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35
Book 7 Chapter 4
“오빠, 오빠 괜찮아요?”
청각이 마비될 만큼의 아찔한 두통.
서서히 약해지던 두통이 마침내 가셨다.
조금 전부터 목소리가 들려오던 옆자리를 바라봤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주주와 강혜영이 보였다.
“또 그건가?”
“네?”
조금 전 두통과 함께 아른거리던 기억.
그 기억 속 실루엣과 강혜영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주상혁이 말했다.
“아니다, 아무것도…….”
일전에 옥상에서 한번 경험했던 데자뷔.
그게 또다시 찾아왔다.
괜한 손목시계를 다시 확인해 봐도 여전히 텅텅 빈 상태.
후…….
‘도대체 원인이 뭐지?‘
심각한 얼굴로 잠깐 생각에 잠겨 있자니, 잠시 후 이마를 타고 체온이 느껴졌다.
이마를 짚고 있는 강혜영을 확인한 주상혁이 픽 웃었다.
“뭐 하는데?”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래, 잠깐 좀 어지러웠다.”
주상혁이 일어나서 초콜릿을 다시 만들기 시작하자 강혜영이 말했다.
“그냥 그러지 말고 쉬면 안 돼요?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안 돼.”
이제 3개월 남짓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만들어 둘 수 있을 때 만들어 두는 편이 좋았다.
‘근데 그러고 보니…….’
주상혁이 초콜릿을 만들다 말고 손을 멈췄다.
두통이 찾아오기 전 강혜영의 말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능숙하게 만들긴 했었지?”
환생을 막 마쳤을 당시.
주상혁은 과할 정도로 초콜릿을 능숙하게 만들었다.
난생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는데도 책 보고 대충 만들었더니 맛도 좋고 모양도 준수한 편이었다.
‘그때는 단순히 재능인가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주상혁이 뺨을 강하게 쳤다.
“그냥 단순한 데자뷔잖아, 너무 동요하지 말자.”
* * *
주상혁은 그날 자정이 넘어서야 옥상으로 돌아갔다.
“아니, 진짜로 여기서 같이 자겠다고?”
텐트 안으로 깜깜이를 품에 안은 강혜영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자신의 방에서 묵으라니까 굳이 추운 겨울 텐트에서 같이 자겠단다.
그나마 텐트가 넓어서 다행이지…….
“어차피 침낭도 있고 바닥에 온열 매트도 깔았잖아요.”
“그래, 뭐, 너 좋을 대로 해라.”
주주를 안아 들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주주가 침대 안에서 꼼지락꼼지락하더니, 곧이어 얼굴을 퐁 하고 내밀었다.
마찬가지로 침낭에 들어가서 뭐가 좋은지 히히 웃던 강혜영이 말했다.
“근데, 오빠.”
“왜.”
“아직도 꿈이 잘 먹고 잘사는 거예요?”
“그거 내가 말한 걸로 확정된 거냐?”
“네.”
그래, 그런 걸로 해라…….
어차피 말한 게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
좋아한다고 이미 엄포를 놓은 강혜영이 묘하게 눈치 주는 거 같아서 머쓱하다.
텐트 천장을 바라보자니 생각이 깊어졌다.
전생에는 안 했으니, 이번에는 가급적 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결혼이 장난도 아니고…….
‘아니지, 냉정하게 말하면 3개월 뒤에 사냐 죽느냐가 문제인데…….’
가볍게 시작했던 생각이 점점 꼬리를 물고 심각해지자 그냥 대충 장난스럽게 말했다.
“잘 먹고 잘사는데 결혼이 꼭 필요한가? 아니지 않나?”
“해, 해야죠!”
반응이 재미있어서 절로 픽 웃어 버렸다.
“왜? 꿈이 현모양처라서?”
“치…….”
녀석이 조용해졌다.
그새 잠이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이상하다 싶을 찰나.
“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쪽 봐 봐요.”
조금 귀찮긴 해도 침낭 안에서 몸을 강혜영 쪽으로 돌렸다.
순간적으로 입술에 강혜영의 입술이 포개졌다.
“알죠? 뽀뽀했으면 결혼하는 거예요?”
쑥스럽게 웃더니 다시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얼굴까지 아예 넣어 버린 강혜영을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뽀뽀하면 결혼해야 하니 뭐니…….
