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11
Book 3 Chapter 1
전날 새벽까지 정보를 수집하던 주상혁은 다음날 점심 무렵이 되어 일어났다.
가슴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주상혁이 주주의 눈을 보고 중얼거렸다.
“배고픈가 보네.”
이젠 경험이 쌓여 딱히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주주의 밥그릇을 꺼내 그 위로 값비싼 약초를 다수 내려놓았다.
밥그릇에 코를 박고 바쁘게 먹는 주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상혁이 턱을 굈다.
“근데 넌 레벨 업은 했는데 좀처럼 커지진 않는다?”
『Lv.23 청운해태.』
전에 주상혁의 마나를 빌려 갔을 때는 훅 커졌던걸 감안하자면 상당히 의아했다.
주주는 1레벨이나 지금이나 외견상의 모습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으니까.
“혹시 마나를 가져가야만 커지는 거냐?”
왕!
주상혁의 말에 답하고는 다시 먹는 것에 여념 없는 주주를 보며 주상혁이 생각했다.
‘그럼 이 녀석의 전주인은 얼마나 강했던 거라는 거지?’
주주에게 빌려준 마나의 양이 크기와 비례한다면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주주는 어지간한 언덕만큼이나 컸었다.
‘물론 거기엔 주주의 기본 레벨도 상당히 적용되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역시나 체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아아암.
주주를 지켜보던 주상혁이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뭐 할까 고민이네…….”
당연한 말이지만 정보 수집도 밤이 되어야 가능했다.
주상혁이 머리맡에 내려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문자는…….”
클린트 카드를 빌미로 정보 수집을 맡겼던 각성자들에겐 아직 연락이 없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의외네?’
녀석들은 분명히 폴라나 포션에 대해서 정보가 있는 듯했다. 강혜영도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게 주상혁이 바라는 위조 폴라나 포션에 대한 건지는 아직 의문이었지만 일단 폴라나 포션과 관련이 있는건 확실했다.
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폴라나 포션에 대해 슬쩍 물어봤지만 반응은 비슷했다.
‘의외로 거물일 수도 있다는 건가……?’
생각 이상의 강적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연락이 온다고 내뺄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그 각성자들이 위조된 폴라나 포션과 관련이 있다면 조기에 종결시킬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근데 이런 걸 보고 겁을 상실했다고 하는 건가?”
평소에 전동욱에게 조련당한 탓이 분명했다.
‘예전이라면 조금만 위험해도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주상혁이 폴라나 포션의 생각을 마치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주상혁이 오른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봤다.
메인창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클린트 어플이 보였다.
뚫어져라 바라보던 주상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할 것도 없는데 재미 삼아 물건이나 올려 볼까?”
* * *
주상혁이 인벤토리를 켰다.
“어디 보자 적당한 물건이…….”
주상혁이 서른다섯 칸으로 이루어진 인벤토리를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바라봤다.
대부분이 포션이 담긴 가방으로 꽉 차 있었기에 사실상 물건은 몇 개 없었다.
“17% 폴라나 포션은 일단 아니고…….”
주상혁이 쓰기 위해 남겨 둔 고성능 포션들은 당연히 제외였다.
“폴라나를 비롯한 일부 약초 역시 제외.”
마지막으로 먹다 남은 보충제를 지나 주상혁의 시선이 딱 정지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마나메탈.』
중요한 물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월간 퀘스트를 클리어해 얻은 물건이었다.
주상혁이 마나메탈을 꺼내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팔짱을 낀 주상혁이 마나메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팔아? 말아?”
아직 용도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으니 가지고 있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월간 퀘스트 보상인데?’
다음 달이 되면 또다시 주상혁의 손으로 돌아올 물건이기도 했다.
“음…….”
눈을 감고 생각하던 주상혁이 결심한 듯 눈을 떴다.
“팔자.”
휴대폰을 집어 든 주상혁이 어플을 실행시켰다.
“물품 등록 이건가?”
주상혁이 구석에 있는 메뉴 버튼을 눌러서 물품 등록을 터치했다.
창이 전환되고 세부 입력창이 떠올랐다.
물품등록 요청서.
물품 이름:
시작 입찰가:
마감 일자:
수량:
물품 세부설명:
판매자 회원번호:
판매자 이름:
주상혁이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했다.
“물품 이름은 마나메탈…… 시작가는 얼마가 좋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주상혁이 100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입력했다.
애초에 등록의 동기가 심심풀이 정도이기도 했고 기왕이면 비싸게 올려서 이목을 끌어 볼 생각이기도 했다.
