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37
Book 8 Chapter 1
TV를 켜 놓고 중계 채널을 바라보던 주상혁이 오징어 다리를 떨어트렸다.
옆에서 같이 보던 주주도 폴라나를 질겅질겅 씹다가 떨어트렸다.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와와왕!
분노를 토하는 건 주상혁과 주주뿐만이 아니었다.
한참을 뜸을 들이던 마이클이 돌아서는 것을 끝으로 화면이 돌아가 버리자, 기대하던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뭐임 치킨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이걸로 끝임?
└그래서 마지막에 그 허물은 뭐였는데요? 그거 몬스터 아니었나요?
└누가 설명 좀요, 화장실 다녀왔더니, 드라마 재방송 중임.
└뭐가 어떻게 된 거죠?
그나마 이 정도면 순한 맛.
개중에는 장문의 욕설을 채팅으로 써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이클이 엔키라도를 가볍게 후들겨 패며 직진 또 직진할 때는 역시 세계 최강이라느니.
역시 미국의 비밀 병기라느니.
칭찬 일색에다가 한술 더 떠서 주상혁과 비교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지금은 마이클더러 비밀 변기란다.
“대체 뭐지……?”
물론 좀 이상한 점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한참을 허물을 노려보던 마이클을 보아, 그 안에 무언가가 있음은 확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않고 돌아섰다면…….”
가능성은 하나.
‘엄청 강한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허물 안에 있는 존재를 마이클이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면 이해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주상혁은 무엇보다 던전을 클리어했던 당사자다.
보스가 아니라면 딱히 마이클을 돌려세울 만한 엔키라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상하네…….”
머리가 한창 복잡할 때쯤.
드라마 재방송이 끝나고 마이클의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인터뷰 자막을 읽어 가다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였다.
허물 안에 마이클조차도 엄두를 못 낼 그런 몬스터가 있었다고.
마이클은 또박또박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데…….”
여하튼 믿을 수 있든 믿을 수 없든 달라질 건 없다.
그저 이번 사건을 마이클이 포기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 * *
그날 아침.
청초길드로 급히 한 남자가 찾아왔다.
『Lv.66 …….』
‘뭐지 그새 바뀐 건가?’
남자는 자신을 중국의 각성자 협회의 협회장이라고 소개했는데.
일전에 봤던 장바이즈가 아니었다.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하기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SS급 던전의 소탕을 실패한 것도 모자라 던전 브레이크까지 발생하도록 방치했으니 파면당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주상혁이 말했다.
“그래서 던전 브레이크를 처리해 달라고요?”
“그렇습니다.”
“뭘 줄 수 있는데요?”
물론 생각이 있다면 이전처럼 산삼을 내놓을 것이다.
“이게 뭔데요?”
서류 가방에서 꺼내 넘기는 종이를 받았다.
협회장이 말했다.
“중국이 앞으로 10년 안에 삼백 년 삼 이상의 산삼을 열 뿌리 이상 지급하겠다는 서약서입니다.”
삼백 년 삼.
이름만 들어도 레벨이 쭉쭉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덤으로 주주의 좋아하는 환청도…….
와왕!
아, 환청이 아니구나?
고개를 조금 돌려 보니, 주주가 창문 밖 난간에서 짖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뭔데 그래?”
와와와왕.
“누가 온다고?”
대체 누군가 싶은 찰나에 느껴지는 마나가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걸 느끼고 주상혁이 잠시 서서 기다렸다.
1분쯤 지났을까?
마나의 주인이 사무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Lv.140 마이클.』
주상혁이 창문 난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그쪽은 무슨 일로?”
“그 계약, 하지 말아라.”
“그쪽이 무슨 명분으로?”
난데없이 들어와서 하는 말이 아주 웃기다.
이번에도 무슨 우방 들먹이며 말 같지도 않은 말이나 하면 폐던전으로 끌고 가서 흠씬 두들겨 패 줄 생각이었다.
“놈은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난 또 뭐라고.
가볍게 픽 웃어 주고 웃기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가만?’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떠올랐다.
아르돈의 예언.
6개월 뒤쯤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고 했던…….
“음…….”
근데 생각해 보니 대충 기한이 차긴 했다.
또 무엇보다 반드시 인간에게 살해당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기에, 묘하게 신경 쓰였다.
‘몬스터에게 살해당하지 말란 법 없으니까.’
조금 마이클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로 했다.
“무슨 근거로? 그걸 확신하지?”
혹시 예전 폐던전에서 한바탕했던 그 정도 수준으로 얕잡아 본다면 오산이다.
주상혁은 그 뒤로 정말 많이 강해졌다.
“그쪽이 많이 강해졌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모르잖아?”
맞다.
마이클은 모를 게 분명하다.
주상혁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동안 얼마나 밤잠 설쳤는지.
얼마나 많은 산삼을 양갱으로 만들어 먹었는지!
“그럼 한번 마나를 보여 줄 수 있나?”
마이클의 제안에 주상혁이 픽 웃었다.
냅다 놀래줄 생각으로 전력으로 마나를 일으켰다.
방안의 가구가 사방으로 날아가 산산조각 나 버리다 못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물건들도 종종 보였다.
“……!”
마이클의 눈이 큼지막하게 변했다.
설마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
그럼 그렇지, 보란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가, 문뜩 구석으로 날아간 협회장을 발견하고 마나를 급히 갈무리했다.
‘다행히 기절한 정도인가?’
방구석으로 날아간 협회장은 정신을 잃고, 바르르 떨고 있었다.
입가에 문 게거품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협회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이클을 돌아보니, 마이클은 여전히 침음을 삼키고 있었다.
“역시.”
역시는 뭐가 역시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이클이 시선을 옮겨 주상혁과 눈을 맞췄다.
마이클이 말했다.
“그래도 역시 녀석이 더 강하다.”
“뭐……?”
믿을 수 없는 말.
엔키라도의 수준은 주상혁이 누구보다 잘 안다.
