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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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서 [좀비]와 제일 안 어울리는 단어가 뭘까?
엉뚱한 질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좀비에게 점령당한 곳. 졸지에 좀비들과 맞서 싸우며 무공을 수련하게 된 나는, 자연히 좀비에 대하여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좀비와 제일 안 어울리는 단어가 뭔지 방금 깨달은 것이다.
-그어어어!
그건 바로 [장풍]이었다.
-우어, 어어어어!
검은 도복을 입은 좀비가 양손을 모으더니 장풍을 쏘았다.
농담이 아니다. 진짜다.
다시 말하겠다. 생전에 무림인으로 살았던 [좀비]가 괴성을 지르더니 [장풍]을 나한테로 발사하였다.
“이런, 미친—.”
후우욱!
장풍이 가볍게 내 몸을 밀어젖혔다. 나는 나무막대기처럼 공중에 부웅 떴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만으로도 어이가 상실되시고 정신이 조실되실 지경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우오오오오!
좀비가 타닷, 땅을 박찼다. 신묘한 보법(步法). 매끄러운 경공술이 펼쳐졌다. 마치 몸속에 헬륨 가스라도 가득찬 것처럼 좀비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좀비는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날아왔다.
미친.
“야! 잠깐, 이건 진짜 아니지!”
내가 다급하게 성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미처 좀비를 베어 넘기기 전에, 나의 칼날을 막아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갈(唱)!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지 마라.”
천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구덩이 위에서 내 싸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배고픔을, 아사(飯死)한 자의 고통을 떠올리거라. 오직 굶주림의 감각만을 되새겨라. 그냥 휘두르기만 해서야 마천신공은 껍데기에 불과하니라.”
“하, 하지만!”
좀비가 코앞에서 아가리를 벌렸다. 까득! 간신히 몸을 비틀어서 좀비의 이빨을 피했다. 제대로 낙법을 펼칠 새도 없어서,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내가 회피하자 더욱더 화난 것일까. 좀비는 포효하면서 재차 달려들었다.
“지금은 딱히 배가 안 고픕니다!”
“우둔한 것.”
천마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눈앞에 빨간색이 없다 하여 머릿속으로 빨간색을 떠올리지 못하느냐. 지금 배가 고프지 않다 하여 굶주림의 느낌을 되살리지 못하겠는고.”
그어어어!
천마가 내게 말하는 동안에도 좀비는 쉼 없이 손톱을 휘갈겼다. 저 손톱에 한 번이라도 닿으면 끝장. 나까지 좀비 바이러스에서 감염되어, 진정한 의미에서 김좀비가 되어버린다.
챠앙! 챵!
좀비의 손톱이 내 칼을 무섭게 쳤다. 나는 차마 공격하진 못하고 방어하는 데만 급급했다. 죽을 맛이었다.
“만일 불가하다면, 아직 네가 배고픔의 감각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도다. 배가 불러 터진 게지. 마천신공을 익히는 자, 마땅히 자유자재로 감각을 떠올릴 수 있어야만 하노라!”
배고픔의 감각.
굶주림의 기억.
“네가 제일 오래 동안 굶어본 기억을 떠올려라. 그때의 감각을 되씹어라.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 무엇을 제일 먹고 싶었느냐. 얼마나 오래 굶주렸느냐!”
“제일 오래 굶어본 건 3일에서 4일인데요……”
“뭐라? 사흘에서 나흘?”
천마가 어이없어했다.
“…네놈이 일생 가장 오래도록 굶어본 게 고작 사흘 남짓하단 말이더냐? 말도 안 된다. 천하가 난세로 전락한 지 오래이며, 계절이 멀다 하고 흉년이 찾아오거늘. 명문가의 자식이 아니고서야 어찌 고작 사흘밖에 안 굶었는고.”
“저, 저희가 살던 새외는 중원보다 많이 풍족하여서….”
당연히 강호인들이 돌아다니는 무림보다야 탑(塔)이 더 풍요로웠다. 그래 봬도 현대의 문명을 누리는 곳이다. 아마 2일 이상 굶어본적 없는 헌터들도 꽤 많을걸.
“어허. 허어. 쯔쯔쯧.”
천마가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가 안 통하는구나. 굶주림은 가장 다급한 감각이다.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고통이요, 만인이 거부할 수 없는 통각이니, 사람은 본디 배고픔을 달래고자 사는 것이다. 천자(天子)가 느끼는 배고픔과 천민(賤民)이 느끼는 배고픔이 다를 바 없노라. 이것조차 몰라서야 어찌 마천신공을 깨우치겠느냐?”