혹시나 사용법을 짐작한 사람이 접촉해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
“마감 일자는 경매 마지막 날로 등록하고…… 수량 한 개에…….”
세부 설명을 대충 입력한 주상혁이 클린트 카드를 꺼내 클린트 넘버까지 입력을 마쳤다.
“이름은 굳이 실명으로 할 필요 없다고 그랬으니까…… ‘A’.”
모든 정보를 입력한 주상혁이 신청 버튼을 누르고 3 분쯤 지났을 때였다.
띵동.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주상혁이 가발에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까지 다급히 쓰고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 있는 건 검은색 정복의 두 남녀였다.
남자 쪽에서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물품 등록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상혁이 당황했다.
‘아, 물건을 받으러 온 건가?’
예고도 없이 바로 받으러 올 줄은 몰랐던 주상혁이 침대로 후다닥 뛰어갔다.
주상혁이 들고 온 마나메탈을 내밀었다.
“여깄습니다.”
주상혁이 물건을 건네자 남자가 말했다.
“레나, 받아두도록 하세요.”
남자의 말에 반발 물러나 있던 여자가 앞으로 나서서 마나메탈을 받았다.
여자의 손에는 작은 유리막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 보관함이 있었다.
여자가 받아 든 마나메탈을 그곳으로 넣어 들었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하얀색 천으로 물건을 가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지켜보던 남자가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재운이 함께하시길…….”
잠시 후 두 사람이 복도를 통해 사라졌다.
방문을 닫고 방 안으로 돌아온 주상혁이 얼떨떨한 기분으로 침대로 돌아갔다.
주상혁이 침대에 털푸덕 앉았다. 때마침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클린트 경매에 상품이 등록되었습니다.
―연동된 계좌에서 시작 입찰가의 3%가 인출됩니다.
천억의 3%.
삼십억이라는 가격이 빠져나갔다는 말이었지만 그 정도의 돈은 이미 주상혁에게 그리 큰 액수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운 좋게 천억에 팔려만 준다면.”
이득, 그야말로 개이득이었다.
주상혁이 핸드폰을 조작해 산삼을 검색했다.
오십 년 삼.
현재 입찰가: 362억…….
어쩌면 퀘스트로 받을 50년 삼 이외에 오십 년 삼을 하나 더 꽁으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상혁이 50년 삼을 바라보며 군침 흘리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모르는 회원 번호에서 온 문자를 확인한 주상혁이 씩 웃었다.
“오늘 밤이란 말이지?”
소식이 없던 각성자들에게 연락이 마침내 걸려 왔다.
* * *
어제와 비슷한 시각.
주상혁은 지금 1구획의 중심에 위치한 공원에 서 있었다.
문자에서 말한 장소가 이곳이었기 때문.
‘양반 되긴 글러 먹은 놈들이긴 하네.’
11시 15분.
약속 시간보다 45분이나 지난 상황임에도 녀석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녀석들을 기다리다 지루함을 느낀 주상혁이 공원을 쓱 살폈다.
시간이 제법 지난 탓인지 처음 도착했을 때와 다르게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밤이긴 해도 수많은 가로등 덕분인지 비교적 밝은 분위기인 공원이었지만 사람이 하나도 없자 으슥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파직, 파지직.
주상혁이 소리가 들리는 측면의 가로등을 바라보길 잠시 후였다.
저 멀리 존재하는 가로등부터 순차적으로 가로등이 불이 꺼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야 온 건가?”
주상혁이 미소지었다.
함정이든 뭐든 좋으니 빨리 좀 모습을 드러내 주길 기다리던 주상혁이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달가웠다.
터벅, 터벅, 터벅.
순식간에 어둠으로 변한 공원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곧이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Lv.51 강수호.』
머리 위의 이름은 주상혁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한때 수십 명의 이십 대 여성을 살해한 이유로 전국적으로 수배령이 떨어졌던 악명 높은 흉악범의 이름과 같았다.
‘동일 인물이겠지?’
아마 확실할 것 같았다.
당시 흉악범 강수호는 A급 각성자,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공식 발표됐었다.
실제로도 눈앞 강수호의 레벨은 무려 51.
A급의 시작이 어느 정도부터인지는 주상혁도 잘 모르겠지만, 저 정도의 레벨을 가진 동명이인이 존재할 리 없었다.
‘생긴 건 멀쩡한데 말이야…….’
