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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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눈이 내리노라.”
스승님의 발은 가벼웠다.
“벌써 비무가 시작된 지 이틀이 흘러버린 것이다.”
빙판에 미끄러지듯 가볍게, 가볍게, 스승님은 설원을 밟았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세상.
스승님의 검은색 옷자락은 백지 위의 붓질과 같이 흘렀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겠냐.
그 붓질을 뒤쫓아 가는 붓질이 또한 있었다.
스승님의 붓질보다 더 억세고, 더 강하며, 더 과격한 붓질이었다. 먹물을 가득 담아서 찍어누른 붓질이었다.
-경공술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배후령은 묵직한 걸음으로, 빙판을 깨부수며, 눈길을 불도저처럼 밀어젖히며, 달려들었다.
“본좌는 영원히 도망 다닐 자신이 있노라.”
-그래도 끝이 오겠지.
“모르느냐. 이 세상은 끝이 없는 설원이 되었다. 갈 곳이 없을지언정, 도망칠 곳은 무한하구나.”
-내버려 두지 않겠다.
배후령이 눈밭을 탓, 박차서 뛰었다.
-만일 정말로 전성기의 너라면 그야 영원히 도망칠 수도 있지. 하지만 이것은 지금 벌어지는 비무다. 네 목숨에 남은 시간이라 해봤자, 이제 한 시진도 안 남았다. 모래시계가 떨어지는군. 그래도 도망칠 작정이냐?
“아하. 치사하구나.”
-진실은 치사한 법이지.
배후령이 검을 휘두른다.
“그래, 인정하마.”
스승님이 목을 돌려 가볍게 피한다.
“본좌의 목숨은 얼마 안 남았다. 계속해서 도망칠 수는 없노라.”
-언젠가는 승부를 봐야 될걸.
“그 언젠가가 지금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으렷다.”
-말이 통하는구만.
“그렇다면.”
스승님이 칼자루를 잡는다.
“본좌의 최대 전력을 보여주마.”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일식第一式.
아사유검 飯死流劍.
“—대저 굶주림이란, 자신의 아이와 옆집의 아이를 바꾸어서, 잡아먹는 부모의 손짓이다.”
칼이 겨울바람을 가르며 비명을 지른다.
“옆집 아이의 몸을 육포로 떠서 눈밭에 파묻은, 어느 어른의 이야기를 들었느냐. 그 마을의 소문을 들어보았더냐? 겨울에 그 마을의 눈길을 삽으로 파보면, 어린 인육들이 삽 끝마다 걸린다는 마을의 이야기를 들었느냐.”
-슬프구만.
차앙,
스승님의 칼날을 배후령이 검으로 막는다.
-흉년이 들었나 보군.
“그렇다. 흉년은 언제라도 돌아오는 돌림병과 같다.”
-하지만 우연한 일이지.
배후령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검을 휘두른다.
-우연히 풍년이 들고 우연히 흉년이 진다. 삼라만상에 우연이 아닌 일이 없다. 교단의 교주야. 네가 우연한 비극에 슬피 곡한다면, 같은 이치로, 우연한 기쁨에 웃고 행복해져야 한다.
“…….”
-한 사람의 슬픔이 가지는 깊이는, 그 사람의 행복이 거니는 높이와 분명히 동일한 것이다.
치잉,
두 자루의 칼이 교차한다.
붉은 매화가 떨어진다.
-하여. 나는 행복한 가을의 수확을 노래하마.
눈발이 낙엽처럼 진다.
-길을 거닐면서 지평선을 본 날이 있다. 지평선까지 나락의 황금빛 바다가 펼쳐진 날이었다. 자기 키만큼이나 높은 벼들 사이로, 자그마한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지. 웃음소리가 벼나락 틈새로 들렸다가, 감추어졌다가, 들려왔다.
가을.
바람이 분다.
산야는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지평선은 나락으로 노랗게 물든다.
-눈밭에 파묻힌 아이의 인육을 얘기했냐. 나는 나락 아래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얘기하마.
붉은 단풍들이 무수히 내리는 세상에서.
배후령이 검을 휘두른다.
-어느 쪽이건 어느 우연한 날의 우연한 일이다. 내가 그중 칼에 담아야 할 것이 있다면, 나락의 웃음소리이고, 내가 언젠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떠올려야 하는 광경이 있다면, 역시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던 풍경이야. 빤한 선택이지.
