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10
Book 2 Chapter 5
클린트 경매를 참가하기로 주상혁.
그는 다음 날 점심 침대에 누워 있었다.
베이칼의 정보를 추가로 습득하셨습니다.
던전 한의학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 이런 방식이란 건가?”
클린트 경매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경매가 바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지훈에게 듣기로는 아직 한 달 남짓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첫 참가자를 받기 시작하는 것조차 보름 이후부터였다.
주상혁이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가능한 선에서 레벨을 올려 두는 일뿐이었다.
광주에서 획득한 일지를 읽고 있던 주상혁이 한숨과 함께 책을 덮었다.
Lv.3 던전 한의학 [passive].
주상혁이 스테이터스에서 3레벨까지 오른 던전 한의학을 보고는 스테이터스 창을 종료했다.
“거의 차이가 없네.”
하긴 레벨1 때 이미 주상혁이 느끼기에도 상당한 성능을 자랑하던 던전 한의학이 레벨 조금 올랐다고 큰 변화를 일으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긴 했다.
일지를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선반에 내려놓은 주상혁이 마찬가지로 거울을 들어 자신을 비췄다.
『Lv.48 주상혁.』
어젯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던전 한의학을 이용해서 레벨을 올린 덕분인지 레벨은 48.
무려 44에서 48까지 네 단계나 올라가 있었다.
‘물론 초회 한정 효과를 전부 받았으니…….’
이후 비약적인 상승은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요구치가 높아지는 마당에 하룻밤 사이에 레벨4면 큰 성과였다.
주상혁이 손거울을 머리맡 선반에 내려놓았을 때였다.
때마침 일일 퀘스트가 완료됐다.
Q. 의원으로서의 의무 [일일 퀘스트] (완료).
“보충제를 먹었나 보네?”
그동안은 박상운과 그가 선택한 동료 두 명이 먹어 왔다.
하지만 주상혁은 오늘부터는 대상을 조금 바꿨다.
평소 먹이던 두 명을 제외하고 주화영과 박민지로 변경한 것이었다.
전동욱이 주상혁의 주변을 수사하기 시작했으니 계획을 앞당기기로 한 것이었다.
‘위험하다면 두 사람이 가장 위험하니까.’
주상혁이 여느 때처럼 별생각 없이 퀘스트 보상을 수령했다.
평소와 같은 퀘스트 보상이 주어졌다.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평소와 똑같은 보상이 올랐다. 별다를 것 없는 명성1이었다.
주상혁이 명성이 올랐다는 메시지를 무미건조한 눈으로 확인하고 넘겼을 때였다.
띠링.
주상혁의 머릿속에 추가적인 알림음이 들려왔다.
Q. 뛰어난 의원의 표본 [월간 퀘스트].
「당신은 환생 의원으로서 그간 열심히 환자를 진료해 왔습니다. 환자가 없다면 찾아 나섰고 환자가 있다면 외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노력은 명성이 되었습니다. 퍼져 나가는 이름값만큼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합시다.」
[달성 조건: 한 달간 총 삼백 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할 것.] [달성 보상: 마나메탈.] [현재 진료 수: 0/300.] [제한시간: 29:23:59.]퀘스트를 읽은 주상혁이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볐다.
월간 퀘스트가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주간 퀘스트가 그랬듯 명성이 차면서 언젠가 이런 방식의 퀘스트가 발생하리란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
주상혁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이것이었다.
“실패 페널티가 없다고……?”
실패 페널티.
항상 주상혁이 반강제적으로 퀘스트를 클리어하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째선지 실패 페널티가 없었다.
근본적으로 늘어지길 원하는 주상혁이 실패 페널티가 없는 퀘스트를 착수할 리 없었다.
주상혁의 검지로 창을 닫으려고 움직일 때였다.
멈칫.
주상혁의 눈이 달성 보상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마나메탈…….”
주상혁이 손을 거둬들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혹시 좋은 건가?’
근본적으로 의술 마스터를 해야만 굴레가 끝이 나는 주상혁에게 필수적인 보상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 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주상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백 명이면 하루에 열 명 정도인가?”
주상혁의 결정은 결국 퀘스트를 착수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할 일도 없었던 것.
누웠던 몸을 주상혁이 도로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겸사겸사 해 보지 뭐…….”
* * *
퀘스트를 클리어하기로 마음먹은 주상혁은 양로원으로 향했다.
별다른 제약이 없었으니 이곳에서 달성하는 것만큼 손쉬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안마해 주는 주상혁의 표정은 딱딱했다.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와서 두세 명 안마해주고 가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본래라면 침이 해야 할 역할을 손가락이 대신하는 만큼 안마를 할 때마다 그만큼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다.
‘침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건 아쉽지만 불가능했다.
광주에서 주상혁이 환자들에게 침을 놨음에도 레벨에 변동이 없었던 건 그들이 ‘근육통’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양로원의 할머니들은 다르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체의 약화였고 굳이 말하자면 건강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이 상태에서 진료 수치를 침으로 채우려면 신체에 활력을 더해 주는 혈 자리를 건드려야만 하고 그러면 레벨이 과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안마로 한다면 노인분이 정정하시네 싶은 수준으로 끝날 게 침으로 하면 회춘에 가까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뭐, 그것과 별개로 다른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광주에서야 정체를 꽁꽁 감춘 상태였던 것과는 달리 표면상 봉사활동을 하겠다면서 얼굴을 가리면 받아 줄 리 없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얼굴도 가리지 않은 상태에서 침을 사용하는 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내가 레벨만 높아져 봐라…… 아오!’
그때가 되면 이런 퀘스트 침으로 쓱싹 해치우고 말라고 다짐한 주상혁이 분노의 안마를 계속해 나갈 때였다.
딱딱하게 굳었던 주상혁의 표정이 긴장을 놓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 풀어졌다.
띠링.
Q. 뛰어난 의원의 표본 [월간 퀘스트] (완료).
전주에 존재하는 양로원 스무 곳 가까이 일주일간 돌아서야 만들어 낸 성과였다.
“어구매, 총각 매실 거라도 줘?”
“아…… 예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할머니 한 명이 구석으로 가더니 두유 하나를 들고 왔다.
목이 탄 나머지 시원한 두유를 단박에 들이켠 주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 오늘은 그만 갈 텨?”
“네. 볼일이 좀 있어서요.”
* * *
볼일이 끝나자 잽싸게 집으로 귀환한 주상혁은 곧이어 고민에 빠졌다.
『마나메탈.』
「신비로운 마나를 뿜어내는 금속이다. 특유의 짙은 마나를 잘 다루어 낼 수만 있다면 이것을 통해 다양한 물건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상으로 지급된 마나메탈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느 쪽이지……?”
쓸 만한 물건인지 아니면 꽝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명조차 애매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터라 강력한 임팩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마나메탈의 외견은 분명히 특이하다.
미스릴과 비슷한 색채의 표면에 얇은 막을 이루고 있는 검은색 마나는 보는 이로부터 신비로움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중요도를 결정짓는 건 좀…….”