보스도 사실 그냥 놀면서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상혁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수수께끼의 검은 약탕기로 제작한 이슬 폴라나 포션은 지금 않았다지만……
『Lv.155 주상혁(도핑 중).』
그 뒤로 고급으로 달성한 침술 덕에 155레벨까지 올랐다.
당시보다 5레벨이나 성장한 것이다.
“에이, 그쪽이 착각한 거겠지.”
대수롭지 않다는 양 이렇게 말했더니 아주 개정색을 하면서 말한다.
“무슨 수로 이렇게 단기간에 강해졌는지는 묻지는 않지. 하지만 그래도 내 말에 거짓은 없다.”
“…….”
“놈은 그저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전력에 도움이 될만한 각성자를 모조리 끌어모아서 처리해야 해.”
생각이 깊어졌다.
이렇게 말하니까, 아르돈의 예언이 뭔가 더욱더 골치 아프게 만든다.
“하, 산삼…….”
마나를 일으킬 때 날아가 벽에 벽보처럼 박힌 서약서를 바라봤다.
아쉽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하지만 그렇다고 또 혼자서 들이박기도 애매한데…….’
서약서를 떼어 들고 한참을 고민에 잠겼다. 그러자…….
‘아니지?’
문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마이클, 이 녀석 그러고 보니까, 어제 중간까지 함께 끌고 들어갔던 녀석들이 있었다.
어제 TV로 지켜보기에, 그들은 분명히 버프술사들.
휙.
고개를 돌렸더니, 마이클이 물어왔다.
“뭐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어제 그 녀석들 빌릴 수 없나?”
“그 녀석……?”
마이클이 알아먹었는지, 뒤늦게 말했다.
“버프를 받고 싶다는 건가?”
“그래, 아까 제법 고민하던 거 보면 나랑 엄청 차이가 나는 건 아니잖아? 버프받으면 또 어떨지 모를 일이고.”
“그렇긴 하다만…….”
주상혁이 씨익 말했다.
“그 녀석들 어딨는데?”
어쩌면 간단하게 일이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 * *
다행히 버프술사 두 사람은 마이클과 같이 전주에 와 있었다.
주상혁이 잠시 후 두 사람에게 버프를 받고는 중얼거렸다.
“스테이터스.”
『Lv.159 주상혁(도핑 중).』
버프를 받은 주상혁의 레벨은 무려 159.
155에서 4단계나 오른 상태였다.
‘이거 꽤 쓸만한데?’
이 구간에서 4레벨이면 다른 사람이 됐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마이클의 판단이 달라졌을 수 있다.
주상혁이 옆에서 지켜보는 마이클에게 보라는 것처럼 마나를 일으켰다.
청초길드 뒤편 공터에 무성하던 잡초들이 거센 바람과 함께 뽑혀 사라졌다.
마나를 적당히 유지하다가 갈무리하고 물었다.
“어때?”
조금 전보다 마이클의 고민이 더 길게 이어졌다.
아무래도 느끼기에 놈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의미일 게 뻔했다.
씨익.
마이클의 답을 아직 듣지도 않았는데 미소가 피어났다.
‘나한테는 이게 있단 말이지.’
Lv.15 팔맥 봉인.
기회만 된다면 수십 레벨의 차이쯤은 가뿐히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사기적인 스킬이 존재했다.
애초에 손에 닿지 않을 수준의 격차만 아니라면 주주도 있고 더 질 좋은 이슬 폴라나 포션도 있었다.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는 말.
“역시 그놈이 더 강하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입과는 달리 조금 떨어져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협회장에게로 걸어갔다.
주상혁이 협회장이 들고 있는 계약서를 낚아채고 말했다.
“10년이 아니라, 1년.”
“그게 무슨……?”
“던전 브레이크, 제가 정리해 줄 테니까, 10년이 아니라, 1년 안에 삼백 년 삼 열 뿌리 내놓으라고요. 할거하는 거예요, 말 거예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협회장이 생각에 빠져들며 수심 깊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당연했다. 10년에 열 뿌리는 간단하겠지만, 1년 안에 모으려면 그야말로 계약서에 써 둔 것처럼 총력을 기울여야 할 수도 있다.
주상혁의 말을 듣고 마이클도 당황했는지, 목소리를 흘렸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지? 놈이 더 강하다니까?”
“그쪽은 좀 빠지지?”
생각이 길어지는 협회장에게 답을 채근했다.
“듣기로는 지금 엔키라도가 난리 피우기 시작했다던데, 아닌가 보죠?”
어제 마이클의 습격이 있고 나서 엔키라도들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영역 밖으로 나와서 행동하기 시작한 것.
도시 두어 개쯤을 신나게 박살 내더니,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시 멈춰 섰다는 뉴스를 아침에 확인했다.
“혹시……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죠.”
주상혁의 마나를 온몸으로 느껴봤을 협회장이다.
이 정도 협박이어도 충분.
66레벨이면 그래도 어디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는 각성자다.
그 앞의 미래를 상상하는 건 너무나도 손쉬운 일일 것이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금 더 생각하던 협회장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주상혁이 서약서에 사인하고 하나를 넘겨줬다.
“그럼 가시죠.”
* * *
주상혁은 협회장이 타고 온 전세기를 타고 중국으로 이동했다.
‘음 제법 좋네…….’
전세기치고는 최대 16명이나 탑승할 수 있는 비행기.
편안한 분위기의 상아색 내부.
딱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가죽 시트.
“여기가 좋으려나?”
전세기 가장 후미에 마련된 좌석은 4명이 둘씩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역시 예상은 정확했다.
앉자마자 침대에라도 누운 것처럼 포근한 감촉이 몸을 지배한다.
이대로 한숨 잘까 생각하던 때였다.
푸우우우.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왜 여기 앉아, 이 자식아?’
마이클이 옆자리에 앉았다.
하다못해 맞은편에 앉던가.
“저기 건너편에 자리는 나만 보이나?”
“이왕 가는 거 같이 앉아서 가지.”
말하는 순간 맞은편 두 자리는 버프술사 녀석들이 차지했다.
