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36)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35화
엘더리아에서 가장 외진 숲 속.
꿈틀.
그곳에는 한 때, 최강이었던 키메라가 지렁이처럼 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한 때는 분신이었지만 이제는 본체가 되어버린 라폰, 그 자체였다.
……거짓말이야.
난 최강이야. 아니, 최강이어야 됐어.
근데 어째서?
뚜벅.
그때, 숲 속을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라폰의 귀에 와 닿았다.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고블린 관리자, 리발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천하의 라폰이 이런 벌레만도 못한 꼴을 겪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도발적인 말에 라폰은 발끈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것은 기회였다.
-나의 수복을 도와라. 다시 약한 개체부터 포식하면서 몸집을 키우면 이전의……
“예전, 레전드 키메라의 역량을 키우려면 몇 개체나 먹어치워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합리적으로 봤을 때, 그건 올바른 투자가 아니라 엄청난 낭비입니다.”
-…….
리발의 말에 라폰은 굴욕을 느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고블린한테 이렇게까지 무시를 당하다니 수치와 굴욕에 라폰은 몸을 떨었다.
-……나는 최강의 키메라다. 날 도와주면 그에 대한 보답은 확실히…….
“최강의 키메라라…… 이제야 말하지만 그건 올바른 표현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탑에는 우릴 곤혹스럽게 만드는 또 하나의 키메라가 있거든요. 그 강함은 규격 외. 활동은 뜸하지만 사고를 일으킬 때면, 늘 가슴이 철렁하죠. ‘그림자의 마수’로 호명되며 여섯 날개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번외’로 취급돼 십존의 경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이 날 도와야지. 뱀께서도 날…….
“아, 뱀께서는 패배자는 필요 없다고 저에게 친히 일러줬습니다. 그러니 무엇 하나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란자에 대한 일은 전부 저에게 일임하셨죠.”
-네놈 따위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차라리 나를 다시 수복시키는 게…….
“그건 투자 낭비라고 했는데, 두 번이나 말씀드려야 되는 건가요? 당신은 정말 멍청하군요.”
-네, 네놈.
“하긴 몸집만 불릴 줄 아니, 머리는 텅 비었을 수도 있겠군요. 힘만 강해지고 머리는 퇴화한다라, 참 아이러니한 진화군요.”
리발은 이제 라폰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지도 않았다.
아니, 말만 공손하지. 이제는 그 말투에 조롱과 괄시가 뒤섞여 있었다.
-네놈!! 네놈이라고 그 교란자에게 발이라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발은 내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를 교란자와 맞닥뜨리게 할 예정입니다. 라폰 당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당신의 옛 시절의 동료겠군요.”
-서, 설마.
“아 눈치채셨습니까? 전성기 시절 당신도 깨갱거리며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존재죠.”
빙그레 웃던 리발은 슬그머니 음산한 눈빛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이제 어쭙잖은 개수작 부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지렁이 새꺄.”
파직!
발설 직후.
리발은 자비 없이 라폰을 짓밟았다.
한때, 키메라의 왕이라고 불리던 라폰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씨익.
리발은 통쾌하다는 표정을 짓다…….
꿈틀꿈틀.
갑자기 엘더리아에 감도는 짙은 생명과 활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라폰의 독에 중독돼 황폐화된 숲이 어째서 이렇게 급작스럽게 생명의 분위기를 띨 수 있는 걸까?
“서, 설마?!”
문득 뒤를 돌아보니, 엘더리아의 중심에 위치한 세계수가 금빛에 휘감기며 점차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썩어가던 나무줄기는 증발되듯 사라지고.
부러졌던 가지 역시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독을 흡입했던 뿌리도 독을 도로 뱉어 냈다.
세계수의 회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엘더리아 숲 역시 자생하기 시작했다.
숲이 정화되고 있다.
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런 숲의 회복을 반기는 건지, 허공에서 거대한 인어, 네메시스가 축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엘프들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칫!”
통쾌했던 감정은 곧 불쾌한 감정으로 뒤바뀌었다.
“너는 어디까지 탑의 위계질서를 흩뜨려 놓을 생각이지? 교란자, 아니 최건우.”
교란자의 정체는 이미 발각이 됐다.
클랜, ‘똬리를 트는 뱀’에 의해 곧 최건우는 현상수배 되겠지만.
건우는 이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보복을 위해 누군가 엘더리아에 침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어림없는 소리였다.
