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14
Book 3 Chapter 4
이십 분쯤 지났다.
공원에 도착한 주상혁이 나무정자를 발견하고 말했다.
“이쪽에 대충 앉죠.”
포장된 음식들을 까는 주상혁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거, 별일이네…….’
주상혁의 감은 안 좋은 쪽으로는 적중률이 좋은 편이다. 그건 전생에도 그랬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경매장에서도 불길해서 들어 놓은 보험 덕택에 퀘스트를 겨우 완수했던 것만 봐도 뛰어난 감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상혁의 그 감이 완벽하게 빗나갔다.
강혜영을 가게 앞에서 다시 만났을 때.
불길했던 감이 들었는데 제대로 빗나간 것이다.
강혜영은 두 남자를 처리하자 말없이 사라졌다.
주상혁이 말없이 김밥을 씹고 있자, 마찬가지로 오물오물 먹고 있던 한혜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고민 있으세요?”
“왜요?”
“조금 전부터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주상혁이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아뇨, 별것 아닙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주상혁이 다른 화제를 찾았다. 때마침 한혜지의 다리 위에 자리를 잡은 분신이 보였다.
“그나저나 삐삐가 속 썩이지는 않죠?”
삐삐란 이름은 한혜지가 분신에게 붙여 준 이름이었다.
“네네, 준혁 씨 말대로 엄청 영리해서 딱히 속 썩이는 일 없어요.”
주상혁이 한혜지와 삐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때였다.
한혜지가 젓가락을 옮기는 것을 지켜보다가 주상혁이 물었다.
“돈가스 좋아하시나 봐요?”
움찔.
‘고구마치즈돈가스’를 집중 공략하던 한혜지가 움찔했다.
생각할 게 있어 김밥만 계속 집어 먹던 주상혁이 이제야 눈치챈 것이었다.
돈까스는 어느새 몇 조각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 별생각 없이 먹고 있었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한혜지가 주상혁 쪽으로 용기를 밀어줬다.
주상혁이 젓가락으로 콕 집어 먹었다.
특유의 달콤한 맛이 안 좋은 생각을 조금이라도 떨쳐 주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 * *
그날 새벽이었다.
허억…… 허억…….
땀범벅이 된 주상혁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꿈인가……?”
어두운 방, 침대 위에서 거친 숨을 뱉고 있는 자신을 확인했다.
조금 전 상황이 끔찍한 악몽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뭔 놈의 꿈이 이렇게 생생하냐…….”
마치 현실처럼 너무 생생했다.
주상혁의 머릿속에 조금 전 꿈의 장면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주화영.
목이 잘려 굴러다니는 식구들.
산산조각으로 무너진 청초길드.
정말이지 참혹한 모습이었다.
할짝.
주상혁이 손등을 핥는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꾸우웅.”
우수에 찬 주주의 눈이 보였다.
“괜찮아.”
주상혁이 주주를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의 불을 켜러 걸어간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뭐지? 어째서 그 녀석이…….”
쓰러져있던 사람 중에 딱히 관련 없다고 인지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주상혁이 컴퓨터 책상 앞으로 이동했다.
인터넷을 킨 주상혁이 이름 하나를 검색했다.
강혜영.
“역시, 당연하지…….”
검색 결과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한두 명 나오긴 했지만, 그 소녀는 아니었다.
주상혁이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꿈속이었지만, 감정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 중 강혜영이 죽을 때 주상혁은 가족이 죽을 때만큼이나 감정의 동요가 존재했었다.
츳…….
“꿈 한번 지랄 맞네.”
주상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주상혁이 침대를 바라보다가 한숨 쉬었다.
재수 없는 꿈을 꾸고 난 직후라 반갑던 침대가 당기질 않았다.
주상혁이 기지개 켰다.
“산책이나 좀 하고 올까?”
* * *
이른 새벽 외출을 한 주상혁은 정처 없이 걸었다.
단지 기분전환이 목적이었으니, 목적지가 있을 리 없었다.
낮에 청초길드 근처의 공원까지 오게 된 주상혁이 왔던 길을 돌아갈 때였다.
‘쟤는 저기서 또 뭐 하지?’
낮에 봤던 강혜영이 어두운 길을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뭔가 찾고 있나?’
시선을 땅으로 고정한 채 걷고 있는 게 무언가 잃어버린 듯했다.
주상혁의 성격상 그냥 스쳐 지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 진짜…….”
걸음을 내치려던 주상혁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이고는 강혜영을 향해 걸었다.
조금 전 그 꿈을 꾼 직후여서인지 무시할 수가 없었던 이유였다.
“자주 본다?”
주상혁의 목소리를 들은 강혜영이 고개를 들었다.
꾸벅.
강혜영이 목례하고는 스쳐 지나갔다. 주상혁이 강혜영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뭐 찾고 있냐?”
“있어요, 그런 게.”
무언가 찾기에 열중하는 강혜영의 뒤통수가 주상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밤잠까지 설치며 찾을 게 무엇일까……?’
주상혁이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어, 품속에서 클린트 카드를 꺼내 보였다.
“혹시, 이거 찾냐?”
원래라면 박지훈에게 줘야 했지만, 깜박하고 주상혁이 아직 가지고 있던 클린트 카드였다.
주상혁의 손에 들린 클린트 카드를 확인한 강혜영이 놀란 눈으로 다가왔다. 정답이었다.
“돌려줘요!”
“미안한데 이건 내 건데?”
“거짓말하지 마요”
“확인해 보던가.”
카드의 박지훈의 이름을 확인한 강혜영의 실망하는 모습이 보였다.
‘으휴, 그걸 그새 또 잃어버리냐?’
물론, 전에는 주상혁이 강탈한 것이었지만, 여하튼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관리가 허술한 건 변함없었다.
