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Recovery Mage RAW novel - Chapter (23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236화
고요한 밤.
축제가 끝난 엘프들은 모두 잠에 취했다.
“이 술 굉장히 맛있네.”
건우는 축제 후 남은 과일주를 나뭇가지 위에서 홀짝 들이켜고 있었다.
평소라면 라페아도 옆에 끼겠다고 했겠지만.
그녀를 돌보는 4대 정령왕들은 과연 만만치 않았다.
-라피. 밤늦게까지 연인도 아닌 사람이 있는 것은 절대 금물이야. 절.대. 특히 바람둥이는 안 돼.
-안 돼!
엘퀴네스를 필두로 다른 3대 정령왕은 제법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또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라페아는 고분고분 그들의 말에 따랐다.
‘근데 내가 왜 바람둥이냐고.’
건우는 정령들 사이에 수식어처럼 붙은 칭호에 대해 질색했다.
-평소 행실이 건전했어야지. 인마.
“딱히 불성실했던 적도 없는 것 같은데요?”
-뭐 그것도 그렇구먼.
생각 외로 순순히 인정하는 세이비어의 대답에 건우는 맥이 빠졌다.
“그나저나 스승님은 모처럼 만났는데, 같이 이야기하시죠?”
건우는 팬텀케이프에 임시로 영혼을 정착한 니제르에게 말을 걸었다.
스스.
니제르는 은연중 존재감을 드러내며 답했다.
-할 말은 없다만.
“전 할 말 많은데요? 이 너덜너덜한 몸 보이지 않습니까?”
건우는 착잡한 표정으로 팔에 두르고 있는 붕대를 보여 주었다.
평소라면 복원을 통해 곧장 몸을 회복시켰겠지만.
이번에는 니제르의 명으로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을 일절 하지 못했다.
-그 고통을 몸이 기억하도록 내버려 두면 돼. 아직도 아프지?
“…….”
평소라면,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번에는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몸에 저릿한 고통은 탑의 진리를 건드렸을 때, 받은 형벌과 비슷한 고통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후에 얻은 검에 대한 깨달음으로 구상한 5개의 식을 너의 몸으로 구현한 거다.
“……이제는 니제르 12식인가요?”
건우는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죽었으면, 편하게 눈을 감고 성불하기 망정이지.
괴물 같은 검식을 5개나 더 창안하다니.
검에 대한 니제르의 천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완전기억능력이 있으니, 다시 그 검술을 구현할 수 있겠지. 그 능력은 단순히 암기뿐만 아니라 몸에 각인된 기억도 일깨울 테니까.
세이비어는 새삼스럽다는 니제르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의외로 이놈한테 친절한 스승이었구나. 평소에 까칠했던 놈이라 친구도 없는 놈이.
-괴팍해서 친구 없던 놈이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뭐 이 새끼야.
‘애도 아니고.’
투덕거리는 세이비어와 니제르를 보며 고개를 저을 때.
“왜 로드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혼자 술 마시고 있어?”
니파가 건우에게 다가왔다.
“좋잖아. 엘더리아의 공기.”
“확실히.”
활력이 샘솟는 엘더리아의 대기.
마나는 더욱 짙어지고 퇴색됐던 숲도 나름 자신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세계수의 복원과 함께 숲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그 모습에 엘프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니파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같이 마시고 싶은데.”
자연히 옆에 착석하며 건네는 그녀의 제안에 건우는 즉답했다.
“안 돼.”
“……어째서?”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니파를 보며 건우는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바로 뒤에 그녀의 아버지인 니제르가 있는데, 어찌 감히 그의 딸과 술을 마신단 말인가.
-딱히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일까?
니제르는 무덤덤한 대답에 건우는 마음을 놓으며 그녀에게 과일주를 따라 주었다.
“아빠가 있어서 긴장했나보구나.”
니파는 그런 건우의 속내를 눈치챘는지 피식 웃어 보였다.
라폰과 격전 중일 때의 그 항상 긴장한 채로 화만 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활기차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본모습인 것 같았다.
술을 한 모금 마신 니파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한테는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어.”
“감사는 무슨. 스승님한테 은혜를 갚았다고 치자.”
“그것 뿐만은 아니면서.”
니파는 양쪽 무릎을 끌어안으며 건우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근.
그 모습이 정말 동화 속에서 볼 법한 엘프의 아름다운 모습이었기에, 건우는 일순간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그녀를 보던 건우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29층에서 유명한 누베 칵테일을 마시거나.
또 리치몬드 박물관에서 한 여인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나.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모두 니제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너 사실, 스승님 엄청 좋아하는구나.”
-쓸데없는 소릴.
건우의 말에 니제르는 곤혹스러운 듯, 한 마디를 내뱉었고.
취한 듯 얼굴이 붉게 상기된 니파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너무 좋아. 그야 우리 아빠는 전설이자 영웅이잖아. 실제로 봤을 때도 너무 멋있고. 그래서 아빠의 자취들을 자꾸 쫓게 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그녀는 건우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넌 앞으로 술 절대 금지다.”
“왜?”
“아무튼 절대 금지. 마실 거면 내 앞에서 마셔.”
“불공평해!”
건우의 엄포에 니파는 즉각 항의의 의사를 표하다……
피식.
입꼬리에 웃음이 걸려 버렸다.
“내가 걱정되는구나.”
“…….”
건우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니파는 진지한 눈빛을 띠며 건우에게 마저 답변했다.
“그럼 안 마셔. 네가 한 말이니까.”
-너 왠지 또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한 것 같다.
‘어떤 점이요?’
