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18)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17화
갑작스런 프러포즈에 어색한 침묵이 주변에 감돌았다.
‘도대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거야?’
건우는 라페아의 눈빛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부끄럽기도 했고 솔직히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시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전투를 할 때의 냉정했던 이성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하, 할아버지.’
그 때문에 세이비어에게 조언을 얻으려고 했지만.
-……
세이비어는 지그시 입을 다물며 그저 침묵을 지켰다.
미미하게 떨리는 라페아의 푸른 동공과 마주친 건우는 가슴이 떨렸다.
이렇게까지 근사한 여자가 자신에게 구혼을 하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상기된 어떤 형상에 감정이 차갑게 메말랐다.
그것은 똬리를 튼 뱀이었다.
“……미안.”
긴 침묵 끝에 나온 말은 사과였다.
“내가 별로인가?”
상심할 법도 한데, 라페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니. 솔직히 진지하게 교제까지 생각은 해 봤는데, 내 사정 때문에 안 되겠더라고.”
“사정?”
“나는 이 탑에 뱀을 쓰러뜨리러 왔거든.”
“……?!”
예상치 못한 존재의 언급에 라페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먹힌 건가?’
마음이 놓인 건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답했다.
“그러니까 녀석이랑 결착을 짓기 전까지는 소중한 사람을 만들 수 없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건우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 라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줘서 고마…….”
덥석.
라페아는 건우의 말을 끊고 그대로 건우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아담하면서도 부드러운 온기에 건우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라페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절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짜고짜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나름 일리 있는 반박이었지만.
라페아는 그 질문을 넉살좋게 받아쳤다.
“분명 처음에는 교란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너에게 접근한 것은 맞지만, 지금 나는 최건우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애정을 가지게 됐다. 이유는 이것이면 되겠느냐?”
“…….”
당당한 고백에 건우는 어떤 답을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페아는 변함없이 자신의 포부를 내비쳤다.
“어디까지나 혼약을 미룰 뿐. 앞으로 너의 여정에 함께 할 것이다. 물론 이의는 받지 않는다.”
다소 억지가 가득했지만.
말해놓고도 창피했는지 라페아의 얼굴은 잔뜩 빨개져 있었다.
“나도 여자다. 이 이상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라.”
결국은 그 말에 건우는 졌다는 듯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알았어. 다만 대답에 대해서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
“그대는 귀엽구나.”
라페아는 활짝 웃으며 건우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오호!
평소에 본 적 없는 희귀한 풍경이라 세이비어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그나저나 이제 손 좀 어떻게 해 주지?”
건우는 라페아가 깍지를 낀 손을 눈으로 힐끔 쳐다봤다.
“아아, 그런 건가?”
라페아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건우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그게 아니잖아!”
건우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였다.
***
여행을 재개하기 전.
라페아는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입었던 화사한 드레스나 단아한 드레스 대신 모험자 복장을 갖춰 입은 그녀는 활발한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불꽃이 일렁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적금발의 머리칼.
호수처럼 투명한 푸른 눈.
수많은 인류가 모여 있는 이곳에선 그리 특이한 외양은 아니다만.
그녀만이 줄 수 있는 미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름 그것을 감추기 위해 포니테일을 하기도 했지만.
색다른 미를 줄 뿐.
그녀가 지니고 있는 기품은 쉽사리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별로인가?”
정작 거울을 들여다보는 라페아는 자신의 미모에 흠 잡을 데가 많다고 생각했나보다.
보다 못한 엘퀴네스는 그녀를 꾸짖었다.
-라피. 그렇게까지 안 해도 넌 충분히 예뻐.
“하지만 건우는 나의 구혼에 확답을 주지 않았는데?”
-음 그건 말이지.
엘퀴네스는 난처한 듯 잠시 뜸을 들였다.
라페아가 기껏 각오와 포부를 밝혔는데…….
대답을 보류하니 라페아는 그 점이 못내 섭섭하면서도 드물게 그 이유를 자신에게 찾고 있었다.
라페아는 엘퀴네스에게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무척이나 분했어.”
-어떤 점이?