“유치원생이냐?”
* * *
밤이 깊었다.
세상 늘어져라 자고 있자니 코끝을 타고 작은 감촉이 하나 느껴졌다.
‘주주?’
순간적으로 그렇게 드는 생각에 번뜩 눈을 떴다.
주주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왼쪽 귀가 살짝 작았다.
“주일이구나?”
왕.
오밤중에 녀석이 조용히 짖었다.
“왜 무슨 일인데?”
한밤중에 와서 자신을 깨웠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비몽사몽한 주상혁의 눈이 순간 큼지막해졌다.
혹시 폴라나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 침낭을 열고 일어났더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누군가 습격했다거나 심각한 문제였다면 주일이가 이렇게 평온할 리 없었다.
주일이가 제 몸이나 겨우 통과할 법한 틈으로 텐트를 나가자 주상혁이 침낭을 나가면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주주가 없네?”
새벽 시간대의 옥상은 어둡고,
“에취!”
추웠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찬 공기에 재채기를 한 주상혁이 주일이가 향하는 화단 앞으로 향했다.
주주는 그곳에서 주상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주가 불렀나 보구나.’
정황상 직감한 주상혁이 주주를 보며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왕!
화단을 보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화단을 바라보자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화단이 보였다.
푸른 마나로 예쁘게 빛나는 흙.
앙다물고 있는 봉오리.
봉오리 주변을 떠다니는 푸른색 반딧불.
눈부신 빛 덩어리와 어우러진 화단을 확인하는 찰나였다.
차가운 달이 때마침 구름에서 나오더니 화단으로 빛을 뿌렸다.
그리고…….
“어…?”
폴라나의 주변을 날아다니던 마나 입자가 폴라나의 봉오리로 하나둘 흡수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점점 마나 입자를 흡수하며 빛을 뿜던 폴라나의 봉오리가 번쩍였다.
“윽…….”
갑작스러운 번쩍임에 눈을 가린 주상혁이 잠시 후 폴라나를 확인하고 얼어붙었다.
“됐다…….”
이슬 폴라나.
활짝 개화한 이슬 폴라나가 보였다.
크기는 일반적인 폴라나와 다를 바 없었지만, 푸른색 마나가 일렁이는 모습은 자신이 보통 폴라나가 아님을 과시하는듯했다.
삭삭…….
주주랑 분신이 화단으로 들어가서 파헤치다가 잠시 후 무언가를 하나씩 물고 나왔다.
그토록 열심히 기른 폴라나 이기에 정신없이 먹으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녀석들이 발 앞에 예쁘게 빛나는 이슬 폴라나를 내려놓았다.
“내가 써도 돼?”
왕!
주주가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기쁘다는 표정.
주상혁이 쪼그려 앉아서 주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고마워.”
와왕!
화단을 바라봤다.
화단은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았지만, 화단 전체로 빼곡히 존재하는 폴라나의 숫자는 족히 수백 뿌리는 되어 보였다.
주상혁이 주주랑 분신이 캐다 준 이슬 폴라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을 때였다.
띠링.
Q. 영초로 만든 비약 [?].
「청운 해태의 정성으로 길러진 영초로 비약 등급의 탕약을 만들자. 빼어난 재료와 환생 의원의 진심 어린 정성이 만난다면 비약이 탄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달성 조건: 비약 등급의 탕약을 제조 0/1.
실패 조건: 제한시간 내에 비약 등급의 탕약 제조에 실패.
제한시간: 3개월.
달성 보상: ?
* * *
주상혁은 곧바로 옥상에서 탕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약탕기야 옥상에도 예비용을 항상 준비해 두고 있었다.
탕약을 달이는 건 그리 번거로운 문제도 아니었다.
“이슬 폴라나긴 해도 일단 같은 폴라나니까…….”
중급 폴라나 포션을 만드는 방식대로 주상혁이 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작품을 본 주상혁이…….
‘이건…….’
내용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혹시 잘못 봤나 싶어서 실린더에 담아서 재차 확인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주상혁이 그토록 찾던…….
『??????』
「????????????????」
마나 +57%
오러 +28%
??? +10%
※ 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12시간 지속된다.