키는 183 남짓에 외모도 훈훈해서 여심 좀 울렸을 것 같은 외모였다.
‘물론 이게 더 녀석의 악명을 올리는 원인이었지…….’
녀석의 외모에 혹해서 접근했던 여성들이 주로 강수호의 타겟이 되었다.
‘듣기로는 해외로 도주했다고 들었는데…….’
국내에 클린트 경매장이 열리면서 이 기회에 국내로 들어온 듯했다.
‘오랜만에 좋은 일 하게 생겼네.’
우연이든 의도된 행동이든 주상혁은 강수호를 잡을 생각이었다. 녀석이 폴라나와 관련된 녀석일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까.
주상혁이 말했다.
“강수호라 생각보단 거물이네?”
강수호가 의외라는 듯한 얼굴을 만들었다.
“이상하군…… 근 몇 년 동안 내 얼굴 보고 살아남은 놈이 몇 안 될 텐데……?”
“아, 그렇지. 근데 다 아는 법이 있어.”
“무슨 방법이지?”
주상혁이 말했다.
“글쎄, 딱히 말해 주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
강수호가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뭐 그런 거라면 괜찮지. 어차피 팔다리 하나둘 잘리면 알아서 뱉고 싶어질 거야.”
“그래? 나랑 생각이 같네.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있었는데 잘됐어. 피차 몸 성히 물어볼 생각은 없는거 같으니까.”
주상혁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강수호에게 슬쩍 물었다.
“근데 말이야, 그 녀석들도 죽였냐?”
“그 녀석들?”
강수호가 알아먹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클린트 카드를 뺏긴 녀석들 말이지?”
“…….”
강수호가 희열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오랜만에 살인이라 기분 좋았어.”
피식.
그나마 느낄 죄의식까지도 날려버릴 만큼 녀석이 쓰레기라 다행이었다.
주상혁이 옅게 입꼬리를 올리자 강수호가 광기가 흐르는 표정을 지우고는 말했다.
“왜 웃지?”
“기뻐하는 게 보기 좋아서라고 하면 뻥이고.”
주상혁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들어와 밟아 줄 테니까.”
* * *
주상혁의 말에 강수호가 소매 안에서 단도와 단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단검과 단도? 취향이 독특한데?”“베기만 하면 재미없더라고 찌르는 맛이 또 끝내주거든.”
강수호의 잇따른 공격을 주상혁이 간발의 차이로 피하고 공격을 주고받다가 훌쩍 물러났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한데?’
어제 주상혁이 제압했던 녀석들과는 근본적으로 속도부터가 틀렸다.
어제 상대했던 녀석들은 무슨 계열의 각성자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전투가 끝이 났지만 지금 이놈은 아니었다.
강수호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왔다.
‘빨라…… 암살 계열인가?’
주상혁이 피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다음 공격이 파고 들어왔다.
‘역시 대인전 최강이라고 불리는 계열다워.’
일반적으로 전투하면 전투 계열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그건 조금 틀렸다.
던전에서야 확실히 전투 계열이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역할을 하지만 각성자 대 각성자.
즉, 대인전에서는 다른 이야기였다.
적어도 대인전에서 만큼은 암살 계열이 으뜸이었다.
그리고 그 근본이 되는 게 바로 신속함.
스슥.
강수호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 주상혁의 후면에서 나타나 단검을 찔러 넣었다.
휙.
주상혁이 가까스로 반응해 피한 뒤 뒤차기를 날리자 무기를 교차해 강수호가 막아 냈다.
강수호가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미리 안 먹어 놨으면 큰일 났겠는데?’
주상혁은 숙소를 나오기 전에 만약을 위해 미리 도핑을 끝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덕분에 지금 주상혁의 레벨은 무려 57.
강수호보다 6레벨이나 더 높았다.
‘그런데도 살짝 유리한 수준이니까…….’
일단 녀석의 움직임부터 제약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았다.
‘점혈을 사용해볼까.‘
주상혁의 검지와 중지에 도깨비불 같은 마나가 피어났다.
* * *
주상혁의 두 손가락에 피어난 불꽃을 본 강수호의 표정이 굳었다.
‘경계하는 건가?’
절로 웃음이 피어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무척이나 좋은 선택이었지만 이번에 한해서 강수호의 선택은 분명한 패착이었으니까.
꾹, 꾹, 꾹.
점혈을 발동시킨 손으로 주상혁이 자신의 혈 자리를 짚기 시작했다.
주상혁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푸른색 마나의 덩어리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 강수호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스슥.