굳이 빈자리 많은데…….
이렇게 미어터지게 앉아서 가는 건 사양이었다.
‘오면서 보니까 앞쪽에 1인석도 있었지?’
귀찮긴해도 그곳으로 옮겨 앉았다.
1인석에 앉으면 지가 어쩔 건데?
1인석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더니, 이번엔 바로 뒤까지 따라 이동해 뒷좌석에 앉은 마이클이 물었다.
“그나저나 괜찮겠나?”
하…… 조용히 좀 가자.
“뭐가?”
“몬스터가 한국으로 가면 어쩌려고?”
말하는 뉘앙스가 그쪽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한국에 엔키라도가 넘어오면 어쩔 거냐고 묻는 분위기였다.
“뭐, 다 생각이 있지.”
그리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런 상황쯤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막말로 중국이야 딴 나라 이야기.
옆집에 불이 났다기에 다녀왔더니, 우리 집이 잿더미가 되어 있는 그런 웃지 못하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상혁은 편하게 전세기에 올랐다.
‘여차하면 클린트가 있잖아?’
클린트에게는 혹시나 엔키라도가 넘어갈 상황을 대비해서 부탁해 뒀다.
이슬 폴라나 포션을 두어 개 넘겨줬으니, 녀석 혼자라도 거뜬하리라.
“그렇게 걱정되면 그쪽이 한국 좀 지켜 주던가.”
“사양하지.”
그러면 그렇지 기대도 안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이클이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로 자신 있나?”
“못할 건 뭔데? 그리고 계속 그렇게 떠들 거면 돌아가라니까?”
누가 딱히 따라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따라와서 귀찮게 굴고 있다.
주상혁이 요구한 건 처음 앉았던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버프술사 남매.
딱히 쓸데없이 근육만 우락부락 붙어 있는 마이클이 아니었다.
“여하튼, 그럴 거 아니면 말 걸지 마.”
이제 답 안 할 거니까.
* * *
펑, 퍼엉, 퍼벙.
이튿날 아침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멈춰 있던 엔키라도.
녀석들은 몇 시간 지나자, 다시금 행동을 개시했다.
도시들을 닥치는 대로 습격해 민가와 건물을 부수고 피난민을 추격해 배를 채우기의 반복이었다.
피해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자 중국의 당 간부들도 하염없이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던전 클리어 당시 활약했던 공격대를 다시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하고 파견한 것이다.
당연히 공대장은 웨이동.
한번 실수하긴 했다지만, 그래도 중국 최고의 각성자를 믿기로 했다. 하지만.
“끄아아악.”
“흐억.”
결과는 비참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엔키라도 두 마리를 발견하고 기습했던 건데 또 한 번 박살이 났다.
S급 각성자가 또 다수 사망했다.
기세가 죽자 공격대의 결정은 이번에도 역시 퇴각.
“인원은 얼마나 되지?”
“그래도 다행히 몸을 빼내는 게 빨랐던 덕에 8할 이상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래 그나마 위안이라면 최소한의 피해로 위기를 넘겼다는…….
“이럴 수가…….”
그런 판단이었는데…….
“엔키라도?”
“놈들이 어째서 맞은편에?”
맞은편에서 날아오는 엔키라도 두 마리.
자세히 보니, 조금 전 녀석들이 아니다.
머리가 네다섯 개인 녀석들과 다르게 이번 녀석들은 대여섯 개.
즉, 조금 전까지 다투던 녀석들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운다.”
머리가 많을수록 약한 개체라는 건, 이미 경험으로 웨이동도 알고 있다.
추격이 따라붙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고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 할 수 있다.’
웨이동이 주먹을 콰득 쥐었다.
공격대가 온전할 때는 그래도 5마리까지도 처리해 본 적이 있다.
공격대의 전력이 그때에 비하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60% 정도는 유지 중이다.
고작 두 마리쯤이야…….
손쉽게…… 너무나도 손쉽게 처리해야 할 텐데…….
“왜……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웨이동이 분에 차 소리를 질렀다.
무능한 자신 때문에 많은 대원들이 죽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울분이 터진 것이다.
마법 계열 각성자들의 마법을 무시하고 다섯 겹으로 세워진 배리어에 발을 얹는 엔키라도 두 마리.
녀석들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려는 짓이야 뻔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도저히 녀석들을 막아 낼 방법이.
크아아아아아!
엔키라도 두 마리의 모든 주둥이에서 브레스가 뿜어지는 것과 동시에 배리어 세 겹이 날아가더니 곧이어 한 겹의 배리어가 날아갔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배리어와 이제껏 공대원의 목숨을 제물 삼아 살아남은 사람들뿐.
“끝인가?”
이대로 엔키라도의 브레스에 그대로 쓸려나갈 운명에, 비참함을 맛보았을 때였다.
“공대장님……!”
“어, 어째서?”
엔키라도의 브레스 줄기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의외로 배리어도 예상보다 잘 버틴다.
“설마!”
당장에 마법 계열 각성자에게 다시금 공격 명령을 내렸다.
쿠구구구궁.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퍼부었던 마법에는 꼼짝도 하지 않던 엔키라도가 주춤주춤 배리어를 놓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웨이동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할 때였다.
“그래도 다행히 늦지는 않았나 보네.”
“주상혁…….”
“그래, 오랜만이다? 약 한 달 만인가?”
웨이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약해진 엔키라도.
이유 없이 강해진 공격대.
갑자기 나타난 주상혁.
사실 오래전부터 외면해 왔던 진실이 떠올랐다.
콕.
주상혁이 웃으면서 웨이동의 이마에 침을 놓았다.
순간 당황했지만, 힘이 넘쳐흘렀다.
던전을 클리어할 때처럼.
* * *
중국에 도착한 주상혁은 버프 술사에게 버프를 받았다.
지속 시간: 7:01:01
“대략 1시간쯤 지난 건가?”
두 사람에게 받은 버프의 지속 시간은 8시간.
하지만 지금의 능력치 옆에 보이는 시간은 7시간 남짓이었다.