의문의 폴라나와 외견이 흡사했다.
아니 오히려 능력치 면에서는 훨씬 월등했다.
아무래도 상급 의술에 도달한 보너스 수치가 적용된 효과인 듯했다.
주상혁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럴 수가…….”
다홍색 증기와 주황색 내용물.
그것을 바라보는 주상혁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니 생각할 수 있는 결과는 뻔했다.
이슬 폴라나를 재배할 수 있는 사람이있다.
하지만…….
주상혁이 주주를 바라봤다.
『Lv.84 청운해태.』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솔직히 말해서 이해는 돼도 납득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주상혁은 이슬 폴라나가 탄생하는 순간을 쭉 체험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이슬 폴라나를 키운 건 주주.
즉, 청운해태라는 개체가 없다면 이슬 폴라나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혹시 다른 해태가 존재하나?”
제아무리 해태가 영물이라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상황을 배제하고 볼 수는 없다.
주상혁이 주주를 만난 것도 던전.
던전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출몰되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어쩌면 해태라는 존재가 드물게 던전에서 서식하는 개체라면……?
머리 아프다…… 후…….
주상혁이 복잡한 생각은 일단 깊은 한숨과 함께 접어놓고 표정을 밝게 만들었다.
“그래도 뭐 중요한 건 이거지.”
『??????』
정보를 대부분 읽을 수 없긴 해도 포션을 만들었다.
그것도 주상혁의 자력으로.
지금은 그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근데 그러고 보니…….”
포션을 바라보던 주상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퀘스트 창을 켰다.
주간 퀘스트 월간 퀘스트 연간 퀘스트가 존재하는 퀘스트 창에서 주상혁이 고른 퀘스트는…….
Q. 영초로 만든 비약 [?].
이것이었다.
달성 조건: 비약 등급의 탕약을 제조 0/1.
“비약 등급을 만들어야 한다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
하지만 포션을 아무리 봐도 등급에 대한 정보는 없다.
혹시 가려진 이름 속에 있다거나……?
주상혁이 한숨 쉬었다.
정보를 읽을 수 없으니 귀찮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하기야 본래라면 돌발 퀘스트라거나 연간 퀘스트라거나 이름이 써 있어야 할 곳부터가 ‘???’로 쓰여 있으니 완전 이상한 일은 아니라지만서도…….
“이건 무슨 등급이려나?”
또 문뜩 이런 의문도 들었다.
비약 등급이면 대체 어느 등급인 거야?
주상혁이 일반 중급 폴라나 포션을 꺼냈다.
『완벽한 마나 증폭의 탕약(중급).』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혹시…….”
초급부터 하급 중급 이런 식의 등급의 끝에 비약이란 등급이란 게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주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당장에 어감부터가 이상하잖아.”
딱 봐도 초급 중급 같은 느낌의 연장선이라기에는 다가오는 느낌부터가 이상했다.
고민하던 주상혁의 머릿속에 불현듯 예전에 떠올랐던 퀘스트가 생각이 났다.
귀수신의로 전직할 때 같이 떠올랐던 퀘스트였는데 비약이 어쩌고 했던 내용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
퀘스트를 어렴풋이 떠올려 수준을 가늠했다.
S급 던전에서만 서식하는 약초가 들어가는 등 제법 난이도 있는 퀘스트였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제한시간이나 들어가는 재료를 가늠했을 때…….
“이거 그렇다고 엄청 높은 등급은 아닐 거 같은데…….”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 확실한 건 아니었다.
직접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시작해 볼까?”
일단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탕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던 주상혁이 텐트를 젖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뜩 벌써 밝아진 주변이 의식에 들어왔다.
‘벌써…….’
일어난 시간이 몇 시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제법 시간이 지난 건 분명했다.
텐트에서 나온 강혜영이 말했다.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탕약 좀.”
강혜영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슬쩍 탕약 쪽을 바라봤다.
“와…… 이걸 하룻밤 사이에 다 만든 거예요?”
“어.”
밤새 만든 포션은 거의 1박스 분량에 해당했다.
이제보니 스스로도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다.
“어라? 이건 색깔이 좀 다른데요?
“주상혁이 강혜영이 들어서 확인하는 포션을 바라봤다.