1초 남짓의 짧은 순간에 20m 남짓 거리를 지우고 강수호가 나타났다. 하지만…….
“크으윽…….”
주상혁을 저지하려 달려들었던 강수호가 발길질에 당해 도로 날아갔다.
단검으로 막았음에도 손끝이 저릿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강수호가 와락 인상을 썼다.
A급 각성자로 살아오면서 정말로 몇번 느껴본적 없는 그런 감촉이었다.
“드디어 다 됐네. 이것도 일이란 말이지.”
푸념을 끝으로 수상한 짓거리를 관둔 주상혁이 강수호에게 한소리했다.
“야, 너는 어릴 때 변신물도 안 봤냐?”
변신할 때 공격하지 않는 건 국룰이다.
“…….”
강수호가 주상혁의 모습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전신에 잔뜩 피어난 수십 개의 도깨비불 때문인지 스산함을 느낀 강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게 뭐지?”
“글쎄, 뭘 거 같냐?”
점혈이 태생이 전투형 스킬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스킬의 메커니즘만 놓고 보자면 혈 자리에 마나를 주입해 침을 놓은 듯한 효과를 일시적으로 일으키는 것에 일맥상통하다.
주상혁이 강수호를 향해 한걸음 걸었다.
주춤.
“뭐야, 왜 물러나?”
반사적으로 주상혁이 다가간 거리만큼 물러난 강수호가 그것을 깨닫고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래? 그렇군. 부탁이라면 안 물러나주지.”
강수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상혁도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엥?’
『마나 증폭의 탕약.』
뭘 꺼내는가 했더니 폴라나 포션이었다.
심지어 주상혁을 당황하게 하는 건 한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진품이잖아?”
진품.
위조된 폴라나 포션이 아니라 주상혁이 만든 포션이었다.
“아, 뭐야…… 헛다리 짚은 거란 말이잖아.”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꿀꺽, 콰직.
빈 병을 발로 밟아 으스러트린 강수호의 마나가 치솟기 시작했다.
『Lv.54 강수호.』
“3레벨 정도면 뭐…….”
오십 대에서 세 단계가 오른 거니 사실상 낮은 레벨 구간의 수십 레벨과 맞먹을 능력치의 상승이었다. 하지만.
『Lv.59 주상혁.』
두 단계긴 해도 주상혁도 레벨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게 있지.’
푹
주상혁이 침을 장전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강수호가 침을 의식하는지 신중해졌다.
‘그래 의식해라.’
바라던 바대로 침을 의식한 탓에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강수호를 향해 주상혁이 역으로 파고들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엄청난 속도로 강수호를 향해 쏘아졌다.
강수호가 주상혁의 침이 들린 손이 움직이는 것에 맞춰 응수하려다가 말고 흠칫했다.
“팔콘펀치!“
빠악.
주상혁의 반대 주먹이 엇박자로 쏘아졌다. 대처하지 못하고 안면을 얻어맞은 강수호가 그대로 날아갔다.
‘침이 아니라 주먹이라고?’
위력에 못 이겨 통통 튀기며 바닥을 구르던 강수호가 바닥에 스크래치를 남기고 겨우 자세를 잡았다.
‘어디지?’
주상혁이 있어야 할 장소에 없었다. 강수호의 눈이 빠르게 요동쳤다.
“누굴 그렇게 찾냐?”
강수호가 목소리가 들리는 뒤편으로 빠르게 돌며 도를 휘둘렀다가 흠칫 놀랐다.
‘팔꿈치를…’
주상혁이 팔꿈치를 잡아 강수호를 멈춰 세웠다.
상황파악이 된 강수호가 남은 손에 들린 단검을 황급히 찔러 넣으려다 복부를 무릎에 얻어맞고 휘청였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주상혁의 공격을 연달아 맞아 가며 강수호가 자신의 어깨를 향해 눈알을 굴렸다.
‘침?’
어깨에 박혀 있는 침이 보였다.
콰득.
이를 꽉 깨문 강수호가 공격을 견디고 턱을 향해 발을 쳐올렸다.
샌드백을 두들기듯 남은 손과 발로 번갈아 가며 타격하던 주상혁이 팔꿈치를 놓고 물러났다.
10m 거리까지 두어 번에 걸쳐 물러난 주상혁의 모습이 보였을 때였다.
어깨에 박혀서 괴롭히던 침을 제거한 강수호가 당황한 모습을 그렸다.
어느덧 자신의 몸에 피어난 도깨비불 때문이었다.