“정말,”
스승님이 단풍잎을 벤다.
“참으로 복에 겨운 소리구나!”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이식第二式.
갈사비검渴死痛劍.
“둘 다 우연한 일이라 하였느냐. 그러겠지. 하지만 행복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굶주림의 고통, 목마름의 고통이 사람을 죽인다! 죽으면 영영 끝이다. 끝나버리는 것이다.”
태양이 내리 쬔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실 수 없어 죽어 나간 백성을 노래하마!”
여름.
열풍(熱風)이 세상을 뒤덮는다.
산천초목이 메마르다.
잡초가 누렇게 변한다. 열매가 쪼그라들고, 딱정벌레의 움직임이 굼떠지며, 강변에는 말라죽은 물고기 시체가 수백, 수천, 수만, 널린다. 팔딱. 물고기의 동그란 눈알에는 물기가 없다.
-아.
스승님의 칼이 끈적해진다.
배후령이 받아쳐도, 스승님은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달라붙는다. 초근접전. 서로 내쉬는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가 가깝다. 차앙! 창! 검과 검이 빠르게 뒤섞이며 눈이 어지러워진다.
-여름에 멱을 감으면, 존나 시원하지.
배후령은 스승님의 쾌검을 다 맞받아쳤다.
-너는 공자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
“…뭐라?”
-미안. 말이 조금 심했군. 잘못 가르친다기보다, 너무 일찍 가르치고 있다.
배후령의 검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세상의 아픔을 노래하는 건 좋아. 남들 고통에 눈 돌리는 것도 좋지. 하지만 그런 짓거리를 영원히 이어나갈 순 없어.
“어째서냐.”
-그냥, 지쳐버리거든.
차앙!
붉은 상사화 꽃잎이 저문다.
-공자 이놈은 아직 세상의 기쁜 맛을 덜 봤어.
어느덧 공수가 바뀐다.
-산해진미를 맛보아야지. 맛보아야, 평생 이것을 먹지 못할 사람들을 더 슬퍼할 수 있지. 여름에 멱을 감아야지. 감아봐야, 물이 없어 시드는 사람들을 위해 울어줄 수 있지. 사람의 마음은 촛불의 심지다. 타오르기만 하면, 언젠가는 다 타버린다.
-알고 있냐? 교주야. 이놈은 아직 누구를 사랑해본 적도 없어. 웃기잖냐! 연애를 해본 적도 없다고!
폭포와 같이 쏟아져 내리는 검격들.
-그런데 뭐 세상의 모든 아픔이랑 슬픔은 다 짊어진 것처럼 벌써 행세야. 행세는! 하. 꿈도 꾸지 말라지. 너희 교단의 가르침은 일러도 너무 이르다!
비처럼 쏟아진다.
-난 이놈한테 기뻐하는 방법들을 가르쳐줄 거다.
비가 쏟아진다.
-한 점의 위선 없이 웃는 법을 가르쳐줄 거다. 다른 사람에게 어깨를 걸치는 법을 가르쳐줄 거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서, 어쩔 수 없을 정도는 되어야지. 그래야 비로소 끝없이 슬퍼할 수도 있지!
“네가….”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린다. 강물이 빗물로 젖는다. 물고기들의 시체가 강물에 떠밀려 사라진다. 나팔꽃이 보라색 혀를 벌려, 빗방울을 마신다.
개구리들이 우는 소리.
“네가 본좌의 제자에게 사부 노릇을 할 작정이냐!”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삼식第三式.
익사만검潮死滿劍.
-그래!
“감히!”
그치지 않는 빗줄기처럼.
검격이 내리치고 또 내리친다.
“어디서 본좌의 유일한 적전제자를 탐내느냐!”
한여름.
장마가 범람한다.
강물에, 붉은 장미꽃 수만 송이가 흐른다.
-웃기고 있네! 원래 얘 스승 자리는 내가 차지할 계획이었다!
저수지가 무너져서 마을이 물에 잠긴다. 산자락까지 수면이 차오른다. 차오른 수면 위를, 스승님과 배후령이 박찬다. 참방. 첨벙! 두 사람의 발걸음이 닿은 수면에서 물결이 핀다.