강혜영이 의심하는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
“제가 클린트 카드를 찾는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며칠 전에 경매장에서 널 봤거든.”
주상혁이 너스레 떨었다.
“그냥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거지, 뭐.”
주상혁이 강혜영의 표정을 슬쩍 확인했다.
여전히 뭔가 경계하는 기색이 남아 있었지만, 더 캐물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상혁이 말했다.
“그보다 그게 얼마나 비싼 건데 그새 잃어버리냐?”
“어쩔 수 없었어요. 낮에 그놈들이 쫓아다니는 것 때문에.”
강혜영이 말했다.
“근데 진짜 제 거 못 본 거 맞아요?”
“얼씨구, 남을 의심하는 건 나쁜 거라고 안 배웠냐?”
“아저씨도 살면서 누구 의심해 봤을 거 아니에요.”
“그치, 그래도 난 적어도 뒤로 의심하지 앞에선 안 해.”
강혜영이 주상혁을 의심쩍게 보다가 뒤돌았다.
“여하튼, 못 봤으면 됐어요.”
강혜영이 다시 클린트 카드를 찾아서 걷기 시작하자 주상혁이 뒤를 따라 걸었다.
주상혁이 물었다.
“근데 말이다. 오십억이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
“돈 참 많으신가 보네요? 집착?”
“아니, 그건 아니지만…….”
주상혁이 말했다.
“막말로 잃어버린 게 언제인데 아직까지 떨어져 있겠냐는 거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단돈 천 원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홀라당 주워 가는 게 사람들이다.
클린트 카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제자리에 아직 남아 있을 확률은 낮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거지.”
강혜영이 걸음을 멈췄다.
‘뭔데? 이 적막?’
주상혁이 영문 모를 침묵에 의아했을 때였다.
“충고 감사하긴 한데 저는 더 찾아야겠으니까 저리 가세요.”
강혜영이 입을 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혜영의 등을 대고 주상혁이 말했다.
“어린 것이 벌써 돈 좋은 건 알아 가지고.”
“당신이 뭘 알아…….”
강혜영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강혜영이 휙 돌아섰다.
“나한테는 엄청 소중한 물건이었단 말이야.”
글썽이는 강혜영의 얼굴을 본 주상혁이 움찔했다.
“아니, 그런다고 울 거까지야.”
“안 울었거든요?”
강혜영이 눈물을 훔치고는 휙 돌아섰다.
“여하튼 도와줄 거 아니시면 가던 길 가주세요. 부탁할게요.”
강혜영의 뒷모습을 보고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던 주상혁이 돌아섰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긴 했다.
주상혁이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두어 걸음 걷다가 비스듬히 뒤돌았다.
고집을 부리는 강혜영이 보였다.
“꼭, 필요한 이유가 뭔데?”
“…….”
주상혁의 물음에 강혜영의 답은 쉽게 들려오지 않았다.
“경매장에서 나왔으니 출입 용도로 필요한 건 아닐 거 아니야?”
강혜영의 목소리가 뜸을 들이다 들려왔다.
“치료해야 해요.”
“치료?”
“우리 아빠를 치료해야 해요.”
* * *
요약하자면 강혜영의 말은 이랬다.
삼 년 전쯤 아빠가 던전에 다녀왔다가 갑자기 쓰러졌단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치료할 법한 각성자는 찾았지만, 요구한 금액은 백억.
이마저도 며칠전에야 선수금 오십억과 완료 후 오십억을 추가 지급하는 걸로 되었단다.
“말했으니까, 아저씨도 약속 지켜요.”
주상혁은 사정을 설명해 주면 클린트 카드를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주상혁이 말했다
“근데 너 몇 살이냐?”
“열아홉인데요?”
“그래? 의외네.”
“뭐가요?”
생각하는 것보다 나이가 많았다.
끽해봐야 중3이나 고1 남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특유의 젖살 때문에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나 보다.
“난 올해 스무 살이다. 아저씨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냐?”
“그럼 뭐라고 불러요.”
“전에도 한 번 말해 줬잖아. 준혁, 정준혁이다.”
강혜영이 주상혁을 바라보다가 돌연 놀란 표정을 그렸다. 아마도 주상혁을 떠올린 것일 거였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목소리도…… 거짓말 친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지 경매장에서 봤다고 했잖아?”
의심 섞인 강혜영의 눈빛은 뒤로하고 주상혁이 팔찌를 노크했다.
“주주야.”
주상혁의 부름에 주주가 나무정자 위에 나타났다.
“부탁해도 될까?”
왕!
주주가 강혜영의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수색견처럼 냄새로 멋지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주주가 별 반응이 없었다.
“못 찾겠어?”
꾸웅…….
의외였다.
주주 정도의 피지컬이면 거뜬할 줄 알았기 때문.
믿는 구석이 힘을 못 쓴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것과 반대로 풀이 죽은 주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주상혁이 주주를 달래서 역소환시키자 강혜영이 물었다.
“뭐예요? 설마 못 찾는 건 아니죠?”
강혜영을 무시하고 고민하던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하는 수 없네…….”
아깝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귀찮은 건 딱 질색. 그냥 자신이 가지고 있는 클린트 카드 중 하나를 줄 생각이었다.
주상혁이 주머니에서 클린트 카드를 꺼내다가 멈칫했다.
“왜 그래요?”
“어……? 아니다. 아무것도.”
Q. 그곳에 환자가 있으니까 [돌발].
「환생 의원 주상혁은 우연히 슬픈 사연의 소녀를 만났다. 모름지기 의원이라면 환자가 있는 곳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법.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모두 다 쏟아서 소녀의 아빠를 치료하자.」
달성 조건: 소녀의 아빠를 치료할 것.
달성 보상: 명성 100.
제한시간: 석 달.
퀘스트가 떴다.