주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프라이즈! 어때?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길래 준비해 봤는데.”
* * *
주상혁은 발로 공격하는 한편 손으로 공격할 때는 쭉 점혈로 공격하고 있었다.
강수호를 죽이는 거야 이미 승기를 잡은 순간에 급소에 침을 박아 넣었으면 간단했겠지만, 그래서야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강수호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마나를 주입해서 효과를 보는 거니까 효과가 그리 길지는 않겠지.’
길어 봐야 주상혁과 크게 실력차이가 나지 않는 강수호라면 수십여 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해.’
그렇다. 충분하다 못해 과하다.
신체 일부가 마비되어 저항조차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을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퍽, 퍽, 퍼벅.
주상혁의 생각대로 강수호는 샌드백에 불과했다.
잇따른 공격에 흠씬 두들겨 맞던 강수호가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갔다. 신속함이라는 날개를 잃은 각성자는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챙그랑.
연신 얻어맞던 강수호의 두 자루의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무기를 쥘 정신조차 없다는 증거였다.
퍽, 퍽.
하지만 주상혁의 공격은 계속됐다.
주상혁의 주먹이 때릴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휘청이던 강수호가 결국엔 다리의 힘도 풀렸는지 곧이어 허물어졌다.
주상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강수호의 안면을 힘껏 걷어찼다.
20m를 날아간 강수호가 대자로 뻗었다.
주상혁이 미동도 하지 않는 강수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팔다리가 어쩌고 했던가?”
싸우기 전에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주상혁이 발을 강수호의 어깨에 올렸다.
“살려…….”
뿌드득.
“끄아악!”
듣지도 않고 어깨관절을 그대로 으스러트려 버린 주상혁이 이번엔 허벅지를 밟았다.
콰드득.
피와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강수호의 묵사발난 얼굴에 흘렀다. 주상혁이 이번엔 반대쪽 다리에 발을 올렸다.
“위조 폴라나 포션을 알고 있냐?”
괴로워하던 강수호의 표정이 딱 굳더니 곧이어 엉망이 된 얼굴로 기분 나쁘게 웃었다.
“키키키킥, 그렇군. 네 놈이 박지훈이냐?”
모호한 답이었다.
단순히 긍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반대로 위조 폴라나 포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답한 걸 수도 있었다.
“다음 질문, 동료가 있나?”
퉷.
주상혁이 강수호의 침을 피했다. 강수호가 죽음을 각오한 듯한 얼굴로 조소를 지었다.
어차피 주상혁이 살려 줄 마음이 없다는 것 정도는 파악한 듯 보였다.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지…… 크크크큭.”
주상혁이 허벅지에서 발을 떼고는 침을 하나 장전했다.
“그래 먼저 가 있어라.”
주상혁이 던진 침이 마나가 얼마 남지 않은 강수호의 미간에 적중했다. 1cm 크기의 구멍이 미간에 생겨났다.
“나 말고 다른 놈들로 보내 줄 테니까.”
* * *
“자, 먹어.”
주주의 밥을 챙겨 준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별 소득이 없네…….”
기껏 손에 피까지 묻혀 가며 이틀간 움직여 봤지만 허탕.
여간 힘 빠지는 일이었다.
“이 짓을 아직도 한 달 가까이 더해야 하나?”
이렇게 된 이상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는 게 최선인 거 같기도 했다.
핸드폰을 통해 폴라나와 관련된 물품들을 확인하던 주상혁이 핸드폰을 잠그고 침대 위로 툭 던지려다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거나 한번 확인해 볼까?”
어제 등록한 마나메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심심풀이로 등록한 건 사실이지만서도…….”
어느 미친놈이 한 명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내심 기대가 됐다.
주상혁이 마나메탈에 대한 검색어를 입력했다.
창이 전환되고 마나메탈에 대한 검색 결과가 떠올랐다.
덩그러니 존재하는 상품이 하나 보였다.
당연히 주상혁이 등록한 상품이었다.
‘사진 잘 찍혔는데?’
마나메탈 특유의 신비로운 검은색 마나가 잘 나타나 있었다.
사각 유리 케이스에 보관된 마나메탈의 사진을 본 주상혁이 다음으로 가격을 향해 슬쩍 눈을 돌렸다.
“…….”
주상혁이 눈을 비볐다. 뭔가 이상했다.
마나메탈의 상품 가격을 끔벅끔벅 바라보던 주상혁이 소리 질렀다.
“삼천억??”