아니.
저도 10년 넘게 F급 헌터로 살면서 꽤 많이 배고팠는데.
바깥세상에서 떡볶이를 샀을 때, 1인분에 떡이 몇 개 들어가는지 헤아려서, 4개 더 주는 가게에서만 떡볶이를 산 적도 있는데.
“되었다.”
천마가 등을 돌렸다.
“본좌의 잘못이다! 잠시라도 기대했건만. 역시 말만 번지르르한 놈이었구나.”
나는 거대한 구덩이의 밑바닥에 있었다. 그래서 천마의 뒷모습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챠아앙! 챵! 좀비의 이빨과 손톱을 겨우 겨우 막아내며, 나는 이미 멀어져버린 천마를 향해 외쳤다.
“천마님!”
대답이 없었다.
“천마님!?”
역시 대답이 없었다.
천마, 그녀는 빠꾸가 없는 무림인이었다.
“잠깐 기다려주십쇼! 아니 세상에, 굶주린 게 벼슬도 아니고요! 그거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예!?”
장풍 좀비가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아.
“이런 씨 .”
콰즈즉!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발!”
나는 하루 전으로 돌아와서 발을 쿵쿵 굴렀다. 회귀하면서 장풍 좀비의 스킬 카드도 보고, 트라우마도 겪고, 피대상자의 자아가 유지됐다는 시스템 인증도 받았지만, 그딴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생이란 고생은 많이 하고 살았는데!”
내가 씩씩거렸다.
분노. 승부욕.
오직 두 가지 감정만이 내 심장에서 붉은 불꽃과 푸른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단지 타오르는 걸 뛰어넘어 이글이글거렸다.
-와오.
배후령은 내 옆에서 태평했다.
-완전 전통식으로 교육시키네. 하긴 하나뿐인 비전(秘傳)의 절기를 가르쳐주는 건데 저게 맞지. 좀비야. 자고로 인간이 날로 먹으려만 들면 자기가 날것이 되어버린….
“좋아요.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는 배후령의 말을 무시하고 온천 동굴을 나섰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제가 뭐 쫄아서 항복할 거 같아요? 천만의 말씀이라 이거예요. 저, 불타서 죽어본 적 있는 사람입니다! 머리부터 불에 지져져서 뒈진 적도 있다고요! 그런데 배고파서 못 죽어볼 거 같아요!?”
-어….
배후령이 드물게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좀비야? 왜 그러니? 야. 이러지 말고 천마인지 뭔지 하는 여자 말고 나한테서만 검을 배워. 그래도 내가 선생으로 따지면 한결 너그러….
“굶주려보라면 어디 굶주려보지요!”
-젠장.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큰일이군. 이놈 빡 돌았어. 아, 얘 빡치면 진짜 눈앞에 아무것도 안 뵈는 또라이 새끼인데…. 또 수십 일은 그냥 날아가겠구만…. 그날부터 나는 지옥도(地獄道)에 들어갔다.
‘이번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찾으러 간다.’ 동료 일행들한테는 그렇게 구라를 쳤다. 그리고 떠났다.
혼자 온천 동굴에서 최대한 먼 곳까지 가서, 설산에 틀어박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틀어박혔다.
-미친놈아….
내가 뭘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인가.
배후령이 짜게 식어버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 굶어서 뒤질 때까지 그냥 있으려는 거지? 그치?
“예. 그런데요.”
-아이고.
배후령이 한탄했다.
-이놈이 얼마나 또라이인지 나 말고도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하는데. 아이고! 이걸 나밖에 모르네, 아이고. 죽어서 귀신이 된 게 한 이다, 한.
시끄럽다.
-좀비야. 아니, 공자야. 제발 부탁이다. 네가 빡쳐서 수련에 몰두하는 건 상관없는데, 그런 너를 옆에서 계속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나는 뭔 잘못이니? 응?
“아, 시끄럽다니까요.”
-하나만 묻자. 며칠까지 버틸 생각이냐?
나는 설산의 작은 동굴에 앉았다. 천마 일행이 머무르는 동굴과는 달랐다. 당연히 온천이 없었고 벽곡단도 없었다. 그저 어둡기만 하고 차갑기만 한 동굴이었다.