마나메탈에 대한 생각을 해 나가던 주상혁이 두 손 두 발 다든 표정으로 인벤토리를 켰다.
마나메탈을 도로 적재하기 위함이었다. 마나메탈을 집어넣던 주상혁의 눈알이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주상혁이 눈에 거슬리는 물건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침대 위로 내려뒀다. 이번 주간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마나 증폭의 탕약 초급 레시피.】
일명 폴라나 포션으로 불리는 탕약의 레시피.
이미 있는 레시피가 공급된 것이었다.
“이걸로 세 개째란 말이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주간 퀘스트로 지급되는 초급 레시피들은 종종 중복된 게 지급됐다.
당연히 일회용이 아닌 레시피는 별다른 용도가 없었다.
‘이걸 팔아 버릴 수도 없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물건을 팔아 봤자, 주상혁은 이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다.
한순간에 큰돈을 획득한다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독점이나 다름없는 현재 시장을 나눠 먹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주상혁이 인벤토리에 있던 똑같은 폴라나 포션 레시피를 침대 위에 세 개 다 내려놓고 처분에 대해서 고민할 때였다.
마나 증폭의 탕약 초급 레시피를 강화 하시겠습니까?
Y/N.
주상혁이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어이가 없네…….”
설마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사용법이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
주상혁이 Yes를 클릭하자 내려놨던 세 장의 레시피가 잠시 후 강렬한 빛과 함께 하나로 합쳐졌다.
【마나 증폭의 탕약 하급 레시피.】
「짧은 시간 마나를 한계까지 증폭시켜 주는 탕약의 레시피다. 던전에서 수집할 수 있는 다양한 약초들로 제작할 수 있다. 초급을 넘어 하급의 단계에 이른 만큼 지속 시간이 늘어났고 그 효과도 준수한 편이다.」
[멜팅 0/8] [폴라나 0/5] [정제수 0/1] [효과: 마나 상승 +15%]―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지속 시간은 세 시간이다.
주상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15%.
말이 15%지 한의학의 보너스를 감안하면 18%에 해당한다.
“미쳐 버린 거냐구.”
* * *
박지훈의 가게의 앞에는 여전히 손님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요즘 들어 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근래에 불량 포션과 관련된 소동이 자주 일어난 이유였다.
박지훈의 금전적인 상황까지는 알 수 없지만 10% 폴라나 포션은 비싸다.
그걸 전부 환불해 줬다면 금전적인 상황에서 타격을 안 받을 리 없었다.
“혹시 말이야 망해 버리는 건 아니겠지?”
“에이 시발……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만!”
박지훈이 파산해 버리면 곤란한 건 박지훈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10% 포션은 비싸서 접근도 못 하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유통되는 5% 포션을 구매할 목적으로 박지훈의 가게를 애용하던 사람들도 문제가 생겼다.
이미 폴라나 포션을 이용해 자신들이 클리어할 수 있는 난이도보다 한 단계 높은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식이 국내에 많이 자리 잡은 만큼 박지훈이 사라진다면 이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박지훈의 가게에 공문이 붙었다.
5%~7% 포션은 당분간 취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뭐 망하든 망하지 않든 심각하긴 한가 본데?”
“하…… C급 던전 맛 좀 봤는데 다시 D급행인가……?”
폴라나 포션의 재료를 끌어올 자본도 남지 않았기에 이러한 공문이 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가게 문 앞에 붙은 공문을 보며 사람들이 쑥덕쑥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다수의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다.
“잠시만요!”
“촬영할 생각입니다. 잠시만 협조해 주세요!”
박지훈의 가게 앞에 특종의 냄새를 맡은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온 건 그 무렵부터였다
* * *
―파산의 전조? 박지훈의 가게 앞에 붙은 불길한 공문.
―박지훈, 이대로 파산하나? 금융권에서의 막대한 액수의 채무 발견돼.
―박지훈 살리기 모금 운동, 각성자들 사이에서 시작되나?
―박지훈 파산? 어림도 없지, 사실 이민 준비.
다음 날 대량으로 쏟아지는 박지훈에 관련된 기사들을 본 주상혁은 당황했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일의 발단은 간단했다. 초급 레시피를 남겨 둘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충동에 그냥 조합해 버리면서 벌어진 단순한 해프닝.
하지만 근래에 불량 포션 사건과 함께 겹쳐 다르게 해석되는 것 같았다.
근거 없는 이민설부터 시작해서 박지훈의 채무 금액을 예시로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게 불과 하루 사이에 국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여간 사람들 다른 사람 일에 관심 많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주상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리자 주상혁이 어제 시험했던 증거들이 보였다.
방 안에 펼쳐진 레시피와 어제 호기심에 제작해 봤던 포션들이었다.
[효과 마나 상승 +8%.] [효과 마나 상승 +9%.] [효과 마나 상승 +10%.]“8%부터 10%까지였지?”
전에는 레시피로 제작하면 5%부터 7%까지 제작이 되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8%~10%.
이건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납품을 위해 탕약기로 직접 달이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주상혁이 직접 사용할 분량의 포션만 수작업을 하면 됐다.
“그래도 시험은 해 봐야겠지?”
주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약탕기를 들었다.
주상혁의 행동에서 외출을 감지한 것인지 침대에서 자던 주주가 일어나서 주상혁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옥상으로 올라온 주상혁이 벽돌로 만든 간이 아궁이에 약탕기를 내려놓았다.
주상혁이 장작을 구석에서 가지고 와 준비하자 주주가 구석에 준비된 잔가지들과 짚을 가지고 왔다.
“고마워.”
주상혁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주주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 배까지 뒤집고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주상혁이 잔가지를 올리고 짚에 불을 붙였다. 곧이어 불길이 서서히 번져 가기 시작했다.
정제수를 약탕기 안에 적당히 부은 주상혁이 폴라나와 멜팅을 개수에 맞춰 넣었다.
“8, 5, 1이었지?”
주상혁이 재료를 집어넣고 약탕기의 뚜껑을 닫았다. 주주가 입으로 부채를 건네줬다.
주상혁이 부채질을 하며 적당히 불을 조절해 나갔다.
불이 강할 땐 조금 느슨하게 하고 불이 약할 땐 조금 빠르게 부치며 나뭇가지와 장작을 추가로 적절하게 배분했다.
주상혁이 삼십 분쯤 지속하다가 적절하게 달여졌을 것 같자 약탕기의 안을 들여다봤다.
주상혁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좀 문제가 있을지도?”
* * *
『미흡한 마나 증폭의 탕약(하급).』
「짧은 시간 마나를 한계까지 증폭시켜 주는 탕약이다. 폴라나 특유의 마나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폴라나와 멜팅의 적절한 비율은 완벽했다. 하지만 원인 불명의 문제로 미흡한 작품이 탄생했다.」
[효과: 마나 상승 +11%.]―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세 시간 지속된다.
정말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하급이 중급보다 좋은 점은 지속시간도 있었겠지만, 결국 핵심은 출력이었다.
하지만 11%라면 주상혁이 초급 레시피로 수작업했을 때보다 낮은 효율이었다.