이미 칭호, ‘규율위반자’의 효과를 이용해 20층, 엘더리아에는 제약의 법칙이 부가된 상태로 건우가 제약을 건 대상자들은 발도 내밀지 못했다.
“무모한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맞는 방향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군.”
정보 수집을 위해 세계수에 발길을 옮기는 찰나.
파직!
[경고: 제약의 법칙으로 관리자, 리발은 엘더리아에서 접근할 수 없습니다.]강렬한 결계와 함께 제약의 법칙이 리발을 밀어냈다.
빠드득.
리발은 이를 갈며 분개했다.
“이제 엘더리아에는 관리자조차 간섭할 수 없단 말인가.”
모든 탑의 시련에는 관리자가 개입할 명분이 있거늘. 교란자는 그 룰조차 깨버렸다.
스윽, 스윽.
그 순간 숲속 부근에 있던 사슴과 늑대,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일제히 리발을 노려보았다.
라폰에 의해 생명이 꺼져 가는 땅에서 아직도 이만큼 많은 동물들이 살아 있다는 게 실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서로 포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동물들이 합심해서 리발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단단히 미움을 받고 있는 것 같군.”
리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아직 시간의 유예는 남아 있다.
“과연, 내가 준비한 함정 속에서도 네놈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건우.”
리발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
지배자, 라폰이 죽고 엘프들은 다시금 부흥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늘 하루는 엘프들의 연회가 펼쳐졌다.
세계수의 복원을 하고 있던 건우는 연회에 뒤늦게 참석한다고 통보했고.
엘프들은 노래를 부름으로써 새로운 엘프로드에 대한 찬미를 대신하고 있었다.
휙! 휙!
그 들뜬 분위기 가운데서도.
칼은 열심히 검을 붙들고 휘두르고 있었다.
“오빠 놀 때는 놀아야 해.”
그런 칼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여동생, 애쉬는 만류했지만, 칼은 말을 듣지 않고 검술에 매진했다.
“소용없어. 그렇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동경하게 되거든.”
바로 뒤에서 느긋하게 누워 있던 렌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크기를 가진 라폰을 검으로 썰어 버리는 광경은 가슴에 벅찬 감동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분위기가 변한 건우가 선보인 검술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심취한 칼은 이제부터 그 경지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 애쓰고 있었다.
“그래도 놀 때는 놀자고. 이 녀석아.”
탁.
렌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날로 가볍게 칼의 뒤통수를 때렸다.
“……?!”
당황한 칼은 홱 렌을 돌아보았다.
렌은 힐난 섞인 시선을 주는 칼에게 말했다.
“건우 형이라면 진작 피했겠지. 그리고 건우 형은 놀 때 놀아야지. 검술 실력이 성장한다고 했어.”
“그, 그래.”
건우와 가장 가까이 있던 렌의 말에 칼은 귀를 쫑긋거렸다.
물론, 건우가 옆에 있었으면 ‘내가 언제?’라며 볼을 잡아당겼지만.
증명할 당사자가 없기 때문에 칼은 렌의 말에 쉽게 넘어갔다.
“그나저나 저놈들은 왜 저기에 아까부터 서성거리고 있대.”
렌은 아까부터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그레이와 그 친구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애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 렌 오빠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은 걸 거야. 키메라들한테서 구해 줬잖아.”
그녀의 말에 렌은 피식 웃으며 그레이 일행에게 말했다.
“칼에게 사과가 먼저다. 이 녀석들아.”
움찔!
그들은 렌의 말에 어깨를 떨다 슬며시 다가와 칼에게 말했다.
“미, 미안.”
“됐어. 신경 안 써.”
칼은 무덤덤하게 사과를 받아주었고 렌은 피식 웃으며 칼과 그레이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연회고 하니, 우리도 실컷 놀자고. 과일주도 몰래 빼왔으니까 같이 마시자.”
깜짝 놀란 칼과 그레이는 눈을 부릅떴다.
“우, 우리가 마셔도 되는 거야?”
“괜찮아. 몰래 마시면 되는 거지.”
렌의 말에 호기심이 기울인 어린 엘프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스윽.
그러다 음산하게 드리워진 그늘에 애쉬는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렌과 엘프들은 자신들이 등지고 있는 그늘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싸아.
그곳에는 니파가 냉혹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새로 지어진 엘프로드의 임시 거처.
그곳에는 건우가 세계수와 마주 보며 복원의 권능을 행사하는 중이었다.