내용을 읽은 주상혁이 창을 닫았다.
퀘스트의 보상도 쓰레기.
심지어 실패 페널티도 없었다.
이런 일에 일일이 나서고 싶지 않았다.
주상혁이 품에서 클린트 카드를 꺼내서 내밀었다.
‘어차피 누가 치료하든 무슨 상관이야?’
소녀의 아버지만 치료되면 모두가 해피 엔딩이다.
주상혁은 실패 페널티를 받을 일도 없고 고생할 일도 없다.
소녀도 주상혁 덕분에 클린트 카드로 아빠를 무사히 치료한다.
“자, 받아라.”
조심스럽게 클린트 카드를 건네받는 소녀를 보며 주상혁은 생각했다.
이걸로 끝난 일이라고.
* * *
강혜영과 그렇게 헤어지고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착한 일을 한 덕인지 꿈자리도 다시 편해졌다. 주상혁의 매일매일은 평화로웠다.
“초콜릿도 오늘 중으로 만들어지고 말이지.”
전에 생각하던 피서지를 주상혁이 다시금 고민할 무렵이었다.
띠링.
주상혁의 눈앞에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Q. 그곳에 환자가 있으니까 [돌발] (실패).
주상혁이 메시지를 지우며 씩 웃었다.
제한 시간이 석 달이나 되던 퀘스트.
그런 퀘스트가 사흘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면 뻔했다.
아무래도 퀘스트의 달성 내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강혜영의 아버지를 다른 누군가가 치료했다는 말이었다.
“뭐, 잘된 일이지.”
이걸로 더욱더 꿀잠을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주상혁이 강혜영의 일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의 도어락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주화영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주상혁이 말했다.
“화영아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니?”
“네?”
분명히 전에 바꿨을 텐데 이상했다.
“그, 그보다요!”
“그래, 말해 봐.”
“민지네 부모님도 드디어 허락해 주셨대요.”
“그래? 잘됐네?”
주주의 분신을 분양해 주는 일.
박민지는 부모님께 허락받아야 할 거 같다고 말하고는 소식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요즘 일이 갑자기 술술 잘 풀린단 말이지?’
착한 일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착한 일을 해야 한다니까?”
“네?”
주화영의 물음에 주상혁이 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자.”
“이건 뭐예요?”
주상혁이 방에서 만들고 있던 환약을 약통에 담아 내밀었다.
양이 제법 많았다.
“뭐긴 뭐야, 보충제지.”
“말고요. 이 옆에 비닐에 담긴 거요.”
“강아지들 밥.”
“밥이요?”
“그래.”
“근데 뭐가 이렇게 많아요?”
주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어디 좀 다녀올 데가 있다.”
“얼마 전에도 다녀왔잖아요, 또 가요? 그보다 이번엔 며칠이나 가려고…….”
주상혁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글쎄? 한…… 한 달쯤?”
* * *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초대 회장 강태백.
그는 국내에서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S급 각성자.
대한민국 최초의 일류 길드 창설자.
대한민국 최초의 A급 던전 클리어 등등.
‘대한민국 최초’라는 타이틀은 각성자 부분에 한해서 오로지 강태백을 위한 수식어였다.
하지만 각성자도 나이를 먹기 마련.
한평생을 S급 각성자로 살아왔던 천하의 강태백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성자치고는 이른 나이에 건강의 문제가 생긴 것.
여든 살이 되는 해에 갑자기 몸져누워 버린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회장의 부재는 협회 내부에 혼란을 불러왔다.
강태백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강태백이 딱히 누군가를 후계자로 지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드러누운 게 결정적이었다.
물론, ‘공공 기관이 무슨 후계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적인 기관으로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강태백의 길드 태산.
당시 유일한 S급 각성자가 세운 태산의 크기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지방까지 지부가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국구였다.
정부가 어중이떠중이들을 끌어모아 협회를 세우느니 차라리 태산을 회유 흡수하는 쪽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제시한 각종 혜택 중 하나가 바로 후계자의 임명.
협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회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는 것을 의미했다.
여하튼 그리하여 일어난 협회 내부의 일차전.
강태백이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임시 회장직을 누가 맡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어모았던 일차전은 의외로 쉽게 끝이 났다.
작은아들 강태섭이 자진해서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아버지 강태백이 의식은 없어도 숨은 붙어 계시는데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와 다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임시 회장직을 버리고 민심을 택한 그야말로 신의 한 수.
반면에 큰아들 강태웅은 완전히 쪽박을 찼다고 할 수 있었다.
협회 내부에서도 강태백에게 충성심이 높은 임원들이 많았던 만큼 강태섭의 그릇을 알아보고 혹한 임원들이 제법 되었던 것이다.
강태웅은 불안했다.
이대로 머지않아 강태백이 숨을 거두고 나서 이차전을 치르면 결과는 너무나도 뻔했던 것.
마음이 급해진 강태웅은 눈치 볼 것 없이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둘렀다.
임시 회장직이라고 해도 회장에 준하는 권한을 손에 쥐었다. 과감하게 행동한 것이다.
일차전에 동생 강태섭의 편을 들었던 임원들은 전부 다 지방으로 좌천시켰고 반대로 자신의 편을 들었거나 중립을 표명했던 임원들은 지방에서 본부로 옮기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지금이야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난다면?
얼마든지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 년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임시회장 강태웅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낭보가 날아들었다.
동생 강태섭이 던전에서 돌아와 자택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거의 전권을 잡고 있는 본부의 의료 시설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
최고의 찬스였다.
여기서 동생을 치료하는 척 자신의 수하들로 감시하며 아버지 강태백이 숨을 거두고 자신이 회장이 될 때까지만 관리한다면?
싸울 필요도 없이 자신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강태웅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듯했다.