밥을 먹던 주주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뜰 정도로 큰소리였다.
* * *
주상혁이 마나메탈을 처음 등록했을 때.
호기심에 끌려 마나메탈을 확인한 사람들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그도 그럴 게 마나메탈의 상세 설명 때문이었다.
전 세계 유일, 하나뿐인 광석, 미스릴 특유의 광채를 보이며 광석의 위를 검은색 마나가 뒤덮고 있다. 용도는 불명.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좋았지만 무려 용도 불명.
말이 좋아 용도 불명이지 한마디로 어디에다가 써야 할지는 물론 사용할 수는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비싼 가격이 발목을 붙잡았다.
“천억?”
“세상에 미친놈이 있지 않고서야…”
고작 주먹만 한 크기의 광물 하나에 천억을 지를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마나메탈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장되나 싶었을 때였다.
정말로 우연한 계기가 세가지 찾아왔다.
첫째는 우연히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외국인 재력가가 클린트 경매의 개장에 맞춰 애인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는 점.
둘째는 이 남자가 애인 앞에서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남자였다는 점.
셋째는 이 남자의 애인이 마나 메탈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달링 나 이거 사 주면 안 돼?”
“어? 이거?”
천억 대충 버려도 좋은 돈은 분명히 아니었다. 하지만…….
“안돼?”
“안 될 리가 있나? 얼마 하지도 않는구만.”
남자가 허세 부려 버리면서 모든 일이 벌어져 버렸다.
제아무리 클린트 경매라 하더라도 거래가가 천억이면 그날 거래되는 최상위 상품에 필적하는 가격.
당연히 가장 커다란 메인란인 ‘투데이 베스트 상품’에 마나메탈이 노출되었고 이 파장은 굉장했다.
클린트 경매장에 참석하고 있는 다른 재력가들의 눈에도 하나둘 띄기 시작한 것.
입찰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냥 세계 유일하다고 가격만 높은 것과 누군가 구매할 사람이 있는 건 명백히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마나메탈을 향한 재력가들의 돈지랄이 시작됐다.
“전 세계 유일이라…… 나쁘지 않군. 1.5배면 떨어져 나가겠지.”
수집이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재력가의 호감을 사기도 했고.
“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1.2배”
미래에 생길 상황을 내다보고 투자를 목적으로 배팅하는 사람도 있었고.
“달링…….”
“맡겨 둬.”
여전히 허세 부리는 바보도 있었다.
그렇게 재력가들의 서로 다른 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하고 하루.
4,113억.
클린틑 경매장 한국지부 오픈 이래 최고의 거래가를 갱신했다.
* * *
주상혁이 마나 메탈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지었다.
“뭐지…… 개꿀잼 몰칸가?”
3,000억을 넘은 것을 확인하고 불과 2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2위였던 순위도 지금은 4,300억이 되면서 1위가 되어 있었다.
이쯤 되니 주상혁도 불안해졌다.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진짜로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상품 등록을 취소해야 할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때는 이미 늦었다 할 수 있었다.
“괜한 짓을 한건 아니어야 하는데…….”
상품 등록을 중간에 취소할 때는 현재 입찰가의 10% 수수료를10%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4,300억의 10%면 430억.
당연한 말이지만 주상혁은 그런 돈이 없었다.
“또 올랐네…….”
말하는 사이 돈이 또 올랐다.
4,350억.
이제 수수료는 435억이었다.
괜한 불안감을 떨쳐 내며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에이, 뭐 있겠어?”
되돌릴 수 없다면 이 기회에 못 해 볼 짓을 해 보기로 했다.
“우리 주주 산삼도 좋아하니?”
주상혁은 처음부터 50 년 삼을 추가로 구하게 되면 주주에게 먹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50 년 삼이라도 20 년 삼 때처럼 초콜릿을 만들어서 섭취하면 중간부터는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
고급 약초일수록 약발을 잘 받는 주주에게 하나쯤 먹여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계산이었다.
왕왕!
주주가 신이 나서 침대에서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다행히 좋아하는 주주를 보며 주상혁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지이이이이잉.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를 보고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A님 당신과 마나메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근데 이건 어떻게 한다?”
* * *
엄준식.
그는 한국에서 제일가는 천재 발명가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그도 세계무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그의 두뇌가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도 독자적인 발명품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엄준식은 누군가 이미 개척해 놓은 발명품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구성하는 능력은 월등했다.
하지만 이 바닥은 창의성.
오로지 창의성 하나로 먹고사는 곳이다.