[세계수의 회복이 90%까지 이루어졌습니다.]우웅.
새하얀 나무줄기에서는 우렁찬 생명의 격동이 울려 퍼졌다.
[은혜를 입은 세계수가 당신에게 큰 호의를 느낍니다. 차후 엘더리아를 통해서 세계수의 마력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세계수는 자신을 회복시켜 준 건우에게 잇따라 감사를 표시하고 있었다.
말만 못할 뿐이지. 이것 역시 의지를 갖춘 생명이구나. 라는 것을 건우는 새삼스럽게 통감하고 있었다.
그때, 세계수를 회복시키기 위해 발동시켰던 마나기관, 심장의 태엽이 회전을 멈췄다.
스스스스스
몸을 둘러싼 황금빛의 휘광은 사라지며 건우는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렸다.
“……지쳤다.”
어깨를 탁탁 두 번 두들기던 건우는 나무 밑동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세계수를 복원시키려고 쉬지 않고 권능을 사용했으니 당연한 거다. 미련한 녀석. 쉴 때는 쉬어야지.
세이비어의 질책에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나름 엘프로드인데.”
“어차피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될 칭호 아닌가.”
바로 그때, 세계수의 복원을 끝마친 것을 깨달은 라페아가 건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싱그럽게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건우, 너가 붙인 조건이 너무 가혹하기는 하다만.”
“아, 그거.”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나름 엘프로드라고 자칭하기는 했지만, 사실 건우는 자신의 정확한 역할은 엘프로드 대행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앞으로 엘프들이 힘들게 되찾은 엘더리아에서 살아가려면,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 때문에 왕위찬탈을 하라는 명목으로 엘프들에게 니제르의 검술을 전파하고 있다.
다음 엘프로드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자신을 이기라고 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도전해 오는 엘프가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존재라면, 충분히 엘더리아를 물려줄 용의도 있었다.
라페아는 슬며시 건우의 등과 맞닿아 앉았다.
“…….”
예상치 못한 행동에 건우는 발그레 얼굴을 붉혔고, 라페아는 눈을 감으며 싱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정령친화력이 한층 높아졌어.”
“아무래도 엘더리아를 착용하고 있으니까. 정령친화력이 대폭 증가했거든.”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약 엘더리아의 권능을 행사하려고 하면, 왕관은 언제든지 모습을 드러내리라.
“뭐 친화력이 없더라도 난 변함없이 너를 좋아하겠지만.”
라페아는 그대로 싱긋 웃어 보였고 건우는 잠깐 말문을 잃었다.
그 짧은 순간, 라페아는 조금 진지한 눈빛으로 건우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렇게까지 엘프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스승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건가?”
“난 니제르에게 많은 것을 받았으니까.”
건우는 구태여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기에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여러모로 엘프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어. 죽음보다 더한 절망 앞에서 싸워야 되는 심정을 알고 있으니까. 그때쯤 되면 신이든 구원자든 영웅이든 제발 나타나달라고 간절히 원하게 되거든.”
“만약 너에게 다시 그런 위기가 오면, 내가 그런 존재가 돼주지.”
“그거 참 영광입니다.”
실없는 대화가 즐거워 건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지.”
“응?”
은연중 불길한 느낌이 번뜩 들었다.
라페아의 어조가 묘하게 따가웠기 때문이다.
스멀스멀.
정령들은 그녀의 감정을 느끼고선 서둘러 대피하고 있었다.
라페아는 날카로운 푸른 안광으로 건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째서 니파의 이마에 키스를 한 거지?”
‘……키스? 내가 언제?’
-니제르가 너의 몸에 빙의하고 있을 때, 이마에 가볍게 했지.
세이비어의 말에 빙의 때, 겪었던 체험인 것을 깨달은 건우는 황급히 자리에 일어섰다.
“그, 그건 말이지. 사실은 내가 아니었다라고 할까.”
“아아, 사연은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라페아는 상당히 삐진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4대 정령왕이 일제히 건우에게 핀잔을 날렸다.
-바람둥이! 우우우우우!
빠직!
‘저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다시 한번 세피아를 불러 혼을 내고 싶었지만.
그 대신 건우는 호흡을 고르며 라페아에게 다가갔다.
“눈치 없고 늘 이런 일에 약해서 혼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꼭 너와 연인이 되고 싶어.”
라페아는 살짝 건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마음을 증명할 방법은 있는 거냐?”
“있어.”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건우는 피식 웃으며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