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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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원에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이냐!”
“사, 살았다…?”
“여기가 도원경인가…?”
마교의 교인들. 정파의 무인들.
저들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이다. 강시에 물린 기억이 있을지는 몰라도, 본인이 강시로 변해버린 기억은 없겠지. 그들 입장에선 눈을 한번 깜빡이니 수 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
3년의 세월을 온전히 지새운 사람도 있었다.
스승님은, 자신의 두 눈을 믿지 못하는 낯빛으로 멍하니 설원을 바라보았다.
“제자야….”
“예. 스승님.”
“너는 새외(墓外)가 아니라 세외(世外)에서 온 것이더냐…? 이건, 이런 건, 한낱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주술이 절대 아니다. 허무맹랑한 전설에나 나오는 도술이다. 아니면, 본좌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서 무릉도원에 와버린 것인고…?”
“아니요.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들도 스승님처럼 더는 무공을 쓰지 못해요. 생전에 비하면 무척 약해졌지요. 하지만, 여긴 무릉도원이 아니고, 저 사람들은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
“가서 확인해보세요.”
“…….”
“어서요. 스승님.”
사박.
스승님이 걸었다. 사박, 사박… 가벼운 발소리. 그것은 단전이 폐해진 어느 강호인의 발소리였다. 내공을 잃어버린 무인의 발소리였다. 3년 동안 투병한 흔적 밖에 남지 않은 여인의 발소리였다.
천마.
나의 스승.
당신은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교인들에게 다가갔다. 교인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머, 먼저 작금의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침착하게 있어라! 정찰을 보내어서…!”
“혈귀대주(血鬼隊主).”
멈칫.
교인들이 움찔거렸다. 열두어 명에 이르는 마교의 무리가 침묵했다. 그리고 생경한 눈빛으로 스승님을, 자신들의 교주를 쳐다보았다.
“천마이시여…?”
스승님의 숨결이 좀 더 하얗게 진해졌다.
“혈귀대주.”
“…….”
“정말 혈귀대주로구나.”
침묵은 전염되었다. 처음엔 열 명 남짓한 침묵에 불과했다. 하지만 열 명이 입을 다물자 주변의 수십 명이 입을 닫았고, 수십 명을 둘러싼 수백 명이 입을 다물었다.
고요한 설원.
“월영마군(月影魔君)아….”
“예.”
“귀혼염마(鬼魂炎魔)야.”
“네. 교주님.”
“검마(劍魔)야….”
“하명하십시오.”
스승님이 하나씩 교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호명된 교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만 무릎을 꿇었다. 바사삭. 바삭. 무릎에 밟히면서 눈밭이 소리를 냈다.
“본좌가 너희를 잃어버렸거늘….”
스승님이 손을 뻗었다.
“내, 너희를 잃고 또 잃었거늘.”
스승님은 교인의 뺨을 더듬었다. 어루만졌다.
“내 아이들아….”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 교주의 떨림을 보고 마인들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않는 것, 그것이 저들의 충성인 듯했다. 일천 명에 이르는 교인들 모두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충격에 감싸인 것은 물론 마인들만이 아니었다.
“…어허.”
늙은 승려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소승은 필시 동굴에 묏자리를 깔고 강을 건넜을 터. 눈을 감으니 피안도 없고 뫼도 없고 다만 설원이니….”
“때, 땡중아!”
“…그리고 마구니도 한 마리 섞여 있다. 어허. 눈을 감아서도 저 중생과 노닐어야 할 인연이랴. 불(佛)께서는 소승에게 무얼 바라시는 것인가.”
“재수 없는 헛소리만 지껄이는 걸 보니 진짜 땡중이구만!”
무림맹주는 달려가서 노승을 와락 껴안았다. 저 노승이 누구인지 짐작됐다. 스승님과 무림맹주를 제외하면 제일 오랫동안 버텼다는 자. 소림사의 방장 스님일 것이다.
“네놈이 살아서 돌아왔구나! 이 친구가 살아서 돌아왔어!”
“소승은 그대의 친구가 아닐세.”
“아아! 틀림없이 옥황상제께서 기적을 내려주신 것이다!”
“견초식음(犬草食音)이라.”
개풀 뜯어 먹고 있다는 말이었다.
“소승의 귀를 더럽히지 말거라, 중생아. 애당초 너의 꼬임에 넘어가서 사마외도들과 싸우는 게 아니었다. 조용히 절간에서 입적하는 편이 나았다.”
“아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싹 식어버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내가 아는 땡중이 맞다! 죽빵을 갈겨주고 싶군!”