세이비어의 말을 눈썹을 꿈틀거리며 곱씹던 건우는 결국 고민을 포기하고 다시 과일주를 홀짝 들이켰다.
니파는 그런 건우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높이 올라온 건 정말 이유가 그것뿐이야?”
“그것뿐이라면 거짓말이겠지. 저기를 볼래?”
건우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지상을 가리켰다.
산등성이를 통해 엘더리아에 노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찬란한 태양의 광채가 엘더리아의 푸른 초목을 적시자, 숲은 마치 금빛으로 물든 것만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
그 광경에 니파는 눈을 부릅떴다.
엘더리아의 토착민인 그녀도 지금의 광경은 난생처음이었다.
건우는 씩 웃으며 입을 뗐다.
“인생 끝에 눈을 감기 전에 이 풍경만큼은 다시 눈에 담을 것이다. 필모어가 한 말인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한줄 알겠네.”
한 번 보기에는 아까운 찰나의 순간.
거대한 숲, 엘더리아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배자의 횡포에 더럽혀졌을 뿐, 난 죽지 않는다.
경이적인 생명의 격동에 니파의 눈물이 고운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게 엘더리아.”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니파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게 너희들이 긍지를 가지고 지키려고 했던 고향의 풍경이야. 대대손손 물려주라고.”
왈칵!
니파는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입을 막으며 어떻게든 새어 나오는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수고했어.”
“흐아아아아아아.”
건우가 내뱉은 한마디에 봇물이 터진 것처럼 그녀는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
성가신 녀석.
엘더리아의 광채를 확인한 니제르는 자신의 딸을 다독이는 건우를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겉멋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파면 팔수록 속이 더 좋은 놈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네놈의 차례구나. 니제르.
-…….
세이비어의 말에 니제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 대마법사, 세이비어를 속이려하지 말거라. 네놈이 엘더리아에 대한 미련을 아직 떨쳐 내지 못하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니제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의 오지랖은 선조인 너 때부터 전해진 거군.
-암, 저 녀석은 더할 나위 없는 나의 자랑이다.
세이비어의 말에 니제르는 반박하듯 답했다.
-나의 자랑이기도 하다.
-숟가락 얹지 마! 이놈아 혈연이 제일이야!
-우리의 경우에는 혼연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이제는 내 말 듣지도 않는구먼.
세이비어는 지쳤다는 듯 한숨을 쉬다 곧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 역시 제자에게 끝끝내 말해 주지 않는구나. 네가 최후에 싸웠던 숙적에 대해서…… 너와 엘프들을 몰살시킬 뻔했던 건, 똬리를 트는 뱀이었겠지?
추측이 난무하는 심문이지만 니제르는 구태여 부인하지 않았다.
-아아, 나는 그 녀석에게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은은히 깊은 분노를 드러내고 있지만 니제르는 구태여 표현하지 않았다.
-이번에 저 녀석의 몸에 각인한 다섯 개의 검식은 오직 뱀을 척살하기 위해 창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아쉽겠구먼. 제자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한 게……
-그렇지만 믿고 있다.
니제르는 더 이상 여념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만 미련 떨치고 가봐. 얼굴만 딱 봐도 어디로 가고 싶은 표정이네.
세이비어의 말에 니제르는 결단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제자를 부탁한다.
-이놈아 내 후손이야! 내가 알아서 잘 챙겨!
주객전도.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세이비어는 발끈했고 니제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딸도 부탁하지.
-……그건 뭐 저 녀석이 알아서 할 일이고.
마지막만큼은 확신할 수 없는지 세이비어는 툴툴거렸고.
니제르는 미소를 지으며 자취를 감췄다.
***
검의 귀재라 불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남자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여인이 모두에게 촉망을 받는 데다 세계수의 은혜를 입은 자였기 때문이다.
그 손을 맞닿고 싶지만, 남자는 다가가지 못했다. 반면 여인은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남자는 멀어지려 했고 여인은 거듭 거리를 좁혔다.
주변의 평판은 날이 갈수록 좋지 않았다.
고귀하다고 불리는 여인이 모두가 꺼려하는 남자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남자가 겁을 내면…….
-겁쟁이!!
라고 소리치며 여인이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그 광경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그 뒤로 남자는 두려움을 극복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종족에서 가장 필요한 남자가 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죽이기 위한 검이 아닌 지키기 위한 검.
천천히 등을 돌렸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공포가 아닌 선망이 깃들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남자와 여인은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장래를 약속했다.
여인의 배에는 이미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는 감격에 취해 그대로 뒤에서 포옹을 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다.
***
혼령의 상태로 엘더리아를 스쳐 지나가던 니제르가 다다른 곳은 맑고 투명한 호수였다.
라라라.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금발을 나부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하이엘프의 여인.
그녀의 노래장단에 동물들은 심취하듯 그녀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스스스.
여인의 몸은 그대로 동물들을 통과했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혼령이었던 것이다.
-……역시 이곳에서 니파와 동족들을 지켜 주고 있었군.
-?!
니제르의 말에 활짝 놀란, 하이엘프, 이올라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니제르의 얼굴을 보자, 그녀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젖어 들어 있었다.
-그것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오랜만에 만난 이 남자의 답답함에 이올라는 그리우면서도 섭섭하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보고 싶었다.
니제르의 한마디에 이올라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와락 껴안았다.
이제 더 이상 온기는 느낄 수 없지만, 가슴에 부푼 감정은 그것을 메우고도 남았다.
오랫동안 떨어진 이별.
그리고 수천 년만의 재회.
니제르는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독한 가운데, 남자는 삶의 목적을 찾아냈다.
237.