 저 초짜의 운을 박살낼 것이야! 보이지 않는 건가, 이 숀 맥칼리스터의 빅토리 로드가!”
“미안하네 아가씨. 자네는 정말 최고의 약제사구만. 사왕의 보증을 바로 믿지 못한 내 잘못일세.”
검성이 꾸벅, 고개를 수그려 사과했다.
숫제 물벼룩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약왕을 내려다보던 약제사가 음, 소리를 내며 자신을 추슬렀다.
“그…… 친구분 때문에 힘드시겠네요……”
“이 친구가 그래도 그…… 좋은 점이 없지는 않다네. 약도……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좀 만들기는 하고……”
“예에…… 뭐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느낌이네요……. 기본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조수 정도로는 못 써먹을 것도 없겠달까요……..”
약제사가 안경 매무새를 고치며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자네!”
개다래풀을 향해 달려드는 고양이를 방불케 하는 날렵함!
상련의 련주, 백작이 약제사의 손목을 잡고 늘어진 것이다.
“계약!”
“네!?”
“계약! 즉시 계약! 전속 계약! 나랑 계약!”
“어, 어어……”
“업계 최고 대우 보장! 고양이도 만지게 해주겠네! 아니, 아예 고양이 밭에서 뒹굴게 해주지! 어떤가! 어떠한가!”
약제사는 당혹하여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백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저도!”
“약제사님! 사왕님께서 점지해주셨으니 약제사왕 님!”
“아니, 사짜 빼고 약제 님!”
“약신이시여! 저희에게도 약을 좀!”
내가 10층을 솔플로 깼을 당시 받았던 그것.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약제사를 뒤덮었다.
4.
“이, 일단!”
약제사가 쩔쩔매면서 사람들을 밀어냈다.
“저랑 그, 약을 거래하고 싶으신 분들은 일단 사왕님께! 아, 물론 기존에 거래하시던…… 그, 성기사님은 괜찮지만! 그게 아니면! 저, 저는 일단 사왕님께서 허락해주신 분께만 약을 팔 거니까요, 그러니까 그…… 사왕님께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 말에 백작을 포함한 헌터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성기사 혼자 조용히 만세 포즈를 취했다가 조용히 다시 내렸다.
나는 씩 웃었다.
“일단 그건 천마실록을 깨고 나서 생각합시다.”
“아! 네, 넵!”
탑을 오르자는 말은 언제나 헌터들에게 먹히는 법.
백작조차도 입맛이 쓰다는 얼굴로 물러섰다.
‘좋아.’
이로써 멤버가 갖춰졌다.
일단 검성이 있다.
그리고 약제사가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내 경험! 내 연륜이 한낱 애송이의 운빨에 이렇게나 농락당할 리 없단 말이다!”
저 약왕인지 인지부조황제인지 하는 양반도 뭐…… 약제사 말마따나,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음! 등장인물이 모두 정해진 모양이구려.”
지금까지 우리가 벌인 쇼를 지켜보던 도서관장이 밝게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겠소. 묵시록에서 사망하면 실제로도 죽게 된다오. 무사히 탈출하는 방법은 단 하나! 어떤 식으로든 연재중단의 위기를 넘기시오. 그리고 제대로 된 [결말]을 맞이하시오!”
“제대로 된 결말이란 뭡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판단에 달렸소이다.”
내 질문에 도서관장이 히죽 웃었다.
“어쩌면 제군들은 전염병을 퇴치하여 무림을 구원할 수도 있지. 전염병을 이용하여 그대들 스스로 무림의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오.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오! 어느 것이 [제일 좋은 엔딩]일지는 스스로 생각해주시구료.”
한마디로 우리한테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뜻.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지금 당장 [천마실록]으로 보내주세….”
“잠깐만!”
누군가가 외쳤다.
“문주님은 안 가십니까?”
“그러게요. 무협이면 딱 문주님께서 활약하실 기회 아닙니까?”
천무문.
독사가 수장을 맡고 있는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가만히 무협 그룹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독사가 눈을 깜빡였다.
“어?”