마교의 강호인들은 조용했고, 정파의 무림인들은 왁자지껄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재회를 나누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
먼저 고개를 돌려서 나를 쳐다본 사람은 스승님이었다. 스승님과 나 사이에 눈길이 오갔다. 묵색의 눈동자. 눈길에는 마음이 얹혔다. 나의 마음이 탁본되어, 그녀의 심장에 새겨지고 있었다.
“……본좌는.”
스승님이 입술을 열었다.
입술을 열어 무림맹주를 향해 말했다.
“본좌는, 마교주 소백향.”
정파의 동료들과 소회를 나누던 무림맹주가 멈칫했다. 무림맹주는 품에서 동료들을 떨어트리고 멀찍이 스승님을 돌아보았다. 스승님은 포권을 취했다.
“천마다.”
“오늘 이것이, 눈 먼 자의 하룻밤 미몽이어도 좋다.”
한낮이었다.
“내가 다만 몽유(夢遊)하는 병자여도 좋다.”
설원의 눈은 태양에 녹지 않아서 만년설인 것이 아니라, 녹고 녹아도 끊임없이 새로 내려 덮이어서 만년설이었다.
“마도천하가 한낱 잠결에 흘러간 꿈결이어도 좋다. 삶은 본래 같은 질병을 앓기로 한 사람들의 것이고, 세상은 본래 같은 꿈을 꾸기로 한 사람들의 것이다.”
작렬하는 햇빛 아래에서 계속해서 하얀색이길 바라는 인간은, 그래서 하양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끝없이 세상에 하양을 흩뿌릴 것. 끝없이 하양으로 조각나서, 부서지고, 흩뿌려질 것을 각오해야 했다.
“나는 아직 내가 앓고자 한 질병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아직 내가 꾸기로 한 꿈의 온도를 잃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아직 어떠한 사람도 놓지 않았으매, 어떠한 세상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바라야! 무공의 이름이 아니라 질병의 이름이 내 자리를 증거하고, 내공의 공력이 아니라 꿈의 온도가 나를 증명하노라.”
부서지는 눈발의 소리.
“나는 바로 이 자리에 있고, 오직 이 자리에 머무는 동안에만 나일 것이니.”
녹아도 다시 내리는 소리로.
“내가 곧 본좌(本座)다.”
스승님은 선전포고문을 읊조렸다.
“본좌는 990번째 비무를 청하는 바다.”
사위가 적막했다.
떠들썩했던 정파무림은 어느덧 조용해졌다.
그들이 무림의 마지막 소협이었고 대협이었다. 마지막인 줄 알고 대전을 벌이러 온 자들이었다.
감히 어찌 경거망동하겠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르는 말이 유언이라면, 지금 그들은 정파무림의 유언을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백도들은 정파의 유언을 대리할 자를 바라보았다.
“무림맹주. 남궁세가(南宮世家).”
노인이 포권을 취했다.
“태상가주(太上家主). 남궁운. 부월선이다.”
일천의 마도와 일천의 백도가 마주보았다.
“너희 마교는 민초의 비명을 교리로 삼았다. 비명이 복수가 되고, 복수는 혈겁(血却)이 되어 천하를 붉게 염하였다. 피에 굴주린 복수귀들아! 천지가 다 붉어졌거늘 너희는 아직도 약자인 양 행세하는구나.”
무림에서 맹주로 오른 자는, 일신의 목소리로 마도와 백도 사이에 경계선을 놓았다.
“너희는 하염없이 울면서 천마의 옷자락을 잡는다. 자신들을 대신해달라, 대신 살풀이를 해달라 애원한다. 옷소매를 붙잡아 늘어지는 동안 너희는 약한 민초이고 슬픈 백성이라는 말이렷다!”
늙은 맹주가 포효했다.
“갈(渴)! 너희도 마땅히 발이 있고 손이 있거늘 언제까지 과거의 삿된 망령에 안주할 것인가! 화엄(華嚴)이 말하기를, 한 그루의 나무 조차 열매를 맺으려거든 꽃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너희는 어떠한가. 너희의 아픔으로 장사하는 화원(花圍)의 꽃장수로다!”
그 일갈에 마교의 무리가 으르렁거렸다.
교인들은 칼자루를 꾹 쥐었다. 독기가 오르고 살기가 피었다. 그에 대항해서 정파의 무인들도 기세를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어느 쪽도 내공이 없을 텐데, 설원의 공기는 살벌해졌다.
“호(好).”
스승님이 입꼬리를 올렸다.
“비무를 받아들이겠다는 말로 알아듣지.”
“아무렴.”
“생결인고, 생사결인고?”
“생사결이다.”
“받아들이마.”
두 무인이 포권을 풀었다.
스르릉!
그와 동시에 일천의 마도와 일천의 백도가 칼을 뽑았다. 한낮이었다. 물경 이천에 달하는 칼날들은, 태양을 머금어 환히 빛났다.
