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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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와 천마는, 한참 지나고 나서 일행한테 돌아올 수 있었다.
“…….”
“…….”
우리 두 사람은 숙연했다.
동굴을 걸으면서 천마는 “……발 앞이 퍽 어둡구나, 걸을 때 조심하거라” 하고 한마디만 말했다. 나 역시 “예”라고 대답했을 뿐. 그거로 대화가 끝났다. 옆에서 엿본 여인의 얼굴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천마, 아니.
스승님은 뭘 생각하고 계신 걸까.
‘인물창.’
제자로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만 호기심을 견디기 어려웠다. 혹시나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서 스승님이 조심스러워진 것 아닐까?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
이름: 소백향(舊白香)
호감도: 85
선호 장르: [무협]
불호 장르: [고전], [신화], [역사], [동화]
선호 캐릭터: [민초], [라이벌], [제자]
불호 캐릭터: [억압자], [기만자], [한량]
선호 플롯: [전력을 다하는 승부]
불호 플롯: [도피], [망각], [무의미한 죽음]
심리 상태: ‘어디. 본좌의 공력(功刀)이 남은 걸 헤아리면…… 아끼고 아끼어 써서 1 년 6개월은 더 살아볼 수 있겠구나. 1년 반이라! 어허, 어렵도다! 1년 반 안에 제자한테 본좌의 모든 것을 공자한테 물려주어야 할 텐데……’
+
음….
음.
얼굴이 따끔거렸다. 스승님의 마음을 멋대로 엿보자 죄책감이 들어서… 만은 아니었다. 부끄러움. 약간의 감동. 뭔지 모르겠지만 되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진짜로 나는 사람의 호의에 약한 건가.
-크흐으. 좀비야! 오늘은 정말 날이다! 운수대통이야!
물론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 아닌 귀신 새끼께서 산통을 전부 깨트리셨거든.
-뭐! 아무리 세계가 달라도 강호놈들 대갈빡이 거기서 거기인지 우리 무림이랑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무공서 읽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네. 캬아! 아, 참. 그래서 구배지례는 잘 올렸냐?
“…….”
-어? 뭐냐? 그 띠꺼운 표정.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 보이잖아, 좀비야. 넌 외모 관리 좀 해야겠다.
만약 나한테도 호감도가 표시된다면 방금 -10점 정도 떨어졌을 거다.
하여튼 귀신은 인간의 마음을 모른다.
[반짝이가 겨우 흐느낌을 멈추고 용사님을 우러러봅니다.]아까부터 부르르 떨던 반짝이가 겨우 멈추었다.
역시 인간의 마음은 성좌가 안다.
반짝이에 대한 나의 호감도가 30 올랐다.
“오. 돌아왔수?”
독사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그의 외눈은 곧 나를 쳐다봤다.
“구배지례가 끝났냐?”
“예. 정식으로 마교의 제자가 됐습니다.”
“그래. 축하한다.”
“그래서 독사님은 어쩌다 무림맹주와 사제의 연을 맺었어요?”
독사는 피식 웃더니 팔짱을 끼었다.
“뭐, 어쩌다보니.”
“그때도 그렇게 말씀하면서.”
“뭐야,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은 거냐?”
“가능하다면요.”
독사는 팔짱을 끼어 보였다.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알 굵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다만, 불가능하다.”
독사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내가 가르침을 청했을 뿐이거든.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음.
대련도 끝났겠다, 나는 독사의 심리창을 열어보았다.
『쳇.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아니지. 이제는 내 스승님이지.
하여간 자기 목숨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천마에게 살 이유를 주고 싶다고 큰 절까지 올려오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고, 또 어떻게 말하냐.
그것도 실력은 나보다 엄청 윗줄인 분이 그러는데…….』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독사를 바라보았다.
독사.
그는 ‘사나이’였다.
『후아~, 거짓말을 해서 그런가,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구만.
무림맹주랑 천마랑 이따금 대련을 붙잖아. 그걸 보고 이 양반들 좀 대단한데 하는 생각이야 이전부터 품고 있었다지.
그래서 둘이 앉은 김에, 무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지.
