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04)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03화
빠득!
불현듯 노기가 차올랐다.
필리프 4세.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자다.
군주로서 이 탑을 지배한지 어언 삼십여 년.
수많은 탑의 주민들이 자신을 경배하게 되었으며…….
천박하기 그지없는 이종족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화는 10층의 재고를 가득 찼고.
처와 첩을 합치면 그 수가 삼천을 웃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탑에 있는 거대한 장벽 중 하나였다.
원대한 야망을 품었던 신참 플레이어들은 결국 필리프 4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에게 패배한 이는 그의 군사로 강제로 징집되거나.
죽는다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가진 자.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신과도 같은 자라고 여겨 왔다.
[……진짜 미친놈이었네.]한데, 어처구니없게도 그 신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건넨 미친놈이 있었다.
수정구에서 비치는 음험한 인기척.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필리프 4세는 무의식적으로 직감했다.
이 녀석은 나의 천적이라고.
하지만 왜일까?
평소에 다혈질적인 기질이 다분했던 필리프 4세는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이자벨라는 어디 있지? 지금이라면 넓은 아량으로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녀는 죽었어. 얼마나 고귀한 핏줄인지 모르겠다만 하운드 백작부터 이어진 피는 똑같이 붉고 비린내가 나더라고.
콰직! 쨍그랑!
도발조에 필리프 4세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손에 쥔 와인글라스를 깨뜨렸다.
손바닥에 흥건히 포도주가 흘렀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하찮은 잡종이 감히 황족에게 손을 대!!”
-나는 계속 탑에 오를 거야.
“누가 짐의 말을 끊으라고 했지?”
건우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내뱉었다.
-너랑은 조만간 격돌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위만 보지 말라고 충고해둘게. 가끔 아래에서 터무니없는 게 올라올 수 있거든.
“입 닥쳐!”
콰앙!!
수모를 견디기 어려웠던 필리프 4세가 벽에 전시하고 있던 도끼를 집어던져 수정을 깨뜨렸다.
산산조각 난 수정구 파편 하나하나에 건우의 모습이 비춰졌다.
-목 잘 씻고 기다리라고.
씨익.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조소가 담긴 입꼬리가 묘하게 눈에 거슬렸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정은 힘을 잃고 색이 점차 바래지다가 가주가 되었다.
권좌에 앉은 필리프 4세는 이마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나쟈.”
“부르셨습니까?”
호명하기 무섭게 필리프 4세의 직속호위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면을 쓴 그들은 일제히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전신에서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마력은 그들의 위험성을 은연중 보여 주었다.
“지금 당장 이자벨라의 동태와 리안테 요새의 현지 상황을 조사하거라.”
“알겠…….”
명을 수행하려는 찰나.
“아니. 됐다.”
변덕이 어찌나 심한 건지, 필리프 4세는 자신의 말을 거두었다.
희번덕.
그러고는 살기가 잔뜩 어린 눈빛으로 명했다.
“리안테를 이 세상에서 지우거라.”
존재 자체를 지우라는 냉혹한 명령.
냉정한 나쟈들조차 약 0.1초 동안 눈빛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러나 망설임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지고지순한 철혈의 군주의 명령.
반문이나 이견은 곧 그의 말에 불복종하는 것이 된다.
“Yes you‘r majesty!”
그렇기 때문에 나쟈들은 입을 모아 함성으로 답했고.
씨익.
필리프 4세는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앞으로 네놈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피바람을 불러일으켜 주지. 우민들은 결코 짐을 원망하지 않아. 나의 화를 자극하는 네놈을 원망하고 네놈을 죽이겠지.’
***
리안테 북부 요새.
우둑.
성 지붕에 걸려 있는 똬리를 튼 뱀과 솔 레굴루스 제국의 깃발이 건우의 손에 두 동강이 났다.
그 풍경을 같은 지붕에 앉아서 바라보는 렌은 실성한 것처럼 넋을 놓고 있었다.
이제는 범죄자 낙인이 찍혀 어디에도 발을 딛지 못하게 생겼다.