당혹한 독사에게, 천무문의 문도들이 한 마디씩 던져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문주님을 위한 세계인데……”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문주님. 강호의 도리 하면 문주님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부님. 사부님께서 나서셔야죠.”
독사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천천히 팔짱을 끼었다.
굵은 눈썹과 그 아래의 외눈에는 사나이다운 결의가 도사렸다.
“오냐. 안 그래도 나서려던 참이다. 네놈들, 나를 잊고 있었던 건 아닌가?”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상하다. 저 양반이 무협 세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는데?
뭔가 수상쩍어서 인물창을 띄워서 심리상태를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니, 이 빌어먹을 제자놈들!」
「왜 날 저따위 촌동네로 보내려고 지랄이야!?」
독사는 마음속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모습만은 진중했다. 마치 제자들이 등을 떠밀어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외눈의 검사가 나직하게 말하였다.
“무와 협을 숭상하는 자들. 무인과 협객의 세계, 그것이 곧 무림이니! 내가 비록 태어난 고향은 다르다 하여도 마음의 고향만은 무림에 둔 지 오래거든.”
「거긴 수세식 화장실도 없을 거 아냐. 아이김 제국에서도 그것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런 씨벌….」
세상에나.
“내가 세운 문파가 왜 천무문이라 불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천’하무쌍이라는 치트스킬을 가진 제가 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32세 ‘무’직이었다는 사실에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의 약자인데 다들 천무문天武門이라고 알더라. 간판쟁이도 그렇게 만들어왔고. 이걸 이제 와서 해명할 수도 없고 니미 젠장…….」
세상에나.
“반드시 내가 가야 한다.”
「절대로 가기 싫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와 의식을 공유하는 배후령도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 반짝이가 자신 역시 할 말을 잃었다고 보고합니다. ]사람과 유령과 성좌 모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 존재에게 헌터들이 우오오! 하고 환호했다.
천무문의 길드원들이 특히나 기뻐했다.
“역시 문주님이야!”
“사부님이라면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저희들의 우상! 이 시대의 참된 헌터!”
“평생 따르겠습니다! 문주!”
만일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없었다면… 나도 감탄했을지 모른다. 어딜 살펴봐도 독사의 외양은 칼 한 자루에 인생을 바친 협객, 그 자체였으니까.
마치 검성처럼 말이다.
그 검성이 팔짱을 끼었다.
“으음…. 독사, 자네라면 가고 싶다고 느낄 만하지.”
“두 말 하면 잔소리야.”
“그렇다고 이 사람이 양보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네만.”
검성이 오러를 끌어올렸다.
독사는 이미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던 상황. 두 검호의 기세가 맞부딪혔다. 파앙…!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주변의 공기가 급변했다. 책갈피 메이드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후다닥 달아나거나, 기세에 휘말려서 팔라당 날아갔다.
헌터들은 더 열광했다.
“검성과 독사가 맞붙는다!”
“이건 자존심 싸움이지!”
그야말로 진풍경.
독사의 심리를 아는 나로서는 다른 의미로 진풍경이었다.
그 순간,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검성. 천무문주. 그만하도록.”
성기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서는 소리였다.
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는가 하면, 성기사가 조금 전 내기 때 약제사에게 돈을 건 얼마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홀쭉하던 그녀의 돈주머니는 지금 47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아 빵빵해져 있었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기사가 뭔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빵빵한 돈주머니의 마력 탓이겠지.
“설마하니 여기서 칼부림을 벌이지는 않겠지?”
돈주머니야 어쨌건 성기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싸움에 중재에 들어간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잠깐, 설마 [언제나] 이랬던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좀비야. 만약 그랬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것뿐이면…….
‘이 세상은 정말이지 알아서는 안 되는 금단의 지식들로 가득한 것 같네요……’
독사는 코웃음을 쳤다.
“칼춤을 춰야 하면 칼춤을 춰야지. 씨벌, 나도 검성도 무인이잖아. 한 판 떠서 강한 쪽이 가면 되지 않겠어?”
「일부러 지자!」
「대놓고 지면 쪽팔리니까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지자!」
「검성한테 지는 거면 제자들도 납득할 거야. 암.」
정말이지 진풍경이었다.