매스컴엔 일부로 강태섭이 위독하다는 루머를 계속 뿌리고 와중에는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자 점점 흐름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동생 강태섭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 녀석이 냄새를 맡았는지 강태섭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강태백의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 구석에서 강태웅이 말했다.
“그래? 이게 우리 조카님의 믿는 구석이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강태백이 강혜영이라는 이름이 써진 클린트 카드를 콰득 구겨 버렸다.
푸훕…….
“푸하하하하.”
어찌어찌 큰 문제로 번질까 싶었지만, 이변은 없었다. 이걸로 자신의 승리였다.
혹시나 외부로 소식이 퍼질까 봐 이미 각종 언론사와 매스컴에 금융권까지 압력을 넣어 놓은 지 오래였다.
강혜영이 돈을 구할 수 있을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미성년자인 조카님의 발악까지 저지했으니 그야말로 내 세상이구만.”
강태웅이 코뼈가 내리 앉은 각성자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는 말했다.
“고생했어. 내가 나중에 한 자리씩 챙겨주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두 사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태웅이 구겨진 클린트 카드를 대충 던져버리고는 음지 끝에서 표정관리를 했다.
이제 양지로 나가면 다시 최대한 슬픈 얼굴을 지어 보여야 할 것이었다.
“효자 노릇 하는 것도 일이야 일. 요즘 시대에 십일장이라…….”
겨우 표정 연기에 성공한 강태웅이 슬픈 얼굴로 양지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요 며칠 자신을 봤다 하면 플래시를 터트리기 바쁘던 기자들이 어째선지 조용했다.
강태웅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빈소 앞에 기자들이 몽땅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기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간 강태웅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있어서는 안 될 사람.
동생 강태섭이 멀쩡한 얼굴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주상혁은 피서를 떠나기 전에 앞서 준비를 하나씩 끝내놓았다.
지금 떠나면 거의 한 달간 머물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철저한 준비가 필수였다.
‘레벨 업을 제쳐 놓고 논다는 게 조금 찔리긴 하지만 뭐…….’
초콜릿을 꾸준히 복용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레벨은 오를 것이었고 따지고 보면 초콜릿 역시 주상혁의 노력의 산물.
이 정도의 휴식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박스에 담긴 탕약을 하나씩 세어가던 주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12%가 백 개!”
정성호에게는 이번 달부터 백 개씩 폴라나 포션을 보내야 한다.
12% 포션은 경매장에 가기 전에 실험했던 포션들이 많아서 금세 구할 수 있었다.
주상혁이 혹시 빠트린 게 없나 하나씩 중얼거리며 읊어보기 시작했다.
“주간 퀘스트는 거기서 하면 되고.”
월간 퀘스트는 혹여 보름쯤 있다가 발생해도 받아 뒀다가 한 달 후에 와서 클리어하면 될 일이다.
“판매용도 즉시 제작으로 이 정도 만들었으니까 충분할 거고 보충제도 전해 줬고…….”
그 외에도 한혜지나 박민지가 사료를 요구하면 지급할 예비용 사료도 만들어 놨다.
그야말로 완벽.
주상혁이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초콜릿을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
하나 입에 넣어 맛본 주상혁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가 볼까?”
이번에야말로 원 없이 쉬다 올 생각으로 주상혁이 방을 나섰다.
* * *
주상혁은 애초에 자기중심적이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문제.
하지만 국내에서 ‘강태섭의 등장’하면 정말로 큰 이슈였다.
그가 멀쩡히 병석을 털고 나타난 이상 끝난 줄 알았던 후계자 문제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차전.
국내의 매스컴에서는 벌써부터 다음 회장이 누가 될지에 대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하기야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S급 각성자는 없지만, 공권력을 등에 업은 만큼 협회의 세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심지어 S급만 없을 뿐이지 S급에 필적하는 A급 각성자도 다수 보유한 게 협회였다.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가 누가 될지 관심이 안가면 이상했다.
그리고 그 태풍의 핵인 강태섭은 지금 생각이 복잡했다.
그가 의식불명이던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딸 강혜영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형이고 가족이라 생각했던 강태웅.
평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혈육까지 내칠 줄은 몰랐다.
강태웅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람의 탈을 쓴 악마에 가까웠다.
‘너무 오래 쓰러져 있었어…….’
삼 년간의 부재는 컸다.
길었던 시간 동안 구심점이 되어 주지 못했던 탓에 기존에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임원들도 제법 돌아섰을 게 뻔했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이었다.
몇 달 후 있을 임원식에 일정을 맞추려면 진짜 촉박했다. 하지만.
“혜영아 정준혁이라고 그랬던가?”
“어?”
이름만 나왔을 뿐인데 강혜영이 묘하게 당황했다.
“어…… 그렇지!”
강태섭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고 자신이 아버지 노릇을 못 하는 동안 딸을 몇 차례 도와준 청년.
강태섭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챙기기 이전에 사람이라면 먼저 그 은인을 만나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장 자리도 중요했지만, 그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겸사겸사할 일도 있고…….’
강태섭이 강혜영에게 말했다.
“전주로 가자 혜영아.”
* * *
결국, 주상혁이 정한 곳은 순천의 어느 펜션이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고 딱 좋네.“
펜션은 계곡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잡았다.
“한창 사람이 많지만, 며칠 지나면 학교 개학이다 뭐다 해서 금세 조용해질 겁니다.”
집주인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주상혁도 이걸 노리고 이곳으로 정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당장에 사람이 조금 많다는 걸 제외하면 이만한 장소 구하기가 또 힘들었다.
주상혁이 펜션 주인과 형식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계곡 쪽을 내려다봤다.
팔 월말 올해 마지막 여름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지.”
이 더운 날씨에 더위를 에어컨으로 쫓아 버리면 될 일이지 다 큰 어른들이 남녀 쌍을 지어 물장구치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됐다.