물론 잘못한 것은 없고 올바른 일을 한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상대는 탑의 10층을 정복한 플로어 마스터, 필리프 4세.
그리고 그의 병력은 무려 수십억이었다.
개미떼처럼 바글바글거리는 강자들 앞에서 아빠를 찾아보기도 전에 순살이 나겠지.
“……스승님. 저 울 것 같아요.”
렌은 소매로 눈가를 스윽 닦으며 절망했고.
토닥토닥.
어느새 마리오네트 스킬로 인형의 모습이 된 케이론이 렌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본 럼은 생각했다.
‘……반대 아니야?’
케이론의 정체는 별개로 치더라도 원래는 사람이 인형을 쓰다듬는 법이거늘.
스윽.
그 순간, 케이론과 눈이 마주친 럼은 넙죽 무언가를 내밀었다.
“서, 선생님 육포 있는데, 드시겠습니까?”
흘깃 눈을 돌린 렌은 조용히 한마디를 남겼다.
“……아저씨.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네가 할 말이냐! 인마!”
럼은 버럭 화를 내다 말고 밑에 펼쳐지는 상황에 잠시 눈을 뒀다.
“몸은 괜찮아? 아가”
“여보. 어디 다친 데 없어?”
“세상에 뭐야? 이 상처는.”
부서진 성문으로 몰려온 리안테의 주민들이 막 해방된 여자와 아이를 끌어안고서 눈물을 흘리며 껴안고 있었다.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을 본 럼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부럽다.”
속에 내재된 감정은 그들을 구했다는 보람과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한 후환이 섞여 있었다.
렌은 그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건우 형이 막무가내면서 무모한 짓도 많이 벌이지만, 전 형을 따라가는 걸 후회하지 않아요.”
“어째서?”
“괴팍하지만 의도는 항상 정의롭고, 비아냥거리지만 절대 남을 업신여기지 않잖아요.”
“그러냐?”
럼은 반문하면서 다시 건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륵.
한 손에 모아 쥔 깃발들은 불꽃으로 인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 숭고해 보였고…….
씨익.
그 와중에 올라간 입꼬리는 한없이 음산해 보였다.
“……어째 즐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럼은 자신도 모르게 으스스 몸을 떨었다.
쿠구구구.
그 순간 성문 너머에서 병장기를 손에 쥔 다수의 주민들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필리프 녀석에게 반란을 꾀하는 민간인들이구나.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 세계가 멸망하던 때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전선에 뛰어든 민간 조직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지붕 위에 있는 건우에게 말했다.
“그대가 리안테를 불행에 휘말리게 한 사내인가?”
그의 목소리는 점잖으면서도 노기가 잠잠히 섞여 있었다.
“불행?”
건우는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대로 몸을 던져 지면에 착지했다.
스스스스.
“오오!”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하는 그 모습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감탄사를 냈다.
건우는 불쾌함이 깃든 표정으로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나.”
그러나 남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오웬. 혁명군을 이끄는 리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대의 경솔한 행동으로 앞으로 리안테에 벌어질 참사에 대해 문책하는 거고.”
“참사?”
오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필리프 4세는 악마 중의 악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라면, 어떤 해괴한 짓을 벌일지 장담할 수 없는 놈이지. 그는 절대 자신에게 대항할 뿌리 같은 걸 남겨 두지 않아. 지금까지 그에게 저항의 칼을 든 자들은 그들이 아지트, 근간으로 둔 도시의 죄 없는 민간인들까지 전부 학살시켜 죽여 버렸지. 이 말의 의미는 알고 있나?”
“리안테는 자랑스러운 황제 나리에게 찍혔다는 것 같은데?”
“그런데 네놈은! 경솔하게 일을 저지른 거냐!!”
오웬은 발끈하며 건우의 멱살을 쥐려고 했다.
우드드득.
물론 잡혀줄 생각이 없었던 건우는 도리어 그의 손목을 쥐며 비틀었다.
“끄아아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럼은 황망한 표정으로 감평을 남겼다.
“꼴사납네.”
건우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전제는 제대로 하고 가자고. 개망나니 황제가 또라이 기질이 있는 걸 내 탓을 하면 안 되지.”