“마천의 아이들이여!”
스승님은 주먹을 쥐었다.
“오늘의 일을 그저 미몽이요 환시라 여겨도 좋다!”
“바라야!”
일천의 교인이 일제히 외쳤다.
“우리를 헛된 꿈이라 불러도 좋다!”
“바라야!”
“그렇다면 꿈처럼 살아야지 않겠느냐!”
“아가바라야!”
“우리의 마음이 촛불이니!”
“이곳을 태우리라!”
“마도천하(魔道天下)!”
“민초독존(民草獨存)!”
스승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죽여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천의 교인들이 짐승처럼 우짖으며 달렸다. 신묘한 보법(步法)이 없었다. 기묘한 경신술도 없었다. 그들은 짐승과 같이 달려들어서 짐승과 같이 물어뜯었다. 그것이 그들의 교리에 따른 성전이었다.
“위군자들아! 나는 본교 사마군의 일위, 월영마군이다! 내 칼사위를 받으라!”
마교 시영대魔敎 屍影隊.
대주隊主.
월영마군月影魔君.
“내가 무당의 장문인 현공진인이다! 상대로 부족함이 없구나!”
무당파武當派.
장문인掌門人.
현공진인玄空眞人.
두 사람이 별호를 외치며 부딪혔다. 그들이 예의를 차린 건 통성명뿐. 싸움은 야만스럽기 그지없었다.
“흐랴압!!”
월영마군은 칼자루로 현공진인의 얼굴을 찍었다. 퍽! 이빨. 핏물. 흰 파편이 튀어나가고 붉은 액이 튀었다.
“우오오오!”
현공진인은 부러진 이빨을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손끝을 세워 월영마군의 눈을 찔렀다. 푹! 터지는 소리를, “하하하핫!” 월영마군은 웃음소리로 뒤덮었다. 도인의 우짖음과 마인의 웃음이 뒤얽혀서 흘렀다.
또 다른 흑백(黑白)이 그런 둘의 모습을 파묻었다.
“사마군. 일위. 귀혼염마. 당신의 목을 거두겠습니다.”
마교 위령대魔敎 慰靈隊.
대주隊主.
귀혼염마鬼魂炎魔.
“나무아미타불. 조명이라 하네.”
소림사少林寺.
방장승方丈僧.
조명선사朝鳴禪師.
“사마군 일위의 미덕으로 방장승께 세 수를 양보해드리지요.”
“불자를 공경하는 그 마음 잊지 마시게!”
귀혼염마의 말에 조명선사는 곧바로 덤벼들었다. 주먹에 염주를 감고 휘둘렀다. 세 수를 양보해준다던 귀혼염마는 곧바로 몸을 굽혔다가 펴면서 조명선사의 배에 박치기를 먹였다. “쿠헉!” 신음을 터뜨린 조명선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세 수를 양보해준다더니?”
“그걸 믿었습니까?”
“믿는 듯 보였는가?”
“예.” 뚝, 피 흐르는 소리가 사이에 끼었다. “그리 보였습니다.”
귀혼염마가 털퍼덕 무릎을 꿇었다. 기세 좋게 박치기를 날렸던 그의 코뼈가 부러져 있었다. 박치기를 얻어맞는 그 순간에 조명선사는 예상했다는 것처럼 무릎으로 올려찍었던 것이다. 터져나온 코피로 온 얼굴이 얼룩진 귀혼염마를 향해 조명선사는 흐뭇하니 수염을 쓰다듬었다.
“소승의 연기력이 녹슬지 않았구나.”
“이런 개같은 돌중 같으니……”
“남은 두 수나 더 받으시게!”
귀혼염마의 양 귀를 붙잡고 조명선사가 거듭 무릎찍기를 날리려 했다. 귀혼염마는 거꾸로 그 무릎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찍었다. 쿵……! 두개골이 연골을 부수는 소리, “크허헉!” 조명선사가 무릎을 붙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크하하하하! 이놈들, 이것들! 내공을 못 쓰니 아주 시정잡배들 아니냐! 하기사 이게 본 실력이지! 호(好)야! 백도 새끼들의 민얼굴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니 오늘이 참으로 길일이다!”
마교 척살대魔敎 刺殺隊.
대주隊主.
검마劍魔.
“……천박하디, 천박하군.”
화산파華山派.
장로長老.
난화만검 亂花萬劍.
두 검호가 칼을 맞부딪혔다. 깡! 한 차례 칼을 부딪히자마자, “컥!” “우극!” 양쪽 모두 동시에 비명을 지르면서 손아귀를 부여잡았다. 칼과 칼이 맞부딪혀 생겨난 충격을 어느 쪽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칼은 놓지 않았다.