마나 +63%
오러 +35%
??? +15%
※효과는 중첩이 불가능하며 12시간 지속된다.
상급 의술의 보너스 상승치 40%를 제외하고 계산하면 옵션이 평균적으로 5%나 상승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퀘스트는 성공하지 못했지.’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5%나 옵션이 상승했음에도 저 포션의 등급이 비약 등급보다 낮다는 말.
하…….
또다시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 가지 문제 때문이었다.
밤새 집중해서 탕약을 달인 만큼 약간의 성취야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료인 이슬 폴라나가 바닥을 드러냈다.
“아니지…… 혹시 모르잖아?”
어쩌면 이 녀석이 비약 등급으로 만들어지는 기적적인 일이…….
“있을 리가 없나?”
마지막 재료를 쏟아부어 달였던 약탕기 내부를 확인하자 실망이 밀려왔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물론 처참하게 실패하진 않았다.
이번 포션도 평균적으로 5% 상승한 상태.
나름 잘 만들었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졸작이지.’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했다면 냉정히 말해 그게 그거다.
주상혁이 포션에 내용물을 옮겨 담고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퀘스트를 포기할지 말지 머리가 복잡했다.
‘어쩌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주상혁도 알고 있다.
이슬 폴라나로 만든 포션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영초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급 폴라나 포션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옵션을 자랑하고 있을뿐더러 얼마 전까지 쫓던 의문의 폴라나 포션보다 월등했다.
하지만…….
‘이걸로 된 게 아니라면?’
그 타격은 곧바로 죽음으로 돌아온다.
이 포션을 먹어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으면 만사 오케이.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리고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퀘스트를 등한시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쓸 만한 거면 거르긴 아까운데…….’
달성 보상: ?
물음표투성이의 보상.
제법 생각하던 주상혁의 표정이 결의에 찼다.
그래 만들어야 한다.
더욱더 좋은 옵션의 포션을.
“어디 가요?”
강혜영이 물었다.
“잠깐 외출할 곳이 있어서.”
* * *
주상혁이 옥상을 나와서 방으로 향하자 강혜영이 쪼르르 따라왔다.
“그래서 어디 가는데요?”
“꽃집에 좀 가려고.”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그래, 그러던가.”
강혜영이 막 아무 때나 떼쓰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같이 외출하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주상혁이 씻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자 강혜영도 금세 씻고 준비를 마쳤다.
함께 근처 꽃집으로 향했다.
저번처럼 나팔꽃 씨앗을 있는 대로 집어 들던 주상혁이 멈칫했다.
“아니지, 가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나팔꽃이어야만 하나?
생각이 깊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들고 가서 심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공간이 없다는 말이지…….’
옥상의 공간은 한정적이다.
폴라나에만 전념해도 퀘스트를 깰까 말까인데 다른 걸 시험할 겨를은…….
“왜 그래요?”
주상혁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 그러고 보니 얘가 있었지?’
필요하면 집에다가 하우스를 뚝딱 만드는 게 강혜영이다.
청초길드가 사람이 많이 오가서 대놓고 만들기에 무리가 있지만, 강혜영의 저택이야 워낙에 넓으니…….
‘하우스 근처에 하나쯤 더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주상혁이 말했다.
“그 혹시 하우스 같은 것 좀 만들 수 없나?”
“우리 집에요?”
“어, 가능하면 많이 길러 보고 싶어서.”
“음…… 괜찮을 거 같긴 한데 저보단 아빠한테 부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주상혁이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거 같았는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강태섭과 나눈 대화는 고작 1분여쯤.
전화를 끊은 주상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몽땅 길러 봐야지.”
꽃집에 있는 씨앗을 싹 다 털어 집으로 온 주상혁이 옥상으로 향했다.
“여기에 심게요?”
“그래야지, 당장에 하우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강혜영의 질문에 답했더니 녀석이 말했다.
“근데 그건 둘째 쳐도 지금 심어도 돼요? 그러기에는 아직 너무 춥지 않아요?”
때마침 추운 바람이 한 가닥 불었다.
여름에 심었던 저번과는 계절이 정반대임을 인지한 주상혁이 주주에게 물었다.
“주주는 어떤 거 같아?”
와왕!
왕, 하고 짖는 해태님은 문제없으시단다.