-얘한테 오크 모가지 따는 법을 가르쳐준 것도 나다! 오러를 운용하는 법을 깨우쳐준 사람도 나다! 무술에 재능이라곤 더럽게 없는 새끼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쓸 만하게 키워 놨더니만! 어디서 사교(邪敎)의 두목이 끼어들어!
“뭣이, 사교?!”
-오냐! 그럼 마교가 사교지 뭐냐!
두 사람은 수면 위를 미끄러진다.
쫓긴다.
걸음에 물결이 참방, 핀다.
쫓는다.
발끝에 장미의 꽃잎이 살며시, 밟힌다.
두 사람의 그림자는 물결과 꽃잎 위로 드리운다.
-검을 휘두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비가 내린 날, 물 냄새.
꽃향기가 자욱하다.
-마천신공은 공자한테 일러! 고통에 의해, 고통을, 고통으로 휘두르는 검이라니! 그게 뭐냐! 너무 마공(魔功)이잖냐! 꽃내음을 맡는 즐거움을, 여름비를 맨몸으로 맞는 기쁨을 노래해도 모자랄 판이야!
“공자는! 본좌의 제자는! 본교의 차대 교주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아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사교도라는 거다! 이단 교주야!
수억 송이 장미.
어느새 범람한 강물은 보이지 않는다. 수면이 안 보인다. 장미꽃, 꽃잎들이, 수면을 다 덮어버린 것이다.
세상이 꽃밭으로 붉어진다.
“■■■■, ■■■. ■■■■.”
-■■■, ■■, ■■■■. ■■■!
봄.
꽃이 흐른다.
붉은 모란꽃, 흐드러져 하늘에 날린다.
“——목단난검(牧丹亂劍)의 여섯 번째 초식인 난분난격(亂約亂劍)으로 네 경추혈을 도려내마.”
차앙!
꽃잎 두 점, 칼날에 잘려 허물어지다.
-설중란보(雪中M步)로 두 걸음 피하지.
보인다.
“…마천신공의 일곱 번째 초식인 장사타검(杖死打劍)으로 날려주겠노라.”
들린다.
-해화만격(海花滿擊)의 네 번째 초식인 추야낙월격(秋夜落月擊)으로 맞선다.
두 사람의 검이 보인다.
두 사람이 꾸욱, 밟은, 모란꽃이 보인다.
밟혀서 향이 터진 빨간 모란이다.
“…….”
보이기에 비로소 알 수 있다.
스승님은.
마교의 교주 천마는 지고 있다.
“……마천신공의 여덟 번째 초식인 소사연검(燒死連劍)으로 저항하마.”
모란 흐드러진 하늘 아래에서, 스승님은 피를 흘린다.
피투성이다.
스승님과 배후령의 실력 차이는 명백. 아무리 장기전을 노려서 도망쳤다 해도 배후령의 추격을 떨치는 건 불가하다. 불가능한 것을 시도한 대가로 스승님은 팔과 다리, 어깨에서, 붉은 피를 흘린다.
-음.
배후령이 자세를 취한다.
-낙일낙화검(落旧落花劍)의 첫 번째 초식인 월야래검(月夜來劍)으로 쳐낸다.
스승님의 숨소리가 조금, 가늘어진다.
내공이 바닥난다.
진기를 써서 동귀어진을 노리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본좌는…….”
스승님의 입술이 열린다.
“본래 마천신공의 마지막 검로를 완성하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다. 본좌의 심중에 어릴 때부터 뿌리 박힌 죽음은, 동사(凍死)다. 어미에게 버려져 설원에 홀로 남아 얼어죽는 것. 그것이 바로 본좌가 죽음이라 여긴 결말이었다.”
스승님은 검을 높이 들어 올린다.
“허나.”
칼끝이 정오의 시침처럼 하늘 한복판을 가리킨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멸망하고 나니 마천신공의 아홉 번째 검을 완성할 수 있더구나.”
“…….”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推我獨尊.
“하늘 위를 올려보아도, 하늘 아래를 거닐어도,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니. 바라야. 바라야. 아가바라야. 세상이 겨울이어서 하나의 촛불이 사윈다. 내가 홀로 노래함은 천하의 노래이며, 나의 죽음은 천지의 죽음이로다. 하얗고, 하얘져, 또 하얗구나.”
검이,
하늘을 가른다.
