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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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달려들었다.
검을 들었다.
찍어 벴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일식第一式.
아사유검飯死流劍.
나의 몸은 굶주린 농부가 되었다. 나의 검은 한 자루 곡괭이가 되었다. 내 칼에 찍혀, 허공은 마른 진흙처럼 부서졌다.
부서지고, 부서지고, 부서져서 드러난 허공의 끝에는 독사의 머리가 있었다.
“뭐……!”
독사가 움찔했다. 외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독사의 어깨가 움직이려다가, 멎더니, 다음 순간에는 골반이 움직였다. 나한테 반격하길 포기하고 피하려 든 것이다.
농부의 곡괭이 땅을 놓치는 법 없나니.
내 검은 허공을 찍어 팠다. 독사가 몸을 뒤로 뺐다. 허공이 부서진 제 몸만큼 공기를 훅 빨아들였다.
팡!
허공이 갈리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싸락눈이 회오리쳤다. 겨울이었다. 바람이 불 적마다 싸락눈이 날렸는데, 비강을 할퀴는 공기는 지독히도 건조했다.
“—씨벌.”
독사가 검을 추어올렸다. 눈발과 눈발 사이로 독사의 외눈이 비추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천무문주의 눈동자에는, 충격이 감돌고 있었다.
“뭐야 이건,”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검을 들었다.
찍어 벴다.
“이,” 독사는 이번에도 내 칼을 막는 대신 몸을 뒤로 튕겼다. “이런 씹,” 팡,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솟구치는 눈싸락. “니미,” 내가 칼질을 할 때마다 독사는 몸을 피했고, 피할 수밖에 없었으며, “염,” 그 자리마다 회오리가 솟구쳤다.
“워메 씨벌!”
다시 달려들려다가, 나는 멈추었다.
정확히는 덜커덕, 몸이 멈추어버렸다.
호흡하지 않았다. 못 깨닫고 있었다. “헉,” 숨, 마른 공기가 목구멍에 들이닥쳤다. 폐 안에서 용오름이 몰아쳤다. “후,” 오장이 뒤집혀서, 숨을 잘, “하아,” 숨을 쉴 때마다 몸이 아팠다. 떨렸다.
검은, 놓지 않았다.
일합(一合).
한 차례의 교전이 끝났다.
“염병, 뒈질 뻔했네……”
독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사왕, 아가리질만 좀 하는 줄 알았더니…… 칼질도 제법인데. 씨벌. 뭐야, 대체? 완전 [영세마검]으로 요약 가능한 일격들이잖냐.”
“그렇다, 제자야! 그야말로 세상을 얼게 하여 깨트리는 마귀의 기세가 느껴지는 검이니 [영세마검(永世魔劍)]이로다!”
천마와 드잡이질을 하던 무림맹주가 소리쳤다.
독사가 말한 [영세마검]과 무림맹주가 말하는 [영세마검] 사이에는 분명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자리잡고 있을 터지만, 그 벽은 독심술이라도 갖지 않은 이상 눈치챌 수 없는 것이다.
천마 역시 그 벽을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혀를 쯧 찼다.
“하나밖에 없는 눈이 제법 날카로운 놈이구나.”
“아무려면! 나이가 좀 든 게 흠이다만, 본질을 꿰뚫어보는 ‘진짜’ 눈을 가진 천고의 기재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부월선이 제자로 받았겠느냐.”
무림맹주가 으스대다가 슬쩍 내 쪽을 흘겨보았다.
“흐음. 그러는 네년도, 제자로 받은 놈의 싹수가 제법이잖나. 제자로 받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듯 무서운 마검을 펼치다니, 허허. 사마군(四魔君)조차 뛰어넘을 만큼 무서운 마두의 씨앗이로다!”
“그러니까 아직 제자로 받은 것은……”
“예끼 ! 아직까지 그런 소릴 할 참이냐!”
“…….”
천마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생각했다.
‘이건 내가 독사를 이기기 위한 싸움도 아니고, 독사가 나를 이기기 위한 싸움도 아니야.’
이 비무(比武)의 목적을.
‘천마가 나를 인정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에서 나와 무림맹주는 목적이 똑같았다.
그저 멸망을 기다릴 뿐인 천마한테 미래를 안겨주는 것 말이다.