저 격렬히 흔드는 꼬리가 증거였다.
“괜찮나 봐.”
“음…… 그래요?”
폴라나를 주주와 함께 심는 걸 지켜보던 강혜영이 물었다.
“근데요, 오빠.”
“어, 왜 또?”
“원래 취미가 꽃 기르는 거예요?”
“아니?”
전생에도 분재하나 길러 본 적 없다.
이슬 폴라나라는 기형적인 사기 약초를 기르기 위해서였지 아니었다면 이런 고생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긴 애는 모르나?’
말을 해 주지 않았으니 나팔꽃이 이슬 폴라나가 됐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근데 갑자기 웬 꽃을 이렇게 심어요?”
“이게 주주가 길러 주면 특이한 폴라나로 자라더라고.”
“특이한 폴라나……? 어제 그 폴라나요?!”
어제 텐트로 오는 길에 이슬 폴라나가 만드는 아름다운 광경에 정신을 잃고 한참 구경했던 강혜영이다.
상당히 인상 깊었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래, 나팔꽃을 심었더니 그게 자라더라고.”
“진짜죠?”
강혜영이 흥미가 생겼는지 물었다.
“저도 심어도 돼요?”
“안 돼.”
누구 농사 망칠 일 있나.
탐관오리보다 더 무서운 녀석이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어서 얼굴을 봤더니 악의는 없는 것 같다.
“왜, 왜요?”
“너, 니 하우스를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냐?”
“그,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여하튼 안 돼.”
스킬이니 뭐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복잡해질 거 같아서 단호하게 말했더니 ‘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그런 거에 흔들릴 주상혁은 아니었다.
뒤에서 구경이나 하라고 한 뒤에 30분쯤 화단에 넓게 펼쳐 심은 주상혁이 주주를 바라봤다.
“그럼, 또 부탁해도 되지?”
왕!
자신감에 찬 모습이 아주 듬직했다.
‘우리 주주는 못 하는 게 뭔지 모르겠네.’
* * *
주상혁을 찾아왔다가 얼떨결에 청초길드에서 지내게 된 클린트.
계획에 없이 청초길드에 머물게 된 것이었지만 클린트는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석 달.
결전의 날을 위해 조용히 날을 갈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클린트가 조용히 눈을 떴다.
머릿속으로 벌써 수십 번 수백 번 사투를 벌였다.
대상은 당연히 태국에서 마주쳤던 녀석들이었다.
클린트가 중얼거렸다.
“또……인가?”
졌다.
그것도 처참하게 졌다.
수백 번의 심상 대련 중 단 한 번도 클린트는 남자를 이긴 적이 없었다.
물론 그때 만났던 남자가 보였던 수준으로 대결을 펼친 건 아니었다.
남자가 포션을 먹는다는 전제하에 전투를 펼쳤다.
“다시 한 번…….”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던 클린트가 다시금 눈을 감고 대결을 펼쳤다.
자신의 강점인 속도와 예리함으로 승부를 보려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도 남자에게 한방이라도 허용하면 맥없이 주도권을 내어줬다.
이미 백번의 심상 대련에서 주도권을 내어준 순간의 처참한 결과를 알기에 클린트가 한방을 허용하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머릿속을 흩트려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대결을 시작했다.
쓰라린 패배의 연속을 그 뒤로도 두세 번쯤 더 경험한 클린트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잠시 식혀야겠군.”
클린트가 이곳에 머문 지도 벌써 한 달째.
한 번도 따로 바깥에 나간 적 없던 클린트가 방문을 나섰다.
왕!
방을 나선 클린트가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딱 굳었다.
방문 앞에 앉아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예전에 유럽에서 자신을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줬던 녀석이 분명했다.
예리한 눈썰미를 지닌 자신이 제아무리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라고 몰라볼 리 없었다.
반가움에 본인도 모르게 아는채하려던 클린트가 아차 싶었는지 혀를 찼다.
“츳… 문 앞에서 얼쩡거리긴.”
와왕!
주주의 분신을 무시하고 클린트가 복도를 걸었다.
산책에 나서기 전 주상혁의 방 앞에 도착한 클린트의 표정이 묘해졌다.
녀석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방 안에서 주상혁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옥상인가?”
