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21
Book 4 Dream
오래전부터 가끔 꾸던 꿈이 있다.
눈 내리는 날 산골 마을회관에 누워 누군가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다.
물론, 그 사람의 눈도 얼굴도 생김새도 기억나는 건 아니다.
꿈속에서 전해지는 정보와 감정은 오로지 한 가지.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던 내가 눈물을 보인다.
이번에는 참아야지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꿈에서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됐다. 그가 이불을 나서 현관 앞에 섰다.
“부럽긴 뭐가 부럽냐? 어차피 걔라고 뭐 다를 거 같아? 독 만들어라, 채집해 와라, 잔소리나 들으면서 고생만 할 텐데.”
‘어라……?’
신기했다.
지금까지는 입만 뻥긋거릴 뿐 한 번도 들리지 않던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들렸다.
이내 그가 회관을 나선다.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끝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끄으으응, 또 그 꿈인가……?”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반복된 꿈이었지만, 솔직히 적응되는 건 아니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감정이 여운처럼 가슴을 타고 전해진다.
반쯤 닫힌 커튼 사이로 바깥이 보인다.
아침 일찍 계곡에서 노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귀는 소리.
내가 낯선 곳에 있음을 말해 줬다.
‘혹시 예지몽인가?’
그러고 보니 어제 각성 능력을 의도치 않게 알게 됐다.
그런데 꿈속에서의 그 남자도 독과 약초를 언급하고 있었다.
“곧 약초 채집할 일도 생기는 거 아니야? 헉 소름…….”
예지몽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묘하게 펜션 오빠의 분위기와 꿈속 남자의 분위기가 겹쳐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이, 아니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이불을 개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아침 일찍 밥을 먹는 강아지가 보였다.
‘이름이 주주였던가?’
밥그릇에 코를 박고는 허겁지겁 목으로 넘기는 강아지의 옆에 쪼그려 앉아 속삭였다.
“주주야, 그 오빠는 어디 갔어?”
왕!
주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를 잠시, 갑자기 화장실 문이 덜컥 열리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왜.”
화들짝 놀란 내가 말한다.
“아, 아니에요…….”
“할 말 있으면 하고.”
양치를 하고 있는 그를 내가 힐끔힐끔 살폈다.
졸린 듯한 눈과 덥수룩한 머리 대충 있는 대로 걸친 듯한 옷차림.
피식.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오빠가 꿈속의 남자일 리 없었다.
분위기는 조금 비슷해도 이목구비나 스타일이 꿈꿨던 이상형과 완전 반대였다.
“그 웃음은 뭐냐 기분 나쁘게?”
“아…… 죄송해요.”
“아니, 됐고. 할 말 있으면 하라니까?”
궁지에 몰린 나의 눈에 우연히 손목의 시계처럼 생긴 물건이 보였다.
“그건 뭐예요? 손목시계…… 맞죠?”
안에 아무것도 없는 손목시계.
그가 그것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여벌 목숨 같은 거였지.”
“여벌 목숨이요?”
“그래.”
그가 양칫물을 세면대에 뱉고는 다시 말했다.
“궁금한 거 다 물어봤냐?”
“네…… 그런데요?”
그가 화장실에서 나와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럼 밥 좀 해라.”
“제가 만들면 독이 되는데요?”
어제 자기가 알려 줬으니 모를 리 없다.
“알고 있으니까 만들어.”
“뭐…… 알았어요.”
만들라기에 일단 부엌으로 가서 나름대로 성심을 다해 만들었다.
냉장고에 존재하는 식재료로 계란말이를 비롯해 된장국이라도 대충 끓여 놓으니 슬쩍 와서는 그가 달걀말이를 주워 먹었다.
“키야, 이건 진짜 언제 먹어도 사람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란 말이지.”
마치 이미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맛있어요?”
“뭐래? 사람 하나 죽을 맛이라니까?”
맛없다면서 식탁에 앉아서 젓가락질하는 그에게 내가 넌지시 물었다.
“근데 오늘은 뭐 해요?”
“저기 저거 보이지?”
그가 부엌 모퉁이를 젓가락으로 가리켰다. 제법 큰 박스 두 개가 보였다.
“네, 저게 왜요?”
“저거 독으로 가득 채워 놔.”
된장국을 입가심으로 들이킨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간다? 다 끝나면 말해.”
* * *
점심 무렵이 될 때까지 군말 없이 독을 만들었다.
“아직 절반도 안 됐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에 나의 시선이 슬쩍 거실로 향했다.
펜션 오빠는 강아지랑 같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역시 그럴 리가 없지.’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된다.
저 사람이 꿈속의 그 사람일 리 없었다.
내가 저렇게 게으른 남자에게 마음을 줬을 리 없다.
“뭘 그렇게 쫑알쫑알하냐?”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으며 독을 만들다가 깜짝 놀랐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다 잔 거예요?”
“아니, 목이 좀 말라서.”
시꺼먼 약물을 아무렇지 않게 벌컥벌컥 들이켜던 그가 도로 냉장고에 물통을 집어넣고 말했다.
“많이 했냐?”
“한…… 절반쯤……?”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더니 그가 거실로 말없이 돌아갔다.
“그럼 고생하고.”
다행히 중얼거리는 말은 못 들은 듯했다.
작업은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이걸로 끝!”
하루 종일 가스 불 앞에 서 있었더니 발이 다 아플 지경이다.