‘잠깐 어째서 눈에서 땀이…….’
땀을 닦아 내고 주상혁이 말했다.
“날이 덥긴 덥네요.”
“아, 예…….”
펜션 주인에게 대충 안내를 받은 주상혁이 마침내 펜션 안으로 들어왔다.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아이스박스와 짐가방을 대충 구석에 내려놓은 주상혁이 거실로 가서 에어컨을 틀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몸에 닿자 그대로 주상혁이 늘어졌다.
꿈틀꿈틀.
더위가 식자 주상혁이 기어서 TV를 켜고 말했다.
“주주야 시원한 물 한 통만 찔러 봐라.”
주주가 준비한 아이스박스에서 꺼내온 물통을 머리맡에 내려놨다.
주상혁이 물을 마시고는 말했다.
“너도 먹을래?”
도리도리.
“싫으면 말고.”
두세 모금 더 마신 주상혁이 TV로 시선을 옮겼다.
TV에서는 강태섭이 빈소에 찾아가 했던 인터뷰가 재상영되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봤던 인터뷰였다.
‘질리네, 질려.’
강태섭의 옆에는 주상혁도 알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강혜영이었다.
‘그나저나 처음엔 제법 충격이긴 했지…….’
설마설마하니 아빠라는 게 강태섭이었을 줄 상상도 못 했었다.
한편으로는 ‘고삐리’가 클린트 카드를 어떻게 발급받은 건지 의아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집안 내력이 크게 작용했을 게 분명했다.
주상혁이 TV를 보다가 주주를 슬쩍 흘겼다.
TV를 보고 있는 주주의 꼬리가 신이 나서 흔들리는 게 보였다.
주상혁이 가자미눈을 떴다.
“야.”
주주의 꼬리가 딱 정지했다.
“너 또 딱 걸렸다? 주주 너 쟤에 대해서 아는 거 있지?”
주주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한두 번이 아니다. TV에서 강혜영이 나올 때마다 항상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 녀석이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도 아니고 말이지.’
뭔가가 있다.
주상혁이 모르는 뭔가가 분명히 있었다.
주주가 낯가림하지 않았던 건 기껏 해 봐야 여태 주화영 정도였다.
그 외에는 어김없이 선을 딱딱 지켰다.
간식거리를 사러 갈 때 마주치는 사람들이 쓰다듬는 것도 절대 허용하지 않던 게 주주였다.
‘근데 저 녀석한테는 안 그런단 말이지?’
주상혁이 TV 속의 강혜영을 유심히 오목조목 뜯어봤다.
‘강혜영은 뭐가 다른 거지?’
오똑한 코.
가지런한 눈.
생기 넘치는 입술.
흑발의 긴 생머리까지.
고등학생치고는 장래가 기대될 만큼 입이 쩍 벌어질 외모이긴 했다.
‘설마 예뻐서는 아니겠지?’
주상혁이 주주의 아랫도리에 달려 있었나 안 달려 있었나 생각하는 때였다.
슬쩍 도망가려는 주주가 보였다.
주상혁이 어림없다는 듯 주주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어쭈 어딜 가려고? 오늘에야말로 답하게 해 주마 켈켈켈.”
주상혁이 시선을 슬쩍 피하는 주주를 보고 말했다.
“뭔데? 솔직하게 말해. 쟤하고 무슨 관계냐?”
솔직히 무슨 깊은 관계가 존재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긴 하다.
주주는 던전에서 주상혁과 가장 먼저 만남을 가졌다. 그 뒤로도 주상혁과 주주는 쭉 같이 있었다.
강혜영과 만난 시기도 주상혁과 같을 것이고 주상혁이 알고 있는 정보 외에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주상혁은 주주가 무언가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묘한 행동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지?’
주주가 풀 죽은 소리를 냈다.
꾸우웅.
“불쌍한 척해도 소용없어.”
외통수에 처한 주주가 멋대로 팔찌 속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렸다.
주상혁이 팔찌를 노크했다.
“야, 좋게 말할 때 나와라? 나 진짜 그러면 섭섭해?”
주주가 별 반응이 없자 주상혁이 필살기를 사용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고? 고무공 삼 주 압수.”
공놀이라면 끔벅 죽는 주주다. 주상혁이 침을 하나 꺼내 고무공을 인질로 잡았다.
하지만…….
‘어라……? 안 나오네?’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주주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지간히 말하기 싫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상혁의 생각이 깊어졌다.
‘뭐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감추는데……?’
알고 있는 게 있으면 그냥 말해 주면 좋을 것을 주주는 포기할 줄 몰랐다.
괜스레 호기심만 증폭됐지만, 결국 항복한 건 주상혁이었다.
주주도 주주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이해해 주기로 했다.
“알았어, 안 물어볼게. 그러니까 이제 나와.”
왕!
주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상혁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상혁이 주주를 보며 씩 웃었다.
“우리 우선 밥이나 먹을까?”
와왕!
* * *
주상혁을 찾아 전주로 온 강태섭은 전주협회로 향했다.
전동욱은 일차전 당시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
지금이야 변심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판단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근거를 들자면 전동욱이 아직까지 전주지부의 지부장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전동욱은 꽤나 유능하다.
임원진 중에서도 거의 수위를 다툴 정도로 높은 마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함 없는 그가 아직까지 지방에 머물고 있다면 이유는 뻔했다.
아직까지 자신을 지지하는 이유일 것이었다.
가볍게 전동욱과 담소를 나누던 강태섭이 오늘 전주에 방문한 목적을 드러냈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서기님을 지지합니다.”
강태섭이 돌연 호쾌하게 웃었다. 너무나도 바랐던 반응이었지만, 부탁이란 게 그런 부탁이 아니었기 때문.
강태섭이 말했다.
