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40
Book 8 좋아한다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혜성 길드.
나는 그곳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능력.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기가 당연한 자리.
―누구는 아득바득해도 B급 각성자인데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혜성의 후계자냐…….
―후…… 인생.
―답은 역시 다시 태어나는 거뿐인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나 역시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장민주 씨, 아침 식사합시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까지와는 다른 천장.
“맞다 여기서 3개월간 지내기로 했었지?”
강원도 산골 회관에서 지내기로 했던 어제 일이 떠올랐다.
3개월 안에 백호와 계약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다나 뭐라나…….
물론 그걸로 백호와 계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은 건 아니다.
각성자를 성장시키는 게 어디 좀 어려운 일이어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와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따위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 약속을 지키지 못할시 혜성길드의 사위로 오겠다는 계약서를 따로 받아 놨으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뭐 하다가 이제 나옵니까?”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그의 핀잔이 들려온다.
그는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여하튼 나왔으면 되잖아요.”
“하아…….”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느낌의 한숨 소리.
상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숟가락을 들려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마셔요.”
“그거? 뭐요?”
“거기 컵에 담긴 거 있잖습니까.”
바로 코앞에 컵이 하나 보이긴 한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듯 시선을 이곳저곳 옮겼다.
무려 세 번을 상위를 살피고는 상 아래까지 확인한 뒤에야 슬쩍 눈치를 보다 물었다.
“설마 이거요?”
“…….”
그는 딱히 별말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상을 쓱 훑어봐도 컵이라고는 하나뿐.
시꺼먼 약물이 담긴 컵뿐이었다.
어제 처음 먹고 받은 미각적 충격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목…… 안 마른데요.”
“마시라면 마셔요. 어제 한 말 기억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말을 따라 줘야 S급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던 그 말.
말했듯이 그것 역시 지금에야 별 상관은 없는 이야기다.
아니 오히려 실패해 주길 바라는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게…….
‘어찌 됐든 백호만 데리고 오면 되잖아.’
목석같은 그를 홀려 보겠다며 고생하던 걸 생각하면 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지 제법 됐다.
‘또 강혜영 그 여자한테도 물 먹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 속마음 대신 여기서는 컵을 들어야겠지.
속사정이야 어찌 됐든 겉으로는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는 게 무난한 선택지였다.
“마시면 되잖아요.”
쓰디쓴 약물이 입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어제 먹어 봤으니, 익숙해지면 좋으련만…….
혀에 닫자마자 뱉어 버릴 뻔한 약물을 힘겹게 겨우겨우 넘기고 컵을 내려놨다.
숙제 검사하듯 지긋이 지켜보던 그가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합시다.”
“입맛 없어졌는데요.”
조금 전에 그렇게 쓰디쓴 약을 들이켠 덕에 있던 입맛도 달아난 판이다.
“어제 장민주 씨가 그랬던가요?”
“뭘요?”
“비교하는 거 싫어한다고요.”
“…….”
무슨 말을 하나 듣고 있자니, 그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저도 한 가지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뭔데요.”
“저는 같은 말 또 하는 거 싫어합니다.”
그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말뜻을 이해 못 하지는 않았다.
한 번 더 말하기 전에 밥 먹으라는 말일 것이다.
“하…….”
숟가락을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상차림은 의외로 푸짐했다.
입맛이 없어도 없는 대로 두어 숟가락쯤 먹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슬쩍 물었다.
“반찬 어디서 난 거예요?”
“김치는 마을에서 받았고, 나머지는 제가 직접 했습니다.”
“다 본인이 했다고요?”
“딱히 어려운 건 없잖습니까?”
어려운 거…….
쓰윽 상을 훑었다.
소시지와 계란말이,
멸치볶음과 입가심용 된장국.
가운데 있는 갈비찜을 제외하고도 밑반찬이 제법 다양했다.
맞다, 분명 어려운 음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중에 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되지?’
심지어 맛까지 있다.
만들기 쉬운 것과 별개로 맛은 다른 이야기일 텐데…….
밥을 천천히 씹으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다 먹은 뒤에는 산책 다녀옵시다.”
“같이요?”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가 단칼에 답했다.
“같이하겠습니까?”
헷갈리게 말하지나 말든가.
유독 입에 맞던 갈비찜에 대충 끼니를 때우고 회관을 나섰다.
회관을 나서자마자 신이 나서 달려가는 두 녀석이 보였다.
주주와 백호.
하필 또 시작하자마자 오르막길일 건 뭐람…….
심지어 눈이 반쯤 녹다 말아서 길이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후…….
깊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일단 시키는 건 해 보자.”
이 훈련 끝에 백호를 명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 * *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지낸 지 보름쯤.
그에 대해 알게 된 게 몇 가지 있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다는 점.
그런 주제에 매일 꼬박꼬박 탕약은 달인다는 점.
드라마나 영화 시청을 즐긴다는 점.
마을 주민들과 친화도가 무척이나 좋다는 점 등등.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훈련 끝났습니까?”
