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05)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04화
쏴아아아.
간만에 온 비는 강물을 범람시키는 폭우였다.
수확을 앞둔 작물은 조만간 병충해를 크게 입을 것이다.
따라서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 밖에 없다.
“하아, 하아.”
하지만 아직 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살릴 수 있는 작물을 거둬 포대에 담고 집까지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미련한 짓이다.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어른들을 통해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마음은 포기를 거부했다.
멈칫.
얼마 안가 럼은 멈출 것 같지 않던 발을 스스로 멈췄다.
범람하고 있는 격류 사이에 있는 바위 위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독한 날씨에 대체 뭐하는 짓인지.
구시렁거렸지만 발길은 여인에게 향했다.
성난 격류에 몸이 심하게 휘청거렸지만.
몸을 지탱해 주고 있는 나무와 밧줄만 건재하다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다.
온몸이 흙탕물로 뒤덮인 럼은 가까스로 여인을 안을 수 있었다.
며칠이나 안 먹었는지 무척이나 야윈 여인이었다.
스륵.
의식을 잃은 줄만 알았던 그녀는 눈을 부르르 뜨며 럼에게 말했다.
“……구해 줘서 고마워요.”
“…….”
경황은 없었지만, 럼은 아마 이때, 자신은 그녀에게 반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델하이트.
솔 레굴루스 제국의 황제, 필리프 4세의 딸이었다.
무척이나 고귀한 신분을 품었음에도 훗날, 그녀는 농부의 안내가 되기로 선택했다.
깜빡.
동이 틀 무렵.
눈을 뜬 럼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하아, 개꿈을 꿨네.”
저벅.
창문을 열어 밖을 살피니 천천히 밝아 오는 새벽의 경광이 보였다.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도시의 풍경은 농부인 그를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튜토리얼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경험을 했지만.
그의 본질은 농부.
이렇게 정교하게 질서가 잡힌 인간들의 흔적은 눈을 어지럽혔다.
꽈악!
그 풍경을 보며 럼은 목에 걸려 있는 팬던트를 꽉 쥐었다.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아델, 소피.”
그는 아내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양손을 모은 뒤, 이마로 꼭 눌렀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도저히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장벽.
끊임없이 도전을 했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필리프 4세에게 굴복하고 그의 군대에 편입됐다.
하지만 지금 럼은 일반적인 사례를 깨고 이 자리에 올라와 있다.
눈앞에 펼쳐진 장소는 탑의 10층, 솔 레굴루스 제국이었다.
‘드디어 아내와 딸이 있는 층에 도달했어!’
꽈악!
반드시 구하고 말겠다.
의지를 다지며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
치이이익.
이른 아침, 부엌에서 풍겨 오는 구수한 향에…….
꼬르륵.
렌은 허기에 굶주린 표정으로 요리를 하고 있는 건우와 럼을 바라보았다.
“카로틴은 열대작물 중에서 고기랑 가장 궁합이 좋죠. 또한 거칠고 질긴 고기를 숙성시키는 데 적합하기도 하죠.”
“오! 파파야랑 비슷하네.”
타다다닥.
요리를 주로 하는 쪽은 건우.
그리고 럼은 그런 건우에게 요리 재료에 대해 하나, 하나씩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렌은 저도 모르게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부부?”
-그럴지도 모르지. 저 녀석이 여자한테 통 관심이 없고 남자에게만 저렇게 반응하니.
유령의 형태로 옆에 있던 세이비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건우는…….
콰앙!
도마를 부술 듯 칼을 내리찍으며 찌릿 렌과 세이비어를 노려보았다.
“히끅!”
렌은 딸국질을 하며 건우의 시선을 피했다.
잠시 후.
식탁 위에는 큼지막한 카로틴 미트 파이가 올라왔다.
접시에 놓인 한 조각을 큼지막하게 문 렌은 눈빛을 반짝였다.
“왜 이렇게 맛있어!”
“요리하는 솜씨가 보통내기가 아니더라고.”
럼은 피식 웃으며 건우를 흘깃 바라보았다.
“됐어, 아부하지 마.”
역시나 칭찬이 약한 건우는 모른 척, 눈을 감으며 파이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아니야. 지금 말하는 거지만 엄마가 형 요리 잘한다고 분하다고 했었어.”
잠시 렌의 여관에 신세를 지고 있을 때.