새로운 신드롬을 일으킬만한 발명품을 엄준식은 내놓은 적이 없었다.
이것이 전문가들의 엄준식에 대한 평가절하의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엄준식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엄준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사람 할 것 없이 인정할 만큼 그는 세기의 천재였다.
엄준식 그는 천재 중의 천재.
달리 표현한 말이 없어 문제였지만, 굳이 말하자면 만재, 아니 천곱하기 천을 해서‘백만재 정도는 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되려 현실에서는 그게 발목을 잡았다.
너무나도 뛰어난 머리 때문에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고 진득하게 붙잡질 못했다.
잠깐만 보고 만져 봐도 그 분야를 통달하고 깨달았으니 쉽게 흥미가 식어 버린 것이다.
엄준식은 흥미가 식고 손에서 놓아버린 것은 다시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심심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 엄준식이 클린트 경매에 참가하게 된 건 그저 만연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모방작을 만들며 벌어들인 돈이라도 탕진하면서 미칠 듯한 지루함을 달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참가한 클린트 경매 사흘째.
엄준식은 지금 27년 인생 최고로 가슴을 설레는 만남을 하고 있었다.
사춘기 때 짝사랑했던 민영이를 보며 설레던 그 시절보다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마나메탈.
전 세계 단 하나뿐인 금속.
천재 엄준식을 사로잡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했다.
“가격이…… 1500억?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베짱이처럼 적당히 놀고 먹고 했던 엄준식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 과거의 게을렀던 자신이 한스러운 적이 없었다.
엄준식이 자신의 계좌와 연동된 재산을 확인했다.
“1,555억…….”
엄준식이 주저 없이 자신의 전 재산을 배팅했다.
“제발 따라오지 마라.”
하지만 그의 바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입찰자가 가격을 갈아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돈, 돈이 필요해.”
엄준식의 마음이 급해졌다.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 앞으로 향한 엄준식이 생전 먼저 해 본 적 없던 전화라는 것을 돌리기 시작했다.
월반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열 살 이상 많던 대학원 시절 동창들.
평소 그의 재능을 탐내던 유명 교수들.
한때 비즈니스 차원으로 함께 일했던 파트너들.
돈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라면 일단 전화부터 걸고 봤다.
“돈이 있으면 나를 사라.”
“얼마냐고?”
“1,000억! 그 정도만 주면 1년 동안 개처럼 시키는 대로 일만 하겠다고 약속하지.”
말이 1,000억이지 만약 누군가 1년 계약금으로 이 금액을 말한다면 미친놈이라고 욕만 바가지 먹을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만인이 인정하는 백만재 엄준식이었기 때문일까?
열 번 안팎의 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엄준식은 조건을 수락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시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총알이 차오르자 엄준식이 바로 입찰에 참여했다.
엄준식이 적은 금액은 2,555억.
빌린 돈까지 하나도 안 남기고 전부다 마나메탈에 박아 버렸다.
엄준식의 클린트 넘버가 현재 최고 입찰자 정보에 떠올랐다. 그러나…….
찰나.
그건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끔벅, 끔벅, 끔벅.
딱 세 번의 눈을 깜박이고 뜨자 그 위에 새로운 입찰가가 새겨진 것이었다.
분노한 엄준식이 책상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이거 조작 아니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클린트 경매장 쪽에서 일부러 호구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올린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준식이 할 말을 잃고 절망했다.
엄준식이 아니라도 가격이 수시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얼마 만에 만난 가슴을 설레는 만남이었는데 이대로 놓쳐야 한다는 상실감이 지대했다.
“아니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다시 경매장으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엄준식이 전화를 다시 돌리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굳었다.
“그런데 더 빌린다고 해서 살 수 있을까?”
근본적인 의심부터 들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만약 자신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다른 입찰자들이 배팅하는 거라면?
단순한 수집욕이라면 중간에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돈을 추가로 빌린다 하더라도 자신이 없었다.
일반인에 비한다면 자신이 돈이 많았던 거지, 전문 기술력과 특허를 보유한 발명가들의 재산에 비한다면 베짱이 같은 생활을 해오던 엄준식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엄준식이 판매자의 클린트 넘버로 눈을 옮겼다.
“제발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엄준식이 문자를 보냈다.
* * *
엄준식의 문자를 받은 주상혁은 당황했다.
마나메탈을 처음 올리고 나서라면 문자를 받았던 적이 있다.
대부분 조롱하는 듯한 문자였긴 해도 그때만큼은 불나도록 문자가 왔었다.