물론 이동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와아아아아아.”
중국의 공격대가 추가로 합류한 엔키라도까지 넷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시간을 제법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통쾌한 복수를 마무리 지은 공격대의 함성이 들려왔다.
응어리졌던 이웃의, 벗의, 동료의 복수를 했다는 것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30분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소모하긴 했지만.
애초에 딱히 상관은 없었다.
7시간이면 차고 넘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주인과 곧이어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뭔데, 또.”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함성을 내지르던 웨이동과 공격대들이 어느새 앞으로 몰려와 있었다.
웨이동이 무릎 꿇었다.
“내가 당신에게 시기를 느끼고 치졸하게 행동했음을 사과하겠다.”
뭐, 솔직히 녀석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도와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에 주상혁도 순수하게 선의로 한 일은 아니다.
산삼이라는 받은 게 있으니까, 이른바 받은 만큼 도와준 것.
하지만 막상 무릎까지 꿇으니 좀 뻘쭘했다.
복수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나?
“뭐, 미안하면 산삼이나 신경 써서 챙겨 주던가.”
그래, 산삼.
그것만 잘 신경 써 주면 된다. 저 말이 진심이라면…….
“슬슬 올 것 같은데.”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주상혁을 따라 웨이동과 공격대가 따라 고개를 돌렸다.
눈에 하나둘 엔키라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게 다 몇 마리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50마리는 넘지 않을까 싶었다.
하늘 가득 채운 엔키라도를 확인했다면 이제 도망가면 될 텐데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공격대에 물었다.
“안 도망가냐?”
“함께 싸우겠다.”
“음…….”
솔직히 방해된다, 그것도 엄청.
‘그냥 돌려보내는 게, 솔직히 좋은데…….’
있어 봐야 신경 쓰이고 방해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문뜩 녀석들의 손에 들린 것들이 보였다.
다수의 병기.
주상혁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맞네.’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 도와주려면 그럼 들고 있는 것들이나 좀 빌려주든가.”
공격대가 시선을 주고받다가, 병기를 하나둘 주상혁의 발 앞에 내려 뒀다.
장검이든, 단검이든, 스태프든.
병기가 하나둘씩 쌓여 갔다.
“이러면 되나?”
“그래, 이제 물러나 있어 봐, 방해되니까.”
공격대가 물러나 지켜보는 게, 등 뒤로 느껴졌다.
뭘 하려고 병기를 빌려달라고 하나 궁금했겠지.
“슬슬 이 정도 거리면 되려나?”
엔키라도가 어느덧 300m 지점을 통과할 때였다.
주상혁이 병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휘잉.
강화 투척을 사용하셨습니다.
강화 투척을 사용하셨습니다.
강화 투척을 사용하셨습니다.
주상혁이 손에 존재하는 병기들을 닥치는 대로 엔키라도를 향해 집어 던졌다.
장검이 되었든 단검이 되었든 스태프가 되었든.
투척이라고 꼭 암기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날아간 병기는 어김없이 엔키라도의 가슴에 적중했다. 그리고…….
쿵. 쿵. 구궁…….
가슴에 큼지막한 구멍을 만들었다.
엔키라도들이 심장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시체가 되는 엔키라도가 이윽고 산처럼 쌓였다.
주상혁이 마침내 하늘에 떠 있는 엔키라도가 더 이상 없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히 얼추 맞네.”
손에 남은 건 단검 하나.
까딱하면 모두 처리하지 못할 뻔했다.
“이, 이럴 수가.”
“강한 줄은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수십 마리의 엔키라도를 제자리에서 처리한 게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주상혁이 말했다.
“거기서 구경만 하지 말고 몸이 근질근질하지 않아?”
“나 말인가?”
“그럼 그쪽 말고 또 있나?”
『Lv.148 마이클.』
버프를 받고 버프술사 녀석들과는 헤어졌지만, 마이클은 주상혁을 끝까지 쫓아왔다.
오는 중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거 같긴 했는데…….
뭐 그거야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마이클이 말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몸이 좀 쑤시긴 하군.”
“잘됐네, 그럼 그쪽이 세 마리를 맡아. 내가 큰놈을 맡을 테니까.”
마이클이 픽 웃었다.
“그러지, 애초에 내 상대는 아닌 거 같군. 그새 더 강해졌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공격대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엔키라도는 조금 전 주상혁이 해치운 거로 끝.
더 이상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저기.”
때마침 공대원 한 명의 목소리가 들린 찰나였다.
저 멀리서 세 마리의 엔키라도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선명해지는 녀석들을 바라보던 웨이동의 눈이 동요했다.
조금 전 주상혁이 쓸어버린 녀석들은 머리가 다섯 개 이상인 녀석들.
하지만 지금 날아오는 녀석들은 세 마리 모두 머리가 3개였다.
“근데 왜 셋이지? 분명히 조금 전에 넷이라고…….”
주상혁이 말했다.
“저기 있잖아, 가운데 놈 머리 위에.
웨이동이 그 말에 유심히 머리 위를 살펴본 찰나였다.
점점 가까워지던 엔키라도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순간 사람인 듯했지만, 사람은 아니다.
이족 보행을 하는 것도 두 개의 팔 두 개의 다리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2m 20cm 남짓의 신장에 전신에 시꺼먼 비늘.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이 악어의 눈동자처럼 생겼다.
웨이동은 저 눈을 알고 있다.
‘엔키라도…….’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던 엔키라도가 이윽고 엔키라도 사체가 쌓인 300m 지점에서 멈춰 섰다.
엔키라도의 머리 위에 서 있던 존재가 뛰어내려서 모래 먼지를 일으켰다.
대략 100m쯤.
그 앞까지 녀석이 천천히 걸어와서 정지했다.
『Lv.163 엔키라도.』
* * *
“엥……?”
엔키라도의 레벨을 처음 딱 본 순간 주상혁이 입으로 뱉은 말이었다.
163?
아, 물론 높다.
그것도 엄청.
레벨 업 하겠다고 꼬박 반년.