“듣던 중 감사한 말씀이시지만, 오늘은 그런 부탁을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쪽 이야기는 나중에 정식으로 부탁드릴 생각이거든요.”
“그럼 어떤……?”
“전주지부에서 관리되는 각성자들의 목록을 좀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서울 본부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부는 사실상 강태웅에게 점거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태.
번거롭지만, 이곳에서 확인하는 게 괜히 정준혁이라는 사람에게도 피해가 안 갈 것을 강태섭은 알고 있었다.
“뭐 보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전동욱이 넌지시 물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겠습니까?”
전주는 인력 풀이 많이 떨어진다.
협회에 소속된 각성자 중에서도 전동욱을 제외하면 A급 각성자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
심지어 전주 전역에 퍼진 각성자를 싹 다 합쳐도 A급 각성자가 전동욱 포함 둘뿐이었으니 말 다 했다.
“개인적인 이유라서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겠군요.”
강태섭이 물었다.
“안 되겠습니까?”
* * *
전동욱은 당연히 강태섭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강태섭은 덕분에 컴퓨터로 전산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정준혁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강태섭이 당황했다.
‘없군…….’
가나다라 순으로 나열된 목록에는 정준혁이라는 각성자가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정준혁이라는 각성자는 사십 대.
강혜영의 말과는 나이 차이가 상당했다.
‘이십 대라고 그랬으니까…….’
강태섭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강혜영이 물었다.
“왜요?”
“직접 확인해 보는게 좋겠다.”
강혜영이 화면을 확인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강혜영도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가명을 사용한 건가……? 그렇지만 어째서?’
강태섭이 보기에도 한눈에 어두워졌던 강혜영의 표정이 무언가 떠올린 듯 갑자기 빛이 돌았다.
“박지훈.”
“응……?”
“클린트 카드에는 분명 박지훈이라는 이름이었던 게 떠올랐어요.“
박지훈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이십 대는 한 명이 있긴 있구나.”
강혜영이 얼굴을 확인했다. 몇 개월 전부터 TV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어떠냐?”
“아니에요. 이렇게 잘생기진 않았어요.”
주상혁이 들었으면 꽤나 가슴 아파할 이야기를 강혜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강혜영이 박지훈의 프로필을 자세히 살폈다.
“근데 완전 관련이 없는 사람 같지는 않아요.”
대부분 클린트 카드에 적혀 있던 정보와 일치했다.
특히 주소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 * *
박지훈은 근래에 안 믿던 종교를 믿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상혁교.
신이 존재한다면 자신을 파산의 위기에서 건져 준 주상혁이야말로 신이었다.
매사에 감사하고 순간순간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살고 교만과 오만을 멀리하는 생활을 실천하게 해 준것은 바로 주상혁이었다.
그런데 근래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박지훈에게 위기가 엄습했다.
“맞게 찾아온 것 같군.”
정태섭.
요즘 TV로 한창 떠들기에 모를 리가 없는 얼굴이었다.
“‘정준혁’이라는 자를 알고 있나?”
“정준혁 말입니까……? 그건 모르는 이름인…….”
“하긴 그렇군. 아니, 애초에 가명이었을 테니까.”
정태섭이 질문을 정정했다.
“클린트 카드를 좀 확인할 수 있겠나?”
난데없이 클린트 카드라니 박지훈이 당황했다.
클린트 카드는 모든 각성자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강태섭의 저 말투와 태도.
분명히 이미 박지훈이 클린트 경매장에서 카드를 발급받았음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주여…… 무슨 사고라도 치신 겁니까……?’
복잡미묘한 박지훈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수십 개의 생각이 오갔지만, 박지훈은 신앙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 지금은 없습니다만…….”
“없다? 이유를 조금 듣고 싶군.”
“그…….”
박지훈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거짓말은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네. 부탁하지.”
“…….”
퇴로까지 막혀 버린 박지훈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강태섭의 대화를 쭉 지켜보던 강혜영이 옆구리를 콕 쑤시며 말했다.
“아빠! 누구 협박하러 왔어요?”
“어……? 아, 미안하구나.”
중년 신사답게 생긴 강태섭이 강혜영의 기세에 밀려 어물쩍거리자 이번엔 강혜영이 말했다.
“그 오빠 부탁할게요.”
“…….”
“클린트 카드 빌려준 분이 있는 거 알아요. 피해가 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테니까…….”
순간적으로 강혜영의 부탁에 홀릴뻔한 박지훈이 말했다.
“잃어버린 걸 어떻게 합니까…….”
“알았어요. 그럼 더 캐묻지는 않을게요. 다만 혹시 연락이라도 된다면 연락 달라고 해 주세요.”
강태섭에게 명함 하나를 받아서 박지훈의 손에 쥐여 준 강혜영이 가게를 나갔다.
박지훈이 명함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보고는 하는 게 좋겠지?”
* * *
주상혁은 바깥에서 조리가 끝난 삼계탕을 사 왔다.
주주가 먹을 폴라나도 옆자리에 챙겨 준 주상혁이 배부르게 먹고 드러누웠다.
주주도 배가 불렀는지 그런 주상혁의 배 위에서 퍼질러졌다.
배속의 포만감이 가실 때쯤 주상혁의 눈꺼풀에 졸음이 찾아왔다.
지이이잉.
“전화인가?”
주화영에게 걸려온 번호를 확인한 주상혁이 전화를 받았다.
“어, 화영아.”
주상혁이 잠시간 기다렸지만 주화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을 때였다.
아, 아 들리십니까?
“박지훈 씨 목소리……인가?”
네 맞습니다.
역시 잘못 듣지는 않았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째서인지 거리가 조금 멀었다.
조금 생각하던 주상혁이 곧이어 이유를 떠올렸다.
‘아, 그건가?’