무림맹주는 히죽 웃었다.
“제자야!”
“오우, 스승!”
기세 좋게 대답한 독사에게 무림맹주가 소리쳤다.
“지금부터 내가 조언을 해주마! 새겨듣도록 해라!”
“뭐…”
천마가 입을 벌렸다.
“이, 이 노물아! 지금 뭐하자는 짓이냐!”
“왜. 무슨 문제 라도 있느냐? 저 새파란 마두와 넌 사제관계도 아니라면서?”
“그, 그건 그렇다만…… 내 말은, 비무 도중에 조언을 하겠다니! 하다못해 바둑에서조차 다른 사람이 훈수두는 건 무례한 짓이거늘, 두 무인이 비무를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무인이라니?”
무림맹주가 허허 웃으며 턱수염을 쓸었다.
“내 눈에는 새파란 마두놈과 백도의 자랑스런 후기지수밖에 안 보인다. 마두는 합공을 해서 잡아도 무방하다고 대명률에도 나와 있을 게다. 아무런 문제도 없구먼.”
“보자보자 하니까 이 노물이 진짜……!”
“껄껄.”
무림맹주가 호쾌하게 외쳤다.
“제자야! 저 새파란 마두놈, 일격과 일격은 제법 고절하다만 기세를 유지할 깜냥은 안 되는 모양이다! 절대 맞받지 말고 피하거라. 피해서 내력이 떨어지길 기다리도록 해라!”
“어이어이, 스승! 사실이냐구!”
독사가 씨익 웃었다.
“그쯤이야 나도 이미 파악한 지 옛저녁이라구! 더 실용적인 조언은 없는 거냐구!”
“아니. 네 제자놈 말투는 또 왜 저러냐!?”
천마가 이를 갈았다. 여러가지 의미로 열불이 터진 얼굴이었다.
“저게 정녕 네놈이 마지막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정파대협의 품격이더냐!”
“어허. 이 마두가 이제 와서는 말투 갖고 시비구나. 그럼 새외의 아해한테 중화의 예법을 바라랴? 아니면 왜? 네 제자가… 아, 제자가 아직 아니랬지. 하여간 저 새파란 마두가 저런 말투를 쓰는 내 제자한테 박살날까 봐 걱정되는 게냐?”
“이…….”
“제자야! 호접만검(胡媒滿劍)과 생사여율령(生死如律令)을 펼치거라! 즉방으로 먹힐 것이다!”
독사의 선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아래 외눈에는 깊은 깨달음이 서려 있었다.
“과연. [호접만검]과 [생사여율령]인가.”
“그래! 하나 더한다면 천천무(天天武)의 요령을 덧붙이는 것이겠다만, 가능하겠느냐?”
“씨벌, 당연히 가능하지! 스승. 내가 바로 천무문주 독사라 이 말이야!”
독사는 팽, 기세 좋게 한쪽 콧물을 풀어내더니 검을 붙잡았다.
한편, 나는 그제야 호흡을 추스를 수 있었다.
자세를 고쳐 잡은 나에게 독사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사왕.”
“예.”
“굶주려본 적 있냐고 물었었냐?”
“그랬지요. 독사님.”
“그게 너의 무(武)냐?”
외눈에서 쏘아진 눈빛만큼이나 날카로운 질문.
나는 호흡을 고르며 답했다.
“조금 전의 일격에 담긴 심상이긴 합니다.”
“그럴 것 같더라.”
독사는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틀어 그 미소를 기울였다.
“거꾸로 물어보마, 사왕. 넌 무(武)가 뭐라고 생각하냐?”
천무문의 문주가 무武를 논한다.
그것은 이단심문관이 신에 대해 논하는 것과 같고, 검성이 검에 대해 논하는 것과 같으며, 먼 미래 연금성주가 의약에 대해 논하는 것과 같아서, 정좌한 채 새겨 들어야 할 일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검제를 만나지 않고, 천마로부터 마공을 배우지 않으며, 무엇보다 저 양반의 심리를 읽기 전 이었다면 말이다.
“답해주마!”
독사는 자세를 낮추면서 검을 치켜세웠다.
바짝 독이 올라 모가지를 쳐든 살무사처럼.
“발을 딛는다! 팔을 휘두른다! 주먹을 내지른다!”