아무리 주상혁이 직접 사용할 물건이라지만, 이전보다 퇴보한 수준으로는 곤란했다.
“재료도 더 넣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폴라나 세 개에 멜팅 세 개가 더 들어간다.
초급과 하급의 다른 점 중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재료가 다소 더 들어가게 된 만큼 세밀한 작업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초급 때는 폴라나와 멜팅을 다루는 법을 요구했으니까 하급에서도 뭔가 요구하는 게 있겠지.”
잠시간 생각하던 주상혁이 준비해 놓은 돌담에 약탕기를 대충 치워 놓고 예비용 약탕기를 들고 왔다.
주상혁이 다시 약탕기에 정제수를 채워 넣었다.
“이번엔 물을 조금 더 넣어 볼까?”
레시피에서는 정제수 한 개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증발해서 사라지는 양을 포함하는 수치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재료의 개수를 맞춰서 넣은 주상혁이 다시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미흡한 마나 증폭의 탕약 (하급).』
[효과: 마나 상승 +12%.]―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두 시간 지속된다.
“무쳐 버리겠구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출력 면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였지만, 이번엔 지속 시간 쪽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심지어 오른 출력도 1% 올라서 12%가 겨우 된 수준.
이래서야 역시 초급을 사용할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재료만 더 들어가니 손해야…….’
주상혁이 원인을 고민하다가 식혀 두었던 약탕기의 내용물을 실린더에 옮겨 담고는 다시 정제수를 채웠다.
“같은 방식으로 하되 이번엔 불을 좀 키워 볼까?”
주상혁이 이번엔 부채질을 통해 불을 피웠다.
화르르륵.
적절하게 장작과 나뭇가지를 배분해가며 불이 과하지 않도록 했다면 이번엔 불이 과해도 상관없으니 단번에 늘린 정제수를 증발시켜 버릴 만큼 불을 늘린 것이었다.
주상혁이 삼십 분쯤 지켜보다가 뚜껑을 열었다.
『미흡한 마나 증폭의 탕약 (하급).』
[효과: 마나 상승 +13%.]―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두 시간 지속된다.
“하, 참…….”
이번에도 출력은 조금 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 시간은 말썽이었다.
주상혁이 불과 정제수의 비율은 그대로 놔두고 다시 한 번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엔 달이는 시간을 줄인다.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화력은 그대로 유지했고 투여한 정제수의 양은 처음보다 조금 줄였다.
평소보다 오 분쯤 덜 달인 주상혁이 약탕기를 빠르게 확인했다. 증기가 일제히 새어 나오고 주상혁의 눈에 결과가 보였다.
[효과 마나 상승 +13%.]―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한 시간 지속된다.
주상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째선지 노가다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 * *
주상혁의 실험은 그날 이후로도 계속됐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일단은 주상혁이 사용하는 포션의 질이 좋아지면 그만큼 위기의 상황에서 도움이 될 거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의 세기, 물의 양, 달이는 시간 삼박자에 조금씩 변화를 주며 실험하길 보름.
마침내 주상혁이 내용물을 확인하고 방긋 미소 지었다.
[효과 마나 상승 +18%.]본래라면 하급 레시피로 완성품을 제작했을 때 나와야 하는 정상적인 출력이 드디어 등장한 이유였다.
“됐다…….”
왕! 왕!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주상혁의 주위로 주주가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진짜 보름이나 걸려 버리는 거냐고…….”
벌써부터 중급 혹은 상급, 고급이 됐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어쩌다 보니 이틀이나 지나 버렸네…….”
본래라면 이미 이틀 전에 여수로 떠나야 했다. 참가자는 이틀 전부터 받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주상혁은 그러지 못했다.
거의 실마리가 보일 듯 안 보일 듯 결과물이 17%에 멈춰서 아른거리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실제로도 작전상 최대한 성능 좋은 포션이 필요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주상혁이 실린더에 탕약을 옮겨 담고는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주상혁의 방에는 미리 짐이 꾸려져 있었다.
주상혁이 준비된 캐리어 옆 작은 상자에 들고 있던 포션을 집어넣었다.
“강화 마법이 걸린 비싼 실린더니까 문제 없겠지만…….”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포션을 잘 고정한 주상혁이 주먹만 한 박스를 포장했다.
주상혁이 미리 준비해 놓은 복장으로 빠르게 환복하기 시작했다.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 그리고 가발을 이용해 박지훈의 외견과 가능한 한 비슷하게 꾸민 주상혁이 마지막으로 마스크까지 얼굴에 걸었다.
“슬슬 가 볼까?”
클린트 경매에 갈 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 * *
전동욱은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보름 전쯤 박지훈의 가게에 붙여 둔 각성자가 라이센스를 도난 맞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불량품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무렵 영업이 끝난 박지훈의 가게를 드나들던 사람을 미행하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도대체 누구지?”
푹 눌러쓴 모자는 물론이고 선글라스와 마스크 때문에 몹시나 수상했다던 불명의 남자.
그날 그 남자를 미행에 나섰던 두 각성자는 체형이 박지훈과 거의 비슷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전동욱은 이 소리를 들었을 때 당연히 가장 먼저 주상혁을 떠올렸다.
주상혁의 체형 역시 박지훈과 거의 동일.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던 전동욱은 결국 그 가설을 스스로 무너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 가설엔 결정적으로 두 가지의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만약 주상혁이었으면 정지호가 무슨 반응이라도 보였어야 맞지만 조용했다.
고의라고 이해했다면 주상혁을 미행한 점으로 지적이 들어왔을 것이었고 설령 고의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더라도 꼼수를 지적하며 유감을 표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호길드 측에서는 아직 아무런 말도 없다. 마치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
사실상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전동욱은 광주에서의 실수를 한번 겪은 만큼 최대한 미행에 주의하라고 당부했었다.
실제로 박지훈 쪽에는 가장 실력 있는 두 사람을 깔아 뒀었다. 그날 그 남자를 미행했던 각성자도 둘 다 무려 B등급의 암살계 각성자 듀오였다.
물론 실력 차이가 조금 나긴 하지만 한 명은 거의 베테랑 수준이었고 한 명은 초입이긴 해도 명백히 B급 각성자였다.
만약 그 남자가 주상혁이라면, 주상혁이 이 둘의 미행을 감지하고 제압했다는 말이어야 한다.
무려 B급 각성자 둘의 미행을 감지한 것도 모자라서 두 사람이 습격당했다는 것을 눈치채기도 전에 제압했다는 말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표면상 E급 각성자인 주상혁이 했을 거라고는 감히 예상하긴 힘들었다.
이건 주상혁이 사실은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각성자라고 가정했을 때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E급부터 C급까지의 능력치보다 C급에서 B급까지의 격차가 더 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누구지? 누구기에…….”
전동욱의 생각이 복잡해졌을 때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전동욱의 말에 여비서가 방으로 들어왔다. 전동욱이 말했다.
“무슨 일이죠?”
“지부장님 앞으로 소포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여비서의 손에는 소포가 들려 있었다.