“나의 마천은 설원에 목 놓아 유언한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구식第九式.
독존고검獨存孤劍.
“——.”
겨울이,
봄을 자른다.
꽃잎의 붉은 하늘이 갈라진다. 갈라진 틈새. 그곳에서 하얀 겨울이 휘몰아친다. 휘몰아쳐서 내린다. 꽃잎은 눈이 되어, 수억 송이의 모란은 수억 송이의 눈발이 되어, 세상을 얼린다.
고독한 검.
천마의 고독한 죽음을 노래하는 일격.
-과연.
자신에게 덮쳐오는 겨울의 격류를, 배후령은 가만히 올려본다.
-고독사(孤獨死). 그것이 마교의 교주가 택한 죽음의 방식인가. 그래. 인정하지. 멸망한 세계의 마지막 무인으로서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일격이야.
배후령의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걸려 있다.
-하지만 고독에 관해서는 내가 너보다 잘 안다.
배후령이 칼자루를 쥔다.
-너는 홀로 남은 세상에서 얼마를 버텼냐. 3년? 2년? 아니지. 단 하루도 버틴 적 없어. 왜냐면 네 곁엔 무림맹주라는 인간이 항상 있었으니까. 무림맹주가 죽으면 넌 정신을 잃고 실성해버렸지.
칼끝이 움직인다.
-미안한데.
그리고.
-나는 혼자서 130년을 버텼다.
무공武功.
무형식無形式.
일검ー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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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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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冬, 봄, 여름, 가을,
가을秋, 겨울, 봄, 여름,
여름夏, 가을, 겨울, 봄,
봄春, 여름, 가을 겨울,
매화와 모란과 장미와 상사화가,
상사화와 매화와 모란과 장미가,
꽃잎이, 꽃잎으로, 꽃잎, 꽃잎이어서,
붉고, 붉으며, 붉디, 붉어서,
겨울이,
붉어져서,
다시 겨울이,
겨울이,
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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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빠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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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숨을 되찾았다.
“—-읏!!”
보이지 않았다.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방금 일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아, 웃, 으읏…! 하아, 아….”
하지만.
검을 이해하는 것보다 지금은 조금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스승, 님.”
“…….”
“스승님, 괜찮으세요…? 몸, 괜찮으세요?”
스승님은 겨울 하늘을 말없이 올려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두근. 내 심장이 뛰었다. 나는 스승님의 손을 더듬었다. 몇번이나 더듬어서 스승님의 맥을 짚었다.
뛰고 있다.
살아있다.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스승님.”
“…….”
스승님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라고 스승님은 말했다.
“그러했구나.”
그러했구나, 라고 말하며 스승님은 내 눈을 바라봤다.
“제자야.”
묵색의 눈동자.
“나의 제자야. 너는, 처음부터 본좌를 도와줄 생각밖에 없었구나.”
“새외에서 본좌의 명성을 흠모하여 찾아왔다더니…. 거짓말이로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왜 진즉 알지 못했을꼬. 나의 제자는, 명성에 혹하여 세상을 건너올 아해가 아닐 것인데……”
목소리.
스승님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고맙구나.”
“…….”
“제자야. 본좌와 만나서 행복했더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본좌는 너에게 한 잎의 꽃으로 기억될 수 있겠느냐.”
“예 스승님.”
“무슨 꽃일련지 알고 싶구나.”
“모란으로……”
나는 스승님의 몸을 안았다.
“붉은 모란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스승님.”
“아하.”
스승님은 미소를 지었다.
“예쁘구나.”
스승님이 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예쁘구나……”
그리고.
스승님은 남은 한손으로,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막 태어난 아기 새가 날개짓하는 듯 가날프고 가벼운 손짓이었다.
“나의 제자……”
소리가 없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설산(雪山)이 잘렸다.
두 조각으로 갈라진 설산은, 본래부터 그랬다는 것처럼, 그곳에 고요히 있었다.
스승님은 하얀 숨을 쉬었다.
하얀 꿈을 꾸시려는 것일 거다.
“스승님……”
나는 스승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멈추어버린 숨소리에. 시간에. 눈의 향기를 품고 태어났던 사람에게.
“겨울이 잘렸어요. 스승님……, 겨울이 잘렸어요.”
그날.
한 세상의 겨울이 베였다.
8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