그렇게 고생, 고생 개고생을 했는데 130에서 고작 155.
심지어 거기에 나름대로 이름 있다는 버프술사의 버프까지 챙겨 받았다.
그럼에도 159.
163인 녀석의 레벨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엄청난 레벨이었다. 하지만…….
‘이거 솔직히 맥 빠지는데?‘
실망감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이 녀석이 아르돈의 예언의 대상일지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더욱더 그랬다.
‘어쩌면 과하게 강해졌을 수도……?’
생각을 하고 있던 주상혁이 픽 웃었다.
“그럴 리가 없나?”
따로 있다.
근거 없는 막연한 직감이었지만.
이 녀석은 아니라는 강렬한 직감이 들었다.
‘뭐, 일단 잔챙이인 거 같은데 후딱 처리하고 가 볼까?’
혹시나 녀석이 기습할 경우를 대비해서 주주를 소환했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말했다.
“마이클.”
“뭐지?”
“일단 뒤로 물러나야겠다.”
“뒤에 세 마리는 어쩔 생각이지? 나한테 처리하라고 한 것 아니었나?”
“딱 봐도 무슨 느낌인지 알잖아.”
마이클의 시선이 100m쯤 떨어진 지점을 향했다.
팔짱 끼고 거만하게 서 있는 엔키라도가 있었다.
일기토.
지금쯤 마이클의 머리에 그 단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놈이 뒤에 세 마리를 세워 놓고 홀로 앞으로 나온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녀석의 뜻이 그러면 응해 줘야지.’
한참을 고민하던 마이클이 못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지, 하지만 여차하면 끼어들지 않겠다고는 말 못 하겠군.”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말투로 마이클이 물러났다.
마침내 판이 깔렸다.
엔키라도가 원하고.
주상혁도 원하는 그런 판이.
“나도 슬슬…….”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서 마시려고 할 때였다.
엔키라도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더니…….
‘어쭈?’
갑자기 등을 보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뭔가 보여 주려는 건 목적인 듯했다.
물론 그 행동에는 주상혁이 급습해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존재할 게 뻔했다.
“그래, 뭐 하나 지켜봐 주마.”
주상혁이 엔키라도를 바라봤다.
잠시 후 엔키라도가 뒤편 도시를 향해 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스릉.
쿠구구구궁.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0m 뒤쯤에 쌓인 엔키라도의 사체들이 토막 나 바닥을 뒹구는 것을 시작으로.
도시가 통째로 도마 위의 햄처럼 깔끔하게 썰려 무너져 내렸다.
100m 200m 같은 단위가 아니었다.
채 눈으로 다 확인을 못 할 수준이니, 족히 km 단위.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게 썰려 사라졌음이 분명했다.
보란 듯이 다시 주상혁을 향해 돌아서는 엔키라도를 보며 주상혁이 따라 웃었다.
“귀엽네.”
주상혁이 들고 있던 포션을 마셨다.
수수께끼 약탕기로 달인 비약 등급의 이슬 폴라나 포션.
그것을 꼴깍꼴깍 삼켰다.
주체할 수 없는 마나가 일순간에 솟구쳤다.
육안으로 드러날 정도로 선명한 아지랑이가 주상혁의 몸 이곳저곳에서 피어났다.
『Lv.169 주상혁(도핑 중).』
“자, 이제 어쩔 건데?”
무려 10레벨이 단번에 솟구치자 엔키라도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춤주춤 물러났다.
“가만 보니까 먼저 들어올 것 같지는 않고…….”
모습을 감춘 주상혁이 단숨에 단검으로 엔키라도를 베고 지나갔다.
한 번에 동강 내 버리려고 그랬는데.
하지만 엔키라도는 생각한 것보다 더 단단했다.
전신을 두르고 있는 비늘이 장식은 아니란 말일 것이다.
툭.
뒤늦게 떨어져 나간 엔키라도의 우측 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자신의 잘린 팔을 바라보던 엔키라도가 뒤늦게 괴성을 터트렸다.
“크아아악!”
주상혁이 뒤늦은 괴성에 투덜거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자식이, 소리 지르려면 바로 지를 것이지!”
엔키라도의 등 뒤에 접혀 있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수백 미터의 날개였다.
“이번엔 또 뭐 하시려고?”
주상혁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날개가 주상혁을 향해 일제히 찔러 들어왔다.
스스스스슥.
주상혁이 그것에 응대하듯 단검을 여러 차례 휘둘렀다.
녀석은 주주도…….
팔맥을 봉인할 필요도 없었다.
단검 하나면 충분했다.
단검이 춤을 추자 거대한 날개가 동시에 조각이나 떨어져 내렸다.
당황하는 엔키라도의 모습을 뒤로하고 주상혁이 다시 한 번 모습을 감췄다.
주상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엔키라도의 등 뒤.
“조금 생각해 봤는데 말이지?”
툭.
“몸통이 안 썰리면 목을 잘라 버리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목 없는 엔키라도의 시체에서 뒤늦게 피 분수가 솟구쳤다.
* * *
엔키라도를 타고 심상치 않은 녀석이 등장했을 때.
마이클은 솔직히 당황했다.
‘어제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불과 하루 만에 녀석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성장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후회가 찾아왔다.
그래, 차라리 주상혁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어제 놈을 그 자리에서 목숨 바쳐 팔 한 짝이라도 가져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몰려들었다.
‘큰일이군.’
엔키라도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려 천천히 걸어오는 녀석이 보였다.
이미 도망가기는 늦은 것 같았다.
이렇게 된 거 마이클이 놈을 함께 처리하자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주상혁의 말이 들려왔다.
‘물러나라고?’
녀석을 눈앞에 두고 확인한다면 솔직히 말해 마이클도 주상혁이 고집을 꺾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상혁과 엔키라도의 차이는 거의 한 끗 차이.
마이클이 적당히 틈을 만들어 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거드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몰아붙여야 겨우 시도조차 해 볼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주상혁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물러나라고?’
거듭되는 주상혁의 고집에 마지못해 마이클이 물러났다.