그랬더니 무림맹주가 갑자기, ‘끼요옷! 어이어이 네 놈, 사실이냐구! 너 같은 천고의 기재가 있다니 새외는 도대체 얼마나 복을 받은 거냐고!’하면서 경악을 하는 거 있지.
나야 뒷머리를 긁으면서 흠, 뭐 이 정도를 가지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약왕 영감탱이가 뭘 그런 걸 갖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는 듯 툭 끼어들어서는,
‘아아, 이 천무문주라는 녀석은 이렇게 보여도 소중한 [동료]라서 말이다. 그만한 실력과 인품, 외모를 간직한 거야 당연하달까’ 하고 말했다 이거지.
약제사도 얼굴을 새초롬하게 붉히고서는,
‘네…… 처, 천무문주 오라버…니… 아, 아니요! 아아아무 말도 안했어요! 하여간 천무문주 님은 우리 세계의 상위 랭커…… 마, 말하자면, 우리 세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아이돌! 이랄까요…… 아하하, 하, 하규으웃, 부, 부끄러운 말을 해버렸다앗—!’ 하면서 양뺨을 감싸 쥐는 거야.
난데없이 쏟아지는 팩트의 향연에 나야 그저 먼 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
그러자 무림맹주가 모든 게 납득이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이어이, 부탁이라구! 이 천고의 기재 녀석, 제발 나의 마지막 직전 제자가 되어달라구!’
하아~ 이거 곤란한데 말이야.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을 뿐인데, 정말이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바람 잘 날이 없는 거람……』
그래.
그만 보자.
독사.
그는, ‘진짜 사나이’였으니까.
“사왕. 그리고 마교 교주 씨.”
이 시대 최고의 ‘진짜 사나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당신들한테 알려줄 기쁜 소식이 하나 있고, 슬픈 소식이 하나 있수다.”
“뭡니까?”
“성공했어요.”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독사가 아니었다. 훨씬 더 선이 흐릿한 목소리. 약제사의 목소리였다.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쓴 채 약제사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치료제. 개발, 성공했어요. 사왕님.”
“…….”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개발 완료 선언에 감동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약제사는 천재다. 그녀가 언젠가 치료제를 개발할 것이라는 내 믿음은 자명하여서, 오직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에 불과했다.
그동안 마천신공을 익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약왕의 도움을 받은 약제사라면 슬슬 치료제가 개발될 법했다.
“무엇이? 약이 만들어졌다고?”
스승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이더냐? 거짓을 고한 거라면 지금 토로하거라. 본좌는 한 번의 거짓말은 봐주는 성격이다.”
“…네. 진짜예요.”
약제사가 말했다.
“사실 개발한 것은 어제였어요. 하루 더 기미를 살핀 건, 임상실험을 관찰할 필요가 있어서예요.”
“임상실험? 그게 무엇인고?”
“치료제가 제대로 약효를 발휘하는지 어쩌는지 간을 보는 거예요. 천마님과 맹주님이 기증해주신 실험체… 죄송해요. 무당파 장문인이었다는 분의 시신으로 하루 동안 경과를 살펴봤어요.”
약제사는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짓는 것 같았다.
“사망한 지 무척 오래되어서, 생환은 불가능했지만. 좀비 바이러스… 전염병이 치유되고, 평범한 시체로 돌아온 것을 확인했어요. 예. 치료제에는 이상이 없어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경사 아니느냐!”
스승님이 반색했다.
“대단하구나! 강호의 의원과 도사가 전부 들러붙었지만 두 손 두 발을 들어버린 괴질이었노라. 그것을 고작 두 명이서 해법을 찾아내다니, 여하한 재주가 아니로고!”
“아니요. 사왕님이 제공해주신 자료 덕분에 겨우……”
“겸양은 됐다. 당장 부월선 그 노친네를 치료해다오!”
스승님은 약제사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스승님이 기뻐하는 것이 손짓과 몸짓에서 생생히 느껴졌다.
“그놈이 강한 척 잘난 척은 다 떨고 있으나 기실 앞으로 버틸 날은 얼마 안 남았노라. 본인도 그걸 알아서 새외의 아이를 제자로 삼은 것이겠지. 노친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약이 개발된 것은 실로 상제의 보살핌이로다!”