건우는 바쁜 시야를 대신해 요리를 해 손님에게 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 손맛에 반한 손님들은 종종 찾아오기도 했는데.
자존심에 크게 스크래치가 난 시야는 며칠 동안 요리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었다.
일화를 알고 있던 세이비어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푸훗! 이참에 폭군조리사로 전직해 보는 건 어떠냐?
“그런 직업 없습니다.”
건우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일축했다.
쭈욱.
바로 그때 누군가 건우의 바짓단을 당겼다.
슬쩍 밑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세피아가 마리오네트 형체로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케이론과 네메시스가 파이를 집어먹으며 맛을 논평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작 세피아는 파이에 관심이 없는지…….
반짝반짝!
아리따운 청광색의 눈빛으로 건우를 올려다보았다.
‘귀, 귀여워!’
웬만한 유혹에 강한 건우였지만.
마리오네트 형체로 있는 세피아의 모습은 지나치게 치명적이었다.
무뚝뚝하고 까칠한 그녀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다음에 내뱉을 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
“콜라 없어. 참아.”
쿠쿵!
순간 세피아의 얼굴이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절망으로 물들었다.
툭툭.
그런 세피아를 위로하겠다는 듯 케이론은 맥주잔을 조용히 건넸다.
말은 못한다지만 ‘그런 것보다 이게 최고야!’라는 뉘앙스를 주었다.
그러나.
콰아앙!
이는 세피아에게는 어쭙잖은 도발이며 맞을 짓에 불과했다.
결국 케이론은 저 멀리 날아가 벽과 충돌했다.
“스승님! 이게 무슨 짓이야!”
렌은 경악하며 고꾸라진 케이론을 일으켜 세우며 세피아를 힐끔 쳐다봤다.
-오오, 이거 왠지 그거 아니냐? 무협소설에서 죽은 스승의 원수를 갚겠다는 제자의 의지!!
흥미진진한 전개에 세이비어는 눈을 반짝 빛냈다.
건우는 눈매를 좁히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원수가 너무 세서 그럴 생각도 못 품을 걸요.”
쩌저저저적! 푸욱! 푸욱!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공에 생성된 고드름이 렌에게 쏟아졌다.
“항복! 항복!”
렌은 저항할 의지조차 없는지 바싹 엎드리며 오들오들 떨었다.
세피아도 진짜로 맞힐 생각은 없는지 고드름은 모두 렌을 빗겨나가 벽에 박혔다.
-쯧쯧, 근성 없는 놈.
세이비어는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툭툭.
이번에는 네메시스가 건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배시시 활짝 웃고 있었다.
무척이나 상쾌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따뜻해지는 미소였지만.
“사이다도 없어.”
건우는 여지없이 냉정했다.
쿠쿵!
네메시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으로 경악했다.
그러고는 구석진 곳에서 세피아와 투덜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럼은 그녀들을 보며 분위기를 추론해 보았다.
먼저 그 대상이 된 것은 세피아였다.
그는 자신의 입을 빌어 세피아의 심정을 예측해 말했다.
“시키는 것은 더럽게 많으면서도 보상은 제대로 해주지 않다니. 완전히 악질이네.”
다음으로는 네메시스.
“그러게. 사이다 없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야. 주인은 바보 멍청이, 말미잘. 흥!”
-푸핫, 크하하하하하! 센스가 장난 아닌데.
세이비어는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고.
“…….”
건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무척이나 분하지만 럼의 말이 지금의 상황이랑 무척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럼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바보, 멍청이, 말미잘은 평소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었나 보네.”
“그, 그냥 재미삼아 말해 보는 거죠. 뭐. 하하하하하.”
럼은 땀을 뻘뻘 흘리며 건우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10층에 머물 예정입니까?”
건우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까지긴. 당신 아내랑 딸을 구하려고 정보 수집 중이잖아.”
“……네?”
예상치 못한 말에 럼은 당황했다.
“저, 저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척 위험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그러니 절 두고 어서 다음 층으로 올라갈 방법을 찾는 게…….”
후룩.
조용히 차를 들이켜는 소리에 럼은 잠시 말을 멈췄다.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겸사겸사라고 해둘까? 마침 나도 필리프 녀석의 얼굴을 봐야 되거든.”
“진심입니까?”
“내가 거짓말한 거 본 적 있어?”
도발적인 미소를 띠우며 내뱉은 질문에…….