‘그래, 그래도 멀리 물러서서는 안 되겠지.’
주상혁에겐 미안하지만, 주상혁과 엔키라도의 접전이 벌어지면 약속을 어기고 마이클은 바로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구구궁.
녀석의 유흥에 직선로에 있는 건물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마이클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자신이 상황을 너무 낙관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엔키라도는 이미 주상혁과 자신이 함께 달려들어도 막을 수 없는 존재.
“지금 당장……”
뛰어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에 맞대응하듯 주상혁이 포션을 마셨을 때.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다시 한 번 놀라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미쳤군.”
엔키라도의 몸에서 듬성듬성 뿜어지는 보라색 아지랑이는 우스울 만큼 선명한 빛의 아지랑이가 주상혁의 전신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서걱.
몇 초나 걸렸을까?
눈 몇 번 깜박일 찰나에 시체가 된 엔키라도를 확인한 마이클이 휴대폰을 들었다.
주상혁은 보스가 죽자 도망가는 엔키라도 세 마리를 쫓아가고 있었다.
“영상은 잘 들어갔습니까?”
―네 아주 좋군요.
마이클이 통화를 끊고는 손목에 걸린 마나 카메라를 바라봤다.
* * *
미국의 헌터국 부국장 넬슨.
그는 어제 있었던 마이클의 엔키라도 토벌 영상을 관리하는 중앙 전략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마나 카메라로부터 영상이 넘어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이클이 새벽에 엔키라도의 토벌을 포기하고 물러나면서 마나 카메라 촬영을 중단했기 때문이었다.
“후……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실망?
솔직히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마이클이라고 하면 미국의 영웅.
넬슨 역시 그를 영웅이라 의심하지 않았는데 존경하던 영웅이 싸워 보지도 않고 임무를 포기하는 모습은 솔직히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부국장인 자신이 자처해서 전략실 근무를 섰던 이유.
그의 가슴 뛰는 전투를 누구보다 먼저 즐기고 싶어서였기에, 그 누구보다 실망이 클 수도 있었다.
“나도 슬슬 퇴근해야겠군.”
그래도 여운이 남아 더 늦게까지 뒷정리를 하며 자리를 지켰지만, 이제 슬슬 자신도 퇴근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였다.
“음?”
통제실의 구석의 메인 시스템의 빨간 불이 들어왔다.
마이클의 마나 카메라와 연결되어있는 것이었는데 어제 마이클이 촬영을 중지한 이후 처음으로 켜진 것이었다.
“혹시 실수한 건가?”
넬슨이 시스템으로 넘어오는 영상을 확인하려고 할 때였다.
마이클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 그래요, 마이클. 네? 영상이요?”
붉은빛이 들어오는 걸 재차 확인해 본 넬슨이 말했다.
“잘 들어오고 있습니다. 근데 갑자기 촬영을 시작한 이유가 뭡니까?”
마이클의 답은 놀라웠다.
주상혁의 엔키라도 토벌.
지금 메인 시스템으로 넘어오는 영상이 바로 그 영상이란다.
“제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궁금하다.
하지만 자신은 미국의 헌터국 부국장.
미국의 이윤에 반하는 이런 영상을 지우는 게 당연하다.
한데 그것을 알면서, 마이클은 영상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통화를 걸었다
―방송국에 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이클 지금 제정신인가요?”
―물론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입니다. 부국장님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가 어떻게 싸우는지. 저 역시 기회를 봐서 그를 도와 싸울 생각입니다.
넬슨이 머뭇거리다가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국익에 반한다는 걸 알면서도 궁금증이 솟구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이클도 함께…….’
이러면 명분도 확실하다.
결과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가 함께 싸운다고 말했으니 설령 문제가 생겨도 자신 하나쯤 책임을 피해 갈 구멍이 있을지 몰랐다.
통화 녹음을 누르고 부국장이 다시금 물었다.
“마이클 당신도요? 확실합니까”
―그렇습니다.
마이클의 긍정.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전에…….
“마이클 정말로 일이 크게 번질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상을 공개하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어째서죠?”
―주상혁이라면 제가 오늘 오전에 확인했는데, 이미 저조차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뭐라고요?”
듣던 거랑은 전혀 다른 정보였다.
주상혁이 세계 헌터 의회에 제출한 수치는 자신도 알고 있고 마이클이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도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고작 반년 만에 뒤집었다고?’
솔직히 믿기 힘들었지만, 마이클이 거짓말까지 해 가며 자신을 설득할 이유가 없다.
“그거 정말입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조금 전부터 녹음 중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전 세계의 영웅이 탄생할지도 모르죠.
“…….”
마이클의 말이 이어졌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부국장님. 어차피 주상혁은 여기서 저희가 정보를 은폐해도 결국엔 머지않아 두각을 나타낼 각성자입니다. 곧이어 세계의 중심이 그가 되겠죠.
마이클의 말한 정보가 모두 사실이라면 무엇하나 틀리지 않은 말이다.
주상혁은 결국 두각을 나타낼 것이고 마이클의 활약에 힘입어 상당한 이득을 챙겨 오던 미국이 패권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지금 주상혁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 두는 게…….’
그게 오히려 국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마이클의 부탁대로 하죠. 대신, 제가 먼저 가장 먼저 영상을 봐도 되겠습니까?”
―딱히 안 될 건 없습니다만.
“감사합니다. 지금 막 관심이 생긴 찰나였거든요. 새로운 영웅의 활약이 어떨지.”
넬슨은 마이클과 통화를 끊고 가장 먼저 영상을 확인했다.
“음…… 저건 웨이동인가?”
영상은 중국의 공격대가 엔키라도 두 마리와 싸우는 모습에서부터 시작됐다.
전략실의 모니터를 지켜보던 넬슨이 혀를 찼다.
“던전 클리어 당시에는 어떻게 엔키라도를 처리한 건지 모르겠군.”
이전에 소탕하려다가 당했을 때는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이미 여러 차례 던전 클리어 당시 동영상을 보여 준 전적이 있었다.