그리고 움직였다.
아니—흘렀다.
마치 독사 자신이 액체가 된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유려하게 흘러왔다. 내 앞까지.
그렇게 흐르더니, 다음 순간, 캉……!
“무라 함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며 올려 베는 칼날을 나는 간신히 막아냈다.
그러자마자, 독사는 칼날을 한 바퀴 돌려 잡았다. 칼날을 따라 칼날이 끼리릭 불꽃을 튀기며 올라갔다. 독사는 그렇게 검을 곧추세웠다. 하늘을 꿰뚫듯 1자로 곧추세우고, 손목을 살짝 꺾었다. 기울였다.
쏟아냈다.
“눈앞의 새끼한테 한방 처먹이는 거다!”
쏟아졌다.
“그게 전부야! 새끼야!”
검격의 소낙비가 나를 뒤덮었다.
“제기랄,” 캉! 막자마자, “아,” 캉! 다음 일격이, “읏!” 다시 다음 일격이, “젠,” 다짜고짜 쏟아지는 검격들이 내 칼을 씹었다. 물었다. 우악스레 틈을 벌렸다. “읏,” 그러더니, 츠팟……! 기어코 파고든 칼날이 뺨을 할퀴었다.
“이런……!”
터지는 피. 나는 간신히 몇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안 놓친다!”
독사는 말 그대로 목줄기에 독니를 박아넣은 독사처럼, 스르륵 휘어감으며 따라붙었다.
다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일격.
“읏,”
막자마자 그대로 타고 올라와, 쏟아지는 칼날의 소나기.
“젠장,”
제기랄, 역시, 강하다.
괜히 헌터들 중에서 무투파로 랭크되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이 독사라는 작자는!
“어이어이, 사왕! 선빵 날리더니만 그 정도냐구!”
독사가 코웃음을 쳤다.
속에서 치솟은 열불은, 나 아닌 다른 이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빌어먹을..!”
천마였다.
“이놈아!”
그녀는 나를 향해 목 놓아 소리쳤다.
“뭐하고 있느냐! 소나기다! 물이다! 저 검은 빗물을 닮지 않았느냐!”
여태껏 무림맹주의 도발에 이빨을 갈고 있던 천마가 마침내 목소리를 토했다. 여인은 주먹을 꾹 쥔 채 나에게 외쳤다.
“무서울 게 어디 있는고! 받아서 마셔라!”
천마는 이 비무를 인정한 것이다.
마교의 후계자가 된 나와 정파의 후계자가 되어버린 독사. 우리 두 사람의 싸움을 인정했다. 이것이 마교와 정파간의 대결이며, 우리 두 사람은 각각 천마와 무림맹주의 ‘대리인’임을 인정했다.
“하.”
나는 웃었다.
“알겠습니다!”
검을 역수로 쥔 채 자세를 높였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이식第二式.
갈사비검 渴死痛劍.
쏟아지는 독사의 검격을, 쏟아지기 전에 막았다. 그리고 거꾸로 들이키듯, 원하는 경로로 끌어들였다. 흘렸다.
맨바닥에, 쏟아버렸다.
“오.”
한 수를 낭비 한 독사.
한 수를 낭비시킨 나.
두 시선이 교차되는 찰나, 노인과 여인의 목소리도 엇갈렸다.
“제자야! 부엽니토(腐葉足土)니라! 젖은 흙이 되어서……”
“하! 그럼 아예 웅덩이로 만들어줘라!”
독사가 몸을 웅크려 방어태세를 취한 것, 그리고 내가 검을 옆으로 비튼 것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삼식第三式.
익사만검潮死滿劍.
아주 약간, 경사를 주어서.
비스듬한 수평으로, 캉! 검격을, 캉! 날리고, 캉! 독사의 호흡에 맞추어, 캉! 눈 깜빡임에 맞추어, 캉! 그리고,
마지막에는 엇박자로,
슷, 팡……!!
“씹..!”
옆구리 베인 독사가 이를 갈았다.
무림맹주가 외쳤다.
“독하구나! 떨어져라!”
“붙어라!”
천마가 외쳤다.
독사는 무림맹주의 목소리를 따라 물러났고, 나는 천마의 목소리를 쫓아 들러붙었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사식第四式.
동사접검凍死接劍.