클린트가 혹시나 해서 걸음을 돌려 옥상으로 향했다.
“역시 없군.”
클린트가 옥상을 살피고 돌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후관을 나서 담벼락을 넘은 클린트가 도로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바깥을 걷는 건 오랜만이군.”
오늘로 벌써 3월 말일이다.
따뜻한 햇볕과 차가운 공기가 뒤섞인 봄날은 클린트의 머리를 가볍게 해 주기 충분했다.
“그래, 할 수 있다. 아직 2달이나 남지 않았던가?”
여차하면 주상혁 그 녀석의 포션도 있다.
녀석이 강화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막힌 벽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데 거참 지루한 동네로군.”
빼어난 절경도, 화려한 볼거리도 없는 그저 그런 동네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던 클린트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뒤를…….
와왕!
주변을 살핀 클린트가 눈앞의 강아지를 바라봤다. 아까 문 앞에서 마주쳤던 녀석이었다.
분위기상 조금 전 뒤를 밟는 듯한 느낌은 이 녀석인 듯했다.
“뭐냐, 왜 따라오는 거냐?”
와왕!
뭔가 말하는 거 같은데 당연하게도 클린트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지, 솔직히 이유는 알겠군’
녀석은 주상혁의 소환수다.
이유 없이 자신을 쫓아다니지는 않을 터.
아무래도 주상혁이 자신을 쫓아다니라고 했을 확률이 높았다.
혹여나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한 건 녀석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칫…… 쓸데없는 짓을.”
클린트가 도로에 앉아 있는 분신에게 말했다.
“이리 와라.”
클린트의 손짓에 분신이 엉덩이를 들고 폴짝폴짝 뛰어와 클린트의 어깨에 앉았다.
왕!
“그래, 같이 산책이나 하자, 이놈아.”
* * *
클린트는 주상혁이 밖을 나돈다고 박한 평가를 내렸지만, 사실 주상혁도 생각 없이 밖을 싸돌아다니는 건 아니었다.
해외의 어느 해변에 존재하는 S급 던전에서 주상혁이 나왔다.
주상혁을 발견하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눌리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혹여나 귀찮게 둘러붙기 전에 주상혁이 전이 아티팩트를 꺼내 사용했다.
“3번.”
워프 지점을 선택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상혁이 말했다.
“스테이터스.”
Lv.5 상급 의술
Lv.8 상급 침술
Lv.5 상급 조제술.
Lv.3 상급 진맥.
“확실히 많이 오르긴 했어.”
주상혁이 한 달간 집중한 건 두 가지.
바로 의술계열 스킬들과 강혜영의 하우스 옆에 만든 새 하우스에 식물을 돌보는 일이었다.
‘덕분에 정작 집에는 못 가는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열악했던 화단의 환경과는 다르게 환경이 잘 조성되자 한 달 만에 폴라나를 비롯한 몇몇 약초는 벌써 봉오리가 되어 퀘스트를 주고 있었다.
‘이슬’이라는 이름이 붙은 약초가 많을수록 주상혁의 전력엔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멈춰 있던 레벨도…….
『Lv.144 주상혁 (도핑 중).』
무려 144가 되었다.
클린트와 미즈키가 가져다준 산삼에 이슬 폴라나 포션을 먹자 13단계나 상승했다.
이러니 불만이 나올 리가.
“이 정도면 마이클도 찜 쪄 먹는 수준이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걱정거리는 있었다. 주상혁의 적은 마이클이 아니라는 거다.
적은 얼굴조차 모르는 미지의 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그렇다고 성장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슬슬 다 된 건가?”
어느덧 검게 변한 마나막이 보였다.
전이 준비가 대충 끝났나 보다 생각할 무렵.
파스스스슥.
전이 아티팩트 밖에서 멍하니 주상혁을 바라보던 외국인 기자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마침내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혜영의 저택 뒤편의 광경이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면.’
와왕!
주상혁의 하우스다.
품으로 주주가 안겨 들었다.
하우스를 돌보라고 남겨 두고 갔는데 주상혁의 기척을 느끼고 뛰쳐나온 듯했다.
S급 던전이라고 해 봐야 고작 몇 시간 떨어져 있던 건데 그렇게 좋을까…….
“하우스 잘 지키고 있었지?”
왕!
