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8)
혼잣말의 정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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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장 나를 할아범한테 돌려놓지 못해!?
배후령이 길길이 날뛰었다.
안 그래도 비좁은 자취방. 사람 한 명 지내기에도 심히 비인간적인 장소에 유령까지 날아다니니, 이건 뭐 인권의 사각지대가 따로 없었다. 3미터짜리 대왕 모기가 윙윙거리는 기분이라면 이해하겠는가?
“아, 진짜! 돌려놓고 싶어도 돌려놓을 수가 없다고요!”
-네가 네 스킬로 복사한 거라매. 그럼 취소할 수도 있어야지! 환불 몰라, 환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환불도 안 해줘!
“취소가 안 된다니까!”
나는 어쩌다 배후령이 복사되었는지 해명하였다. 그렇지만 설명을 다 듣고 난 다음에도 유령은 막무가내로 나왔다. 다시 검성한테 보내달라느니 뭐라느니.
-으허헝. 마르쿠스 할아범아! 제자놈아! 이 스승님께서 납치를 당하셨다! 네 하나뿐인 스승이 웬 폐인 새끼한테 납치를 당해버렸어!
심지어 이 유령. 공중에 뒤집어져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못난 제자 같으니. 이게 다 마르쿠스 그놈이 귀한 스승님을 무시하고 멸시해서 벌어진 참사렷다! 내 이럴까봐 평소부터 스승을 하늘처럼 모시라 누누이 일렀거늘.
“저기요···.”
골 때렸다. 이미 생전 처음으로 귀신을 봤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 따윈 없었다. 두려움? 그게 뭔가. 제아무리 무섭게 생긴 유령이래도 이렇게 시끄럽게 굴면 머리부터 아파질걸.
“우리 제발 조용히 좀 삽시다. 예에?”
-살긴 뭘 살어. 난 이미 뒈졌다!
“아, 그럼 조용히 좀 죽으쇼.”
-아니. 이 천하의 개쌍놈을 봤나. 안 그래도 죽어서 서러운 유령한테 한번 더 죽으라고 악담을 날리네. 동네 사람들, 여기 이 새끼 좀 보소! 초면부터 아주 못 하는 말이 없어!
“와.”
나는 입이 벌어졌다. 뭐지? 태어나서 유령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이런 투 머치 토커···. 아니, 투 퍽킹 토커를 본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와서 알아챘다. 술집에서 검성이 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는가 이해한 것이다. 그래.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검성은 끊임없이 웅얼거리긴 했으되 정작 혼잣말의 내용은 단조로웠다.
‘닥쳐라.’
‘시끄럽게 굴지 마라.’
‘너무 시끄럽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내버려둬라.’
혼잣말의 99%가 시끄러우니 닥치라는 것.
옆에서 보면 무슨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계속 옹알옹알거렸는데···.
“그야 계속 중얼거릴 만하지. 이런 귀신이 붙어 있으면···.”
-어? 뭐냐. 방금 나 앞담화 깠어? 너 지금 몇 살이야. 어르신으로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당당하게 앞담화를 까?
“젠장.”
나도 모르게 어깨가 처졌다. 정말 앞날이 깜깜했다.
“평생 검성을 피해 다녀야 할 판국인데. 뭔 스킬을 얻어도 꼭 이런 귀신이 나오냐.”
-응? 할아범을 피해 살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배후령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마르쿠스 할아범만큼 착한 헌터가 어디 있다고. 내 제자이긴 해도 진짜 꼰대거든. 참. 근데 손자 손녀 얘기는 절대로 꺼내지 마라? 걔가 평소엔 참 얌전한데 꼬맹이들 얘기만 나오면 꼭지가 돌아버리더라.
“이미 잘 알고 있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검성이 가진 스킬 있잖아요. 그걸 뭐라고 부르지? 하여간 사람이 얼마나 살인을 저질렀는지 표시 뜨는 거.”
-아. 탐정의 혜안? 존나 쓰레기 스킬이잖아.
배후령이 바로 대꾸했다. 과연. 킬 카운트 스킬의 정식 명칭은 [탐정의 혜안]인가. 유령은 검성의 스킬을 줄줄이 다 꿰고 있는 듯했다.
-그게 뭐? 상대방이 암살자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것 정도밖에 쓸모가 없는데. 게다가 킬수가 많다고 해서 꼭 암살자라는 보장도 없고.
“4091번.”
-음?
“제 머리 위에 떠 있는 킬 카운트요. 4091번이라고요.”