“몰라요. 일단 112일은 넘겨야죠.”
-뭐?
“천마의 트라우마에서 봤어요. 그 사람, 111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운기조식으로만 버틴 적 있어요. 그러니까 전 112일까진 버틸 겁니다.”
-이런 우라질 시비럴 생사시미 같은….
배후령이 대략 1분에 걸쳐서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무슨 욕을 뱉어도 내 정신에 타격을 가할 순 없었다. 이미 나는 가부좌를 틀었다.
-넌 100일 넘게 버티려고 해도 못 버텨!
배후령이 소리쳤다.
-지금 날씨 봐라. 춥잖아! 존나 춥다고! 오러로 몸을 안 감싸면 당장 얼어죽을 판인데, 네가 무슨 수로 100일 내내 오러를 돌릴 거냐?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20일이 한계일걸.
욕설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배후령은 설득을 시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자야. 100일 넘게 버티는 건 더 이상 굶주림의 영역이 아니다. 너 100일 넘게 안 굶어봤지? 안 굶어봤으면 말을 마라.
“그러는 댁은 굶어봤어요?”
-암. 나도 소싯적에 땡중들 따라서 단식 수련 해봐서 안다. 며칠은 간간히 배고파서 뒈질 것 같지만, 대체로는 그냥 배고프다는 느낌 자체가 없어! 그건 굶는 게 아니라 그냥 정신수양이라니까. 정신수양!
“그럼 답 나왔네요.”
내가 덤덤하게 말했다.
“15일까지 굶은 다음 계속 15일째의 하루만 반복하면 되죠.
-…….
배후령이 입을 뻐끔거렸다.
-뭐시라?
“15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요. 배고픔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만 버팁니다. 그리고 자살해서 계속 15일째에 머무르는 거예요. 배고픔도 변함이 없겠죠.”
내가 배후령을 쳐다봤다.
“그렇게 112일의 시간이 될 때까지 반복합니다. 어때요? 오러도 안 떨어지고. 배고픔은 계속 느껴지고. 완벽한 해답이네요.”
-이… 미친놈아….
배후령이 경악했다.
-그냥 나한테 배워… 이상한 교주놈을 스승으로 삼지 말고. 내 무공이 더 좋다니까? 굳이 스승이 필요하면 나한테 배우란 말이야. 도대체 뭐가 너를 그딴 미친 짓거리로 내모는 거냐…!
“마천신공을 완벽하게 배울 거예요.”
심장이 타올랐다.
“천마가 왜 세상에 절망했는지 알아요? 왜 이 세계가, [천마실록]이 끝장난 건지 아세요? 더 살아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 그래요.”
무림맹주가 병석에 드러누웠을 때.
천마는 홀로 중얼거렸다.
「천하가 다 공(空)이 되어버렸구나.」
그걸로 끝이었다. 만일 세계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긴다면, 바로 그것이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최후의 한 마디였다.
무의미하다는 것.
더는 인물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물이 움직여도, 어디를 가도, 무엇을 느껴도,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수백 줄의 대사가 늘어져도. 수천 줄의 묘사가 난무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백지(白紙)와 똑같아질 뿐.
그때 작품은 죽고, 세계도 죽는다.
멸망한다.
도서관장이 말한 [연재중단]이란 그런 의미일 것이다.
-…….
나는, 이 세계가 그런 식으로 멸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천마라는 인물이 그렇게 끝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염제처럼 살면 쉽죠.”
동굴 바깥을 바라보았다. 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깡패 스킬도 있겠다. 내가 제일 잘난 놈이고. 내가 이기면 전부 실력으로 이긴 거고. 다른 놈들이 나보다 못한 헌터들은 걔들이 병신이어서 그렇고. 병신인 놈들한테 신경써줄 필요 없으니까, 나 편한 스테이지만 골라서 공략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비웃고. 냉소하고….”
나는 가만히 가부좌를 튼 채 온몸에 오러를 돌렸다.
“그게 멋져 보이긴 멋져 보이는데.”
그리고 시작하였다.
“냉소는 유치하지 않지만, 냉소하면서 사는 사람은 유치하더라고요.”
굶었다.
“정론은 유치하지만, 정론으로 사는 사람은 안 유치해요.”
하루를 굶었다.
“저도 사람입니다. 살아야지요.”
이틀을 굶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답이 뻔한 거예요.”
사흘을 굶었다.
굶고, 또 굶었다.
7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