뺨을 정신없이 핥는 주주를 쓰다듬어 주고 하우스로 향했다.
주상혁의 하우스는 강혜영의 하우스 뒤편 조리용 컨테이너를 조금 더 지나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쓱 한 바퀴 둘러봤다.
주상혁이 여전히 떡잎단계에서 자랄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흐음…… 이 녀석들은 여전하네…….”
잘 자라는 녀석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폴라나, 베라, 갈랑, 멜팅 등.
굳이 분류하자면 채집 난이도가 쉬운 녀석들은 잘 자랐다.
하지만 C급 던전 이상에서 채집이 가능한 베이칼이나 몰피스 같은 녀석들은 이런 상태였다.
“뭐 때가 되면 자라겠지.”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주상혁에게 퀘스트를 몰아치던 봉오리 단계의 녀석들이 보였다.
주상혁이 퀘스트를 수령하고 재료가 있는 건 곧바로 깨고 아닌 건 건너뛰고를 반복했다.
“음…… 이번엔 그린톨의 점액? 이런 몬스터도 있었나? 처음 듣는데?”
10분여쯤 하우스를 돌면서 이슬 폴라나를 이외에 봉오리 진 녀석들의 퀘스트를 완료와 수령을 반복하던 주상혁이 최종적으로 퀘스트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린톨의 점액…… 이거 빼고는 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거네.”
이슬 폴라나의 경우 이미 퀘스트를 모두 완료하고 개화하길 기다리는 단계였지만, 다른 녀석들은 바라는 게 다 제각각이라는 게 귀찮다면 귀찮았다.
“어때? 주주도 지금 조금 한가하면 밥 먹고 할래?”
와왕!
늦더라도 같이 점심 먹게 도착하면 알려 달라고 한 강혜영이다.
주상혁이 강혜영에게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할 때였다.
먀먕.
저 멀리서 익숙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강아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주상혁이 주주랑 같이 안아 들고는 걸음을 옮기자 조금 뒤늦게 강혜영도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강혜영이 말했다.
“역시, 오셨어요?”
“뭐, 일단은. 살 게 있어서 한숨 자고 금방 나가 봐야 할 거 같긴 하지만.”
“살 거? 그게 뭔데요?”
“그린톨의 점액이라나? 한번 클린트 쪽에도 들러보고 없으면 직접 구해야지.”
“흐음…… 그렇구나.”
강혜영이 주상혁과 함께 걷다가 물었다.
“근데요, 오빠, 그거 알아요?”
“알아? 뭘?”
“SS급 던전이 나타났대요.”
* * *
SS급 던전 그것이 등장한 것은 파도가 유독 거칠던 어느 봄날이었다.
중국 상하이의 어느 부둣가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포탈.
아니, 어쩌면 이미 그 크기는 포탈이라 부르기보다 게이트라고 부르는 게 적합해 보였다.
얼마 전 하늘에서 등장했던 S급 흑색 게이트들보다야 크기가 작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보자니 이미 그 크기는 한눈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거대했다.
어림잡아 100m는 거뜬할 것 같았다.
S급도 일반적이라면 40m를 넘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압도적.
눈을 뗄 수 없는 규모에 전 세계의 시선이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당내에서는 이 SS급 게이트가 출몰함과 동시부터 여러 간부들이 모여 바쁘게 의견이 오갔다.
중국의 각성자 협회 국장이 말했다.
“미국에서 원조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그 의중이 무어라 생각하나?”
현 중국의 주석 웡레이의 말에 국장이 말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물론 작게는 그보다 이유는 훨씬 많겠지만, 국장은 두 가지를 짚었다.
“그게 뭔가, 말해 보게.”
“하나는 자국의 각성자 마이클을 재 검증할 무대로 사용할 생각일 겁니다.”
“역시, 이건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아.”
마이클.
얼마 전까지 전 세계 최고의 각성자로 뽑혔지만, 냉정히 말해 현시점에서는 아니다.
여전히 그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전처럼 압도적인 입지는 아니었다.
그 이유로 말하자면 얼마 전 주상혁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대형 사건을 터트린 데 있었다.
S급 더블 헤더 던전을 단신으로 정리한 일.
세계 최초로 첫 번째 SSS급 각성자가 되면서 주상혁의 주가가 상승했다.