“에라이 쌍!”
독사가 성질을 냈다.
“싸움 엿같이 하네 진짜!”
“독사님도 만만치 않은뎁쇼!”
“아니 진짜 엿같애! 사왕 너 전생에 엿 아니었냐? 어떻게 이렇게 딱 들러붙냐?”
“그러는 독사님은 전생에 개 아니셨는지?”
서로가 서로의 전생을 궁금해하면서, 나와 독사는 칼을 나누었다. 싸락눈이 솟구치고, 겨울 바람이 휘몰아쳤다.
외야는 더욱 달아올랐다.
“적당히 끊어내라 제자야!”
“바로 쳐라!”
“막지 마! 나려타곤(懷驅打浪)이라도 펼쳐 피해라! 그 다음엔 지당권(地齡奉)으로……”
“아해야! 너도 그건 막으면 안 되니라! 피하거라!”
피륙에 상처가 난다.
늘어간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간다.
나도, 독사도, 어느 순간엔가 피투성이가 되었다. 터져 나간 상처들은 찬바람에 파묻혀 금세 흉터로 굳어졌다.
“어허, 마두 네 이 년! 너야말로 어디다가 훈수질이냐!”
핀잔을 주는 무림맹주는 웃고 있었다.
“이 소갈머리에 구렁이만 들어찬 노물 같으니……”
타박을 하는 천마도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교차할 때마다, 나와 독사의 검격이 뒤섞였다.
나도 독사도 서로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천마와 무림맹주 사이에 오가는 설전에도 살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사결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싸움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모두에게 죽여주는 싸움이었다.
“후욱, 후! 하아!”
나는 천마의 검이 되었다. 몸이 전부 감염되어서, 내공을 전부 쏟아붓지 않고서는 전력으로 싸울 수 없게 된 천마를 대신하여, 전력으로 싸웠다.
이제는 그녀가 잃어버린 풍경이었다.
“하아아압!”
독사는 맹주의 검이 되었다. 몸이 전부 감염되어서, 진기를 깨트리지 않고서는 도끼를 휘두를 수 없는 무림의 맹주를 대신하여,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이제는 그가 꾸지 못하게 된 꿈이었다.
“…….”
모든 풍경은 퇴색된다.
아무리 찬란한 꿈이어도 언젠가 변색하고 만다.
인간은 쇠퇴하는 것이다.
“읏…….”
어느 순간부터.
천마는 말이 없어졌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리운 무림의 여인은, 천천히 얼굴을 감쌌다.
“고얀놈… 고약한 것들……”
쇠퇴해버린 장르.
쇠퇴해버린 세계.
“다 버렸거늘. 예전에 버렸거늘, 어이하여 또 오는고……”
사람만이 사람을 버릴 수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
“어찌하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도, 독사도 더는 칼 하나 들 힘이 없어졌을 무렵에야, 우리의 비무는 끝이 났다. 승자는 없었다. 패자는 더더욱 없었다.
“…….”
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힘겹게 숨을 쉬면서 힘겨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눈밭을 걸었다.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는 천마의 앞까지 걸어가서, 떨리는 무릎을 굽혔다.
“천마님.”
떨리는 손으로 설원을 짚었다.
“천마님의 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나는 당신의 풍경이 되고 싶다.
“천마님을 스승으로 모시려 합니다.”
당신의 변색하지 않는 꿈이 되고 싶다.
“저의 별호는 사왕(死王)이옵고.”
당신의 풍경이 내 풍경으로 이어지고, 당신의 꿈이 내 꿈으로 이어져서, 당신의 삶이 나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저의 본명은 김공자입니다.”
모든 진지함을 조롱하게 된 시대.
아무도 당신을 비웃지 못하도록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한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계속 살아달라.
나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
하늘에서 노을이 물들었다.
설원으로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본좌는 천마, 소백향이다.”
하늘에서 설원까지 내리기 위해 눈송이는 오래도록 바람에 흩날렸다. 무수한 눈송이들이. 그리고 그중 어떤 한점의 눈송이가 날려와, 어느 여인의 검은 머리카락에 떨어졌다. 하양이 검정에 녹아서 흘렀다.
“구배지례를 올리거라.”
천마가 입술을 열었다.
“내 너를, 마지막 제자로 받겠다.”
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