“예…. 당연히 치료해드릴 거예요. 그러기 위해 여길 왔는걸요….”
그리고 내가 입을 열었다.
“치료제에 문제가 있는 거군요.”
“…….”
“그런 거 아닙니까, 사장님?”
약제사가 고개를 수그렸다. 약제사의 안색은 그녀의 목소리만큼이나 흐릿했다.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말할 때부터 약제사는 나와 자꾸만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미 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뇨, 치료제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제가 만들었는걸요. 완벽해요. 그런데….”
하지만.
“그런데, 뭔가요?”
“단전을 폐해야 한다는군.”
터벅.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마두야. 나도 말코도사의 시체가 평범하게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혹시 몰라서 강시병을 두엇 더 구해와서 시험해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처자가 만든 약의 효험은 의심할 바 없어.”
무림맹주 부월선.
하얀 도복을 입은 노인은 천천히 우리한테 걸어왔다.
“그렇지만 너도 알고 있을 터다. 우리 두 사람은, 벌써 반시체나 다름없어. 옛날옛적에 시체가 되어버린 몸을 억지 써서 살려놓은 게야.”
“…….”
스승님의 낯빛이 어느새 굳어 있었다.
무림 맹주는 허허롭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천리를 어기고 여태껏 살아남은 것도 용한 일이었다.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지.”
“…강시병에 감염된 지, 두 분 모두,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약제사가 입술을 열었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 감염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면 백신 한 방으로 치유와 예방까지 끝나지만 두 분들은….”
푹 머리를 숙인 약제사가 빠르게 입을 움직였다.
“경추혈 위로는 어떤 이상도 없어요. 치료제를 먹고 나면 병에 전염되시기 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렇지만 경추혈 아래는, 여러분이 말하는 내공이란 게, 병원(病原)과… 그러니까, 탁기(獨氣)와 전혀 구분이 안 되어요.”
특히 하단전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약제사는 말했다.
“여러분의 내공이 움직이는 통로는 탁기가 퍼진 통로와 일치해요. 쉽게 얘기하면, 복도를 청소해야 하는데. 치료제란 건 세심한 집게손이 아니라 둔한 빗자루예요. 빗자루로 복도를 쓸면서 먼지와 모래알을 따로 청소할 수는 없어요. 여러분의 복도는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특히, 하단전의 상태가 무척 엉망이어서….”
단전이란 내공이 쌓이는 곳.
무인에게는 목숨만큼 소중한 부위였다.
“거길, 전부 들어내야 되어요.”
“……들어낸다 함은.”
스승님이 말했다.
“들어낸다는 말은 무슨 뜻인고.”
“없애야 해요.”
약제사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수술을 집도할 거예요.”
“…단전에 붙은 종양을 제거하겠다는 말이냐? 그 정도면 괜찮다. 공력에 손실이 있겠으나 우리쯤 되면 금방 복구할 수 있다.”
“아니요. 완전히, 부위를 적출할 거예요.”
“…….”
“수술의 성공 여부는 의심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이미 임상수술도 해봤어요. 전 수술의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지만, 약왕 어르신은 솜씨가 있어서. 저, 저도 서포트는 가능한 수준이구. 그러니….”
“시술하는 재주가 굉장하더라.”
무림맹주가 툭 말했다.
“딴 건 몰라도 의원은 강호가 아니라 새외에서 찾아야 되겠더구만. 옆에서 지켜보는데 신기하지 뭐냐. 마두야. 너도 기회 되면 견문해라.”
“남궁운.”
“본인은,”
무림맹주가 기침했다.
“나는 시술을 받을 것이다.”
“…….”
“어차피 내가 잃어버릴 내공이라 해봤자 겨우 한줌이지. 아쉬울 것도 없어. 후회할 것도 없다. 늘그막에 제자를 들여서 다행이군. 단전을 폐하여도 제자놈 가르칠 정신머리야 멀쩡하고, 제자놈도 하나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 천고의 기재니까 말이다.”
무림맹주는 자신의 오랜 적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무인이다. 무(武)는 마음이다. 마음이 남으면 무도 남는다. 안 그러겠느냐, 백향아.”
