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09)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08화
이른 아침.
한창 수면을 취하고 있던 건우의 방으로…….
타앙!
거칠게 방문이 열리며 렌이 들어왔다.
“건우 형!”
“하암 무슨 일인데?”
렌의 난동에 당황스러울 법도 했지만 건우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러, 럼 아저씨가 사라졌어.”
“……그러냐? 역시 갔나 보네.”
졸음이 살짝 가셨는지 건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여, 역시 갔다니 어디로 간 줄 알아? 빨리 찾으러 가자.”
“싫어.”
침대를 떠난 건우는 그대로 주전자 안에 찻잎을 넣은 뒤, 벽난로 위에 얹었다.
치이익.
난로 열에 찻잎을 우리는 그 모습은 묘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렌은 그 모습에 살짝 겁을 먹으며 말했다.
“시, 싫다니. 왜?”
“일단 나한테 거짓말을 했잖아.”
“거, 거짓말은 했겠지. 어떻게 비마나가 5000척이나 되겠어. 사람이 말 좀 하다보면, 과장 좀 할 수 있는 거고.”
“애석하게도 그거는 진실이다.”
“……그, 그럼 어떤 거짓말을 한 건데?”
쪼륵.
주전자에 담긴 차를 컵에 담으며 건우는 말했다.
“제일 먼저, 필리프 4세의 출병소식. 비마나와 같이 기밀 중의 기밀이라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유추해 보면,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하지. 아마 출병일은 이틀 후일 거야.”
“지, 지금까지 정보를 모은 게 그걸 알아내려고…….”
“그것 뿐만은 아니지만. 전조 정도는 파악해도 나쁘지 않잖아.”
후룩.
건우는 그대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음부터는 추측이지만 아마 교섭을 위한 인질로 럼의 아내와 딸을 데리러 간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
“…….”
이야기를 들은 렌은 어느 정도 럼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층의 괴물이든 밀고 나갈 수 있는 무적함대의 기세.
그것은 심히 마음을 옥죄며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 하다가는 나 하나의 실수로 탑에 있는 죄 없는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필리프 4세는 그 정도로 막무가내인 사내니 말이다.
그 와중에 계속 건우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럼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었다.
자칫 하다가는 잘못된 선택으로 은혜를 원수처럼 갚는 식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설마?!’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럼의 생각을 간파한 렌은 눈을 부릅떴다.
럼.
그는 홀로 필리프 4세와 맞서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렌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럼 혼자서는 절대 안 돼! 다시 데리고 오자.”
“싫은데.”
“응?”
“그 녀석 선택을 존중하자고.”
건우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말하며 차를 홀짝였다.
“……건우 형.”
평소와 달리 냉담한 건우의 반응에 렌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진짜 이대로 럼을 버릴 생각인 걸까?
바로 그때.
이그너스의 반지에서 세이비어가 튀어나왔다.
-인마! 사내 녀석이 언제까지 삐져 있을 거야! 그럴 줄 알고 얍삽하게 준비까지 해 놓은 놈이! 빨리 움직일 생각이나 해!
“……안 삐졌어요.”
말과는 달리 건우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차를 훌쩍였다.
“…….”
그 모습에 렌은 잠시 멍 때리다 한마디를 내뱉었다.
“도대체 뭘 할 생각인데?”
후룩.
건우는 차분히 차를 음미하며 피식 웃어 보였다.
“이번 건, 스케일이 좀 큰 미친 짓인데, 같이 해 볼래?”
파르르르.
렌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
뿌우우우우.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해안.
그 바다에 대열을 이루고 있는 비마나의 행렬은 위압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 대열 앞에는 다른 비마나와 달리 세련된 형태를 갖추고 있는 또 하나의 비마나가 존재했다.
스키드블라드니르(Skidbladnir).
등급은 갓.
탑의 최고 하이랭커인 ‘십존’도 쉽게 손에 넣기 어려운 등급의 아티팩트였다.
이것은 필리프 4세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자랑이기도 했다.
스키드블라드니르는 그가 전장을 휩쓸 때, 이것을 타고 누비고 다니기 때문이다.
장점 또한 무수히 많다.
크기를 자유자재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거니와.