그런 속사정은 전혀 짐작도 못할 검성이 이마에 배어 나온 진땀을 닦았다.
“미안하네만 독사…. 자네 같은 강자를 상대로는 이 사람도 전력을 낼 수밖에 없네. 그 결과 지난 대련 때는 자네의 눈 하나를 날리고 말았지. 이번 역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네.”
“똑같은 말을 그대로 되돌려줘야겠구만, 영감탱이. 그 시절의 날 생각하고 덤비면 관짝 들어갈 거다.”
「이런 씨벌! 씨벌! 씨버럴럴!」
독사의 겉모습은 호기로운 무사로서 가히 부족함이 없었다.
내 옆을 떠다니던 검제 역시 검성처럼 이마에 배어 나온 진땀을 닦았다.
-좀비야.
‘네. 검제 양반.’
-레벨 높은 헌터들은 다 미친놈이라 그랬잖아. 근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중에서도 저 자식은, 뭐라고 하나….
‘[진짜] 네요….’
내 이마도 진땀으로 가득했다.
사실 ‘이마에서 진땀을 흘린다’는 부분만 놓고 보면 모두들 그랬다. 모든 헌터들이 이마에서 진땀을 흘리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빌론 광장에 모여 중계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분명 진땀을 흘리고 있을 거다.
성기사도 이마에 진땀이 가득했다. 뺨을 타고 흐른 진땀이 가득찬 금화 주머니 위에 뚝 떨어졌다.
“하여간 독사, 당신이란 남자는……”
독사는 선 굵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사한테는 말야.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란 게 있는 법이라구.”
「성기사! 어떻게 좀 해봐!」
그 다급한 마음의 외침이 전해진 것은 결코 아닐 테지만, 성기사는 정말로 어떻게 좀 했다.
구체적으로는 검성을 향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검성……. 이번에는 당신이 물러나줄 수 없겠나?”
「아니 왜 그 쪽이 물러나라는 거야!?」
‘아니 왜 그 쪽이 물러나라는 거야!?’
아, 겹쳤다.
저 [진짜]랑, 생각이 겹쳐버렸다…….
[ 반짝이가 자신의 검신을 부르르 떨어 용사님의 허리를 마사지해줍니다. ]검제도 내 어깨를 짚어주었다.
내가 말없는 위로를 받는 동안 성기사는 계속 검성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늘 최전선을 달리고 싶어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사왕, 마녀와 함께 12층부터 19층까지의 공략에 참가하지 않았나? 그런데 22층 공략에도 먼저 발을 담그겠다고 하면 그건 과연 염치없는 일일 거다.”
차분한 어조와 논리적인 설명.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
허리춤에 툭 튀어나온 빵빵한 돈주머니만이 유일하게 거슬렸다.
“거기다가,”
성기사는 독사를, 그리고 독사에게 문주님께서 가셔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던 발병원들을 가리켰다.
“천무문주는 한 집단의 수장이다. 비록 그가 제자들에 대한 체면 같은 걸 신경 쓸 남자는 아니라고 하나, 홀몸인 당신과는 입장이 달라. 그를 좀 존중해줄 수 없겠나?”
“으음…….”
검성, 마르쿠스 칼렌베리가 침음성을 흘렸다.
단단하게 벼려진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풀었다. 여러차례 눈썹이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었다.
“이 사람이 언제 자네들 5대 길드의 체면 따윌 신경 쓴 적이 있던가?”
성기사가 잇소리를 냈다.
“검성, 당신 정말……!”
“다만.”
성기사의 말을 끊은 검성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아니 왜 여기서 나를 보시는지……?
“요즘은 이 사람도 조금쯤 염치를 챙겨볼까 싶던 참이기는 해서 말이네.”
좋은 광경이었다. 완고한 노인이 자신의 고집을 굽히다니 말이다. 옆에서 아직도 ‘거 이럴 리가 없는데’ 어쩌고 궁시렁거리는 약왕인지 뭐시긴지가 털끝만큼이라도 본받았으면 싶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근데 그런 모습을 왜 지금 보이시는지……?