배후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만상을 찌푸린 거다. 어찌 된 노릇인지 생사람보다 귀신이 더 표정이 다채롭군.
-뭐야. 이 녀석. 미친놈인가?
“당신이랑 하루만 더 있으면 진짜 미친놈이 될 것도 같네요. 워낙 시끄러워서.”
-아니···. 너 완전 초보자잖아.
배후령의 얼굴이 조금 진지해졌다.
-초보자 중의 초보자. 보아하니 오러도 터득하지 못한 거 같은데. 그런 놈이 어떻게 4091명을 죽여? 나도 생전에 탑 99층까지 공략하면서 그만큼은 못 죽였겠다.
“왜냐면 4091명을 죽인 게 아니거든요.”
-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설명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러니까 제가 사실 진짜로 사냥한 건 나중에 염제라고 불리게 될 아주 나쁜 놈 한 명뿐인데···.”
내가 염제에게 살해당했다는 것.
천운이 도와서 회귀 스킬을 복사했다는 것.
그냥 그대로 있으면 염제한테 복수할 길이 없어서,
-······.
4000일이 넘게 회귀하기로 결심했다는 것.
결심을 시행하였다는 것.
-···뭐?
가만히 듣고 있던 배후령이 입을 벌렸다.
-4000번 넘게 자살했다고? 걔한테 복수하려고?
“예.”
-······.
배후령은 조용해졌다. 아까 전까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이 굉장히 진중하여서, 2평짜리 쪽방이 뒤흔들릴 정도로 떠들어대던 유령이 정말 맞나 싶었다.
-야.
긴 침묵을 깨고 배후령이 입을 열었다.
“뭡니까?”
-너 이름이 뭐냐.
“김공자인데요.”
배후령이 음, 하고 신음을 흘렸다.
-공자야. 왜 하필 마르쿠스 할아범을 선택했냐.
“네?”
-염병이라는 놈한테 복수를 끝내자마자 왜 할아범의 스킬부터 복사하기로 마음먹었냐고.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나는 떨떠름했다. 질문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 랭킹 1위를 달리는 헌터인걸요. 제일 강한 사람 스킬부터 가져야죠.”
-그래야 최대한 빨리 강해지니까?
“옙.”
-···내가 던지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는 이유는, 어차피 정보가 새어나갈 염려가 없기 때문이겠구먼. 너를 제외하면 아무도 날 인식할 수 없다고 스킬 카드에 적혀 있으니까. 완전 안전빵인 거야. 그치?
“뭐. 당연하죠.”
침묵이 단칸방에 다시 가라앉았다.
-흠.
둥실둥실.
배후령은 내 주위의 허공을 돌아다녔다. 왼쪽으로 가서 내 얼굴을 힐끗거렸고, 오른쪽으로 가서 내 키를 재었다.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말이다. 나는 이게 뭔 해괴망측한 짓인가 싶어서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 보자. 음. 체격은 다듬으면 썩 나쁘지 않겠고. 악바리 근성도 굉장하고. 향상심도 적당히 있으렷다. 제정신 챙겨서 대가리 굴릴 줄도 알고 있으니···. 쓰읍, 과연. 으으음. 이 정도 재목이면···.
배후령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이 귀신이 검성의 스승님인 것 같았다. 사제가 나란히 혼잣말의 장인이었다.
-야, 김공자.
스윽. 배후령이 내 코앞으로 날아와서 말했다.
“예?”
-너 몬스터 잡는 모습 좀 보여줘라.
5.
나는 잡몹을 몇 마리 잡았다.
“이제 됐습니까?”
어차피 쪽방에 틀어박혀서 할 것도 없겠다. 날이 밝자마자 사냥터로 향했다. 사실 검성한테 죽어 1일 전으로 회귀해버렸기에, 오늘 유수하를 한 번 더 잡아야 했다. 여러모로 외출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
-역시···.
배후령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 예상이 맞았어.
“예상이라뇨?”
-음. 살아생전에 나는 검제(劍帝)라고 불렸다.
이른 새벽. 아직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 인적이 드문 사냥터에 배후령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깔렸다.
-내 고향은 여기가 아니야. 너희 입장에선 이세계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어쨌든 내 고향에도 여기와 똑같이 탑이 나타났고, 나는 동향의 어느 헌터보다 빠르게 탑을 정복했다.
“뭔가 싶었더니 자기 자랑이에요?”
-오냐.
배후령이 피식거렸다.