“이따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퇴근 때까지만 보관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여비서가 들어왔던 길을 돌아서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전동욱이 여비서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네?”
전동욱이 생각이 바뀌었는지 번복했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거기에 대충 내려놓고 가세요.”
* * *
주상혁이 여수까지 가는 이동 수단은 버스였다.
여수로 가는 버스 안에서 주상혁이 핸드폰으로 검색하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원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암흑가의 큰손 클린트.
그가 여는 경매는 규모에 걸맞지 않게 정보가 적었다. 국내야 이번이 처음이라니 정보가 적은 건 납득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해외 사이트에서마저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건진 건 이 정도인데…….’
가벼운 후기 형식의 사진 하나 없는 글이었다.
글을 읽은 주상혁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유흥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후기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경매장을 라스베이거스에 비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터넷이라지만 과장이 심해.’
라스베이거스가 어딘가에 있는 시골 이름도 아니고 뚝딱 하고 지어 올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그 정도 규모의 단지가 조성되려면 못 해도 여수 면적의 십분의 일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하지만 수십 년 전부터 엑스포다 뭐다 해서 지방 땅값치고는 값이 제법 나가는 게 여수다.
단순히 몇백억 몇천억은 우스웠다. 못해도 부지를 사들이는 데에만 조 단위의 돈은 들이부어야 가능한 일일 터였다.
두 시간 정도 주행한 버스에서 내린 주상혁이 택시에 올랐다.
“여기로 가 주세요.”
주상혁이 택시 뒷좌석에 타서 주소가 적힌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받아들고 읽어보던 택시 기사가 말했다.
“여기는 지금 통행 불가던디?”
“에?”
주상혁이 넌지시 물었다.
“이유가 뭐라던가요?”
“글쎄올시다……. 듣기로는 흉악한 연쇄살인이 일어나서 봉쇄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싱크홀이 크게 하나 생겨서 주변 지반조사 때문에 통제하는 거라고도 하고 하여튼 좀 그래.”
택시 기사가 종이를 돌려주자 주상혁이 물었다.
“그 근처까지라도 갈 수 없을까요?”
주상혁의 말에 택시기사가 이빨을 씩 보이며 말했다.
“근처라믄 상관없제.”
* * *
주상혁을 태운 택시는 터미널에서 도심을 쭉 가로질렀다.
이십 분쯤 지나자 해안도로가 나왔다.
택시가 멈춘 건 그 길을 따라 십오 분쯤 더 달렸을 때였다.
“여기서 내려 줘도 되제?”
택시기사의 말에 주상혁이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300m쯤 떨어진 곳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다.
주상혁이 답했다.
“물론이죠.”
주상혁이 택시비를 내고 내리자 택시가 빠르게 유턴했다.
왜 저렇게 서두르나 했더니 건너편에는 손님이 있었다.
손님을 태우고 사라지는 모습을 본 주상혁이 픽 웃었다.
여하튼 뛰어난 영업 정신이 엿보이는 장면이라 할 수있었다.
주상혁이 택시 매연을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주상혁이 멀찍이 시선을 던져 전방 300m 부근을 바라봤다.
‘뭐야 저건…….’
택시의 앞 유리창만으로 볼 때는 한정적인 장면만 보여서 몰랐는데 내려서 보는 모습은 주상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리케이드 좌우로 펼쳐진 10m는 거뜬해 보이는 돌담 때문이었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눈을 찡그리며 끝을 따라가 봤지만 한눈에 담기도 힘들었다.
‘설마 진짠가……?’
도시 전설처럼 느껴지던 글들이 직접 보니 갑자기 진짜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자세한 내용까지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영역을 가르는 경계선만 봐서는 라스베이거스는 몰라도 축소판 라스베이거스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던 것이다.
주상혁이 바리케이드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경찰복을 입은 남녀가 주상혁에게 다가왔다.
『Lv.33…….』
『Lv.36…….』
“지금 이곳은 통행금지입니다.”
경찰복을 입고 있지만, 주상혁은 두 사람이 경찰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경찰 중에도 각성자는 존재하지만, 일반 순경이 C등급 각성자일 리가 없었다.
‘일반인을 통제하기 위해 구색만 갖춘 거겠지’
주상혁이 말했다.
“클린트 경매에 참여하고 싶은데요.”
주상혁의 말에 적막이 흘렀다. 두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주상혁이 내심 당황했다.
‘뭐야…… 설마 잘못 왔나? 그럴 리가 없는데?‘
박지훈에게 주소를 받은 그대로 왔다. 문제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여차하면…….’
주상혁이 문제가 생기면 제압하고 도망갈 생각을 먹었을 때였다.
주상혁을 조용히 응시하던 두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을 깨고 살가운 웃음을 지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신분 확인하겠습니다.”
여자 각성자가 뒷주머니에서 휴대용 카드 리더기 같은 외형의 기계를 꺼내 들었다.
“신분증 혹은 라이센스 제출해 주시겠습니까?”
각성자라면 라이센스, 일반인이라면 신분증을 내야 할 것이었다.
주상혁이 박지훈의 라이센스를 내밀었다.
건네받은 여자가 리더기에 라이센스를 삽입했다.
웃고 있는 입과는 다르게 매서운 눈빛으로 주상혁의 체형을 빠르게 스캔하던 각성자가 주상혁의 얼굴에서 멈칫했다.
여자의 대조가 길어졌다. 주상혁이 선수를 쳤다.
“왜 그러시죠?”
무언가 말하려던 여자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 후리더기에서 라이센스를 회수해 내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상혁이 그것을 돌려받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그럼 재운이 함께하기를.”
* * *
두 사람의 인사를 받고 바리케이드를 지나친 주상혁이 안도했다.
“들키는 줄 알았네…….”
혹여나 선글라스를 벗어 보라고 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던 순간을 뒤로하고 주상혁이 전방을 응시했다.
“평범한데?”
일단 라스베이거스는 모르겠고 내부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정말로 여수 앞바다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 해안 도로만 쭉 이어지고 있었다.
주상혁이 해변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을 때였다.
저 멀리 제법 큰 구조물 하나가 보였다. 어지간한 동사무소 수준은 되어 보였다.
건물 앞 입구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있었다.
‘이쪽도 각성자네.’
『Lv.41…….』
『Lv.57…….』
두 사람의 레벨을 보자니 바리케이드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그저 문지기였음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57과 41인가?’
주상혁이 레벨이 높은 쪽을 바라봤다.
『Lv.57 마이클.』
‘외국인 용병이란 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클린트 경매는 해외에 본진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국내에서 모든 인력을 단기간에 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을 터.
‘그것 때문에 이런 조합이 탄생했겠지.’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라면 대화가 통하는 현지인은 필수다.
능력은 둘째로 하고 대화가 통해야 서비스도 가능한 것.
그리고 이것이 바로 외국에서 급하게 들여온 용병과 현지인 각성자 듀오가 탄생하게 된 이유일 것이었다.
“클린트 경매장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접수는 어디서 하죠?”