“어. 무지 많아. 우리 여관에서 진상 부리는 손님들 있을 때, 달래 준다고 해 놓고서 쓰레기장에 던지고 왔잖아. 또 일부러 진상 손님 대가리 맥주잔으로 작살낸 다음에 실수라고 뻔뻔하게 거짓말했었지. 그리고…….”
옆에 있던 렌이 손수 손을 꼽아보며 거짓말 횟수까지 세고 있었다.
“…….”
뻘쭘했던 건우는 귀 끝까지 빨개졌다.
콰쾅!
“끄아아아악! 아픕니다. 스승님!!”
주인의 명예를 위해 케이론은 렌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렌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고, 건우와 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서인지 이 풍경만큼은 평생 가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건우는 측은한 표정으로 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스케일은 아니야. 남들이 봐도 자살이라고 생각할걸.”
건우의 말대로다.
지금 럼이 벌이려고 하는 일은 필리프 4세의 의사를 반하는 것이다.
이는 곧 죽음과 연계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살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물론 럼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럼은 눈에 힘을 주며 선언했다.
“그래도 저는 갈 겁니다. 이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건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내 갈 길을 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서운한 소리 하지 마. 민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
평소와 다른 순수한 건우의 미소에 럼은 눈가가 희뿌예졌다.
“아, 젠장 주책없게! 이게 무슨 일이람.”
눈물이 보일까 싶어 그는 서둘러 등을 돌리며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
탑의 10층에 위치한 필리프 4세의 궁전은 산맥부터 해안까지 이어져 있는 광대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성은 웅장하다는 말로 표현이 모자를 정도로 화려했으며.
어떤 외적도 혀를 내두르게끔 만드는 높다란 성벽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 그의 성채에는 4성부터 5성급의 몬스터들이 떼를 이루며 침입했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침투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설령 했더라도 성채에 존재하는 억대의 군사들이 몬스터들을 압박해 올 테니 말이다.
즉, 이번 침투는 필리프 4세의 허가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유는 그의 금욕의 해방이었다.
“아아아, 아무리 죽여도 시원치 않군.”
필리프 4세는 성채를 침입한 드라고니안 집단을 단신으로 학살하며 피로 범벅이 된 검을 지면에 꽂았다.
4미터 크기의 드라고니안이 반절도 안 되는 인간에게 이렇게 잔학하게 학살을 당할 줄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해 봤으랴.
꿀꺽!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게 플로어 마스터?!”
“대체 저렇게 강한 분이 군대까지 이루며 전쟁을 펼치려고 하는 게 누구지?”
그의 강함을 직접 목격한 이들은 모두 경외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모두의 촉망받은 시선 속에서도 필리프 4세는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 2층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를 두고 깊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탑이 짐의 군사를 거부했다.’
탑의 시스템은 언제나 공평하며 인과관계가 명백하기에 오류는 없다.
그런 점 때문에 수많은 플레이어를 수용할 수 있는 거다.
따라서 그의 군대를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면, 며칠 전, 탑의 시스템을 마비시킨 녀석밖에 없다.
필리프 4세는 눈을 번뜩 뜨며 며칠 전, 자신과 대화한 상대를 떠올렸다.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교란자!”
답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재밌군. 40계층에 도전하기 전에 맛보기로 대결을 펼칠 수 있겠어.”
그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쿠아아아아.
때마침 개문된 성문 너머로 거대한 크기의 사이클롭스 무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6, 6성급?!!”
한 개체로 볼 때는 5성이지만, 집단의 힘은 곧 6성급에 비견됐다.
“폐하 피하십시오!”
당황한 병사들이 그를 호위하기 위해 감쌌지만.
서걱!
필리프 4세는 손수 그들의 목을 베며 한 마디를 남겼다.
“조무래기들이 누구의 갈 길을 가로 막는 것이냐?”
오싹!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에게 냉혹하게 일침을 두는 모습에 병사들은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리프 4세는 검끝을 땅에 질질 끌며 사이클롭스 무리에게 말했다.
“맛보기도 안 되는 너희들은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나.”
잠시 고심한 표정을 짓던 그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생각하기도 귀찮군. 그냥 심심풀이라고 부르도록 하마.”
치욕적인 호칭이라고 생각한 걸까?
크아아아아앙!
사이클롭스들은 분노하여 흉성을 내지르며 필리프 4세에게 뛰어들었다.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