“크으으윽.”
건우의 말에 혁명군을 자처한 이들은 얼굴이 사색이 됐다.
방금 전의 말은 신성모욕으로 잡혀가기 충분한 죄였기 때문이다.
건우는 그들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눈앞에 있는 걸 지키지 못할 거면 훗날을 도모하자?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가족들이 전부 죽고 노예가 되면서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는데, 그걸 외면하고 인내하여 황제를 시해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
건우의 말에 그들은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노예로 끌려갈 뻔했던 사람들은 건우의 말에 공감하는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를 보자면, 혁명을 자처한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건우는 그들을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대답해! 병신 새끼들아! 혁명 같은 개소리 짖지 말고!”
건우가 으름장을 놓자…….
움찔!
그들은 몸을 바싹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스륵.
건우는 오웬의 손목을 놓아주며 말했다.
“나라면 멸망하더라도 끝까지 싸울 거야.”
오웬은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멸망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스윽.
건우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단순한 가치관 차이니까 거기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어. 다만.”
“다만?”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자유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마치 그 스스로 겪어 본 듯한 확신에 가득 찬 표정에 주민들의 표정이 변했다.
씨익.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모르지만 건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황폐한 성터에 연분홍빛으로 피어오른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멸망에 처한 황폐한 환경에서도 꽃은 결국 스스로 피어났어.”
저벅.
할 말을 마친 건우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같이 가! 건우 형!”
“잠깐, 짐 챙길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렌과 럼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들며 부랴부랴 건우를 쫓기 시작했다.
***
길을 걷던 중.
-멸망에 처한 황폐한 환경에서도 꽃은 결국 스스로 피어났어~
세이비어는 건우가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요.”
얼굴이 빨개진 건우는 자책감에 이마를 매만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완전 자아도취에 빠져 내뱉은 헛소리였다.
세이비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도 나이가 들었나보구나.
“할아버지 앞에서 깝죽거릴 나이는 아니죠.”
-크크큭, 나는 그런 말은 해 본 적이 없다. 고놈 참 막장 드라마보다 더 보는 맛이 있네.
“제가 잘못했어요.”
내가 왜 그랬지?
건우는 자괴감에 손으로 이마를 꼭 눌렀다.
그때, 곁에 있던 럼이 불안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뭐가?”
“2층뿐만 아니라 다른 층계에서도 필리프 4세 군단들이 쳐들어온다면…….”
“아, 그거.”
럼의 의도를 깨달은 건우는 잇몸을 드러내며 간사한 웃음을 내비쳤다.
“신경 쓸 것 없어.”
***
꿀꺽!
탑의 주민들은 밀려온 긴장감에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쿠구구구구.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군인이 행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또 어떤 마을이 멸살당하는 거지?
모두가 불안한 표정을 지을 때.
뿌우우우.
뿔피리를 불며 그들은 아래층으로 향하는 게이트에 진입하려고 했다.
“전군 전진! 목표 리안테!”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제의 군단은 깃발을 드높이며 리안테 척살 의지를 표했으나…….
파앗!
의미심장한 시스템 문구와 함께 게이트의 차원압력이 군단을 튕겨 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한 군단장은 어떻게든 진군하려고 했으나.
탑의 시스템은 하염없이 그들을 거부했다.
***
럼과 대화 도중.
건우는 눈앞에 생성된 시스템 창을 흘깃 엿보았다.
-설명: 유래 없는 탑의 룰을 개정한 자에게 부여하는 칭호
*히든 칭호.
*플레이어가 상주한 층을 포함해 최대 3개 층에까지 제약의 법칙을 부가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지정한 제약의 법칙 대상자들은 탑의 규율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
불과 며칠.
히든 칭호여서 그런지 건우 역시 이 타이틀을 가까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칭호는 말 그대로 막강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대군단이어도 탑의 규칙에는 무작정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적은 아니지만 절대 지지 않는 조건을 만들 수는 있다는 소리지.’
씨익.
건우가 히죽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자, 럼은 부르르 몸을 떨며 생각했다.
‘배, 배를 잘못 탄 걸까?’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