-뭐. 결국 우리 세계에선 100층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지만. 네 카드에도 적혀 있지?
그랬다.
+
[검의 성좌(星座)]
랭크: A+
효과: 이세계 출신. 이세계의 탑을 99층까지 클리어했으나 100층을 눈앞에 두고 좌절. 그 원망이 남아서 성불하지 못한 채 배후령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간섭할 순 없으나, 소유자의 정신에 참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놀라운 실력에 조언을 구하십시오!
※단, 소유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배후령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헌터 마르쿠스 칼렌베리로부터 복사한 스킬입니다.
+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이긴 하지.’
내가 회귀하기 전엔 40층까지 돌파한 염제가 전설로 추앙받았다.
하물며 99층이라니? 눈앞의 귀신은 정말 전인미답의 경지를 밟았던 것이다.
-나 정도 잘나면 그냥 딱 봐도 알아. 이 헌터한테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대박인지 쪽박인지 바로 보이거든. 그래서 김공자 너한테도 몬스터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한 거다.
“아하.”
배후령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저한테도 검술의 재능이 있는가 알아보려 한 겁니까?”
왜. 이런 이야기들이 많지 않은가. 여태껏 자기 재능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절벽에 떨어지거나 고수를 만나서,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각성하게 되는 이야기.
기연(奇緣).
“쯔쯧. 헛수고하셨네요.”
안타깝지만 나한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전 전투에 관한 재능이 하나도 없거든요. 완전 꽝이죠, 꽝. 그래서 죽자 살자 다른 헌터들의 스킬을 복사하려고 애쓰는 거고요. 제가 만약 재능이 있었으면 진즉에 F급 벗어났지. 그렇게 살았겠습니까.”
배후령이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개소리야? 너 재능 있어.
“네?”
-그것도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다.
어라.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이. 농담도. 저 놀리려는 거죠?”
-난 이런 걸로 농담치지 않아.
배후령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너한테 무술의 재능 따윈 없지. 동작도 어설프고. 체격도 어중지간해. 보아하니 오러를 깨닫는 데에도 평범한 방법을 쓰면 한참 걸릴 거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너에겐 아주 희귀한 재능이 하나 있다.
배후령의 눈빛은 진지했다.
-너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
-그냥 없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전혀 없어.
배후령이 턱을 쓰다듬었다.
-아마 4000번 넘게 뒈지면서 저절로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겠지. 이게 내가 예상한 부분이기도 한데. 넌 잘 모르겠지만, 몬스터한테 덤빌 때 완전 무모해. 보통은 죽거나 다칠까봐 아주 조금이라도 사리거든? 근데, 넌 그게 없어.
“어. 그런 것도 재능입니까?”
-당연하지.
즉답이었다.
-선천적인 것만이 재능이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재능을 하나씩 일깨울 수 있어. 그중에서도 제일 만들기 어려운 재능이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거야. 근데, 그 어려운 걸 너는 이미 터득했어.
“······.”
-굉장한 거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평생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자신마저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단지 염제한테 벌레처럼 취급당한 것이 분해서··· 너무 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4000번의 죽음을 뛰어넘었을 뿐.
죽는다는 거.
그것이 나의 재능이라니.
-하나만 묻자.
“···뭡니까?”
-마르쿠스 할아범한테 죽었다며. 그 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
나는 지난번 죽음에서 겪은 일을 떠올렸다. 아직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일. 그렇기에 생생하게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밤하늘과 달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던 일격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였다.
-크하하하하하!
배후령이 고개를 높이 치켜세우고 웃었다. 웃음을 터트렸다. 광소(狂笑)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귀신의 웃음소리는 장대했고, 아직 아무도 없는 새벽의 평야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한참이 지나서 배후령은 웃음을 멈추었다.
-재밌어.
배후령이 눈을 반짝였다.
-너는 스킬을 강탈하는 게 아니라 복사할 뿐이지. 즉, 마르쿠스 할아범한테는 [또 다른 나]가 배후령으로 붙어 있을 거야. 할아범이랑 너. 둘 중에 누가 더 헌터로 대성할 것인가. 조금 궁금해졌다.
“······.”
-내가 도와주마.
검의 성좌. 일찍이 탑을 99층까지 공략하여 검제라 불렸다는 귀신, 배후령은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르쿠스 할아범한테 꿀리지 않을 정도로. 아니, 할아범보다 훨씬 강해지도록!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한번 탑을 정복해보자!
나의 파트너가 생긴 순간이었다.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