“안으로 들어가시면 단번에 알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41레벨의 각성자의 답변을 들은 주상혁이 계단을 올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주상혁이 입구에 서서 내부를 쓱 살폈다.
“방이 꽤 많네……?”
건물 안에는 여러 개의 방문이 존재했다.
주상혁이 고개를 슬쩍 틀어보자 입구 옆에 준비된 대기표 발급기가 보였다.
주상혁이 대충 손을 뻗어 대기표를 뽑았다.
“십오 번…….“
띵동.
번호를 확인하고 있자 곧바로 들리는 소리에 주상혁이 고개를 돌렸다. 제일 좌측 방 위에 ‘십오’라는 숫자가 불이 들어와 있었다.
단박에 알아먹은 주상혁이 제일 좌측 방으로 향해 걸어가 문을 열었다.
* * *
주상혁이 방 안에 들어갔을 때였다.
명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린트 경매장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안내원 신지은입니다.”
방안의 넓이는 여덟 평 남짓 되어 보였는데 안내원은 자신의 자리에 서서 주상혁을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주상혁이 테이블 앞으로 이동해 의자에 앉았다. 안내원이 그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신분증이나 라이센스를 주시면 접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주상혁이 내미는 라이센스를 받아 든 안내원이 라이센스를 컴퓨터 옆에 존재하는 프린트 같은 장치에 삽입하고 안내원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마도 지금쯤 안내원이 보는 모니터에는 박지훈에 대한 프로필이 떠올라 있을 것이었다.
잠시 후 박지훈의 정보를 다 읽었는지 안내원이 말했다.
“고객님, 클린트 경매는 처음 참여하시는 걸로 되어 있으십니다. 맞으실까요?”
“네 그렇죠.”
주상혁의 말에 안내원이 키보드를 두들겼다. 잠시 후 라이센스를 삽입했던 기기에서 신분증처럼 생긴 물건이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안내원이 그것을 뽑아서 작은 미니 바구니에 넣어 책상 위로 내밀었다.
바구니 위에는 조금 전 신분증 말고도 다른 게 있었다.
‘하나는 핸드폰이고 하나는 손목시계?’
외형은 A사의 A워치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심지어 이것도 라이센스가 아니네? 클린트 카드?’
주상혁이 푸른색 색상의 카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영어로 ‘클린트 카드’라고 쓰인 카드에는 박지훈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계좌 번호, 각성자 등급, 이름, 실주소를 비롯해 ‘클린트 넘버’라고 하는 번호까지 제법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접수는 물건을 지급해 드리면서 완료되었습니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초행에 적응이 편하시도록 지금 지급해 드린 물건과 경매에 대해서 설명해 드릴까요?”
“네.”
안내원이 친절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지급해 드린 세 개의 물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클린트 경매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주상혁이 잠시간 기다리자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클린트 경매는 반오프라인 경매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오프라인?”
“예시를 하나 들자면, 박지훈 님께서 ‘A’라는 물건을 경매에 등록 하고 싶으시다면 이번 클린트 경매가 열리는 기간 중 언제라도 자유롭게 두 기기를 이용해서 등록이 가능합니다.”
주상혁이 지급받은 휴대폰과 손목시계 바라봤다.
“이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요?”
“박지훈 님께서 물건을 등록하실 때 유의하실 것은 두 가지. 경매 마감 일자 그리고 등록한 물건이 낙찰되기 전에 외부로 무단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가면 안 되는 이유는요?”
안내원이 말했다.
“나눠 드린 장치에는 클린트 칩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경매장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중앙 기지국에서 경매에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간주, 회원님이 등록하신 물건을 자동으로 등록 취소 절차를 진행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셨을까요?”
“네. 뭐, 대충은요.”
반오프라인.
처음 들어보는 단어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진행하지만, 몸은 거대한 경매장 안에 이미 참석한 것과 다르지 않으니 사실상 오프라인.
즉 ‘반오프라인’인 이유였다.
주상혁이 말했다.
“유의해야 할 사항에 경매 마감 일자도 있었죠?”
“그렇습니다. 경매 마감 일자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번 클린트 경매장 시즌 마감 일자는 약 한 달 뒤인 8월 16일. 만약 고객님께서 물품을 등록하실 때 8월 17일 이후로 등록하셔도 16일에 모든 경매 물품이 강제적으로 종료가 되니 이점을 유의하지 못한다면 등록한 물건을 원하는 가격에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죠.”
주상혁은 어차피 등록할 물건이 없어, 당연히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해가 되셨으면 다음 설명을 해 드려도 될까요?”
“네, 계속해 주세요.”
* * *
안내원과의 대화는 제법 길었다.
짧게 끝날 수도 있었지만 주상혁이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질문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크게 정리하자면 이건가?’
1. 클린트 측은 경매 물품의 등록과 낙찰 과정에서 물건의 배송만 개입한다.
2. 등록 시에는 시작 입찰가의 3%를 수수료로, 낙찰 시 낙찰가의 3%를 판매자에게서 징수한다.
3. 단, 중간에 물품 등록을 취소할 때는 현재 입찰가의 10%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이외에도 주상혁이 질문해 얻은 정보는 다양했다.
기기를 다루는 법이라거나, 경매장 내부의 생활 팁 등, 경매장의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질문이었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아뇨, 덕분에.”
마침내 궁금한 게 모두 사라진 주상혁의 말에 안내원이 말했다.
“그럼 경매장에 참여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를 밟겠습니다. 소지하고 계신 휴대폰 및 전자기기를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내부의 상황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휴대폰을 말입니까?”
“네.”
“혹시 제출할 수 없다면…….”
안내원이 웃는 얼굴로 해맑게 답했다.
“네, 경매장 안에서 거주하실 수 없으십니다.”
어째서 클린트 경매가 해외 국내를 통틀어서 사진 한 장 검색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외부로의 통신수단을 제한해 버리니 당연했다.
‘어쩔 수 없지…….’
주상혁이 바구니에 마지못해 핸드폰을 내려놓고 밀었다. 안내원이 절차를 밟으며 물었다.
“혹시 그 이외에 외부와 통신이 가능한 전자기기는 없으시죠?”
“네.”
주상혁의 말을 들은 안내원이 넘겨받았던 핸드폰과 그전부터 가지고 있던 라이센스를 플라스틱 보관함에 넣어 뒤편의 사물함에 넣고는 자물쇠를 잠갔다.
자리로 돌아온 안내원이 말했다.
“그럼 이제 숙소로 정할 구획을 말씀해 주세요.”
“음…….”
숙소의 구획.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경매장 내부는 크게 네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있단다.
1구획은 클린트 카드가 있다면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구획.
2구획은 클린트 카드가 존재하고 클린트 경매에 세 번 이상 참여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구획.
3구획은 클린트 카드가 존재하고 클린트 경매에 참여한 이력은 물론, 재력이 천억 이상인 구획.
4구획은 앞의 세 개의 구획보다 시설과 치안이 월등하지만, 삼십억이라는 거주비를 내야 하는 구획.
당연한 말이지만 구획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치안과 서비스가 올라간다.