“알겠네.”
검성이 한 걸음 물러나왔다.
천마실록을 살피는 그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으나, 노인은 그것을 마음으로 끊어내며 말했다.
“독사. 이번에는 이 사람이 자네에게 양보하지.”
독사가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독사는 한층 더 기세를 피워내며 씨익 웃었다. 마치 자기가 원한 대로 승리를 거둔 도박꾼처럼.
“진즉에 그럴 것이지. 목숨 건진 줄 아쇼, 영감.”
「안 돼! 뭐야, 왜 갑자기 양보하는 거냐!? 마르쿠스 칼렌베리! 당신 다른 사람한테 뭐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안 돼, 가기 싫어!」 형언하기 어려운 금단의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성기사 역시, 형언하기 어렵다는 의미로는 같은 얼굴로 검성을 바라보았다. 초롱초롱한 얼굴로 지켜보던 이단심문관이 폴짝 뛰어 그런 성기사의 팔을 안았다.
“굉장하군요! 성기사, 검성을 설득해내다니!”
“음. 아니다. 검성이 나의 설득을 받아들여준 것이다.”
“아하핫, 그런가요! 그렇다면 검성을 안아 줘야겠습니다!”
“단호히 거부하겠네.”
검성이 철벽을 쳤다. 물론 어떤 철벽도 내츄럴 본 싸이코에겐 먹히지 않는 법이어서 검성은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했다.
“정말이지…… 모두들 조금씩은 성장하는구나.”
마녀가 입가를 짚은 채 후훗 웃는 소리가 방점처럼 찍혔다.
마치 훈훈한 이야기가 한바탕 흘러간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묵시록 [천마실록]에 원정을 나서게 된 세 명이 채비를 갖추었다.
“쯧. 정해졌으면 빨리 가자 이 놈들아. 기다리다가 날 새겠네 그냥. 하여간 나 젊을 적이랑 똑같아서는……. 이것도 어쩔 수 없군 그래. 하, 정말. 내가 가야지 어쩌겠냐. 아까는 저 애송이의 운빨에 연속으로 당했지만 전무후무 자타공인 고금제일 약사는 바로 나, 약왕이니까 말이야.”
“으읏, 사왕님. 저 무서워요……. 정말 저 같은 게 따라가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 제가 최소한 저 약왕인지 뭔지 하는 영감탱이보다는 뛰어나긴 하지만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천동설처럼 확고하게 증명된 사실이긴 하지만요, 그 결과를 이상하게 저 물벼룩 닮은 영감탱이가 인정을 안 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저 같은 게……”
“거기 비전투원들. 싸울 때는 알아서 몸 사려라. 사람 목 날아가는 건 말이야, 한 순간이라구?”
「가기 싫어……. 바꿔줘……. 검성 할배 지금이라도 나랑 좀 바꿔줘…….」
함께 하게 된 원정대원들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검제가 드물게도 다독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걱정 마라, 좀비야. 아니다 싶으면 그냥 뒈져버려! 병에 걸리든 천장단애에서 몸을 던지든 오늘 이 순간 이전으로 돌려버려! 내가 진짜 이 리셋은 영혼으로부터 인정하는 각이다. 내가 지금 영혼밖에 없기는 하지만 말이야.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갑시다……”
“좋소.”
도서관장이 키득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탁! 검성의 손에 들려 있던 묵시록이 저절로 도서관장의 손아귀로 날아갔다. 잠깐 너희한테 빌려주었을 뿐이지 이 책은 본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양, 도서관장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책을 펼쳤다.
“사왕, 독사, 약왕, 약제사.”
책에서 빛이 뿜어졌다.
“이상 4인을 [천마실록]의 새로운 등장인물로 지정하오. 제군들이 눈을 뜨면, 그곳은 아직 천마실록이 불행한 연재중단을 맞이하기 10일 전의 세계일 것이라오.”
그리고 빛이 우리를 감쌌다.
“부디 멋진 결말을 보여주시길 기대하겠소.”
꿈도 희망도 없는 원정대가 파견되는 순간이었다.
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