핸드폰 두 개로 한 다리 걸쳐서 통화하는 듯 했다. 주화영과 박민지가 만나서 노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주상혁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그…… 강태섭 있잖습니까?
“네, 그 사람이 왜요?”
주상혁의 물음에 박지훈이 말했다.
가게를 찾아와서요. 아무래도 상혁 님을 찾는 듯한데…….
주상혁이 말했다.
“저를요? 무슨 일로?”
경매장 쪽과 관련이 있는 거 같던데…… 분위기를 봐서 악감정이 있는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박지훈의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주상혁도 일단은 동의하긴 했다.
적어도 악감정으로 찾는 건 아닐 것이다.
일단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게 주상혁이다. 악감정이 있다면 되려 이상한 일.
그…… 뭐랄까 명함을 주고 가긴 했는데 전달해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주상혁이 고민했다.
‘뭐 때문에 찾는 거지? 지금 바쁠 때 아닌가?’
듣자 하니 후계자 문제 때문에 시끄러운 걸로 봐서는 여유로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은혜나 갚자고 찾는 건 아닐 텐데…….’
고민하던 주상혁이 말했다.
“주소를 보내드릴 테니까 한번 전해 줘 보세요. 이유나 좀 들어보게.”
어차피 정준혁으로 만나는 일이다.
설령 가명이라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숨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정준혁과 주상혁을 연관 짓는 건 힘들 테니까.
* * *
두 시간 후에 주상혁이 머물고 있는 펜션 앞에 작은 세단 한 대가 멈췄다.
거실의 창으로 그 모습을 본 주상혁이 현관문을 열어 줬다.
『Lv.68 강태섭.』
‘그래도 명색의 강태백의 아들이라는 건가?’
S급은 아니어도 레벨은 상당했다.
이 정도 레벨이면 거의 S급에 근접한 레벨이었다.
앞선 경험에 비춰서 수준을 파악하던 주상혁이 슬쩍 시선을 깔았다.
현관까지 따라온 주주가 보였다.
바쁘게 흔들리는 주주의 꼬리를 본 주상혁이 문뜩 강태백의 뒤편을 확인했다.
강혜영이 보였다.
‘거참 궁금해 죽겠네.’
하지만 물어봐도 주주가 답하지 않을 것을 안다.
주상혁이 호기심을 억누르고는 일단 강태섭을 받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거실까지 안내한 주상혁이 냉장고에서 물통을 두 개 꺼내 와서 잔을 채웠다.
주상혁이 식수 대용으로 사용하는 탕약이었지만, 소량으로는 기적적인 레벨 업이 있지는 않을 터였다.
“차 말고는 마땅히 대접할 게 없네요.”
“아 괜찮네. 우리가 억지를 부렸으니까.”
강태섭이 쓰디쓴 탕약을 들이켜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입에 맞지 않는 게 분명했다.
‘하긴…….’
주상혁이 먹는 수준에 맞춰서 제작된 탕약이다. 일반인이 먹기엔 역한 게 당연했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강태섭이 말했다.
“하하…… 차 맛이 독특하군.”
입안에 쓴맛이 슬슬 가시는지 강태섭이 허전한 펜션을 쓱 둘러보는 시선으로 물었다.
“여기서 사는 것은 아닐 테고…….”
“네, 그냥 이것저것 피해서 피서 왔습니다.”
“이것저것?”
“있습니다, 그런 게.”
이번엔 주상혁이 말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당연히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네. 혜영이에게 여러 가지로 들었지.”
주상혁이 그런 거치고는 가벼웠던 두 사람의 손을 떠올렸다.
“빈손으로요?”
강태섭이 호탕하게 웃었다.
“오십억 정도로 은혜를 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받은 걸 그대로 돌려줘서야 예의를 모르는 행동이지. 경황이 없어서 답례는 아직 준비하지 못했네, 다음에 준비가 되거든 연락할 생각이네.”
강태섭이 넌지시 물었다.
“기회를 줄 텐가?”
“어려울 건 없죠.”
“그거참, 고맙군.”
한차례 이야기가 오가고 정적이 흘렀다. 틈을 노려 주상혁이 강태섭을 유심히 관찰했다.
‘권위의식이 딱히 있어 보이지도 않고…… 인성도 무난해 보인다는 말이지?’
주상혁은 위명 덕분에 전생에서 제법 많은 권세가를 만나 봤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알고 있다.
권력이 사람을 얼마나 추악하게 만드는지.
권력을 얻으면 어째서 재력과 명예를 좇게 되는지.
하지만 강태섭은 사람 자체만 놓고 보면 탐욕에 사로잡힌 기득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은 한참 어린 주상혁의 다소 건방진 말에도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기색조차 없었다.
맛없는 차에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다.
‘이런 사람이면 나쁘지 않지.’
주상혁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면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주상혁이 말했다.
“한창 바쁘실 때라 들었습니다.”
“뭐, 확실히 그렇긴 하네만…… 은인을 만나 보는 것보다 바쁜 일은 없네. 겸사겸사할 일도 있었고.”
굳이 입에 대지 않아도 상관없는 탕약을 이십 분쯤 대화를 나누며 다 마신 강태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군,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야.”
강태섭이 자리를 일어났다.
‘마음이 가벼워져? 왜?’
펜션 현관까지 주상혁이 배웅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잘 부탁한다니? 그러니까 뭘?’
승용차까지 걸어간 강태섭이 목인사를 가볍게 하고는 승용차 뒷좌석 몸을 실었다.
승용차가 곧이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주상혁의 머리에 곧이어 떠오르는 게 존재했다.
주상혁이 급히 뒤돌았다.
주주를 품에 안고 서 있는 강혜영이 보였다.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 * *
강태섭이 떠나고 한 시간쯤 후.