하지만 입찰 레이스가 과열화된 이후로 문자를 보낸 사람은 끊겼었다.
오히려 물건의 가격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들이 부끄러워 숨기에 바빴다.
근데 한동안 끊겼다가 이번에 문자가 도착했다. 내용도 이전 내용과 조금 달랐다.
“심지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마나메탈에 대해?”
주상혁이 이대로 무시해야 할지 대화를 나눠 봐야 할지 잠시간 고민할 때였다.
지잉.
―저기요? A님.
지이잉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지이잉.
―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연달아 도착하는 메시지를 보고 주상혁이 혀를 찼다.
“이상한 사람인가?”
잠시 잠잠해질 때까지 무시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구석에 내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마나메탈에 대해서 꼭 연구하고 싶습니다. 저 엄준식입니다.
“엄준식? 무슨 줄임말인가?”
엄준식이란 단어에 흥미를 느낀 주상혁이 답했다.
―엄준식이 뭔데요?
제 이름입니다.
에이 거짓말하지 마요 어떻게 사람 이름이 엄준식이에요?
“답이 안 오네?”
주상혁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할 때였다.
“여하튼 마나메탈에 대해서 꼭 연구하고 싶습니다. 저 영롱한 때깔 좀 보십시오. 저 녀석도 절 원하고 있습니다……인가?”
새로 온 문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것을 본 주상혁의 평은 조금 변했다.
나사가 풀려 있어도 한두 개가 아닌 최소 서너 개쯤 풀려 있는 사람.
이상한 사람에서 많이 이상한 사람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겠네.”
마나메탈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주상혁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솔직히 나도 궁금한 건 맞단 말이지…….”
마나메탈의 정체, 사용법 등.
사용할 곳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상황에 대처하기도 편할 것이었다.
주상혁이 조금 전까지 올라가는 마나메탈의 가격을 보고 불안해했던 것도 이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다.
“대화할 가치 정도는 있으려나?”
만나서 대화를 해 보고 얻을 게 없겠다 싶으면 그때 거절해도 될 일이었다.
주상혁이 일단 대화를 하며 정보라도 얻을 겸 손가락을 움직여 답했다.
―일단 만나서 대화해 보죠. 그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 * *
비슷한 시각.
지난밤 주상혁이 한바탕했던 공원에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검은색 바탕의 정복과 좌측 가슴에 황금색 실로 ‘클린트’라고 쓰인 자수를 봤을 때 클린트 경매장 측 가드들이 분명했다.
터벅터벅.
시체 주변으로 남자들이 서 있는 그곳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십 대 중후반의 남자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푸른색 눈동자와 노란 금발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래, 어떻던가?”
클린트 경매장 한국 지부의 총지배인 레온이었다.
강수호의 시체를 이곳저곳 조사하던 남자 중 한 명이 일어나서 말했다.
“남자의 신분은 리우평 중국인으로…….”
“아니, 그거 말고 이자의 본래 신분 말이야.”
1구획에서는 세계를 불문하고 이런 살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는 범죄자일 확률이 높다. 이자의 신분도 거짓일 확률이 높았다.
총지배인 레온이 말했다.
“아직 파악 전인가?”
“아닙니다.”
“그래 말해 보게.”
레온의 말에 남자의 입이 열렸다.
“남자의 신분은 강수호. 본래 수 년전에 이곳에서 수배령이 떨어진 흉악범이랍니다.”
“실력은?”
“A급에 거의 필적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론 그것보다 모자란 수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지배인 레온이 강수호의 미간 사이의 구멍을 보고는 말했다.
“결정타는 이건가?”
“…….”
분질러진 뼈들은 페이크.
아마 결정타는 미간을 꿰뚫은 무언가가 분명했다.
‘팔다리를 분질러 놓은 걸 보면 고문? 비슷한 이유일 테고.’
이 바닥에서 오래 살다 보니 가볍게 살펴만 봐도 대략적인 상황파악이 가능했다.
‘흥미가 생기는군.’
A급은 절대로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한국지부에도 A급은 자신을 포함 채 열 명 남짓이었으니 그 수준은 얕잡아 볼 수 없었다.
레온은 이런 수준 높은 싸움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
혼자서 생각에 잠겼던 레온이 구석의 가로등과 공원 내부 분수대의 동상을 순서대로 바라보더니 남자에게 말했다.
“여기가 몇 번 카메라였지?”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330번대 카메라 중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온이 말했다.
“한번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