주상혁이 잠시 고민하고 있자 안내원이 슬쩍 추천했다.
“박지훈님의 등급은 D랭크. 저희 클린트 경매장에서는 4구획을 추천 드립니다.”
듣기로는 경매장의 치안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당연히 클린트 카드만 있다면 적어도 1구획에 무료로 거주할 수 있으니 범죄를 지은 중범죄자들이 수사망을 피해 내부로 숨어든다는 이유였다.
안내원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클린트 측은 무관하며, 어느 정도 중재는 하지만 절대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안전한 곳은 숙소뿐.
숙소 바깥이나 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에는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상태였다.
‘이 말은 내가 길거리에서 변사체가 되어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이겠지만…….’
무법천지인 도시.
오히려 주상혁에게는 이번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주상혁은 이곳에서 무력 다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방어를 위해 살인도 각오하고 온 마당에 사건이 크게 번지면 주상혁으로서도 불편했다.
주상혁이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1구획으로 해 주세요.“
* * *
안내원은 주상혁의 말에 딱히 사족을 달지 않고 숙소를 1구획으로 정해 줬다.
추천은 어디까지나 추천.
선택은 고객의 자유였기 때문이었다.
1구획은 경매장 중앙에 위치하는 중앙 기지국을 기점으로 서쪽에 위치하는 지역이었다.
안내원이 알려준 대로 1구획에 진입한 주상혁이 주변을 살폈다.
“그래도 예상했던 거랑은 분위기가 달라서 의외네.”
무슨 슬럼가처럼 어두침침하고 으슥한 분위기.
주상혁이 생각했던 것은 이런 풍경이었는데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도로 조성도 무척이나 잘되어 있었다.
건물도 굵직굵직한 호텔이 다수 올라가 있었고 밝은 분위기의 색채인 건물이 대다수였다.
적어도 누가 보든 범죄자들이 머무는 장소는 아닌듯했다.
‘뭐…… 사람만 빼고 보면 말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길을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레벨 좀 되는 각성자였다.
인상은 또 얼마나 험악한지 얼굴에 상처 하나둘씩 훈장처럼 가지고 있었다.
어째선지 주상혁을 관심 있게 응시하는 무리도 도로 곳곳에 있었다.
길거리의 카페나 음식점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며 힐끔힐끔 바라보는 무리의 평균적인 레벨은 삼십 대 중후반…….
‘이 정도면 딱히 위험하진 않겠네.’
개중에는 사십 대에 진입한 사람도 종종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치가 이 정도라면 어지간하면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시선을 무시하며 도로를 걷던 주상혁이 배정해준 호텔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십 분쯤 후였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걷던 주상혁이 일 층 로비에 들어섰다.
주상혁이 정문 입구에 보이는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클린트 카드를 내밀자 잠시 후 조회 절차를 밟은 안내원이 말했다.
“1103호입니다. 편히 쉬세요.”
클린트 카드와 함께 카드키를 넘겨받은 주상혁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십일 층을 눌렀다.
십일 층에서 내린 주상혁이 카드키로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달칵.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소 내부를 확인한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1구획이라고 나름 각오했는데 예상외로 시설까지 좋네?”
처음 1구획을 고를 때만 해도 여차하면 나무 판잣집까지도 각오했던 주상혁이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전망도 좋고 숙소 안도 깔끔한 게 어지간한 고급호텔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이쯤 되니 되려 2구획 이상의 시설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왕! 왕!
주상혁이 주주의 짖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팔찌에서 나온 주주가 침실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침대로 가서 폴짝 뛴 주주가 푹신한 감촉이 기분 좋았는지 그대로 늘어졌다.
피식 웃은 주상혁이 시선을 옮겼다.
‘주주는 대충 놀라고 하고…….’
주상혁이 건네받은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마음 같아서는 진작에 켜 보고 싶었지만, 방전되어 있었던 탓에 켤 수가 없던 게 휴대폰이었다.
주상혁이 소파에 앉아 테이블 아래로 구비된 케이블을 들어 핸드폰을 충전했다.
일 분쯤 기다린 주상혁이 최소한의 충전이 되자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의 화면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 * *
핸드폰을 일 분쯤 대충 만져 본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하긴 아무것도 안 깔린 게 당연한가?”
어차피 이곳에서 경매할 때 사용하라고 지급한 휴대폰이다.
애초에 설치할 필요도 없었고 설치되어 있어서 경매장 측에 좋을 것도 없었다.
주상혁이 핸드폰을 조작해 메인으로 돌아왔다.
메인에는 하나의 어플이 있었다.
“일단 확인이나 해 볼까?”
핸드폰을 잠시 소파 위에 내려놓은 주상혁이 손목의 시계를 조작했다.
항상 차고 다니던 생모 정채연의 유품인 고장 난 손목시계가 아니라 클린트 측이 제공한 손목시계였다.
“이건가?”
주상혁이 측면에 존재하는 버튼을 조작했다. 손목시계의 화면에 작은 QR코드가 나타났다.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든 주상혁이 안내원이 알려 준 대로 메인에 존재하는 앱을 실행해서 인식시켰다.
핸드폰의 화면이 넘어가며 창이 전환됐다.
『7월 13일 경매 리스트.』
―오늘의 베스트 상품.
리자드맨의 화염 목걸이: 2,201억…….
마녀 벨로나의 지팡이: 1,877억…….
가고일의 마나 전환 팔찌: 8,81억…….
―신규 등록 상품.
고급 감정 스크롤.
봉인된 화염의 핵.
주상혁이 리스트창 왼쪽 상단에 검색창을 이용해 ‘폴라나’를 입력했다.
폴라나와 관련된 아이템이 주르륵 떠올랐다.
‘폴라나’의 검색 결과입니다.
약초꾼의 폴라나 탐지기.
박지훈의 5% 폴라나 포션.
인탐제약의 1% 폴라나 포션.
폴라나.
“아직은 안 올라온 건가?”
위조된 폴라나 포션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아직 사흘째니까…….’
경매장 마감은 아직도 한 달 넘게 남았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단순한 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랬지만, 그럴 리 없어.’
일단 퀘스트가 발생한 만큼 무슨 일이 생겨도 반드시 생길 것이다.
“조금 더 지켜보는 걸로 하고…….”
기본적인 확인을 한 주상혁이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신경 쓰이네…….”
리스트에 존재하는 5% 포션.
주상혁이 호기심에 그것을 클릭하자 곧이어 창이 전환되며 폴라나 포션에 대한 상세 정보가 떠올랐다.
박지훈의 5% 폴라나 포션.
수량: 311.
최저 낙찰가: 개당 2,000만.
현재 최고 입찰가: 개당 2,522만…….
등록 일자: ……8월 13일.
경매 마감: 31일…….
판매자 클린트 넘버: …….
가격을 확인한 주상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가 이렇게 비싸?”
주상혁이 그동안 박지훈을 통해 팔아오던 5%포션의 가격은 개당 오백만 원 남짓이었다.