“그의 머릿속에 내가 아닌 그 뱀으로 꽉 차 있다는 게…….”
-원래 사명을 가진 남자라는 게 다 그런 거야. 그래도 최건우가 그렇게 솔직하게 답한 걸 보면 절대 라피의 고백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훗.
엘퀴네스의 말에 자신감이 생긴 걸까?
잠시 상심했던 라페아의 입꼬리가 다시 자신만만하게 올라갔다.
“그렇다면, 그의 머릿속에 하루 종일 나만 생각나게 꽉 채워 주겠어.”
-라피. 사명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절대 방해가 돼서는 안 돼.
“물론 그의 사명도 중요시 할 예정이야. 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여자거든.”
얄궂게 웃으며 말하는 라페아를 보며 엘퀴네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만하면서도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줄 아는 여자는 아마 탑에서 그녀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것도 잠시.
라페아는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엘퀴네스에게 물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외면한다면?”
‘그럴 리는 없을걸.’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세상을 훤히 들여다본 엘퀴네스의 관점이다.
최건우는 틀림없이 라페아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다.
다만 그에게 걸린 여러 가지 악조건이 그녀의 손을 잡는데 발목을 붙들고 있을 뿐이다.
‘이 뒤부터는 둘이 알아서 해 나갈 문제지만 확신 정도는 가지게 해 줘도 되겠지.’
-만약 끝까지 라피를 외면한다면 그는 아마도…….
엘퀴네스는 살짝 골려 주려는 의도로 말에 뜸을 들였다.
“아마도?”
라페아는 그런 엘퀴네스의 말을 귀에 담기 위해 쫑긋 귀를 세우고 있었다.
엘퀴네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고자일 거야.
“고, 고자?”
라페아는 크게 놀란 듯 엘퀴네스의 말을 되뇌었다.
같은 시간, 라페아 별장에 위치한 장미정원.
파르르르르르.
허기를 채울 겸 빵을 먹고 있던 건우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쿨럭. 커헉, 커헉.”
그러다 사레가 들린 건지 연신 헛기침을 했다.
“건우 형. 왜 그래?”
땀을 뻘뻘 흘리며 케이론에게 훈련을 받던 렌은 의아한 표정으로 건우를 쳐다봤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건우는 다급히 우유를 들이켜며 속을 진정시켰다.
-누가 네 험담이라도 한 게냐? 왜 갑자기 몸을 떨어?
“그냥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요.”
묘하게 기분이 찜찜했지만 건우는 곧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때, 훈련을 마친 렌이 건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건우 형. 근데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뭔데?”
“형은 튜토리얼을 막 끝낸 플레이어인데, 어떻게 탑의 십존 하고 겨뤄서 이길 수 있었던 거야?”
정체를 묻는 질문인 것 같지만 본질을 따지고 보면, 뉘앙스는 살짝 달랐다.
렌이 묻는 것은 필리프 4세에 대한 공략법이었다.
스스.
이에 대한 답은 건우가 아닌 세이비어가 대신 튀어나와 설명해 주었다.
-그건 이 간사한 자식이 전투 중 레벨을 간간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어, 어떻게요?”
간사하다는 말에 건우는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들어 흘깃 쳐다봤지만.
세이비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너도 알다시피 건우에게는 충직한 수하 네 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게다.
“바포메트랑 네메시스, 그리고 세피아님을 말하는 거죠?”
-그렇지.
“……왜 세피아만 존칭을 붙여?”
건우는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마리오네트 상태로 있는 세피아를 쳐다봤다.
홱!
다소 찔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는지 세피아는 건우의 시선을 회피했다.
-아무튼 무적함대 사이에서 격전을 치르는 것은 이 네 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건 너도 알고 있을 게다.
“직접 지켜봤으니까 통감하고 있어요.”
전투 당시.
렌은 인비저블을 시전한 케이론의 등에 올라타 무적함대에서 벌어진 풍경을 지켜봤다.
제일 먼저,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네메시스.
그녀의 아름다운 음율에 취한 조타수들은 부상하고 있는 비마나를 추락시켰다.
물론 5000척 전부는 무리였지만.