당연히 마이클의 입지에 균열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이건 이후에 주상혁이 등급 심사를 다시 하며 SSS급의 기준을 헌터 의회에 넘긴 뒤 마이클과 클린트가 연이어 SSS급이 되었음에도 회복될 기미는 없었다.
어떤 일이든 최초라는 데에서 오는 임팩트가 있기 마련인데 그게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즉, 국장과 웡 레이는 이런 세계적 흐름을 근거로 이번 미국의 원조를 이렇게 해석했다.
마이클의 입지를 다시 끌어 올리는 데 사용할 무대라고…….
웡 레이 주석이 회의실에 있는 간부들의 황제에 버금가는 고압적인 시선으로 훑고는 중얼거렸다.
“뭐, 이 부분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웡레이가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중국 외 다른 곳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함일 게 분명합니다.”
단순히 S급 게이트만 해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그 폭발력만으로 도시하나가 괴멸하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한데 만약 SS급 던전이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일단 상하이가 통째로 날아가는 건 둘째 치고 이후에 튀어나온 몬스터로 인해 중국의 괴멸은 당연하며 주변국까지 피해가 번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전 세계에 필요 이상의 혼란이 깔리면 미국에도 상당한 손해.
당연히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웡레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두 번째 이유만이라면 냉정히 미국의 원조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장에 중국의 최정예 공격대에 마이클이 더해진다면 SS급 던전을 극복하는 건 간단하리라.
‘하지만 마냥 제안을 받아들이기엔…….’
미국이 가져가는 이득이 너무 크다.
당연히 자존심 때문에 괴멸적인 피해를 감수하는 건 어불성설이었지만, 미국의 손을 빌리는 건 대국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웡레이가 국장에게 물었다.
“미국의 원조를 받는 것에 대해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군.”
“당은 주석의 결정을 따를 뿐입니다.”
국장의 말에 웡레이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
여기서 잘못된 실수를 하면 기껏 짓눌러 놨던 당내 정적들이 활개를 칠 게 뻔하다.
결국 주석으로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 웡레이의 수심이 깊어질 무렵.
국장의 입이 재차 열렸다.
“하나, 미국의 원조를 받는 건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쭉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 왔다.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뛰어난 각성자들을 선점하는 탓에 쭉 이인자로밖에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중국에도 찬스가 찾아왔다.
근래에 올리비아가 미끄러지며 드디어 SS급 각성자의 숫자가 얼추 동일해졌었고 마이클의 입지마저 실추되는 찬스가 찾아온 것.
그런데 이런 상황에 미국의 원조를 받는다면 미국의 아성에 도전할 찬스를 스스로 놓아 버리는 것과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헌터 국장은 말했다.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말이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타개책도 있다는 말이었다.
“묘안이 있다는 말인가?”
“묘안이랄 것도 아닙니다. 이이제이, 예로부터 오랑캐는 오랑캐로 잡는 법이지요.”
“이이제이…….”
마이클에 대항할 만한 사람을 웡레이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클린트의 손을 빌리자는 말인가?”
당 역사상 클린트에게 접촉한 적이 없진 않다.
단적인 예로 일전에 마이클을 처리해 달라고 클린트에게 의뢰했던 이도 중국이었다.
“아니요, 클린트는 거물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확실히…….”
클린트는 날카로운 검인 건 확실하지만, 너무 거만할뿐더러 몸값도 너무 비싸다.
“그럼? 주상혁을 말하는 겐가? 물론 포섭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하지만 주상혁도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 마이클이 아닌 다른 이를 불러오자고 했을 때 웡레이도 주상혁을 떠올리지 못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클린트보다 주상혁을 먼저 떠올렸다.
이미 SS급은 아니더라도 더블 헤더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이 있었으며 포섭할 수만 있다면 클린트보다 훨씬 싼 값에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
“접촉할 방법은 있나?”
하지만 윙레이는 그럼에도 주상혁을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클린트를 먼저 언급했다.
가장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상혁과 접촉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어지간한 S급 각성자를 파견해도 그의 이복동생들에게 몰매를 맞기 일쑤였고 SS급 각성자의 경우엔 심사 절차가 너무 까다롭게 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헌터 국장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신다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