물론 재룟값이다 뭐다 다 떼고 나면 그렇게 마진을 많이 남기는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상혁은 그렇게 가격을 측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점이라지만,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너무 과한 가격이 책정돼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상혁이 착각했던 게 있었다. 이곳은 음지.
나쁘게 말하면 암시장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네, 범죄자들은 애초에 정상적인 경로로 구매하는 데 부담감이 있겠지…….”
양지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엔, 필요하다면 웃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었기에 이러한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5%포션은 당분간 단종하기로 했으니까…….”
지금 가격도 이해가 안 되진 않았다.
“네 배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다가 포션을 팔아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주상혁은 곧이어 생각을 접었다.
경매장이 상시 열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건 둘째 치더라도 범죄자들에게 폴라나 포션을 대량 공급한다는 게 양심에 찔렸다.
‘그래, 딱히 돈이 부족한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폴라나 포션에 대한 생각을 마치고 주상혁이 메인 페이지로 돌아왔다.
오늘의 베스트 상품이나 클린트 측에서 추천하는 핵심 상품을 세 시간 남짓 대충 쓱 살펴보던 주상혁이 핸드폰을 대충 내려놓고 소파에 기대 목을 묻었다.
“아…… 큰일이네, 벌써 질려…….”
한두 시간이면 몰라도 그 흔한 게임 하나 깔리지 않은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주상혁이 바깥을 슬쩍 바라봤다.
바깥은 어느새 제법 컴컴했다. 야경이 제법 아름다웠다.
“어디 보자 몇 시지……?”
오후 8시.
주상혁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외출이나 해 볼까?”
* * *
주상혁은 1구획부터 4구획까지의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 듣자마자 1구획으로 가야겠다고 결심이 서 있었다.
2구획과 3구획이야 자격 미달.
사실상 1구획과 4구획 사이에서 결정한 것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30억은 아니었다.
“이런 곳이 정보를 얻기 수월하단 말이지?”
정보가 돈이 된다는 건 재력가든, 악질 각성자든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정보를 얻을 때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상혁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전동욱을 슬금슬금 피해 다니듯 무엇보다 1구획은 돈이 아닌 힘으로도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역으로 당할 경우에나 그랬다.
낮에 이미 어느 정도 레벨을 가늠해 본 결과 주상혁에게 위험이 되겠다 싶은 녀석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차하면 믿는 구석도 있고 말이지.’
주상혁이 광장의 분수대에서 쭉 한 바퀴 돌면서 다섯 갈래로 난 길을 바라봤다.
“자, 어디부터 가 볼까……?”
호텔 안에도 존재하는 시설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헬스장, 영화관, 술집에 도박장 등 흥밋거리가 있었지만, 호텔 안에 자리 잡은 만큼 정보의 질이 낮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쪽이 좋으려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펍이나 바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유독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즐비한 거리로 방향을 잡은 주상혁이 적당한 곳이 없나 물색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진짜 오픈한 지 사흘밖에 안 된 거 맞아?’
한밤중임에도 거리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시끌벅적한 가게 안을 구경하며 주상혁이 십 분쯤 걸었을 때였다.
‘이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미행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목적은 모르겠지만 뭐…….’
덕분에 직접 찾아다닐 수고는 덜게 될 것 같았다.
주상혁이 모르는 척 걸으며 슬쩍 눈알만 굴려 숫자를 파악했다.
‘뒤편에 하나 오른쪽에 둘 왼쪽에는…….’
주상혁의 스쳐 가는 시선에 순간적으로 두 사람이 보였다.
카페 테라스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총 다섯 명이라…….’
주상혁이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편하도록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번쩍번쩍하던 불빛이 점점 사라져갔다.
마침내 주상혁이 으슥한 골목길에 도착했다. 녀석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냈다.
앞에서는 여자 하나와 남자 둘, 뒤에서는 남자 둘이었다.
“멍청하긴 이래서 초짜들은 안 된다니까.”
“이 녀석 미행당하는 줄도 몰랐던 거 아닙니까? 형님.”
주상혁이 낄낄대는 소리를 들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전방에서 남자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녀석들 중는 레벨이 가장 높은 녀석이었다.
“…….”
“너무 무서워할 것 없어.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는 드릴게.”
입 옆에 찢어지듯 난 선명한 칼자국이 인상적인 남자의 머리 위를 다시 한 번 주상혁이 확인했다.
『Lv.43 …….』
피식.
조금 지켜봤지만, 레벨이 추가로 올라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각성자와 전투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됐는데…….’
이러면 몬스터와 크게 다를게 없었다.
주상혁이 웃는 모습이 불편했는지 남자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어휴…… 고기는 씹는 맛이라던데 이제 어쩌냐?”
남자가 주상혁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로 안면으로 향하던 주먹이 주상혁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탁.
어째선지 어렵지 않게 주상혁의 얼굴을 강타할 것 같았던 주먹이 멈춰섰다. 주상혁의 손에 막힌 것이었다.
“이번엔 내차례지?”
“커억…….”
남자가 명치를 부여잡았다.
“너, 이 색…….”
어찌나 아픈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녀석의 명치에서 주상혁이 주먹을 빼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더 약하네.”
그래도 주상혁과의 레벨 차이는 불과 5. 이 정도면 경우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남자가 무릎 꿇었다.
주상혁이 왼발로 남자의 뺨을 사정없이 후렸다. 남자가 돌담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쿠구궁.
담벼락이 무너져 내리며 뿌연 흙먼지가 어둠 속에 피어나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뭐,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주상혁이 서늘한 웃음과 함께 비스듬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뱉었다.
“움직이지 마라? 고기는 씹는 맛이래잖냐.”
* * *
주상혁의 말이 골목에 나지막이 울렸을 때였다.
숨 막힐 듯한 적막이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두 남자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털푸덕.
주상혁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고통스러웠다.
두 남자가 뒷걸음질 치다 말고 주저앉았다. 다리에는 1cm 크기의 구멍이 다수 생겨나 피를 뿜고 있었다.
“끄, 끄아아악…….”
주상혁이 침을 던진 자신의 손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주상혁도 예상하지 못했던 위력이었던 것.
‘꿰뚫었어……?’
아니 저번이야 돌벽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번엔 대상이 마나를 사용해 신체를 강화하는 각성자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대로 침이 관통해 버린 것이었다.
주상혁이 당황하기도 잠시 이럴줄 알았다는 듯 내색하지 않고 걸었다.
남자들이 주저앉은채 엉거주춤 물러났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주상혁이 팔뚝의 침술키트에 마나를 주입하자 다시 손가락 사이사이에 다수의 침이 걸렸다.
두 남자가 새파랗게 질려 얼어붙었다.
“그래 그 자세 그대로 거기 있으라고.”
주상혁과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져 갔다.
20m쯤 되는 거리가 10m를 지나 5m쯤 가까워졌을 때였다.
“하…… 거참 말 안 듣네.”
주상혁이 돌연 뒤돌며 후방에 들고있던 침을 뿌렸다.
“히익.”
지켜보던 두 남자가 기겁한 소리를 흘렸다.