마침내 부엌에서 해방된 내가 거실로 나갔다가 불어오는 바깥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온종일 잠만 자던 그는 어느새 일어나 창문을 열고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있나……?’
조그마한 강아지랑 나란히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 호기심이 발했다.
“뭐 하세요?”
그의 눈이 나를 향한다.
“숙제는 다 했냐?”
“네.”
“그래, 잘했네.”
그가 다시 별이 가득한 하늘 위를 다시 바라봤다.
“뭐 하냐니까요?”
“기다려.”
“뭐를요?”
“별똥별.”
내가 그를 따라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별똥별 떨어지는 건 맞아요?”
“어, 떨어질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그의 옆에 내가 털썩 앉았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아요?”
“벌써 몇 번 봤거든. 한…… 열 번쯤?”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는 종종 나의 호기심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답을 하고는 한다.
아침에 손목시계가 여벌 목숨이니, 뭐니 하는 말도 그렇고 어제 각성 능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에도 그랬다.
“소원을 빌려고요?”
“그래.”
내가 문뜩 재미있는 질문이 생각나서 물었다.
“이미 열 번쯤 봤다고 그랬죠?”
“그랬지.”
조금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 소원 이뤄졌나요?”
“아니.”
“그럼 효과도 없는 거, 뭐 하러 기다려요?”
그가 픽 웃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 왜 인디언식 기우제라고 들어봤냐?”
“그게 뭔데요?”
“인디언들은 기우제의 성공률이 100%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서.”
어이없어 웃는 나를 따라서 그가 밝게 웃었다.
“왠지 느낌이 좋단 말이지”
때마침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양손을 합장하고 소원을 비는 그를 따라 나도 살며시 눈을 감는 척했다.
처음 알았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구나…….
* * *
계곡 나흘째.
그가 아침밥을 먹다가 말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야.”
“던전 브레이크요?”
거실로 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봤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사람들은 아침부터 신나게 놀고 있었다.
“확실한 거죠?”
“내가 언제 거짓말했냐?”
하긴 믿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가 이렇게 될 거라고 하면 백발백중 맞았다.
‘그때 별똥별도 그랬었고…….’
갑자기 머릿속에 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쿵.
식탁에 이마를 찧고 황급히 얼굴을 감췄다.
“뭐하냐?”
“그냥 배가 좀 아파서…….”
달아오른 내 얼굴을 그가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뒤통수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많이 급하면 화장실 다녀오지 그러냐? 시간 없는 거 같은데?”
“네?”
“일어난 거 같아 던전 브레이크.”
정말이었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바깥이 다른 느낌으로 어수선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그거보다 우리는 어떻게 해요?”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일단 사냥하긴 할 건데…….”
“이것도 그 잘 먹고 잘사는 거랑 관계 있어요?”
나를 보는 그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떠졌다.
“왜요?”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분명히 들은 거 같은데 언제 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럼 그렇지…….”
그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남기고는 일어났다.
“여하튼 화장실이나 다녀와라.”
* * *
도대체 언제였지?
며칠간 생각해 봤지만, 기분 탓이 아니었다.
분명히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잘 먹고 잘사는 게 꿈이라던 그의 모습이 떠오를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이틀째 주룩주룩 내리는 창밖의 비를 그는 창문 앞에 누워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진짜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뭘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들은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뭘?”
“잘 먹고 잘사는 게 꿈이라고 한 거 진짜로 말한 적 없어요?”
그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한테 말한 적은 없어.”
그의 옆에 내가 따라 누워서 말했다.
“저 이런 꿈도 가끔 꾸거든요?”
그가 픽 웃었다.
“갑자기 꿈 타령이냐?”
“일단 좀 들어봐요.”
“그래 말해 보던가.”
선심 쓰듯 입을 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말했다.
“장소는 어떤 산골 마을의 마을회관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다가 제가 갑자기 울어요.”
“이유는 모르고?”
“네.”
원인 모를 미소를 그린 그가 말했다.
“그놈이 잘못 했나 보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내가 옆으로 자세를 틀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래서? 나한테 이걸 왜 말하는데.”
“오빠는 뭔가 알고 있나 해서요. 저 어쩌면 그 사람이 오빠는 아닐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가 나를 잠시보다가 다시 비가 내리는 바깥을 바라봤다.
“맞아요?”
나의 물음에 그가 마지못해 답했다.
“꿈속의 너한테 사과해라. 미안하지도 않냐?”
“모른다는 거예요?”
“당연하지.”
내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옳게 누웠다.
나의 눈에도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맞구나…….’
의외로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로 알았다.
* * *
계곡의 생활이 끝나고 호텔에서 머물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게 뭐예요?”
“해독제.”
어제저녁.
다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아빠가 혼수상태에 빠진 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다 잘될 거라고.
본인이 고쳐 주겠다고.
“이걸, 왜 저한테 줘요?”
“해독제를 먹이는 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그가 돌아선다.
“고쳐 주겠다면서요.”
“해독제 만들어서 준 건 고쳐 준 거 아니냐?”
정곡을 찔린 내가 표정을 굳히자, 다시 그의 등이 멀어진다.
“잠깐만요.”
“왜, 또.”
그가 비스듬히 돌아선다.
“우리 다시 볼 수 있는 거죠?”
“뭐 언젠가는 보겠지.”
그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조금 전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