마음만 먹으면 현재 비마나에 실린 것보다 많은 양의 무기를 적재할 수 있다.
또한 어떤 환경에서도 ‘흐름’이라는 개념만 있으면 부상할 수 있으며…….
다른 비마나처럼 특별한 동력원도 필요 없다.
그저 주인의 의지에 맞춰 돛에 바람이 실리는 묘한 이치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벅.
배의 주인, 필리프 4세는 갑판 위에 서서 자신의 무적함대를 바라보았다.
비마나에 서 있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경외 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필리프 4세는 거들먹거리며 입을 뗐다.
“지금부터 우매한 것들한테 다시 한번 짐의 발자취를 남기고자 한다.”
구태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마나를 타고 흘러가는 그의 음성은 바다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크게 들렸다.
팔락.
필리프 4세는 망토를 크게 젖히며 말했다.
“전쟁은 쾌락이다. 죽이는 재미를 주며 약탈하는 재미를 주며 패자들에게 굴욕을 주는 재미를 주며 굴복한 것들을 개처럼 노예로 부리며 복종시킬 수 있다. 살아가는데 이토록 행복하고 자극적인 삶을 만끽하는 경우가 얼마나 더 있단 말이냐?”
광기가 치솟은 눈빛은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빠득!
필리프 4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를 갈며 격정을 태웠다.
“그러나 짐은 여기에서 안주할 생각은 없다. 지금 이 시간부로 이 탑을 불태워 정복한다. 그 첫 번째, 목표는 40층, 교역의 장이라고 불리는 알데바란!”
“Yes your majesty!”
병사 일동, 엄숙한 표정으로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뿌우우우.
다시 한번 뿔피리가 크게 울리며 비마나가 일제히 허공에 떠올랐다.
파르르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델하이트는 딸인 소피를 안으며 생각했다.
‘왜 싸움을 위해서 싸움을 하는 거야.’
의미 없는 갈등, 거침없는 잔학한 폭력성.
아델하이트는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다시 한번 체감했다.
필리프 4세, 그는 광기의 화신 그 자체였다.
혈통의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무지막지한 폐해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진군 목표로 삼은 40계층, 알데바란은 플레이어들이 교역을 이루는 일종의 중립지대다.
그곳을 친다는 것은 곧 막강한 클랜과 하이랭커들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리프 4세는 그런 딸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아델하이트. 눈빛은 여전히 반항적이구나.”
“……아바마마께서는 어째서 저희를 이곳에 데려온 거죠?”
“넌 이미 한 번 어긋난 존재지만, 평화롭게 길목을 트기 위한 교섭물품으로는 아주 제격이 아니더냐?”
한 번 어긋난 존재.
그 말에 아델하이트는 심히 몸을 떨었다.
머릿속에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혈통의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피가 더욱 진해져야겠지.
미수로 그치기는 했지만.
필리프 4세는 위험한 생각을 품고 그녀에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아델하이트는 너무나 두려워 무작정 도망쳤다.
그때의 인연으로 럼을 만나 소피를 낳았고 행복한 삶을 만끽했다.
“엄마.”
“괜찮아. 소피. 엄마가 지켜 줄게.”
아델하이트는 자신의 품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딸, 소피를 꼭 끌어안았다.
“흥! 천박한 잡종과 낳은 부산물이 뭐가 그리 좋다고 쯧쯧.”
소피를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자, 아델하이트는 발끈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며 필리프 4세는 와인글라스를 흔들며 말했다.
“이만 포기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거라. 나 위대한 필리프 4세 앞에서 누가 감히 대항할 수 있을까?”
질끈.
아델하이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필리프 4세는 그런 그녀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좋다. 짐은 비난도 마땅히 들을 정도로 아량이 깊으니까.”
아델하이트는 저 말을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물러서지 않아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게 항상 있는 법이다.
이후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아델하이트는 입을 뗐다.
“……아버지는 전혀 위대하지 않아요.”
“뭐?”
마치 태어나서 처음 들은 것처럼 필리프 4세는 쫑긋 귀를 세웠다.
그런 필리프에게 아델하이트는 못을 박듯이 말했다.
“위대한 군주는 자신의 백성의 안위를 지킬 줄 압니다. 그것이 지도자로서 마땅한 도리니까요.”