뒤편에 남아 있던 남자 하나가 도망치다말고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부들부들…….
급소는 피해서 던졌으니까 아마도 죽지는 않았을 터였다.
“뭐, 저대로 놔두면 과다 출혈로 죽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애초에 그런 거까지 신경 써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힘이 약했다면 당하는 건 주상혁이었을 테니까.
주상혁이 방금전 도망가던 남자와는 달리 그 자리에 서서 부들부들 떠는 여자를 보고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알았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상혁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상혁이 코앞에 도착하자, 두 남자가 누구 먼저 할 거 없이 엎드려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은…….”
“거 꼬추 달린 놈들이 겁나 시끄럽네.”
주상혁이 서늘한 눈을 떴다.
“입 닫아.”
두남자가 동시에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고양이가 담넘는 소리마저 천둥소리처럼 들릴 만큼 삭막한 적막이 흘렀다.
“나를 미행한 목적은?”
“…….”
“아, 질문엔 답해도 된다.”
입을 틀어막고 있던 남자 중 한 놈이 말했다.
“클린트 카드…….”
“클린트 카드? 그게 목적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주상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그걸 가져다가 뭐 하려고?”
“클린트 카드는 클린트 경매장의 회원권 같은 겁니다.”
“그래서?”
“그게 조금 비싸게 팔립니다.”
“얼마나?”
“평균적인 가격을 묻는 거라면 오십억쯤…….”
주상혁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따로 돈을 주고 구입한것도 아니고 그저 라이센스를 지급하고 발급받은 카드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게 오십억이란다.
물론 주상혁이 듣기로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심사가 까다롭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오십억은 과하게 비싼 금액이었다.
“뭐, 그렇게 비싸?”
“그, 그건 어떤 의미로 물어보시는 건지…….”
“말 그대론데? 왜 그렇게 비싸냐고 그냥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라이센스 제출하는 걸로 발급해 주는 거잖아? 라이센스도 경매장을 나갈 때 돌려받고.”
박지훈의 경우엔 재력과 각성자라는 점에서 자격증을 받았겠지만, C등급 각성자 이상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발급해 주는 걸로 알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비쌀 이유가 없었다.
주상혁의 말에 두 남자가 눈짓을 주고받더니 답했다.
“라이센스는 경매장을 나갈 때 경매장에서 회수하는 물품이 아닙니다.”
“그래? 그건 몰랐네?”
주상혁이 물었다.
“그래서 이게 왜 오십억이나 하는 건데?”
“클린트 카드가 있으면 전 세계 모든 클린트 경매장을 마음껏 드나들 수가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 같은 놈들에게는 필수품이랄까…….”
“근데?”
“문제는 범죄자는 발급을 안 해 주거든요…….”
“아, 그런 거였어?”
이제야 비정상적인 가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하긴 오십억으로 전 세계에 자기 아지트를 갖는 셈이니까.’
심지어 추격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없다.
군침질질 흘리면서 강탈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도난에 주의하라는 말이 이거 때문이었구만?’
재발급이 안되니 주의하라는 안내원의 말이 어째선지 새롭게 다가왔다.
주상혁이 생각을 마치고 두 남자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다른 궁금한 것 좀 몇 가지 묻자.”
“마, 말씀하십시오.”
“폴라나 포션을 팔 거라는 놈, 보거나 들은 적 있어?”
* * *
진득한 대화를 마친 주상혁은 회복 포션 몇 개 던져 준 후 대로변으로 나왔다.
물론 위해를 가하려고 했던 녀석들이다 공짜로 포션을 주진 않았다.
“이 정도면 노다지구만.”
주상혁의 손에는 아주 값비싼 물건이 들려 있었다.
다섯 장의 클린트 카드였다.
“다섯 장이면 이백오십억인가?”
수입이 꽤 짭짤했다.
“뭐, 한 가지 흠이라면…….”
녀석들이 핵심적인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는 게 흠이었다.
다섯 장의 클린트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주상혁이 소개받은 펍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 분쯤 녀석들이 알려 준 방향으로 향하던 주상혁이 표정을 구겼다.
의외로 길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
“길을 잘못 들었나?”
주상혁이 막힌 길목을 확인하고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주상혁이 대로변으로 나오자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얼굴이 말을 걸었다.
“저기…….”
주상혁이 시선을 주자 움찔거리며 물러나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Lv.43 강혜영.』
아까 주상혁에게 클린트 카드를 강탈하려던 무리에 속해 있던 여자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냐? 클린트 카드를 받고 싶으면 폴라나 포션에 대한 정보를 물어와.”
이곳에서는 회원 번호가 휴대폰의 전화번호다.
주상혁은 이 회원 번호를 알려 주며 클린트 카드를 받고 싶으면 정보를 구해 오라고 말한 상태였다.
실제로도 합당한 정보를 얻어 온다면 얼마든지 돌려줄 마음도 있었다.
“부탁이야, 카드 돌려줘 대신에 다른 정보를 줄게.”
주상혁이 강혜영을 보며 생각했다.
‘몇 살이나 되려나?’
자세히 보면 볼수록 많이 어렸다.
아무리 잘 쳐줘도 중학생을 갓 지난 고등학생 수준의 외모였다.
“쯧, 세상 진짜 미쳐 돌아가네.”
주상혁이 옆으로 툭 밀쳐 내고는 걸어갔다.
강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후회할걸?”
“후회?”
“아까 그 녀석들 거짓말했거든.”
주상혁이 관심이 생겼는지 돌아섰다.
“거짓말?”
강혜영이 말했다.
“그전에 약속해 클린트 카드를 돌려주겠다고.”
“그래 약속하지, 뭐. 쓸 만한 정보면 줄게, 카드.”
강혜영이 말했다.
“그 녀석들 사실 폴라나 포션에 대해서 알아.”
“그래?”
사실 이건 주상혁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다만 녀석들을 풀어 주면 좋든 싫든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시적으로 풀어 준 것뿐이었다. 알고 있는 만큼 변심하고 정보를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 말이다.
“그게 다야?”
“그 녀석들 아마도 함정을 팔 거야 연락이 오거든 나가지 마.”
주상혁이 물었다.
“그걸 말해주는 이유는?”
“어차피 그 녀석들하고는 이틀 전에 만났을 뿐이고 나는 그 카드가 필요해.”
“녀석들에게 보복당할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냐?”
“어차피 카드만 돌려받으면 바로 떠날 거야.”
입꼬리를 올린 주상혁이 카드에 마나를 실어서 던졌다.
강혜영의 클린트 카드가 그녀의 발 옆에 꽂혔다.
‘애는 자기 이름인 거 봐서 범죄자는 아니니까.’
클린트 카드에 적힌 이름과 머리 위의 이름이 일치한다.
범죄자라면 클린트 카드를 본인 명의로 발급받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인생 똑바로 살아라.”
딱 한 번 면죄부를 주기로 한 주상혁이 설교하듯 툭 말을 던지고 걷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강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이름이 뭐야?”
걸음을 멈춘 주상혁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정준혁.”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