스승님은 대답하지 못했다.
밤새동안, 무림맹주는 시술을 받았다. 새벽이 되었을 무렵에 수술이 끝났음을 약제사와 약왕이 알려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4.
새벽에 설원은 그늘의 색을 담았다.
“스승님.”
“…….”
스승님은 동굴 입구에 외로이 서서, 그늘이 된 세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긴 검은색 소매가 바람에 펄럭였다.
풍경이 멀었다.
스승님의 뒷모습은 풍경보다 조금 더 멀어 보였다.
“스승님.”
“…시술의 결과가 나온 것이더냐.”
“예.”
“어찌 되었는고.”
“무탈합니다.”
“그러하더냐?”
“예.”
“그리 되었구나.”
스승님의 시선은 허공에 못박혀 있었다.
“제자야.”
“예.”
“본좌는 천하의 추위를 전부 베어버리고 싶었다.”
스승님이 말했다.
“어릴 때부터 그러했느니라. 겨울이 원망스러웠다. 겨울에 내리는 눈이 한스러웠다. 어찌 세상에 계절이라는 것이 있고, 계절에는 겨울이라는 것이 있어, 계절이 질 때마다 사람의 목숨 또한 져야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영원히 겨울로 굳어버린 세계.
빙설지체(氷雪之體)이자 극음지체(極陰之體)를 타고 태어난 여인은 자신과 가장 닮은 계절을 싫어했다.
“한 자루의 검으로 천하의 추위를 베어버릴 수 없다 할지언정, 천하를 얼어붙게 만드는 자들은 능히 처단하리라 자신했지. 본좌가 강호에 초출(初出)한 시절이 떠오르는구나. 그때도 한겨울이었노라.”
나는 스승님의 모습에서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검劍.
스승님은 오른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코등이가 없었다. 오직 칼자루와 검신으로만 이루어졌다. 거울처럼 투명한 다른 검들과 다르게, 스승님의 검은 새까만 묵빛이었다.
투명해지기를 거부한 칼.
처음 보았으나 그 검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섬혈마검(織血魔劍)……”
“그래.”
스승님이 나직이 읊조렸다.
“본좌가 강호에 처음 출두하였을 때 시험해본 것이 있다. 어린 마음의 치기였지. 천하의 추위를 문자 그대로 천하의 사물로 받아들여, 설산을 베어버리고자 한 것이다.”
스승님이 숨을 쉬었다.
새벽에 흘린 숨결은 하얬다.
하얀색이 닿은 하늘엔, 드높은 산봉우리가 솟아나 있었다.
“그 시절엔 자락도 베어내지 못했다만—.”
스승님이 검을 들었다.
“작금은 과연 어떠할련지. 궁금하구나.”
칼이 휘둘렸다.
느릿한 손짓이었다.
스승님의 옷소매는 길어서, 손짓을 따라가려면 한참 휘날려야 했다. 흑색 소매가 허공에서 흔들릴 적에 세상의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멈춰버린 허공에서 스승님의 소맷자락은 자유로이 유영하였다.
“바라여,”
검무劍舞.
“바라여,”
검무劍生.
“아(我)가 바라여,”
검의 무녀가 검의 춤으로 사위었다.
“내 마음은 촛불이니.”
그리고.
“이곳을 태우리라.”
설산이 베였다.
나무를 품지 않고 바위를 드러내지 않아, 그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제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설봉(雪峰)이, 베였다.
눈쌓인 산의 비명은 우레를 닮았다. 메아리치는 비명을 따라 새하얀 피보라가 터졌다. 설산은 봉우리부터 허물어져서 눈의 파도를 일으켰고, 파도는 내리면서 겹겹으로 치달았다. 무너지고 무너졌다. 하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눈보라가 새벽을 덮쳤다.
“…….”
스승님의 숨이 흘렀다.
“겨우 봉우리만 베고 끝났구나. 마음으로 산을 잘랐으나, 잘라내지 못했으니, 심즉살(心卽殺)은 요원함이라. 이것이 본좌의 마지막 경지로고.”
“제자야.”
스승님은 나를 돌아보았다.
하나의 태산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시술을 받겠다.”
8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