“날 가르치려 드는 게냐? 아델하이트.”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피식.
그녀의 선언에 필리프 4세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우매한 백성들은 짐의 향락을 위해 존재하는 기반이다. 피가 메마르고 그 뼈가 가루로 부스러질 때까지 짐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거다. 네년이 말한 이론은 우매한 백성들에게 지탄을 받아 죽은 어리석은 군주의 예시일 뿐인 게다.”
“그렇지…….”
아델하이트가 반박하려는 찰나.
필리프 4세는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 누가 나에게 대항할 수 있지? 하찮은 잡종 버러지들이 감히 짐을 쳐다나 볼 수 있을까? 반기의 칼을 들면 그 일족 전체의 숨통을 끊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이 왕의 위업이고 왕이 가치를 지켜 내는 법이다. 아델하이트 다시 묻겠다. 그 누가 나에게 대항할 수 있지?”
“…….”
아델하이트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천하의 필리프 4세.
그의 위용을 꺾을 수 있는 자는 정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벅.
언제 다가온 건지, 병사 중 한 명이 아델하이트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투구를 벗었다.
“……?!”
“아빠!”
예상치 못한 이의 출현에 아델하이트는 눈을 부릅떴고.
소피는 눈을 반짝였다.
모습을 드러낸 럼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필리프 4세에게 소리쳤다.
“필리프!! 너에게 심연의 결투를 신청한다!”
“……?!”
“……?!”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함선 안에 있는 모두를 동요시키기 충분했다.
심연의 결투.
그것은 십존으로서 권위를 한껏 활용해 필리프 4세가 만들어 낸 시련이었다.
룰은 간단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결투 재판의 참가자들은 상대를 굴복시킬 때까지 싸움을 벌여야 된다.
이긴 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가진다.
얼핏 보면 무척이나 간단해 보였지만 이것은 무척이나 잔인한 내용이었다.
반면, 그에게 만일 평민이 도전해 패배한다면?
패자는 대를 거듭해서 패배의 대가를 받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패배해 필리프 4세의 병사가 된 플레이어들은 무지막지했다.
필리프 4세는 마음에 드는 루키가 있으면 늘 이런 식으로 결투를 신청했다.
플레이어에게는 거절할 명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절한다면, 무수한 군세 앞에서 창에 찔려 죽음을 맞는 결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탑에 오르는 신참 플레이어들은 필리프 4세의 눈에 띠지 않기 위해 변장을 해야 하는 웃기지도 않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것이 탑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그 룰을 모두 알고 있을 법한 럼이 필리프 4세에게 도전을 해 온 것이다.
“……제정신이냐?”
어처구니가 없는지 필리프 4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름이 뭐였지? 하찮은 게 짐에게 말을 놓으라고 한 적이 없다만.”
너의 존재 따위는 기억하지 않는다.
아델하이트와 깊은 인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프 4세는 그의 존재 자체를 잊어먹은 듯 보였다.
빠득!
그게 몹시 분했지만 럼은 이를 갈며 말했다.
“너한테서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겠어.”
“……그만둬.”
아델하이트는 럼의 무모함을 책망하며 조용히 말했지만.
꽈악!
럼은 주먹을 쥐며 단단하게 소리쳤다.
“내가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어? 천만에! 온몸이 찢기든 못에 박히든 불에 타서 끔직한 고통을 겪더라도 내 결심은 달라지지 않아! 난 내 가족을 지킨다! 반드시!”
울컥!
그 말을 듣던 아델하이트는 울컥 울음을 터뜨렸다.
……기뻤다.
자신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바보 같은 남자가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필리프 4세는 고개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딱하구나.”
정말 측은하게 여길 리는 없다.
그의 말은 기만과 조롱만 가득할 뿐이었다.
꽈악!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럼은 주먹을 으스러질 듯 쥐며 말했다.
“……결투를 받아들여라. 필리프.”
“좋다.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기 전에 아주 작은 유흥을 즐길 수 있겠구나.”
승낙이 떨어짐과 동시에…….
[시련, 심연의 결투가 시작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굴복시킬 때까지 전투를 벌여야합니다.]시련의 내용이 적힌 시스템창이 양쪽 플레이어의 눈앞에 생성됐다.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