사소한 요인에도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전장이니만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한 번쯤 실수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배리어 하나 남았나?”
형편없었다.
중국의 공격대는 마이클 하나만도 못한 전력.
넬슨이 그렇게 결론 지으려고 할 때였다.
엔키라도의 브레스 줄기가 약해지더니…….
“뭐지……?”
잇따른 마법 계열 각성자들의 선 굵은 마법들이 엔키라도를 밀어내는 게 보였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건지 유심히 살펴볼 때였다.
‘이상하군, 그 두 사람은 없는데…….’
마이클에게 붙여 준 두 사람의 버프 때문인가 해서 화면을 돌리며 살펴봤지만, 전혀 아니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이전처럼 안전지대에 떼어 놓고 이동한 듯 보였다.
“잠깐……? 주상혁?”
다양한 각도에서 찍힌 모니터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넬슨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하긴,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그러고 보니 바뀐 게 하나 있었다.
마이클이 지금 막 도착했듯이 주상혁이 그와 동행했다면 주상혁도 방금 막 도착했을 심산이 컸다.
‘주상혁이 버프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건 그것뿐이었다.
‘더군다나 전황을 단번에 바꿀 법한 수준이라니…….’
믿기 힘들지만 상당한 버프술사인 게 분명했다.
소환수에다가 버프와 전투 능력까지 겸비하다니…….
거의 만능에 가까운 주상혁의 능력에 넬슨이 점점 심취해 있을 때였다.
전략실 앞을 지나가던 당직 한 명이 홀로 영상을 보고 있는 넬슨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저…… 부국장님, 퇴근 안 하시나요?”
“아, 네.”
그러고 보니 정리하고 나간다는 게 시간이 제법 지났다.
넬슨이 말했다.
“두어 시간쯤 후에 나가겠습니다.”
“아, 네…….”
전략실 다수의 모니터에 다양한 각도로 떠오른 엔키라도의 토벌 영상을 확인한 각성자가 의아했는지 물었다.
“근데 이게 뭔가요?”
“주상혁의 던전 브레이크 진압 영상입니다.”
“예?!”
“함께 보시겠습니까?”
괜히 어디 가서 입을 열면 귀찮아진다.
한 번 보기 시작한 거 끝까지 편하게 시청하고 싶었던 넬슨이었기에 차라리 함께 보는 걸 택했다.
“그래도 되나요?”
“네.”
각성자가 말했다.
“그나저나 중국 공격대 제법이긴 하네요.”
저번에 비해 공격대의 숫자가 반절 남짓.
하지만 벌써 두 마리의 엔키라도를 처리했으니 이런 감상이 나와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넬슨이 옅게 웃었다.
각성자가 물었다.
“근데 왜 6번 모니터 영상만 보시나요?”
“그런 게 있습니다.”
6번 모니터는 주상혁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의 모니터였다.
모든 판을 다 깔고 있다는 걸 모르니 이런 질문을 하겠지만.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았다.
넬슨은 지금, 이 순간 주상혁의 행적을 감상하는 데 온정신을 쏟고 싶었으니까.
‘바늘을 투척하고 있는 건가?’
넬슨은 아까 웨이동의 이마에 주상혁이 바늘을 하나 꽂는 걸 확인했다.
그게 아마도 주상혁이 버프를 거는 매개체.
주상혁을 유심히 보고 있자니 영상이 한 번씩 일그러지는 게 확실해 보였다.
‘흐음…… 특이한 방식이로군.’
뭔가 새로운 방식에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폭넓게 사용하는 주상혁의 버프가 이어지고 30분.
‘일단 끝났군.’
남은 두 마리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보였다.
마이클에게 연락이 왔다.
영상이 잘 들어갔나 확인하는 전화였다.
‘토벌은 끝난 건가?’
구석을 확인해 보니 붉은 불이 꺼져 있다.
촬영이 끝난 것이다.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인데…….”
그 안에 보스와 흩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엔키라도를 모조리 처리했다는 말.
그게 가능한 일인가?
깊은 의문이 생겼지만, 넬슨은 일단 화면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부장님. 저거 설마다 몬스터일까요?”
1번 카메라 끝에서 50마리는 족히 넘어 보이는 숫자의 엔키라도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그런 거 같군…….”
넬슨의 주먹이 콰득 쥐어졌다.
조금 전엔 주상혁의 버프술사로서의 능력을 봤다면.
이번엔 주상혁이 직접.
마이클과 함께 녀석들을 처리할 게 뻔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전투가 펼쳐질지 한가득 기대감이 차올랐다.
“왜들 저러죠?”
함께 싸울 것으로 예상했던 중국의 공격대가 일제히 주상혁의 앞에 무기를 쌓아 두고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엔키라도를 노려보며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주상혁의 손이 마침내 움직였다.
“맙소사…….”
주상혁이 병기를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엔키라도들이 백이면 백 병기에 얻어맞고 시체가 되어 지면으로 추락했다.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아서 엔키라도 전부를 정리한 주상혁의 모습에 옆자리 각성자는 입을 쩍 벌린 채 굳어 버린 지 오래.
‘이거…… 과장 좀 섞인 표현인 줄 알았는데…….’
이미 자신을 월등히 넘어섰다는 마이클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과연 그 마이클이라도 이런 장면을 보여 줄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였다.
아직 10분 남짓 남은 영상을 확인한 넬슨이 표정을 굳혔다.
“보스…….”
아니나 다를까.
조금 기다리니 유독 거대한 엔키라도 셋을 이끌고 특이하게 생긴 녀석이 등장했다.
분위기상 보스가 분명했다.
시꺼먼 비늘을 전신에 두르고 있는 이족 보행의 엔키라도.
넘실거리는 마나부터 범상치 않은 녀석을 앞에 두고 주상혁이 또다시 마이클을 물렸다.
‘이번에도 혼자서?’
넬슨도 안다.
주상혁이 강하다는 걸.
하지만 녀석은…….
“같이 잡아야 할 텐데…….”
반신반의.