주상혁은 돌담 위에서 수 미터 아래 흐르는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엔 사람들 틈에 섞여 주주와 놀고 있는 강혜영이 있었다.
‘잘 부탁한다는 게 딸이었냐?’
당시에 왜 강혜영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멍청한 자신의 머리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이럴 때도 좀 핑핑 머리가 돌아가면 좋으련만.’
그게 참 아쉬웠다.
어떨 땐 자신이 생각해도 천재 아닌가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완전 돌대가리 그 자체였다.
‘그나저나 딸을 맡길 사람을 찾던 거였나?’
어쩐지 이 시국에 자신을 급하게 찾아다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강태섭은 병석을 털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다.
후계자 문제로 형제와 크게 한판 벌여야 하는 판에 강혜영을 계속 데리고 다니는 건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됐을 것이다.
강혜영은 주상혁을 경매장에서 한번 만나 본 적이 있다.
‘이미 도와준 이력에서 가산점을 받았을 테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였다.
강혜영 돌보미로 당첨된 것이었다.
‘은혜를 갚겠다더니 슬쩍 모래주머니를 넘겨? 아주 너구리 같은 양반일세?’
강태섭에 대한 평가를 절하했다.
양심은 있을지언정 권세가는 역시 권세가였다.
주주와 물장난을 신나게 치고 있는 강혜영을 잠시간 보고 있자니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저 여자애 좀 닮지 않았어?”
“닮아? 누굴?”
“그, 강태백 손녀 말이야.”
“에이 아니겠지, 그 여자애가 뜬금없이 여기 왜 있어?”
“그……렇겠지?”
TV에서 백날 보여 줘도 카메라와 실물이 느낌이 워낙 다르기도 하고 너무 뜬금없는 출몰에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이겠거니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뭐…… 감추느라 골치 아플 일은 없겠네’
주상혁이 정작 태평하게 물장난 치는 강혜영을 보고 말했다.
“너 갈아입을 옷은 있냐?”
강혜영이 딱 굳었다.
“아…… 없는데요?”
강혜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옷 좀 빌려주세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주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다 놀았으면 그만 돌아가자.”
“아…… 네!”
물가에서 급하게 나온 강혜영이 폴짝 뛰어 한쪽 팔을 걸치고는 반동을 이용해서 빙글 제비를 돌며 날아올랐다. 멋지게 착지한 강혜영과 함께 주상혁이 펜션에 도착했다.
주상혁이 적당한 옷을 몇 개 나열했다.
무난한 흰 티와 바지를 들고 가서 강혜영이 주주와 씻고 나왔다.
주상혁이 주주를 보면서 게슴츠레한 눈을 떴다.
‘저 녀석 어쩌면 영물이 아닐지 몰라.’
무슨 변태 산신령이 둔갑했을 가능성도 슬슬 열어 두기로 했다.
“왜요?”
주상혁이 강혜영에게 안겨 있는 주주를 보고는 말했다.
“주주, 너도 이제 이리와.”
왕!
주주가 폴짝 뛰어내려 주상혁의 옆에 앉았다.
“너 각성 계열이 뭐냐?”
“저요? 저는 일단 특질 계열이긴 한데…….”
각성자에게 있어서 계열은 중요한 정보이다.
하지만 의외로 강혜영은 거리낌 없이 답했다. 주상혁을 제법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근데 그나저나 특질 계열이라고……?’
특질 계열은 알다시피 손에 꼽을 만큼 소수이다.
그 증거로 주상혁도 검증된 특질 계열을 만나 보는 건 처음이기도 했다.
주상혁이 강혜영의 말에서 걸리는 게 있는지 물었다.
“한데? 뭔가 더 있는 거냐?”
“능력을 잘 모르겠어요.”
주상혁이 각성 능력으로 환생을 했듯 강혜영도 특질 계열이라면 고유의 스킬이나 능력이 있을 것이었다.
특질 계열의 경우엔 워낙 능력이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각성 심사 당시 능력이 딱히 잡히거나 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찾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특질 계열로 각성을 했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겠지.’
확실히 강혜영 자체가 보기 드문 케이스긴 했다.
다른 계열처럼 누군가 알려 주진 않지만, 각성을 하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게 특질 계열의 특징이었으니까.
“확실한 거냐?”
“네, 확실해요.”
주상혁이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럼 각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아까 말한 건 기억하지?”
“말 안 들으면 내다 버린다는 거요?”
“그래.”
주상혁은 일단 피서지에 휴식을 온 입장이다.
정확히는 더위보다 편의를 위해 온 입장에서 강혜영을 돌볼 마음은 없었다.
“알고 있어요. 최대한 피해 안 가게 지낼게요.”
“그래, 바람직한 마인드야.”
* * *
피서지에 도착하고 나흘이 지났다.
강혜영도 주상혁도 그리고 주주도 펜션의 생활이 제법 몸에 익었다.
펜션 밖 파라솔에서 의자를 깔고 누워 있던 주상혁이 종을 흔들었다.
주주랑 공놀이를 하던 강혜영이 급히 종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왜요?”
“얼음 좀 넣어 와 봐.”
“알았어요.”
강혜영이 주상혁의 말에 펜션 안에서 얼음을 넣어왔다.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없으시다.”
주상혁의 말에 강혜영이 주주랑 다시 놀러 갔다.
“아, 좋다…….”
여름 특유의 꿉꿉한 느낌 때문에 조금 분위기가 안 살긴 한다.
‘강혜영도 그냥 심부름꾼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니 딱히 귀찮지도 않고…….’
주상혁이 늘어져라 하품할 때였다.
쿠구구구궁.
산 중턱에서 잠이 확 깰 만큼 큰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뭔데, 또?”
어째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들려온 곳을 주상혁이 유심히 바라봤다.
“몬스터……!”
“던전 브레이크다 모두 도망쳐!”
주상혁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