이거다. 의외로 정이 많다는 것.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어제 입맛이 없어서 점심 저녁을 걸렀더니 요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습관처럼 갈증을 달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약물을 꺼내 마시자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히 오해하지는 맙시다. 쑥과 마늘만 먹다가 도망간 호랑이 꼴 날까 봐 해 주는 거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신경 써 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갈비찜이에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럼 대추는 빼요, 저 대추 싫어해요.”
냄비 뚜껑을 열더니 보란 듯이 대추를 반 주먹 정도 추가한다.
“말을 말아야지…….”
하루 종일 여기저기 뛰어다녔더니 다리가 아파서 벽에 기대앉았다.
가스 불 앞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그를 보자니 저절로 입이 열렸다.
“주상혁 씨는 가족 안 보고 싶어요?”
“굳이 보고 싶냐고 물으면 보고 싶지만…….”
“싶지만?”
“지금 가면 꽤나 귀찮습니다. 여러 가지로.”
일반인과는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당연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무슨 감춘 의미가 따로 있는 건지.
어느 것 하나 섣불리 단정 지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일단 전자일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지금 바깥에서 주상혁은 구국의 영웅 수준이었으니까.
일반 기자들부터 주상혁과 관계를 맺을 목적으로 추근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혹시 귀찮으면 말 걸지 말까요?”
“잘 알아 먹은 거 같아서 기특하긴 한데 딱히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막상 말해도 상관없다니까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부엌에 적막이 깔렸다. 부글부글 끓는 냄비 소리만 들리길 한참이 지나고 문뜩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물었다.
“백호요, 저한테 주는 이유가 뭐예요?”
회관에 머물면서 요즘도 종종 생각했던 일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백호를 줄 이유가 없었다.
한때는 혹시 나에게 관심 있어서 그런가도 했지만…….
유감스럽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말했잖아요, 귀찮은 건 싫다고.”
말하는 분위기상 귀찮게 하니까 그냥 주기로 했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거짓말일 것이다.
왠지 그냥 이유 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시금 부엌에 적막이 깔리려고 하자 대충 입이 가는 대로 질문했다.
“혜영이었던가? 애인이에요?”
“그건 왜 물어봅니까?”
스스로 질문하고도 깜짝 놀랐다.
한다는 질문이 하필이면 그 여자의 이야기라니…….
자칫 질투하는 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황급히 둘러댔다.
“그냥, 뭐, 전에 카페에서 일이 떠올라서 물어봤어요.”
“…….”
“끌고 가는 분위기가 여간 심상치 않길래.”
스스로 말하고도 급히 둘러댄 거치고는 자연스러웠다는 안도감이 가실 무렵.
뒤늦게 그 자리에 궁금증이 몰려왔다.
그의 답이 어떻게 들려올까?
갑자기 생각난 질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제법 생각이 길어져서 더 그런 감이 있었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그냥 친한 동생입니다.”
말을 들은 순간 묘하게 기분이 좋은 건…….
기분 탓이라고,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 *
냐아아…….
구슬픈 목소리에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회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인다.
붕괴된 도심.
자욱한 독 안개 속에서 웃고 있는 여자.
눈을 글썽이는 백호.
“주마등이란 게 진짜 있긴 있나 보네…….”
왜 조금 전 장면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게 그 무렵이었던 거 같기는 한데…….
“설마 그 이유일까?”
알 수는 없다.
그 이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굳이 이유를 안다면 신뿐이지 않을까?
막상 죽음 앞에 놓이니 후회되는 일이 많이 있다.
괜히 그 사람한테 짜증 부린 일.
그 사람에게 매번 도움을 받고 갚지는 못한 일.
그 사람한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지 못한 일.
하나하나 짚어 보다가 스스로 놀랐다.
“뭐야, 나 그 사람 진짜 좋아했구나.”
죽기 직전에도 후회되는 일이란 게 그 사람과 관련된 일뿐이다.
냐아아아.
구슬픈 백호의 울음소리에 흐릿해진 초점을 옮긴다.
피를 많이 게워내긴 했다는 게 느껴졌다.
검붉은 피를 뒤집어써 핏빛으로 물든 조그마한 백호가 보였다.
“뭐야, 너 울어?”
“냐아아아.”
“그래도 너는 울어 주긴 하는구나.”
문뜩 그 사람은 어떨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혹은 백호처럼 눈물을 보여 줄지.
“그 사람은 아무래도 울어 주진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슬퍼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들거리는 손을 힘겹게 움직였다.
백호의 눈 어귀의 눈물을 닦아 줬다.
“울지 마, 너 이렇게 정 많은 녀석 아니잖아.”
백호의 사나운 마나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청개구리 같은 녀석.
“끝까지 말을 안 듣네…….”
이제는 깜깜해진 시야로 백호의 슬픈 포효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비명이 한바탕 들렸다.
아무래도 백호가 폭주한 듯했다.
크르르릉.
일순간 들려오던 비명이 그리 오래지 않아 그쳤다.
아까 그 여인도, 그의 동료로 보이던 SS급 각성자 네 명도.
벌써 죽은 게 분명했다.
“백호…… 말려야 하는데.”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졸음이 몰려왔다.
다시금 조금 전 주마등이 작게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회관의 풍경이 보였다.
회관에는 그 사람과 나.
꿈속에서라도 말한다.
좋아한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