주상혁의 승리를 알면서도 이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뒤편의 도시를 몽땅 세 조각 내버리는 엔키라도의 모습을 보아하니 더더욱 호기심이 팽창할 무렵.
마침내 주상혁도 반응을 보였다.
손이 어딘가로 쑥 집어넣더니…….
“포션?”
꼴깍꼴깍.
포션을 마신 주상혁의 마나가 강렬해졌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주상혁이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사라졌다.
“주상혁은 어디……?”
모니터를 순서대로 훑으며 주상혁을 찾던 넬슨이 멈칫했다.
어느새 주상혁은 엔키라도의 옆.
그리고…….
“이럴수가…….”
엔키라도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이거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승부가 한순간에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엔키라도의 반격이 이어졌다.
거대한 엔키라도의 날개 뼈 공격.
“끝난 건가?”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단검질에 날개뼈가 동강이나 바닥을 굴렀다.
엔키라도의 목과 함께.
보스를 그냥 장난감 다루듯 처리한 주상혁을 잠시 바라보던 넬슨이 실소를 터트렸다.
귀신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난 넬슨이 약속대로 방송국으로 영상을 뿌린 뒤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거…… 시기심을 느낀 내가 바보 같군.”
마이클에게 처음 주상혁에 대해 들었을 때.
그의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주상혁의 잠재력에 높은 가산점을 줘서 그렇게 말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넬슨이 중얼거렸다.
“그와 같은 종족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겠군…….”
* * *
“어딜!”
도주하기 시작한 세 마리의 엔키라도를 추격했다.
왼쪽에 있는 녀석은…….
강화 투척을 사용하셨습니다.
단검을 던져서.
오른쪽에 있는 녀석은.
파지지지직.
주주를 소환해서.
그리고 정면에 있는 녀석은.
주상혁이 두 발로 쫓아, 있는 힘껏 머리를 으깨 버렸다.
엔키라도의 모든 머리를 으깨 버리자 곧이어 눈앞에 알림창이 다수 떠올랐다.
SSS급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공헌도를 계산합니다.
…….
13,500잼이 지급됩니다.
알림창을 읽던 주상혁이 멈칫했다.
“SSS급?”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봐도 알림창을 그대로였다.
“하긴 좀 이상하긴 했지?”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했다.
실제로 클리어 당시에 주상혁이 느꼈던 난이도는 SS급.
하지만 조금 전에 주상혁이 처리한 163짜리 엔키라도는…….
척 봐도 SS급 수준은 아니지?
주상혁이 뒤돌아섰다.
목 잃은 검은 비늘의 이족 보행 엔키라도의 시체가 저 끝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긴 저 녀석이면 모르긴 몰라도 SSS급 던전 보스 정도는 되겠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주상혁이 수긍하고 안내창을 하나씩 닫기 시작할 때였다.
와왕!
오른쪽에 있던 녀석을 처리한 주주가 어느새 달려와 품에 안겨들었다.
“그래 주주도 수고했어.”
주주의 푹신한 털에 볼을 비비면서 정을 나눈 주상혁이 인벤토리를 켰다.
전이 아티팩트를 꺼내서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와왕!
주주가 폴짝 뛰어내리더니 와왕 짖었다.
“음…… 생각해 보니까 그런가?”
주주의 말은 간단했다.
보스 엔키라도를 벗겨 가자는 말.
하기사 주상혁이 생각해도 보스 엔키라도의 비늘은 단단했다.
어찌됐든 주상혁의 전력을 실은 일격에 버텨 냈으니 말이다.
“그래 챙겨가자.”
주상혁이 아티팩트를 도로 집어넣고 엔키라도의 시체로 향했다.
가슴 비늘을 만진 주상혁이 손에 힘을 줬다가 인상을 썼다.
“이게…….”
생각한 것보다 단단했다.
그래도 조금 힘줘서 부러트리면 쉽게 부러질 줄 알았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됐다.
결국 주상혁이 있는 힘껏 마나를 일으킨 후에야 비늘은 부러졌다.
부러트린 비늘을 주상혁이 눈앞까지 올리고 살폈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크기에, 윤활유를 바른 듯 광채가 흐르는 모습.
“겉에 이건 마나막인가?”
얕은 마나의 막이 단단함의 비결 같았다.
“음…… 이거 재련할 수는 있나?”
재련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곳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하튼…….”
비늘의 관찰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비늘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5분쯤 비늘 챙기기에 여념 없을 때였다.
쿵.
주주가 옆에 무언가 내려놓았다.
‘아, 그래. 이것도 챙겨야지.’
엔키라도의 날개뼈.
비늘과 달리 조각조각 내 버리긴 했지만, 이것 역시 일반적인 엔키라도의 비늘보다 훨씬 단단했다.
이것 역시 챙겨 두면 요긴하게 쓰일 게 확실했다.
주주의 분신들까지 소환해서 하나씩 부산물을 챙긴 주상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뭐, 이 정도면 다 챙긴 건가?”
비늘을 막상 벗기니 엔키라도의 시체는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내가 생각할 건 아니니까.’
중간부터 옆에서 구경하던 마이클에게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간다.”
“아쉽군.”
말이랑은 다르게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는 게 영 찝찝하긴 했지만…….
딱히 잊어버린 물건이 있지도.
그렇다고 녀석과 또 마주칠 일이 있지도 않다.
전이 아티팩트를 전개했다.
‘이걸로 끝이니까.’
* * *
집으로 돌아온 주상혁은 마이클의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TV를 켜 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엔키라도의 토벌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하긴 차라리 잘됐으려나?”
아르돈의 예언에 해당하는 녀석도 지금쯤 이걸 보고 있을 거다.
주상혁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인지한다면 생각을 접을지도 몰랐다.
“뭐, 물론 포기 안 할 거 같긴 하지만…….”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를 꺼 버린 뒤에 침대로 가 이불을 덮었다.
“이제 딱 2주 남았나?”
아르돈의 예언.
준비는 나름 완벽하게 해 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잠을 줄여가며 탕약을 달였다.
“올 테면 와 보던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