검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씹…… 쫀심 세우지 말고 놓으시지?”
난화만검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
“그거야 본인이 할 말이고……”
시선을 마주친 둘은 다시금 칼을 부딪혔다. 깡! 숨죽인 비명, 깡!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 깡! 덜덜 떨리는 손과 어깨. 기어코 둘 모두 찢어진 손아귀에서 피가 흘렀다. 악문 입술에서 흐른 피와 손아귀에서 흐른 피가 뒤섞여 흘렀다.
그러나 역시, 둘 중 어느 쪽도 칼은 놓지 않았다.
하얀 도복이 휘날렸다. 검은 도포가 흔들렸다. 햇빛이 내리비치었고, 그늘이 졌다. 해와 그림자 사이로 정파와 마교는 격돌하였다. 피가 터졌다.
“마도천하! 민초독존!”
“으아아아아! 죽어라! 죽어!”
“모용의 잡놈들아, 당장 나와라!”
무채색 밖에 안 남은 세계.
그곳에 생생히 흐르는 것은 화려한 무공이 아니었다.
오로지 인간의 붉은 피였다.
“흐으, 하하…. 으하하.”
그 속에서 유독 붉은 웃음이 터졌다.
“으하하하! 핫! 하, 아하하하핫!”
그야말로 광소(狂笑)였다.
“백도놈들이 많기도 많구나!”
스승님이 외치고 있었다.
“좋구나. 덤비거라. 어디 검을 나눠보자꾸나!”
정파의 무인들 사이를 시커먼 그늘이 날뛰었다. 해가 수십배의 속도로 뜨고 지는 것 같았다. 내공 하나 없이 3년의 투병을 앓아온 여인, 그저 그 뿐인 여인이 보이는 몸동작은, 그러나 똑같이 무공을 쓰지 못하는 무인들 속에서 단연 돋보였다.
“가당찮구나!”
스승님이 웃었다.
“소림의 방장아. 그딴 수작으로 본좌를 막을 성싶더냐. 무당의 말코도사야. 네놈이 감히 본교의 업(業)을 감당할 것 같더냐.”
그것은 내게 낯익은 말이었고,
“천하에 비탄이 흘러넘쳐 숭산이 잠기었다! 천지에 원한이 타올라 무당산을 불태우노라! 마교가 무림의 하늘이요, 본좌는 마교의 하늘이다! 너희가 천외천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스승님 자신에겐 낯설 말이었다.
“너희로는 안 된다! 백도의 졸개들아!”
스승님이 우짖었다.
“남궁운!”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 살과 살이 충돌하는 소리를 뚫고 스승님이 외쳤다.
“남궁운은 어디 있느냐!”
아하하, 소리내어 웃으면서 스승님은,
“남궁가의 태상가주를 불러 오거라! 무림맹주를 대령토록 하여라! 제아무리 무림에 숲이 울창하고 하늘이 광활하여도, 이 천상천하에 본좌의 검을 받아낼 일재는 한 명이나니! 사마군아! 당장 남궁운을 본좌의 앞에 끌고 오거라!”
웃음소리는, 붉고도 황홀했다.
“흠.”
점점 더 붉어지는 세상으로 노인이 한 발자국, 걸었다.
“대전을 개시한 첫날이 떠오르는구먼.”
무림맹주는 웃통을 벗고 있었다. 추운 겨울. 내공도 없어 추위가 사무칠 텐데, 무림맹주는 오히려 그것을 무장으로 삼았다. 뼈처럼 메마른 근육이 단단히도 굳어졌다.
“그날 결판을 내지 못해서 대전이 둘째 날까지 이어졌다. 둘째 날에도 마무리 짓지 못하여 셋째 날로 유보됐어. 결국은 첫날에 단추를 잘못 낀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부터 전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후우,
무림맹주가 깊이 숨을 마셨다.
그리고 자세를 취하여 손을 까닥였다.
“덤벼라. 마두야. 오늘, 천운이 나와 함께한다.”
무림맹 武林盟.
맹주盟主.
부월선洋鉞仙.
“천운이라. 좋구나.”
사박,
스승님이 눈을 밟았다.
“오늘의 천운은 다만 너의 명운이 될 것이다.”
마교魔敎.
교주敎主.
천마天魔.
“…….”
“…….”
한호흡,
두 사람은 눈길로 노려보았고.
반호흡,
두 사람은 걸음으로 가까워 졌다.
호흡이 엇갈렸을 때,
두 사람은 손짓으로 부딪혔다.
“——.”
백白,
눈발이 난자했으며.
“——.”
흑黑,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홍紅.
피가 튀었다.
8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