그로 인해 대열이 심하게 무너지며 요지부동의 군세는 심하게 혼란을 겪었다.
세피아는 비마나가 추락한 비마나가 다시 부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다와 함께 통째로 동결시켰다.
그 뒤, 케이론은 무적함대의 지휘관을 보이는 족족 화살로 꿰뚫었다.
렌은 턱을 떨어뜨리며 바들바들 떨었어야 했다.
‘어 설마?!’
그때 당시를 회상하고 있던 렌은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부릅떴다.
“설마 격전을 치르는 동안 얻은 경험치가 전부 건우 형에게 쏠린 건가요?”
-정답이다.
세이비어의 확답에 렌은 크게 충격을 먹은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은 그 전투에서 끊임없이 레벨 업을 한 거지. 아마 지금쯤이면 과거의 역량을 되찾았을 게다. 이 녀석이 마냥 사람 좋은 놈이 아니야. 실제로 챙겨 먹을 건 다 챙겨 먹었어.
“그, 그렇긴 하네요.”
얼마나 기량이 상승한지 모르지만.
건우는 필리프 4세의 전함이었던 스키드 블라드니르까지 쟁탈했으니 제대로 득을 챙긴 것이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공짜로 일해 주지는 않아.”
세이비어는 질투와 시샘이 가득 찬 눈길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약은 놈.
“……좋은 말 많잖아요.”
건우는 그의 푸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다 말했다.
“그나저나 렌. 슬슬 이별인사는 해야지. 해가 중천에 뜨면 출발할 거야.”
“……알았어.”
렌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럼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워 보였다.
잠시 후.
등반 준비를 마친 건우는 일행과 함께 럼의 가족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안락하게 살 수 있는데, 구태여 농부의 삶을 살아가겠다니. 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라페아는 럼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어지기에 앞서 럼은 다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그녀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어려운 요구가 아니기에 수용하기는 했지만.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다시금 귀농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럼은 밀짚모자를 쓰며 말했다.
“존경하는 분이 말씀해 주셨거든요. 멸망에 처한 황폐한 환경에서도 꽃은 결국 스스로 피웠다고.”
스윽.
건우는 조용히 럼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몇 대 맞으면 닥쳐줄래?”
윽박을 지르는 것과 달리 귓가는 달구어진 것처럼 빨갰다.
앞서 말한 럼이 언급한 존경하는 분이 했다는 말은 다름 아닌 건우가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크흠! 아이도 있는데,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 그리고 라페아님에게는 끝까지 말해야죠.”
“…….”
하는 말 족족 옳은지라 건우는 손을 거둬들이며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럼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니 저는 그 꽃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꾸준히 가꾸려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참 멋진 말을 하는 자구나. 그대의 바람이 이뤄지길 응원하겠노라.”
라페아는 활짝 웃으며 순순하게 칭찬과 격려를 했다.
“……그만하고 가자.”
건우는 심히 부끄러웠던지 한 손으로 눈밑을 가리며 발길을 옮겼다.
라페아와 럼은 그 뒤를 따랐고 럼과 그의 가족들은 건우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
***
훌쩍!
건우와 이별 뒤, 럼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검지로 훑어 냈다.
“아빠 왜 울어?”
“기쁘면서도 섭섭해서 그러는 거야.”
아델하이트는 소피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피식 웃으며 럼에게 말했다.
“당신이 존경한다는 분이 건우님이지. 어떤 이유로 존경하는 거야?”
“조금 유치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는 나의 영웅이야.”
무적함대의 군세에도 절대 무릎을 꿇지 않는 건우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직까지 아른거렸다.
같은 남자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찌 반하지 않을 쏘랴.
찌릿!
“질투 나는데?”
아델하이트의 푸념에 럼은 그녀의 손을 아프지 않게 꽉 쥐며 말했다.
“다시는 이 손을 놓치지 않을 거야.”
“…….”
그 말에 조금 설렜는지 아델하이트는 얼굴을 붉히다가 곧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나도.”
세 가족은 라페아가 마련해 준 새로운 삶의 터전에 그대로 발길을 향했다.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